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평점 :

표지 일러스트 - 기하심리학자인 벤저민 베츠가 1887년 기하학적으로 인간 의식의 진화 과정을 형상화한 도표. 의식의 출발점, 동물의 감각적 의식 그리고 의식의 정점인 초월성을 단계별로 표현했다.
내가 좋아하는 딱 그 색감의 노란색 표지에 그려진 이 그림을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냥 스쳐지나갔다.(내가 찍은 저 사진의 노란색이 아니다. 대충 찍었더니 우중충한 노랑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노란색이 아니라 저 그림)
책을 다 읽고 난 순간 놀라움을 안고 표지의 그림을 다시 본다.
오! 인간의 지적 능력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일들을 하나 하나 꿰어내 무려 4세기의 시간과 인간사회를 넘어 자연과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공간을 하나로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니!
세상에 훌륭한 책은 너무도 많다.
날카로운 이성과 논리적 전개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낸다든지, 충만한 감성으로 독자의 마음을 뒤흔다든지, 드물지만 논리와 감성을 결합해내는 진정한 걸작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논리와 이성의 결합을 이끌어낼 때 저 표지의 초월성단계에 이른 의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목차만 본다면 이 책은 11명의 과학자, 시인, 조각가, 소설가들의 평전인듯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책 속의 등장인물은 셀 수도 없이 많으며 그들이 자신들조차도 모르게 그물망처럼 연결되고 교감을 나누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은 도저히 한눈에 그 연결망을 그려낼 수 조차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평생 우리 존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머지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우리는 존재의 동시성에서 삶의 정지 화면을 포착하기 위해 영원, 조화, 선형성이라는 환상에, 고정된 자아와 이해의 범위 안에서 필쳐지는 인생이라는 환상에 기댄다. 그러면서 줄곧 우리는 우연을 선택이라 착각한다. 어떤 사물에 붙인 이름과 형식을 그 사물자체라 착각한다. 기록을 역사라 착각한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 판단과 우연의 난파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에 불과한데도 - P15
작가의 말대로 이 세상은 온갖 우연으로 꽉차 있으며, 그 우연들 중 살아남은 것이 역사가 된다.
그러나 그 우연을 제대로 엮어내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또한 실종되어 역사로 남지 못한다.
이 책이 놀랍고도 놀라운 것은 그런 개인들의 필연적 우연들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고 각자의 삶의 순간들을 교차시키면서 각자이면서 하나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마녀로 몰려 재판에 회부된 어머니의 사건을 통해 "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났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캐플러의 이야기로 서두를 열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300여년 뒤의 여성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의 작은 집으로 이어진다.
이 작은 집에서 마리아 미첼은 처음으로 일식을 관찰한다.
여성이 어떠한 교육의 기회도 얻지 못해 과학적 성취를 얻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를 넘어 이제 여성이 천문학에도 도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케플러가 지구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소화하고 호흡하며 지구에 영혼이 있다는 믿음은 수세기간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것은 레이철 카슨에 이르러 탁월한 문학적 은유와 함께 지구의 영혼과 생명성에 대한 증언으로 증명되게 된다.
이렇게 케플러에서 마리아 미첼로 다시 레이철 카슨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엮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힘이다.
작가의 인식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나의 무지의 자각이다.
책에 나온 인물 중에는 소수의 남성들과 다수의 여성들이 나온다.
역사에 남긴 발자취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업적을 남긴 이들이다.
그런데 남성들의 이름과 그들이 한 일등은 대부분이 기본 지식정도는 내가 이미 들어봤거나 알고 있는 인물들인데 반해, 여성의 경우는 레이철 카슨을 제외한다면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거나, 이름만 정말 시인 브라우닝 정도의 이름만 들어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거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에밀리 디킨슨의 경우 난 '어 어디서 들어 봤는데? 소설가 아닌가?" 이런 정도다.
그래도 책 좀 읽는다고(대한민국 평균보다는 좀 더 많이) 자부하던 내 자존심에 금이 퍽 가는 순간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이 순전히 나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추적하고 기록하는 것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대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난망한 일이었는지다.
오랜 기간 여성들은 이 세계에서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싸워와야 했다.
단지 공부를 하고 싶다거나 조각을 하고싶다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조차도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을 관념으로 아는 것과 책속 여성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느끼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다.
이 책이 <진리의 발견>인 것은 저자가 생각하는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책 속 전체에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역사속 소수자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을 추척하는 것이 한 축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진리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이성적 탐구와 논리의 대표라 할만한 과학과 감성을 자극하고 인간에게 통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문학의 결합,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인간은 제대로 된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거릿 풀러의 <19세기 여성>이나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도달한 지점이다.
이 책 역시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럼으로써 책을 읽는 과정는 지적 자극과 등장인물들의 삶에 대한 감정이입을 끊임없이 번갈아 겪으며 내가 서있는 지금의 세계를 사색하게 한다.
방대하다는 것이 사용된 자료나 책의 두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초월의 단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우연적 만남들 속에서 상호작용함으로써 세상을 바꿔가는지를 논증하고 표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방대하고 심층적이며 그럼으로써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