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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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야 이건 정말 소설이야, 이걸 소설로 쓰면 진짜 재밌을텐데 뭐 이런 생각말이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인 나는 그냥 생각만으로 그칠 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 한순간 아 이거 이야기가 되겠네 싶은 단상들을 놓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단상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아 이런 생각으로도 소설이 만들어지는구나 감탄하며 이 짧은 이야기들에 흠뻑 취하게 된다.


임팩트가 가장 강한건 역시 첫 글인 <선인장 끌어안기>이다.

무엇이든 피부에 닿는 순간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병에 시달리는 파이라라는 전직 건축가의 이야기다.

그런 그녀가 온 집안에 선인장을 키우는 것은 왜일까?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어린 소녀 소영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병은 새로운 고통이 된다.

사랑은 스킨쉽니다. 

누구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싶고, 따뜻하게 안고싶어한다.

그 포옹에 사랑의 기쁨이 담겨있다.

그러나 파이라와 소영에게 이런 기쁨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손가락 끝이라도 맞닿는 순간 불같은 고통이 각자의 몸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영은 죽음을 앞두고 파히라에게 말한다.

'파히라, 내가 당신을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둘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30쪽) 생각한다.

고통이 곧 사랑이 되어버린 파히라는 쓸쓸하게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라고 읊조리는 것이다. 

그래서 소영을 잃은 파히라는 선인장을 키운다.

이 이야기는 절망에 대해 말하지만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근래에 읽은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 강한 사랑이야기이다.

짧다고 감동의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라는걸 이 이야기가 말해준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치명적인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들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결핍들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의 기본 본능을 다양한 변주로 이야기한다. 또한 행복해지는 방법도 결국 사람마다 다르다.

시력을 잃고 기계 눈을 가지게 된 여성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기계 눈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연습을 하고 그것을 SNS에 올린다. 그리고  눈이 아름답다는 타인들의 찬사에 나는 기계눈이어도 행복하다고 자위한다.

정말로 그녀는 행복할까? 사실상 그녀의 행복은 모래성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것인지(40쪽) 고민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찾은 것일게다. 자신의 행복의 조건을 타인의 찬사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에서 찾기 시작했으므로.....


정말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영화속에 흔한 소재로 등장하는 평행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영화처럼 그렇게 극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멜론을 파는 가난한 상인은 나는 저쪽 세계에서는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일수도 있다.

그래 둘 다 별볼일이 없다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건 스펙터클이나 스릴러의 영역이고,

소설속에서는 멜론을 파는 나도 나쁘지 않지만 바이올린 연주자인 나도 괜찮은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뭐야? 둘 다 너무 별볼일 없잖아?

하지만 멜론을 파는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를 바라보는 순간은 왠지 둘 다 근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근사하게 산다는 말은 왠지 근사하다.

몸에 칲으로 심어진 통역기로 어떤 언어의 책이든지 바로 읽을 수 있는 세상에서 더 이상 언어는 학습이 대상이 아닌 세상을 꿈꾸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하나쯤은 그것이 불가능한 언어도 있지 않을까?

어떤 번역기로도 번역되지 않는 그 책이 행성어 서점에 있다.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류가 오래 그래 왔듯이 느리게 그 행성의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누구도 읽지 못하는 책을 읽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어떤 전자기기에 의해서도 포착되지 않는 별안개 풍경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물감과 붓을 꺼내 그리는 노인의 모습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늪지에 가라앉지 않고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 떠나고야 마는 소년도 근사하다.

이렇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초라하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근사한 사람들을 만나는 독서를 하는 내가 잠시 근사해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잃는 다는 것이 바로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하나를 잃은 것이 전부를 잃었다고 마음껏 착각하고 불행의 관념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고, 하나를 잃으면 무언가 다른 것이 우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외계의 기생생물로 인해 얼굴에 가면이 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 사람들은 억지웃음을 웃지 않아도 되게 되면서 오히려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푸는 것(136쪽)을 배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은 사람이 되고 그리고 근사해진다.


김초엽 작가의 글은 모두 절망과 상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소재일뿐 결국 중심은 희망과 연대, 사랑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좀더 좋은 인간이 돼가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 된다.

