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위대한 사람 또는 그 비슷한 사람에 근접할 수 있다는 지적 허영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끊임없이 자신의 뛰어남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램지씨. 어쩌면 유아적인 감성에서 아직 못벗어난듯 보이는 가부장이다.
자신의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고 그와 그의 지인들과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보는것에 자신의 삶의 지향이 있다고 굳건히 믿으려하는 램지부인.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자신 스스로 뭔가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끊임없이 또 느닷없이 소설의 시점이 바뀌고, 각자의 생각들도 작은 계기에도 확확 바뀌어 나가는걸 그대로 보여주어서 소설 읽기가 쉽지 않다. 이게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것인가?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사사로운 여인이 아닐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와 같은 일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베푸는 자선은 자신의분노를 어느 정도는 삭여주었고, 자신의 호기심도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었으며, 지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그녀가 대단히 경탄해마지 않는 존재, 즉 거창하게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원이될 수 있었던 것이다.
- P19

바람의 방향이 자주 바뀌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그녀는 반문했다.
그녀가 하는 말의 이상한 비합리성, 여인들의 낮은 수준의 지력이 그의 화를 북돋았다. 그는 죽음의 골짜구니를 말을 타고 달렸고, 산산이 부서져서 오한에 떨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어처구니없게도 엄연한 사실들을 무시하고, 자식들로 하여금 어불성설의 상황을 희망하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돌계단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빌어먹을." 그는 내뱉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했길래? 내일 날씨가 좋을지도 모른다고 했을 뿐인데, 정말그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 P49

즉 가장 완벽한 관계도 결함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시험을 견뎌내지못한다는 사실, 즉 그녀의 남편을 사랑하면서 사실을 사실로 파악할 수 있는 본능을 지니고 그녀는 사실 쪽으로 몸을 돌린 것이다. 또한 자신의 무가치성을 명확하게 느끼고 괴로워할 때, 그리고 이 거짓말들과 이 과장들에 의하여 그녀의 고유한 기능을 방해받고 있을 때 — 바로 이런 순간에, 그녀가 그렇게나 득의양양했던 직후에 비참하게 초조해하고 있을 때, 카마이클 씨가 그의노란 슬리퍼를 신고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내면의 어떤 악마의 농간으로 그가 지나갈 때 다음과 같이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마이클 씨 들어가시는 건가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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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01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그 유명하다는 의식의 흐름 기법,,,아무튼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젤로 재밌다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려고 하는데 어느 세월에 읽게 될지,,,그러니 <등대로>는 뭐 말 할 필요가 없겠죠??^^;;;

바람돌이 2021-03-02 01:18   좋아요 0 | URL
저는 버지니아울프 책 처음인데 <등대로>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전집의 1권이었기 때문이라죠. ㅎㅎ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그냥 정신이 좀 사납다고 할까? ㅎㅎ 그나저나 댈러웨이 부인이 젤로 재밌다고요? 음 그럼 다음책은 델러웨이 부인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
 
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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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대목이 있었다.

방랑벽이 있던 아버지는 툭하면 집을 나가 방랑을 했는데 그것이 만주로 간다고 했던가라는 대목이나, 그 시대 여학교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만주로 떠났다는 대목이었다.(그게 무슨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니 안타깝다)

그순간 우리 국토가 대륙과 이어져 있던 시기에 살던 사람들의 공간 개념과 섬이 아니면서도 딱 섬이 되어버린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감각이 얼마나 다를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었다.

또한 그런 공간감각의 차이가 실제 세계와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이 책 <테라 인코그니타>를 읽으면서 예전의 저 생각이 다시 들었다.

길은 이어져 있고 그 길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물자와 생각들이 끊임없이 흘러갔을텐데, 1990년대 초반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기 이전의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섬처럼 단절되어 어디로도 갈 수없는 고립된자로 살았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인식에서 넓은 세계를 교류의 흐름속에서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조건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실상 역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놓치고 살았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말이다.

 

물론 그러한 오류가 우리 자신만의 지리적 입장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사 교과서는 선사시대가 끝나면 세계 4대문명부터 시작된다.

