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말이 옳아요. 랑베르, 절대적으로 옳아요. 당신이 지금 하려는일을 나는 결코 막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하려는 일은 내가 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뭔가요?" 랑베르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를 예로 들면, 성실성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거예요."
- P194

 페스트 발생 초기만 해도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뚜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사랑하는사람의 얼굴과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행복해했던 어떤 날,
이런 것들은 모두 분명하게 기억났지만, 그들이 그 사람을 다시 그려보는 바로 그 순간에, 또 이제는 그렇게도 먼 곳이 되어버린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그 시기에 그들은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페스트가 둘째 단계로 접어들자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이지만, 얼굴에 살이 없어져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 P2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01-0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도 성실성이겠지요.
정부의 방침에 성실히 따라주는 의료진과 국민들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경제적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정부에 항의하는 업주들의 시위가 생기기도 해요.
영업을 할 수 없으니 이해가 되어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책을 저는 홍신문화사 걸로 오래전 읽었는데 좋은 글 뽑아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21-01-06 13:32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더라구요. 예전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실감하면서 읽지는 못했을것 같아요.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을 까뮈는 이렇게 써내려간걸 보면서 문학의 힘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제목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 뭘까 잠시 궁금했었는데, 다행히 책의 서두에 바로 나왔다.

'void' 빈공간이다.

건축이란 뭐라고 어려운 말을 갖다 붙여도 결국 본질은 인간의 거주, 생활을 위한 공간 창출이다.

동양에서처럼 기둥을 중심으로 하든, 서양에서처럼 벽으로 만들든 어쨌든 말이다.

이 책은 그 공간에 대한 인식이 자연환경, 역사에 따라 동서양이 어떻게 다른가에서 출발한다.

대충의 기존 리뷰들을 살펴보니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넘칠 정도로 많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되지 싶다.

1장에서 4장까지 다소 길게 동서양의 생각의 차이와 그것이 건축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는데 사실 새로운 의견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정리해놓았다는게 맞겠다.

그런데 굉장히 잘 정리해놓았다. 이대로 강의 자료로 삼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를 바둑과 체스의 차이로 비유한다든지, 만화 드래곤볼을 동서양의 문화 융합의 징표로 설명한다든지 하는 부분은 아주 신선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더 궁금하다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으면 되겠다.

내 기준으로 사피엔스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총균쇠는 진입장벽이 좀 있어 인내를 필요로 한다.

 

 

 

 

 

 

 

 

 

 

 

 

 

 

 

 

신라와 고려의 문화차이가 수도의 위치때문이라고? 정말???? 

 

4장에서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두개의 문화유전자가 결합된 예를 간단하게 설명하는데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석굴암이다. 사실상 석굴암은 동북아 문화에서 보기 힘든 기하학적 완결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인데 저자의 논지대로라면 이런 기하학적 완결성의 서양 건축의 특징이다.

저자는 이것을 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한반도 남단의 바닷가에 위치해서 대륙에서 오는 문명과 해양에서 오는 문명을 동시에 받을 수 있어서일거라고 추측하는데 이 대목에서부터는 상당힌 난감해진다.

이 시대에 대륙에서 오는 문명과 해양에서 오는 문명이 뚜렷이 구별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통일신라의 유물 중에는 로마 교황의 칼이나 사산왕조페르시아의 유리그릇들, 원성왕릉의 아랍인 석인상 등 외래 문물의 영향을 볼 수 있는게 제법 많이 있지만 이것이 육로를 통해 왔을지, 해양을 통해 왔을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동시에 동쪽 해양으로는 일본 외에는 없는 상황에서 비단길 육로를 통해 오는 상인들이나, 바닷길 해로를 통해 오는 상인이나 사실 그 나물에 그밥이라고 해야 하는게 맞겠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고려에서 석굴암과 같은 서양식 관념의 문화현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수도가 개성이었기 때문에 대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것 역시 문제가 많은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이 대부분 중국을 거쳐 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통일신라시대는 중국의 왕조가 당나라였고, 당은 외래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당과 교류하던 신라도 그 국제적 감각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웠던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일것이다.

고려 역시 마찬가지다. 개성이 내륙이라고 하지만 주요 무역항은 벽란도였다. 개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고려는 이곳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경주나 벽란도의 위치가 문화를 받아들이는 종류를 달리할 정도로 큰 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려시대 중국은 송나라다. 송의 문화는 북방민족의 침입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상당히 국수주의적으로 변한다. 그를 통해 문화를 수입하던 고려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 중국을 통해 한번 걸러진 문화를 받아들이니 문화의 다양성에서 이전 신라에 비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추측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는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문화의 차이를 수도의 위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다음 설명으로 나오는 북한이 대륙문화에 가까워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고, 남한이 해양문화에 가까워 자본주의 국가가 들어섰다는 말은 정말 아니한만 못한 말이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이 좋은 책의 유일한 옥의 티라고 할까? (저자가 개정판을 낸다면 이 부분은 정말 삭제해줬으면 좋겠다. 무식하다고 욕들어먹기 딱 좋다.)

