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레스키의 돔 - 피렌체 <산타마리아 대성당> 이야기
로스 킹 지음, 김지윤 옮김 / 도토리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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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 딸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 한 달 정도 유럽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적금도 들고 짧은 시간 동안 알찬 경험을 하기 위해 자료 조사도 꽤 했었다. 예정대로였다면 지난 여름 방학 혹은 이번 겨울 방학을 이용해 유럽 여행을 하였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이 선언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또다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가 되겠지.



얼마 전에 이 책을 소개받았다. 낯익은 소재와 내용이다 싶었는데 재출간된 책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잘 몰라도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들 속에서 브루넬레스키의 이름을 찾아 기억하기에는 좀 낯설기는 하다.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이기도 하고 '건축가'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서두에서 두오모 성당 사업단이 설계안을 정하는 당시의 상황이 나온다. 당시에는 기념비적인 건물을 세울 때엔 건축가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설계도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모형을 제작하곤 했는데, 건축주나 심사단은 모형을 보고 완성된 건물을 상상할 수 있었다. 중세의 건축가들을 가장 괴롭힌 것이 건축물의 안정성 문제였다. 완성되자마자 폭삭 주저앉거나, 공사 도중에 무너져 내린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피사와 볼로냐의 종탑은 지반 침하로 기울어져버렸다. 사실, 현대의 건축에서도 이런 문제는 일어난다. 얼마전 외벽이 무너져내려 인명피해를 일으킨 아파트 공사며, 지반 침하로 기울어져 보강공사를 한 아파트가 지척에 있다. 과학 기술과 건축 기술이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안전'에 관한 걱정이 존재한다.



이 시기 피렌체에서는 시민 투표를 거쳐 설계안을 결정했다. 시민투표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은 것이기도 했지만, 만일의 경우 사업단이 전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였다. 그렇게해서 결정된 네리의 돔 모형은 하나의 돔이 또 다른 돔을 감싸는 이중 구조였으며, 네개의 원통형 궁륭이 맞물려서 팔각형을 이루는 복잡한 디자인이었다. 이것에 피렌체 사람들은 감탄하였고, 모형과 똑같은 모습으로 성당을 완성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산타마리아 대성당 돔 설계에 대한 공모가 발표되었을 때 십여 개나 되는 모형이 접수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감하게 모형을 제작한 이는 금세공사이자 시계공이었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 공모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1400년 여름 흑사병으로 만 이천명에 달하는 피렌테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피렌체의 모든 아기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였던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을 새로 달아서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자는 의견이 나왔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의 라이벌전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로렌초는 되도록 많은 이에게 조언을 수렴하면서 문제에 접근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심사위원에 소속된 이들이 많았다. 브루넬레스키는 홀로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발명품이나 건축 모형을 만들 때도 누군가가 자기 설계도를 훔치거나 엉망으로 만들까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사람의 장식판은 바르젤르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동문 공모에서 손을 뗀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났다. 도나텔로와 함께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다니면서 발굴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도나텔로조차도 그가 왜 발굴작업을 하는 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안토니오 마네티는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로마의 유적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크기와 비율을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청동문 공모에서는 손을 뗐지만, 대성당의 돔 설계는 그의 건축학적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로마 유적 중 브루넬레스키가 특히 주의 깊게 본 것은 판테온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1418년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견한 실험으로 꽤 유명인사가 된다. 판테온이나 콜로세움 같은 웅장한 건물은 원근법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 유적을 조사하면서 측량 기술과 관련이 있는 원근법 소묘를 통해 당시의 첨단 측량 기술을 회화에 적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원근법을 활용할 그림의 대상으로 산 조반디 대성당을 선택한다.