그 4대문명론에 대해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4대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세계를 활보할 때에 만들어졌다. 문명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달했고 나머지 지역은 미개하게살았다는 생각은 몇몇 선진국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우리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여럿 발견되고 있다. 터키 남부에서 발견된, 1만 5000년 전에 만들어진대형 신전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유적과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2만년 전의 토기가 대표적이다. - P22

 

4대문명을 배우다보면 마치 그 곳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문명이 없었던 것처럼 저절로 인식이 흘러간다.

그런데 이것이 제국주의시대와 함께 만들어졌다는데서 갑자기 아!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결국 우리 자신에게 주어졌던 공간적 한계와 제국주의국가들에 의해 편협하게 그어졌던 인위적 경계가 우리의 역사인식을 국가 영토내로 한정하거나, 세계사적 인식에 있어서도 국가별 지역별 인식으로 한정해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교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의 한계를 가지게 되는데 교류를 끊임없는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절된 행위의 반복으로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이런 역사인식의 문제는 무엇일까?

국가별 지역별로 동떨어져서 인식하는 역사인식에서는 불가피하게 나와 타자라는 구별이 먼저 전제되게 된다.

나 이외의 것은 타자가 되고 그 타자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테라 인코그니타(미지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교류와 흐름과 영향이 먼저가 아니라 나와 타자의 구별이 먼저 전제되면 거기서부터 나라는 주체에 대한 과도한 선긋기와 집착이 시작되겠구나싶다.

나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긍지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 아무 문제없는 절대명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많은 경우 타자에 대한 배제로 흘러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나와 타자 사이의 선긋기가 전제되는 역사를 우리는 계속 배우고 익혀온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이상할 정도로 심각하게 왜곡되어 나타나는 인종차별, 난민문제에 대한 히스테릭한 반응의 원인이 물론 하나는 아니지만 이런 우리의 역사인식의 한계가 중요한 원인일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와 함께 여태까지 변방으로 여겨졌던 만주와 시베리아와 남미대륙의 역사를 종횡무진 달리면서 우리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독서였다.

또한 민족의 틀에 갇혀있는 역사교육을 교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역시 내게는 중요한 시사점이었다.

누가 뭐라고 한계를 짓든 실제 역사는 무수히 많은 교류의 흐름속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가 그 흐름을 파악하면서 배워야 하는 것은 결국 배제가 아니라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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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3-01 08: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독립항쟁 당시 주역들은 기차를 타고 만주, 시베리아 등을 자유롭게 갈 수 있었고,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까지 구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의 인식은 마치 고구려 멸망 후 남북국 시대의 신라처럼 대륙의 기상을 잃어버린 면이 있다 여겨져서 안타깝습니다...

바람돌이 2021-03-02 01:21   좋아요 2 | URL
대륙의 기상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요. 단지 단절된 공간인식이 우리 역사학계의 민족주의적 편향을 계속 강화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극복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

scott 2021-03-01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 바퀴 언어‘ 라는 책에서도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속에 선사시대 문명의 흔적이 녹아 있다고 했는데 터키에서 발굴된 유적에서 동아시아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듯이 민족의 틀넘어 문명 인류사 전체 폭넓은 시각의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바람돌이 2021-03-02 01:23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근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먼저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이 그런 역사의식을 가지고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제작해야 하고요. 근데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는데 문명 인류사적 시각으로 역사교육 내용을 재편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어요. ㅠ.ㅠ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교육하겠다고 항상 얘기하는데 왜 항상 실패하겠어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학에도 없고 일선 학교에도 없기 때문인걸요. ㅠ.ㅠ

희선 2021-03-02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예전에는 꽤 길게 이어졌는데... 실크로드는 신라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던데... 아주 옛날부터 다른 나라 사람이 오기도 했는데, 그런 게 끊기고 말았네요 지금은 하늘로 간다지만, 코로나19가 막았네요 가끔 한국 사람인데 혼혈처럼 보이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 보면 오래전 조상에 다른 나라 사람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단일민족이라고 배우는데 그건 아닌 듯해요 그것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역사는 한 나라만 알아서는 안 되더군요 그런 거 알아도 알려고 하지는 않는... 바람돌이 님 글을 보고 그렇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3-03 11: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단일민족신화가 최근에 와서는 더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아요. 요즘 학교 교과서에서는 단일민족 어쩌구 하는 내용은 다 사라졌어요. 하지만 예전에 학교 다니신 분들은 아직도 저 신화를 맹신하는 분들 많죠. 근데 그게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용도로 휘둘러져서 더 걱정이에요. 어제 동두천에 외국인 노동자들 집단 감염 일어났는데 그것도 걱정이지만 또 사람들이 그들을 인간적으로 비하하고 욕하고 할게 더 걱정됩니다. 국수적 민족주의 인종주의가 코로다보다 더 무서워요.

