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시스템의 부정적 측면 두 가지를 조명해준다. 첫째, 능력에 기준한 유동적 사회는 비록 세습적 위계질서와는 상반되지만 불평등과 상반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출생 대신 능력에 근거한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둘째, ‘최고의 천재‘를 예찬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은 그 나머지를 격하시키며,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비천한 자들‘ 이라고 멸시하기 쉽다.  - P255

가난한 집에서태어났으나 상위 20퍼센트에 들 만한 소득자로 성공한 학생들의 비율을 각 대학별로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는? 오늘날 고등교육은 사회적 상승에 놀랄 만큼 거의 영향을 못 미치고 있다.
- P265

젊은이 (20~24세)의 자살률은 2000~2017년 사이 36퍼센트 늘었다. 지금 그들은 살인보다 자살로 더 많이 죽어간다.
이런 병리학적 상황을 넘어 심리학자들은 이 세대 대학생들의 보다미묘한 정신적 문제점을 찾아냈다. ‘완벽주의라는 숨은 전염병‘이다.
- P283

그러나 유능자를 제비뽑기로 뽑자는 대안의 가장 유력한 근거는 그렇게 함으로써 능력의 폭정과 맞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일정 관문을 넘는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토록 하는 일은 고등학교 시절의 건강함을 어느 정도 되찾아줄 것이다.  - P290

19세기 미국 사회의 평등주의적 성격은 사회적 이동성이 아니라 지성과 교육이 모든 계층과 직업에널리 퍼져 있던 데서 나온다고 보았다. 이는 능력주의적 선별이 망쳐버린 평등의 유형이다. 능력주의는 지성과 교육을 고등교육의 상아탑에 온통 몰아넣어 두고서, 누구에게나 그 상아탑에 들어올 공평한 경쟁이 보장되리라고만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접근권 배분은 노동의 존엄을 떨어뜨리며 공동선을 오염시킨다. 시민교육은 담쟁이가 성쿨진 캠퍼스 못지않게 지역사회 대학, 직업훈련소, 노조에서 잘될 수있다. 향상심 있는 간호사와 배관공들이 야심적인 경영 컨설턴트보다민주적 논쟁에서 뒤떨어질 까닭은 없다.
- P300

그래서 세계화가 일으킨 불평등이 왜 그토록 강력한 분노로 이어졌는지 설명된다. 세계화에 뒤처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은 번영하는 동안경제적 곤경에 처했을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일이 더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함을 깨달았다. 사회의 눈에, 그리고 아마스스로의 눈으로도 그들의 일은 더 이상 공동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라고 비쳐지지 않는다.
- P309

노동계급의 불만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오늘날 공적 문화에 만연한엘리트의 거들먹거리는 태도와 학력주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의 존엄성 문제를 정치 어젠다의 중심에 놓는 일도 필요하리라. - P318

시민적 개념의 관점에서우리가 경제적으로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비자보다는 생산자로서의 역할이다. 생산자로서 우리는 우리 동료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을 만들면서, 사회적 명망을 얻을 수 있는 역량을 계발하고 실행해야 한다.  - P324

언젠가 우리 사회는 청소 노동자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 따져 보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의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질병이 창궐43할 테니까요. 모든 노동은 존엄합니다.
- P325

그러나 일의 존엄에 대한 새로운 논쟁은 우리의 당파적 경향을 무너뜨릴 것이고, 우리의 정치담론을 도덕적으로 활성화할 것이며, 우리가 40년 동안 시장의 신앙과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져든 탓에 양극화된 정치 현실을 넘어설 수 있게해줄 것이다.
- P331

기업의 법인세를 줄이고 자유무역을 진흥하여 GDP를 끌어올릴 생각하지 말고,
노동자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기에 충분한 급여를받는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 데 공화당이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경제성장보다 좋은 사회를 중시하는 방식이라고 카스는 주장50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가 제안한 정책 중 하나는 저소득 노동자에게 임금 보전을 해주는 것이었다. - P332

일의 존엄을 살리려는 정치 어젠다는 세금 제도를 써서명망의 경제를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즉 투기자본을 억누르고 생산적인 노동을 상찬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는 세금 부담을 일에서 소비로, 그리고 투기로 옮긴다는 뜻이다. 이를 급진적으로 추진하려면 급여세를 대폭 인하하거나 아예 없애버리고 대신 소비세, 부유세, 금융거래세를 통해 세입 부족분을 메워야 할 것이다.  - P338

종종 기회의 평등의 유일 대안은 냉혹하고 억압적인 결과의 평등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이다. 그것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
- P349

일반 열람실을 보면, 물어볼 필요조차 없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1만권이나 비치되어 있다. 자리마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노인도 젊은이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흑인도 백인도, 경영자도 노동자도,
장군도 사병도, 저명한 학자도 학생도 한 데 섞이 있다. 모두가 그들이 가진민주주의가 마린한 그들 소유의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는다.