 

 

 

도자기로 보는 문화의 창조와 전파, 융합 -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장면을 들여다보다.

 

5장에서는 삼각돛의 발명으로 공간이 압축되고, 도자기 수출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무역의 등장을 예로 들어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되기 시작함을 설명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다가 역시 옥의 티가 눈에 띈다.

173쪽에 보면 "서양 사람들은 도자기를 만들 수 없었다. 16세기 서양의 그림들을 보면 당시 유럽 귀족들은 금속으로 된 무거운 식기를 사용하고 있었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틀린 설명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기와 자기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쉽게 도자기라고 말하고 사기로 된 그릇을 다 뭉뚱거려서 도자기로 얘기하는데 도기와 자기는 엄연히 다르다.

도기는 보통 1300도 이하의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말하는데 이 때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내면 토기, 유약을 바르고 구워내면 도기라고 한다.

이 도기는 그리스 시대부터 유럽에서도 만들어졌었다. 그리스의 암포라 같은걸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유럽이 만들지 못했던 건 바로 자기다.

자기는 13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그릇으로 도기에 비해 훨씬 단단하고 표면의 광택이 빛나는 그릇이다.

중국 송대에 자기기술이 발명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청자와 백자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자기를 만든 기술은 당대의 첨단기술이다.

13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그릇을 깨지 않고 구워낼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산 방법이었을 것이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그렇게 조선 자기에 열광하고 조선의 도자기공들을 포로로 끌고 갔던 것은 당시 일본에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였다.

우리가 고려 때 만들던 것들을 일본은 조선 후기가 되어서야, 그것도 조선에서 끌고간 도공들에 의해서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먼저 했다고 다가 아닌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활판인쇄술이 중국 송에서 최초로 발명되고, 금속활자가 고려에서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발명되었지만 그것이 르네상스나 종교개혁과 같은 지식의 전파를 통한 사회변혁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서양에서 활판인쇄술이 사회적 개혁을 이끌어내는 견인차역할을 했던 것은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는가 하는 사회적 조건이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도자기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는 서양으로 수출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당대 유럽의 부의 상징은 넒은 픽처레스크 정원에 중국식 정자를 세우고, 그 정자 안에 중국 도자기 티세트를 가득 채워 전시하는 것, 그리고 귀부인들이 중국산 비단 드레스를 입고 중국에서 수입한 차로 만든 홍차를 마시는 오후의 티파티- 영국에서 애프터눈티라고 부르는 그것을 여는 것이었다.

일본의 도자기는 중국의 영향력보다는 약했지만 대신 도자기를 쌌던 종이에 그려졌던 판화 - 우키요에가 서양의 문화계를 강타한다.

서양인들은 중국과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고, 아마도 이것은 역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당대 폐쇄적인 문화로 인해 수출이나 무역에 무관심했었던 것이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이후의 문화지체의 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항상 감탄할 자세를 갖춘 사람인데, 유일하게 감탄하지 않는게 하나 있다.

바로 도자기다.

어느 나라의 도기를 보든 자기를 보든 음 괜찮네 나쁘지 않네 정도 이상의 감탄사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자기가 세계 최고이기때문이다. 이건 진짜다. ㅎㅎ

평소 박물관 나들이를 자주 하는 덕분에 도자기에 관해서는 약간의 안목이 있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나의 부실한 안목으로 봐도 우리나라의 청자 백자 분청사기를 뛰어넘는 나라는 없었다. 자기 기술의 원조인 중국을 포함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그리고 전파와 융합을 통과했을 대 문화발전의 시너지가 더 상승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이것이고 이 책에서 줄곧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서양의 성당이나 궁정 건물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서양의 건축 공간은 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 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P74

 

유럽의 교회들을 둘러보다 보면 밖에서 볼 때 위압감, 안에서 볼 때 갑갑함이 공존한다.

아 여기서 쉬고 싶다거나 이곳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든다.

내가 죄가 없을 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뭐 그리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도 않은데, 태어날 때부터 탈탈 털어 죄를 토해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연과의 어울림을 강조하고 어떻게든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려 하는 한국적 미감에 익숙한 내가 서양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다. 이래서 문화적 토양은 중요하다. 나도 모르게 익숙한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고 좋아하니 말이다.

밀라노의 대성당은 정말 아름답다. 앞에 서면 눈이 확 뜨인다. 하지만 오래 보고 있을만하지는 않다.

내부로 들어가면 더하다. 내부 공간이 엄청나게 넓지만 신기하게도 갑갑하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가장 좋은 곳은 희안하게도 옥상이었다.

