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루 왜건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순간 케빈은 방금 전그 느낌은 희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희망은 마음의 암이었다.
그는 희망을 원치 않았다. 원치 않았다. 이 연약한 초록빛 희망의 싹이 가슴속에서 움트는 걸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다리에서뛰어내렸다가 죽지 못하고 살아난 남자의 끔찍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남자는 누군가 금문교 위에서 한 시간 동안 울며 서성대던그를 막고 왜 우느냐고 물었더라면 뛰어내리지 않았을 거라고말했다.
- P84

패티가 떠내려가지 않게만 하면 되었다. 소용돌이치며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바닷물속에 다시 잠겼을 때 그는 패티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이나 격렬하게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오, 미친, 이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 P86

때면 그녀는 많은 것을 이해했다. 이 나이에 수십 년 동안 그녀를 동정해왔노라 꼭 말을 해야 했다면 낙심한 인생이라는 걸 그녀는 이해했다. 보스턴을 향해, 함께 아이 셋을 낳아 기른 아내를 향해 해안을 따라 운전해 내려가면서, 오늘 그녀를 지켜본 그가 어떤 만족감을 느끼리라는 걸 앤지는 알았고,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이런 위안을 필요로 하리라는걸 알았다. - P105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거라고 생각했다. - P108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올리브는 침대에 누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 P124

스웨터는 망가지고, 신발은 브래지어와 같이 던킨 도너츠 화장실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져 쓰고 버린 화장지와 오래된 생리대 더미에 덮여 있다가 다음 날 대형 쓰레기통 안으로 구겨져들어갈 것이다. 사실 닥터 수가 올리브 가까이에서 살 거라면,
수잔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갖도록 올리브가 이것 조금, 저것 조금을 가져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뭐든 다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니까.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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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핀은 정말 볼가강으로 향했다. 배 끄는 인부들과 친해져 그들의표정과 동작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싫증 내지 않고 귀를 기울이자 그들 한 명 한 명이 실로 개성 넘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레핀 자신이 지금까지 극빈층을 하나의 검은 집단으로밖에 보지않았다는 증거였다. 둔전병(屯田兵)의 아들로 태어나 고생 끝에 미술학교에 다니는 처지면서도 계급 사회에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눈은 인간 자체를 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완성한 그림이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이다. - P101

둥근 유리병에 붉은 꽃이 두어 송이 꽂혀 있다. 어떤 꽃인지는 모른다. 혹갈색 연무가 화면 전체를 뒤덮어 낡고 그리운 세피아 톤 사진을 보는 듯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이 독특한 색조는 화가의 이름을 따서카리에르의 안개‘라고 불린다. 야외의 밝은 색채로 둘러싸인 인상파 전성시대에 그는 내면으로 침잠해 색의 가짓수를 줄인 모노톤의 아름다움을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대중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마치 순문학 회화 같다고 할까.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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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 P7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 P8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리싼런이 이불 속에서죽었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예전과 거의 같은 양의 밥을 먹었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전과 똑같은 양의 식사를 했다. 바람은 불지않았다. 햇빛은 부엌에서 서쪽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비치고있었다. 교정 안에는 따스함과 고요함이 가득했다. 모두들바닥에 앉거나 선 채로 만터우를 먹고 자오씨우친이 큰 솥에볶은 채소를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소금물을 넣고 끓인 옥수수탕을 먹었다. 교실에서 가지고 나온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신발을 깔고 앉아 호호입김을 불면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 마을 안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우스운 일과 웃지 못할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먹었다.
중요한 이야기도 있었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 P202

사람이 죽는 것이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등불이 꺼진 것과 같았다. 무덤을 파고 사람을 묻는 일이 삽을 들어 마을 어귀에 구덩이를 파고죽은 고양이나 개를 묻는 것만큼이나 순조로웠다. 슬픔도 없었고, 울음소리도 없었다. 울음소리와 슬픔은 말라버린 강과 같아서 소리도없고 호흡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물은 맑게 갠 날 허공에 떨어지는빗방울만큼이나 희박하여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말라버렸다. 그리하여 별로 대단한 일이 없게 되었다. 우리 삼촌과 링링, 딩샤오유에와 쟈껀바오를 단숨에 다 묻어버렸다.
전부 묻어버렸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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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테오도어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참상 속에 나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을 좋게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시고 있는질문이다. 케이스먼트는 대답한다. 좋은 것을 맛보자. 청옥색 &유황색 나비를 잡으러 다니자. 강에서 수영을 즐기자. 일기를 쓰자.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끝없는 과업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04

남성성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인종이나 제국이라는 요소보다 훨씬 중요했다.
는 것, 남성성 개념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재정의가 가능하리라는 것을 케이스먼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는 공무와 성애를통해 권위 스펙트럼의 양극, 곧 제국의 권위와 침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동시에 남자라는 생물체를 다양성을 가진 존재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잔혹하면서 더 취약한 존재로, 더 달라질 수 있는 존재로 재창조하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혁명 이후지금까지 교회와 정부가 주도하는 성(性) 보수주의로 유명세를떨쳐왔다. 케이스먼트가 당대에 벽장 안의 게이였듯 아일랜드에서는 지금도 대부분의 게이가 벽장 안에 숨어 있다. 라고 더블린의 한 레즈비언 시인이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 P117

