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느데 그래도 추억이란 즐거운가 보다.
이매지님과 만두님이 첫 땡스투 얘기하는데 끌려서 나도 어땠는가 찾아봤다.

나의 첫 땡스투 받은 것.....

2005-01-29 [마이리뷰] 사람의 깊이가 곧 사상의 깊이 170

이 리뷰는 신영복님의 <강의>를 읽고 쓴 리뷰였다.
사실 이 책은 당시 엄청난 감동을 받고도 리뷰를 쓸까 말까 고민을 한참이나 했었다.
이유인즉슨 나보다 먼저 읽고 리뷰를 쓴 사람들의 글이 너무 어마어마 했기 때문....
도대체가 그렇게 훌륭한 글들을 읽고 그 뒤에 나의 허접한 글을 올린다는게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평소대로 "사람은 다 지 쪼대로 잘났고, 글도 다 지 쪼대로 괜찮은데가 있는것이다"라는 나의 신조를 용기삼아 쓴 글이 이 글이었다.
근데 누군가가 그런 나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는지 아님 그 때 당시로 맨 위에 올려져 있던 글이 나의 글이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땡스투는 나에게 무지막지한 용기를 주었으니....
나에게 이 땡스투를 날리신 모르는 님 고맙습니다. 꾸벅 ^^

이후 다시 땡스투를 받기 까지는 2개월이 걸렸다. ^^

나의 첫 땡스투 한 것....

2005-03-12 [마이페이퍼] 책을 산다면 3월 10일과 11일을 ... 680

이거 보고 많이 웃었다.
이 페이퍼 조선인님이 할인전과 땡스투 제도와 하는 방법을 소개한 페이퍼였다.
처음으로 한 땡스투가 땡스투제도를 소개한 페이퍼라니.... ^^
어쨌든 이 페이퍼에 땡스투 한 책이 열하일기 세트였으니 땡스투 금액은 그런대로 많았을 듯....(책값이 비쌌으니.... ^^)

다음번에는 누가 올려주실려나? 기대 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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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6-0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땡스투 많이 늘어나더니 갈수록 저조 합니다~~~
에고 리뷰 쓰는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가 올려드려야 겠당~

바람돌이 2006-06-0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시간쯤 돼면 늘 세실님이 나타나시네요. ^^
저도 하루는 이렇게 밤늦게까지 마실다니다가 하루는 홀라당 자버리고....
저도 요즘은 땡스투 저조하네요.
뭐 그러려니 합니다.
오늘은 저도 밀린 리뷰 쓴다고 바쁘네요. ^^

아영엄마 2006-06-01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썼어요~~ ^^

조선인 2006-06-01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광이에요. 바람돌이님. *^^*

마늘빵 2006-06-01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물만두 2006-06-0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바람돌이 2006-06-01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저보다 더 늦게 주무셨군요. 오늘 아침에 님이 쓴 페이퍼 봤어요. 아직 댓글은 못달았지만... ^^
조선인님/그쵸? 맛난서 사서 보내주세요. ^^;;
아프락사스님/웃음의 의미가 뭘까 고민고민....^^
물만두님/역시 깨달음의 의미가 뭘까 고민입니다. ^^

조선인 2006-06-0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난 거라, 뭐가 좋을까요? *^^*

바람돌이 2006-06-0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조선인님 저는 뭐든 맛나게 먹습니다. 워낙에 뭐든 맛있게 먹어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타입? ^^

조선인 2006-06-0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소 대봐요!

바람돌이 2006-06-02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조선인님! 그냥 제가 졌다 할래요.
조선인님꺼 뺏어먹었다가 나중에 백호가 저 싫어하면 어떡해요. ^^;;

조선인 2006-06-03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다 와서 빼기는. 힝.