하양물감 2021-03-02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라는 것이 거의 다 그러한 것 같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기록!!! 자기중심적 사고...

바람돌이 2021-03-03 11:39   좋아요 1 | URL
그런 기록들 중에서도 그래도 아닌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

감은빛 2021-03-02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께서 인용하신 내용과 글에 쓰신 내용들 대부분에 동의합니다.
역사를 어떻게,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 그 관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 보일 수 있지요.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기존 역사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 중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소위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판타지의 영역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염려스럽고 안타깝습니다.

바람돌이 2021-03-03 11:41   좋아요 0 | URL
환단고기류의 판타지는 언제나 있어왔잖아요. 요즘은 조금 더 세련돼 졌더라구요. 훨씬 더라고 할까?
어쨋든 저런 환타지 역사에 대한 위험도 항상 생각해야 할 듯요.
 
전쟁교본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레삭매냐님 글에서 보고 어 이런책도 있어? 하면서 찾아보니 절판!

다행히 중고로 나온게 있어 잽싸게 주문했다.

 

브레히트가 잡지나 신문의 사진들을 오리고 붙여 그 아래에 4행의 시를 써서 만든 책이다.

브레히트 특유의 촌철살인 문장으로 빛나는 이 책은 사진이 보여주는 표면이 아니라 그것이 말하고 있는 본질을 꿰뚫고있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책은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할 당시의 사진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

전쟁교본이라는 제목으로 전쟁의 본질과 그 폭력성을 고발하는 이 책이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아니라 1933년 히틀러가 말로써 독일의 총리가 되었던 그 순간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히틀러를 총리로 만들고 나치당을 제1당으로 만들면서 일당독재의 서막을 연것이 무솔리니나 프랑코처럼 쿠데타가 아니라 선거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히틀러의 연설에 열광했던 독일인들 전체에 결국 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사진에 붙은 아래의 4행시처럼 파멸로 향하는 그 길을, 자신들의 영광의 길이라 착각하면서.....

 

잠결에 이미 그곳을 달려본 자처럼,

나는 알고 있다. 운명에 의해 선택된

파멸로 향하는 좁다란 그 길을,

나는 잠 속에서도 그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대들이여, 함께 가지 않겠는가? - 사진 1

 

 

 

 

 브레히트의 비판은 전방위적이다.

전쟁이 일어나는데 히틀러와 나치세력의 주도성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들만의 힘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자주 간과하고 그들의 뒤에 슬쩍 숨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말할거나 그저 나는 동원된 힘없는 일개 병사, 노동자, 공무원, 시민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말이다.

하지만 브레히트의 시는 누구도 빗겨가지 않는다.

폭탄을 떨어뜨리고 명중한 것에 환호하는 병사들에게도, 무기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마지막 연민과 희망을 놓지 않는 것 역시 브레히트의 시가 보여주는 강인함이며 아름다움이다.

 

 

독일군이 휩쓸고 간 소련의 한 마을에 당도한 연합군이 아이들을 안고 환하게 웃는 이 사진에서 브레히트는

전쟁 이후 적이 아니라 서로 웃고 환호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평화의 세상이 오리라는 굳건한 믿음이 아니라면 이런 글을 남길 수 있을까?

브레히트의 시가 가지는 진정한 힘은 이렇게 강력한 휴머니즘에의 믿음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팔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팔로는 총을 들고서

더 나은 삶을 향해 이 삶을 무릅쓰는구나

나 기원하노니 이 피투성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우리 민족의 아이들도 너희를 둘러싸고 환호하게 되기를.  - 사진 62

 

 

 

 

 

공습이 일어날 때마다 지하 방공호로 피난해야 하는 런던 거리에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어린 아이들이 피난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본주의의 불평등이라는 것을 단 한장의 사진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더 보기도 하고 덜 보기도 하며, 제대로 본질을 포착하기도 하고, 겉만 훓거나 잘못보기도 한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브레히트의 대답이 여기 있다.

