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
장재준 지음 / 의미와재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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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있고 물론 나에게도 있다.

그 중 상위에 있는게 바로 남미 일주여행이다.

최소 한달 이상의 날짜를 빼기도 어렵고, 돈도 장난 아니고, 그래서 아직도 버킷리스트에 머물러있지만 지금보다 더 체력 떨어지기 전에 가고야 말리라 늘 결심하며 라틴아메리카 여행기가 나오면 일단 챙겨서 보게 된다.

 

그렇다. 난 이 책이 여행기인줄 알았다.

라틴 아메리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서 책소개도 대충 보고 집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예상과 다르기에 더 좋은 일들이 세상에는 많고, 이 책이 바로 예상과 달랐기에 더 좋은 책이 돼버렸다.

하지만 절망도 같이 했으니, 아 난 도대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 아는게 뭐야라는 자괴감이다.

유럽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면 딱히 검색을 하지 않아도 반 이상은 이름이나 업적 정도는 아는 사람인데 이 책에 나오는 이름들은 정말 모두가 아는 이름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네루다 등등-빼고는 모르는 사람 투성이다.

핸드폰을 옆에 두고 끊임없이 검색을 해가며 책을 읽었지만 검색에서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나의 무지 수준이나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무지 수준이나 비슷하다고 할까? (도대체 이런 데서 위안을 얻는 나라는 인간은 무엇인가 말이다.)

 

책을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현재의 라틴 아메리카 - 음악 -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의 역사 - 잉카제국의 네트워크의 힘 - 플랜테이션 제국주의

이렇게 5개의 키워드로 돌아보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재이다.

키워드 중심의 서술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범위의 협소함이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한 세계, 그것도 그토록 다양한 인종과 민족과 자연과 문화로 이루어진 세계를 몇 개의 키워드로 어떻게 감히 정리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세계는 세로로 길기도 길어서 라틴 아메리카 남북의 길이가 한국-베를린 간의 거리라고 한다.

지구에서 세로로 길다란 세계란 것은 다양한 위도로 인한 다양한 식생과 다양한 문화를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자연환경의 차이로 인해 교류의 폭이 가로로 긴 세계보다 훨씬 어렵다.

거기다 안데스 산맥이란 길고도 높은 산맥은 동서방향마저 갈라놓는다.

카리브 해의 그 수많은 섬들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키워드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조막만한 단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뭔가 더 말해야 할 것 같고,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갈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장점으로만 가득 찬 책이다.

어떤 지역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이며, 기본적으로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이 책의 저자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굳이 사랑해 사랑해라고 얘기하진 않지만 행간과 사실의 전달 속에 저자가 가지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온다.

또한 일반화된 서구의 시선이 아니라 그 땅을 살고있는 이들의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도 돋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출발에서부터 좋은 책이 될 수 밖에 없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탁월한 영화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이 얼마나 서구 자본주의적 시각에 철저히 매몰되어있는가를 얘기하며 쿠바의 음악을 소개하는 장은 흥미롭다.

영화속의 음악가들을 서구는 발굴했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그들은 몇십년 전부터 음악을 멈춘 적이 없으며, 쿠바라는 지역에 갇혀있지도 않았다.

온 세계를 상대로 순회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표하고 쉼없이 음악을 계속해왔음에도 마치 쿠바혁명의 희생양인양, 서구가 비로소 이 음악가들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처럼 소개하는 영화의 시선은 오만하기 그지없다.

유튜브로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또 다른 영화 <쿠바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쿠바의 남성과 결혼했다는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화를 찾아봤더니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어쨌든 체 게바라의 땅이 아닌가?

무엇보다 흥미롭게 읽힌 것은 멕시코 혁명에 참가했던 여성들, 아델리타라고 불리우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것처럼 이 곳 역시 마찬가지다.

페트라 에레라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혁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여성임을 밝히자 그녀의 무훈은 평가절하당하고, 오히려 그녀를 향한 내부총질에 더 힘들어야 했단다.

멕시코 혁명 중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탁월한 군인이었던 아멜리아 로블레스는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한 여성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도 아멜리오로 불리워지기를 바랬지만 그 바램은 죽은 이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동의 대의를 위한 싸움에서 성별 자체가 문제가 되어버리는 세상은 여기나 거기나 참....

멕시코 혁명에서의 여성에 대한 책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잉카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은 네트워크다.

그 네트워크는 오로지 인간의 발로 이루어졌다.

말이나 소같은 대형 포유류가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은 순수한 인간의 발이었다.

차스키라고 불리웠던 파발들은 하루에 350km까지 주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그것도 온갖 산지와 사막같은 지형이 산재한 곳에서?