그리고 1418년 성당 건축 사업단은 모든 응모작에게 '호의적이고 공정한 심사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안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적대감이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훨씬 혁신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공모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중심틀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첨단 기술과 창의적인 방법을 중요시하는 현대에도 남과 다른 방법, 남과 다른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일이 없지않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을뿐 아니라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는 브루넬레스키에게 호감을 표시할 심사위원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접근법, 창의적인 발상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다르게 하는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차단하고자 방해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혁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우리는 오래전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라이벌'에 대해서도 한번더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동계올림픽 중계를 함께 보고 있던 터라 더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숙명의 라이벌로 대결을 벌였던 스포츠 선수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는 건축장으로 임명되어 또 다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이 책은 브루넬레스키의 일대기와 돔 건축에 얽힌 일화들을 설명하면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 그리고 성당 건축을 비롯하여 각종 공사에 참여하였던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인부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설계도를 그리고 공사를 지휘하는 건축장의 능력만으로 그 큰 공사를 이루어낼 수는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 공사를 하고 돔을 쌓아올렸던 이들이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이다.




브루넬레스키는 공사에 필요한 기계들도 제작을 한다. 이 기계들 역시 공모를 통해 제작되었는데, 이 외에도 팔각형 돔의 벽 안에 둥그런 골격을 만들어넣는 공학 기술을 이용하기도 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동그라미 위에 또 다른 동그라미라는 말로 천당을 묘사했듯이 브루넬레스키는 천당을 기하학적 관점에서 정확히 구현하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브루넬레스키의 아홉개의 동그라미는 단테의 지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고 전한다.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의 라이벌이었던 로렌초 기베르티, 그리고 당시의 공학 기술과 예술을 대하는 피렌체인들의 태도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건축적 관심이 크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교양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이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유럽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돔을 직접 눈으로 올려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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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 행복의 정복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84
버트런드 러셀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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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많은 남녀 중에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기 불행의 실상을 잘 알게 되고, 그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확실히 있을 거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이 책을 쓴 나의 노력에 인도되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러셀은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의해서 확인된 '행복의 비결'을 소개한다. 제1장에서는 '불행의 원인'을, 제2장에서는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다룬다. 러셀은 불행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자기를 찬미하고 남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와 권력욕

성공한 정치가가 잇달아 실각하는 원인은 사회 자체와 자신이 내세우는 정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아도취에 빠졌기 때문이다. 권력애 자체는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적당한 정도의 권력은 행복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되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혀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오늘날에는 무슨 일이든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빠져 기분전환과 망각에 빠져 쾌락에 몰두하게 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며 '망각'외의 모든 희망을 포기해버린다. 러셀이 이 글을 썼을 때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

2. 염세적인 생각(바이런적 불행)

언제나 미래에만 희망을 걸고 현재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 러셀은 인생을 남녀 주인공들이 큰 불행을 뛰어넘어 해피엔드로 끝나는 멜로드라마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3. 경쟁

인생의 즐거움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경쟁'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때의 경쟁은 먹고 살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경쟁을 말한다.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하면 이웃 앞에서 으시댈 것이 없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미국인은 안전한 투자로 4퍼센트의 이윤을 벌기 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단기간에 8퍼센트를 벌려고 한다. 그 결과 대개 돈을 몽땅 잃어버린다. 또 걱정과 초조가 끊일 새 없다. 내가 돈에서 얻고 싶어하는 것은 안정된 한가로움이다. 그런데 전형적인 현대인이 바라는 것은 더 많은 돈이다. 그것도 과시와 화려함으로 지금까지 동등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을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려는 생각에서이다."(p.155)

경쟁하여 성공하는 것을 행복의 원천으로 삼고 지나치게 강조하면 고통의 원인이 된다. 언제나 남과 경쟁하는 마음은 습관이 되어 경쟁이 필요없는 세계에까지 침투한다. 책을 읽는 것은 두 가지의 동기가 있는데 하나는 그것을 즐기는 일이고 하나는 그것을 자랑하는 일이다. 뜨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4. 권태와 자극

권태는 인간 행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감정이다. 권태는 현재의 환경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환경을 서로 비교하는 데서 발생한다. 또는 우리가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때, 어떤 일에 대한 의욕이 억압될 때, 발생한다.

