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읽기 수업 나의 첫 수업 시리즈
박균호 지음 / 다른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보면서 굉장히 인상깊었던 대목이 있었다.

 

엘릭스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과 올더서 헉슬리를 읽었다.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도식화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우리는 '벨탄샤웅'이니 '슈투름 운트 드랑'이니 하는 용어를 즐겨 썼고,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상상력의 첫번째 의무는 위반하는 것이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확언했다.......그래서 콜린의 어머니는 내가 당신 아들의 '어둠의 천사'라고 여겼고,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공산당 선언>을 읽는게 엘릭스 탓이라고 했고, 엘릭스의 부모는 콜린이 미국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을 읽는다고 콜린의 부모에게 일러바쳤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솔직히 시시껄렁한 그냥 흔한 영국의 고등학생들이다.

이들이 무슨 특별한 엘리트 학교(우리로 치면 각종 국제고나 자사고들)를 다니는 아이들이 아니란 얘기다.

나머지 이들의 대화를 보면 우리 나라 고등학교 애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들은 허세를 정말 제대로 부릴 수 있는 아이들이다.(청소년기의 독서는 원래 허세로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철학과 고전으로 허세를 부리는 고등학생?

너무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의 이 대목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 고등학교 아이들 중에서 철학이나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저렇게 낄낄거리고 얘기하면서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나의 독서 허세를 받아줄만한 친구를 주변에서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지금도 전교에 한두명쯤 있을까?

특정 분야에 덕후들은 제법 있지만 철학책을 읽고 질문하는 아이는 여태까지 딱 1명 만났다. 작년에.....

(너무 반가웠다. 특히나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줘서 속으로 무척이나 고마웠다. ^^)

 

영국이나 유럽의 교육은 저런 철학이나 인문학,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저렇게 막막 농담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걸까?

유럽의 대학입시 자격시험을 생각하면 그럴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저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독서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늘 이야기되고 새로운 방법들이 시도되고 하지만, 결국 입시와 부딪히면 다 부질없는 게 되어버리고 마는 우리 현실속에서도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입시교육의 아성은 너무도 단단하여 무너지기 힘들지만 그것이 무너져야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틀린 말이다.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과 그 구조의 틈을 벌리기 위한 작은 노력들은 같이 가야 한다는것이다.

 

청소년이 어떻게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를 제시하려면 일단 힘을 빼야 한다.

고전이라는 말이 주는 어렵고 심각하다는 느낌을 빼야 한다.

생각해보자. 안 그래도 어깨힘 빡 주고 큰 결심해야 고전이라걸 읽어볼까 싶은데 그 고전을 소개하는 책조차 무겁고 엄숙하다면 지레 겁먹는게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힘 빼고 읽어도 된다.

 

고전에는 이렇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그 통찰이 당대 사회의 모습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미래사회를 예견하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인간은 행복과 자유를 추구했고 선과악을 품고 있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항해사들의 모습이 요즈음 직장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그러한 인간의 모습은 먼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P5

 

 

인용문에서 앞의 말들이 심각하지만 뒤의 예는 살짝 힘을 빼준다.

야 너희들이 직장 다니면 그냥 노예처럼 일하게 되는거야. 아빠 엄마 봐. 직장의 노예처럼 살고 있잖아. 뭐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실제 본문에서는 이런 고전에 대한 힘주기와 힘빼기가 적절히 뒤섞여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고전을 읽음으로서 느낄 수 있는 허세의 기쁨과 평범한 나의 삶과의 연결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친근함을 적절하게 섞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어떤 책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배신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함정이 있지만.... 예를 들면 장 그르니에의 섬이나 루소의 에밀, 다윈의 종의기원, 아 이런 책은 고전이 재밌다고 했던 작가를 향해 돌을 던지고 싶어질지도..... ^^)

 

이런 고전과 삶의 연결의 예들을 들어보자.

