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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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인 내가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는 내 아이에게 권하기 위해 미리 읽을 때와, 청소년 독서수업 준비를 위해 읽을 때이다. 그래서 아직은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읽히기 딱 좋은 책들을 읽어왔다. 청소년 소설과 성인 소설의 경계가 모호한 책도 많은데, 청소년교양도서로 선정된 이 책도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 이상의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적합해 보인다.



방학이 시작되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학생들이 모두 떠난 기숙사에 홀로 남은 '마린'은 '메이블'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기다린다는 말은 맞지 않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마린'은 엘리베이터에 갇힐 것 같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메이블은, 엘리베이터에 갇힌 마린과 만나지 못하고 역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채 떠나버릴 것이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나는 마린의 불안감을 느낀다. 방학이 되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마린, 친구가 찾아올 자신의 방에 그동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갇혀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마린의 일상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는 "편지를 두 통 쓰면 두 통을 받는 법"이라며 버리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러던 어느날 그 사건이 일어났다. 마린은 그날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슬픔을 차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책에서 슬픔을 찾았다. 현실보다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 진실은 틀에 갇히지 않았고 꾸밈이 없었다. 진실에는 시적인 표현도 없고, 노란 나비들도 없고, 엄청난 홍수도 없었다. 물에 잠긴 도시도 없고 똑같은 이름을 갖고 태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남자들도 없었다. 진실은 그 안에서 익사하고도 남을 정도로 광활했다."(p.111~112)



"우리는 너무도 순진해서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일 거라 믿었다. 우리 자신에 관한 사실의 조각들을 맞추기만 하면 그럴듯한 하나의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거울 속에 보이는 우리 모습 같은, 우리의 거실 같은, 그리고 우리를 키워준 사람들 같은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대신."(p.157)



"나는 나의 외로움이 두려웠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기막히게 속였던가.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기막히게 설득했던가. 난 슬프지 않다고, 난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두려웠고 할아버지가 낯선 사람이었다는 게 두려웠다. 내가 할아버지를 너무도 미워한다는 게 두려웠다.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게. 그 상자들 안에 있는 것들과 언젠가 내가 알게 될 것글, 그리고 그 상자들을 잊고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내가 잃을 수도 있는 기회가. 서로의 방문을 열어보지 않고 살았던 우리의 방식이 두려웠다."(p.251)



"할아버지가 나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다."(p.253)



마린은 아빠는 알지 못했고, 엄마는 세살 때 죽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먼저 보냈고, 딸도 먼저 보낸 아픔을 갖고 사는 인물이다. 버디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고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온다. 어느날 해변에서 서핑을 하는 할아버지에 관해 들은 날, 그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할아버지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마린은 할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린은 버디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가 나를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다"던 마린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말해주지 않았던 진실. 마린은 그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밀어닥친 혼란에 그렇게 무작정 도망쳐버렸다. 내 주변에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마린에게는 900개의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는 친구를 놓아버리지 않은 메이블이 있었다. 마린은 메이블과 사랑하는 사이였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한다. 그러나, 마린이 떠난 후 메이블에게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 마린의 상황도, 메이블의 현재도 많이 바뀌어버린 지금, 그들은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이란 것이 반드시 하나의 모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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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도깨비 얌얌이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7
엠마 야렛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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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다. 입체적인 표지를 볼 수 있게 비치한다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 같다. "주의! 책이 깨물 수 있음!"이라니... 궁금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 책의 첫장에서 꼬마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나무문을 열면 귀여운 얌얌이가 보인다. 얌얌이는 이름처럼 온갖것들을 먹어치우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책이다.


얌얌 쩝쩝 와작와작 책을 먹다가 이 책에서 나가게 되는데, 얌얌이는 저 많은 책들 중에 어디에 있을까? 숨은그림찾기하듯 책을 뒤져본다. 이런 류의 책에 늘 등장하는 쌓여있는 책들은 조금 익숙하긴 하지만, 옛 이야기책으로 가득하니 제목을 훑어보면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옛이야기들이라서 웬만한 책은 줄거리를 들려줄 수 있을만한데, 아이와 책 제목을 읽으면서 얌얌이도 찾아보고, 궁금해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같이 이야기해보자.