자극이 너무 적으면 병적인 갈망을 일으키고, 너무 많으면 지치게 된다. 그러므로 권태를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명작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지루한 대목은 있다.(p.164) 단조로운 생활을 어느 정도 참고 살아가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 자극이란 마약과 같아서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어린이는 묘목과 같아서 한 곳에 조용히 놔둘 때 잘 자란다. 권태를 참아내지 못하는 세대는 보잘 것 없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행복한 생활이란 조용한 가운데서만 맛볼 수 있고 진정한 기쁨도 마찬가지다.

5. 피로

피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행복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피로도 있다. 현대의 문명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피로는 신경의 피로이다. 이 신경의 피로는 육체적 피로와는 다르게 부유층이나 실업가, 정신노동자들에게서 훨씬 많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신경을 혹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밤낮으로 피로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술의 힘을 빌리거나 약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될 때 걱정은 소멸된다. 신경쇠약에 걸리는 징조 중에 하나는 자기가 맡은 일이 매우 중요하며 자기가 쉬게 되면 큰일난다고 생각하는데서 탖아온다. 고민은 공포의 한 형식인데, 여러 가지 공포에서 피로가 발생한다. 따라서 용기가 많아지면 고민도 적어지고 피로도 줄어든다. 흔히 피로때문에 자극을 즐긴다. 우리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쾌락은 대체로 신경을 피로하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6. 질투

불행의 가장 커다란 원인 중 하나이다. 인간성의 모든 특질 가운데 질투가 가장 불행하다. 질투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기쁨을 맛보지 못해도 좋으니 남에게 고통을 맛보게 하려고 한다.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증대시키고 싶은 사람은 찬미의 감정을 증진시켜 질투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p.178)

무엇이나 남의 것과 비교해서 생각하는 습관은 치명적인 악습이다. 자기에게는 자기가 사는 방법,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p.179) 러셀은 우리가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눈앞에 놓인 즐거움을 즐기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7. 죄의식

죄의식은 어른이 되어 경험하는 불행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p.185) 죄의식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갖게 한다. 인간은 열등감을 가졌을 때 자기보다 뛰어나 보이는 사람에게 적의를 품기 쉽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칭찬하기는 어렵지만 미워하기는 쉽다. 그래서 점점 더 자신을 고립시키게 된다. 남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상대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훌륭한 행복의 원천이 된다.

8. 피해망상증

피해망상증이 극단에 이르면 정신 이상이 된다. 피해망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9. 여론에 대한 공포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사회생활에서 자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찬성해주지 않으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러셀은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행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행복과 읽고 쓸 수 있는 지식인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p.215) 행복의 비결은 자신의 관심사와 흥미를 되도록이면 넓히고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1. 열의

흥미를 갖는 일이 많을수록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운명에 맡기는 일이 그만큼 적어진다. 내부에만 주의를 돌리고 있는 사람은 그의 관심을 끌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도 발경하지 못한다. 외부에 주의를 돌리고 있는 사람은 어쩌다가 자기의 영혼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을 때, 그 내부에 최고로 흥미있는 온갖 요소가 분류되어 재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p.228)

인생에 대해 열의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이점이 많다. 불쾌한 경험이라도 그에게는 도움이 된다. 열의를 방해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강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운이 좋다면 일 자체에서 흥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은 가질 필요가 있다.

2. 애정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은 다른 무엇보다 열의를 촉발한다.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제대로 된 애정을 충분히 받는 데서 비롯된다.

