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아이들이 늘 먼저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지들끼리 한참을 잘 놀죠.
집을 어지르는건 뭐 당연하다 싶은데....
해아가 뭐니뭐니 해도 제일 좋아하는 건 화장품이예요.
엄마 화장품을 꺼내 지 얼굴에도, 방바닥에도, 장농에도 다 바르는 거지요.

여태까지 해아가 한 번에 끝장낸 화장품 목록

영양크림 반통
루즈 2개
파우더 2/3통
에센스 반통
파운데이션 반통
그리고 며칠전에는 모처럼 큰 맘먹고 산 예쁜 핑크색 볼터치 한 통 다....

화장품 가격이 장난 아니잖아요.
이게 다 돈으로 치면 얼마냐구요. 아까워서 미치겠다니까요.
저럴때마다 무지하게 혼내기도 하고, 맞은 때도 있었고, 육아서에서 말한대로 아주 엄격하게 안돼라고 얘기한 적도 있었고...
근데 돌아서면 까먹나봐요.
예린이는 잠시 그러고 말더니 해아는....

어떡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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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3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6-03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꺼 가지고 놀면 혼내기도 했지만 아예 마로 전용 화장품을 마련해줬습니다. 베이비 로션 이것 저것, 매니큐어, 립크림 이것저것 등등. 한동안 고생했지만(새언니가 큰맘먹고 장만한 나비장에 마로가 지 매니큐어 들고가 떡칠한 사건은 정말 잊혀지기 힘들 듯)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던데요?

이리스 2006-06-03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하지만 너무 심하게 야단치시지는 마셔요. 저도 어릴적에 엄마 화장품 파우치에서 립스틱 꺼내서 입술에 발라보다가 갑자기 엄마가 안방에 들어오시는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뚜껑을 닫다가 그만 립스틱을 한껏 돌려놓은채 뚜껑을 닫는 바람에.. -_-;; 다 뭉게져서 무척 놀랐어요. 엄마한테 혼난건 기억이 나지만 아주 심하게 혼나진 않았거든요. 만약 굉장히 혼났다면 이후로 립스틱만 보면 그닥 좋은 기억이 떠오르진 않을 것 같아요.

조선인님 말씀대로 아예 따로 화장품을 마련해주세요. 요즘 키드 화장품도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사고를 치더라도 그게 한때라는 것을 생각하셔서 너그럽게 용서해주심이.. ㅠ.ㅜ 해아가 몇년동안 그러지는 않을거잖아요..

바람돌이 2006-06-0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숨겨놓는건 너무 귀찮을것 같아요. 바쁜 아침마다 그거 찾아서 헤맬걸 생각하면...ㅠ.ㅠ
조선인님/아이들 화장품이 워낙에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근데 남의 집에 물건에 그래 놓은건 정말 아찔하겠습니다. ^^ 정말 해아도 지화장품을 사줘야 할려나? 그냥 갖고 놀라고요.
낡은 구두님/그런가요? 전 저기 한 대여섯번째부터는 아주 심하게 야단 쳤는데... ㅠ.ㅠ 해아는 한때가 조금 길어져요. 조선인님이나 님의 말씀대로 키드 화장품을 사줘야 할까봐요. 꼬시기 작전. ^^

울보 2006-06-0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류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원래 화장을 잘 안하는데도 아이는 어느새 안방에서 조용하다 싶으면 가만히 가서 보면 제 립스틱이랑 그 뭐시라 눈에 바르는것 있지요 그걸 연필로 콕콕 찍어보거나 아니면 눈에 바르는것을 입에 바르고 나타나고 정말 과간이 아닌데 뭐라해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그냥 그런때가 있나보다 해요,,그래서 그냥 두는 데아직 화장품가지고 여기저기 낙서는 하지 않는데,,다행히 다른화장품은 만지지 않아서요,,,

sooninara 2006-06-0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화장품중에 믿을만한 것으로 마트에서 사주세요.
은영이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몸에 안좋아도 어떡해요?
여자아이들의 본능인데..ㅋㅋ

바람돌이 2006-06-0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해아는 꼭 제가 아끼는 비싼걸로만 손을 댑니다. ㅠ.ㅠ 지 얼굴에만 발라도 참겠는데 온 방바닥을 다 발라주니까.... 대책이 필요해요. ^^
수니나라님/님도 그렇고 모든 분들의 의견이 해아걸로 장만해주는거군요. 그럼 예린이 것도.... ㅠ.ㅠ

