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 아트퍼즐
지엔씨미디어 출판팀 엮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갔다가 산 책입니다.
피카소 미술전 보러갔다가 아트 상품 파는 곳에 잠시 들렀더니 아이가 이 책을 놓고 사달라고 난리를 부려서 샀다지요.


표지는 요렇게 생겼고요.

안을 펼쳐보면 왼쪽은 작은 그림과 아이들에게 맞춘 그림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퍼즐이 있어요.



왼쪽의 그림을 보면서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거죠.

다른 그림 하나 더.



전체 조각은 16조각으로 아이들이 맞추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색들이 많다 보니까 처음에는 조금 어려워하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해내더라구요.
6살 에린이에게는 조금 쉽고 4살 해아한테는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둘 다 너무 너무 좋아하는 건 똑같아요.
예린이한테는 이 마티스를 사주고 해아한테는 르느와르를 사줬거든요.

각 책마다 총 5장의 그림이 있습니다.
책의 형태니까 다른 퍼즐에 비해서 보관하기가 편하다는 장점도 있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퍼즐에다 멋진 그림을 보는 기쁨도 같이 느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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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한 대중적인 역사 쓰기는 말은 쉽지만 참 어렵다.
뭐 나와 있는 책들을 보면 보이는 것이....
재밌게 쓴다고 하는게 보면 순전히 야사 위주여서 역사라고 말하기 뭣해지는가 하면,
조금 제대로 역사적 안목을 들이대면 또 읽기 어려워지는게 이 분야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존재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추리소설을 보는듯한(약간이지만) 재미와 동시에 각종 사료와 당시의 사회상, 그리고 역사적 평가까지 놓치지 않고 두루 섭렵하고 있기때문이다.
깊이와 재미를 두루 갖추다.
이만하면 이 책에 대한 최대의 찬사를 바쳤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딴지를 걸어볼까?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대부분의 장마다 이 왕이 살았더라면 하는 만약이다.
저자 역시 역사에서 만약이란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안다고 하면서도 되풀이 되는 이 말.


소현세자가 살아서 순조롭게 왕위를 계승했다면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빨리 근대화를 이루고 발전할 수 있지 訪弩뺑?
개혁군주 정조가 10년쯤 더 살고 순조가 성인이 되어 왕위를 이었다면 조선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을까?

다른 분의 리뷰들에서 이런 만약이 얼마나 순진한 환상인가는 이야기 된 것 같으니 그건 넘어가자.
그런데 나의 경우 더 걸리는건 이런 식의 발상들이 계속 얘기되면서 공통으로 배여나오는 느낌이다.
독살당한 왕들이 좀 더 강력한 왕권으로 그들의 뜻을 펼칠 수 있었다면 나라가 좀 더 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른바 강력한 왕권=강력한 힘=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으로 비치는거다.

저자도 얘기하고 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때 망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조선이 망하지 않은 이유는 어쨋든 내 생각으로는 지배층 사대부의 힘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당시 다른 세계에서는 보기 힘들정도로 관료제가 발달한 나라이다.
일방적으로 왕권이 나라를 이끌어갔던게 아니라 사대부층이 권력을 왕과 분점하고 있었던 것.
따라서 왕실이 완전히 무너졌을때 그 왕실과 조선이라는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힘은 사대부들에게서 나왔었다. 또한 그 사대부들의 힘은 관료제의 힘이기도 하다. (어쨌든 지방 곳곳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것도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도 다 사대부이며 관료 내지는 예비 관료들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왕과 사대부의 힘의 역관계가 점차적으로 변해가는건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사대부들이 얘기하던 공론 정치를 순조롭게 추구해갔다면 오히려 조선의 모습은 더 나아질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선 후기 정치를 완전히 단박에 뒤엎어버린건 조선 후기에 그나마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던 숙종이다.
숙종이 마누라와 붕당을 완전히 갈아치우는 환국 정치를 통해서 조선 후기 정치판을 완전히 개판으로 만든 건 아닐까? 숙종대 이후에 가면 조선 사대부의 관료제는 기형화 되어버린다.
시대와 맞지 않게 쓸데없이 강력해진 왕권이 오히려 문제가 아니였을까 하는거다.
나아가서는 조선 후기의 왕들이 끊임없이 실추된 왕권을 끌어올려 사대부의 위에 서려고 노력함으로써 오히려 왕과 사대부간의 악순환을 만들어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반성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그의 반성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저자가 끊임없이 얘기하는 강력한 지도자인가? (오우... 그건 박통만으로 충분히 악몽이었다. 제발....)
책 한권으로 저자에게 지나친 혐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사대부와 왕의 관계에서 그의 일방적인 '왕 사랑'은 거슬리니 어쩌겠는가?

