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영광과 비참을 모두겪었다는 점에서도 초인이었다.
- P17

근사한 마초가 등장하고 순종적인 여성이 그를 대책 없이 사랑하는구도다.
헤밍웨이는 이 같은 구도를 평생에 걸쳐 많은 작품에서 반복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남녀 간의 성 역할은 남근중심주의가 만연한 가부장 사회의 전형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그가 성장한 20세기초반이 그런 사회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차별적 시각은 유난스러운 데가 있었다.
- P32

하지만 그는 적어도 가해자가 되는 남성을 변명하고 옹호하거나,
가해자에게 낭만적 사랑이라는 허울을 씌울 의도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 그는 남성 인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징하고 가혹했다.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윤리적인 테마만을 다루거나, 비윤리적인 테마를다루면서 고발의 시각만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기엔 세상이 인간이 너무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 P36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의 보기 민망한 경쟁은, 예술을 사회의 다른 분야들처럼 작가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우열을 가리는 미국 문단과 출판계의 풍토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예술을 필요 이상으로 경쟁시킬 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 P84

헤밍웨이 소설 미학을 몇 가지 열거해본다. 입말체 대화법, 빙산이론과 하드보일드 스타일, 그리고 남근중심주의 미학이다. 네 가지로 나눴지만 이들은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많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헤밍웨이라는 하나의 실존에서 나온 것들이다. 네가지로 나누어 있지만 실은, 헤밍웨이라는 한 인간의 다른 표현들이다.
- P101

글을 쓰는 데에도 역시 여러 가지 비결이 있다. 글을 쓰다가 어떤부분을 생략할 때, 그 순간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생략해서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생략된 부분은 언제나 남아 있는 부분을 더욱 강력하게 해준다.
- 『파리는 날마다 축제』, 292쪽 - P106

프로이트도 사후에 남성우월주의라고 비난을 받았다. 사실 그의이론 가운데 남성을 중심에 놓고 여성을 그 중심에 종속된 존재로보는 이론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남성이 여성보다는우월하다는 생각의 뿌리가 남근의 존재 여부에 있다고 사태의 핵심을 꿰뚫어볼 만큼은 생각이 열려 있었다. 남성우월주의는 실은남근중심주의다. 그리고 그 세게에서 중요한 것은 남근뿐이므로,
여성의 있고 없고는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참 하찮은 이유다.
- P124

1930년대 후반, 헤밍웨이는 작가로서 성공하고 부유해지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자신의 명성을 불변의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면서, 인성의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별명 ‘파파‘처럼 그는 가부상의 위치에서, 가정과 동료들 사이에서 작은 폭군처럼 행동하고 군림하려 했다. 이 시기에 「킬리만자로의 눈」을 통해 비정한 하드보일드 미학의 절정을 보여줬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피츠제럴드를 비방해 그와의 우정이 깨졌던 것처럼 이 시기에 다른 동료 예술가들과도 관계가 단절되었다.
- P216

동물과의 이런 교감은 기독교 문명에서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일이다. 기독교에서 동물은 인간과 같은 값을 가지지 않으며, 기독교의 신이 인간에게 잡아먹으라고 내려준 선물의 의미만을 가진다.
그래서 사냥에 성공하면 사냥감의 고통과 죽음은 아랑곳 않고, 사냥감을 내려준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 이 같은 점은 고래 사냥을다룬 또 다른 해양 소설인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고래잡이에 나선 그 어떤 백인들도, 피를 뿜으며 죽어가는 그 커다란 바다의 생명체를 애달파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동물을바라보며 말을 걸고 그들의 죽음을 동정하는 이들은 산티아고 노인같은, 사냥감의 영혼을 위로하는 습속을 지닌 야만인들뿐이다.
헤밍웨이 자신도 비정한 백인 기독교도였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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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아니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슬픔은 슬픔대로 받아들이고 실패는 실패대로 인정하고 힘들면 주저앉고 잘 안 풀리면 접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다.  - P41

조증의 주요 특이점 중에 타인과의 거리를 제대로 재지 못한다.
는 게 있다.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함부로 침범해버린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내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현재의 황홀경에 홀딱 빠져 있는조증 환자에게 ‘지금‘ ‘여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 P45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 전, 명확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조울병을 치료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병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된다. 조울병의 한복판을 지날 때 보였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나‘를 재구성해봄으로써 위기에 처했을 때, 감정이 극도로 고양됐을 때 또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패턴을 발견한다면 그다음 찾아올 조울병의 폭압에 반응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 P78

조울병은 지난 일을반짝반짝 빛나는 행복의 기억들 또는 땅 밑으로 꺼질 듯한 암울한 기억으로 극단화시킨다. 조울병을 앓기 이전의 경험이 조울병을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조증과 울증 그 어느 시기든나를 사로잡은 감정의 소재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얻어진다.
- P81

