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 - 도발하는 건축가 조진만의 생각노트
조진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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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유난히 퇴직후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지, 아니면 내 주변이 특별히 많은지 그건 알 수 없는데, 어쨋든 그 지인들은 주말농장도 하고 나름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아직은 말뿐인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나는 시골 섬마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이 일도 없다.

내 꿈은 차도녀! 현실은 찌질도시월급쟁이... ㅠ.ㅠ


어쨌든 공간에 있어 나의 주요 관심사는 도시와 도시를 이루는 건축물들이다.

도시를 걷고 아름답고 멋진 건물들을 보고 그 건물들의 역사를 생각하고 어쨌든 이런 것들이 참 좋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좋다. ^^

그래서 도시에 관한 책이나 건축에 관한 책들이 나오면 전문서적이 아닌 이상 손길이 가게 되는데, 그 선택의 결과를 성공과 실패로 본다면 보통 반반이다.

이 책은 성공작!


일단 저자의 시선이 참 좋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관계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남, 자연과 인간, 개인과 사회, 안과 밖 등 다양한 관계성을 통해 우리 문화와 사회는 발전했습니다. - 7쪽


여기서 저자의 관심이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건축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좀 더 나은 사회, 좀 더 나은 인간관계,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은 이후에도 반복 제시되어 지는데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다.


건축은 우리의 생활과 주변과의 관계, 나아가 생각하는 방식 전반을 바꾼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사람이 되기 마련이고좋은 도시공간에서 살면 보다 공감하며 소통하는 개방적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마련이다. -100쪽


저자 스스로가 던진 질문이 이 책에서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고민을 따라가다보면 수긍할 수 있는 의견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건축에서 특정한 기능을 가지지 않는 중정이나 넓은 복도와 같은 공용공간의 쓰임새를 저자는 옹호한다.

이런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과 아이디어에 의해 무한하게 가능성이 확장되는 시작이라고 얘기한다.

한옥에서 비워져 있는 마당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망중한의 사색의 공간이 되고 또는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열고 교류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건 바로 그 비워져 있음으로 인해서이다.

서양의 옛 건물들을 보면 흔히 중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중정으로 인해 밖으로 폐쇄적으로 보이는 건물이 안으로 사람들을 품어내고 주택의 곳곳에 빛을 보내는 역할을 하며 공공의 장으로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 때때로 생각했던게 아이들의 창의성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것은 정말 어떤 장난감도 없을 때였다는거였다. 그럴 때 아이들은 결코 가만있지 않는다. 자기 주변의 뭐라도 찾아내서 새로운 놀이를 만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놀이들은 매번 새로웠다. 

건축과 공간 역시 이렇게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정해져 있지 않은 어떤 공간, 여백을 품을 때 비로소 창의성이 샘솟고, 사람들의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일테다. 


한동안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서 우리나라는 랜드마크 열풍에 휩싸였던 것 같다.

스페인의 쇠락한 탄광도시인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로 관광도시가 되는걸 보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던 조류다.

그러나 랜드마크가 진정한 도시의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준비와 지역주민들의 공감과 그것이 가지는 주변과의 연계성과 도시구조의 개선에 들인 지속적인 노력까지 많은것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정의한다.

이 대목에서 딱 서울의 동대문 야구장에 들어선 DDP를 둘러싼 논쟁들이 생각났다.

거대한 우주선 같은 DDP건물이 랜드마크로 기능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과연 동대문 지역의 주변환경에 걸맞는 건축인가 등등....

내가 본 DDP는 건물 자체만으로는 굉장히 훌륭하고 내부의 동선 구조도 효율적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밖에 나와서 봤을 때 뭔가 홀로 동떨어져 있는 섬인듯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나홀로 외로이 동동 떠있는 DDP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그냥 멋진 건물로 잠시 스쳐가는 관광코스였다는 느낌이 더 든다.

오히려 서울에서 더 기억에 남는 건물은 승효상씨가 설계한 대학로의 쇳대박물관이었다.

내가 여길 갔을 때는 이게 누구 작품인지도 몰랐다.

아니 여길 갈려고 갔던것도 아니고 대학로를 지나다가 우연히 들어갔던 건물이다.

쇳대박물관은 처음 지나갈때는 거기 있는지도 모르게 존재하나, 한 번 눈에 들어오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 저 건물 뭔가 심상치 않아하면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이 곳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집에 와서 누가 건축한건지 찾아봤었다.)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답은 없으나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삶의 공간으로서 주변환경, 사람들과 연결되는 공간을 좀 더 지향해야할 건축이라고 한다면 나는 DDP보다는 쇳대박물관에 손을 들어주겠다.