나도 열심히 얌얌이 녀석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 책으로 들어가는 엉덩이를 발견했다. 북극곰 출판사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북극곰 도서관, 프레드릭, 이루리 등도 보인다. 얌얌이는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 책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힌트를 준다면 골디락스 이야기 책이 놓여있는 곳 뒤편을 보면 "그 녀석은 괴물, 그냥 평범한 괴물이 아니라 악당"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하하.


또다른 이야기책 속으로 달아난 얌얌이. 빨간망토 이야기를 지나 잭과 콩나무로 달려간다. 그리고 여전히 힌트는 뒷 배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젠가는 얌얌이도 붙잡히고 말 거라는 희망"이 있다. 황금 거위를 타고 자기 책으로 돌아온 얌얌이. 우리 얌얌이는 이제 다른 책을 찾아 나가지 않고 얌전히 있을까? 뻥 뚫린 마지막 장을 넘겨보자.


그림책을 덮으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 좋은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얌얌이가 바꿔 놓은 이야기처럼 우리도 옛이야기를 이리 저리 뒤틀어볼 수 도 있고,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도 만들어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얌얌이라면 어떤 옛 이야기 속에 들어가 보고 싶은지 이야기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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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서가명강 시리즈 12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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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독서동아리에서 '조선상고사'를 읽었다. 조선 상고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관해 우리가 모르고 있거나, 비판없이 받아들인 내용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조선상고사의 주장들이 다 맞는 것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동안 내가 아무 비판의식 없이 무조건 수용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였다.


서가명강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로 자주 눈을 사로잡게 하는 시리즈이다. 이번에 이 책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는 얼마전에 내가 가진 반성에서 이어지는 독서로 안성맞춤이었다.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시대의 이야기를 글로 써놓은 문헌을 참고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배운 역사도 그에 바탕을 둔 것이 많다. 이 책은 문헌이 놓치고 있는 시대적 사실을 유적과 유물을 통해 밝혀나간다.


삼국사기는 12세기, 삼국유사는 13세기에 쓰여졌는데, 이는 삼국이 형성된지 천 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작성자의 역사인식에 따라 왜곡되거나 누락된 것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사서들이 대부분 불타거나 실종되어 우리 고대사 연구를 위해 부득이하게 중국이나 일본의 사서를 참고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서가 사실만을 기록했다고 볼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자국 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타국에 대한 역사 왜곡이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역시 왜곡이 심하고, 자국 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당연히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왜곡시키고 있다.

다행히도 이러한 사료 대신에 유물이나 유적, 금석문, 묘지 등을 토대로 하여 기록을 수정 보완할 수 있다. 땅 속에서 발견되는 매장문화재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유물과 유적은 땅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라 불릴 만하다. 경주 조양동 유적 발굴로 신라의 어린 시절이라 할 수 있는 사로국의 비밀을 풀 수 있었고, 창원 진영의 다호리 유적과 천안 청당동 유적은 변한과 마한의 실체를 밝혀주었다.


빛바랜 유산에서 빛나는 진실을 찾아내다


저자는 왜곡이 가장 심하게 이루어진 분야를 가야사라고 보았다. 가야에 관한 문헌이 거의 없다보니 일제의 관학자들이 역사를 심하게 왜곡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할 유물들이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까운 김해국립박물관을 자주 가는 터라 가야 유물을 많이 접하는 편이어서 가야에 대한 사료가 적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학자들이 한정된 문헌자료만 가지고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씨름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 답사도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한국 고대사를 연구한다고 한국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타 학문과의 교류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분야와도 협업을 하며 다방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인골이 고대사 연구의 일등급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인골을 계측해 데이터를 종합하면 선사나 고대를 살아가던 사람의 구체적인 삶과 죽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사책인 삼국지에서 두개골 변형 풍습이 한반도 남부 진한에서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1970년대 경상남도 김해 예안리 가야무덤에서 편두인골을 발견하였다. 진한 뿐만 아니라 경상도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던 풍습으로 보인다. 이렇듯 인골을 연구하면 당시의 풍습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다문화가정이나 페미니즘적 연구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골 연구의 쾌거는 대왕묘를 조사하다가 관받침 위에 놓인 나무상자에서 발견한 것으로 백제 무왕의 무덤임을 밝혀낸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삼국시대 왕릉 중 무덤 주인을 정확히 밝혀낸 것은 백제 무령왕릉 하나뿐이라고 한다.


