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좋아하지만(주로 술먹고 대화를.....) 가만히 나 혼자 듣는걸 잘 못한다.
뭐든 듣고 있다가 어떤 말에 꽂히면 그 때부터 나는 내 생각을 막 머릿속에서 펼쳐나가고, 그러다 보면 강연 내용은 이미 한참을 뻗어나가고 있어 뭔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어딘가로 가 있다.
또는 강연자의 강연 내용이 딱히 관심을 일으키지 못하거나 꽂히는 내용이 없을 경우에는 불행히도 대부분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건 좀 창피하긴 한데 잘 안 고쳐진다. ㅠ.ㅠ
그래서 사실 강연은 어쩔수없는 경우가 아니면 들으러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요즘은 유튜브나 팟빵을 통해서 듣는 경우가 많은데 듣기를 잘 못하는 내게는 진짜 좋은게 반복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뭔가 딴 생각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면 잠시 꺼고 내 생각 다 전개하고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세계랄까?
그런 내가
정희진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한건 정말 오랫만에 생긴 팬심때문이다.
특히나 내게는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가 요 몇년간의 최고의 책이었으므로, 강의 내용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제로 정희진선생님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였다.
언제나 팬심은 힘이 세다. ^^
이번 서울행은 둘째 딸과 함께 했다.
원래는 구독신청자체를 혼자 했기에 당연히 혼자가려했는데 많은 해외동포분들과 지방민 여러분들이 불참을 얘기해주시는 바람에 지인동반이 가능해졌으므로 집에서 방구석귀신으로 뒹굴고 있는 둘째를 끌어들인 것이다. 첫째는 집을 잠자는 곳으로만 이용하기 때문에 같이 가자는 말도 못꺼내봤다. 얼굴을 봐야 말을 하지..... ㅎㅎ
기차는 또 역시 책!
딸은 강의를 듣는데 책 한권은 읽어야지 하면서 내게 책을 요구했고, 나는 당연히 나의 인생 책을 건넸다.
나는 머리를 좀 식히려고 예전에 알라디너 여러분들이 엄청 재밌다고 했던 <화이트 타이거>를 준비.
하지만 나의 선택은 실패!
<화이트 타이거>는 재미와 상관없이 읽으면 읽을 수록 우울해졌고, 나중에는 우울 정도를 넘어 그냥 사는게 이토록 끔찍한게 진짜냐 외치고 싶은....... 지금도 읽고 있는데 계속 우울하다. ㅠ.ㅠ
월요일이라 그런지 홍대앞은 문닫은 곳도 많고, 뭔가 을씬년스러운 분위기랄까?
왜 이렇지??? 예전에 와본 홍대앞은 안 이랬는데... 그 때 내가 왔던 곳과 여기는 다른 곳인가?
그래도 딸래미와 맛난 돈까스로 저녁을 미리 먹고(돈까스는 맛났다), 후식으로 수플레 팬케익을 파는 카페로 가서 수플레와 커피를 시켜 먹었으나 내가 먹어본 중에 가장 맛없는 수플레였으며, 커피 역시 맛이 없어.....ㅠ.ㅠ
그리고 6시 40분쯤 팟빵홀에 도착해서 나는 앞에 앉고 싶었으나 부끄럼많은 딸이 무조건 제일 뒤로.... ㅠ.ㅠ
이놈의 딸래미는 화면에 후원자 이름이 나올 때 '바람돌이'를 보고는 제법 큰 소리로 "혹시 저 바람돌이 엄마야?"라고 묻고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푸하하 터지며 나를 비웃었다. 반사적으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혹시 이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나 체크! 왜? 그냥 쬐끔 창피하니까..... 여기 알라딘 안에서 말고 밖에서 내 닉네임 얘기할 때마다 나는 쬐끔 창피하다. 너무 없어보인달까? ㅠ.ㅠ
이렇게 만난 정희진샘은 뭐랄까?
진짜 이런 자리를 너무 힘들어하고 부끄러워하는게 눈에 보였달까?
내가 예상하기에는 그동안 수많은 강연을 해오셨을텐데 좀 의외였다.
다른 강연은 어떤지 안 들어봐서 모르겠는데 이번 강연이 좀 팬미팅 비슷한 거여서 더 힘들어하신건지?????