**************
뱀꼬리... 일본에도 탁월한 역사 이야기꾼이 한 명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이다. 근데 이 책을 보면서 자꾸 그녀가 떠올랐다. 두 사람다 공통적으로 참 글을 잘 쓴다. 그런데 두사람다 힘에 대한 숭배 열정, 국가주의 영웅주의의 모습이 겹치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 쪽이 훨씬 심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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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7-2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군요. 잘 읽었슴다. ^^

세실 2006-07-2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의 글이 더 재미있어요....저두 생각지 못했던 시각 배우고 갑니다...

바람돌이 2006-07-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생각은 다 다르죠. ^^ 근데 이 서평은 저도 어슬픈 생각인지라 좀 그렇네요.
세실님/그냥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뭐 확신을 가진건 아니고요. 다만 강력한 왕권에 대한 향수 비슷한게 계속 맘에 걸렸다고나 할까요. ^^

agipahak 2006-08-0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책 한권'이라는 말에 이제까지 쓴 글 다 지웠습니다. 정말 모르는 겁니까? 이덕일 씨의 사관은 왕사랑이 아닙니다. 님은 이덕일씨의 저작을 많이 안봐서 그러는군요. 하다못해 이덕일씨가 쓴 통사인 '교양 한국사' 시리즈를 보고 비판하심이 어떠실런지.. 이덕일 씨가 왕사랑으로 보이는 건 이 책이 '왕의 암살'이라는 주제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적으로 말해서 여기에 나오는 왕들이 조선 전체의 왕이라도 됩니까? 이덕일 씨가 언제 조선의 모든 왕들을 사랑했나요?
그리고 님은 이 책에 나오는 왕들에게 대항하는 신하들이 조선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사대부이자 토지를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신권이 강화된 나라는 이런 기득권들의 이해가 반영 되어, 백성이 수탈 되도 모르는 척하고, 그리고 '대동법'이라는 획기적인 법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자영 농민(즉 자기 토지를 가지고 있는 농민들)들이 몰락하는 그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대부들로선 자영농민들이 없어져야 자기 땅이 많이 생기는 거 아닌가요?
이덕일 씨는 이렇게 기득권층들의 이해 관계로 왜곡된 신권 정치를 나쁘게 생각하고, 이것이 조선이 그렇게 조선 체제가 근대화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친일파의 역사는 조선 신권의 최고 권력을 가진 여당인 노론의 역사입니다. 노론은 고스란히 일제에 협력해 호의호식해 친일파를 이루었습니다.
조선의 기득권이, 일제에게 협력을 했다는 것이죠.

님은 강력한 왕권만이 독재를 만드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로 똘똘 뭉친 당론도 하나의 독재를 만듭니다. 님은 강력한 왕권만이 독재를 탄생하게 한다는 뉘앙스로 강력한 왕권은 안된다고 하셨는데, 따지고 보면 유교 정권의 독재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농민들을 장악하기 위한 사대부들의 이해도 있는 겁니다.
반대로 강력한 왕권으로 탄생한 것이 세종대왕 대의 화려한 문화 정치이며, 광개토 대왕의 다양하고 위대한 업적이 아니었습니까? 모든 것은 그것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로 비판해야지 왕권만 나쁜 게 아니라, 신권도 나쁜 겁니다.