바람돌이 2006-06-0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조선 최대 갑부 역관 표정있는 역사 1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왕조나 지배층 중심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가 우리 학계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이니 벌써 20년이다.
관점의 전환과 문제제기야 오래되었으나, 실제로 연구성과는 미미한 것이었다.
제대로 연구를 하려고 해도 워낙에 기본적인 자료의 부족이라는 난관이 큰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일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문제는 우리 학계의 풍토 - 거시사 중심의 연구풍토 - 에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아직도 미시사는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나오는 미시사 관련서적이나 논의도 대부분 서양사 전공자들에 의한 것이지 한국사 전공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미시사에 대한 다양한 비판도 있겠지만 일단 보다 총체적으로 시대를 해석하려면 역사의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아우러져야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연구결과의 대중화의 노력 역시 무시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요즘에 들어와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복원해내려는 시도가 있지만 그마저도 역사학계에서 보다는 오히려 국문학쪽에서 많은 형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덕일씨의 이 책은 역사학자가 보다 더 다양한 계층으로 연구를 확대해나가는 발걸음으로 일단 환영할만하다 하겠다. 또한 이덕일씨의 평소의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 역시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역관의 존재에 대한 책이다.(물론 고려말의 이야기가 잠깐 나오지만 고려말 역관의 존재는 우리 역사에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존재다. 이 때는 몽고와 관련된다는 것이 바로 신분상승이었으니까...)
책의 시작은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으로 시작하는데 허생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허생에게 돈을 빌려준 변부자에 초점을 두는데 그의 손자가 역관출신의 부자였던 변승업이다. 이로써 조선 제일의 부자였던 역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실제로 변씨를 제외한 다른 역관들이 정말로 조선 최대 갑부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양반관료가 아니고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조선의 상황에서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틈탄 사무역으로 부를 축적해나갔던 역관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부자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부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요즘 말로 하면 밀수에 의한 것이었고 따라서 워낙에 위험부담과 제재가 많았던 까닭에 조선 최대 갑부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 후기에 공공연하게 사무역(밀수)이 행해지자 오히려 역관은 상인들의 맹렬한 추격과 경쟁에 밀리기 시작한다. 이 역시 이들을 조선 최대갑부라고 보기에는....???
그러고 보면 이 책의 제목은 책의 홍보를 위한 과대제목(?) 과대광고로 꼽을 수 있을거 같다.

오히려 책의 재미는 역관들이 부의 축적을 보는 것 보다는 다른 면모들에서 나타난다.
옛 역관들은 어떻게 외국어를 배웠을까?
역관들이 중국어를 배우는 방법 - 철저하게 회화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재의 소개와 그것을 암송하는 것으로 역관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 하지만 요즘도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회화 교재 몇개를 통째로 외워봤자 그게 바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마도 교육은 저렇게 책을 통째로 외우고 나서 다음에 실습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대부분의 중인들이 그렇듯이 역관은 보통 대대로 집안에서 직업을 물려받고 있다. 아마도 집에서 아버지에게서 실전 회화를 주로 배우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자료의 추적이나 서술이 없는 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한 시대와 대외상황이 몽고에서 명, 청으로 바뀌면서 역관의 역할과 위상도 변해 나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건 흥미롭다.
특히 청나라가 세워지면서 사대부에게 북경으로 가는 사행길이 오랑캐 만주족에게 조공을 바치러 가는 길이 되면서 부끄러운 일이 되자 역관의 위상이 오히려 높아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곧 대통아역이라는 직위가 청나라에 새로 생긴다. 이들은 아마도 병자호란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인질로 잡혀갔던 이들의 후손들인 듯 한데 이들이 조선어와 중국어를 모두 잘하니 아예 역관도 청나라측에서 이들로 임명해버린것. 따라서 업무가 대폭 줄어들어버린 조선 역관들은 통역보다는 상인의 업무에 더 충실하고 결국 조선 후기에 사무역에 종사하는 역관이 더욱 더 늘어난 듯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기존의 연구를 뛰어넘는 해석이나 새로운 역관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데는 부족한 듯.

조선 후기에 들어서 오경석과 같은 선구적인 역관들도 더 있었을 듯 싶은데 역시 시대를 뛰어넘은 역관들이라는 장에서도 기존에 익히 알려진 오경석 외에는 뚜렷한 인물의 발굴이 없는 것도 많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역관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정리한 수준정도.
자료의 부족이야 이미 전제된거라면 좀더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역관이라는 존재를 추적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다만 기존 자료의 정리 정도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 인쇄에서 고쳐져야 할 부분 - 이 책의 189-190쪽에 보면 "오경석에게는 양반 사대부 스승과 역관 스승이 있었는데, 사대부 출신 스승은 박지원의 조부 박제가였다." 박제가의 손자가 이름이 박지원인지 어떤지는 알 수없지만, 만약에 손자라고 해도 별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유명한 연암 박지원일텐데 연암쪽이 나이가 훨씬 위이다. 오경석의 스승이 박제가였던 건 맞지만 저 앞부분은 실수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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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로 찍은 동영상을 알라딘 페이퍼에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전에 보니까 기억은 안나지만 누군가 올렸던 분이 계셨던 것 같은데....

지나치게 복잡하면 들어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보고 싶어요.

아시는 분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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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5-30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계정에 동영상파일을 올립니다.(알라딘은 파일첨부가 안 되니까, 블로그라든가 다른 계정을 이용해야겠죠.)
2. 페이퍼쓰기에서 'html로 쓰기'를 선택하고, 라고 넣으시면 됩니다.