최근에 나왔던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은 소재나 주제 모두가 흥미로웠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좀 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은 단편들이 더 좋은 작가지만 얼마가지 않아 단편들에서 느껴지는 이 힘을 장편에서도 오롯이 느낄 것을 기대하며 작가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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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09 07: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님이시군요 ㅋ 그 책만 읽어봤는데 이 책도 재미있을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1-12-10 09:21   좋아요 2 | URL
전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이 짧다보니 금방 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글들을 쓴 짧은 생각들의 여운이 길더라구요. ^^

페크pek0501 2021-12-10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김초엽 님이 인기네요. 짧은 글로 매력을 발산할 듯합니다.^^

바람돌이 2021-12-10 14:00   좋아요 2 | URL
지금 단편집도 하나 새로 나와서 아껴놓고 있어요.

mini74 2021-12-10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단편집 사고 고개 돌리니 엥? 또 나왔네 하면서 고민중 ㅎㅎ 아이가 더 좋아하는 작가 ~ 랍니다. 바람돌이님 글 읽으니 아무래도 미루지 말고 사야헐 듯 합니다 ~

바람돌이 2022-01-07 23:49   좋아요 1 | URL
방금 떠나온 세계를 사고 읽으려고 하는데 또 므네모사가 새로 나왔어요. 김초엽작가 완전 다작인데 독자로서야 고맙죠. 우리집 딸래미들은 지금 책이라고는 안 읽고 한명은 연애에, 한명은 게임에 홀릭하고 있어 슬퍼요. 나랑 같이 책읽고 서점도 같이 가주고 하면 좋으련만.....ㅠ.ㅠ

희선 2021-12-11 0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여기 담긴 이야기 좋아 보이네요 사랑에는 아픔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것도 사랑으로 여기면 좋을 텐데... 사람이 하나를 잃는다고 다 잃는 건 아닐 텐데, 그걸 잘 잊는군요

바람돌이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1-07 23:51   좋아요 2 | URL
저는 다 좋았어요. 짧은 이야기들이 다 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같은..... 사람이란 다 어느정도는 자기 중심적인데 사랑을 하면 그게 더 심해지는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아닌거 같니 뭐 이런 감정이랄까? 어쨋든 누구에게나 사는건 쉽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건 또 무언가를 잃는 것이기도 하지요.
희선님도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

scott 2022-01-07 17: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
부산에 행성어 서점이 생길지도 ㅎㅎㅎ

바람돌이 2022-01-07 23:52   좋아요 2 | URL
감사하빈다. 부산에 행성어 서점이 생기는건 좀...... 그걸 읽으려면 언어를 새로 배워야 하잖아요. 아 정말로 전 언어 배우는거 너무 싫어요. 힘들잖아요. ㅠ.ㅠ

mini74 2022-01-07 1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1-07 23: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주말 편히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1-08 0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01-07 23: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한달에 한번 알라딘이 주는 선물 좋네요. ^^ 뭔가를 이룬 듯한 기분이랄까? ^^

새파랑 2022-01-07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학에 당선까지~!!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1-07 23:5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런데 방학은 아직도 못했어요. 여름방학이 길었던 휴유증이 정말 ..... ㅠ.ㅠ
다음주 화요일 방학입니다. ㅎㅎ

희선 2022-01-08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주말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혼돈의 시대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쉬이 판단이 서지않을 때가 많다. 과거의 동지들이 가장 험한 적이 되어 낮을 붉히고 뿔뿔이 흩어진다. 정체성의 뿌리였던 젊은 날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고통을 날마다 겪는다. 악과의 싸움은 외려 쉬웠다. 용기만 있으면 충분했으니까. 모순과의 싸움이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냉철한 지성을 요구한다.
- P5

‘역사란 승자의 발자취‘라는 역사가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의미에서 역사는 잘 진 싸움의 궤적이다. 패할지라도 우리가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향한 싸움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발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는 싸움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이완전한 지옥이 되지 않은 것은 지는 싸움을 해온 사람들 덕분이다. 진 싸움이 만든 역사가 희망을 지켜주었다.
- P8

아차, 앞에 인용한 볼프 비어만의 말에는 한마디가 더 붙어 있다. 그의 말을 온전히 옮긴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 P9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 위기는 우리 사회에 혁명적인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근본적인 체제 변화와 근원적인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코로나 대유행이 깨우쳐준 길은 분명하다. 자주 국가, 복지국가, 생태 국가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 P19

불안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인 힘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다. 불안은 인간을 길들이고, 소진시키며, 예속시킨다. 불안은 비인간적인 체제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며,
변혁을 차단하고 저지한다. 불안은 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심화되고 일상화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은 생명을 죽인다.
한국 사회에서 불안이 극단적이고 편재적인 것은 그것이 실존적, 철학적 불안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극단적 불안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27

