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에서 아주 좋아하는 기능 중에 옛날 옛적에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는건 다 아실거다.

내가 알라딘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게 15년전부터 11년전쯤이니까 그 때 글들이 다시 올라오면서 정말 추억이 새록 새록 돋는거다. 이 때는 아이들 얘기도 많이 썼으니 아유 우리 애가 이런 말도 했었구나 하면서 신기해한다.

그런데 역기능도 있었다.

 

어제 아침 북플에 올라온 나의 옛날 글을 훑어 보는데 세상에 내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무려 2008년에 읽었다는 것.

이게 왜 문제냐고?

나 얼마전에 이 책 다시 읽었다.

 

 

 

 

 

 

 

 

 

 

 

 

 

 

2008년에 읽은 책과 2020년에 읽은 책.

2020년에 저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한번도 내가 이 책을 읽은 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용 중 아는 것들이 많이 나와도 그건 내가 다른 책에서 읽고 아는 거지, 2번째 읽는거여서 그렇다는 생각은 절대 안했다.

솔직히 이 책이 2번씩 읽고 싶을만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노화에 의한 기억력 상실을 애통해한다. ㅠ.ㅠ

 

사실 나의 기억력의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한동안 팟캐스트의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참 열심히 들었다.

어느 날 내가 보고 싶어 하던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 대한 방송이 나왔다.

"아 이 책 보고 싶었는데...."하면서 열심히 방송을 들었다.

 

 

 

 

 

 

 

 

 

 

 

 

 

 

아 역시 재밌겠네 하면서 열심히 듣고 있는데 방송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는 장면 설명이 너무 익숙한 거다.

어 이장면 분명이 아는 장면인데? 어 내가 이 책을 봣나? 내가 어떻게 이 장면을 알지?

그날 저녁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서 찾아봤다.

그리고 나의 리뷰를 발견했다.

읽고 리뷰까지 쓴 책을 방송 끝까지 안본줄 알았다니...

이것은 책이 그만큼 임팩트가 없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나의 노화수준이 치매로 가고 있는 것인가?

 

 

기억과 관련된 마지막 슬픈 기억.

꽤 오래전인데 역사토론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물론 관객으로...)

그 때 발표를 맡았던 사람 중에 한명이 아는 후배였는데, 발표 자료집에 자기 발표문을 쭉 써놓고, 마지막에 인터넷에서 퍼온 글을 첨부하면서 당시 발표 주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잘 정리되어서 퍼왔다고....

그 인터넷 첨부물을 보면서 "야 이사람 진짜 내 생각이랑 비슷하다. 누군지 진짜 정리 잘했네"이러면서 주절주절거렸다.

그런데 그 퍼온 글 중의 한 문장이 머리에 꽂히는거다.

이 문장 너무 익숙한데 뭐지?????

역시 집에 와서 찾아봤다.

내가 쓴 글이었다.

 

 

 

 

 

 

 

 

 

 

 

 

 

 

알라딘 서재에 쓴 글은 아니고 다른 곳에 위 책에 대해서 쓴 글이었는데......

이 때는 내가 노화를 핑계 댈 수 있는 때도 아니었으니까 읽고 까먹고 머리를 완전히 리셋하는건 결국 나의 천형인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가끔 알라딘에서 여러 책을 아우르면서 글을 쓰는 분들을 보면 막막 존경심이 솟구친다.

아 읽었다고 다 기억하는게 아닐텐데 어떻게 이렇게 쓰지?

내가 문제인건가?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건가?

하여튼 광기와 우연의 역사로 인하여 또 다시 나의 기억능력에 자괴감을 한껏 느끼게 되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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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3-07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기억에서는 지워졌지만, 그 책은 나를 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콩나물 키우는 걸 떠올리며 말이죠.
머리를 리셋하는 건 천형보단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게다가 본인이 쓴 글을 칭찬하셨다니 그보다 뿌듯한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괴감은 흘려버리시고 많이 읽으시고 많이 써주시길~ 애독자의 1인으로서 바래봅니다~😊

바람돌이 2021-03-07 01:47   좋아요 2 | URL
역시 위로의 대가 툐툐님입니다.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이야라는 자만감 모드로 확 바뀌고 있습니다. ㅎㅎ