리와 패디에게 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 노인이 자기가 어렸을 때 스키베린에서 그런 일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 한 것처럼, 대기근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대기근을 직접 겪은 이들이 아니라 대기근의 참상에 경악한 목격자들이나 대기근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위정자들이었다. 대기근의 목격자들이 끊임없이 언급하는 요소 중 하나가 침묵(죽은 사람들의 침동, 죽은 사람들을 묻고 홀로 살아갈 힘이 없었던 사람들의 침묵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유령의 몰골로 길 닦기 또는 돌 깨기 같은 구호사업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침묵)이다. 대기근의 역사를 발굴하고자 했년 어느 19세기 역사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아일랜드 귀족들로부터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기근 이후로 몇 년간 거의 모든곳에 만연해 있던 것, 그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섬뜩한 느낌을안겨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이 나라가 겪은 불행을 가장 깊게느끼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지독한 이례적인 침묵이었다는 이야기였다." 트라우마는 침묵의 형태로 대물림된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되기까지 몇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 P134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불구가 되고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구한 사람, 참혹한 죽음의 틈에서 부활한 사람은 누구일까? 항상 같은 길을 도는 떠돌이, 항상 같은 곳을 떠도는 떠돌이는 누구일까? 다리가 불편한데 걸어 다니는 것이일인 사람은 누구일까?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온갖 해방운동과희망이 흥망성쇠해도, 수백만 명이 해외로 떠나도, 세상은 광란의 발전과 파괴와 변화의 20세기로 바쒸어도, 내내 같은 길을 떠도는 사람은 누구일까? 리와 패디의 걸인이 그 수수께끼의 대답이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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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0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장소, 환대>를 공부하는 것도 벅찬데, 이것도 공부해야 할 목록에 넣어야 할 것 같군요. ㅋ
 

아일랜드 민족 영웅 중 한명인 로저 케이스먼트의 편지 중
자기가 사는 세계를 벗어나지 않고 내부에서만 바라볼 때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걸음 떨어져 외부에서 더 잘조이는 일들은 허다하다. 그것이 꼭 여행일 필요는 없지만 독서와 함께 여행은 나 자신을 또는 내가 사는 곳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해주는 유용한 도구이다. 물론 애초에 자신의 창을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뭘해도 다 소용없는 이야기지만.....
케이스먼트라고 하는 이 사람이 아일랜드인들의 운명과 민족운동에 눈뜨는 계기는 영국의 관리인으로 콩고에 파견되어 벨기에 국왕 레오폴의 사적 식민지하에 고통받던-고통받던이란 표현은 정말 터무니없이 약한 표현이지만 -콩고인들의 현실을 보면서였다고 한다. 콩고인의 삶에서 유럽인이 아니라 유럽 내 식민지인으로서의 아일랜드를 자각한 것.

때때로 나의 독서와 여행이 내 삶의 양식을 그리 크게 바꾸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저 나쁜 사람이 되지는 말자라는 것 정도로 괜찮은걸까? 지금 내가 벨기에를 여행한다면 식민지 콩고인들을 처참하게 죽여가며 수확한 고무로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건설된 지금의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도시 모습에 감탄하고 다니는건 아닐까?
어떤 계기에서든지 자신의 삶의 지형을 과감하게 바꾸는 사람들의 용감함을 존경한다. 여행을 통해 전개되는 리베카 솔닛의 사색의 발길이 여전히 흥미롭고도 가슴 한쪽을 찌르는 힘이 있다.



한 때 자이르라고 불리었던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 국왕이었던 레어폴의 개인 식민지였다. 이것에서 그들은 원주민이 당일 고무 채취 할당량을 못채우면 손목을 잘랐고 두 손목이 없으면 그 앞에서 자식의 손목을 잘랐다. 심지어 어린 신생아를 축구공으로 사용했다는 증언까지 있다.

나는 오랜 세월 아일랜드를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내 심장, 내 머리를 고향으로 삼은 모든 감정, 모든 생각으로부터 단절된 채 그저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고, 내가 새 의무를 하나씩 완수할 때마다 내 모습은 영국인이라는 이상에 확실하게 가까워져갔습니다. ] 나는 제국주의자였습니다. 대영제국의 영토를 어떻게든 확장해야 한다. 대영제국의 통치가 세상 만민에게 최선이다.
반대 세력을 쳐부수는 것‘이 정의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렇게제국주의의 징고(Imperialist Jingo)가 되어갔습니다. [……] 하지만 결국은 전쟁이 나에게 양심의 가책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곳콩고 밀림에서 레오폴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구제 불능의 아일랜드인이라는 나 자신의 정체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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