치유 2006-06-05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화장품 셑트 사 주셔야 겠네요.
저도 참 엄마 화장품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울 딸은 아기때 딱 한번 혼나고 근처에도 안가요..치사해서 그런가??싶어서 어쩔댄 미안하기도 해요..ㅠㅠ

바람돌이 2006-06-0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해아 편들기에 힘입어 어제 마트에서 예린이와 해아 화장품 사줬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ㅠ.ㅠ
 

38. 가네시로 카즈키의 <GO>

     재일 한국인의 문제는 어떤식으로든 무겁게 다가온다.
     오늘을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들, 그리고 그 2세, 3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물론 사람들마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아 이런 방식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일본인 조선인이란 딱지를 떼고 세계인으로 (그놈의 세계화 말고) 국경을 초월
     하고, 민족, 국가간의 경계를 비웃는 이런 한방이 즐겁다.

 

39. 조두진의 <도모유키>

                             

 

     <GO>와는 전혀 다르게 역사적 무거움에 질려 숨이 막힌다.
     전쟁이란 지배자가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국 동원된 존재들에
      불과할 뿐. 적이나 아군이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건 마찬가지일터...
     누구나 살아남는게 그래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게 유일한 꿈인 사람들
     그럼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드물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40. 후루타 야스시의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알라딘 서평단으로 받은 책!
   30분이면 끝나는 책의 가격이 별로 안 착하다.
   세상에서 세번째로 작은 나라 앨버트로스 공화국
    책 광고에서는 지상낙원처럼 이 나라를 묘사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이 나라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홀로이 행복할 수 있었던 이들이 자본주의의 물결속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가벼운 그림이 많이 거슬렸다.

 

41. 손철주의 <인생이 그림같다>

   손철주씨의 책 중 두번째이다.
   그림을 감상하되 많이 지껄여보자는 주장이 와닿는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열심히 얘기한다.
   가끔 지나치게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는게 좀 거슬리지만 그래도 이 
   사람의 글발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봤던 그림이라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42-43. 퍼트리샤 콘웰의 <카인의 아들 1, 2>

    시리즈 몇번째던가? 
    갈수록 주인공에게는 정이 들지만 이제는 범인에게도 좀 말할 기회를 줬으면....
    왜 모든 범인은 주인공의 손에 죽어야 하냐고???
     침묵한채 말이다.
     조금 이 시리즈가 갑갑해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갑갑한 주인공의 연애도.....

 

 

 

44. 이태준의 <무서록>

    서울가는 길에 수연산방에 들르기 위해 읽은 책!
    솔직히 별로 안 문학적인 난 이태준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그래도 그 사람의 집에서 차 한잔을 마시려면 그의 책 한권정도는 읽어주는게
   예의일 것 같아서 고른책이었다.
   근데 참 재밌다.
   옛사람 답지 않게 짧고 간결한 문장에 난체하지 않고 일상의 감정들을 반짝반짝
  낚아 올리는 글들이 빛난다.

 

45. 이덕일의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역사학자의 손으로 다양한 역사의 표정들을 찾아내겠다는 기획의도는 좋았는데..
    역관의 삶의 모습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데는 실패!
    기존의 역사학에서 알려진 부분들을 재정리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렇다면 좀 더 역동성있게 역관의 삶을 재조명했으면 했는데 그것도 영......
    그저 기획의도와 이런 시도가 출발했다는데 의의를 두겠다.

 

 

 

46. 정출헌 외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신라에서부터 구한말까지 잘 알려진 -몇 명은 내가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고 -
    사람들을 각각 두명씩 짝지워 특정한 주제하에 그들의 문학을 대비해본 내용.
    라이벌이란 대비 자체가 책의 흥미를 돋운다.
    전체적으로 한 인물의 삶과 문학이 오롯이 담겨있진 않지만 그들이 여성관이나
    시대관이나 이런 것들이 어떻게 대조적인 문학적 경향으로 표출하는지 흥미진진
    하게 읽을 수 있었다.

 

47. 메리언 데인 바우어 외 <앰 아이 블루?>

   아이들과 같이 읽고 싶은 책.
   그런데 아이들이 언뜻 손이 안가 여기 리뷰 쓰는김에 오늘 학급 문고 독서록에도
   붙였다.
   좀 읽어봐줬으면 좋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단편 앰아이블루가 재일 재밌더라....
   정말로 단 하루라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나나 재밌을까?
                         그리고 나의 색깔은? ^^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뭐 그렇다고 할랑한 날들도 아니지만.....