수도유적이란 왕궁과 왕성, 도성과 왕경 등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수도유적은 세계문화유산에 걸맞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삼국시대 여러 국가 중에서 가야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사의 대외관계라 하면 중국와 일본을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동북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넘어서 유라시아 동부라는 안경을 쓰고 역사를 보라고 전한다. 중남미나 동남아시아에 비해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혼혈의 비율이 낮고 얼굴생김새가 고정된 것이 사실이지만 단일민족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문화시회를 이끌기 위해 여러 분야, 그 중에서도 역사와 교육 분야에서 해야 할일이 많다. 과거의 역사에서 긍정적인 교류 모델을 찾아낼 수 있다. 고조선이 발전할 때는 한나라, 흉노, 그리고 여러 나라들, 고구려는 흉노의 후예인 오환과 선비족, 돌궐(지금의 터키), 거란족, 말갈족 등이 함께 였다. 우리가 제국이라고 부르는 모든 국가는 사실 다문화 사회였다. (p.212)  중앙아시아 속 한국 고대사의 흔적으로는 소그드족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인을 들 수 있다. 그런가하면, 통일신라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흙인형 중에는 호인(근육질의 서역인)들이 있다. 당나라 장안만큼은 아니어도 고대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로만글라스와 페르시안 글라스가 나오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 삼국시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지나치게 협소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며 즐겁게 책을 덮는다.   


**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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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
소은성 지음 / 웨일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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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일북으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쓰는 잡다한 이 글도 리뷰니 서평이니 하는 글에 많이 못 미치는 글이다. 나는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좋고, 읽고 나면 뭐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글을 쓴다.

이 책은 제목이 참 좋다. 최근에 나온 긴 제목의 에세이들처럼 이 책도 제목이 전부인 책이 아닐까 살짝 의심하면서 펼쳤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행이다.

"우리 모두는 다채로운 색깔의 쓰기 버튼을 지니고 산다. 더 우월한 욕구는 없다. 그러니 남의 버튼과 나의 버튼을 절대로 비교하지 말자. 그건 글 외의 다른 것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처럼 감정에 대해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이타심이 보튼인 사람도 있다. 둘 사이에는 경중이 없다." (p.18)

정말 위안이 되는 말이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는 '감정이입'에 서투른 편이다. 내 감정을 잘 표현할 줄 모르니 남의 감정인들 읽힐리가 없다. 감정이입이 안되니 소설이 재미있을 리 없다. 내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소설에,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조금씩 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과 다르게 사는 여성들을 만나 다른 의견을 듣고 말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글쓰기 수업은 치유 여행이다. 나는 언제나 '편안하게 느껴지는 생각'을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그것은 사회에서 체화한, 즉 내것이 아닌 남의 생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으로 살아오는 동안, 아마도 가장 안전하고 무례한 발언만을 격려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p.48)

그렇다. 이 책은 '여성의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타인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p.49)을 낸다는 것은 제도권 교육에서 연습한 적이 없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 저자는 글쓰기를 다르치는 동안 다양한 학생들이 자기 글을 싫어한다는 고백을 듣는다. "우리가 우리 몸을 때로 혐오하는 것처럼 자기혐오의 많은 부분은 사회의 억압에 의해 이식되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상당 부분 '내 글 혐오'는 내면화된 여성 혐오와 맞닿아 있다."(p.61)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저자의 이야기에 여러 번 공감하였고, 때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하였다. 나의 글쓰기나 내 문장에 질책하는 느낌이 든다면 과감하게 듣지 말라거나, 거장들의 예술론 앞에서 주눅 들 필요 없다는 말에 글을 쓸 용기가 생겨난다. '언제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p.113)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나의 진짜 감정, 나의 진짜 역사'(p.115)를 쓸 수 없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것은 없다고, 나를 드러내고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놓기 위해 글을 쓴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렇게 표현하고 쓰는 동안 내 마음을 달래주고 쓰다듬어줄 수 있다.

