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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포스트, 1663 1 - 네 개의 우상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17세기 영국, 때는 크롬웰이 죽고 찰스2세가 돌아오면서 왕정이 복고된 시대...
그러나 여전히 영국은 그 시대 다른 유럽이 모두 그러했듯이 종교적 분열과 그 속에서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광기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다. 아니 다른 유럽보다도 더 복잡한 종교적 지형이 그려지고 있다. 영국 국교회,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퀘이커 교도들까지.... 그런 종교의 그늘 속에서는 한편으로는 18세기 이성과 합리주의의 시대를 준비하는 과학자들의 그룹이 있다.(그러나 이들은 아직은 기독교의 틀속에서만 과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기에 아직은 종교의 그늘속 음지에 불과하다) 소설은 복잡다단한 이 시대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독자를 17세기 영국에 떨어뜨려 놓는다.
추리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정말로 뭔가 거창한 추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사건은 정말 몇줄만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옥스퍼드의 신학자인 그로브 박사가 어느날밤 시체로 발견되고 살인범으로 사라 블런디라는 여자가 지목된다. 이 여자는 과격파 공화당 군인이었으며 비국교도였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던 사람을 아버지로 둔 평민 여인으로 왕정 시대에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모욕을 받아야 했던 최하층의 인물이다. 이 사건을 두고 네명의 인물들이 나와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판을 벌려간다. 마르코 다 콜라라는 이탈리아 카톨릭 신자는 사라를 살인의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잭 프레스콧이라는 젊은이는 왕당파였다가 왕을 배신하여 망명을 떠난 아버지가 누명을 쓴것이라며 그 구명을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로브박사를 죽인 진짜 범인은 그로브 박사와 성직록을 가지고 다투던 자신의 친구 토마스 켄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세번째로 공화정과 왕정을 두루 거치며 암호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는 존월리스라는 수학자는 이탈리아인 마르코 다 콜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결국 4번째 장에서 모든 이해관계에서 떨어져 있기에 가장 제대로 된 진리를 말할 수 있다는 앤소니 우드에 의해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게 된다. 사실상 사건의 전모는 싱거울 정도이나 그럼에도 결론을 전혀 예측하기 힘들어 끝까지 독자를 물고늘어지는(그 엄청난 분량에도) 저력을 발휘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어느 부분이 틀리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여기에 대해 작가는 네개의 우상을 얘기한다. '시장의 우상'이란 주위 사람들의 말과 상항에 의해 왜곡되는 상황을 말한다는데 마르코 다 콜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방인으로서 주변인물들의 말과 살인사건 과정에서 나온 몇가지 증언들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그의 오류가 그것이다.
두번재 동굴의 우상이란 자신의 개인적인 특수한 상황에 의해서 상황을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것인데 잭 프레스콧이라는 인물이 그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는 광적인 의지 하나로 모든 사람과 사건들을 판단한다.
세번째 극장의 우상이란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에 의한 왜곡이다. 뉴턴이 나타나기 이전 최고의 수학자였다는 존 월리스는 수학자 답게 안정과 질서를 중요시하고 그 질서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공화정이든 왕정이든 개의치않는다. 그에게 현재의 질서를 깨는 것은 모두 악마의 짓이다. 그에게 악마는 이방인이며 카톨릭교도인 마르코 다 콜라이고 그 집착은 모든 인물과 사건을 그 프리즘을 통해서만 보도록 강요한다.
물론 이런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은 마지막장인 앤소니 우드의 증언을 읽고 난 후라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가장 객관적인 진리를 말할 수 있음을 설파하는 앤소니 우드는? 마지막 장의 제목이 왜 인간의 일반적인 본연의 특징에 의해서 왜곡되어지는 종족의 우상이 아니라 손가락질 모양의 길안내 표시를 가리키는 핑거포스트일까? 결국 앤소니 우드의 진리를 말한다는 자신감을 빗댄 제목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오류, 즉 종족의 우상이 아닐까? 앤소니 우드 역시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볼 수 있던 것만 보고 믿는다는 인간 일반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써 놓으니 무지 어려운 책 같다. (하지만 쉽게 보이기 위해 이 이상 책을 드러내는건 추리물 리뷰에서 절대로 하지 말하야 할 금단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임을 어찌하랴) 실제로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지막을 읽고 각각의 우상을 다시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똑똑한 사람들이야 읽어가면서 위의 우상들을 간파하고 실마리를 잡아내겠지만서도 나같은 평범이에겐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리고도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들을 음미해낼수 있었던 것이다. 읽을 때 보다 읽고난 이후가 더 재밌는 참 드문 책이다.
또한 이 책의 재미를 더하는 것으로 사라 블런디라는 독특한 여성 등장인물이다. 나는 역사추리소설에서 이리도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한 인물을 본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역사추리소설들에서 여성은 남성의 부수적인 악세사리 정도로 등장함이 대부분이건만 이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모든 등장인물속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그녀는 참 아름답다.
17세기 역동하는 영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사상, 변화들을 통해 시대를 호흡하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단순한 추리속에 이만한 얘기를 버무려놓은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역사추리물이 갖추어야할 미덕을 고루 갖춘 책 - 이만한면 요약이 될수 있을려나....
사족하나 - 다른 분의 리뷰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제발 이런 역사추리물이 나올 때 그놈의 장미의 이름 좀 그만 들먹였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야 팔기위해서 어쩔수 없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기당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그 절정이 다빈치코드였다) 단연코 여태껏 나온 어떤 역사추리소설도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거나 뛰어넘는걸 본적이 없다(내가 읽은 한에서지만) 그 점에서는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안좋은 책이냐 그건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참 좋은 책이었다 할 수 있는 걸 괜히 출판사가 장미의 이름 운운하면서 사기당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게 억울해서이다. 정말로 장미의 이름보다 괜찮은 책이 나오면 그건 독자들이 알아서 붙여주지 않을까? 이제는 정말 그만 듣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