6월부터는 저녁에 조금씩 열하일기를 읽어나가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는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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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6-0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읽으셨네요

바람돌이 2006-06-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대부분이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들이라 그렇죠. ^^
 

그래도 작년까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미역국도 끓이고 어쨌든 생일날만은 아침밥 먹여서 보냈어요.
근데 올해는 도저히 자신이 없는거 있죠.
아침에 밥 먹여 보낼려면 5시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ㅠ.ㅠ
오늘 아침 그냥 보냈습니다.
이런 내맘을 아셨는지 한 번도 아들 생일 안챙기시던 시어머니 며칠전부터 매일 전화하셔서
"생일밥 하게 찹쌀은 있냐? 내가 해서 갖다주련?" 하시니, 참 귀신이십니다.
근데 저는 대답만 기특하게(?) 네네 하고 그냥 넘겼어요.

그래도 완전히 그냥 넘길수는 없어서 저녁에 아이들과 전망좋은 레스토랑 가서 밥먹었습니다.
저와는 반대로 우리집 옆지기는 양식도 좋아하거든요.




레스토랑 입구에서 "어서 오세요." ^^


집이 예뻐요.


레스토랑 안에는 온통 커다란 통유리로 바다 전망을 바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근데 날씨도 흐린데다 귀찮아서 밖에 안나가고 그냥 유리창 밖으로 찍었더니 좀 흐리네요.


바다를 배경으로 폼잡는 예린이. 카메라만 들이대면 무조건 공주폼으로 변합니다. ^^


촛불 켰을때 찍었어야 했는데.... 조그만 케잌 하나 사가서 반은 레스토랑 직원들 나눠주고, 반은 우리 먹고...

레스토랑 실내풍경. 저기 멀리 보이는 아저씨가 이 집의 연주가인데 정말 다재다능하시더군요. 색스폰, 플룻, 팬플룻에 하모니카까지... 연주실력도 멋졌구요. 우리가 신청한 <철새는 날아가고>를 아주 멋진 플룻으로 연주해주셨어요. 처음 들어갔을때 이분이 연주를 시작하고 계셨는데 엄마 아빠는 음식고른다고 정신없고 별로 신경을 안 썼더랬죠. 근데 한곡이 끝나자 마자 예린이와 해아의 열렬한 박수!! 식당안의 모두들 즐겁게 웃었답니다. ^^


야외 테라스예요. 날이 좀 더 따뜻했더라면 여기서 먹으면 참 좋을것 같아요. 근데 역시 유리창 너머로 찍으니 뿌옇네요. ^^

예쁜 소라껍질에 담겨져 나온 아이들 스파게티

맛나게 잘먹고 돌아오는길에 정말 좋게도 아이들은 잠이 들어주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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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0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님 생일 덩달아 축하드려요. 가족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셨군요 ^^ 혹시 저긴 간절곶? 아닐 수도 있구요.. 두번째 사진 압권이에요.. 귀여워라~

세실 2006-06-0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헛 바다다~~~ 에고 아직도 바다만 바라보면 설레입니다. (대체 바자가 몇번이나 들어간거죠?) 넘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네요~~
낭군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06-06-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평일날 간절곶은 조금 부답스럽고요. 그냥 해운대 조금 더 가서 기장입니다. 기장쪽이 저런 레스토랑들이 곳곳에 있지요. 옆지기 직장이 해운대니 조금 일찍 퇴근하는 제가 아이들 데리고 해운대까지 가서 만나 간거지요.
세실님/님이 사는 곳은 바다 보기는 조금 힘들겠네요. 시간과 노력이 더 투자되어야 하는.... 여기 살아 좋은건 저놈의 바다가 지척이라는 거죠. 바닷가 놀러가면 돈도 안들고, 아이들은 좋아 날뛰고.... ^^ 축하 고마워요. ^^

야클 2006-06-0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한 저녁 보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애들한테 제 안부도 좀.... ^^

바람돌이 2006-06-0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애들한테 확실하게 전해드리죠.
근데 한 번은 아이들한테 야클님 사진 보여주면서 '이 오빠 어때?' 하고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

조선인 2006-06-03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해아도 공주포즈네요. 귀여워라.

아영엄마 2006-06-0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상 이미 지나버렸지만 늦게나마 님의 부군 생신 축하드립니다~ (와~ 정말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셨네요. ^^)

바람돌이 2006-06-03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요즘 해아는 뭐든지 언니따라쟁이랍니다. 아직 폼은 안나지만....^^
아영엄마님/넵 고맙습니다. 1년에 3번쯤 저런곳에서 밥 먹는것도 괜찮더라구요. ^^

하늘바람 2006-06-0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님 생일 축하드려요. 너무 좋은 곳에서 식사하시고 부러워요

클리오 2006-06-03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우리집은 모든 행사 생략이고 늘 그날이 그날처럼인데. 잘 챙기고 사시는군요.. 레스토랑 밖 풍경 너무 멋져요....