애덤스는 "이 장면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확실한 사례다. 사람들 스스로가 쌓은 자원으로 마련된 수단, 그리고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대중 지성. 이 예가 우리 국민 생활의 모든 부문에 그대로 실현된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있는 현실이 되리라"라고 썼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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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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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강대국은 선해서 위대하다는 도덕론적이고 섭리론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내면서 동시에 부유한 개인은 자신의 미덕으로 부유해진거라는 도덕론적, 능력주의적 아이디어를 밀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국가들 가운데 일정한 도덕적 특권을 인정한다면, 같은 논리가 1퍼센트‘
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대외적 섭리론과 대내적 능력주의는 함께 서든지 함께 무너지든지 해야 한다.
- P91

지난 40년간 능력과 타당한 자격에 대한 담론은 공적 담론의 중심에자리 잡았다. 이런 능력주의로의 전환이 갖는 일부 측면은 그 부정적인성격을 드러내 준다. 이 측면이란 첫째, 책임을 특히 강조함으로써 복지국가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련 리스크 부담을 정부와 기업에서개인으로 옮기려는 태도다. 둘째 측면은 더 야심적이다. 이는 사회적상승에 대한 언어적 포장‘이라 불릴 만한 표현들에서 나타난다. 열심히일하고 규칙대로 행동하면 누구나 자기 재능과 희망이 허용하는 한 사회적 상승을 할 수 있으리라는 약속 말이다. 개인 책임의 담론과 사회적 상승의 담론은 지난 수십년간 정치 논쟁에 불을 붙인 주역이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능력주의에 대한 포퓰리즘의 반격을 초래했다. - P111

그러나 트럼프와 브렉시트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포퓰리스트 정당들에 표를 던진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사회적 상승에 대한 약속보다는 국민 주권 원칙의 재확인.
국가 정체성과 국가적 자존심 등의 강조에 동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주도적 세계화를 환영하면서 그 이익 대부분을 챙기고 노동자들을외국 노동자들과의 경쟁에 내몬 장본인들, 동료 시민들보다는 세계 각지의 엘리트들과 더 가까워 보이는 능력주의 엘리트, 전문가, 전문직업인 계층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 P123

이것이 능력주의의 약속이었다. 더 많은 평등의 약속이 아니라, 더 많고 더 공정한 사회적 이동 가능성의 약속 말이다. 이는소득 사다리의 단 사이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 P145

마지막으로 연구자들은 능력주의적 사회에서 대학 진학이 계속 강조됨으로써 비대졸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화된다고 본다. "교육이야말로 사회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의 권고는, 사회경제적으로낮은 지위의 집단이 더욱 부정적으로 평가되면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될 위험성을 키운다. 이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더 선뜻 받아들이게 하며, 성공은 능력 나름이라고 믿기 쉽도록 한다. "교육을 개인책임이라 여기게 되면 교육 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줄어들 것이다. 교육 성과는 대체로 개인 하기 나름이라 여겨지게 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성공 및 실패 또한 그렇게 된다.  - P161

그리고 최근의 역사적 경험은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판단 능력과 표준화된 시험에서 검수를 잘 따고명문대에 들어가는 능력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고의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 P165

피케티는 좌파 정당들이 노동자 정당에서 지식계급, 전문직업인 정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왜 그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불평등 증가에대응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 준다고 본다.  - P170

대학 학위가 품격 있는직업과 사회적 명망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근거로 정치를 하니 민주주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은 비대졸자의 사회적 기여를 폄하하며 사회의 저학력 구성원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 그리고 노동계급 전체를 대의정부에서 효과적으로 배제한다. 그 결과 정치적 반격을겪는다.
- P171