<레 미제라블>을 통해 빈곤을 대하는 태도와 난민 문제의 연결, 안톤 체호프의 단편 <내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계속된 논쟁거리 중 하나인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에 대해 묻는 식의 사회문제와의 연결이 1부에서 진행된다.

2부에서는 자연과의 공존을 묻는데 장 그르니에의 <섬>의 에피소드 한꼭지와 유기동물 안락사 문제를 연결시키고, <종의 기원>을 동물 복지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은걸 생각해보면 이런 꼭지를 읽으면 저 책들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3부와 4부에서 역시 다양한 고전들과 다양한 삶의 양태들을 연결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모든 연결이 완전히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오셀로>에서 주인공 오셀로의 부인과 스마트폰을 필요불가결하다는 점 하나로 연결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의 심오함을 가르쳐주려는 책이 아니라 청소년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고전에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종의 실용서다.

따라서 힘빼기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책이 가볍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힘빼기를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이 고전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지 않겠나말이다.

그래야 좋은지 안좋은지를 알지.....

요즘 책하고는 담쌓기 하고 있는 우리집 큰 딸에게 슬며시 이 책을 밀어넣어 본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2-15 0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1-02-1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스 저 책 읽은 거 같은데 왜 어째서 기억에 없을까요 🤔 따님에게 추천하신다니 제가 먼저 읽고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1-02-16 00:27   좋아요 0 | URL
그런 책이 한두권이 아닙니다. 저 책은 오래 전에 읽었는데 저 대목이 저에게는 너무 강렬했어요. 저 대목 찾는다고 책을 다시 뒤적였는데 내가 읽은 책인지도 가물가물하더군요. ㅎㅎ

stella.K 2021-02-15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균호님 팬이 되가시는 것 같습니다.ㅎㅎ

바람돌이 2021-02-16 00:28   좋아요 0 | URL
좋은 작가의 팬은 행복의 한 방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전 점점 행복해지는거 같아요. ㅎㅎ

초딩 2021-02-1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주 좋은 예 같습니다.
생각의 탄생처럼
고전을 읽다 각 고전이 연결되어 통찰이 생기고 이 것이 지식을 습득하는 아이들에게 내면의 눈을 뜨게 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1-02-16 00:29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고전까지는 아니라도 책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참 어렵네요.

cyrus 2021-02-15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분야는 달랐어도 독서를 좋아했던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한국사와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어요. 그때는 판타지 소설을 왜 읽느냐고 구박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저 재미있어서 보는 거라고 대답하면서 웃고 넘어가더라고요. 도서관에 같이 가면 저를 위해서 자기 회원증 카드로 책 몇 권 빌려줄 정도로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석도 저랑 비슷한 덕후 기질이 있었을 같은데, 대학교에 다닌 이후부터 연락이 끊어졌어요. 만약 그 친구가 지금도 독서를 좋아하고, 저랑 계속 연락하면서 만나고 있다면,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궁금해요. 그 녀석이 제가 서평을 쓰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궁금하고요.

바람돌이 2021-02-16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 친구분은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읽는 책의 범위는 더 깊어지고 넓어졌을 테고요. cyrus님이 그러듯 가끔 cyrus님을 떠올리며 그 친구는 지금 뭘 읽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
 

이 책에서 나는 내가 관심을 둔 건축물과 도시 공간을 현대건축에서 주요한 다섯 가지 논점으로 구분했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건축, 현상학Phenomenology 으로 대표되는 지각과 체험의 공간, 새로운 유형의 구조주의적structuralism 네트워크로서의 건축 공간, 자연을 모방한 바이오미미크리 Biomiomicry 와 복잡계 이론에 기초한 건축, 스케일 Scale에 따라 건축에서부터 시작해 도시와 사람의 삶으로 확장되면서 다른곳과 차이가 나는 독특한 도시 여행이 그것이다.  - P7

