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사라 베르나르는단지 취재의 대상이었지만, 곧 자신이 미디어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를 파악한 그녀는 무대에서 사생활의 일부분을 살짝 노출시키면서 새로 발표하는 작품의 홍보에 적극 이용했다.
미디어 시대에 PR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꿰뚫고 있었던것이다. 자신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팔았고, 캘린더, 연극 포스터, 브로마이드용 사진을 팔았다. 더 나아가 상품의 선전에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를 써서 커다란 광고탑이 되기도 하고, 잡지나신문을 장식하기도 한다. - P47

뮈샤와 아르 누보의 가장 위대한 점은, 다른 미술 사조가 그랬던 것처럼 특권층이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포용하려고 노력했VAIRAUG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르 누보의 가장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바로 그 대상에 있다.
이 새로운 예술은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엘리트의 예술이기를 거부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며 모두에게 공감되고 사랑 받는 예술, 그것이 바로 아르 누보의 정신이었다.
- P60

그리고 곧 시작될 전쟁(제1차 세계대전)의 분위기와 맞춰 시대의 새로운 모더니즘은 비효율적인 장식이나 형식을 버리고,
가능하면 심플하고 기능적이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 친화적인 직선미와 기하학적인 취향에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아르 데코Art déco 의 시작이었다. 아르 데코는 가능한 간결하고 소박한 선과 기하학적인 형태, 편안한 중량감을 강조한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그 제품의 본연의 구조에 중점을 두고, 눈에확 드러나는 대비가 가능한 강렬한 색상을 주로 사용했다.
- P63

처음 뮈샤의 그림을 보았을때의 감동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 통속성 때문에 언제나 일상 속에 있는 사물의 취급을 받았다. 대중의 심리란 그런 것이다. 폭발적인 인기가 사그라지고 그 유행이 시들해진 아르 누보의 말기에, 대중들은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스토리텔링이 많은 아르 누보를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랬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던 유미주의(탐미주의) 문학이 지나친 미에의 집착 때문에피로감을 주었던 것처럼, 수많은 장식과 흐르는 곡선이 넘쳐나서 아름다움에 취하게 되는 아르 누보는 어느덧 대중들에게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름 자체가 새로운 예술이었던 아르 누보가 더 이상 새롭게 느끼지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 P63

이러한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간을 물질에 의존하게 하는 소비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욕망이 등장한다. 바로 사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상품에 대한 강력한 소유욕‘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국박람회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행사라고 할 수 있다.  - P139

개인적으로 파리에서 살면서 수차례,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는 이 공화국 정신을 생생하게 목격할 때가 있었다. 공공연한 인종차별주의를 표방하는 국민전선(F.N.)에 대한 반대 시위가 그랬고, 최근의 샤를리 엡도 사건 이 그랬다. 이런 류의 사건이 있을 때 마다 항상 "우리는 모두 이민자의 후손" 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오는 프랑스인들의 공화국 정신이바로 이 벨 에포크 시대에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완성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이 일도 내겐 무척이나 큰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수많은 프랑스인들의 결점과 가끔의 어이없는 부조리들을 참아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 P155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1863~1937)은 교육혁신을 주장하던 프랑스의 교육학자였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유학 시절 스포츠가 청소년의 이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체험한 그는 프로이센과의 전쟁(1870~1871)에 패배한 프랑스의문제는 바로 나약한 신체와 두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전 세계패권전쟁에서 약진하는 미국과 영국의 힘이 바로 스포츠 교육에있음을 깨닫고, 이를 프랑스 교육시스템에 적극 수용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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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9-1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명절 연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명절 연휴가 가면 구월 얼마 남지 않고 가을이 깊어가겠습니다


희선

scott 2021-09-1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P63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나, 땅을 헤집고 다니는 벌레들, 바다와 호수의 조류,
축축한 곳마다 균사를 뻗치는 균류, 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다 뒤덮어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 P82

"세상이 망해가는데, 어른들은 항상 쓸데없는 걸 우리한테 가르치려고 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왜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른들은 굳이 학고 같은 것을 만든 걸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대체로 하품을 하며 수업을 듣는 반면, 칠판 앞에 선 어른들은 늘의욕에 가득차 있었다. 나는 이것이 어른들의 몇 안 되는 즐거움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 P165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의 작은 공백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 풍경을 볼 때면 이곳이 투명한 스노볼 안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득하게 아름다웠고, 당장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 P215

"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 P226

내가 다음을 모두 주었던 이 프림 빌리지는 영원히 지속될 수없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끝이 결코 오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도 여기에 내 마음이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동안 붙잡혀 있으리라는 것을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 P244

지수는 밤새도록 바위에 앉아서, 숲을 가득 채운 푸른 먼지들을 보았다. 아름다움 외에는 아무 기능이 없는, 그러나 결국 제거되지 않은 푸른빛들을,
- P327