붕붕툐툐 2021-03-07 10:49   좋아요 1 | URL
아이쿵~ 진짜 위로의 대가이신 바람돌이님께 이 말을 들으니 저도 어깨에 뽕이 차오르네여~ㅎㅎ

mini74 2021-03-07 0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막 두번 세 번 읽고 두 권 세권 사고 ㅎㅎ 저도 그래요.ㅎㅎ저희 남푠이 그러더라고요. 밥 먹는 것만 안 까먹음 된다고 ㅎㅎ

바람돌이 2021-03-07 01:48   좋아요 3 | URL
아 밥먹는거 안까먹는건 정말 자신있어요. ㅎㅎ 우리집 남편이가 가끔 밥먹는거 까먹고 일하다 왔다고 저한테 배고프다고 난리칠 때 절대 이해 안되는 사람이 접니다. 그래서 제가 다이어트를 못해요. ㅎㅎ

scott 2021-03-07 0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신판 다시 갖고 싶다앙 ㅎㅎ바람돌이님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넘 책을 많이 읽으셔서 뒤로 밀려난것 뿐 ^ㅎ^

바람돌이 2021-03-07 01:49   좋아요 3 | URL
안돼요. scott님. 완역판 나온거 보고 살짝 물욕이 생겼지만 저는 잘 누르고 있어요. ㅎㅎ
근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건 아닌 것 같아요. 진짜로요. ㅎㅎ

희선 2021-03-07 01: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었던 걸 잊어버렸다 해도 나중에 기억했잖아요 재미있게 본 거여도 시간이 가면 잊어버리기도 할 거예요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도 기억은 다 사라진 건 아니다는 말도 있던데, 그 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이 본 책이 늘어나면 잊어버리겠습니다 사람은 기억하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죠


희선

바람돌이 2021-03-07 01:59   좋아요 4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기억 못했어요. 저는 끝까지 처음 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까요? ㅎㅎ
그래도 책 읽은건 잊어버려도 되는데 사람은 안 잊어버리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요. 희선님 말씀 덕분에 또 힐링이 됩니다. ^^

청아 2021-03-07 08: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보면 작가들조차 자신이 쓴 책에 대해 잊곤 한다고 나와요. 바람돌이님은 너무나 정상이예요~이렇게 재밌는 상황을 인식했다는 걸로도 아주 젊은 뇌의 상태를 잘 유지중이시라 생각해요.
자신의 글에 대한 재발견 이기도 했으니까 멋진경험이기도 하구요.^^♡

바람돌이 2021-03-07 20:14   좋아요 2 | URL
작가들은 한 작품 쓸 때마다 영혼을 갈아넣지 않나요? 음 그렇다면 영혼은커녕 잡담만 널어놓는 제 글을 제가 잊어버리는건 지극히 정상적인 거겠군요. 마음이 좀 펀안해집니다. ㅎㅎ

청아 2021-03-07 20:20   좋아요 1 | URL
참고로 같은 해 11월에 이화북스에서 <광기와 우연의 역사>완역판이 나왔어요. 옮긴이도 다르구요ㅋ

그레이스 2021-03-07 0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쥐스킨트도 같은 현상을 얘기하던데요.
서재에서 책을 뽑아서 몇페이지 읽다가 의자에 앉아 한권을 다읽고 같은 문장에 감동받고 쳌 하면서 비로소 자기가 읽었던 책이었다는 생각에 잠시 멍해지는 현상.
제 기억으로는 <깊이에의 강요>였던것 같은데....
저도 가끔...
그래도 개정판을 사셨네요^^

붕붕툐툐 2021-03-07 10:51   좋아요 2 | URL
그래도 개정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3-07 20:17   좋아요 2 | URL
같은 문장에 감동받고.. ㅋㅋ
사람의 생각이란게 잘 안 바뀌니까 아마 저도 그럴거같아요. ㅎㅎ
아 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따지고 보면 구판과 개정판을 각각 읽은거니 다른 책이라고 우겨볼랍니다. ㅎㅎ

psyche 2021-03-08 0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ㅎㅎ

바람돌이 2021-03-10 23:26   좋아요 0 | URL
psyche 님 다행입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서... ㅎㅎ

유부만두 2021-03-08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로 윗 댓글처럼 ... 저도 그래서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

바람돌이 2021-03-10 23:27   좋아요 0 | URL
글쎄말예요. 저도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러다 다들 까먹고 다시 사는 책, 다시 읽는 책이 누가 더 많은지 경쟁이라도 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
 