많은 건축가들이 지적하듯이 서양이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골목이 그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또한 얘기한다. 

사람이 만나고 어울리고 다양한 생활공간들을 품고 있는 길들를 살릴 수 있는 건축물들의 관계를 통해 내 것과 모두의 것간의 경계가 모호하게 될 때 전체적인 도시공간이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의 아파트 중심의 주거공간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을 보완한다고 르 코르뷔지에가 그랬던 것처럼 도시 전체를 뒤집어 엎을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도시 내의 방치된 공간 유휴공간들을 활용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새겨들을만하다. 

동시에 어떤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채우고, 이용하고 소통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활동일 것이다.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좀 더 인간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아직 명확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고민을 만들어 주고 원칙을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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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03 18: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심에서 사는 것 보다는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지더라구요. 시골섬마을이면 제주도인가요? ^^

바람돌이 2021-08-05 00:19   좋아요 1 | URL
저는 무조건 도시입니다. 시골은 놀러가고싶은 곳! ㅠ.ㅠ
제주도 아 좋죠. 하지만 아니고요. 경남 거제도 완전 구석진 시골마을 출신입니다. ^^ 집 마루에서 문열면 바다 선창이 보이는 곳요. ^^

페넬로페 2021-08-03 19: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의 남편의 로망이 나는 자연인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 1도 없구요~~
근데 저의 지인중엔 시골에 땅을 마련해 주말마다 내려가 농사를 지으시는데 갈곳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의 여유가 있더라고요~~
저는 도시가 참 좋은데 서울의 새 시청사도, 롯데타워도 싫어요^^
좀더 좋고 아름다웠다면 하고 바랍니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가 들어서는것도 싫어 나중엔 주거지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봐요 ㅠㅠ

바람돌이 2021-08-05 00:27   좋아요 3 | URL
제 주변에도 시골에 땅 마련한 사람들 많아요. 근데 농사요. 손바닥만한 땅도 얼마나 많은 노동을 투여해야 하는지.... 저희집은 다행히 남편도 자연인 하겠다는 소리는 안하는데 자꾸 제주도 가서 살자해서 난감합니다. ㅎㅎ
우리가 사는 도시가 좀 더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되려면 이 책이 작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할 듯해요. 서울의 새 시청사는 어떤지 몰라서 잠시 검색해보고 왔습니다. 뭔가 어정쩡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봐야 알겠죠. ㅎㅎ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서 저도 살고싶은 생각은 없고요. 저는 안좋은 점도 많지만 그래도 제가 사는 부산을 사랑합니다. 여기서 계속 살고싶어요. ^^

붕붕툐툐 2021-08-03 2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골목 너무 좋죠. 그 정겨운 것들이 사라져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저희 옆동네만 해도 골목 천지 옛스럽고 정겨운 동네였는데, 도시재생사업(?)으로 다 때려부수는 중입니다.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 짓겠죠?ㅠㅠ

바람돌이 2021-08-05 00:28   좋아요 2 | URL
왜 도시재생사업은 다 아파트인걸까요? 이게 참 정부탓만 하기도 그런게 거기 사는 사람들도 다 똑같이 아파트죠. 왜냐하면 그래야 돈이 되니까.... 온 국민이 부동산투자자인 나라! 아마 앞으로도 좋아지긴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폐공장지대라든가 이런 유휴공간들 얘길 해요.

han22598 2021-08-04 03: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마당 있는 살구나무 있는 집에서 살았어요. 친구들이 와서 마당에서 많이 놀았고, 주인이 없어도 놀 친구가 없을땐 살구나무에 고무줄 묶어놓고 고무줄 놀이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살구가 익기도 전에 아이들과 함께 반 초록살구 따먹으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살구 따먹고 그랬던 기억도 있어요. 마당.골목 이야기 하니까 ....추억 돋네요 ^^ 건축이라는 건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시골이든 도시든...장소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바람돌이 2021-08-05 00:32   좋아요 1 | URL
저 어릴 때 집은 쬐끄매서 마당이 없었어요. 대신 곳곳에 골목이 놀이터였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고향을 다시 가봣는데요. 제가 놀던 그 골목들이 어찌나 좁고 작은 골목이던지 기억과 달라 정말 너무 깜짝 놀랐어요. 아 집앞이 바로 바다여서 여름에는 아침부터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점심 저녁때 엄마가 문열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이름 부르면 들어가서 밥먹었죠. ㅎㅎ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는 건축, 어렵지만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파이버 2021-08-04 16: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께서 성공작!이라고 명쾌하게 말씀하시니 엄청 재미날것 같아요.. 요즘 도시 아이들은 정말 자기들끼리 어디 나가서 안전하게 놀만한 곳이 부족하더라구요... 차도 너무 많고 세상도 흉흉하고 ㅠㅠ