기술관료적 접근을 정책에 쓸 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정책결정권이소수 엘리트에게 돌아가고 그만큼 일반 시민은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치적 설득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인센티브제화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한다. 자의에 의해 에너지를 절약하거나 체중 조절을 하거나 윤리 경영을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로 그렇게 하도록 하는 방법‘의 대안일 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고 권유하는 방법‘의 대안도 된다.
- P176

의라 해도 정의로운 사회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먼저,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능력주의에서 중요한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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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재능으로 대입이 이뤄져야지, 학생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다른요인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그들 모두 ‘대입은 실력에따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적어도 암묵적으로) 노력한 사람은 대입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혜택을 누릴 자격을 갖는다고도 보고 있다.
- P33

이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부담이다. 시민적 감수성에도 유해하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사람 또는 자기충족적인 사람으로 볼수록 감사와 겸손을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런 감성이 없다면 공동선에 대한 배려도 힘들어지게 된다.
- P37

기술관료적인 정치 개념은 시장에 대한 믿음과 강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꼭 국가 개입이 일체 배제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의미하지는않는다. 하지만 시장경제야말로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 기본적 도구라여기는 것이며, 따라서 더 큰 범위에서 시장을 신뢰하는 것이라 할 수있다. 정치를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기술관료적 정치가 이뤄진다. 그것은 실질적인 도덕적 논쟁에 대한 공적 담론을 실종시켰으며, 논란이 있는 이념 문제를 마치 경제 효율 문제 처럼 전문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인 듯 취급했다.
- P45

기술관료적 통치 방식은 여러 공적 문제를 기술 전문가들에게 맡김으로써 보통 시민들은 손을 써볼 수조차 없도록 만들었다. 이는 민주적 토론의 범위를 좁히며, 공적 담론의 내용을 공허하게 하고, 개인들이 점점 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 P46

바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생겨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관점‘이다. 그들은 새로운경제 환경에서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왜 ‘승자가 경멸적으로 깔보고있다‘고 느끼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 P48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하며,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P51

민주정치가 다시 힘을 내도록 하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정치 담론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공통의 일상을 구성하는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함으로써 가능하다.
- P61

능력주의의 폭정 중 일부는 이러한 충동에서 비롯된다. 오늘날의 세속적 능력주의 질서는 이전의 섭리론 신앙처럼 성공에 도덕의 틀을 씌운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과 부를 통해 신의 섭리를 불러온게 아니라 해도(그들은 스스로의 노력과 근로에만 감사할 뿐이다), 성공은그들의 탁월한 덕성을 반영한다.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부자일 만해서부자라는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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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6번째 주인공은 어니스트 웨밍웨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있거라>, <노인과 바다>를 모두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그 때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나 어쨌든 좋아하는 작가다.

그래서 이 책을 들 때는 마음이 좀 두근거렸다.

오래 전 애인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물론 헤밍웨이의 그 마초적인 분위기나 성격은 이미 알고있던 바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나는 헤밍웨이는 나의 예상을 가뿐하게 넘겨주신다.

여성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끊임없이 순종적이고 자상하고 순애보적인 사랑을 여성에게서 바란다면 최소한 자신도 그 비슷은 해야 하지 않는가말이다.

시대적인 한계로 퉁쳐주기에도 헤밍웨이의 여성편력과 여성관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끊임없이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그의 삶도 그러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와 그의 삶이 존경스럽지 못한건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네루다는 위대한 시인이고 정치적으로도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여성의 입장에 서면 아니올시다다.

젊은 시절 그는 미얀마에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원주민 여성을 강간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기도 한다. 범죄라는 자각조차도 없었던 걸 보면 그의 여성관과 아시아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후 계속된 그의 여성편력은 그의 여성관이 자신을 위한 뮤즈로서의 도구지,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존중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화가 중에 피카소를 정말 좋아한다.

사실 피카소를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좀 멋적은게 너무 유명해서다.

아 저는 칸딘스키와 마크 로스코,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해요라고 하면 좀 멋있어 보이잖아,

그런데 고흐나 피카소를 좋아해요라고 하면 폼이 안난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좋다.

단순한 정물화 하나조차도 피카소의 그림은 다르게 심장을 확 때린다.

하지만 인간 피카소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솔직히 아 그 마초 하면서 진저리를 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를 그 인간적인 면모에서도 존경하고 사랑하고 싶다.

위대한 예술과 인간성은 정녕 따로 노는 것일까?