 언제나 의심하고, 매일 서로에게 물었어요.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프림을 떠난 이후 우리는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프림에서 하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죠.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시절이 그리웠고, 그것만이 우리를 잠시나마 과거로 되돌려 보내주었으니까요."
- P349

"시간이 흐를수록, 모스바나가 무엇인지가 제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저는 그냥 그곳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프림 빌리지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도, 그런 곳은 오직 프림빌리지뿐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식물들을 심었어요. 오직 그것만이 저를 살아가게 했으니까요."
- P354

생의 어떤 한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하고, 동시에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 P378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 P379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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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아버지가 아부다비에서 일하고 계셨고 그 덕분에 우리가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그곳에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나마 저희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다만 친정 어머니와 형제들을 예멘에남겨두고 떠나야 했기에 제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했었죠. 제가조국을 떠날 때 파괴되어 가던 예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사람들은 폭격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야 했어요. 그때의 감정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친정 가족들은요?"
"친정 가족들은 제가 예멘을 떠나고 반년 뒤에 예멘에서 나와 사우디를 거쳐 말레이시아로 갔어요. 예멘에 있을 때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냈던 때가 그리워요."
- P126

아랍 무슬림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랍인 무함마드는 알라의메신저로서 선택된 신성한 존재이자 무슬림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최고의 인격체라고, 동시에 무지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아랍인을 무지에서 이성의 세계로 안내한, 그래서 결국이슬람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위인이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는 더욱더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는 사람의 우상화를금하기 때문에 무함마드의 성화도 그리지 못하게 한다. 즉, 무슬림에게 있어서 무함마드 풍자는 알라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자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이다. 종교를 떠나 무함마드에 관해 공부하고 알아갈 때 아랍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아랍인들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열쇠‘를 쉴 수 있다.
- P150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에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 바로 내가 낮에 꿈을 꾼 자였다." - P164

사우디 재정 수익의 80퍼센트 이상이 석유 판매 수익이다. 그러나 석유 산업에 관여하는 사우디 노동력은 10퍼센트도 되지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거대화된 국가는각종 공공 부문에서 국민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국민은 그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앉아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데 큰기여를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노동자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현상이 산유국에 사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숨어 있던 게으른 본성을 자극한 건 아닐까? 사우디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아온 한한국계 청년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형, 사우디에서는코앞에 있는 마트도 안 나가요. 전화해서 배달하죠."
- P193

와하비즘과 전통적인 아랍의 관습으로 인해 나타나는 사우디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녀의 엄격한 구분이다. 이는 극도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사우디에서는 남성 후견인 제도 마흐람 Mahram‘ 때문에 여성들은 혼자서 출국하거나 교육받을 수 없었고, 취업이나 결혼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 P202

없었기 때문이죠. 주말에도 집 안에 갇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집 밖에 나가도 특별히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없을뿐더러, 가족의 허락 없이 나갔다가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매를 맞기 일쑤였거든요. 그런 우리에게 탈출구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에요..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같은 우울함을 경험했던 어머니들이 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딸들을 응원하게 되었죠. 리야드에서 열린 BTS 공연 때도 많은 팬이 어머니와 함께 왔었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터넷의 발달과 한류의 바람, 거기다 사우디의문화 개방이 맞물려 생긴 현상이에요. 아, 35년 동안 사우디에서문을 닫았던 극장이 2018년부터 다시 문을 연 건 아시죠? 이제점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상상할 수없던 일들이 지금 사우디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 P209

보다 골이 깊었다. 독립 국가를 꿈꾸었던 쿠르드인은 이를 묵살한 영국에 분노를 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살아가던 수니 - 시아 쿠르드는 멜팅폿 안에서 하나가 되기는커녕 인위적으로 조성된 이라크라는 하나의 정치 체제 안에서 더 큰 파이를차지하기 위해 상호 견제의 긴장감을 한순간도 늦추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강한 중동을 원치 않았던 영국이 오히려 이러한분열을 원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P223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다. 그리고 수십 년간 삭혀 왔던 시아 수니 간의 갈등, 시한폭탄이 폭발해 버렸다. 그동안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 억눌렸던 시아파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았다. 반면 사담 후세인의 죽음과 함께 정치계에서 축출된 수니파 세력이 정치적인 배제에 불만을 품고 과격한 반정부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아가 수니파는 알카에다, IS 등 수니파 테러 세력과 규합해 정부에 대항했다.  - P225

지금도 뉴스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라크의 아픈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영국의 철학자 마이클 오크숏MichaelOakeshott의 말을 빌려 이라크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이라크는 출발점도 없고 예정된 목적지도 없이 ‘수평을 유지하면서 마냥 떠있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끝없는 항해를 하고있다. 이라크 국민은 어딘가에 빨리 정박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 P228

