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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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내게는 재일조선인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일본에서 짧은 기간 체류하면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아이들(그 당시 고등학생들)이 재일조선인이었고, 나의 첫 아르바이트 장소였던 곳의 주인이 재일조선인이었다. 그들은, 민단게열은 아니었지만, 그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것이 많다면 많다고 할까? 우선 고등학생이었던 그 아이들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들과의 만남이 나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그 아이들은, 조선인학교에서 조선말로 공부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언어소통이 가능했는데, 주로, 일본인이 듣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할 때 주로 한국어를 사용했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조선족 동포와 재일조선인과 내가 함께 지낼 일이 생겨서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이 책<산다는 것의 의미>의 작가와는 조금 다르긴 하다. 이 작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자란 세대이므로 굳이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이유가 없었지만, 내가 만난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한국인(정확하게는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들로 인해 해외교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그것은 내 진로를 결정했었다.

어쨌든 그렇게 재일조선인은 내게 의미가 있다. 요즘같은 세상에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대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있어서 재일조선인의 경우에는 "민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천삼]이는 조선인이라는 의식 없이 살아오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속하면서부터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자각을 한다. 그것은, 조선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기폭제로서의 자각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사건은, 그가 자라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천삼]이는 조선인이면서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겪게 되는 굴곡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침묵하고 있는 아버지보다 적극적으로 그의 삶에 끼어든 일본인들이다. 천삼이의 아버지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일본의 일에 무관하게 살아오려고 노력]한 반면 그 침묵으로 인해 오히려 아들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물론, 나중에 아버지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된 천삼이는 아버지의 침묵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인조선인이 일본에서 살아가며 겪은 고생담이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읽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작가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조건때문에 겪은 일이긴 하지만, 인간으로써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피해나,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야기들은 읽거나 들을 때 나는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일본 애미메이션 반딧불의 묘 같은 경우도 슬픈 이야기지만 나는 오히려 반감을 느꼈었으니까. 그러나, 그 시각을 조금 더 확대해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에 일본인보다 억울할 수는 있으나, 인간이라는 대명제를 놓고 바라본다면 모두 피해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물론, 천삼이가 죽음의 문앞까지 가게 된 이유가 애초에 일본이 일으킨 전쟁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조선인일수도 일본인일수도 없었던 천삼이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기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그는, 인간의 상냥함만이 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 게 일본인이라면,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닦아준것도 일본인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상냥함이 가져온 결과라고 천삼이는 이야기한다.

천삼이가 살아온 방식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감을 느끼게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최소의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반감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가서야 인간에 대한 상냥함을 알게 되는 탓에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계속되었었다. 그리고, 문체가 조금 지루한 감이 있어 맥이 빠지기도 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과연 인간의 상냥함에 대해 공감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도저도 아닌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삶을 한번더 생각하게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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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3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하양물감 2007-08-0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엔드 게임 도코노 이야기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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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책 [빛의 제국]에서 이야기했던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가 [민들레공책]과 [엔드게임]으로 확장되었다. 개인적으로는, 3권의 책 중에서 [엔드게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빛의 제국]이 짧은 단편 형식으로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를 주워 모았다면, [민들레공책]은 도코노 일족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본 사람이 회상형식으로 써내려간 일기 같은 이야기이고, [엔드게임]은 도코노 일족인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엔드게임]은 그들의 심리적 상태랄까? 도코노 일족으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의심한다. 심지어, 에이코는 자신의 뒤집는 능력이 뇌의 질환이 아닐까 의심까지 한다.




뒤집히거나, 뒤집는 일을 하는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인만큼, [엔드게임] 역시 뒤집고 뒤집히기를 반복한다. 읽는 동안 어느 것이 진실일지, 누구의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체, 독자인 나 역시도 뒤집거나 뒤집힌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불안에 의해 키워진 공포를 이겨내느냐, 아니면 거기에 잠식당하느냐 하는 것이 이들 도코노 일족의 운명이다. 빨래꾼이 ‘그것’이 왜 생겨났는지 원인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 역시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크기의 공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뒤집히지 않고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도코노 일족의 특별한 능력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현대인들의 정신세계를 비유적으로 이야기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아주 뻔한 결말을 아주 맛깔나게 요리한 책이면서 환상소설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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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임의 비밀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6
로버트 오브라이언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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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비 부인은 들쥐다. 들쥐와 시궁쥐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고, 까마귀와 올빼미도 찬조 출연하는 “니임의 비밀”은, 마치, 예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떠올리게 한다. “개미”가 개미들의 이야기였다면, “니임의 비밀”은 쥐들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란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프리스비 부인은 여느 들쥐와 다를 바 없이 힘든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늘 약해서 걱정인 아들 티모시까지 병이 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티모시의 약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프리스비 부인의 모습은 우리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모성을 보여준다. 사실, 모성본능은 인간만이 가진 성정이 아니기에, 우리는 자주, 동물들의 모성애를 보게 된다. 에이지스 씨의 처방을 받아 티모시에게 먹이고 증세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봄이 오고 있는 길목의 농장은 위험하기만 하다. 곧 쟁기질이 시작되면 프리스비 부인도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다 낫지 않은 티모시와 함께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프리스비 부인은 까마귀 제레미의 도움을 받아 올빼미를 만나고, 그리고 시궁쥐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까마귀 제레미와 프리스비 부인의 만남은, 옛날 우화를 읽는 것처럼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시궁쥐와 프리스비부인의 만남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장치인 것이다. 프리스비 부인이 시궁쥐들을 만나 숨겨진 비밀, 그러니까 “니임의 비밀”을 듣게 된다. 니임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번역자는 자신이 쥐띠이고 쥐에 대한 편견으로 살아왔음을 번역후기에 써놓았다. 나는 이 책의 번역자와 같은 나이이다. 나 역시, 쥐 하면 불결하고 더러운 이미지만 떠올랐다. 실험실의 하얀 쥐는 쥐라고도 생각되지 않았고 어릴 때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곤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쥐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가끔 도로변 하수구에서 쥐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쥐는 더럽고 불결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에서 시궁쥐들은 쥐에 대한 인간의 오해는 바로 쥐들이 인간의 물건을 훔쳐서 생활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이야기한다. 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이유에는 그것도 있을 테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염병을 퍼뜨린 동물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십이지에도 쥐가 들어가는 걸 보면 예전에는 쥐가 그렇게 나쁜 이미지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험실의 흰쥐들을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보았다. 인간을 대신하여 수많은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쥐들을 보면서 감정적인 느낌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이 실험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달라질 것이다. 비록 약간 공상적인 부분이 많긴 하지만 수많은 인간의 실험에 동원되고 있는 동물들의 의식세계를 우리 인간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동물들이 인간들처럼 문명을 이루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였을 수 있다. 필요가 발명을 부르는 법이니까. 인간들이 이룩한 문명이란 것이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해주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서 잃은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자. 누군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또다른 누군가는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그것을 인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이 책 속의 쥐들이 인간의 문명을 이용할 수 있게 된 후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는 반면에 불평불만도 생겨났다. 아마도 그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또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쥐들이 인간의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의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가정은, 가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이 우리보다 못한 존재라고 규정한 것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신이 아닌 이상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니임의 비밀”을 읽는 동안, 스스로 겸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더 겸허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험실에서 수없이 죽어 간 쥐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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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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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리쿠의 책을 읽을 때면, 그 주인공들이 낯설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시리즈'의 특색이랄까? 한권에서 파생된 또다른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빛의 제국에서 한 부분을 담당했던 이들이 한권의 책으로 돌아왔다.