"허공에 성을 지어보지 못한 소년은 절대 땅 위에서도성을 짓지 않게 됩니다. 히긴슨이 마거릿 풀러라는 인물에 마음이 끌린 것은 풀러가 꿈과 실천 그 어느 쪽도 희생하길 거부하고, 꿈꾸는 자와 실천하는 자로서 자신을 동등하게 엮어 "존재의 충만함을 성취했기 때문일지도모른다. 한편 풀러는 또한 진실과 아름다움을 나누길 거부하면서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의미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 P191

"한 세기 반이 지난 후 어슐러 K. 르 귄traula K. Le Guin("어스시 시리즈"로 유명한 SF 소설의 대가이다. 옮긴이)은 말한다. "말은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를 바꾼다. 말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모두 변화시킨다. 말은 에너지를 전하고 되받으며 증폭시킨다. 말은 이해 혹은 감정을 전하고 되받으며 증폭시킨다." 초월주의 운동에서 지고의 지성적 도구로 대화를 공식 채용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풀러의 공이다. 자유롭게 주고받는 말의 전류로 여성해방운동의 힘을 충전시킨 것도 풀러의 공이다.
- P199

하지만 풀러는 고의로 에머슨의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탐사 방식을 택했다. 위에서 아래로, 일 대 다수로, 하나의 드높은 지성이 수직으로 지혜를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다수 대 다수로 동등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풀러의 학식은 누구보다 대단했지만 풀러의 의도는 그 방에 모인 여자들이 자신의 정신이 중요.
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대중 앞에 표현할 만큼 가치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었다.
- P213

교도소, 정신병원, 고아원으로 쳐들어가 학대 실태를 폭로하고 대중을고무하여 변화를 요구하게 만드는 일과 월든 호숫가를 거닐며 정신적 삶을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일은 다르다. 초월주의자 중에서 풀러는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시험한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펜을 이용하여 우리의 삶이정의로운 사회에서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삶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도록힘껏 노력했다. 한 세기 후의 레이철 카슨과 마찬가지로 풀러는 인간의 삶이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풀러에게 관념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는 하나였다. - P256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곧 상상력을 펼친다는 뜻이다. 친숙한 것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질서를 머릿속에 그리며, 새로운 질서 안에서 얻게 될 것이 잃어버릴 것이 주는 잘못된 위안을 뒤덮고도남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이다.
- P314

"천재가 될 수 있는데, 누가 여편네가 된단 말인가?" 마거릿 풀리는 신혼의 하우 부부와 함께 증기선을 타고 유럽을 향해 떠나던 해에 발표한 《19세기 여성에서 질문을 던졌다.
- P333

호스머는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가장 유명한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게되며, 새로운 연금술사가 되어 싸구려 석회암을 값비싼 대리석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발명하고, 자신의 운명을 직접 바꾼 피그말리온이 될 것이다. 여성의 길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구세계의 판테온에 미국 예술을 위한 자리를 확보하고, 금전적인 성공과 타협하지 않는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예술가의 삶에 본보기가 되며, 존재를 정의하는 새롭고 대담한 어휘와 함께 퀴어문화를 열어나가게 될 것이다. 호스머는 또한 인생 말년의 수십 년을 영구운동기관을 발명하기 위해 소진하고 결국 파산하여 무명으로 숨을 거두게될 것이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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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우리 존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머지 세계가 어디에서시작되는지 알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우리는 존재의 동시성에서 삶의 정지 화면을 포착하기 위해 영원, 조화, 선형성이라는 환상에, 고정된 자아와이해의 범위 안에서 필쳐지는 인생이라는 환상에 기댄다. 그러면서 줄곧 우리는 우연을 선택이라 착각한다. 어떤 사물에 붙인 이름과 형식을 그 사물자체라 착각한다. 기록을 역사라 착각한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 판단과 우연의 난파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에 불과한데도 - P15

케플러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잊곤 하는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낼 때 우리가 지닌 가능성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 P27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최초로 인간의 자만심에 도전장을 내민 위대한 사상이다. 그 후 몇 세기에 걸쳐 세계 질서가 여러 차례 새롭게 편성되는동안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도전은 진화론부터 시민권, 동성결혼까지 수없이 많은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이 모든 도전에 사회는 케플러의고향 주민들이 보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주의중심이든 권력 구조의 중심이든, 중심에 있는 것은 그 대가로 진실을 희생할지언정 계속해서 중심에 남아 있어야 한다.  - P45