건축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탄생시키는 것이다.........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보려는 건축가의 고민 자체가 건축설계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다. 미술관을 설계할 때는 미술관의사회적 역할을 찾고, 공동주택을 설계할 때는 주거에 관해 연구하면서 현재 사회의 상황과 문제점들을 찾게 된다. 바로 그것이 건축가라는 직업의 장점이다. 자칫 얕고 넓은 지식으로 현학적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인 양 보이기도 한다. 건축가에게는 잡학의 지식보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 P9

미셸 푸코는 이것을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르면서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일상의 장소들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고 새롭게 환기시키는 장소, 즉 실제로 위치를 갖지만 모든장소의 바깥에 있는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라고 정의한다.
- P16

현대사회의 도시와 건축은 나무와 돌과 벽돌과 유리를 가지고 바닥과 기둥과 지붕을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사회와 자연현상을 면밀하고 섬세하게 관찰하여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정립해서 새로운 인공의 대지와 건축물을 만들고 그 결과로 자연인지건축물인지 알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결국 현대 건축물은 지금까지 없었던 다양한 헤테로토피아를 만들고 사회에 드러내어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를 환기하고 고민하게 하는 작업일것이다.
- P17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구조와 공간보다는 기둥과 기둥의 배열 그리고 높이 솟은 수직성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야 시민들을 설득하고 통치했을 것이다. 건축은 교묘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어느 시대에는 어느 공간에는 작동하고그 힘은 건축물로 시각화된다. 도시의 언덕 아크로폴리스에 올라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파르테논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가족을 생각하다.

 

소라와 나나와 나기 - 합쳐서 그냥 소나기라 부르면 좋겠다.

집 하나를 반으로 나눠 놓은 셋방에 소라와 나나 자매가 살고, 나머지 반에 나기와 나기의 엄마가 산다.

그냥 어느 순간 이들은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너무 흔한 이야기라 통속적이다.

소라와 나나의 아버지는 공장의 기계에 휘말려 죽었고, 나기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다가 시장 한가운데서 그냥 쓰러져 죽었다.

엄마는 나기의 엄마 순자씨가 있다.

"새끼를 먹여본 손맛, 그런 연륜"(43쪽)을 가진 엄마.

소라와 나나의 엄마 애자씨는 가족이 아니다.

사랑이 넘쳐 애자씨는 소라와 나나의 아빠가 죽은 이후 계속 혼자만의 세계에서 아빠와 산다.

이들은 곧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나나의 아기

그러면 이들은 아기, 할머니, 엄마, 이모, 삼촌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될 것이다.

아기의 아빠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가족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므로.....

가족은 혈연이 이어졌다고 되는게 아니다.

어린 시절 무서운 것을 본 순간 소라가 나나의 손을 잡고 허겁지겁 가던 그 길에 가족이 있다.

혼자 아이를 기르려는 나나에게 순간이나마 폭력을 행사하는 아기의 아빠에게 달려드는 소라의 주먹에 가족이 있다.

위로 받고 싶은 순간에 그녀들 만을 위한 스페셜 메뉴를 만들어주고 공간을 내어주는 나기의 식당에 가족이 있다.

그러니 남들이 뭐라든 이들은 가족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2. 사랑을 생각하다.

 

사랑이 로맨스 소설처럼 낭만적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늘 구질구질함과 오해와 엇갈림을 동반한다.

 

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 P12

 

그래서 소라는 애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기도 하는거지.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라고 하는 그 지점에 소라는 늘 머물러있다.

그래서 소라는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관심과 배려를 보이는 가족에게 머물러있다.

아기를 만들었으면 무조건 결혼해야 하는걸까?

모세가 주었던 한순간의 위로가 사랑은 아니었음을, 그가 생각하는 결혼에 이르는 당연한 순서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160쪽)

그런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가 사랑은 아님을 나나는 잊지 않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랑의 대상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기의 사랑이 있구나.

부러져 텅비어버린 이빨 하나만큼의 공간만 남긴 나기의 사랑.