저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감정을, 상처를 드러내어 표현하라고 한다. 한국 여성들은 타인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자신에게로 분출하며 자기 파괴와 자기 혐오로 이어진다. 저자는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바꾸는 연습'(p.164)을 하면 나아진다고 말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나의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

"나의 감정을 불편해하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 사회와 가정에서 요구받는 역할만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감추는 데 능숙했다."(p.174)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놀고 말할 수 있는 연습을 한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책에는 글쓰기 연습을 위한 '직접 써 봅시다'가 있다. 나도 그것을 보고 내 마음을 표현하는 짧은 글을 써 볼 예정이다. 그리하여 내가 나의 불완전한 삶의 이야기를 좀더 풍성하게 가꿔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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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하는 조직만 살아남는다 - 코칭을 조직문화로 만드는 SMART코칭 방법론
고현숙 외 지음 / 두앤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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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승진도 하고 부하직원을 둔 상사가 되는 날이 온다. 예전처럼 먼저 입사했거나 오래 근무했다고 해서 상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과도 있어야 하고, 관리능력도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 팀장이나 리더들은 업무 역량은 기본이고 인재 육성까지 해야 한다. 코칭하는 상사를 둔 적도 없고, 본인도 실행해본 적 없는데 말이다.

이 책에서는 리더들이 가져야 하는 리더십을 ‘도전(challenge)’과 ‘지지(support)’의 두 가지 성격을 지녔다고 말한다. 즉, 높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도전하도록 팀원들을 이끌어야 하고, 지원하면서 인정하고 격려해야 한다. 평소에 지지를 잘해주며 신뢰를 쌓으면 필요할 때 도전을 주어도 기꺼이 받아들여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90년대생과 함께 일하는 법에 대해 고민을 한다. 이들은 일을 최우선시했던 기성세대에 비해 개인의 삶을 중요시한다. 물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오래 집중하며 완성을 위해 근무시간 외에 일하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강한 목표 지향성을 보이며 통제력을 갖길 원한다. 일방적인 지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형식적인 평가와 부족한 피드백,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 일의 결과에 대한 무반응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금전적 보상 이상으로 하는 일의 의미가 중요하며, 일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중시된다. 그래서 이들은 상사의 코치 역할을 기대한다.

리더들이 원하는 인재상은 스스로 사고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해 지시나 잔소리, 질책 같은 방법에 의지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이런 리더들에게 이 책은 코칭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코칭리더십은 ‘구성원의 의식(awareness)과 책임(responsibility)을 불러일으켜 성장과 성과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의된다. 리더가 진정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코칭 역량을 발휘하여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리더와 구성원들이 함께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파트너로서 자발적 지원과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코칭리더십은 완성될 수 있다.

리더들은 코칭을 받은 경험이 없거나 그런 상사들과 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코칭리더십을 보여주기가 어렵다. 이 책에서는 코칭을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해진 시간에 형식을 갖추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할 수 있다. 업무 중에, 회식 중에, 일대일로, 또는 팀이나 그룹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코칭이 중요하다고 해서 코칭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명확하게 지시해야 할 때가 있고, 팀원을 가르쳐야 할 때도 있으며, 인생의 선배로서 멘토링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전문가로서 컨설팅해줄 필요도 있다. 리더라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유연하고 시의적절한 방법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코칭리더십은 미래의 리더를 키우는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다. 잠재적인 리더를 발굴해서 경력 계획을 세우고 코칭하는 것은 조직의 미래를 위해 인력을 개발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재 개발은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SMART코칭 모델은 일터에서의 코칭(workplace coaching)에 맞게 최적화된 코칭모델이다. 조직내 코칭을 위한 SMART코칭모델은 목표와 현재 공유(Share the Goal & Reality), 대안 탐색(Make Options from the Gap), 실행계획(Action Planning), 리뷰와 피드백(Review & Feedback), 신뢰관계(Trusted Partnership)와 같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질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코칭 상황에서 참고하여 사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질문은 코칭의 모든 단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질문을 통해 코칭 대상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질문은 짧고 간결하게 직접적으로 해야 한다. 열린 질문을 활용하고 긍정적으로 질문을 한다. 직관을 활용한 질문도 할 수 있으며 침묵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코칭을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오히려 동기가 강하거나 성과를 내고 있는 직원이 코칭에 효과적이다. 특히 강점 코칭이 효과적이다. 고성과자를 코칭할 때는 인정과 동기부여, 개발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고성과자에게만 일이 몰리지 않게 조절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저성과자를 코칭할 때는 그의 결점에 주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성과가 낮다고 해서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코칭은 존중과 진정성이 중요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코칭의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조직 운영은 어느 하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조직이 되려면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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