옥상 역시 온갖 조각들과 고딕의 부산물인 버팀벽들로 화려했자민 그래도 하늘이 있어 숨통이 트였다.

밀라노 대성당을 보는데 걸린 3시간 정도 중 반을 옥상에서 머물렀다.

 

 

 

성당에서 떨뜨름하던 우리집 애들도 이곳에서만은 신이 났다. (요즘은 이런 사진 올리려면 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초상권자의 허락을 정중하게 받은 사진입니다. ㅎㅎ 처음에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을 보여줬더니 딸이 화냈다.범죄자같다고....)

이 사진의 주인공은 딸이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하늘이다.

한국의 미감에 쩔어있는 나는 이곳 탑들 사이로 하늘이 들어오면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 루이스 칸 이들의 공통점은?

 

사실상 6장부터가 이 책의 진짜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진짜 내가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분야라 음음 그렇구나 이런 감탄사를 열심히 뱉어 가면서 읽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다는 건 언제나 책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결론적으로 서양의 근대 건축은 기술 혁신과 동양 건축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2세대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연 사람이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다.  - P208

 

건축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이 두사람은 안나오는 곳이 없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들이 있는데, 이 책을 보다 보면 이들이 왜 위대한 건축가로 불리는지 정리가 된다. (그렇다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은 일목요연하게 아주 잘 정리된 책이라는 것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서양 건축에 철골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기둥식 구조라는 동양 건축공간을 만들어낸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이라는 새로운 건축공간이 서양에서 탄생했다. 르 코르뷔지에 역시 필로티 구조(우리나라에 1층에 주차장을 둔 그 많은 빌라들을 떠올리면 된다.),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을 이야기 하고 건축에 적용하는데 이 역시 동양식 건축 개념이다.

필로티라는건 결국 다른 말로 하면 벽으로 무게를 지탱하는게 아니라 동아시아 건축물처럼 기둥으로 벽을 지탱하는 것이고, 따라서 벽이 건물을 받칠 필요가 없으니 평면과 입면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유리를 통해 외부 공간을 내부로 불러오는 것이다.

사실 미스 반 데어 로에나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보면 뭐가 그리 위대한건지 잘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난 그걸 내가 무식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한 구조였기 때문이라는걸.

우와 하고 감탄을 하려면 기존에 전혀 못보던 것이어야 하는데, 이들의 새로운 건축공간은 동양인인 나에게는 그리 새롭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걸 살짝 돌려 서양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아주 경이로운 전환이었을거라는걸 쉽게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2차대전후 부흥의 시대를 거치면서 건축이 잠시 국제주의 양식 - 다른 말로 하면 세계 모든 곳에서 똑같은 오로지 효율성과 기능성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건축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기를 거치고 난 이후 이에 반기를 드는 건축가들이 등장한다. 루이스 칸과 안도 다다오가 대표적이다.

루이스 칸의 건축같은 경우 '소크 연구소'가 워낙에 강렬해서 인상에 남는 건축가였다.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 대신에 돌로 포장된 중정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크 연구소의 입면으로 하늘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는 멕시코 건축가 바라간의 조언을 받아들여 만든 소크 연구소의 중정은 사진만으로도 강렬하다.

동시에 이런 공간이 그리 낯설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동양의 여백의 공간이 그 곳에 아주 강렬하게 메워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여백 공간이 아득함과 깊이를 강조한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루이스 칸의 경우 여기에 더해 강렬함이라는 요소를 더 얹어놓았다.

이 건물은 꼭 직접 보고싶은데 이거 하나를 보자고 텍사스를 가자니 여행지로서 미국이 너무도 안 끌려 고민이다.

언젠가 남미를 간다면 중간 경유지로 들러볼까 희망 중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철학을 잘 보여주는 말이 이 책에 나온다.

 

"건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끔 해 주는중간 장치다. 중정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자연은 매일 매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중정은 집 안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핵이며 빛, 바람, 비와 같은 자연의 현상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 P307

 

가장 서양적인 재료인 콘크리를 소재로 노출형태로 사용하는 그의 건물 자체는 지극히 서양적이다.

하지만 그가 만든 건축물은 건물은 일부에 불과하다.

진입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시작된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관을 요약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자연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란 의미도 있지만, 인공적으로 배치되고 만들어진 자연까지를 포괄한다는데서 안도 다다오의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사실상 체험형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설명이나 도면, 사진만 봐서는 그의 건축의 뛰어남을 다 알기가 힘들다.

그가 만들어놓은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함과 낯섬을 동시에 느낄 수가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이질적인 감정의 조합이 어디서 유래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안도 다다오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그 답이 나와 있다.