바람돌이 2006-06-0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고맙습니다. 여기는 아무래도 바닷가니까 저런 레스토랑은 좀 많아요. ^^
클리오님/갈수록 대충 챙기고 살게돼요. 아이 있으니까 더 그렇고....사실 옆지기 생일도 시어머니 전화 아니었으면 깜빡할뻔 했어요. 그래도 이런 날이라도 챙기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
 
무서록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3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품절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찍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아 있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둡는 줄 모르는 맛, 그 리고 가끔 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9쪽

자연은 신이다. 이름 없는 한 포기 작은 잡초에 이르기까지 신의 창조가 아닌 것이 없다. 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될만한 그러한 졸작, 그러한 미완품이 있을까? 이것은 생각만으로도 어리석은 일일것이다.-25쪽

국화는 사군자의 하나다. 그 맑은 향기를, 찬 가을공기를 기다려 우리에게 주는 것이 고맙고, 그 수묵필로 주욱쪽 그을 수 있는 가지와 , 수묵 그대로든지, 고작 누른 물감 한 점으로도 종이 위에 생운을 떨치는 간소한 색채의 꽃이니 빗물 어릉진 가난한 서재에도 놓아 어울려서 더욱 고맙다.
국화를 위해서는 가을밤도 길지 못하다. 꽃이 이울기를 못 기다려 물이 언다. 윗목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으면 방안은 더욱 향기롭고 품지는 못하되 꽃과 더불어 누울 수 있는 것. 가을밤의 호사다. 나와 국화뿐이려니 하면 귀뚜리란 놈이 화분에 묻어 들어왔다가 울어대는 것도 싫지는 않다.-45쪽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 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로 복되다. 집에 갖다 한 번 그들 사이에 던져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61쪽

나는 이번 병 후에 완저한 건강이란 의심해 본다. 나아갈 무렵 수십일은 초저녁에 길어야 세 시간이나 네시간을 잘뿐, 그 긴긴 겨울밤을 뜬눈으로 밝히곤 하였다. 그 지루하던 시간에 나는 몇 가지 소설 플롯을 생각하였다. 거의 전부가 슬픈 것들로서 그 인물들의 어떤 대화를 지껄여 보다가는 내 자신이 그 주인공인 듯 흑흑 느끼고 울기를 여러번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로 곧 집필하리라고 매우 만족하였던 것이 여러 가지였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붓을 들 수 있는 때 생각해보니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다. -125쪽

나무들은 아직 묵묵히 서 있다. 봄은 아직 몇천리 밖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무 아래 가까이 설 때마다 나는 진작부터 봄을 느낀다. 아무 나무나 한 가지 휘어잡아보면 그 도틈도틈 맺혀진 눈들, 하룻밤 세우만 내려주면 하루아침 따스한 햇발만 쪼여 주면 곧 꽃피리라는 소근거림이 한 봉지씩 들어있는 것이다.
봄아 어서오라!
겨울 나무 아래를 거닐면 봄이 급하다.-132쪽

나무는 클수록 좋다. 그리고 늙을수록 좋다. 잔가지에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어 휘어짐에 그 한두 번 바라볼만한 아취를 모름이 아니로되, 그렇게 내가 쓰다듬어 줄수 있는 나무보다는 나무 그것이 나를, 내 집과 마당까지를 푹 덮어주어 나로 하여금 한 어린 아이와 같이 뚱그레진 눈으로, 늘 내 자신의 너무나 작음을 살피며 겸손히 그 밑을 거닐 수 있는 한, 뫼뿌리처럼 높이 솟은 나무가 그리운 것이다.-134쪽

나는 처음에 도급으로 맡기려 했다. 예산도 빠듯하지만 간역할 틈이 없다. 그런데 목수들은 도급이면 일할 재미가 없노라 하였다. 밑질까봐 염려, 품값 이상 남기랴는 궁리. 그래 일 재미가 나지 않고, 일 재미가 나지 않으면 일이 솜씨대로 되지 않는다는것이다. 이런 솔직한 말에 나는 감복하였고 내가 조선집을 지음은 조선건축의 순박, 중후한 맛을 탐냄에 있음이라. 그런 전통을 표현함에는 돈보다 일에 정을 두는 이런 구식 공인들의 손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임으로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 일급으로 정한 것이다.-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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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6-01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서울 올라가는 길에 이태준 고가- 수연산방에 들러 차한잔 할 욕심에 미리 읽어둔 책이다. 작가의 옛집을 찾는데 그 사람의 책 한군은 읽고가는게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자리가 없어 그 집에 앉아보진 못했지만 이 책에서 풍기는 내음과 그 집의 내음이 비슷하다고 할까?
쉽고 간결하게 말하나 정감이 뚝뚝 묻어나는 글들이다. 아마 집도 주인을 닮는 거겠지....