3. 가족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부모에 대한 자식의 애정은 행복의 최대 원천이 될 수 있다. 부유한 계급의 여성들은 직업의 문이 열리고 하녀 제도가 붕괴됨에 따라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자식이나 손자를 낳고 그들을 자연적으로 사랑하는 남녀에게는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미래가 중요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양쪽 다 만족할만한 것이라야 한다. 부모는 옛날보다 자식한테서 기쁨을 얻는 일이 적어졌고 자식은 부모 밑에서 고통을 받는 일이 훨씬 적어졌다. 어른들의 자신 없는 불안한 태도는 어린이들에게 불안을 야기시키므로 자식을 대할 때는 조심성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p.255) 처음부터 부모는 자식의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결혼이나 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4. 일

대부분의 일에는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는 만족감과 사소하지만 야심을 펼칠 수 있는 출구가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있다. 일을 즐가운 것으로 만들어 주는 데는 기술과 건설이라는 요소가 있다.

5. 일반적인 관심사

일과 직결되어 있는 관심사는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관심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피로와 신경의 긴장은 불행의 원인이다. 피로해질수록 외부로 향하는 흥미가 줄어들고 흥미가 줄어들면 그것이 주는 위로를 못 느끼게 되어 더욱 피로해진다. 행복을 현명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생활의 중심이 되는 관심사 외에도 다양하고 부차적인 관심사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6. 노력과 단념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은 운명에 맡기는 것이다. 중요한 업적을 달성하고자 하다가 실패를 겪은 사람은 절망으로 체념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한번 그런 일을 경험하면 일체으 소중한 활동을 포기해버린다.

러셀은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을 자기 자신의 내부를 향하게 할 것이 아니라 외부를 향하여 움직이게 하라고 한다. 즉 자기에게 얽매이지 않고 애정과 흥미를 넓게 가진 인간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을 통해 불행의 원인을 제거하고 행복해지는 법을 이야기한다. 불행을 야기하는 요소들은 넘어서지 못할 벽이 아니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1930년에 출간한 '행복의 정복'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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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우주 - 커다란 우주에 대한 작은 생각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지음, 심채경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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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는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시공사)를 통해 일러스트와 어우러진 짧은 글로 그녀만의 감각을 드러낸 바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다양한 변주를 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우주'로 나아간다. 과학을 교양의 수준으로 쉽게 풀어주는 책을 잘 읽는 편이다. 이 책도 그런 류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심채경님이 번역을 했기 때문이다.

I AM MADE FROM CARBON 나는 탄소로 이루어졌다

이 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몸은 불타오르던 거대의 별의 잔해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는 존재의 18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탄소는 내가 되기 이전에 다른 자연물을 구성했을지도 모른다. 밤하늘에 셀 수 없이 펼쳐져 있는 별들은 압도적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연약한 몸은 그들의 잔해일 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 모두는 태양을 먹고 있다. 식물처럼 에너지를 직접 얻을 수는 없지만,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은 동물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섭취한다. 그러고보니 에너지를 직접 섭취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몸이 햇빛을 받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비타민도 있다. 비타민D가 그것이다.

물론 나는 3개월에 한 번 비타민 D 주사를 맞고 내 몸속 비타민 D 함량을 맞추고 있다.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니(내가 해를 보는 시간은 극히 짧고, 야외에서 운동을 하지도 않으며, 더군다나 햇빛 알레르기마저 있어서 오랜 시간 햇볕에 서 있을 수도 없다.) 그 수밖에 없다. 급격하게 떨어진 면역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였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HOW TERRIBLY ILLUMINATING 지독하게 빛나는

빛은 우주 속에서 에너지를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수단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빛'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전체 스펙트럼 가운데 광확 혹은 가시광선이라 불리는 일부분만을 지칭한다. (P.25) 빛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에 반사되기도 하고, 굴절되기도 한다. 또 회절과 간섭 현상도 보인다. 태양은 방대한 양의 에너지를 내는데, 그중 극히 일부분만이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 도달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을 밝히는데 충분하다.