아랍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묘한 민족적 요소들이 있어더욱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담 후세인, 그는 정말 나쁜 놈이었을까? 질문의 답이 궁금해 샤르자대학교 역사학과 나집교수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교수님은 자신도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직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야. 각자의 시각에서 본인의 의견만 있을 뿐이지." - P266

오늘날 아랍에미리트 국민은 과거에 선조들이 겪었던 힘겨운삶과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각 토후국의 통치자들도 국민을 향해 "옛 선조의 고난과 역경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며 부단히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는 선조들을 기억할 만한 유형 문화재가 거의남아 있지 않다. 실제로 에미리트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것은 ‘고난의 삶을 통한 인내와 끈기‘라는 정서적 유산뿐이다.
어떻게 하면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이를 위해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무형의자산을 형상화해 현대 건축물에 반영하는 것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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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서관이 사라진 결정적 사건이 로마의 이집트 지배였다고 생각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서적을 이교도의 것으로 간주해 배척하고 없애 버렸지. 인간이란 참 어리석지않아? 수백 년 동안 쌓아 온 학문과 예술의 축적물을 또 다른 인간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불태운다는 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수난은 7세기,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땅에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P50

현대 사회에서 그 후손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동시에이슬람 사회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며 그들의 위치를 잘다지고 있다. 카이로 같은 수도권에서는 이집트 기독교인의 생활 수준이 꽤 향상되어, 재능만 있으면 차별 없이 좋은 직업을갖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콥트교인인 사라 박사 또한 의사 집안을 일구고 이집트 사회에서 보란 듯이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이 땅의 이집트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같은 언어를 쓰는 국민으로서 같은 동네, 같은 건물에서 이웃으로 살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 P62

"최근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예멘 난민이 전 세계를 유랑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의머릿속에 박혀 있던 문화적 프레임이 완전히 깨지고 있지요."
이것이 예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맞아요. 언젠가 내전은 끝나겠죠. 그때 세계의 곳곳에서 활동하던 우리 다음 세대들이 예멘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예멘으로 자연스레 유입되겠죠? 이것이 예멘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틀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 P84

아랍인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과 음성, 몸짓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아랍에서 수사학인 발라가 Balaghah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레바논계 미국학자 필립 쿠리 PhilipKhur는 세계에서 아랍인만큼 문학적인 표현에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말과 글에 감동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랍인은기쁨, 슬픔, 분노 등 마음속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청자의 가슴에도달시키려 한다. 부끄러움이나 거리낌이 없다. 박사 과정에서같이 공부하는 친구 아스마는 과제를 할 시간이 없다며 수업 중에 큰 소리로 교수에게 자주 호소한다.
CC교수님, 제가 애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가 아프신 거 아시죠? 제가 어머니 돌보랴 아이들 밥하랴 과제 할 시간이없어요! 제 상황이 너무 애처롭지 않은가요? 우리 어머니도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도 과제를 해야 한다고요?"
- P101

 이슬람 전파의 시작은 메카와 메디나였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아랍인들은 이슬람의 기치 아래 사막을 발판 삼아주변으로 계속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이들은 사막 가장자리에거점 도시를 건설했고, 그 거점 도시에서 출격한 아랍인들은 주변 지역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다. 중동학의 권위자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는 사막을 바다에, 군사 도시를 항구 도시에 비유했다. 즉 아랍인들은 사막의 출구에 항구(군사 도시)를 설치한 후그곳을 기지 삼아 ‘낙타‘라는 배를 타고 주변 영토로 세력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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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젊은이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앞만바라보았다.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안에서 솟구쳤고,
전쟁 초기부터 쌓인 온갖 고통, 온갖 분노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일었다. 죽어가는 친구를 보며 느끼는 울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졌다는 패배감, 영웅주의적인 애국심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공허함으로 그는 운명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심을 품게 되었다.  - P541

보수적인 부르주아들의 가슴속에서도 불타고 있었다. 프랑스는 피와돈이 말라가고 있었다.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항전을 고집하는 파리에대한 은근한 반감이 지방 점령지 전역에서 싹트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강베타의 열렬한 선언을 암시하며 결론을 내렸다.
"아니, 아니! 우리가 극렬분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어요. 결국 잔혹한죽음에 이르게 되니까 …… 저는 선거를 원하는 티에르 씨를 지지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화정, 맙소사! 하지만 공화정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더 나은 게 나올 때까지."
- P625

달리샹 박사가 장을 이륜마차로 부이용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박사의 용기와 선의는 끝이 없었다. 바이에른에서 퍼지기 시작한 티푸스가 로쿠르를 휩쓸자 그는 집집을 다니며 환자를 치료했고, 그 외에도로쿠르 야전병원과 레미 야전병원 두 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부상병을 치료했다. 열렬한 애국심, 부당한 폭력에 대한 저항심으로 인해 그는 프로이센 당국에 두 번이나 체포되었다 풀려났다. - P630