바람돌이 2006-05-3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 고맙습니다. 일단 지금은 동영상이 없으니까 저녁에 집에 가서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
 
 전출처 : 세실 > 엄마,아부지랑 허브랜드~

오늘은 특별한 날!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가 아닌 친정엄마, 아부지랑 언니, 나  이렇게 넷이서 가까운 허브랜드로 나들이 간 날이다. 그동안은 아이들과 늘 함께 하였기에 정신이 없었다.
주말이면 혼잡하기도 하고, 부모님도 친손자를 보고 계시는지라 쉴 겸 해서 오시라고 했는데 계속 미루어지다가 오늘에야 가능하였다.

엄마가 워낙 꽃, 나무를 좋아하셔서 즐거워 하시리라 예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아하셨다. 아버지도 물론 별 말씀은 없으시지만 흐뭇하신 표정~  우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자주 시간을 마련하고 싶지만, 친손주들이 아직 어리고  24시간 함께 하시니 꼼짝하지 못하신다. 아침에 유치원, 학교에 보내놓고 오셨다~ 내년쯤 새언니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다고 하니 그때나 시간이 나실듯 ^*^

관람 코스가 대략 1번부터 30번까지~ 작년보다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아기자기해서 허브향을 즐기며 산책하기 참 좋다.  엄마, 아부지 찰칵~ (이뿌게 낳아주신 부모님 감사드리옵니다!)

올해 허브축제의 컨셉인가보다~ 디기칼리스라고 하는 식물이 마치 가로수처럼 심어져 있다.



작은 성 같다~  풀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허브다~~ '아부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이 하시나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허브용궁~  상어가 살고있다. (아이들 생각은 하지 말자고....)

일명 고추 공룡. 아들을 낳는다는 바위~ (뭐 아들도 있고~)

아부지랑 찰칵~ 아니 종은 어디갔지? 머리위에 '종'이 있고 세번 치면 가족이 건강하다고 해서 열심히 두르렸다~ (그러고 보니 다섯번 쳤나보다? 으악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언니랑 엄마랑~

천년이나 되었다는 소나무~

약수터 가는 길~

약수도 달다~ 느낌인가?

도룡농이 살고 있는 폭포도 보이고~

실내에는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사랑터널도 있고~

요것도 실내~

아부지 차에 놓을 방향제, 향수, 사탕, 보림이 허브샤프연필, 내 방향제도 고르고,
그외에도 허브차, 허브고추장, 허브오일, 허브향초, 허브바디세트, 스킨, 로션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맛있는 라벤다 허브 떡도 먹고~

꽃밥도 먹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행복해 하시는 엄마, 아부지 모습 뵈 오면서, 죄송한 마음에 '이제 시작이다!' 하는 맘이 들었다. 

여우 꼬리 : 언니가 예쁜 자켓 사주었다. 명목은 한달이나 남은 생일선물을 미리 받았다나, 뭐라나...쿄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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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5-3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 제목이 좀 촌스럽네요~~
결혼하고 나니 아빠라고 하기엔 왠지 쑥스럽고, 아버지라고 하기엔 딱딱하고~~

바람돌이 2006-05-30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그대로 엄마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빠는 왜 그럴까요? ^^
저도 그냥 아버지랍니다. 좀 딱딱하긴 해요. ^^
 
 전출처 : 로쟈 > 황홀한 20세기의 전설, 피카소

한국일보사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위대한 세기: 피카소’전이 지난 20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에 전시되는 피카소 작품들은 세계 20여 곳의 미술관과 재단, 화랑,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빌려왔으며, 대부분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것들이라고 한다. 오늘자 한국일보(06. 05. 23)에는 피카소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한 바 있는 작가 김원일씨가 이 전시회를 둘러본 소감을 적어놓고 있어서 옮겨온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인 피카소를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시기별 대작과 걸작 등 140여 점으로 만나는 이번 전시는 사실상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피카소 회고전이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5만여 점의 작품과 92세로 붓을 거둔 생애 자체가 이제 20세기의 전설이 된 피카소의 대표작 140여 점을 모아 전시한 서울시립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그림을 동경해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을 둘러보고, 그의 화집을 사모아 오다 몇 해 전 그의 전기를 썼던 필자로선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피카소가 위대한 점은 그를 현대미술의 한 유형에 가둘 수 없는 자유분방했던 창작혼에 있다. 1900년 촌티를 못 벗은 스페인의 지방 화가로 파리에 입성한 후 청색시대, 분홍빛시대, 짧은 원시미술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고전주의, 초현실주의를 두루 섭렵하고 고전의 자기식 해석법인 ‘변형’의 또 다른 시도와 도자기 작업 끝에, 누구도 도달한 적 없던 최상의 경지를 정복한 피카소는 그야말로 시각예술의 모든 장르를 깨부순 활화산이었다.