이덕일 씨는 왕권 찬양의 사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조선의 다양한 면들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그런 자들을 비판하는 겁니다. 이 책의 주제가 왕의 암살이라 그런 면이 많이 부각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덕일 씨는 세종을 비판했던 적도 있고(그렇게 심한 비판은 아니지만) 세조와 인조를 비판한 사람입니다.
이덕일 씨가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왕사랑의 사가라서가 아니라 조선의 독특한 신권 정치의 역사에서 비롯된 암울한 면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06-08-0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ipahak님 안녕하세요. 닉네임을 읽기가 힘드네요. 어찌 읽어야 될지.... ^^
일단 저의 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과도한 비판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님의 말에 대해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첫째, 이덕일씨의 왕사랑 혐의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정말 몰라서 맞습니다. 제가 읽은 이덕일씨의 책은 얼마전에 읽은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과 이 책 두권입니다. 조선 최대의 갑부는 이책에서 보이는 이덕일씨의 글솜씨도 보기 힘들었고 뭔가 기존의 연구성과를 짜집기해서 급조해낸듯한 느낌이 많은 드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야만 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덕일씨의 사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적어도 이 책에서 제가 읽은 바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책에서 이덕일씨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이렇게 많은 왕들이 암살되었다는 것은 조선이 뭔가 비정상적인 사회라는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조선이 비정상적인 사회였다는 것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왕의 암살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간에 중요한 것은 독자가 어떻게 그 책과 논지를 받아들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 올려진 수많은 리뷰들이 대부분 하고 있는 얘기는 어느 왕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조선의 왕권이 좀 더 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바램을 강력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 책이 저자 개인의 성향이나 사관을 벗어나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겝니다. 그것이 저자의 책임은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저는 이덕일씨가 이 책을 쓴 논조가 바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주 설득력 있게요.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저같은 사람은 당연히 다른 생각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신권정치에 대한 님의 평가입니다. 조선의 주인은 왕과 사대부였습니다. 조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정치가 왕권과 신권의 조화였습니다. 하지만 어느정도라도 그게 이루어졌던건 세종대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항상 왕권과 신권은 서로 줄다리기를했고 어느 한편으로 기울었습니다. 세력균형이란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선의 정치에서 왕과 사대부 이 둘은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지배층으로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졌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옹호해주는 존재이기도 하였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 지배층의 백성을 얼마나 수탈했는가 하는 것을 지금 얘기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건 계급사회의 태생적 한계니까요. 다만 이런 수탈에 있어서 왕과 사대부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동법을 얘기하셨는데 실제로 대동법을 주장한 것도 반대한 것도 모두 사대부입니다. 이 대동법이 -그리 획기적인 법안이었는가는 차치하고 - 전국적으로 시행되는데 200년이 걸립니다. 그럼 이 200년 동안 왕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모든 왕들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사대부들의 반대때문에 못한 것 뿐일까요? 아마 왕들은 이 대동법의 확대여부를 가지고 신하들을 조종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이용했을 겁니다. 즉 백성들의 안정이나 생활향상이란건 왕이나 사대부나 모두 부차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전의 양면같은 지배층이었으니까요. 조선후기에 정치가 비정상적인 일당독재 체제가 되고 노론의 전제정치가 나라를 망쳤다라는 결론은 옳을 수 있지만 그것의 대안이 똑똑한 왕이 좀 더 살았더라면이라고 나가는데는 저는 반대합니다. 그것은 왕조국가의 태생적 한계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황제의 권한이 강했던 중국의 왕조 말기는 항상 환관들의 권력독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사대부의 권력 독점보다 낫다고 말할 수 는 없겟지요. 결국 조선의 양대 지배층의 문제는 저는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인 손을 들어줄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그야말로 동전의 양면이니까요.

두번째 강력한 왕권만이 아니라 하나로 똘똘 뭉친 당론도 독재를 만든다는 님의 의견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로 드신 세종이나 광개토 대왕의 예는 오히려 제가 가진 혐의를 더 강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왕권이었을때 우리나라가 잘 나갔다? 역사적인 내용은 일단 차치하고 그런 낭만적인 감정이 현실 정치로 옮겨올 때 어떤 함의를 가지게 될까요? 제가 말한 것은 바로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이런 힘에 대한 환상에 대해서였습니다.