 

그의 건축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를 사용하는데, 큰 창문과 복잡한 진입동선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자연과 교류한다는 면에서는 동양적인 성격을, 벽 구조를 가지면서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평면과 단면을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양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동서양 문화 유전자의 교배를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 수 있었다.- P328

 

결국 이 뛰어난 4명의 건축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그 창조의 연원이 무엇인가를 따라가면 결국 서로 다른 생각의 교배와 동서양 건축관의 독창적 조합에 그 연원이 있다.

새로운 생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답이다.

 

현대로 오면 더 이상 공간적 조합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세계는 이미 하나로 뭉칠만큼 뭉쳐서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어져버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생각은 이제 어디서 오는가?

저자는 그것을 이제 지역이 아니라 학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데서 창조의 힘이 나온다고 전망한다.

더불어 디지털이 창조하는 신세계와 어떻게 접합하고 통합하느냐 역시 새로운 화두이다.

그런 시도들은 현대의 건축가들 중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나 동대문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같은 건축가들에게서 어느정도 열매를 맺고 있다.

그들의 건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를 소개한 글도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찔끔거리며 건축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을 보았지만 이 책으로 인하여 기존의 내 지식들을 하나로 정리해낼 수 있었다.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역시 배움이 깊어진다.

 

 

덧붙이는 글 - 국내에 있는 안도다다오의 건물 중 '뮤지엄 산'에 대하여

 

앞에서 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체험형 건축이라고 얘기했다.

그걸 절감할 수 있는 건축물이 다행히도 국내에 있다.

제주도에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3개나 있지만,(나는 그 중 1개만 가봤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축관이 아주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안에 있는 '뮤지엄 산'이라고 생각한다.

백양나무 산책로, 조각과 물과 바람이 어우러지는 진입로는 동양적 미적 체험의 공간이다.

미로처럼 돌다보면 도대체 구조를 짐작하기 어려운 건물 내부는 다양한 외부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여 실제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돌아다닌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물마다 다르게 빛을 끌어들인 면 역시 예사롭지 않다.

미술관을 나와 제임스 터렐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는 아 여기가 경주인가 싶은 고분군을 형상화한 정원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이 미술관의 유일한 단점은 미술관 아래로 골프장이 풍경으로 들어오는거다. ㅠ.ㅠ)

이 책에 소개 된 물의 교회나 바람의 교회는 당분간 가기 힘들테지만, 뮤지엄 산은 특히 수도권에 계신 분들이라면 하루 나들이로 충분히 다녀올만한 곳이다. 강력 추천한다.

아 그리고 기왕 뮤지엄 산을 간다면 또하나 강력 추천하는게 제임스 터렐관 전시 관람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사람은 설치미술가 또는 대지미술가라고 분류할 수 있는데 전시 작품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여기까지 가서 제임스 터렐을 안본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난 설치미술이나 대지미술에 관심도 없고 뭘 모르겠더라라는 사람이 대부분일거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이곳 제임스터렐의 설치 미술은 좀 다르다.

역시 일종의 체험형 미술인데 뭣도 몰라도 즐겁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여기 데려갔던 사람중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너무 어린 아이들 말고 초등학생 이상 정도면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진짜로...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이곳의 관람료가 만만치 않아서이다.

뮤지엄 산의 입장료가 19,000원으로 엄청 비싼데,  제임스 터렐관 입장료는 따로 내야 한다. 무려 16,000원이나 더....

합계 입장료가 35,000원이다. 미취학 아동은 무료고, 학생은 30%정도 할인해준다.

그래도 비싸긴 하다. 하지만 제임스 터렐관이고 미술관이고 들어갈 때는 돈 생각이 나지만 나올 때는 돈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보장한다.

 

내가 찍은 사진 중에는 이곳을 제대로 표현한 사진이 별로 없다.

그나마 건질만한건 요정도인데 뮤지엄 산의 홈페이지 들어가면 훌륭한 사진들이 많이 있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05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직접 발로 뛰며 찍으신 사진이 더멋지네요.제임스 터렐 와이프가 한국인여서 한국에 미술관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네요. 저는 구겐하임하고 휘트니에서 열렸던 회고전 정말 인상 깊었는데 이분 작품은 전혀 정보 없이 가야 더 감동적인것 같아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바람돌이 2021-01-05 23:46   좋아요 1 | URL
아... 제임스 터렐의 부인이 한국인인건 처음 알았네요. 국제적인 스콧님 부러워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정보없이 가야하는거 맞아요. 그래서 저도 저 글에 강력추천하면서도 전시 내용이나 이런건 하나도 안쓴거구요. ^^

cyrus 2021-01-05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따님의 모습이 있는 사진을 보면서 검은색이 따님 머리카락으로 생각했어요. 바람돌이님이 따님 얼굴을 가린다고 검은색으로 처리한 거 맞죠? ^^;;