이 책을 펴내고 난 뒤에 이 책이 모든 도서관과 학교에 비치되기를 소망했다는 브레히트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도 이 책속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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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3-02 0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에 다른 곳에서 이 책 이야기 봤을 때는 몰랐는데, 브레히트 시인이군요 다 아는 건 아니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가 하는 시 쓴 사람... 전쟁은 히틀러 혼자 일으킨 게 아니겠지요 그 뒤에는 히틀러가 한 말에 따른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때 독일이 안 좋았는데 히틀러가 살기 좋게 해줬다는 말이 있던데... 사람은 자신이 먹고 사는 걸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에도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란 사람 있고, 나라가 그 나라 사람을 속이기도 했더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3-03 11:43   좋아요 2 | URL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제일 유명하죠? 제가 브레히트를 처음 알았을 때는 책을 찾기도 힘들었고, 금서였어요. ㅎㅎ 오랫만에 브레히트의 그 날카로운 언어를 만나는건 여전히 좋더라구요.
 

 

 

 

 

 

 

 

 

 

 

 

 

 

 

브레히트는 평화교본을 계획했지만 갑자기 죽음으로써 이 한편의 평화교본만 남겼단다.

하지만 이 한편만으로도 충분하다.

더 이상의 무슨 메세지가 필요할까?

3.1절을 맞아 어떻게 평화가 가능한지도 한번 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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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 국경분쟁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소련은 중국 유물이중국인들이 여기에 살았다는 근거로 쓰여 자칫 영토분쟁의 빌미가 될까봐 이볼가 성터를 흉노에 잡혀온 ‘중국인들의 포로수용소라는 공식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2011년 내가 일본과 몽골에서 흉노 성터 연구를 발표하자 한 일본인 노학자는 그 내막을 듣고서자신은 이제까지 이볼가 성터를 포로수용소로 알고 있었다며 허탈해했다. 국가 간 학문적 교류가 전무하던 시절의 해프닝이다.
이볼가 성터 발굴 이후 부랴트공화국과 몽골의 성지 곳곳에서는옥저 계통의 온돌을 설치한 주거지가 속속 발견되었다. 흉노가 살던 추운 북방 초원에서 옥저의 온돌은 꽤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 P159

모든 나라들은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신라도 국력을 강화하면서 부여계와는 다른 그들만의 선민의식이 필요했다. 이에 진한 시기부터 이어져왔던북방과의 교류를 전면에 내세워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했다. 신라가 흉노를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유라시아 초원은 흉노의 영향을 받은 유목민들이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세력을 키웠다.  - P174

무덤의 생김새만으로 기원을 찾으려 하는 것도, 신라인이 우연히 똑같은 고분을 만들었다고 우기는 것도 둘 다 의미 없다. 신라인들이 유라시아의 적석목곽분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경주에서재창조했다고 보는 게 맞는다. 1500년을 변함없이 그 자리에 단단히 지키고 있는 거대한 돌무더기는 유라시아의 기술을 신라의 것으로 바꾼, 신라인들의 지혜가 집약된 산물이다.
- P180

흉노의 영향을 받아 왕족들이 편두를 하는 나라들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금관이나 금동관을 쓴다는 점이다. 신라와 가야의 금관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신라의 금관과 유사한유물이 발견된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아 테페(Tilla Tepe)에서도 편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흑해 연안에 살며 금관을 썼던 사르마트인(Sarmat)들도 편두를 했다.
- P222

그 배경에는 20세기 초반에 서양에서 유행한 우생학과 인종주의가 있다. 그들은 순수한‘ 유럽인을 찾아야 했다. 열등한 타민족과 섞이지 않은 고대의 우월한 사람들이 신아 지역에 모여 있다고생각했고, 서구의 인류학자들은 경쟁적으로 파미르고원과 티베트고원을 탐사했다.  - P241