그 비밀은 차스키 한명이 담당하는 구간이 3km정도였다는데 있다.

그들은 3km정도의 거리를 전력질주하여 다음 주자에게 자신의 임무를 넘긴다.

이들 차스키는 어렸을 때부터 선발되어 철저하게 훈련받은 전문직업인들이다.

전달해야 할 내용이 많을 때는 그것을 모두 외워 다음 주자와 같이 뛰면서 전달했다고까지 한다.

그러니 그 유명한 몽골의 역참제도보다 더 빠른 속력으로 제국을 연결할 수 있었겠다 싶다.

그런 잉카제국이 멸망할 때는 이 차스키를 근간으로 하는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 정말 공부하고싶고 해야할 것은 너무나 많다.

 

설탕과 카카오가 노예무역과 연결되어  라틴 아메리카를 황폐화시키는 과정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얼굴이 뜨겁다.

한 사회가 다른 한 사회를 이토록 처절하게 짓밟는 야만의 장이 이 넓은  라틴 아메리카대륙 전체에 퍼져있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을 어떻게 그들만의 문제로 이야기할까?

쿠바의 사회주의가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

온 서구가  라틴 아메리카의 착취에서 그토록 많은 부를 쌓았음에도 그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 착취는 좀 더 세력되어지고 수많은 협정이나 조약으로 가렸을 뿐 현재진행형이다.

 

1장에는 미국-멕시코 국경의 벽에 내걸린 십자가와 관들의 사진이 있다.

저자는 이 국경지대의 난민들을 '난민과 국민사이를 오가며 이중의 디아스포라를 살아내고 있다, 내일이 없는 어제를 산다'고 표현한다.

누가 그들을 이중의 디아스포라로 만들었는가?

책을 읽는 내내 그 두장의 사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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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10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남미 여행 혹은 남미에서 살기가 버킷리스트에 있어욤!! 우리가 아는 세계에 대한 시각이 어찌나 주류 서구사회적인지 깨닫게 되는 요즘인 거 같아용~ 그걸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인 거 같네요~👍

바람돌이 2021-02-10 12:29   좋아요 2 | URL
네 조금 산만하긴 하지만 재밌어요. 이분이 좀 더 체계적으로ㅜ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책을 내줬으면 좋겠더라구요. 툐툐님 명절 잘보내시고 복도 듬뿍 받으세요.

붕붕툐툐 2021-02-10 22:28   좋아요 0 | URL
좀 더 체계적~ㅋㅋㅋ 바람돌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바람돌이 2021-02-10 23:42   좋아요 1 | URL
아 좀 더 체계적이란건 이 책이 약간 어떤 느낌이냐면 여러 군데에 그 때 그 때 쓴 글을 모은 느낌? 특히 1장이 좀 심해요. 하나의 주제로 묶기에도 약간 어려운 느낌이고요. 근데 이 분이 가진 내공은 학자라는 느낌이 팍팍 들거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써 주시면 좋을듯해서요. 역사서적도 외국인이 쓴 것 보다는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쓴게 전 이해하기가 훨씬 좋더라구요. 촘스키를 좋아하지만 촘스키 글 읽을 때는 정말 땀을 빨빨 흘리면서 읽어야 해서 항상 아쉽거든요. ^^

scott 2021-02-10 1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자신에 사견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독자들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게 되는것 같네요 ^.^

바람돌이 2021-02-10 12:31   좋아요 2 | URL
하지만 글 전체에 저자가 얼마나 그 땅을 사랑하는지는 내내 느껴져요. 그리고 그에 대비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봉수 있다는것도 좋았습니다. 학자다운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각이 좋았어요

수이 2021-02-10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 게바라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어요. 지금은 때가 많이 묻어 예전처럼 그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바람돌이님께서 추천하시니 읽어봐야겠습니다.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 바람돌이님. (저 1키로 빠졌어요 소곤소곤, 올해 새해 계획 중에 다이어트 있던 거 기억나서 ㅎㅎㅎ)

바람돌이 2021-02-10 13:41   좋아요 2 | URL
저는 지금도 한 인간으로서의 체 게바라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원형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저도 사실 1키로 빠졌어요. 어쩌면 쬐끈 더... ㅎㅎ 우리 같이 힘내자고요. 수연님도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에는 복도 듬뿍 받으세요

mini74 2021-02-10 16:25   좋아요 1 | URL
여러분의 1키로들을 제가 다 갖고 간듯 합니다 ㅠㅠㅠ ㅎㅎ 축하드려요 두 분 다. *^^*