 슬픔은 이유가 있다. ‘나‘와 ‘잃어버린 것/사람을 분리할 수 있다. 그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이 슬픔이 언젠가는 다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오로지 슬픔으로 꽉 차 있는 감정의 공간에 기쁨과 행복이 비집고 들어올것을 믿는다. 슬픔은 위로하는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반면, 우울은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주변을 채우고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의지, 목표, 흥미가 마비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간다.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 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 P123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늘 다르다. 내가 고통의 견적을 정확하게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의 주인은 고통이다.
- P133

어찌 보면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는 당연한 조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울병에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을 가져본 환자라면, 아무리 아프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모든 것을 다잃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게 중요하다. 평소 일상에 겹겹이 안전장치를 만들어 피해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 P172

우선 내 탓을 하지 않게 됐다. 사회적으로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뒀고, 내가 겪는 심리적 곤경을 다른 사람과의 보편성 차원에서 보게 됐다. 조울병 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인간이란 존재가 모두 취약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고, 그러면서도 방어적 본능, 강인함을 갖고 있어 견딜 수 있다는 것이었다.
힘들 때도 좀 더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다.
- P173

조울병은 불가역적인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계를 다독여야 하는 상대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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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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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밌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수 밖에 없지만 이 책은 진짜 재밌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작품도 좋지만 뒷얘기는 더 흥미로운 것처럼, 책도 정말 좋지만 책에 대한 뒷얘기는 더 재밌다.

알라딘 서재의 블로거 베스트셀러를 자주 체크하는데 언제나 책에 관한 책이 상위권에 몇 권쯤은 반드시 포진해있다.

이른바 책 덕후들이 좋아하는 책이니 아마도 당연한 결과일거다.

 

시작부터 흥미를 바짝 일으킨다.

난해하기로 유명하여 나같은 사람은 읽어볼 엄두도 내지 않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얽힌 이야기들은 <율리시스>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과는 달리 코메디극같다.

악필로 유명했던 제임스 조이스가 원고에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마침표를 크게 찍어 보냈는데 이 마침표를 인쇄공들이 파리똥으로 착각해 누락함으로써 작가의 분노를 샀다는 이야기, <율리시스>출간 당시에는 '야한'책으로 낙인찍혀 판금이 되자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이야기, 그리고 실제로 책을 받아 읽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고 황당해했을까를 상상하는 재미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책의 초반에 강력한 한 방을 날려주시고 난 이후에도 책에 대한 비화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문화재가 된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이 비어있게 된 이유를 찾는 중에 느닷없이 출간되지도 않은 364번 책이 중고장터에 올라오는 희안한 일을 추적하는 것, 최인훈선생이 평생에 걸쳐 <광장>을 개작하는 이야기, 그 유명한 <닐스의 모험>이 사실은 스웨덴의 초등학교 역사, 지리 교과서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샐린저는 왜 그렇게 은둔자의 삶을 살았을까 너무 궁금한 가운데 그의 다른 단편을 보려면 앞으로도 40년을 더 기다려야 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영화로 만들려면 6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내가 열거한 이 이야기들 모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테다.

덕후란 원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이 책의 두번째 좋은 점은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책의 만듦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책이 여러권 있다면 번역자 이런거 안보고 난 책 표지 디자인과 본문의 활자체를 먼저 보는 사람이다.

가끔은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들였던 적도 있다, 아니 꽤 많다.

2005년 민음사에서 나왔다는 <단원풍속도첩>을 나는 왜 몰랐을까?

이 책에 실린 사진만으로도 절판된 단원풍속도첩에 대한 물욕을 무럭 무럭 키우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은 또 왜 그렇게 표지가 아름답고 책의 만듦새가 단정하지?

열린 책들의 <천일야화>특별판은 완전 내 취향이잖아....

이 책은 구매욕구를 무럭 무럭 키운다는 의미에서 나쁜 책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여기 나온 아름다운 책들은 대부분 절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다.

웃돈을 주고 중고를 사지는 않을 것이기에.....

 

아름다운 책은 지금 나오는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설같은 책들을 사진으로나마 만나는 건 또 새롭고도 즐거운 경험이다.

시인 이상이 장정했다는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의 표지는 그 세련됨이 1930년대라곤 믿을 수 없다.

내가 좀 더 덕후질을 심하게 했다면 이 시집을 찾아서 헤매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만듦새다.

책등의 제목을 무려 수를 놓아 만들었다는 서정주의 시집 <화사집>복각본이나, 나쓰메 소세키가 직접 장정한 책까지...

수집가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 초보 덕후인 나로서는 사진으로 이 책들을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오늘은 밥 안먹어도 배부른 날이다.(물론 밥은 다 먹었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말이야...)