마리아의 감춰진 지성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사회가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뚫고 솟아오른다.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  - P56

이 집의 한쪽에 종이 공장을 만들 겁니다. 그리고 내 책상 위로 풀스캡판 크기의 종이가 끊임없이 풀려나오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끝없이 펼쳐지는 종이 위에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수억 가지 생각을 적을 겁니다. 전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말이에요. 신성한 자석이 당신 안에 있으며 내 안의 자석이 그에 반응합니다. 어떤 자석이 더 클까요? 바보 같은 질문이군요. 그건 전부 하나인데 말입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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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5 1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책은 서두 부터 머릿속과 심장을 쾅!두드리네요
[우리는 평생 우리 존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머지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우리는 존재의 동시성에서 삶의 정지 화면을 포착하기 위해 영원, 조화, 선형성이라는 환상에, 고정된 자아와 이해의 범위 안에서 필쳐지는 인생이라는 환상에 기댄다. 그러면서 줄곧 우리는 우연을 선택이라 착각한다. 어떤 사물에 붙인 이름과 형식을 그 사물자체라 착각한다. 기록을 역사라 착각한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 판단과 우연의 난파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에 불과한데도...]

바람돌이님 오늘은 개구리가 눈뜨는 날 경칩!
활기찬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

바람돌이 2021-03-05 15:17   좋아요 1 | URL
서문에서 한방 크게 때리고,
첫 이야기 케플러의 이야기에서 어 이거 뭐야? 이런 서술도 있어 하면서 한방 크게 때립니다.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어요. 하지만 800페이지가 넘어 너무 무거워서 요즘 하는 서서 책읽기를 못하니 밤에 보다가 자꾸 졸고 있습니다. ㅎㅎ
 

드디어 다 읽었다. 지금은 버지니아 울프씨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라고 한마디 인사를 건네야 할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좀 친하게 지내요라고도....

어제 1부를 다 읽고 간단한 감상을 남긴후에 30페이지정도 밖에 안되는 2부를 읽고 잤는데 아 2부는 정말 폭풍같은 2부였다. 눈앞에서 10년의 시간이 휘몰아쳐가는 느낌이랄까?
영화를 보다보면 삶의 주요부분이 휙휙 지나가는 장면 있잖은가. 책으로 그런 장면을 보는데 사실상 주요 사건은 짧은 몇마디 말뿐이면서 주변의 모든 세계가 폭풍처럼 그 사건들을 휘감고 나아가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쓰지라는 감탄 감탄!!!

마지막 3부에 이르러 이제 그들은 드디어 등대에 도착했으나 사실상 예상 가능하듯이 등대는 보잘것 없는 그저 등대일뿐이다.
그러나 등대에의 도착이 새로운 자각한 여성 릴리의 탄생과 오버랩되면서 등대의 의미는 새롭게 읽혀진다.

좀 더 천천히 많이 생각해보고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에 대해 써보자라고 결심은 하지만........

릴리의 그림이 다락방에 걸렸다가 파괴 되어버릴지라도 그것은 그려졌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생기듯이 비록 제대로 된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리라.

그런데 갑자기 이것은 비극이라는 생각이 릴리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그녀는 관이나 시체나 수의 가비극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 - 아이들이 기가 죽고 강요당하고하는 것 - 이런 것이 진짜 비극이라는 생각을 그 순간에 했다. - P208

그들은 나머지 세상과는 격리된 채 그곳에 서 있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자기 연민, 동정의 요구가 쏟아져내려와 그녀의 발치에 웅덩이를 이루며 펼쳐졌고, 천하의 죄인인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치맛자락이 젖지 않게 복사뼈 주위로치맛자락을 조금 더 바싹 끌어당긴 것뿐이었다. 말 한마디 하지않고 그녀는 그림 그리는 브러시를 움켜잡고 그곳에 서 있었다.
- P213

그리고 우리는 부인에게 래일리의 결혼이 당신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되어버렸다고 말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하고, 나는 이렇게 행복하다.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부인의 전 존재, 심지어는 그녀의 아름다움조차한순간 먼지투성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 P242