단 한줄의 소식 - 잘 지낸다든지 아니면 죽었다든지 -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랑.

모든 사랑이 구질구질하고 안타깝고.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얘기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3.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다.

 

산다는 것은 김장을 담기 전에 묵은 김치를 몽땅 꺼내 만두를 만드는 그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묵은 것을 갈무리해야 하는 것. 그것이 만두든 감정이든 관계든

양이 너무 많아 냉장고에 다 넣지도 못한 만두를 상할지도 모르지만 밖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때로는 모른 척 버릴 수 밖에 없는 감정이나 관계들도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함께 만두를 빚으며 그 맛을 상상하고, 함께 하나의 일을 나눠하는 그 순간이 있어 삶은 계속될 수 있는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함께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티나무 2021-02-14 04: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좋았어요.^^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바람돌이 2021-02-14 23:41   좋아요 0 | URL
전 황정은 작가의 소설은 다 좋아요. ^^

초딩 2021-02-14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은 달걀이 아니고 만두군요!
함께 빚으면 역시 즐거운 것 같아요.
이제 동년배들과도 좀 빚으야겠다 생각합니다 :-)

바람돌이 2021-02-14 23:43   좋아요 1 | URL
이 소설에서는 사회적 통념상 평범함에서 멀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저 만두빚기로 상징되는 것 같아요. 어떤 형태든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힘이 되는거겠죠? ^^
 
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 실낙원

 

 

책의 표지에 실낙원의 저 강렬한 문구가 이 책의 모든 주제를 대변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의 절규 역시 저 문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모든 인류가 나를 피하고 증오하지 않는가? 내 창조주인 당신도 나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승리의 기쁨에 젖으려 한다. 그걸 기억하라. 그리고 인간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간을 동정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당신은 나를 저 얼음의 갈라진 틈새로 거꾸로 떨어뜨리고 당신의 작품인 내 육신을 파괴하더라도, 그걸 살인이라 부르지 않겠지. 인간이 나를 경멸로 대하는데 내가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가? -194p

 

 

이 소설 전체는 제1권~제3권(흔한 분류로 하자면 제1부, 2부, 3부가 더 맞겠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권의 수준이 고르지 않다.

제1권은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창조하고 그 추악한 외모에 경악하여 너무도 쉽게 버리고 마는 과정이 전개 된다.

제2권은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버린 괴물을 드디어 만나 그의 범죄를 추궁하고 분노하자, 괴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반박하는 과정이다.

제 3권은 괴물의 복수와 그 괴물을 죽이고자 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여정이 펼쳐진다.

 

솔직하게 말하건대 제1권을 읽으면서는 아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고민했고, 제 3권에서는 피식거리면서 읽었다.

중간에 제2권이 없었다면 아만도 나는 중도에 이 책을 포기했을 것이다.

괴물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이상화되었으며, 그들의 행동도 따지고보면 세상물정모르고 별 생각없는 젊은이 그 자체라고나 할까?

심지어 나이든 인물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너무나 평면적인 인물들이라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치 연극무대에 올라가 주어진 대본대로만 대사를 읊는 배우들같다. 그것도 딱히 매력없는.....

작가인 매리 셀리가 19살에 이 소설을 썼다는데 물론 나이에 비해 굉장히 잘 썼다고 해줄 수 있지만, 고전이란게 청소년문학상은 아니지 않는가?

200년이나 뒤의 내가 무슨 청소년 문학상 심사위원도 아니고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2권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괴물의 회고와 주장으로 이루어진 제2권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며, 작가가 하고싶었던 말을 모두 여기에 쏟아붓지 않았나 싶다.

 

괴물이라는 존재는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괴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는 밀턴의 실낙원의 저 외침처럼 탄생을 갈구한 적이 없다.

그저 젊은 한 과학자의 무모한 호기심으로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창조주가 자신의 잣대로 외모가 추악하다 하여 생명을 얻자마자 버려진다.