샘이 너무 긴장하고 어쩔줄을 모르는걸 자꾸 봐서 그런지 나 역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강의 동안 드물게도 딴 생각도 쬐끔밖에 안했고, 심지어 졸지도 않았다. ^^
내게 가장 꽂혔던 내용은 사실은 이야기 시작하는 초반에 샘이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지금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하여 당대 역시 위안부로 갔던 일본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논문으로 쓰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또는 얘기였는데 나 여기서 좀 흥분했었다.
아 진짜 무조건 쓰세요. 무조건요라고 막 얘기하고 싶은데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참았다. ㅠ.ㅠ
사실은 딸이 없었으면 막 나댔을거 같은데 그럼 우리 딸이 너무 부끄러워할거 같아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내게는 계속 어려운 문제이고, 이 수업만은 늘 실패하는 수업이었다.
이 문제를 여성과 인권의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래되었지만 어떻게 자료를 만들고 수업을 해도 이성은 감성을 이길 수가 없다.
즉자적이고 감성적이며 생활적 반일의식은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민족주의적 해석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민족주의적 반일감정이 토론에서 반인권적의고 반여성적인 의견들로 귀결되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고민이 많은 부분인데 정희진샘의 논문이 나온다면 또 다른 수업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거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 읽은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에서 영화 <기억의 전쟁>을 이야기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기억의 전쟁>이 '착한 작품'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도전하는 텍스트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작품이 한국인의 양심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249쪽
<기억의 전쟁>이라는 영화는 우리가 베트남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고자 하는 시작일 뿐이다. 이것이 결론일수는 결코 없다. 사실 정희진샘이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이미 영화 <기억의 전쟁>을 떠올리고, 내 수업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연결지으면서 또 달나라로 살짝 떠나는 정신을 붙잡는다고.....ㅠ.ㅠ
아 정말 내게 듣는다는 행위는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이가?
일종의 정신적 산만함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변명은 꼭 하고싶은게 일은 이렇게 산만하게 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제가 주관하는 회의는 항상 누구의 회의보다 짧고 간결합니다. 그런데 내 정신은 왜?????
아 그런데 이후의 강의 아니 토크? 하여튼 뭐라고 정의하든 모든 내용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모든 말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지만 그 강의 스타일의 자유분방함은 정말 따라가기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딱 어떤 기분이냐 하면.....
친구들을 만나서 신나게 막 떠들고 얘기하고 싶은데 한 친구가 혼자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떠드는걸 듣고온 느낌이랄까? 그의 말이 재밌고 신나서 막 웃고 즐겼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나 오늘 뭐한거지? 이런 느낌.
주제에 맞든 안 맞든 뭔가 좀 깊이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였는데 진짜 팬미팅하고 온 기분.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강의의 수준과 주최측에서 준비한 수준이 미묘하게 어긋났구나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중간쯤에 정희진샘이 팟빵의 오디오 매거진의 내용 녹음을 편집자분이 절묘하게 엮어서 말이 되게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그게 진심으로 들렸다. 그만큼 강의에서 정희진 샘의 스타일은 정말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걸 어떻게 다 말하고 싶어 왔다 갔다하는 그런 스타일이랄까?
그래도 나는 그동안 읽었던 책이 있어서 어느 정도 논지가 파악이 되었던 반면에 처음 샘을 만난 딸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 잘 모르겠어."라는 평을 남겼는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정희진샘의 팬이겠지만 한동안 강의는 저만치 두고, 책을 좀 더 열심히 읽자로..... ㅎㅎ
아 그리고 중요한 만남.
우리의 알라딘 유튜브 스타 공쟝쟝님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미모를 번쩍이며 눈에 확 뜨여 나는 그만 단번에 알아보고 말았다.
그리고 공쟝쟝님과 인사하다 그 옆에 너무도 단아하게 앉아계신 분이 단발머리님이라는 것도....
단발머리님은 평소의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랑 완전 닮았다고나 할까?
두분 만나서 너무 너무 반가웠어요.
기차시간 때문에 차도 한잔 못한 것도 아쉬웠어요.
그리고 잠자냥님. 같은 공간에 있었던걸로 만족할게요. 좀 많이 아쉽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