권위주의적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강조한 것이 ‘반권위주의 교육과 ‘비판 교육이었다. 권위 앞에서 쉬이 순종하는 약한 자아가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이기에, 학생들의 비판 의식을 고취해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의 요체라는 것이다.  - P36

광화문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광장 민주주의가 현장 민주주의로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천하고, 실현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촛불이 타올라야 한다. 촛불이 나를 변화시키고, 일상을 변화시키고, 현장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마침내국가를 변화시켜야 한다. ‘내 안의 최순실‘을 불태우고, ‘내 안의박근혜‘를 몰아내야 한다.
- P47

1970~1980년대 군사 독재 시절에 거리에서, 교정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젊은 날을 보낸 우리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쟁취‘의대상이었지, ‘감행‘의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독재와 싸워서 되찾을 제도‘로 알았지, 일상의 삶을 변화시킬 ‘태도‘
로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광장에선 민주주의의 투사였지만, 일상에선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 P55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경쟁과 우열, 승자독식의 원리에서 교감과 평등, 연대의 원리로 전환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엘리트들이 대중을 깔보며 자신들의 특권 수호에만매진하는 엘리트 특권 사회로 굳어져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교육부는 교육 문제를 단지 입시 문제로 보며 경쟁을 부추기고있으니, 그 무능과 단견에 절망할 뿐이다.
- P71

86 세대의 실패는 이 세대의 비극을 넘어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한때 정의를 외치며 자신을 희생했던 세대의 정치적 실패는사회 전반에 더 큰 실망감과 좌절감,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퍼뜨린다. 지금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의 뿌리는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이 86세대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다. 재벌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결연히 감행하여 100년 대한민국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후세대에게 ‘지옥을 넘겨주지 않는 것, 이것이 86세대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대적 소명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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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처음에는 소박하게 초상을 기록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사진의 편리성과 값싼 비용에서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발견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식민지 주민들을 상징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도구"36 로 사용했다. 이를테면 제국주의자들은 서구에 널리 퍼진 통념에 맞는 복장을 입혀놓은 인디언을세워놓고, 그 초상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선전하는 사진을 찍었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의 신체치수를 기록한 사진을 찍어 그것을 인종적 특성이라며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때 개개인의 정체성은 삭제되고 억압된다.
- P111

조선총독부의 사진들은 일본인과 조선인이 얼마나 다른가를 판단해 조선인의 타자성을 생산하는 도구로 쓰였다. 그렇게생산된 타자성은, 일본인들을 우월한 인종으로 놓고 조선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해 침략과 인종차별을 합리화하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었다. - P112

한 인물은 어째서 자기에게 가면을 씌웠는지 묻는다. 대답은 "가면은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기 때문, 얼굴을 가렸을 때 무엇도 함께 가려질 수 있는지 꿰뚫어보는 대목이다.
- P117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척 디Chuck D는 흑인 음악의 역사를 안다면 흑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말한다. 왜냐면 미국 흑인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출구가 없었거든요. 그러나 블루스로 우리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었죠.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에서 우리는 배를 곯았어요."
- P184

그래서 작품이 촉발하는 사유의 깊이가 깊을수록 관람객은 그작품에 깊이가 있다고 말하고, 반대로 보잘것없으면 그 작품에깊이가 없다고 여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같은 작품을 놓고도설왕설래하게 된다. 우리는 작품의 깊이를 놓고 논쟁하면서, 사실상 자신과 상대방의 사유의 깊이를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다.
- P246

사유는 오직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추상회화나 연주 음악처럼 언어가 없는 예술은 더욱고통스럽다. 그런 예술들에 사유를 촉발하는 언어조차 없는 것이다. 술라주의 말처럼, 이미지도 언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추상회화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우리 자신을향해 돌아서서는 우리 자신을 사유하게 된다.
우리는 추상회화를 읽어낼 수 없다. 우리는 그 대신 자신을,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언어를 읽어내고 사유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 일을 즐긴다. 예술이 촉발하는 사유의 고통은, 그예술의 이해되지 않는 아름다움처럼 때때로 충분히 즐길 만한고통이기 때문이다. 무해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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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유하게 한다. 사유를 촉발하는 힘까지 예술의 일부이다.
- P18