괴물은 자신이 왜 창조되고 왜 버려졌는지, 그토록 도와주고 싶어하고 다가가고 싶어하는 자신의 선의를 왜 인간들이 그토록 경악하며 자신을 배제하는지 이해할 수 없이 끊임없이 거부당한다.

괴물이 배제당하지 않는 방법은 아무도 없는 어딘가의 숲이나 사막이나 빙하속에서 홀로 외롭고도 고독하게 살다가 죽는 것 밖에 없다.

완벽할 정도의 철저한 배제다.

이런 배제의 대상을 과거나 현재의 사회에서 찾는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특히 괴물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주목해보면 소설 속 괴물이 당대 사회에서 실제 억압받던 다양한 존재에 대한 메타포로 읽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하게 된다.

매리 셀리가 살았던 19세기를 생각하면 먼저 여성을 생각할 수 있다.

여성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어떤 정치적 사회적 권리에서도 배제 당한 채 남성의 부속물로서만 존재를 인정받던 시절의 여성은 저 괴물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와 같은 대우를 받는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매리 셀리 역시 19세기 여성을 괴물에 비유했으리라는 짐작을 강하게 하게 된다.

그 이유를 더 짙게 하는건 이 책의 출간 당시 1818년판 서문을 그의 남편이 썼다는 것이다.

서문을 보면 남편은 자신이 이 책을 쓴 것처럼 쓰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출간 당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은 매리 셀리처럼 똑똑하고 도전적이었던 여성으로서는 굴욕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배제된 여성의 괴물의 은유를 통한 절규로 이 소설을 읽는다면 지나친 것일까?

 

고전이 고전인것은 그것이 현대에서도 그 층위를 달리하며 새롭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일게다.

지금에 이르면 괴물은 누구일까?

가난한 사람들, 실업자들, 난민들, 여성들 무엇으로 대치해도 저 괴물의 절규를 같이 같이 내뱉고싶을 것이다.

 

 

제2권과 나머지 부분의 소설적 완성도의 차이가 왜이렇게 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해보게 된다.

200년 전의 매리 셀리에게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작가인 매리 셀리는 괴물의 배제가 얼마나 부당한지 얘기하고 싶었고 그것을 제2권에서 충분히 풀어놓았지만, 그러한 관점이 당대 사회의 분위기, 도덕관에서 수용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본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른 수용될 수 있는 이야기 속에 슬쩍 끼워넣는 트릭?

나의 지나친 상상일수도 있지만 각 권의 수준차이가 너무 나는 것을 이 외에 무엇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러하다면 메리 셀리는 나이에 비해서 정말 지나치게 명민하다.

나이에 비해서 지나치게 굴곡진 삶을 일찍 겪었던데서 나온 명민함일까라고 생각하면 또 그녀의 생애가 안스럽기도 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1-02-14 02: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청했으나까
이 책의 처음에 있는 실낙원의 저 문장이 얼마나 가슴을 팠던지 ㅜㅜ
그녀의 삶이 이런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어냈고 실낙원의 그 말은 그녀의 절규 같았어요 ㅜㅜ

바람돌이 2021-02-14 03:02   좋아요 5 | URL
맞아요. 실낙원의 저 문장 굉장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죠? ㅎㅎ 매리 셀리의 삶을 보면 아마 당대에서 온갖 비난에 시달렸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그녀를 더 힘들게 한건 그 비난들이 똑같이 남편의 몫까지 같이 덤태기를 쓴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붕붕툐툐 2021-02-14 0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청소년문학상~ㅋㅋㅋㅋㅋㅋ 저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 아니고 박사 이름이라는 거에 충격 먹고 읽었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던 기억이 나네용~ 다시 페이퍼로 만나니 반가워요~ 전 괴물에 너무 감정이입 해가지고 평가는 1도 못했어요~ㅎㅎㅎ