-19세에 예술의 메카 파리로 나와 곤궁했던 초기, 가난한 이웃들의 애환을 슬픈 빛 청색으로 표현했던 ‘모성’‘곡예사, 어린이와 개’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단연 시선을 끄는 대작 ‘솔레르씨의 가족’은 가난한 양복점 주인의 가족을 정감 있게 표현한 청색시대의 걸작이다. 현대미술의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한 후 브라크와 함께 경쟁적으로 분석적 입체주의를 실험했던 시기의 ‘비둘기’도 전시됐다. 사물을 각과 선으로 자르는 수법의 이 그림은 현대 추상미술의 시발점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절대적이다.



-그의 세 번째 연인이었던 러시아 무용수 올가를 로마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고전주의로 복귀한 시기의 ‘우물가의 세 여인’을 통해 피카소 미술의 변천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빨간 카페트 위의 기타’는 평생 서로 질투하며 사랑했던 경쟁자 마티스의 색의 대비를 재해석케 하는 40대 피카소의 대표적인 주제다. 피카소의 대표적 걸작으로 흔히들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등을 연상하지만 ‘무용’을 제외해선 안 된다. 초현실주의 시인 브르통, 엘뤼아르 등과 사귀기 시작했던 1925년에 그린 ‘무용’은 야만적이고도 난폭한 기법으로 파리 화단을 경악케 했던 작품이다. 나는 초현실주의 수법으로 그려진 그 대작 앞에 오래 서있었다. 혼란스러운 꿈의 세계를 생생한 현실과 결합시켜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분해한 이 광란의 춤 그림 앞에서 ‘평면회화가 이제 갈 데까지 가버렸다’며 놀랐을 당시 파리 화단 평자들의 탄성이 들리는 듯 했다.



-당대 최고의 부르주아였으면서도 평생 공산주의자로서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피카소는 ‘스페인 내란’을 거쳐 군부 프랑코가 무력으로 조국을 장악하자 격분하여 탁구대보다 큰 대작 ‘게르니카’(1937)를 그렸다. 그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전 수 없는 밑그림을 그렸는데, 이번에 전시된 ‘미노타우로스’와 ‘우는 여인’도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미노타우로스의 광폭성과 전쟁에 수난 당하는 여인의 비극적 모습이 스페인 내란의 참상을 상징하는 한편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한 그의 현실참여 정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게르니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 다섯번째 연인 도르 마르를 모델로 한 초상화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는데, ‘게르니카’가 색을 배제했듯이 초상화도 어두운 톤이 주조를 이룬다. 스페인 내란과 2차 세계대전이 피카소로 하여금 밝은 색조를 거부케 했던 것이다.



 

 

 

-피카소가 40대에 만난 네 번째 연인으로 청초한 마리 테레즈와 60대에 들어 만난 여섯 번째 연인 프랑수와즈 질로, 일곱 번째로 마지막 연인이 된 자클린느 로크의 초상화도 보인다. 마리 테레즈는 관능적이고 부드럽게, 프랑수아즈 질로는 이지적으로, 로크는 현모양처로서 모성성에 입각하여 각각 달리 해석했다. 평생 일곱 여자와 산 그가 한 여성을 만날 때마다 그의 그림도 변모를 거듭했음을 보는 것도 피카소 그림감상의 포인트다. “소설가가 자서전을 쓰듯 나는 그림으로 자서전을 쓴다”고 말했듯, 피카소의 그림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을 연대순으로 보면 그의 삶 자체가 올곧게 담겨 있다.



-피카소는 만년에 자신의 그림에 영감을 준 들라클루아, 벨라스케스, 마네의 그림을 재해석한 ‘변형’을 시도했는데,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도 출품돼 있었다. 그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십 장의 밑그림을 그리는 실험을 되풀이했는데, 밑그림 자체가 곧 완성품으로 평가된다. 90이 넘어서까지 담배를 즐긴 그는 “이제야말로 늙었다. 그러나 담배 맛은 20대 시절 그대로다”라고 말했듯.‘담배 피우는 남자’를 많이 그렸다. 관음증에 시달린 말년의 애교 넘치는 펜화 수채화와 함께 담배 문 남자상도 여러 점이 전시된 게 볼만 했다.


-그 동안 서너 차례 피카소 그림이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지만, 세계 23곳의 기관 및 개인 소장처가 협조하에 그의 전 생애의 그림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자신의 교양 수준 점검을 위해 일차 관람해볼 만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다.

06.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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