이런 마초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내가 싫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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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01 08: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파리 스케치 읽고 완전 정 떨어졌어요. 여성 편력과 유유자적 에효
파츠 제럴드의 실상도 보고요 ㅜㅜ

바람돌이 2021-02-01 22:15   좋아요 2 | URL
훌륭한 예술가가 훌륭한 인격도 갖추면 더할나위 없을텐데 말이죠. 안타까워요. 헤밍웨이의 삶은 그의 마초적인 여성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극단으로 계속 몰아부쳤더라구요. 안타까웠습니다.

scott 2021-02-01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21세기 살았다면 또람프한테 투표했을것 같아여 ㅋㅋㅋ

바람돌이 2021-02-01 22:16   좋아요 0 | URL
음 글쎄요. 전 그렇지는 않을것 같아요. 스페인 내전에서 반파시스트 전선에서 싸웠던 경력도 그렇고, 개인적 삶이나 여성관을 빼면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이성적인 나름의 주관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

mini74 2021-02-01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범하고 별탈없는 예술가보단, 오히려 문제가 있는 예술가들이 더 돈벌이도 되고 이목을 끌어서? 그런 면이 더 부각되는 점도 있는 거 같아요 예술가라 그런거라머 용인하는 분위기도 좀 있는 듯 하고요. 저도 공감해요 ㅠㅠ

바람돌이 2021-02-01 22:18   좋아요 1 | URL
예술가에 대해서는 아 그는 예술가니까 뭐 좀 과할 수 있어 이런식으로 확실히 관대한 면이 많죠.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듯하고요. 고은시인의 사건 같은 경우 정말 충격적이었으니까요.

감은빛 2021-02-0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척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여가며 읽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임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남성으로서 죄스러운 감정을 느낍니다. 에휴!!
작년 고 박원순 씨와 최근 정의당 사태를 보면서 더더욱!!

바람돌이 2021-02-01 22: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이 죄스럽게 여기면 대한민국 남자들 모두 고개를 못들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ㅎㅎ
여전히 양성평등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것들이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것도 아주 큰 진보라고 생각해요. 결국 생물학적인 성이 무엇이나갸 아니라 어떤 성인지의식을 가지고 있느냐고, 또한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거나 서로에게 책임전가를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그 모든 문제제기들을 하는걸테니까요. ^^

han22598 2021-02-02 0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 역시 시대의 희생양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저 역시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헤밍웨이를 그저 동경하고 경배하고 있었을지도.

바람돌이 2021-02-02 13:18   좋아요 1 | URL
분명히 시대적 한계는 있어요. 근데 그렇다고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여성을 대상화하지는 않았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어쩌면 피카소나 헤밍웨이는 어쨌든 쌍방합의에 의한 연애니 범죄는 아니라서 싫지만 그래 그것도 당신 능력이다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네루다의 미얀마에서의 행위는 범죄잖아요. 그래서 네루다는 정말 정치적으로도 존경할만한 분인데 참 안타까워요.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 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주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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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병은 생리학적 질병이며 그 중 조증과 울증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제1형 양극성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의 유병률을 보인다고.... 우울증은 나라와 문화, 남녀 비율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만 조울병은 남녀차이없이 평균적으로 1%란다.

깜짝 놀랐다.

1%라니.... 그렇다면 100명중 1명이란 말이다.

 

삐삐언니라고 자칭하는 작가의 글을 보면 고학력에 선망하는 직업에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울증과 조울병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먼저 한국사회에서 조울병이라는 자신의 병을 이렇게 솔직하게 책으로까지 써내는게 정말 쉽지 않았을테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의 병증을 내놓은건 아마도 조울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일거다.

작가의 용기에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쉽지 않았으리라.....

 

조울병을 앓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조증의 주요 특이점 중에 타인과의 거리를 제대로 재지 못한다는 게 있다.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함부로 침범해버린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현재의 황홀경에 홀딱 빠져 있는조증 환자에게 ‘지금‘ ‘여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P45

우울은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주변을 채우고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의지, 목표, 흥미가 마비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간다.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 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 P123

 

 

최근에 동생이 아는 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소식이다.

