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

첫째, 기막힌 반전

둘째, 범죄자와 탐정 내지는 형사등등의 치열한 머리싸움과 추리구조, 또는 ?고 ?기는 자의 심리 대결

셋째, 인간 내면에 깊숙하게 숨어있는 인간 본연의 악마성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묘사  등

물론 이 세가지를 다 갖추면 최고겠지만 세상에 최고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중 한가지만 제대로 갖추면 무조건 좋다고 말한다.

이 책은 참 여러 사람이 최고의 추리 소설이라고 칭찬하고 또 권장해서 나름대로 기대를 많이 가지고 읽은 글인데 세상 사람들의 취향은 참 다양하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해준 책이다. 위의 세가지 중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없이 셋 다 어정쩡하다. 꼭 비비다만 비빔밥이라고나 할까? 고추장이 여기 저기 뭉쳐 있어 어떤 곳은 지나치게 맵고 어떤 곳은 싱겁고 어디를 먹어도 맛없는....

폭스이블이란 주인공은 (주인공이 맞나?) 지나치게 천박, 잔인하게 그려졌으나 그가 왜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개연성은 전혀 없고... 원래부터 악인인것 같다.

범인은 정말로 의외의 사람이나 반전의 놀라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그리 머리를 쓰야 할만큼의 추리 과정도 보이지 않고... 등장 인물의 개성도 별로... 그냥 밋밋하고

그나마 시골마을과 사람들의 어두운 비밀 운운에 기대를 걸었지만 모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비밀과 어두움.

문제는 결국 이 책의 내용이 지나치게 현실적인게 아닌가 싶다.   다른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 -그나마 내가 읽은 건 아가사 크리스티 약간과 홈즈, 그리고 소년탐정 김전일정도지만-과는 다르게 이 책은 만화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진짜 실제로 일어나서 오늘 저녁 9시 뉴스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알게 된 것 - 나는 좀 만화적인 상상력과 반전이 풍부한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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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4-2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에 반전없으면 아주 '낭패'지요..;;

바람돌이 2005-04-2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오늘도 새로운 분이 나의 서재에....
안녕하세요 비숍님! 저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너무 너무 기분 좋아요. 아직 애같아서 그런가 어쨋든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니 이리 좋은걸....
님의 이름은 여기 저기서 본것 같은데 또 가봐야될 서재가 하나 늘었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79ers 2005-05-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적인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전형적인 추리물하곤 좀 거리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겠지요.
전 무척 재미있게 봤거든요. :).

바람돌이 2005-05-2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9ers님 전 추리물은 잘 몰라요. 그리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서....
그래서 그런지 남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추리물이 좋더라구요.
만나서 반가워요

파란여우 2005-06-0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 다 좋다고 하는 일에 내가 아니면 아니거야!! 라고 외치는 님,
저와 유사한데가 많으셔서 기쁩니다.^^
 

우리 반 왕따 Y군, 며칠전 온 교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날 Y군이 조례가 끝나도록 안왔기에 오면 교무실로 보내라 하고 왔는데 잠시 뒤 교무실로 찾아온 Y에게 " 왜 지각했냐" 한마디 했다. 그 때 다른 아이를 좀 나무란 뒤라서 내 목소리가 별로 정겹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순간 온 교무실이 시끌벅적하도록  "왜요 뭐요 아씨 짜증나."등을 연발하는 아이를 보고 나는 망연자실.... 이게 무슨 일인가?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팔을 잡는데 엄청난 힘으로 뿌리치면서 나를 칠려고 했다. 그 순간 교무실의 분개한 선생님들 다 일어나고 나는 아이와 선생님들 둘 다를 진정시켜야 하는 미칠 것 같은 순간. 어쨌든 아직은 이성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라서 겨우 아이를 달래서 진정시켰다. 나중에 집에 전화걸어 알아본 결과 좀 안좋은 일이 있었단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조례를 하고 있는데 Y군이 성큼성큼 나오더니 비닐봉지에 든 뭔가를 쑥 내민다.

 "이게 뭐냐"

"몰라요 아빠가 갖다주라던데요" 열어보니 티셔츠다.

"이게 뭐니"

"선생님 입으세요"

순간 적응이 안되는데 일단은 좀 과장해서 진짜 고맙다를 연발하고 교무실에 와서 아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말씀이 Y군이 전부터 계속해서 우리 선생님 옷 사줘야 된다고 아빠를 졸랐단다.(내가 그렇게 옷을 못입고 다녔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딴에는 그 날 일이 좀 미안했던가 싶기도 하다. 그 이후로 말도 잘 듣고 살살거리고 내앞에서 웃기도 잘하고 있으니...