 

그 외에 출판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많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은 앞의 미적 만족에 이어 실용성까지 충족시켜준다.

많은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고 있는데 각 전집의 1권을 보면 그 전집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얘기는 내가 왜 문학동네 전집을 주로 읽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내공이 그리 높지 않은 무난한 독자였던 것이다. ^^

주석 달린 책들이 가지는 의미라든지, 책 제목에 숨겨진 의미 같은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책 선택이나 실제 독서에서 지침이 될만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책에 대한 애정은 때로는 출판사나 편집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작가와는 달리 나는 돌베개 출판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관심가는 책은 가능하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고 사서 보는 편인데, 그건 책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이 출판사가 돈도 안되는 테마 한국사 시리즈를 너무 정성스럽게 만들어내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역시 책 덕후라면 좋아하는 출판사 하나 정도는 짚을 수 있어야지 말이다.

물론 내공이 더 깊은 덕후라면 각 출판사마다 장단점을 다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이 책의 작가님의 글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그 외에도 원하는 책을 구하기 위한 분투기, 너무 많은 책으로 인해 있는지 모르고 같은 책을 또 사게 되는 이야기,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컬렉터의 본분지키기라고 쓰고 눈치보기라고 이해하는 이야기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 웃음은 공감의 웃음이기도 하다.

이사때마다 이삿짐 센터 일하시는 분들한테 눈치를 봐야하고, 쌓여있는 책들로 인하여 항상 너저분한 집을 감수해야 하고 하는 이야기는 이미 기본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아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이 사람은 나보다 더하네, 그래 나 정도면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니까 앞으로 좀 더 사도 돼라는 자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아주 강력한 장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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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5쪽만 읽고 조용히 책을 덮었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필요는 없다. 어차피 당신에게 혹독한 장난을 친 선배 독서가 중에서도 『율리시스』를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다. 선배들은 ‘인내하라,
그리하면 읽힐 것이다‘라는 주옥같은 충고를 하지만 어차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안 될 것을 알고 하는 거짓말이다.
- P12

놀라지 마시라, 하동호의 『한국 근대시집 총림서지 정리』에따르면 1923년에서 1945년까지 조선에서 출간된 창작 시집의 총권수는 154권이다. 22년 동안 154권의 시집만이 나온 것이다. 1923년을 비롯한 여러 해에는 2권만이 출간되었고 1928년에는 출간된창작 시집이 전무했다.  - P12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s제목의 번역이 독자들의 이해를 방해한 예에 속한다. 누구의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가 좀 더 정확한 번역이다. 원래 toll이란 교회에서 장례식을 알리기 위해서 타종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포를 쏘듯이 천천히 긴 간격으로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타종방식이다. toll을 들으면 주위에 사람들은 누군가의 장례식이 열린다는것을 알게 된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 청년과 게릴라로 활동하는 스페인 여인과 슬프고 비극적인 결말과 어울리는 제목이다.
- P149

서평가로서 조지 오웰이 가장 힘들어 한 것은 서평을 하는 대부분의 책에 대해서 과도한 칭찬을 해야 하는 구속이었다.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으며 아무런 재미를 못 느꼈기 때문에 돈 때문이 아니라면 서평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가 본심이지만 이 책이야 말로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권의 책 중의 한 권이다‘라고 칭찬을 하는 일이 조지 오웰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 P186

『닐스 홀게르손의 신기한 스웨덴 여행으로 당시 스웨덴 초등학생은 스웨덴의 지리, 문화, 자연에 대해서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곳곳에 등장하는 스웨덴 민담은 이 교과서로공부하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스웨덴 초등학생에게 스웨덴 지리와 역사를 가르치려면 일부 지역이 아닌 스웨덴의 전국을 모두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주인공 닐스의 크기를 15cm 정도로 줄여서 거위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도록 설정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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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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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단편 연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는건 힘겨웠다.

시대적 배경을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충 짐작해보건대 1920년대에서 1970년대쯤이 될 것 같다.

캐나다라고 하는 나라의 이미지는 바로 붙어있는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펼쳐지는 캐나다의 시골마을의 모습은 미국의 어디라고 해도 음 그렇구나 싶겠다.

아! 저 시절엔 캐나다도 별 수 없었구나, 여성이 온전한 인간으로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건 똑같았구나 싶어진다.

소녀에서 중년의 여인이 될때까지 주인공 로즈의 삶은 참으로 안타까운 연민을 자아낸다.

 

이 소설 속 로즈는 너무 현실적인 캐릭터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이 훈계란 이름의 '장엄한 매질'로 당연시되고 정당화되는 시골마을.

아 이건 너무 익숙하잖아.