연우주 2006-06-0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연산방.. 참 좋아요.

바람돌이 2006-06-0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빛 우주님 오랫만이죠. 반가워요. ^^
수연산방 저도 참 좋더라구요. 자리가 없어서 너무 너무 아쉬웠어요.

프레이야 2006-06-0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장바구니에 담고 가요. 좋은 벽면을 가진 방.. 부럽죠..

바람돌이 2006-06-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한 장 한장 음미해가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책이예요. ^^근데 저는 좋은 벽면보다는 좋은 풍경이 더 좋은데.... ^^
 
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은 교실에서 동성애에 관한 얘기나 또는 그런 행동이 보일때면 너희들은 여지없이 "우와! 변태다." 내지는 "00이 변태예요"라는 소리를 하지.
왜 동성애라는 버젓한 이름이 있는데 꼭 정신병자라는 느낌이 드는 변태라는 말을 너희들은 쓸까?
아마도 어른들이 동성애=변태라는 등식을 너희들에게 주입해서 그런게 아닐까?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그럴까? 정말로 동성애=변태일까?
흔히 어른들은 신은 인간을 태어날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또는 수컷과 암컷이 같이 살도록 정했다고 얘기하지.
그래서 그것을 어기는 것은 신의 섭리를 어기는거고 자연법칙을 어기는 거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하지만 말이다.
자연의 세계에도 수컷과 암컷이 아니라 암컷끼리, 또는 한 몸에 암수를 같이 가지고 있는 생물들도 있단다.

나는 종교가 없으니 신의 섭리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구나
결국 신의 섭리라는 것도 후대의 인간들이 기록하고 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는거 아닐까?

신의 섭리가 어떻든 자연의 질서가 어떻든 중요한 것은 동성애라는 것은 역사속에서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는 사실일거다.
다만 종교같은 것의 이름으로 없는 것 처럼 가려져 왔을 뿐...

이 책에 보면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단다.
모두가 별로라고 하는 애가 나는 너무너무 좋을 때가 있잖니? 그게 친구든 애인이든...
그것처럼 동성애 역시도 남들의 얘기에 상관없이 어쩔 수없이 좋아지는 감정이란다.
아마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런 친구에게 또는 사람들에게 동성애=변태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동성애를 마치 범죄인것처럼 말하는 것 말이다.

생각해보면 남자와 여자만이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도, 또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도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였기에 아마도 그게 진리인것처럼 여겨진 건 아닐까?
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면 안될까?
그것이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범죄도 아닌데...
그저 사랑하는 것 뿐이잖니?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아.
그것이 또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자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란다.

 하리수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여성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잖니?
그녀 역시 선택할 수 없는 문제였을거야
그런 그에게 자신이 남자의 모습을 띠고 태어났다는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세상의 다수가 남자와 여자로 사랑을 한다고 모든 사람이 그래야 되는건 아니지 않을까?
어른들은 또 동성애를 허용하면 이 세상의 더 이상 아기들이 안태어나고 인류가 멸종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잖니?
하지만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생각이지.
동성애를 느끼는 사람은 항상 소수였단다.
그걸 허용한다고 여태까지 동성이 좋던 사람이 이성을 좋아할리는 없잖니?

다만 자신도 어쩔 수없는 동성애자에게 비난을 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다르기 때문에 흥미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나와 다른 사람도 있을 수 있음을 그냥 인정해주면 안돼냐고....
그래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단다.
내가 다수쪽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그런 비난을 한다면 그것도 다수의 폭력일테니까

이 책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동성애적 성향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는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란다.
그 아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한 번 알아보지 않을래?
나의 생각없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죽고싶은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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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문고로 넣어둔 책인데 의외로 아이들의 손길이 잘 안가는 책이다.
하지만 나는 꼭 읽어줬으면 좋겟는데....
이 글이라도 문집에 올려놓으면 아이들이 좀 읽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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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1 0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6-06-01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아마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읽어주면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