바람돌이 2021-08-05 00:34   좋아요 4 | URL
아 파이버님! 저는 별점에 많이 후합니다. 이 책 엄청 재밌지는 않습니다. 건축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이 맘에 들어서 성공작이었는걸요. ^^ 이분 생각이 아이들은 조금씩 자주 다쳐야 한다입니다. 조금씩 자주 다칠만하게 맘껏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죠. ㅠ.ㅠ

희선 2021-08-06 0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아파트가 많군요 새로 짓는 것도 거의 아파트네요 아파트가 아닌 데서 살면 이상하게 여기는 아이도 있을 정도라니... 그건 소설에서 봤지만, 실제로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파트에서 산다 해도 이웃과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듯합니다 층간소음으로 이런저런 문제가 많은 걸 보면... 아파트 지을 때 잘 지어야 할 텐데... 어쩐지 안 좋은 것만 말했네요 그래도 어딘가에는 서로 마음을 쓰고 사는 사람 있겠지요


희선

바람돌이 2021-08-06 02:00   좋아요 2 | URL
그래도 아파트의 장점은 있죠. 제일 좋은건 편한거요. 주택은 정말 관리, 청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저처럼 게으른 사람은 아파트가 제일이에요. 안타깝게도요. ㅠ.ㅠ

하양물감 2021-09-10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대한 생각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점점 멀어져가는 내집마련의 꿈... ㅎㅎㅎ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1-09-10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당선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09-10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

초딩 2021-09-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2관왕 축하드려요 ^^
좋은 주말 되세요~
 

"빨갱이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공포의 원체험과 냉전적 지식이 한국에서 자유세계로 발신되었다. 냉전 공포의 원체험과 지식은 자유진영의
‘상상적 공동체‘ 형성과 윤리 · 도덕, 그리고 정체성 내용의 주 재료가 되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 공포의 정체는 ‘빨갱이의 만행(또는 악행)이 판치는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빨갱이 ‘부지 (국가에 반역이 뇌는 일에 동조나 가담한 자) 낙인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빨갱이 점령으로 오염된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오염되지 않았음을 필사적으로 자기 증명하지못하면, 물리적 · 사회적 죽음의 문턱으로 넘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245

이 공간은 한국이 앞으로 주도해나갈 탈냉전 · 탈분단과 평화 시대의전망에 불협화음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매년 200만 명(70만 명은 어린이와 청소년 · 학생)이 다녀간다는 용산 전쟁기념관 공간의 구조와 전시내러티브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차곡차곡쌓아가야 한다. 이 결과물들을 갖고 전쟁사가 아닌 평화사의 관점에서,
반공주의적 · 국가주의적 이념 · 정동 장치가 아닌 공공 역사교육의 장이라는 관점에서 평화기념관의 구조와 전시 내러티브를 바꿔야 한다.
- P283

역사를 숫자로 기억한다는 것은 그 역사적 배경과 맥락은 삭제되고숫자가 지시하는 사건만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숫자는 하나의 상징이고 숫자와 함께 제시되는 화염과 탱크의 이미지는 바로 그날의 북한의불법 침입만 연상케 한다. 따라서 ‘6.25‘라는 명칭은 ‘6·25 전에 전개된한반도 분단과 내전 상황, 남북 간 국지적 교전 상황 모두 6·25 불법 기습 전쟁을 위해 발생한 것이라는 왜곡된 기억을 만든다. 전쟁기념관의건립 목적인 전쟁 준비 만반의 태세라는 전쟁정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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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포착의 목적이 기록, 선전, 그 밖의 무엇이든 피사체가 보여주고들려주는 이야기에 온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빈약하고듬성듬성 구성된 공식 역사의 빈틈을 풍부하게 메워가며 진실에 접근할수 있다. 어떤 사진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공식사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부정되지만, 머잖아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를 새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 P22

정리하면 만주군 출신 군 수뇌부와 경찰의 일본 계엄령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경험의 계속이 계엄법 없는 계엄 선포를 현실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계엄 선포의 적법성과 불법성 논쟁을 떠나 계엄법 없는 계엄 포고가 만들어낸 법의 공백 공간에서의 적나라한 폭력에 주목해야 한다. 군은 계엄 지역을 외부와 차단하고 봉쇄한다. 언론을 강력히 통제하고, 치안 및 질서 유지를 이유로 성향에 따라 미리 분류해놓은주요 인사들을 예비검속(또는 예방구금)한다. 그 끝은 특정 공간의 초토화다. 그 공간에 잠시라도 스쳤던 주민들은 약식 군법회의, 또는 ‘손가락총‘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요동쳤다.
- P65