MITOCHONDRIAL EVE 미토콘드리아 이브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알려진 여성 조상을 찾아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미토콘드리아 DNA가 활용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DNA는 완전히 배타적으로 어머니 쪽으로만 전해지기 때문에 세대가 이어져도 완전히 바뀌지 않은 채 보존된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약 2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Y 염색체 아담"이라 불리는 남성 조상은 남성 개체 사이에서 재조합 없이 전달되는 Y 염색체를 통해 추적해냈다. Y염색체 아담은 23만 7,000년 전에서 58만 1,000년 전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P.42)

지구상의 모든 것이 일정 비울의 유전자 동일성을 갖는다고 한다. 사람들끼리는 DNA의 99.9%를 공유하는데 결국 0.1%의 차이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침팬지와는 불과 1.3%의 차이이고 고양이와는 90%, 소와는 80%, 닭이나 초파리와는 60%를 닮았고 바나나와도 50%나 닮았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나와 남을 얼마나 구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유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것은 한두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후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한 관련하여 그려놓은 일러스트는 마음을 이완시켜준다. 태양을 먹고 살지만 식물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 우주적 거리를 계산하느라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 산소, 질소, 그 외 여러가지 요소들을 들이마신다. 숨 쉬는 속도를 바꾸거나 호흡에 덜 혹은 주의를 기울이면 뇌의 다른 영역을 사용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P.67) 우리는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달리기나 휴식, 공포에 대한 반응이 아닌 의지에 따라 의식적으로 호흡을 바꾸고 조절할 수 있다.

인간은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P.79)

최근에 '잠'과 관련 있는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만큼 수면의 질이 나빠졌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평균적으로 인생의 3분의 1을 눈을 감은 채 보낸다고 한다. 얕은 수면 단계에서는 잠이 들락말락 하므로 잠에서 쉽게 깨어날 수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눈의 움직임이 멈추고 뇌파가 느려진다. 점점 뇌파가 느려지고, 눈의 움직임이나 근육 활동이 사라지면 깊은 잠에 들게 된다. 그 다음에 렘 수면 단계로 넘어 간다. 이때는 안구가 움직이며 가볍고 얕고 불규칙한 숨을 쉬지만 자시 근육은 일시적으로 마비상태이다. 이 상태가 전체 주기로 볼 때 매우 중요하고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기억나는 꿈은 대부분 렘 수면 동안 꾼 꿈이다. 수면 부족은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좋은 휴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끝이 없다.

우주가 담고 있는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데 있어서는 간결하면서도 알기 쉽게 전달하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벼운 과학 에세이로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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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2-0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과학쪽이라면 일단 기부터 죽고 들어가는 저에게 딱 좋은 책일듯요. 그림도 글도 너무 좋네요. 하양물감님덕분에 좋은 책을 얻어갑니다. 휴일 편한한 날 되세요.

하양물감 2022-02-07 08:47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어쩌다 이렇게 와도 꼳 들러서 좋은 말씀주시는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즐거운 독서생활 응원합니다^^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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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보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보수적이고 답답한 사람. 수줍고 비위 맞추기가 어려운 사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지만 그 외에도 자신들에 대한 생각을 완강하다고 할 수 있으리만치 옹호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 까다로움이나 절제가 단지 인기 없는 자질이라는 이유로 비판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P.7)

"해리엇은 자신의 미래가 구식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왕국의 열쇠를 그녀 손에 쥐어 줄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의 본성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발견할 것이며, 그것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인생의 모든 굴곡이나 진창을 처음에는 잘 모르면서 그러나 점차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그곳으로 나아갔다. 반면에 데이비드에게 미래는 그가 목표로 삼고 보호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자기 부인은 이런 점에서 그와 같아야만 했다. 즉 그녀는 행복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키는가를 알아야만 했다. 헤리엇을 만났을 때 그는 서른 살이었고 야심찬 남자가 지닌 완고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일해 왔었다. 그러나 그가 일해 온 목표는 가정이었다."(P.13-14)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보통은 전통적인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벗어난 예를 보여주기 마련인데.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그 반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반해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보수적이면서 결혼과 가정에 관해서도 '우리만을 위한 가정'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는 전통적인 대가족적 만남과 생활을 선호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하였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집도 구입했다. 집을 사는 과정에서 데이비드의 두 부모(이 가정은 이혼 가정으로 부모가 각각 재혼 가정을 이루고 있다) 중 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해리엇의 출산과 함께 해리엇의 어머니로부터도 도움을 받는다. 나는 여기서부터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뭐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걸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그들이 생각했던대로 아이를 낳고, 여러 사람들이 휴가를 함께 보내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오는 것을 반긴다. 그들의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축하를 하고 행복한 가정의 전형을 보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해리엇은 아이 다섯을 낳는 동안 계속해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반복한다. 먼저 낳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해리엇의 엄마인 도로시가 양육을 하고, 헤리엇은 또다시 임신을 하고 침대에 누운 채 보내거나 날카로워진 신경 탓에 모두가 눈치를 본다. 그렇게 연이어 아이를 낳는다. 참 이기적이다. 그렇다.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그거였다. 이기적이다.