바람돌이 2021-02-10 23:42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저 여분의 살 많아요.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mini74 2021-02-10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평생을 좁은 연구실에서 마야문자를 해독해 낸 크노로조프가 생각나네요. 소련붕괴 후 처음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했다고 하죠. 방에서 라틴아메리카를 꿈꾸다 보면 언제가 그 곳에 가 있지 않을까요. 멋진 베레모에~ 왠지 저는 베레모 쓰고 가야 될 것 같아요 ㅎㅎ~ 바람돌이님 즐거운 여행 하실거예요 *^^*

바람돌이 2021-02-10 23:38   좋아요 1 | URL
시간과 돈과 체력이 모두 허용되는 그날을 네 기다려야죠. 그 전에 책이든 다큐든 영화든 열심히 읽고 보고 좀 알아야겠어요. ㅎㅎ 베레모 쓴 mini74님! 안데스 산지를 훨훨 누비는 모습 상상하고 있습니다. 전 좀 가려야 돼서 챙 있는 모자로.... ㅎㅎ
 

체를 소유하고 소비하고 카피하는 스반문화적 혹은 저항 문화적 태도 자체는 이제 더 이상 문화적 훌리건이나 이데올로기적 컬트가 못된다. 구별을 파는 산업‘에 포섭된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이념적 지향성의 바코드로 인식되지 못한다. 저항과 대항의 아이콘들을 ‘쿨‘한 브랜드로 둔갑시켜 ‘혁명 판매 Rebel sel‘의대열에 뛰어든 문화자본은 ‘전복이라고 여겨지던 체 게바라를 보기좋게 전복시켜버렸다.
- P151

이후 페트라는, 말 그대로 까맣게 잊혔다. 생몰연도도 남기지 못하고너무 함부로 너무 일찍 망각 속에 묻혔다. 숱한 아델리타들처럼 지배담론으로부터 온당한 자리를 분양받지 못한 채 마초적인 역사관에 의해암매장 당했다. 페드로 Pedres의 욕망과 시각에 의해 페트라 의 삶은 이렇게 토막 난 채로 짤막하게 기억될 뿐이다.

페트라 에레라, 그는 여자였다.
- P158

멕시코 혁명이 제도화의 길로 접어들자 혁명 동지들은 속속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넥타이를 풀 수 없었고 모자를 벗을 수 없었다. 아멜리오가 되기 위한 그의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자신의 성을 부정하거나 모욕하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꺼내들 정도로 단호했고, 평소에도늘 남성용 속옷을 착용할 정도로 철저했다. 뼛속까지 남자이고 싶었지만 벽은 두꺼웠고 턱은 곳곳에 산재했다. 멕시코 마초를 상징하는 콧수염이 없던 아멜리오의 삶은 모욕과 혐오와 차별로 점철되었다. 무훈을 공인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등록되지 못하는 소수자의 수모를 식솔처럼 거느려야 했다.
- P167

비록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아델리타스를 둘러싼 기억과 해석 투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멕시코 혁명이 발발한 지 10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델리타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난, 차별, 배제, 억압,
폭력이 끊이지 않기에 아델리타스의 인정투쟁은 대를 이어 현재진행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들이 서 있는 곳이 곧 전쟁터다.
- P177

차스키는 마라톤 거리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 러너가 아니었다. 방대한 잉카의 길을 잘게 썰어 차스키 한 명이 3km 내외의 거리만 책임지면족했다. 자신에게 할당된 그 구간을 전속력으로 달려서 다음 탐보나 차스키 와시 chasqui wasi, 차스키의 집‘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차스키에게 임무를인계하는 방식이었다. 집단체력‘을 극대화하는 지혜의 산물이랄까.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이어달리기 방식의 정보통신망이었다. 말 과바퀴가 없는 상황 하에서 안데스의 지형 및 지리환경에 딱 맞는 관군용 정보전달 시스템이었다.
- P194

반복하건대, 잉카제국이 정복한 방대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 이 차스키들의 공헌은 지대했다. 거대한 네트워크 제국에 속도를 부여하고 결속을 높이는 데 크게 기어했다. 속도선, 최저 유지비용, 네트워크화의주역이었다. 지역과 지역, 분배와 교류, 군사외 행성, 통치와 통합을 주도하거나 매개하는 정보통신의 중추신경망ackbone Network 구실을 했다.
한마디로 ‘차스키가 없었다면 잉카제국의 번영도 없었다‘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팍스 잉카이카는 바로 이런 차스키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톱니바퀴가 되어, 수레바퀴가 되어 잉카라는 거대한 제국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달렸던 파발꾼 차스키.
- P204