한국전쟁 동안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의 선포 · 운용 · 해제는 지역별, 시기별로 어지럽게 이뤄졌지만, 전반적으로 계엄 상태는 유지됐다. 그런데계엄 상태는 전쟁 상황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대부분 허구적 · 정치적계엄이었고, 설령 군사적 계엄이었더라도 그것이 적을 상대하는 전쟁수행에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쟁 수행을 위한 여타의 전시법과 차별적인 계엄법의 진정한 효용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바로 군이 계엄 선포권자 대통령 아래에서 모든 행정, 사법, 심지어 입법의 권한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이다.  - P73

맥아더 주연의 전쟁 스펙터클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사진 1), 사진2>와 달리 그 뒤 사진 4장은 아군과 적군, 민간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전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았던 이야기들을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귀들이 많아질 때, 그 귀를 가진
‘우리가 많아질 때, 맥아더로 시작해 맥아더로 끝나는 인천과 섬, 바다.
의 냉전 경관을 평화 경관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상륙작전을재현하는 전쟁 축제가 월미도 공원과 바다에서 볼거리로 진열되는 모습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고, 왜 불편한지 이성적으로 스스로 납득하고남을 설득할 수 있을 때, 자유진영의 세계평화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냉전 분단 경계에 인접한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활권에 진짜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 P107

종전을 간절히 바라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시작 중 하나가 국군의 날을 38선 돌파라는 시점과 연루시킨 기념의 정치로부터 해방시켜야 하지 않을까? 10-1, 더 나아가 6·25‘ 처럼 우리에게 너무나익숙한 기념의 시간은 점점 사라져야 할 기표다. 그렇지 않으면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더라도 38선은 여전히 분단(분리)과 적대 · 증오의 흔적으로 강력히 작동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탈분단 평화는 요원한 것이다. 새로운 국군 창설의 날과 종전일을 기다린다.
- P117

백선엽이라는 영웅신화는 전사한 병사들과 군적 없이 동원된 학도병뿐 아니라 죄 없는 주민들과 피란민, 그리고 보급품과 부상병을 지게로 날라야 했던 노무자들의 주검으로 쌓인 것이다. 애국 명명 뒤에 가려진, 산더미를 이룬 주검의 사연들과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지만,
한국전쟁의 영웅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다. 여전히 우리는 전쟁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 P151

판문점에서의 정전 합의로 한반도에 총성이 멎었지만, 용조도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군 인민군 포로들은 1953년 8월 일반포로 교환때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올라갔지만, 곧바로 새로운 포로들이 섬에들어왔다. 국군 귀환포로였다. 용초도 포로수용소가 국군 귀환포로 집결소로 용도 변경된 것이다.
- P176

《동아일보》 보도(1953. 9. 19)에 따르면, 귀환군 집결소설치와 운영의 목표는 귀환포로들을 "사상적으로 확고한 인증을 받은 용사"로 거듭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포로들이 공산주의 "세뇌교육"
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사상 검증했다. 가령 적의 노래를 배우고 불렀거나, 강압에 의했더라도 노역에 동원되었기나, 수용소 자치위원장 또는간부로서 활동했거나 하는 식의 사항을 체크했다. 포로를 심문하고 동료를 고발하게 하고, 이를 다시 해명하게 하는 식의 부역자 색출 방식으로진행되었다. 국군 특무대와 함께 포로 심문을 수행했던 미군 방첩대CIC파견대가 생산한 각종 심문보고서와 요원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 P185

전쟁 동안 피란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기는커녕 ‘버림받은 국민과비국민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대통령의 말에 피란가지 않았던 사람들은 3개월 동안 적 치하에 있었고, ‘역도들을 도운 자(부역자)라는 천형이 내려졌다. 적을 피해 피란했던 사람들이라고 크게처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미린민들 속 ‘오열‘, 불순분자, 흰옷을 입고변장한 적이 아님을 입증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골‘로 갔다. 미군 전선에는 얼씬도 거리지 말아야 했다. 미군은 살 길 찾아 이동 제한을 위반했던 피란민들에게 하늘과 땅에서 무차별 발포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 곳곳에 새겨져 있는 자유 피란민 서사, 즉 반공 자유를 찾아 공산당 마굴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우리‘
는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 P197