어쩌면 완결성에 대한 바로 이러한 느낌이 십 년 전 그녀가 지금 서 있는 곳에 서서 이 장소를 사랑한다고 말하게 한 것인지도모를 일이다. 사랑은 수많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사물의 요소들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잘 배합함으로써 그들의 생애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체감을 부여하고, 어떤장면이나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을 (지금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린), 우리의 생각이 정체하고 사랑이 넘나드는 압축된 공 같은 것으로 만드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 P265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때는 거의 대부분 그들이 괴짜라고 생각한다. 타인들은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들에 봉사하는것이다. 그는 그녀에게는 매질당하는 소년을 대행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기분이 나쁠 때에는 그의 야윈 종아리에 매질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만약 그녀가 그에 관해서 진지하기를 원한다면그녀는 부인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니, 즉 부인의 눈을 빌어서 그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 P272

그래, 여러 해 동안 만 건너편에서 보아왔던 등대가 저런 것이었구나, 헐벗은 바위의 헐벗은탑의 등대였구나, 제임스는 생각했다. 이 발견이 그를 흡족하게해주었다.  - P279

재빨리, 마치 그녀가 저기 있는 어떤 것에 의하여 상기된 것처럼 그녀는 캔버스를 향해 돌아섰다. 거기에 그녀의 그림이 있었다. 그렇다, 그 모든 초록색들과 파란색들을 가지고 선들이 달려올라가고 가로질러 가면서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녀는이 그림이 다락방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그것은 결국은 파괴되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녀는 브러시를 다시 잡으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층계를 바라보았는데 비어 있었고, 캔버스를 바라보니까 시계視界가 뿌옇게 흐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그것을 한순간 명확하게 본 것처럼 갑자기 강렬하게 그녀는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을하나 그려 넣었다. 됐다. 끝났다. 그래, 브러시를 내려놓으면서, 극도의 피로를 느끼면서,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그녀는생각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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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3-05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끝까지 보신 거 축하드려요 버지니아 울프 책은 한권인가 봤군요 많은 사람이 봤을 듯한 《자기만의 방》...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 잘 못 봤어요 그 책 봤을 때는 책만 봐서... 책을 보고 쓴다고 해도 좋은 생각은 못하지만,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좀 낫더군요 책을 안 보는 것보다 보는 게 조금은 낫겠지요 제목은 알잖아요


희선

바람돌이 2021-03-05 23:57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등대로는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절대 못읽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ㅎㅎ 안읽는것 보다는 읽는게 당연히 낫겠죠? ㅎㅎ 올해는 버지니아울프 전집 완독이라는 목표가 생겼네요.
 

아 정말 의식의 흐름인지 뭔지....
그래도 이런 식의 서술방법에 조금 적응하는 느낌이다. 물론 하나씩 떼놓고 보면 하나도 어려울것 없는 문장들을 심연을 탐사하는 느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하지만 1부를 다 읽고 난 지금 버지니아 울프가 이런 서술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는 명확해진다.
표면에 보이는 것과 실제 속성이 전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과 그들의 변덕들.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얼마나 상반되는 생각을 종횡무진 바꾸어 나가는지...
읽어나가다보면 내 머릿속을 해부당한 느낌이 든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머릿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유롭고 오만하고 독선적인가?

아들 제임스에게 날씨가 좋으면 등대에 갈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시작했던 1부는 내일은 비가 올 것이므로 등대에 갈수 없을 것이라는 램지부인의 말로 끝맺는다.
낙농업이나 병원경영을 하고싶었던 램지부인의 소망과 관심은 누구에게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그러하다.
등대는 도달하지 못한 그녀의 꿈이었던걸까?

생각보다 흥미진진해지는 책읽기이며 버지니아 울프가 왜 뛰어난 작가인지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또한 베풀려는, 그리고 남을 도우려는 그녀의 욕망이 결국 따지고 보면 허영이라는것도 신경 쓰였다. 진실로 그녀 자신의 만족감만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그녀가 그렇게나 거의 본능적으로 돕고 베풀기를 원해서, 사람들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오오 램지 부인! 사랑하는 램지 부인…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램지 부인이지!"라고 말하고, 그녀를 필요로 하고, 그녀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고, 그냐를 찬미하는 것이? 은밀히 그녀사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던가 - P62