그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집을 구하기 위해 굳이 재혼해서 살고 있는 아버지로부터 돈을 지원받는다. 그들의 수입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이고 재우는 데 필요한 돈을충당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줄이거나 늦추지 않는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충분히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도 또 새로운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를 낳기 위해 먼저 낳은 아이는 오롯이 친정엄마인 도로시의 몫이다.

자신들의 꿈을 위해 양가 부모는 돈과 시간을 무상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해리엇의 자매인 사라는 넷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고 부부 간에 문제도 있지만, 그의 엄마인 도로시는 헤리엇의 아이를 봐주느라 사라를 돌볼 여유는 없다. 사라도 그렇다. 그렇게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다니... 아니, 딸들이 왜 이렇게 다들 이기적이고 멍청한지.

물론 데이비드도 마찬가지다. 해리엇이 아이를 연이어 낳는 것은 해리엇 혼자 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데이비드가 조절을 하거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연이어 임신을 한 상태에서 몸이 축나는 것은 해리엇이다. 물론 데이비드도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에 많이 힘들었겠지만. 결국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났을 때. 나는 해리엇도, 데이비드도 모두 자기 밖에 모르는 철부지들처럼 여겨졌다.

앞서 태어난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그들의 기쁨이 되어주었을망정 연이어 태어나는 동생들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의 삶, 그리고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는 넷째.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성향을 갖고 태어난 벤.

벤의 탄생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이 셋째, 넷째를 낳는 동안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벤'은 사라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것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네명의 아이를 연이어 낳고 키우면서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면, 벤도 그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벤은 그들이 지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 태어났다. 결국 그들은 벤을 기관에 보내버린다.

해리엇이 강한 모성애 때문에 그 애를 되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성'이라는 것이 또 한번 남은 아이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리엇이 힘들게 벤을 보냈다면, 남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원상복귀를 하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그러나 해리엇은 그러지 않았다. 다시 벤을 데려왔지만 그 또한 엄마로서 감싸앉지 못했다. 벤이 존 패거리와 있을 때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데(물론 거기에는 힘의 관계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들의 가정에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가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양보가 따르는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로를 있는그대로 이해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결혼 생활이란 것이 있을까? 과연?

결국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희생과 양보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상적인 가정'='행복한 가정'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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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기억에 남아요 강렬하게 ㅎㅎ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하양물감 2022-03-08 19:01   좋아요 0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3-08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양물감 2022-03-08 19:01   좋아요 1 | URL
언제나 달려와주시는 서니데이님 고맙습니다.^^
 