 반공 우익 청년단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원폭 투하 소문이 돌았다. 이렇게 볼 때, 미군과 국군의 흥남 철수 때 부두로 몰려들었던 20만 명의 피란민들 속에는 "공산 마굴을 피해 "자유의 땅으로 가는 반공 기독교 성향의 주민이나 자유 피란민들뿐 아니라 남북의 보복 학살의 틈바구니에서, 처참한 불의 바다를 만드는 쪽의뒤편에 가고자 했던 피란민들이 다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 P206

헤스가 유럽과 한국에서 수많은 전투 출격 횟수를 기록하는 동안 고아원과 피란민들을 오폭한 적이 있고, 이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고아에게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베풀며 자신의 죄과를 용서받으려 했다는글도 있다. 뭐가 되었든 난 고아들의 아버지로서 최신을 다했던 그 마음은 ‘숭고한 구원자‘의 그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젠 그 마음마저 전쟁고아를 활용한 미군의 사상심리전 프레임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도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사상심리전으로 재현된 구원 이미지가 대량 파괴의 이면이자 사후적 수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군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적군뿐만 아니라 비전투 지역에 대량으로 인적·물적 피해를 낳았고, 점령 후에는 민간 구호와 원조(작전)를 수행하는 모순적 상황을 연출했다. 이모순을 봉합하는 길은 하나였다. ‘적‘에겐 무자비한 파괴자이지만, ‘우리에겐 선의의 구원자라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 P223

 여성사의 시각과 방법으로 한국전쟁을연구한 이임하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남성 국민을 ‘병사형 주제로, 여성 국민을 ‘위안형 주체‘로 젠더화했다. 위안 · 위무 위문은 위안하는 주체의 계급에 따라 민간 외교의 활동으로 지장된 오락, 유흥, 성의 제공인지, 유엔군 위안소에서 은혜로운 미군의 노고에 감사하고 보답하는유흥과 성의 제공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김활란, 모윤숙, 임영신, 박마리아 같은 여성 지도자들은 여학생이나대한여자청년단, 대한부인회의 젊은 여성들을 동원해 병사들을 위무·위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주로 파티 대행업‘에 나서 유엔군 장교와외교관 등 영향력 있는 남성들을 ‘위안 했다.
- P227

 이승만 정부,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전쟁, 일본 오키나와와 한국 점령에 이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군위안부‘ 제도의 관리 방식에 동화된 미군,
그들은 전쟁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포주‘의 위치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전쟁의 일상, 일상의 전쟁에서 살아남아 살고자 한인생 전체가 국가가 관여한 성폭력으로 얼룩진 ‘위안부‘ 여성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대면하고 기록 기억하며, 응답해야 할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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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마녀들 -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김태우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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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쯤  KBS 가 특별기획으로 방영했던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깜짝 놀란 장면이 있었다.

한국전쟁 시기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다룬 부분이었는데 그야말로 시골에서는 원시적 동굴생활로, 도시에서는 지하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아래 사진 참고, 모두 KBS특집다큐 한국전쟁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들이다.)

물론 그 전에 미군의 폭격에 의해 북한 전역이 초토화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접했던 사진들은 대부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 역시 비참하고 참혹하지만 그런 전쟁의 폐허 모습은 꼭 한국전쟁이 아니라도 1차세계대전 시기 비행기가 전쟁무기로 처음 등장한 이래 모든 전쟁현장에 공통된 모습이었기에 따로이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영상속에 재현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쟁 시기 북한 <지하 인민시장>의 모습이다. 

지하생활이라고 하기에 단순히 방공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지하에 시장이 섰다는건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하 무기공장의 모습이다. 이곳의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전쟁터로 나가고 난 이후 북한의 아이들과 여성들은 전쟁물자 생산과 도시 복구에 동원되었다.

이들에게 지하 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골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혈거생활로 돌아갔다. 아래 사진과 같은 동굴이나 땅을 파고 토굴을 만들어 생활한다.





3년의 한국전쟁 기간 중 1951년부터 53년까지는 고지전 기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전투는 38선 근방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진행되면서, 북쪽이 항공전력이 바닥나면서 남한은 그나마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북한은 3년 내내 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1951년 이렇게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북한지역의 실태 조사를 위해 용감하게 나선 여성들이 있었다.