내가 어린 시절도 아이들은 잘못하면 맞는 것이 당연했다.

얻어 맞고도 반항도 못하고 밥상머리에 앉아 주는 밥을 꾸역꾸역 먹던 기억 하나쯤은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페이지쯤 가지고 있을 거다.

하지만 폭력은 그것이 어떻게 포장되든 그저 폭력이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몸에 새겨진 자존감의 상처이고, 자신감을 잃게 하는 트라우마다.

 

로즈가 당한 매질의 폭력은 더 큰 폭력과 대비된다.

딸을 학대하고 강간할 것이다라는 짐작만으로 - 그것도 근거없이 부풀려진 소문만으로- 마을의 노인을 찾아가 죽을때까지 때리는 3남자의 사적 폭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상적인 폭력의 행사가 장엄한 매질로 정당화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끔직한 범죄를 만들어낸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런 범죄적 폭력이 일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로즈가 다니는 학교는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며 언제든 강간의 위협이 상존하는 곳이다.

그저 잘 피해다니고 조심하라고 할 뿐 보호는 없다.

한 명의 소년과 은밀한 만남을 약속했던 마을의 다른 소녀는 집이 빈날 약속한 소년을 기다리지만 실제 찾아오는 것은 3명의 소년이다.

그들은 그것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유희일 뿐이다.

그들은 강간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으며, 멀쩡해보이는 어른으로 자라 잘, 아주 잘 살아간다.

 

이렇게 자란 로즈가 자존감 충만한 어른으로 자라기는 쉽지 않다.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열렬하게 고백하는 부자 청년 패트릭과의 결혼으로 이어지지만, 이 결혼은 시작부터 파경을 예고하고 있다.

패트릭은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사랑할 뿐이고, 로즈를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의 거지소녀로 비유한다.

그는 로즈의 환경을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할 수도 없으며 그저 시궁창같은 환경에서 로즈를 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즈는 그런 패트릭을 사랑할 수 없지만, 한번도 제대로 사랑받아보지 못한 이 소녀는 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에만 사로잡혀 패트릭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로즈가 결혼을 승락하는 이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자아와 인정욕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로즈의 극도의 분열 상태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패트릭과는 10년만에 이혼하지만 로즈의 이런 분열은 책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결혼 중 불륜의 대상이었던 친구의 남편 클리퍼드와의 사랑은 로즈는 절박했지만 클리퍼드에게는 그저 조금 심각한 장난질일뿐이었다.

그래서 사랑할만한 사람을 만났을 때도 로즈는 결코 자신이 일생동안 받은 상처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일생에 걸친 자존감의 상처가 사람을 어떻게 삶의 고비 고비마다 단단한 방어막으로 숨어 들게 만드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소설 속 로즈는 그런 상처로 가득한 여자고 인간이다.

소설의 말미쯤 되면 그래도 이혼도 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결국 찾아 사회적 성취도 어느 정도는 이루었으니 뭔가 자각하고 깨어있는 로즈를 기대했지만 그런 로즈는 끝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은 이게 현실이다.

우리 삶에서 극적인 반전은 그리 흔한게 아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상처받은 대로 끝까지 안고가는게 실제 현실이다.

로맨스 소설처럼 타인에 의해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고 이제 불행 끝 행복시작이란건 그야말로 로맨스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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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29 0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며 빨간 머리 앤이 떠오르더라고요. 배불리 먹이고 믿고 사랑해 주는 친구와 양육자들. 로즈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왔다면 해피엔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ㅎㅎ 오늘 날이 참 차네요. 따뜻하게 입으세요~

바람돌이 2021-01-30 00:30   좋아요 1 | URL
먼저 배불리 먹이고가 안돼요. 많이 가난하거든요. 인간이 인간으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가난이 낭만이 될 수 있는건 최소한 먹고 입는 문제는 해결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오늘 날시가 많이 추웠는데 mini74님도 따뜻한 밤 되세요

수이 2021-01-29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아직 읽지 못했는데 로즈 이야기 듣고 있노라니 나혜석 언니 떠오르네요. 아무리 강단 있고 할 말 모두 했지만 시대가 받아주지 않아서 행려병자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저도 곧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폭력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백번 공감이요.

바람돌이 2021-01-30 00:33   좋아요 2 | URL
음.... 나혜석과는 조금 결이 달라요. 나혜석은 말씀대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적인 생각으로 인해 그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면 로즈는 아주 평범한 삶조차도 환경의 억압으로 자신이 가진 기본적인 자아조차도 억눌리는 주인공이예요. 그리고 아직 로즈는 좀 더 기회가 남았어요. 책의 마지막에 중년의 로즈가 있는데 혹시 작가가 이 이후 이야기도 더 썼을지도 모르죠. 그럼 또 다른 로즈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