바람돌이 2021-01-05 23:48   좋아요 1 | URL
엇 검은색 딸 머리카락 맞는데요. 저 사진은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은 사진이예요. 이날 옥상이고 바람이 좀 불었었거든요. 제 뽀샾능력이 저정도만 되도 울 딸이 제가 모자이크 처리한걸 거부하지 않았을걸요. ㅎㅎ

mini74 2021-01-05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뮤지엄 산. 너무 가고 싶어요 *^^* 저도 사실 이 책을 읽다가 덮었다가 다시 또 읽다가 덮다가 반복중입니다. 뭔가 거슬리고 찝찝해서 다시 총균쇠를 들었다가( 이 책이 한국의 총균쇠? 저자도 총균쇠 인용이 많아서요 ㅠㅠ) 바람돌이님 글 읽으니 어떻게든 다시 읽어내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바람돌이 2021-01-05 23:52   좋아요 2 | URL
뮤지엄 산은 찾아보니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휴관중이네요. 미술관이 어디 가는거 아니니 상황이 좋아지면 언제든 갈수 있겠죠. 안의 전시도 그때 그때 다르겠지만 제가 갔을 때는 첫번째는 별로였고, 두번째는 좋았어요. 건축만으로도 여긴 충분히 가볼만해요.
이 책을 한국의 총균쇠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연구의 스케일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달까? 이 책은 연구서라기보다는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굉장히 잘 정리하고 설명해주는 친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mini74 2021-01-05 23:54   좋아요 2 | URL
출판사에서 이 책을 한국의 총균쇠 라고 ㅠㅠ 선전 하더군요 좀 과하죠 ㅎㅎ

바람돌이 2021-01-06 00:50   좋아요 1 | URL
광고란 정말.... 과하다에 한표 던집니다. 아마 저자님도 같이 한표 던질듯한데요. ^^

라로 2021-01-06 0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캬!! 따님 사진 예술이에요!!! 따님 입은 옷이랑, 하늘이랑, 두 탑이 양쪽으로 대칭을 이수는 것 하며, 따님의 표정까지!!! 작품으로 어디 출품해보세요 ~~~!!👍

바람돌이 2021-01-06 00:52   좋아요 1 | URL
저 옷 중에 위에 분홍색 스웨터는 제옷입니다. 이 때 너무 추워서 얼어죽을뻔해서 현지 조달로 사입은거였는데 녀석이 뺏어 입은거였어요. ㅠ.ㅠ 출품은 무슨.... 여기서 칭찬받으면 그게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

psyche 2021-01-06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사진이 예술이네요! 너무 멋져요
그리고 도기와 자기에 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 두개가 다른 건지 몰랐어요.
말씀하신 뮤지엄의 산은 한국에 가면 꼭 가봐야겠네요. 언제가 되어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ㅜㅜ

scott 2021-01-06 09:46   좋아요 0 | URL
프쉬케님 진짜 사진 잘찍으셨죠
저도 페이퍼 보면서 구도와 각도에 놀람!

바람돌이 2021-01-06 13:35   좋아요 0 | URL
완전 완전 칭찬 감사합니다. 근데 한 천장쯤 찍으면 저런 사진 하나 나옵니다. 우연히 얻어걸리는거지요. ㅎㅎ

scott 2021-02-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멋진 사진이 들어간 리뷰 이달의 당선작!
2관왕 ㅋㅋㅋ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0^

바람돌이 2021-02-10 23:45   좋아요 1 | URL
scott 님도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상금이 들어오면 항상 책을 사는데 상금보다 더 들더라구요. ㅎㅎ
scott 님도 설연휴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 복도 듬뿍 받으세요.
 

그 점에서 우리 시민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자신들만 생각했다. 다시 말해, 재앙을 믿지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본주의자들이었다.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인 것, 곧 지나가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쪽은 사람들,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못한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생각은 재앙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사업을 했고, 여행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갖고 있었다. 미래와 여행, 토론을 금지하는 페스트를 그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 P51

당시 용기와 의지, 인내심이 얼마나 급격히 허물어졌던지, 그들은그 수렁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해방의 날은 결코 생각하지 않고 더이상 미래도 바라보지 않은 채, 말하자면 항상 두 눈을 내리깔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고통을 숨기고 방어자세를 취하면서 싸움을 포기하는 그런 신중한 방법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하고 싶었던 의기소침한 상태는 편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앞으로 다가을 재회를 상상하면서 페스트를 잊을 수 있는 수많은 순간들을 사실상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심연과 정상上 중간에 좌초되어 매일같이 정처 없이 헤매고 메마른 추억 속에 버림받은 채,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떠다니면서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지 않고는 힘을얻을 수 없는, 방황하는 유령처럼 살았다.
- P91