UN산하 국제민주여성연맹(이하 국제여맹)의 초청에 응한 한국전쟁 진상 조사위원 - 18개국 21명의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북아메리카의 다양한 지역에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다양한 출신과 다양한 성향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국제여맹은 당시 전세계 여성의 삶을 조사하는 진상조사단을 각 대륙에 파견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고, 북한 지역에 조사단 파견은 그 활동의 일환이었다. 또한 국제여맹은 평화, 여성의 권리, 반파시즘,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를 내세워 기존 여성운동의 주요 흐름이나 당대의 대표적 국제여성단체들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이념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 속에 묻혀있던 단체와 그 단체에 의한 한국전쟁기 북한지역의 조사결과를 발굴해 냈다는 점에 이 책의 첫번째 가치가 드러난다. 

얼마나 묻혀있었는지 역사를 전공한 나조차도 이 단체에 대해 처음 들어봤다. 

중국까지 이동한 이 여성들은 북한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두 만일의 경우 가족에게 보낼 유서를 미리 쓴다.

실제로 이후 이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보면 낮에는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밤에 그것도 차량의 전조등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천천히 도로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길을 이동하는 위험천만한 여행이다.

또한 시시때때로 공습경보에 따라 방공호나 지하토굴로 대피하고, 조사과정 중에 폭격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

무엇이 그녀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던 간에 이렇게 목숨걸고 조사한 기록이라면 당연히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그들의 활동이 역사의 한자락에 기록되어야 마땅할텐데 지금까지 당사국인 우리나라에서 조차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데 역사적 책임과 미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들의 조사결과는 <우리는 고발한다>라는 소책자로 7개국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책자는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소책자의 내용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의 폭격이 북한의 주민들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는가에 주안점을 둘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당시 미국의 이해관계,미국의 눈치를 보던 유럽의 상황들에 절대 유리하지 않은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국으로 돌아간 이후 오히려 소련의 사주를 받은 스파이, 국익을 그르치는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기존의 자신의 활동기반까지 빼앗기는 불이익을 당한다. 그 중에는 자신의 조국을 떠나 망명을 떠나야했던 사람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21명의 여성들 중 누구도 이 보고서의 내용을 평생동안 부정하지 않았으며, 불이익을 감수했다.

왜 그녀들이 일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지키고자 했는지는 그녀들의 여정을 따라가보면 이해된다. 폭격으로 삶의 기반을 모두 잃은 사람들, 전쟁 중 성폭행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손을 맞잡고 같이 울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과 양심을 바꿀 수는 없었던 이들의 정직한 마음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정의로운 마음과 말과 행동이 어떻게 지켜지는지에 대해서도 이들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다.


대중역사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서술에 있어 약간 독특한 방식을 선택한다.

조사위원으로 파견되었던 여성 중 그나마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영국인 모니카 펠턴이라는 여성의 입을 빌려 그녀의 생각과 행적을 따라가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이 책의 두번째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니카 팰턴은 영국인 사민주의자이며 당시 영국 노동당 관료로서 영국 최초의 뉴타운 개발사업 총재직을 맡고 있던 여성이다. 그녀는 반전평화운동은 커녕 2차대전기의 '애국주의적 활동'을 통해 집권여당의 대표적 여성 리더로 활동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북한을 다녀오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난 이후 반역죄로 사형되어야 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부정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다.

이 책은 바로 이 여성, 조사단 내에서 냉정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조사단 내부의 각국 인물들과도 싸우고, 북한의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북한이 보여주는 증인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싶고 듣고 싶은 인물을 선정해 증언을 채취하고자 노력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이런 전략은 사실 문학에서는 흔한 전략이고, 츠바이크의 역사서술은 극단적으로 등장인물에 몰입해 1인칭 서술로 이끌어나가는 특징을 보이는데 우리나라 대중 역사서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은 참신한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은 딱딱하고 학술적인 온갖 자료들을 모니카 팰턴의 시선으로 따라감으로써 자료에 생기와 현장성을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츠바이크처럼 과도한 몰입으로 인해 역사적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도록, 냉정한 역사학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데 이 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이 한국현대사학자가 또 어떤 대중역사서를 들고 나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저자 소개에 보면 저자는 자신을 미래 한반도 거주민들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학의 내용과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의 저작 <폭격>과 이 책 <냉전의 마녀들> 모두 한국현대사에서는 탁월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고, 자료도 없는 역사의 진실을 찾아 발굴하고 쓰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저자의 다짐이 책을 읽다보면 절로 수긍이 가지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국전쟁기 북한 주민의 피해를 지금에 와서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보게 되는 한국전쟁기 북한 주민들의 삶은 전쟁의 끔찍함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2차 대전중의 드레스덴 공습이나 도쿄 대공습처럼 단발성의 공습이 아니라 무려 3년간 끊임없이 진행되었던 폭격이란 것의 실체와 공포를 절감하게 만들었다.