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천천히 이덕일씨의 책은 좀 더 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도 책은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고, 제가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덕일씨의 사관이 왕사랑이 아니었다면 이덕일씨는 이 책을 쓸 때 좀 더 주의깊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경을넘어 2006-08-0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쟁쟁한 댓글들이 달리네요. 저는 딴지걸기로 가겠습니다. 대동법의 전국적 시행은 100년 아닌가요? 이 과정은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에 잘 나와 있더군요. 사실 이덕일씨는 왕 사랑은 아닐 건데 제목부터 보면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하네요. 대중 역사서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 아닐런지... 이덕일이라는 이름만으로 수만부를 기본적으로 팔 수있는 이덕일 역사서를 바라보는 우려도 그렇구요. 근데 친일파의 역사가 노론의 역사라는 건 논리 비약이 심하네요. 사색당파 가리지 않고 친일의 흔적이 도처에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친일에는 당파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참고로 저희 집안은 굳이 따진다면 소론 집안입니다. 명재선생(윤증)하고 아주 가깝습니다^^*

바람돌이 2006-08-0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인촌님/대동법이 100년이었던가요? 이런 하도 공부를 안하니 외웠던 것도 까먹고.... ㅠ.ㅠ 저도 이 책에 대해서는 대중적이고 쉽게 쓰야 한다는 압박감이 논리의 비약을 가져온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덕일씨 정도되는 사람이면 좀 다르게 썼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참고로 저희집안은 상놈의 집안입니다. ^^

송도둘리 2007-11-29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주의'에 대한 경계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덕일씨의 '소현세자가 더 살았더라면, 정조가 더 살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인간적인 아쉬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왕조국가였고, 기득권 사대부들보다 소현세자와 정조가 더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예요. 아무튼 재미있는 책을 읽은 이후에 좋은 서평까지 읽게 되니 참 뿌듯한 하루네요. 하하.

바람돌이 2007-11-30 01: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펠릭스님! 뭐 인간적인 아쉬움이란 누구나 가질 수 있는거니까요. 그들이 좀더 오래 살고 제대로 왕노릇을 했더라면 좀 더 나아질 수는 있었을지고... 그것이 당대의 기본적인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말입니다. ㅎㅎ
 
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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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주제는 '근대를 파헤치기'다.
여기서 근대는 단순히 역사적인 시간 개념만은 아니다.
계몽기 지식인들의 열렬한 찬사와 숭배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그러한, 아니 오히려 일상의 곳곳에 뿌리박힌 근대의 신화를 파헤쳐 그것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성의 확보만이 살길이요. 문명의 길이요. 유토피아의 도래라고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아니면 은밀하게 외치고 속삭이는 구속에서 이제는 벗어나보자고 얘기한다.

오직 출발지와 목적지만이 존재하는 기차를 닮은, 아니 기차와 함께 온 근대적 시간 개념
그 단선적인 시간개념과 목적지를 위해 산을 뚫고 강물을 통과하는 기차의 공간의 파괴는 오로지 생존경쟁에서의 우승열패라는 신화를 낳는다.
제국주의는 닮아야 할 모델이며, 식민지 조선은 부끄러운 존재가 된다.
근대가 낳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가른다.
지금은 아니라고 말할까?
이론으로서 제국주의는 더 이상 도덕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일상의 곳곳에 숨어있는 승자에 대한 찬미와 열망, 경쟁승리에 대한 예찬을 보라.
근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근대에 들면 더 이상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만물의 영장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한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인간이다.(이 오만방자한 인간의 신화에 대해 이미 자연은 응분의 대응을 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가르고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근대의 공간에 들어서게 되면 무엇도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성적욕망도 연애도...
근대성이 낳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위생학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몸 마저도 국가의 통제하에 두며,
인간의 존귀함의 이유를 뇌에 두면서 이성중심주의의 사고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너무나도 흔한 대답을 상기하게 한다.
뇌의 절대화는 아마도 신체의 다른 모든 부분을 소외시키고 그것의 활동인 노동도 소외시키는 거겟지.
여전히 이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천시받고 있는걸 보면 뭐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이 책의 근대에 대한 해부는 통쾌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미심쩍다.
왜냐고? 나는 여전히 근대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내용과 말들을 여전히 논리로 맞는가 아닌가로 판단하는 습성에서 여전히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으로 허준에 대한 얘기는 뜬금없다.
고미숙씨 당신 말이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쳐주기도 참 힘들다.
온몸으로 소통하고 생각하는 탈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근대에서 근대적 삶에서 벗어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고 모든 경계의 사이공간을 복구하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
공동체적 삶의 복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소통의 복원을 얘기하는듯하다.
책의 그 방대한 역사적 사례와 논증들을 생각한다면 결론은 너무 평범한 게 아닐까?
하지만 원래 진리란 평범한게다.
누구나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지 않는가?
한마디로 근대를 벗어나자고 얘기하는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어떤 부분을 일일이 규정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 속에 퐁당 빠져 있으니 말이다.
하늘이 안보이는 숲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 숲 이외의 것을 하늘을 보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저자 고미숙씨가 얘기하는건 바로 그 숲에서 바로 그 하늘을 보자는 것일게다.