그러나,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인데, 아무리 불안하고 고통스러워도, 또 텅 빈 마음을 견뎌내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초기에는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사실 냉정을 잃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시민들의생각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모두가하나같이 고뇌에 빠져 있는 가운데, 그들은 사랑의 이기적인 성격 덕분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고, 페스트를 생각할 때도 페스트 때문에 이별이 끝도 없이 계속될까봐 염려스럽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전염병이 한창일 때도 그들은 건전한 여유 같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침착함으로 착각했다. 절망감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불행에도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 P95

문이다. 그러면서도 질병은 곧 멈출 것이고 자기들은 물론 가족들도그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여전했다. 따라서 뭔가를 반드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에게 페스트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 것처럼 언젠가는 떠날 불쾌한 방문객에 불과했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긴 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 P113

초기에는 이번 질병도 다른 질병들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종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향락을 떠올린 것이다. 낮 동안 사람들의 얼굴에 어려 있던 모든 불안은 뜨겁고 먼지투성이인 황혼녘이 되면 일종의 격렬한 흥분으로, 모든 시민을 흥분시키는 서투른 자유로 귀착되고 만다.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나 같은 인간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은 그들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하나의 사건이다.
- P145

인간은 악하지 않고 오히려 선한 존재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많이 알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그것을 미덕이나 악덕이라고 부른다.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는 무지의 악덕이다. 살인자의 영혼은 맹목적이며, 통찰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않으면 진정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타루의 주도로 만들어진 보건대가 아무리만족스러워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또 이런 이유 때문에 서술자는 의지와 영웅심을 침이 마를 정도로 과도하게 찬양하지는 않을 것이며, 적절한 정도로만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밌는 책이지만 너무 진지해서 웃기는 대목은 없더만 거의 마지막 페이지네서 빵 터졌다. 특히나 저 ‘철학적 개념이 있는‘계단이라니...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말에는 프랑스 해체주의철학자 데리다를, 1990년대 들어서는 들뢰즈를 인용하지 않으면 무식한 건축가 취급을 받았다. 『해체주의』, 『천개의 고원』, 『주름] 같은읽어도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던 글을 설계에 적용하고자 노력하는 학생이 많았고, 심지어 설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건축학과를 졸업한후에 철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관념이 실재를 이끌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해체주의의 대표적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 Peter Eisenman(1932~)의 경우 주택 설계를 했는데 안방 침실의 방 가운데가 갈라져서 침대가 둘로 나뉜 디자인을 하여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없거나, 건물의 모양이 필요 이상으로 기괴하게 복잡해서 복잡한 모양 틈새로 방수가 제대로 안 돼서 시공 후 비가 새는일이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어떤 계단은 올라가도 막혀 있는 ‘철학적 개념이 있는 계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 P339

그런데 건축은 어떻게 시간을 뛰어넘어, 시대가 다른 사람 간에도 소통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걸까? 건축 공간이 시간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회화나 음악과는 다르게 건축만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도구는 비어있는 공간이 보이드공간이다 - P25

그런데 밀과 벼는 재배 방식에 차이가 있으며, 이 재배 방식의 차이가가치관의 차이를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벼농사 지역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 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 P62

이런 이유에서 서양의 건축 공간은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 P74

어두운 실내에서 밖을 보면 자연은 밝고 처마 부분은그림자가 져서 어둡게 된다. 이때 녹색과 자줏빛을 채도가 낮은 차분한톤으로 칠하면 그림자 진 상태에서 칙칙해 보이고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단청 색깔처럼 채도가 높은 밝고 선명한 톤으로 칠하면 단청이 그림자에 들어가 있어도 밝은 바깥 경치와 연결돼 보인다. 나는 이런 경험을 불국사의 어느 처마 밑에서 할 수 있었다. 단청의 색깔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건축물이 자연에 흡수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건물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제3자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디자인적 판단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 P79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은 밀 농사의 혼자 농사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커졌고, 외부와 단절된창문 없는 벽 중심의 건축으로 바깥과 교류가 적은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건축물 역시 독립된 개별적인 건축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축적 개인주의‘가 발전했다. 반면 벼농사는 집단 농사 방식으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였으며, 많은 강수량 때문에 사용하게 된 재료인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건축 양식은 외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강수량 차이로 인해서 서양은 독립된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두 문화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조금 더 비교해 보자.
- P80

서양의 문화는 양식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이는 마치 체스에서 각각의 말들이 다른 형태의 규칙과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양식 혹은 규칙을만들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것이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반면동양의 나무 기둥과 보를 가지는 구조 양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은 놓인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다. 물론 여기에도 풍수지리 같은 보이지 않는 규칙은 존재했지만, 그 풍수지리라는 규칙도 물과 산과 사람의 상대적인 관계에관심의 초점이 있다. 이렇듯 동양 건축은 양식보다는 상대적인 관계를중요하게 여겨 왔다.
- P117