현재 북한의 체제를 보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너무 많다.

저들은 왜 저렇게 김일성에 열광하는가? 1인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왜 제대로 조직되지 않는 것인가?

심지어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세습되고 있는 것을 당연시 하는게 어떻게 가능할까?


하지만 책을 보다 보면서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다.

공포! 집단적 공포와  트라우마!

전쟁과 폭격의 기억은 아마도 북한 주민들의 뼛속 깊은 곳까지 트라우마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 공포의 기억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대가 몇번 바뀌는 것 외에는 없을 정도의 지독한 공포!

그것이 현재의 북한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남한 역시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 불합리한 생각들, 비논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들을 무수히 가지고 있지만 그 강도에 있어서 북한이 훨씬 더 했던데서 체제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진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다.

그전쟁의 트라우마를 다시 살피는 것, 그 시기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의 용기와 의지를 되새기는 것. 이 모든 것은 결국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지기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다름 아니다. 


** 이 책 정말 좋은데 읽은 분이 생각보다 적다. 나라도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제발 좀 많이 팔리고 읽어달라고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았는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진짜 이 책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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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8-02 21: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사실 6.25전쟁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부끄럽습니다. 얼마전 방구석 1열에서 고지전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전쟁의 대부분이 고지전이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어요. 정말 책이라도 많이 읽어 실상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람돌이 2021-08-03 00:22   좋아요 1 | URL
알아야 할게 얼마나 많은데 한국전쟁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심사도 다 다르잖아요. 페넬로페님의 문학작품들 소개로 저의 정신세계가 나날이 풍요로워지고 있는걸요. ^^ 한국사 관련 서적들이 어쨌든 저는 직업으로 걸치고 있는 관계로 대부분이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들을 확인하고 새롭게 보는거였는데 이 책은 정말 깜깜 모르고 있던 일이었어요. 그래서 더 저자의 노력이 얼마나 지난했을지 느껴졌다고 할까요? 이런 저자의 노력이 많은 독자들을 통해 보답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습니다. ^^

mini74 2021-08-02 22: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분 책 폭격도 저는 참 좋았어요. 전쟁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냉전과 매카시즘 열풍으로 참석한 분들 대다수가 저평가되고 잊혀진 점이 속상했어요 바람돌이님의 강력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ㅎㅎㅎ 리뷰짱 ! 입니다 *^^*

바람돌이 2021-08-03 00:24   좋아요 2 | URL
폭격은 사놓고 서문만 읽고 분량에 눌려서 미뤄둔 책이에요. 대신에 저자가 직접 나와서 소개했던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었는데 굉장히 생각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폭격도 읽을 예정입니다. ^^ 이 책에 나온 조사단 위원들에 대해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 역사적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붕붕툐툐 2021-08-02 23: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이리 강력 추천하시면 당연히 읽어봐야지용~ 순위 앞으로 쭉쭉 올립니당^^

바람돌이 2021-08-03 00:24   좋아요 0 | URL
앗 1명 뽐뿌에 성공!!! 툐툐님 미리 감사해요. ^^

새파랑 2021-08-02 2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역사 전공자시군요. 그래서인지 내용정리도 완벽한거 같아요. 사진 까지 보니 충격적이긴 하네요~!!

바람돌이 2021-08-03 00:26   좋아요 1 | URL
사진은 제가 수업용으로 가지고 있는 영상들을 캡처한거에요. 내용정리는 일부러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볼 분들을 위해서요. 부디 많이 많이 읽어주시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전쟁을 통해 평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부분이 많은 책이었습니다. ^^

희선 2021-08-03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하니 한국전쟁 때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 별로 못 해 본 것 같기도 하네요 남쪽보다 북쪽이 더 살기 어려웠군요 땅속에서 살았다니... 공습이 그렇게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니 그때 사람은 그때 일 잊지 못하겠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은 더 힘들었겠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글을 쓴 사람이 있었군요 그것도 여성이라니... 그런 게 아주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8-03 01:45   좋아요 1 | URL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근현대사를 보다 보면 정말 그 때 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전쟁이나 공습의 기억은 그걸 당했던 사람만이 아니라 후대에 그걸 전해듣고 자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의 트라우마를 주는 것 같아요. 아마도 세대가 여러번 교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관계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남, 자연과 인간, 개인과 사회,
안과 밖 등 다양한 관계성을 통해 우리 문화와 사회는 발전했습니다.
- P7