바람돌이 2021-02-14 23:45   좋아요 0 | URL
저도 괴물에 감정이입했습니다. 이거 읽으면서는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생각이 많이 났는데 같은 주제를 훨씬 깊이있게 다뤘구나 했어요. 혹시 안 읽으셧다면 저는 다섯째 아이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막시무스 2021-02-14 0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추천이 정말 많네요! 어릴적 문고판 읽은거 같은데 기억은 가물거리고.ㅠ 올 해 꼭 한번 정독해 보겠습니다!ㅎ

바람돌이 2021-02-14 23:47   좋아요 0 | URL
책장은 잘 넘어가요. 제 추천은 오로지 2장에만 있습니다. ^^ 이 책의 1장, 3장을 정말 심도있게 잘 표현한 책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작품을 확 갖다 붙이고 싶어요. ㅎㅎ
 

고전에는 이렇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그 통찰이 당대 사회의 모습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미래사회를 예견하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인간은 행복과 자유를 추구했고 선과악을 품고 있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노예처럼 일하는항해사들의 모습이 요즈음 직장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그러한 인간의 모습은 먼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P5

경제 규모가 크다고 해서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이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난민 수용에 앞서 우리 사회는몇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난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미리엘 신부가 장 발장을 ‘형제‘라고 부른 것처럼 편견과 배척의시선을 거두고 난민을 새로운 형태의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 미리엘신부처럼 한없는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장발장을 매정하게 내쫓은 식당과 여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P22

《모비 딕》은 1851년 발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안동 김씨가 세도 정치를 이어 가고, 개혁 운동에 앞장선 김옥균이 태어난 해다. 그시기에 쓴 소설에 허먼 멜빌은 21세기 현대인의 고민과 문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교도에 대한 관용, 자연에 대한 경외심, 음식 제국주의, 종교의 부작용과 대처 방법 등이 바로 이 19세기 작품에 그려져있다. 마치 21세기에 쓴 소설이 아닌가 할 정도다. 당시 서양에 만연했던 인종 차별이나 종교의 부작용을 비판한 내용이라는 평가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이 작품의 놀라운 힘은 그 비판이 19 세기만이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 P28

과거의 인류는 건축물에 모든 것을 담았다. 인간의 기억력에는한계가 있으니 후세에 전해야 할 정신적 유산을 모두 건축물에 담아길이길이 간직하도록 했다. 유사 이래 15세기까지, 즉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인류는 당대의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을 건축에 쏟아부었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노트르담 대성당 등 위대한 건축물은모두 민중이 그 시대의 삶과 정신을 표현한 한 권의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서 그 자체였다.
- P59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사정은 바뀌었다. 돌로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더미 같은 돌과 나무, 수만 명의 인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길게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활자를 만들어 종이에 인쇄하기만 하면 되는 인쇄술을 이길 수가없었다. 중세 건축물 ‘덕후‘인 위고로서는 인쇄술에 밀려나는 건축에대한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그토록파리 건축을 예찬한 것도 그러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 P60

《걸리버 여행기》는 1726년 출간되자마자 초판 1만 부가 다 팔렸고,
어린이와 성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들은 계란의 양 끝 중에 어느 쪽을 깨서 먹느냐를 두고 두 나라가 싸우는 이야기, 소변을 누어 왕궁의 불을 끈 이야기 같은 동화적인 요소에 열광했다. 어른들은 풍자적으로 그려신 등장인물을 두고 현실의 인물 중누구를 지목한 것인지에 대해 설전을 벌이며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P137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단어와 구를 만든 한편, 영어의 특징중 하나인 명사의 동사화‘ 용법을 일반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면 추문 gossip 이라는 명사는 셰익스피어 시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 단어를 험담하다 라는 동사로도 사용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처음이었다. 영어는 셰익스피어 덕분에 더 풍부하고 유연한 언어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스웩‘이 아닐 수없다.
- P155

고정관념은 차별을 낳고 상대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고민을 솔직히 나누고 건강하게 해소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차별적인 시선부터 거둬야 하지 않을까?
- P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