15세기에 들어서 삼각돛이 발명되고 난 후 공간이 압축되었고, 16세기에는 해상 무역 길을 통해서 도자기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7세기에는 동양의 책이 번역되어서 유럽에 전파되었다. 패러다임은 꾸준히 변화하여 그 결과 18세기 들어서는 조경 디자인에서부터 서양의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픽처레스크라는 조경 디자인 양식으로 확립되었다. 픽처레스크란쉽게 설명하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드는 정원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18세기 조경가 험프리 렙턴 Humphrey Repton(1752~1818)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언덕이 될 수도, 평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원을 디자인할 때,
정원 내에 위치한 개인의 시선에서 자연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렙턴은 보는 이의 위치가 정원 내 구성 요소 간의 관계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 P186

 픽처레스크 정원을 거니는 사람들은 본인이 여러 다른 위치에서 다른 투시도적 이미지를 바라본 경험들을 바탕으로 정원의 전체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구성했다. 서양 정원 디자인에서 상대적 관계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된 것이다.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은 서양 문화에 있어서 경직된 기하학에서 탈피하여 상대성에 가치를 두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점이 된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P191

결론적으로 서양의 근대 건축은 기술 혁신과 동양 건축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2세대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연 사람이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다.
- P208

기본적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의 5원칙은 동양의 기둥식구조의 건축 양식이 서양에 전파되어 산업혁명의 새로운 재료인 콘크리트와 함께 만들어진 문화적 변종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코르뷔지에의 철근콘크리트 기둥 구조가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사용하면 당연히 만들어지는 현상이니 동양 문화의 영향은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 재료가 반드시 기둥 구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뒤에 나오는 루이스 칸이나 안도 다다오 같은 건축가는 철근콘크리트 재료를 기둥 구조로 사용하지 않고 벽 구조체로만 사용했다. 코르뷔지에가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기둥식으로 사용한 아이디어는 그의 창의적인 생각이다. 나는 그 창조적 생각이 만들어지는과정 중에 동양 문화의 영항을 받은 당시 유럽의 문화적 패러다임이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 P244

바라간은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에 있는 소크 연구소 현장에서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 대신에 돌로 포장된 중정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크 연구소의 입면으로 하늘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바라간은 칸에게 비움을 통해서 진정한 자연을얻으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 P290

안도는 "건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끔 해 주는중간 장치다. 중정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자연은 매일 매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중정은 집 안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핵이며 빛, 바람, 비와 같은 자연의 현상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 P307

그의 건축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를 사용하는데, 큰 창문과 복잡한 진입동선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자연과 교류한다는 면에서는 동양적인 성격을, 벽 구조를 가지면서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평면과 단면을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양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동서양 문화 유전자의 교배를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 수 있었다.
- P328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패션, 건축, 산업 디자인 등 각종 디자인 분야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어 왔다. 패션은 옷감을 가위로 자르고, 바느질했으며, 건축에서는 돌을 쌓고, 나무를 깎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각 분야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제작 방식에 근거해서 서로 전혀 다른, 다양한 결과물을 창조해 낼 수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컴퓨터에서 디자인하고, 스크린상에서컴퓨터로 만든 3차원 그림을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그 형태를 CADCAM(Computer Aided Design, 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을 이용해서 제작하는 비슷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매스 미디어의 과다한 노출로 인해 서로 점점 더 베껴 가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 분야의 ‘다양성‘이 사라져 가는 추세다. 기술에만 의존하는 창조는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20세기 중반국제주의 양식에서 경험했다.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 P356

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 P396

디지털과 융합될 시대는 기술이 너무 압도하기 때문에 개인이사라지고 획일화될 가능성은 더 높다. ‘과연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인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려면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눈이 필요하다. 앞으로사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인간다움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4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주일째 눈이다나는 창가에서 밤을 바라보고 추위의 소리를 듣는다이곳의 추위에는 소리가 있다아주 특별하고 기분 나쁜 소리건물이 얼음 속에 끼어 짜부라지면서 끙끙대고 삐걱대는가 싶을 정도로 불안한 신음을 토해낸다 시각 교도소는 잠들어 있다여기서 한동안 지내다보면  건물의 신진대사에 익숙해져 어둠속에서 교도소가 거대한 짐승처럼 숨을 쉬고간간이 기침을 하고뭔가를 꿀꺽 삼키는 소리까지 들을  있다교도소는 우리를 집어삼키고 소화한다우리는 그의  속에 웅크린 채 번호가 매겨진 주름들 속에 숨고 위장의 경련들 사이에서 잠을 청한다그저   있는 대로 살아간다.- P11

 

오랫만에 책을 열면서 마음이 설레었다.

저 첫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어느 춥고 바람소리가 거친 어딘가의 검은 숲으로 이동했다.