잉카의 이러한 포용적 현지화 전략은 각 지역의 특수성과 독자성을인정하고 배려하는 상생의 제스처였다. 잉카 군주의 권위를 부정하지않는 한, 각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랄까. 잉카사회의 통합의 원리가 강압적인 동화나 배타주의에 함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요컨대 다채로운 시대적 층위와 종족의 삶이 서려 있는 탐보 건물들을 통해 레인보우 제국을 지향했던 잉카 문화의 남다른 양적 넓이와 질적 깊이를엿볼 수 있다.
- P213

카스트로의 말마따나 쿠바는 미국을 위한 원료공급 전진기지이자 상품시장으로 머물러 있었고, 캐러멜을 수입하기 위해 설탕을 수출하는 형국이었다. 설탕을 수출해서 마체테 사탕수수 수확물낫를 수입하는 처지였다. 세계 설탕을 지배하기는커녕 설탕에 철저하게 예속된 신세였다.
- P226

노예, 황금, 상아를 대신해서 핏빛 카카오 Blood Cacao가 이제 이 지역 주변 해안을 대변하는 형국이다. 카카오 콩을 눈알처럼 귀하게 여기던 마야시대로부터 수천 년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사치품‘이다. 생산과 소비가 격렬하게 분리되어 있다. 여간해선 맛볼 수 없는 마시는 금
이다. 적어도 이 카카오 해안의 초콜릿(색) 노동자들에게는, 집단 희생과 피의 상징물이다. 마야시대처럼, 여전히 초콜릿은 쓰다.
- P272

나프타 체결 이후 대략 20년 만에 농촌의 일자리 490 만개가 사라졌고 농민 600만여 명이 농민으로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농촌을 떠났다. "살기 위해 옥수수를 심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를 심기 위해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농촌 거주 인구의 절대 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농민이 식량 구입에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는 상황. 미국산 식품의 홍수 속에서 고과당 옥수수 시럽에 중독된 멕시코 국민개개인들은 피둥피둥 살찌는데, 멕시코의 옥수수 농업은 고사 직전의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걸어 다니는 옥수수‘들, 아니 걸어 다니는 가공된 옥수수‘들이 국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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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때가 1556년 7월경이었고, 훗날 시인이자 전위예술가였던 오스바우지 지 안드라지 Oswald de Andrude는 원주민 인디오가초대 가톨릭 주교를 먹어치운‘ 이 사건을 식민주의적 근대화에 역류하는 문화적 반란과 탈식민주의적 욕망의 미학적 분출로 해석했다. 그 사건에서 저항적 탈식민주의의 문화적 레시피와 정체성 구성방식을 발견하고 그 해를 ‘식인종 선언 Manitiesto antropótago(1928)‘ 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계몽과 금지와 터부의 논리가 작동하기 이전의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 즉 ‘벌거벗은 이성‘재고考를 통해 ‘우리의것이 ‘야만적인 것 barbaro e nosso‘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사실을 선뜩하게공표한 것이다. 달리 말해 반어와 역설, 전복의 상상력을 통해 브라질의 인식론적, 미학적 브락질 모더니즘, 지적, 문화적인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 P25

장벽 사이의 불평등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 수비와 감시공식이 바뀌고 있다. 국경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테러, 불법 이민, 마약, 전염병 차단이라는 명분 아래 요새화된 장벽, 첨단 감시장비, 대규모 인력 배치 등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있다.
- P49

파트리시아와 마찬가지로 무상교육에 안도하고, 쿠바 혁명의 대의에도 선뜻 동의하지만, 교육의 획일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전인교육에가려진 쿠바의 정치 편향적인 교육 실태를 꼬집는다. 사회현실의 이런저런 형편을 짚어가면서 ‘평등한 가난이 야기한 결핍과 제약의 세목들을 푸념처럼 길게 늘어놓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악무한의 노동과 경쟁을 통박하는 한편, 쿠바 혁명이 폐쇄적이고 정체된 탓에 ‘변화‘도 ‘진화‘도 이루지 못한다며, "혁명이 스스로를 혁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P77

자신을 활짝 열어놓은 채, 사람과 삶을 환대하는 카리브의 신명나는웃음. 삶에 대한 자세와 인간에 대한 태도도 제도일까? 제도의 (부) 산물일까? 콤파이 세군도, 그도 자신을 쿠바라는 국가에 구겨 넣으며 살았을까? 그냥 쿠바이기에 한 세기를 그렇게 신나게 훨훨 살다 간 걸까?