수개월의 고통과 기아를 거치며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 이제 무위 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시민들, 바야흐로 자신이 만든 유령 앞에서 의혹에 빠진 시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반란의 싹이 텄다. 시민들의 영혼을 헛되이 불태운 뒤 복수와 파괴의 맹목적 열망으로 변해버리는 환멸의 애국주의는 독일의 대대적인 포위 공격이 끝날 때마다 보이는 정신적 발작 가운데 하나였다.  - P648

 아! 장군들! 그의 뇌리에스당의 장군들이, 그 향락적이고 무능력했던 장군들이 떠올랐다. 장군이 한 사람 늘었든 줄었든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그날 하루의 나머지시간도 똑같은 열광과 흥분, 그의 전망을 완전히 바꿔놓은 열광과 흥분속에서 마무리되었다. 거리의 포석조차 바라는 듯했던 무장봉기가 점점 확산하더니 예기치 않은 승리의 운명 속에서 대번에 사태를 지배했고, 마침내 밤 열시경 시청을 중앙위원회 손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자신들이 시청을 장악한 게 믿기지 않는 듯 놀라워했다.
- P651

그러자 말도 안 된다는 듯 격한 몸짓으로 모리스는 장의 손을 놓았다. 두 사내는 잠시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파리 전체를휩쓴 광기의 충동, 즉 저멀리서 온 질병, 황제가 뿌린 병균에서 비롯된질병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노동과 검약의 땅에서 자랐기에 상식과 무지로 무장한 채 상대적으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형제나 다름없었고, 연대감이 더없이 강고했다.
갑자기 군중이 떠밀어 서로 떨어지게 되자, 그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 P653

죽음을 모면한 모리스는 패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프로이센군과 맞붙어 번번이 패한 자칭 합법 정부군이 파리와 싸울 때는 엄청난용기를 발휘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 P655

화염에 휩싸인 주변건물들이 내뿜는 참을 수 없는 열기와 질식할 듯한 공기가 그의 몸을휘감았다. 포석 더미가 쌓인 십자로는 비처럼 쏟아지는 불똥과 함께 화재로 방어되는 진지, 불의 참호로 둘러싸인 진지가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명령이 아니었던가? 바리케이드를 포기할 때는 동네에 불을 지를것, 불덩이 방어선으로 정부군을 저지할 것, 파리를 넘겨줄 상황이 닥치면 파리를 불태울 것. 벌써 화염에 휩싸인 지역은 바크가만이 아니었다. 그의 등뒤로 도시 전체가 불타는 듯 검붉은 하늘이 보였고, 멀리서뭔가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 P666

시라도 편히 쉬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끌려와 임의로 뒤섞인 포로 출신병사들은 파리를 향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리고 코뮌의 만행도 소유와 질서에 대한 존중심에 상처를 내며 장을 격분하게 했다. 온건한농부로서 그는 다시 땅을 일구고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노동할 힘을얻을 수 있도록 그저 평화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화재는 가장 선한천성마저 잠재우며 미치도록 그의 화를 돋우었다. 승리할 수 없다고 해서 집을 불태우고 궁전을 불태우다니, 아. 그건 안 돼, 말도 안 돼! 그것은 날강도들이나 할 짓이었다. 그 전날 즉결 처형을 보고 통탄을 금하지 못했던 그도 이제 자제력을 잃었고, 고함을 지르며 눈이 뒤집힐 정도로 난폭해졌다.
- P667

 마침내 파리가 불타고 있어, 독일군의 포탄이 처마끝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파리가 불타고 있어! 군터는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는 듯했다. 포위공격으로 인한 격심한 피로, 혹독한 추위, 끊임없이 발생하는 난관 등이 여전히 독일군을 괴롭혔는데, 이제야 그 고통을 보싱빈는 기분이었다. 지방의 정복도 50억 프랑의 배상금도, 그 무엇도 이 파괴된 파리,
사나운 광기에 물든 파리, 청명한 봄밤에 스스로 불타올라 연기 속으로사라지는 파리만큼 승리의 자부심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 P673

그러나 모리스는 불타는 도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힘겹게더듬거렸다.
"아냐, 아냐, 전쟁을 저주하지 마……… 전쟁은 나쁜 게 아냐, 전쟁은자기 할일을 할 뿐이야….."
장이 증오와 후회에 찬 고함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제기랄! 네가 여기에 누워 있잖아, 그게 다 내 잘못인데……… 전쟁이뭐가 좋다고 그래, 전쟁은 더러운 거야!"
환자가 모호한 몸짓을 했다.
"오! 전쟁이 뭐가 문제라는 거지? 이점도 많아!..… 유혈사태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전쟁이란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이야."
- P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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