주인공은 교도소에 있다는데, 그래서 건물이 추위에 얼어붙은 숨을 쉬고, 기침을 한다는데 나는 왜 숲으로 갔을까?

생각해보니 아주 다른 곳은 아니었던듯하다.

나의 숲은 바로 그 건물을 둘러싼 검은 숲이었고, 나는 멍하니 숲의 가장자리에서 그 커다랗고 낡은, 추위에 떠는 건물을 보고 있었다. 책에서는 이 교도소가 숲이 아니라 강가에 있다고 얘기되어 지는데도 말이다.

 

이런 기묘함은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된다.

주인공은 교도소에 있고, 그는 밤마다 죽은자들을 만난다.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 아내인 위노나, 그리고 반려견 누크.

이들은 주인공 폴 한센이 평생에 걸쳐 가장 사랑한 이들이고, 이들과의 삶을 되새김으로써 어쩌면 감옥에서의 나날들을 그냥 살 수 있는 대로 살아간다.

 

위노나와 누크는 조금 더 늦게 찾아왔다. 평화로운 한때였다. 우리는 잠시 서로 꼭 붙어 있었다. 산 자고 죽은 자고 상관없이, 우리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을, 약간의 온기와 위안을 서로에게 주고 싶어서.   - P79

 

 

이야기는 폴이 저 세 사람과 살아왔던 일생을 되돌아보는 한 축과, 현재 교도소에서의 생활이 또 한축이다.

두 개의 삶을 대하는 폴의 태도는 내가 책의 서두에서 숲의 가장자리에서 건물을 보는 태도와 비슷하다.

한없는 연민과 애정으로 넘치지만 폴은 주인공이 아니라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한다.

어쩌면 폴은 사랑하던 이들과의 삶을 돌아보고 되새김질하는 것만이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들의 삶은 슬펐다고 해야 할까?

아니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의 삶에도 빛나는 순간들은 무수히 존재했고, 그들은 그 빛나는 순간을 영원히 살고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참으로 가혹하게도 그 변화의 흐름은 이들의 지속하고픈 일상을 거부하고 배제한다.

아버지 요하네스가 68혁명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에 절대로 편승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도,

아들 폴이 공동체적 가치가 무너지고, 자본만이 최상의 가치가 되어버리는 삶에 편승할 수 없었던 것도,

그들에게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달라지는 세상은 너무 가혹하다.

 

아버지 요하네스의 마지막 설교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심지어 아버지 요하네스는 이 설교를 마치고 교회를 나가는 길에 쓰러져 죽고만다.

 

여러분이 나를 심판하고 단죄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 말 한마디만 마음에 새겨주시기를부탁드립니다. 참 단순한 말, 우리 아버지께서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지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거든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P161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들의 삶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과도한 몰입도 동일시도 없었고, 거부도 없었다.

그저 한없는 연민으로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느낌.

우연처럼 들이닥치는 삶의 변곡점들은 저렇게 잔인할 수 있겠구나.

내가 나의 삶의 원칙을 그런대로 지키고 살아올 수 있었던 건 그저 남보다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겠구나.

팬데믹 이후 나타날 새로운 세상에서도 나와 나의 아이들은 지금껏 가져온 삶의 원칙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어쩌면 결국 닥쳐봐야 안다는게 답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특별할게 없는 사건과 서사로 풀어나가는 얘기라 조금만 더 내용을 얘기하면 모든게 스포일러가 되버리는 책이다.

이 책은 사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들의 마음과 그 마음에 대한 연민으로 읽어나가는 책이었다.

주인공들의 삶의 순간 순간, 그들의 고통을 한발짝 물러서서 관조함으로써 더 절실하게 그들의 삶을 연민하게 하는 그런 문장들이 독서의 시간들을 가득 채운다.

스카겐으로 돌아간 폴에게 부디 그 자신의 삶이 계속 지속될 수 있기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03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이 프랑스 소설 장폴 뒤부아 작품이네요. 저는 표지만 보고 정세랑 작품인줄

바람돌이 2021-01-03 00:14   좋아요 1 | URL
표지는 딱 정세랑 작가 책 맞네요. ㅎㅎ 실제 책 분위기와 저 표지는 안 맞는거 같아요

syo 2021-01-03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꼬마 시절 최초로 사랑에 빠진 프랑스 소설이 장폴 뒤부아였는데, 한동안 한국에 책이 안 나와서 타계하신 줄...... 이런 책이 나온 것도 깜쪽같이 모르고 있었네요-_-

바람돌이 2021-01-05 00:44   좋아요 0 | URL
전 이 사람 책을 이 책으로 처음 봤어요. 찾아보니까 꽤 많이 번역되어 있네요. 진지한데 유머감각을 잊지 않는 책이라 다른 책들도 살짝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