아직도 숲에 파묻혀 있는 나에게는 길잡이 같은 책이 되었다.
다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 하늘을 볼 수 있을런지....
그리고 그 하늘을 보는게 맞는 것인지....

************ 읽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가장 바쁜 시기에 이 책을 잡았다는 불행도 있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는게 힘겨웠다. 이래 저래 고민도 많이 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책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별점은 후하게 주자. 뭐.... 딱히 모든 걸 동의해야 좋은 책은 아니지 않은가? 나에게 공부를 좀 더 해야할 것 같다는 의욕을 불태우게 했고, 또 고민거리를 잔뜩 안겨줬으니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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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6-07-20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근대와 관련된 담론들을 엮어본 건데 저는 한편으로 이해하면서도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던 부분도 많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연암과 다산을 비교할 때도 저는 연암의 경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고도 분명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다산의 '전투성'도 중요하다 봅니다. 자칫 지적 유희에 젖어드는 것은 아닌 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바람돌이 2006-07-2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납득이 가지 않던 부분이 꽤 있었던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전체적인 논의가 결론적으로 어디로 흘러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미심쩍었다고나 할까요? 이게 까딱 잘못하면 탈정치화 내지는 도인의 경지로 가지 않을까 싶기도 했구요. 다만 그동안 이런 류의 책을 상당히 오랫동안 안봤던 저에겐 뭔가 고민거리를 던져줬다는게 제 나름대로의 의미였던거죠. 연암과 다산의 비교에서는 저는 딱 80년대적 감수성과 전투성이 다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감수성과 전투성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발휘되는 방법, 공간 하여튼 뭐라 말하긴 좀 힘든데(아무래도 공부가 짧아서겠죠) 그런게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였습니다.
 
 전출처 : 바람구두 > 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

사회/ No. 167. 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



<수취인 불명>과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1년 6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Address Unknown)>은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말 기지촌을 배경으로 주한 미군과 ‘양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창국(양동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취인불명>의 첫 장면은 미군기지 맞은편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에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미군 공군기지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음이 마을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을 입구에는 빨간 버스가 있고, 그곳 편지함에는 수취인불명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디에 있을지 모를 사랑을 찾아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 마을엔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다.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은 외신기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탈리아 현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를 국제무대에 알릴 수 있어 기쁘다.”면서 “영화 속에서 표현된 주한미군 문제 등과 같이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유럽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묻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김기덕 감독은 “독일을 여행할 때, 뮌헨 역에서 한 남자가 당신은 ‘북한 사람이냐, 남한 사람이냐'라고 물어보길래 남한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니까 '오 아메리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한국이란 나라가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많은 유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초빙되어 치른 유명세에 비해 <수취인불명>의 실제 촬영지가 평택 미군기지 ‘K-6(캠프 험프리)'가 있는 평택 동창리 일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촬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들녘이 있고, 대추리 가는 길녘 작은 능선 뒷편은 모두 미군기지로 현재 166만 평 규모의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곳은 현재 아파치 공격용 헬기부대와 기갑연대, 항공기동여단, 도감청부대를 비롯해 위성지구국, 미군 범죄자 구치소까지 갖추고 있다. 유사시엔 인근 평택 신항만 시설과 오산 미 공군 비행장 등을 이용할 수 있어 그 자체로도 이미 대포도시의 위용을 갖춘 정예 요새이다.

한반도 전쟁억제 주장과 선제공격전략에 기반한 전략적 유연성

정부와 국방부는 국방부 홈페이지를 통해 주한미군재배치 사업과 그에 따른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문제의 당위성을 크게 “한반도 전쟁억제”와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두 가지로 홍보해왔다. 일부만 요약해보면 현재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기존의 미군 기지들을 통·폐합해 평택기지를 450만평으로 확장하고, 춘천의 캠프페이지를 비롯한 전국의 미 2사단 소속 기지를 평택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총16개 기지를 환수하고 춘천의 캠프 페이지 등 3개 기지의 병력과 시설을 분산 배치해 모두 7,0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06년 8월 시행예정인 평택지원특별법에 따라 기지이전과 평택기지 확장조성비용은 전국에 분포한 미군 기지를 매각하여 충당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국방부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현재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단체들도 당시에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 요구하였는데, 이제 와서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며,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지금까지 환경단체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전국 각지의 비어 있는 미군 기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해온 것은 사실이다.