직업상 우울증이나 이상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담임이 되었을 때 학급 아이들 중 가장 긴장하게 하는 아이가 자살충동이나 자해현상을 보이는 아이들, 친구관계에서 피해의식을 보이며 피해망상으로까지 치닫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과대망상, 집착, 지나친 자기 합리화현상을 보여준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어떤 경우에는 어릴 적 딱 한 번 엄마에게 맞았던 경험을 일상적인 물리적 폭력이 진행되고 있는듯이 얘기하기도 한다.(물론 이 때는 학교에서도 가정폭력을 의심해서 사후 대책을 진행시켰었다. 몇달간 지켜보고 전문적인 병원치료를 병행한 결과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다)

부모에게 자신의 이상 행동의 원인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는 교사나 친구들에게로 돌리기도 한다.

제3자가 보기에는 그저 타이밍이 안맞을 뿐이었던 문제나, 친구들의 일상적인 행동이 모두 자신을 왕따시키고 뒤에서 욕을 하는 것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아이의 집착과 과대망상이 너무 심해서 학부모상담을 진행하는데 엄마가 아이보다 더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학생과 학부모를 병원으로 이끌 수 있는가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내가 함부로 건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사랑과 관심만으로는 절대 조울병이나 우울증은 치료되지 않는다.

이 책의 작가가 가르쳐 주는 증상들을 하나 하나 따라가면서 그 때 그 아이들의 마음과 뇌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또한 전문적인 치료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

 

문제는 우울증이나 조울병의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우울증은 그래도 주변의 보살핌, 관심, 상담치료 등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조울병은 무조건 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100명 중에 1명이라면 국가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정말 갑갑한 경우가 아이가 조울병같은 증상을 보이는데,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안되고 생업으로 너무 바빠서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못하는 경우다.

지금의 학교는 상담치료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학교 내에도 있고, 학교 밖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품을 팔면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치료는 전혀 아니다.

학교와 지역사회와 연계된 정신과 의사가 있어 조울병을 보이는 아이들은 실질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정말 절실하다.

병원에 가야 하는 아이를 학교가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디 작가의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의 조울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니 맘만 잘 먹으면 이런 병이 안생길텐데, 네가 마음이 약해서 그런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지기를....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정신건강도 지원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기를 역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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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2-01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친구들이 만나면 꼭 우울이나 조울 앓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내가 학생일 때는 감수성이 없어 그랬나, 주변에 그런 아이들의 존재를 못 느꼈는데 싶으면서 이게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복잡한 기분이 되곤 했는데요.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다....

바람돌이 2021-02-01 02:35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너무 많았구요. 조울증을 앓는 아이들이 있어도 묻히고 몰라서 어른이 되면서 더 심각해졌으리라 싶어요. 그리고 정말 심각하면 집에서 쉬쉬하면서 아예 학교를 안보내거나요. 다만 우울증은 좀 다른게 확실히 증가한데 맞다싶어요. 이건 사회적인 영향이 커서 옛날에는 우울증이 있어도 아무데서도 안받아줬잖아요. 그래서 어른이 되어 우울증을 앓더라구요

2021-02-0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02-0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예전엔 더 했던거 같아요. 같은 반 친구가 시험시간에 울던 기억이 나요. 시험지가 백지로 보인다고 ㅠㅠ 그 때 선생님이 뻥치지 말라며 공부를 안해서 백지로 보이겠지 했던 그 말투와 웃음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 옆애 있던 나도 그런데 그 친구는 어땠을지 ㅠㅠ 그 친구는 1년 휴학을 했는데. 그저 무탈하게 잘 살고 있길 바란답니다. 바람돌이님 글처럼 아이들 정신건강도 지원이 되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1-02-01 22:27   좋아요 1 | URL
아 가끔 그런 일이 있었죠. 요즘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교사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서 저런 경우 최소한 저렇게 웃지는 않아요. 바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보건선생님 부르고 아이를 진정시키고 후속조치를 취하긴 해요. 근데 이후의 후속조치가 모두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에 모두 맡겨져버리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mini74 2021-02-01 22: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이들 이야기 들어보면 요즘은 좋은 선생님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다행이죠 *^^* 저 어릴 땐 골목길 돌면 혹은 옆 옆집만 가도 동네 친구들도 있었는데. 지금 아이들 참 외로워 보일때가 있어요.

바람돌이 2021-02-01 22:36   좋아요 1 | URL
교사들의 인식수준도 사회 전체의 인식수준을 따라가는 거죠 뭐....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학교 내 메뉴얼 같은 것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요. mini74님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많은건 님의 아이들이 좋은 아이여서일 가능성이 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