"위선자적인 면이 약간 있지요?" 뱅크스 씨는 램지 씨의 잔등이를 바라다보면서 넌지시 한마디 던져 보았다. 그는 그의 우정,
그에게 한 송이의 꽃을 주기를 거부하던 캠, 그리고 램지의 모든자녀들, 그 자신의 안락하기 이를 데 없는 집, 그러나 아내가 죽은후로는 조금 지나치게 조용한 그의 집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물론 그에게는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말한 대로 램지는 ‘위선자적인 면이 약간 있다‘는 데 그녀가동의해주었으면 했다.
- P69

그 모든 것 가운데서 캔버스 위에 아무렇게나극적거려놓은 몇 개의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남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어디에 걸지도 않을 것이었다.
탠슬리 씨가 그녀의 귓전에서 "여자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여자는 책을 쓸 수 없어………"라고 작은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 P72

그는 타고나기를 일상사에 대해서는 장님이고, 귀머거리이며, 방어리이지만 특이한 일들에 대해서는 독수리의 눈과도 같이 예리한 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꽃들을 주목해 보는가? 아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은 주목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자기 딸들의 아름다움, 아니면 그의 접시에 푸딩이올라와 있는지 로스트 비프가 올라와 있는지는 아는가? 그는 그들과 식탁에 앉아 있을 때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소리 내어 중얼거리는 습관, 시를 소리 내어 암송하는 습관은 이제는 완전히 몸에 배어서 그녀는 겁이 날 정도였다. 때로는참으로 거북했기 때문에 - - P101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모임에서 그는 ‘램지 가에서의 체류‘를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가를 말해주고싶었다. 이들과 한번은 같이 있어볼 만하지만 다시는 아니라고말할 것이었다. 여자들이 그렇게 진부할 수가 없었노라고 그는 말할 작정이었다.  - P128

그녀가 알기로는 소위 행동규범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7조에(아마도) 이와 같은 경우에는 그녀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여자라면 마땅히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도와서 우쭐대고 싶은 간절한 그의 욕망과 허영심의 넓적다리뼈, 갈비뼈를 드러내고 편안해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 P129

"오오, 커피!" 램지 부인은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진짜 버터와깨끗한 우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그녀는 분발해서 대단히 힘주어 말했다. 열을 올리고 유창하게 말하면서 그녀는 영국 낙농업의 부정을 묘사했다. 다시 말해서 문간에 배달되는 우유의 열악한 상태, 그리고 그녀가 왜 이런 것들을 고발하려고 하는가를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갔을 때 중앙에앉아 있는 앤드루부터 시작해서 마치 가시금잔화의 잔디에서 잔디로 튀어오르는 불꽃처럼 그녀의 자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남편도 웃었다. 그래서 부인은 높이 들었던 깃발을 내리고포대砲臺를 철거하지 않을 수 없었고 - P145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내일은 비가 올 겁니다. 갈 수 없을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또 승리했기 때문에,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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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3-03 0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많이 읽으셨네요. 전 이제 시작 :)

바람돌이 2021-03-03 11:33   좋아요 2 | URL
초반 진입장벽있더라구요. ㅎㅎ 아 저는 어제 이 글 쓰고나서 2부를 마저 읽었는데(2부는 한 30페이지정도밖에 안됩니다.)폭풍감격이었습니다. 와 소설을 이렇게 쓰기도 하는구나 싶으면서 굉장히 신선하더라구요. ^^

수이 2021-03-03 11:3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오늘 휘리리릭 날아보겠습니다

라로 2021-03-03 01: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으시면서 계속 이런 글 올려주세요. 바람돌이님의 의식의 흐름,, 아주 좋은 걸요!! 앞으로 울프의 책 읽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1-03-03 11:34   좋아요 3 | URL
ㅎㅎ 그냥 읽으세요. 읽다보면 그렇게 어렵고 그렇진 않더라구요. 이런 기법의 책을 많이 읽으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현재로는 신선하다는게 더 큽니다. 100년도 더 전에 작가에게 신선하다니.... 제가 무지한거란게 맞겠찌만요. ㅎㅎ 그나저나 라로님 대문 사진이 또 신선하게 바뀌셧군요. ^^

레삭매냐 2021-03-0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독서 모임에 미쿡인 한 분이
계시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원어민들에게도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전 여적도 울프와의 만남
이 어렵게 느껴지네요. 그렇다고 합니다.

바람돌이 2021-03-06 13: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계속 미뤄왔는데 읽으니까 반하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