유목민들은 다른 부족들을 정복할 때에 반드시 적의 무덤을 파괴하고 도굴했다. 전쟁에서 이겨도 정복해야 할 도시나 요새가 없기 때문에 유목민들이 모이는 장소인 조상들의 무덤을 파괴했던것이다. 무덤 속에서 황금 유물이 나오면 전리품으로 나누어가졌다. 그 과정에서 황금 유물들이 사방으로 전해지며 잘못된 황금의나라 전설을 부추겼다. 그렇게 수천년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했던 황금의 나라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다.
- P258

수많은 핸디캡을 딛고 그가 마야 문자 해독에 성공할 수 있었던이유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차별 없이 보고, 인류의 보편성에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에 서양의 수많은 학자들은 크노로조프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연구하면서 새롭게 발굴된마야 문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야의 언어도 발전할수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반면 크노로조프의 천재성은 마야의 문자가 세상의 다른 글자와 마찬가지로 수백년간발달해왔다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한 데 있었다.  - P274

어용학자를 바라보는 서양의 관점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예를들면 지금까지도 서양에서는 학문 연구에 있어 나치에 부역했던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며, 그들의 이름은오로지 비판을 위해서만 인용된다. 이러한 냉정한 평가는 그 사람들의 개인적 능력이나 성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제국주의 고고학의 폐해는 그들이 성격 파탄자거나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을 암묵적으로 따라가는 연구 경향이 결국 수천만명을 고통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 P296

 일제는 이 용어를 한반도에 도입하면서 한국인은 제대로 된청동기나 철기를 쓰지 못한 열등한 민족이라는 의미로 곡해해서사용했다. 쉽게 말하면, 석기 - 청동기 철기로 이어지는 발전 단계없이, 한반도의 바닷가에는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시대문화에 머문 사람들이, 내륙의 산과 평야에는 청동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장식용으로 일부 사용한 민무늬토기 문화에 머문 사람들이 문명을 이루지 못한 채 동시에 살았다는 뜻이 된다. 석기시대에 뜬금없이 중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철과 청동을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금석병용기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 P297

정작 일본의 현지인은 미개하다고 치부하고 ‘위대한 일본인‘ 조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일부 우리가 가진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최근까지 한국에서도 북방 유라시아는원래 우리의 영토‘였다며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 떠도는데, 그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가 주장하던 침략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고대에 사람들이 교류하고 공존했던 사실을 현대 국가의 영토로 치환시켜 논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한국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일본 군국주의의 논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일 뿐이다. - P298

1980년대 이후 개혁개방을 앞세운 중국의 정책과 함께 훙산문화는 그 의미가 변질되었다. 각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구계유형론은 한족 중심의 중국 문명을 강조하는 다원일체론(多元一體論)으로 바뀌었다. 다원일체론은 마치 여러 지류의 물길이 하나의 큰 강으로 합쳐지듯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문명이 중화 문명이라고 하는 큰 문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다원일체론이 계냥하는 지역은 주로 티베트, 신장, 몽골, 만주와 같이 최근에 중국의 영토에 편입된 곳들이다. - P319

이후 다원일체론에 포함되는 지역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양쯔강 유역의 량주문화에서도 옥기가 발견되면서 다원일체론에 추가되었고, 2010년대 이후에는 백두산 일대도 ‘장백산문화론‘이라 불리며 중국의 문명 재편 과정에 포함되었다. 중국의 이런 역사 만들기는 훙산문화의 재발견에서 출발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촉발된 홍산문화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이 지금은 반대로 중국의 팽창주의적 역사관을 여는 단초가 된 셈이다.
- P321

터키가 세계적인 그리스와 근동 문명을 마다하고 굳이 머나먼알타이,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기원을 찾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오스만튀르크가 멸망하고 지금의 터키가 들어선 사건이다. 신생국가 터키는 강력한 서구화 정책을 취하는 한편 머나먼 미지의 땅에 자신의 고향을 둠으로써 터키의 정체성이 서양으로 휩쓸리지 않도록하는 양면 정책을 실시했다.
머나먼 극동 지역의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며 아낌없는 호감을 표시하는 것은 현대 유럽의 일부로 살면서도 정체성은 아시아에 두는, 그들의 이중적인 역사인식의 발로인 셈이다. 유라시아동편에 자신의 기원을 둔 터키의 사례는 미지의 땅에 대한 동경과고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이 현실의 치열한 일부분임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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