민들레공책은, 말하자면 일종의 일기같은 공책이다. 미네코의 일기를 통해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온다 리쿠의 다른 책에 비해 가독성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는데, 아마도 서술자인 미네코가 저택의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 ~님(욘사마로 더욱 많이 익숙해진 ~사마)과 어울리는 서술어들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식의 문체는 조금 지루한 감이 있다. 미네코의 어린 시절 민들레공책에 담아놓았던 이야기 속에는, 도코노 일족 중에서도 '넣어두는' 일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거기에 먼눈이라 불린 '사토코'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온다리쿠의 책을 읽을 때 '시대'는 의미가 없어보였지만,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시대'를 의식해야한다. 그래서일까? 민들레공책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근대의 전쟁들-우리는 일본과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곱게 볼 수 만은 없지만-은 배경으로 조금씩 등장한다. 사실 읽는 내내 그게 걸렸다. 전쟁은 그것을 시작한 쪽이나 당한 쪽이나 할 것 없이 아픔을 남긴다. 나는, 적어도 전쟁과 관련해서는 일본인의 아픔을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약간의 거리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인기있는 일본작가들의 소설은 무국적성이 특징이라 할만큼 일본적인 색채가 흐릿하다. 그런데, 온다리쿠의 책에서 일본적인 색채를 발견했을 때의 거리감이란....그래서, 사람의 머리 속에 각인된 이미지란 무서운 것이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는,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가 중심에 서 있지 않다. 대신 그들을 도와주는, 도와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사토코라는 도코노 일족의 특징을 지닌 여자아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토코의 짧은 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그녀의 죽음까지도 함께 겪었던 미네코의 기록-민들레공책-을 통해 우리는 '먼눈'을 만날 수 있다.

덧붙임 : 텔레비전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일본인 여학생이 늘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으로 하던 게 생각났다. 그녀는 그게 유행이라고도 했고, 귀여워보인다고도 했다. 여기 나오는 사토코도 자신의 이야기를 언제나 3인칭으로 이야기한다. 3인칭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사토코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정신적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덧붙임2 : 가타가나로 쓰여졌을 게 분명한 단어들(외래어)을 굵게 처리한 것은 원작을 따랐으리라 짐작해본다. 단, 왜 그랬는지를 밝혀주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내용 중, 일본적인 것과 일본적이지 않은 서양의 것에 대한 비교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작가의 의도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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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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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솔직히 말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겨우 아는 것이라곤, 넬슨 만델라의 이름 정도일까?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과 유색인종을 합법적으로 차별하게 했던 바로 그 정책의 정확한 이름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이 작년에 발간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책에서는 만델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처럼 남아공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난 후 만델라의 자서전을 읽고 싶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누구나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이 가장 극심할 터이고, 거기에 성별, 학력 등 여러 가지의 차별이 존재한다. 한 가정 안에서도 차별은 있고, 국가 안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 간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나와 관계가 있는 차별에 대해서는 핏대를 세우고 덤벼들지만 정작 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면 남의 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해 온 것이 아닐까.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관심 갖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일까?

어쨌거나, 남아공은 변하고 있다. 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지금부터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그렇다면 남아공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이 책은 남아공의 차별정책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아주 초보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연대별로 나누어 일화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아파르트헤이트가 어떤 것이었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건 아픔을 서술한 이야기였지만 내가 그 아픔을 뼈아프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아공에서 백인들이 흑인과 유색인종을 어떻게 대해 왔고 그 정책이 어떻게 변모해왔는가를 알게 된 후 앞으로 더 이상 그런 일들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떠한 차별이라도, 차별은 차별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일 경우에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A가 아니면 B라는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A에는 A'도 있고 A"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바로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이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인종차별에 대한 어두운 남아공의 과거를 보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남아공의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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