그렇다면 인간증발 현상의 결정적인, 보편적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사태를 단순하게 보자. 그리고 점점일본과 닮아가는 우리를 보자. 한국의 자살률은 이미 일본을추월했다. 사는 게, 증발하거나 죽는 것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 P26

그 실존은 우리 안에 침잠해 있지만 이름을 모르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이름이 없어 불러낼 수도 없는, 또 다른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미성년) 같은 영화나 『인간증발』 같은 책, <이름도 없는… > 같은 그림을 만나고 나서야 불현듯, 일상에서 잊고있던 그 존재를 감지하게 된다.
- P29

이것이 현대인 삶의 스탠더드이자 가치관이다. 미소 친구의
"언니, 집 없어요?" 하는 물음은, 그러므로 "언니, 행복 없어으?"
하는 물음이 된다. 하지만 집이라는 행복은 너무 비싸져서, 이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꿈이 됐다.
- P41

차별을 발생시킨 근원에는 동일자와 타자의 문제가 자리해있다. 차별하는 동일자와 차별받는 타자라는 이 두 지위는 인종이나 세습 신분치럼 타고난 것도, 계급처럼 후천적으로 주어진것도 아니다. 작위적으로 그어진 경계에 의해 그때그때,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일시적인 지위들이다.
거역할 수 없이 자연적으로 주어졌거나 숙명처럼 바꿀 수 없는것이 아니다. 동일자와 타자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를가둔 인공적 경계다.
- P65

약자의 언어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차별적 관계가 끝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라도 약자의 언어는 강자의 행위를고발하는 언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가 그렇다. 일본이 ‘위안부‘라는 단어를 부정하고 역사에서 지워버린다면 피해 사실도 사라져버린다. 인권을 유린당한 식민지 여성이라는정체성,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반인륜 범죄 피해자라는 입장도 함께 부정되고 지워져버린다. 이것이 일본이 그토록 ‘위안부‘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이유이고, 언어가가진 영향력이자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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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우리가 서로를 알아봤을 때는 그저 우습기만 했지.
그쪽 세계의 나도 주목받지 못하는 한심한 연주자에 불과한데,
다른 세계에 있는 나도 소질 없는 멜론 장수라니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수레를 끌고 시장에 나오는 일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일도 좋아하거든,  - P51

"우리의 현실이 정말로 같을까? 그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진실한 대화일까? 너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어떤사람은 수요일에서 바닐라 냄새를 맡고, 또 어떤 사람은 남들이 결코 구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빨간색을 구분하지. 우리는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의 관점을 상상하지 못하겠지. 자신의수천 배나 되는 몸집을 가진 동물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진드기의 관점을 헤아려볼 수도 없겠지.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 P57

어떤 이들은 낯선 외국어로 가득한 서점을 거니는 이국적인 경험을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이방인으로서의 체험, 어떤말도 구체적인 정보로 흡수되지 못하고 풍경으로 나를 스쳐지나가고 마는 경험……..
- P63

덕분에 이 서점의 책들은 읽히지 않음으로써 가치를 부여받았다.  - P63

"그러다 이곳 행성어 서점의 존재를 알게 됐죠. 그제야 알았어요. 저는 앞으로도 수만 개의 언어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수만 개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조차 읽지 못한 책들이 저를 기21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 P72

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요동치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덧씌워 보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달랐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가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이끄는 자가 되었다가 밀려나는 자가 되었다. 소망의 표면 아래 진짜 미래의 모습이 채워졌다. 나는 그 간극을 감당할 수 없던 거였다.
- P82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섰을 때, 리키는 오솔길 끝 전망대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없이조용해서 어쩐지 그 풍경은 그 자체로 한 장의 사진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노인이 조립식 이젤을 세워 놓고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 P105

소년은 이따금 우리에게로 걸어와 우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늪의 수면 위에 부유하는 우리를 살피면 마치 우리가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처럼,
- P121

"어차피 가면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르지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게 제 진심일까요?"
- P136

그래도 어느 순간 다현은 인생의 쓴맛이라는 비유를 이해할수 있게 되었고, 어디선가 그런 맛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사장과 나누었던 기묘한 점심을떠올리곤 한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다른 행성에서 스쳐 지나갔을지 모르는 그와의 대화를, 그리고 구름을 한 스푼 떠먹는느낌이었던 푸딩의 맛을그러다 보면 혀끝에 약간의 알싸한 단맛이 감도는 것 같기도 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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