홀릭 소원라이트나우 5
나윤아 지음 / 소원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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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릭≫은 다섯 가지의 중독(자해, 스마트폰, 도박, 알코올, 게임)에 빠진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청소년도서지만, 쉽게 읽어내지 못했던 것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바로 그것때문이었다. 책장을 넘기자 '현실을 떠나 중독을 선택한 아이들'이라는 부제 아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섯가지 중독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중독은 '지나치게 과함에도 통제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정의된다. '중독'은 삶을 포기한, 혹은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한 '실패한 어른들'에게서 보이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가장 흔한 알코올, 니코틴, 도박 중독이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는,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인 청소년들에게서 중독이 유행처럼 번져간 것은. 자해, 스마트폰, 도박, 알코올, 게임.... 단어만 듣고도 아찔함이 밀려든다. 내가 청소년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집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서이다. 이왕이면 밝고 희망찬 이야기라면 좋겠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면 더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쉽사리 읽어내지 못했던 것은 그래서일 것 같다. 우리집 아이를 못 믿어서가 아닌데, 혹시라도, 아예 이런 세계를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 차라리 몰랐을 때는 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텐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읽혀서 오히려 호기심을 가즉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어쨌든, 아직도 나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공이 울리면]은 자해 중독을 다룬다. 커터칼 하나로 자해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건 바깥의 세계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다) 하는 아이들을 보며 경악했던 적이 있다. 아이들끼리 사진으로 공유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고 했다. 이 소설에는 소꿉친구인 여소은과 강건우가 나온다. 다섯살때부터 친구라서 아는 거 모르는 거 없이 다 알고 지내는 친구인데 어느날인가부터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서로의 진로가 달라진 것도 이유지만, 그것말고도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강건우가 우연히 자해를 하고 있는 여소은을 발견한다. 친구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소설에서 강건우는 정말 모범 답안을 찾아낸 것 같다. 혼자 고민하지 않고 체육관 관장과 형과 의논을 하기도 한다. 여소은의 고민이 무엇인지, 무엇때문에 자해까지 해야 하는지, 그것을 그만 두게 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다. 결국 소은이는 건우로 인해 자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발걸음을 뗀다. 현실은 건우가 올라가 있는 링과 같고, 링 안에서는 어떻게든 3분을 버텨낸다. 맞고 피가 터지더라도 그 3분을 잘 버텨낸 사람만이 살아낼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이 세상을 그렇게 이 악물고 버텨야 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살면서 누군가는 그렇게 이 악물고 버텨내야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물 흐르듯이 조용히 살아내기도 한다.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 링 위에서 버티듯이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라면 난 너무 힘들 것 같다. 지금은 저 힘들고 고된 세상이 내가 살아야 하는 세상처럼 보이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괴물화 증상]은 스마트폰 중독을 다룬다. 스마트폰 중독이 어디 청소년만의 문제던가? 이제는 영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다른 것과 달리 '스마트폰' 중독은 추상적으로 다룰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약간 환상적인.

나는 의도적으로 폰을 꺼놓고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진다. '의도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스마트폰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정도기 때문이다. 마치 집안에 있는 냉장고처럼, 세탁기처럼 특별히 이유를 대서 사야 하는 물건도, 이유를 대서 사용해야 하는 물건도 아닌 물건이 되어버렸다. 물건이라 칭하기보다 이제는 '관계'라는 말로 바꿔도 가능한 존재가 스마트폰이 아니던가. 학자들은 어린 영유아들이 스마트폰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있지만, 어른들이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을 아이들에게서만 뺏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도구로서의 스마트폰이란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폰을 보고,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폰을 본다. 뭔가 새로운 것, 그러니까 손안에 든 폰이 아닌 폰보다 더 진화된 무언가가 나오지 않으면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스마트폰만 보느라 괴물이 되어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좀 허무하다.

[불꽃]은 도박중독을, [고답이]는 알코올 중독을, [두 가지 세계]는 게임 중독을 그려낸다. 도박 중독에 빠진 시현이는 여전히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엄마의 알코올 중독때문에 늘 괴로워하고 외로운 보라도 결국은 알코올을 지나치지 못한다. 대부분은 그들의 주변 환경때문에 중독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게임중독이었던 한준우가 엄마의 화려한 꽃다발을 계기로 새롭게 달라질 수 있었던 것처럼 환경은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저어되는 것도 사실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군가는 이렇게 살지 않아야겠다 다짐할지도 모르겠다. 내 옆에 누군가가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현실'을 피하려고 들어간 '환상'이 나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하늘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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