어째서 이들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것일까? 그 사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정부와 국방부가 주장하는 확장이전의 당위성들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과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은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국토균형발전에 이바지하는가?

지금껏 어떤 항의에도 꿈쩍 않던 주한미군이 갑자기 평택으로 집결하는 까닭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 주한미군의 공세적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8.8%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적극적인 선제공격(preventive war)을 감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고, 그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나 주한미군 재배치(GPR)가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지난 1월 반기문 장관과 미국의 라이스 장관은 워싱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평택기지를 확장해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기 위한 거점기지(HUB)로 사용할 계획이다. 미국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2003년 3월 대북방어는 한국이 부담하고, 미군이 맡고 있던 한국 내 10대 군사임무도 2008년까지 한국군에 이양된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앞으로 주둔할 미군은 더 이상 대북전쟁 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을 추진하고 강제하는 선제공격도 가능한 군사력이다.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속불가능한 환경오염

미국은 전세계 50여 개국에 725개의 기지(비밀기지를 제외하고)를 가지고 있다. 50여 개 나라들 가운데 기지를 무기한으로 임대해주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토지 소유자들에게는 기한을 정하여 임대하도록 하고, 임대비용부터 토지용도까지 공개적인 심리절차를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도 기지 내 개인 토지를 반환받아 양계장으로 사용하거나 미술관을 개설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가 먼저 요구하였으므로 그 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의 요구에 앞서 이미 변화된 군사전략과 비용문제로 인해 세계 각지의 미군기지를 조정할 필요성(4개년 국방개혁검토QDR, 2001년 9월)을 제기해왔다. 정부는 반환되는 기지들을 매각해 이전비용을 마련하겠다지만, 실제로 춘천 캠프페이지의 경우 지난해 3월 폐쇄된 이후 1년이 넘도록 소유권, 부지 활용권은 고사하고 부지매입비용 산출작업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방부는 이 땅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이 사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난 2000년 주한미군에 의한 한강 독극물(포르말린) 방류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미군측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주한 미군이 사용 중인 기지 22곳에서 실시한 토양조사 결과 암을 유발시키는 벤젠 등 유독성화학물질인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가 기준치의 1,830배가 검출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SOFA는 미국에 토지가 미군에게 공여된 당시의 상태대로 복원하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진척시켜 온 환경관련합의를 모두 깨뜨리는 발언을 했다. 더 나아가 주한미군은 이 문제가 “한미동맹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등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통해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의도대로 된다면 기지이전비용은 고사하고, 앞으로 반환받게 될 기지의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데만도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정말 450만 평의 땅이 필요한가? 가끔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여의도 총면적 840만㎡를 평으로 환산해보면 254만 평이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에는 2006년 4월말 기준으로 31,126명(11,146세대)이 거주하고 있다.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오피스 빌딩들이 밀집해 있어 유동인구가 거주 인구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2008년까지 평택 미군 기지에 머물게 될 주한미군의 수는 얼마일까? 2008년까지 주한미군은 24,500명으로 감축되고,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추가감군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고작 24,500명의 주한 미군을 위해 여의도 면적 2배의 땅이 필요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이나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 개정안의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 해당하므로 재협상의 정당성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아무도 받지 않는 편지, 아무도 받지 않는 사랑

3년이 넘는 투쟁 과정 속에서 한·미 두 나라 정부는 단 한 차례도 국민들에게 이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논의한 적이 없었다. 평택주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앞으로는 대화를 말하지만 뒤로는 김지태 대추리 이장 검거에서도 알 수 있듯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단지 특별법을 만들고, 땅을 뺏고, 농민들을 감옥에 가두고,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우리가 과연 주권국가에 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지금 평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많은 이들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지닌 문제점을 알고 있으며 평택주민들이 벌이는 투쟁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란 미명아래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못 본 척 외면하거나 평택 주민들에 대해 동정을 보내지만 지역 문제에 제3자가 끼어들어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폄훼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우리들의 침묵은 스스로의 생존과 평화를 방기하고, 평택 주민들을 타자(他者)화한다. 지금 평택 주민들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한반도,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편지,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이 땅의 사랑을 담아 그들은 오늘도 편지를 띄운다. 그 편지의 겉봉에 적힌 주소는 평화를 바라는 우리들의 양심이다. 이 편지를 수취인불명으로 되돌려 보낼 것인가?