문화와 삶이 고스란히 경제지표에 담길 리는 만무하다. 진짜 음악이악보에 없듯이,
- P85

하지만,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안팎에서 구축되는 타자의발명 발굴 (재) 발견의 논리는 눈엣가시처럼 걸린다. 몰입을 방해하고쿠바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하고 강화하기에 충분하다. ‘쿠바 혁명에의해 뮤지션들이 대중과 유리되었고 세계 시장에서도 철저히 고립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애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 P95

카바레와 레스토랑에서 듣는 쿠바음악 반주에 ‘안주 하는 꼴이란 쿠바에서 시가를 끽연실에서 태우는맛이니, 즉흥적인 어울림과 살아 펄떡거리는 골반문화를 만끽하려거든길거리로 광장으로 아바나 밖으로 발품을 팔지이다. 소유의 길을 따르지 않은 ‘작지만 강한 니과의 푸진 가락과 신명을 찾아서, ‘저항을 배운 자들의 고통과 희망의 번주고을 눈으로 직접 들으면서.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기. 시거먼 설당눈물이 배인 쿠바의춤과 노래와 퍼커션들은 신산한 나날을 날려버리던 위무이었음과 동시에 한과 슬픔의 날을 벼리던 무기였음을, 거의 모든 형태의 잡종과 변종의 계보악보를 아우르며 전방위적 섞임에 늘 개방적이었음을, 쿠바도 쿠바 음악도.
- P108

 ‘폭탄 머리‘를 말세나 사탄의 징표로 간주하고, 독단주의와 배타주의라는 이즘의 격자에 갇혀 믿음을 종용하는 곳은 이쪽이다.
가난에 허덕이는 그곳이 아니라 소비 욕망으로 헐떡거리는 바로 이곳이다. ‘일상의 파시즘‘, 특히나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전체주의적사유구조가 문화적으로 팽배한 곳 역시나 이쪽이다. 반면, ‘물음 없는맞이하기‘리는 자크 데리다 현대에 대하여 식 타자에 대한 환대 rospitalite‘를맛볼 수 있는 곳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대뜸 ‘늙은 꼬레아나 며느리와 춤판부터 벌이는 저쪽이다. 성별화된 Gendered 시각을 드러내면서신랑과 신부의 나이 차이를 추궁하고, 급기야는 어린 조카까지 나서서차이와 차별에 대해 ‘논하는 이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을 감금하는 ‘주의 義‘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세계시민으로 살고자하는오리엘비스에게 "자본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를 따지듯이 캐물으면서 몰아세우는 이쪽일 리가 만무하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 P125

체 게바라보다도 그가 더 길게 더 파란만장하게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걸은 셈이라고. 늙지 않는 체 게바라와는달리 늘 자기 몸에 길을 새기면서 늙어간 그가 되레 더 위대할 수도 있다고. 이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혁명 안에서 시간과 혁명의 하중을 견디면서 삶을 밀고 나간 그가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에 훨씬 더 가깝다고, 아니,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고, ‘길이 체 게바라를 만들었고 체 게바라는 길이 되었다, 라고 한다면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평생 그 길을 살았다. 체 게바라가 별을 향해 걸어갔다면 그는 샛길을 따라 사람을 향해 걸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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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 P104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거야.
- P131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 P187

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지 세상에.
나는 소라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래전,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전날밤에.
간장을 싫어하는 부족.
간장을 좋아하는 부족.
간장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부족.
부족이 되나, 하고 소라는 물었지.
나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지 세상에.
- P201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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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느 것 하나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끝없이,
끝없이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도 기억나는 것이 없느냐고 재차 묻자 그건 말이지,라고 애자는말했다.
너무 소중하게 너무 열심히 들어서 기억에 남지 않고 몸이 되어버린 거야.
몸?
들었다기보다는 먹은 거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남김없이먹고 마셔서, 일체가 되어버린 거야.
- P9

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 P12

정말 맛있었지.
특별하게 화려한 반찬도 없었는데.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순자씨는 나를 한번쓱 바라보더니 연륜이라고 대답했다. 나이를 말하는 거냐고 묻자단순하게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녀는 말했다.
새끼를 먹여본 손맛이지.
그런 연륜, 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 P43

아무튼 자기들 일은 아니니까, 언니하고 나를 멀리서, 멀리서관찰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준 거야. 언니가 나한테 그러고 있어, 싫다고도 하지 않고, 싸우려고도 하지 않고, 지금 그러고 있어. 나는다 알고 있는데? 성가시면서. 나를 싫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거짓말로 친절하지.
싫은 것을 감추고 보살피지.
나나는 걷던 것을 멈추고 털썩 앉으며 말했다.
언니가 그렇게 하니까 나는 굉장히 약해진 것 같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외로워져.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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