강연회에 연사로 초청받을 때마다 나는 청중에게 공통된다음 2가지 질문을 받는다. 하나는 창의적 설계들이 탄생하는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아무 제약이 없다면 만들어 보고 싶은 건축물은 어떤 것인가이다.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약‘이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 제약도 주어지지않았으니 뭘 한다 해도 특별하게 만들 수 없다‘ 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무릇 똑같은 장소란 없는 법이다. 모든 땅에는 각기 다른 제약이 존재한다. 대지 조건과 규모의 제약, 법규적인 제약, 예산의 제약, 시간의 제약 등 매 프로젝트는매번 다른 제약들을 내포하고 있다. 건축설계란 늘 새로운 장소에서 생활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새로운 꿈을 잇는작업이다.
- P13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장점만큼이나 각기 다른 약점을 지니고 있다. 나는 개인의 개성은 장점이 아닌단점들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라 본다. 단점이 치명적이고 복잡할수록 그만큼 발휘되는 개성은 남들과 차별화될 잠재성이있는 것이다.  - P14

건축가로서 건축주에게 새로운 계획을 제안할 때마다 항상논점이 되는 것은 특정한 기능을 가지지 않는 중정이나 넓은 복도와 같은 공용공간의 쓰임에 관해서이다. 왜 쓸모없는 공간을크게 만드는 것이냐고 물으면 이것이 전체적인 건축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여백‘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여기서 여백의 의미는아무 목적도 없는 ‘무의 공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과 아이디어에 의해 ‘무한하게 가능성이 확장되는 시작으로서 비워진 공간‘이다.
- P30

비움으로 인해 건축은 단순히 주어진 기능을 담는 도구의틀을 초월한다. 진정한 완성은 미완을 품음으로써 사용하는 사람들이 채울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여백을 만들고, 또 우리를 그속으로 이끄는 것이다.
- P37

놀이와 학습에 경계를 두지 않고, 이 둘을 서로 연속된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입구에는 이런 놀이터 사용법이 적혀 있기도 하다. 작게, 자주 다쳐야 크게 안 다친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우리 도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이 딱딱하기만 하다. 이들의 주체성과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다양한 틈에 대한 시도가 더욱 다양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 P81

건축은 우리의 생활과 주변과의 관계, 나아가 생각하는 방식 전반을 바꾼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사람이 되기 마련이고좋은 도시공간에서 살면 보다 공감하며 소통하는 개방적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마련이다.
- P100

장소로서 지속되는 것이다. 좋은 랜드마크는 땅에 심은 것이 아니라 땅에서 자라난 것이어야 한다. 도시의 매력은 랜드마크로형상화되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사건과 행위가 일어나는 집합적인 관계성에 있다.
- P128

건물과 길로 이루어진 도시, 그것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관계를 통해 내 것과 모두의 것 간의 경계가 모호하게 될 때 전체적인 도시공간이 풍성해진다고 믿는다.
- P152

완결된 형태가 아닌 것은 주변을 위한 배려이며, 그 의도된 부족함을 통해 주변을 포용하면서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풍경이 된다. 이러한 관계성을 토대로 한 공간적 가치는 사실 우리 건축이 가진 고유한 작동원리이자 본질이다.
- P157

수려한 산수가 주된 도시의 랜드마크인 우리 도시의 건축은 자연의 위대한 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잘게 나누고 서로 연결하여 만드는 것이 옳다. 마치 자로 그은 듯한 외국 평지 도시의 질서와는 달리 다양한 틈과 흐름이 좋아야 한다. 작은 건축과 사이골목길들이 만드는 아기자기하고 느슨한 질서의 어울림이 우리도시공간의 정체성이다.
-승효상 - P224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고딕,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등의 유행 순서대로 양식을 나열해 나가면 그럴듯한 건축사의 체계가 정리된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예술이 표현의 문제인 반면 건축은 우리 삶 속 다양한 관계들에 대한 해답을찾는 일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새로운 삶이 조직된 설계도를
‘본다‘가 아닌 ‘읽는다‘고 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건축이 표현하는 시각적 디자인이 아닌, 그것이 조직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건축의 표피를 절개하여 스타일이라는 화려한 치장물을 발가벗기면 비로소 관계성이라는 속살이 드러나는 것이다.
- P232

 하지만 모든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투명함이다. 기술이란만들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가장 명쾌하게 사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은 마치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
혹은 인간이 호흡하기 위한 공기와 같다. 그래서 기술이란 연마할수록 투명해져서 결국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 P260

공간의 지속가능성이란 공간을 통한 관계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회와 그것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삶의 방식, 또는 공간을 매개로 한 관습화된 관계성에 대한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건축은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행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결국 공간으로 말해지고 새로운 건축이 새로운시대를 연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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