출처 : 함께 사는 길, 2006년 7월호(통권157호)
* "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이란 제목으로 제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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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아 유치원 안가면 안돼?"
"왜 엄마?"
"음~~ 너 원래 전에는 엄마 방학하면 유치원 안갔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엄마 방학했는데 집에서 엄마랑 놀자."
"안돼! 유치원 가야돼"
"왜?"
"선생님이 왕스티커 준댔어. 그거 받아야 돼"

도대체가 선생님은 왜 스티커 같은걸 줘가지고 애를 유치원으로 불러내냐구요.
전에는 예린이가 제 방학때면 늘 안가겠다고 떼를 써서 아예 방학동안은 쉬었었어요.
그래서 올해도 당연히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고집 불통 변덕쟁이 예린이는 죽어라고 간대요.

그럼 아침마다 시간맞춰 일찍 일어나서 밥먹여야 돼잖아.
게다가 너 없는 동안 해아는 그럼 주~~~욱 내가 놀아줘야 하잖아. ㅠ.ㅠ

예린아 제발 유치원 좀 안가면 안되겠니?
오늘은 내일 해아랑 둘이서 김밥만들고 놀거라고 꼬드겼는데 한마디로 잘라 말합니다.
"나 유치원 갔다오면 같이 해야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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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7-1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스티커 중요하죠~~. 근데 둘이 놀아야 엄마는 슬쩍 딴 일도 하고 쉬고 그럴텐데, 유치원 방학 때까지는 부지런을 떠실 수 밖에 없네요. ^^

바람돌이 2006-07-1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둘이 놀아야 제가 좀 편한데.... 근데 그놈의 유치원 방학도 2주밖에 안한대요. ㅠ.ㅠ

세실 2006-07-1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해아가 어리니 이런 일이 생기는 군요~~~
처음엔 바람돌이님이 예린이랑 놀고 싶어서 그러는줄 알았어요.쿄쿄쿄. (그동안 못다한 사랑을 듬뿍 주려고 하시나? 하면서...)
뭐 해아도 유치원 가면 '이 보다 좋을수는 없다' 아니겠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그나저나 부러운 방학이 시작되는군요. 어흑!

바람돌이 2006-07-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ㅎㅎㅎ 올해만 참으면 돼요. 내년에는 해아도 유치원에 갈테니.... 아마 내년에는 왜 유치원 방학이 2주씩이나 하냐고 하면서 소리지를걸요. ^^;;

울보 2006-07-1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그렇게 심오한 뜻이 저도 방학전에 못놀아주셔셔 방학동안 놀아주시는줄 알고,,ㅎㅎ 착각, 다른 맘들은 유치원방학이 너무 길다고 하는데 바람돌이님은 예외시네요,,ㅎㅎ

바람돌이 2006-07-19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그러게 말예요. 가끔 제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안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은걸 어떡해요. 방학이란 말예요. ㅠ.ㅠ

치유 2006-07-19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하하하..저도 착각하면서 읽었어요..그런데 그렇게 깊은 뜻이!!
저도 아침에 일어나는게 젤 싫어요..그래서 아이들 방학이 젤 좋아요..

urblue 2006-07-19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아니, 어머님!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3=3

바람돌이 2006-07-19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블루님! 님도 나중에 닥쳐보시라구요. ㅎㅎㅎ

sooninara 2006-07-1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엄마의 마음이 다 같죠? 아이가 둘이라서 좋은 것은 지들끼리 잘 논다는건데..
비가 와서 부산 여행은 무기한 연기랍니다.ㅠ.ㅠ

가시장미 2006-07-21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무진장. 귀엽네요! 아니ㅡ 언니, 이건 아니잖아요! ㅋㅋㅋ

바람돌이 2006-07-22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비가 좀 그쳐야 될 터인데.... 아무래도 바다가 빠진 부산여행은 김새죠? 아마 다음주부터는 햇빛이 쨍쨍 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
가시장미님/님도 나중에 나중에 애 키워보시구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