교사로 학부모한테 뭔가를 받는건 액수에 상관없이 - 아니 액수가 크면 클수록 부담스럽다. 대부분은 돌려보내지만 이런 선물은 도저히 돌려보낼 수가 없다. 돌려보내는게 오히려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또 한편으로는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데 참 문제가 생겼다. 옷을 선물받았으니 학교에 입고가야 하는데 이 옷이 도저히 나로서는 소화가 안된다는 것이다. 옷이 안좋은 건 아니다. 꽤 돈을 줬음직 한데 문제는 첫째 색깔 황토색, 일명 똥색이다. 내가 절대로 소화못하는 색이다. 거기다가 완전 40대 아저씨들이 즐겨입는 스타일. 여기까진 감수할 수 있으나 더 큰 문제는 티셔츠의 천이 너무 얇다보니 몸에 착 달라붙는다는 거다. 몸매가 받쳐주면 어떻게 커버가 되겠으나 나의 똥똥한 몸매로는 몸의 선, 특히 똥배의 선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거다. (으악~~~~)

그럼에도 눈물을 머금고 나는 내일 이 옷을 입고 가야 하리... 게다가 잊어먹지 않게 몇번은 더 입고 가야하리... 에구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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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4-2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그런 티셔츠면 차라리 보통 날보다 소풍이나, 체육대회를 이용하심이... 기분 전환도 되구요... ^^;; (그래도 고가의 옷이라 고민하지 않아도 되서 다행입니다. 제목을 보고 그걸 걱정했거던요...)

울보 2005-04-2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아이의 마음이 너무 이뻐요..
그옷을 걱정하는 님도 ......

로드무비 2005-04-21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똥색 티셔츠.
그거 소화하기 진짜 어려운데......
실례지만 너무 재밌어요.
(그 녀석 참! 아이들 가르치다보면 난감한 상황이 많겠군요.)

바람돌이 2005-04-2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입고 학교에 왔슴다. 아침 조례 시간에 아그들 앞에서 패션쇼 한판 하고... 아이들 있는대로 웃으면서 섹시하다 해주고.... 헤헤~~~

책읽는나무 2005-04-2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도 선생님이시로군요!..몰랐습니다.^^
그 옷 한번 보고 싶군요!..^^
선물해준 그아이의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소화하기 힘든 옷이라도 어쩌겠습니까!...아이가 좋아하고 님을 잘 따라준다면 옷값보다 더한 값으로 보상받는게 아니겠습니까!..^^

2005-04-2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4-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맞아요. 그래서 오늘 이틀 달아서 용감하게 입고 왔답니다. 한동안은 안 입어도 되겠지 하면서.... 앞으로 잘 따라줄지 어떨지는...
 

학교에서 담임을 할때와 안할때의 차이는 참 크다. 일단 시간의 여유가 다르고 정신적 여유는 말할 것 없다. 확실하게 나타나는게 담임을 안할 때는 아이들에게 참 여유가 있다. 그래서 애들이 다 예쁘다. 그리고 버릇없거나 도를 좀 넘어서는 아이들도 심하게 나무라지 않고 얘기도 하고 아니면 코믹하게 상황을 넘어가면서 아이들에게 생각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2년 연속으로 출산과 육아, 수업시수등의 이유로 담임을 안하다가 올해 오랫만에 담임을 맡았다. 정말 의욕적으로 3월을 시작하고자 했으나 입학하고 이튿날부터 반 분위기가 심상찮다. 초기부터 유난히 눈에 띄는 두 아이, 남학생 하나 여학생 하나 왕따의 기미가 농후하다.  이번에 맡은 반은 여학생들은 대체로 유순한 편이라 여학생의 경우 초기에는 적응이 거의 안되고 외톨박이로 놀았지만 몇번의 상담과 주변 아이들에게의 당부등으로 그런대로 적응해가는 것 같다.

문제는 남학생쪽이다. 정서적인 면에서 대인관계를 풀어가는 면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일단 정상적인 대화가 안된다.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 하나를 고집피우면 다른 얘기는 아예 알아듣지를 못한다. 거기다가 자기 방어기제는 엄청 발달해 순간적으로 폭발하면 물불을 안 가린다. 아이들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른 아이들이 조금 이해심을 가지고 대하면 문제가 쉽겠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걸 요구하는건 정말 힘든 일이다. 학기초 2주동안 끊임없는 싸움(대부분 주먹다짐이다)이 벌어졌다. 일단 그 남학생이 작고 만만해보이니까 모든 아이들이 집적거린다. 그리고 그 아이가 덤비면 주먹다짐으로 번지는 것이다. 싸움의 이유는 그 나이 때 아이들에게 늘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이다. 문제는 일방적으로 한 아이가 당한다는 것이다. 결국 남자아이들을 모두 남겼다. 이것저것 온갖 잔소리를 하고 결국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너희들 모두를 전학시킬 수 밖에 없다는 얘기로 아이들을 협박하였다. 너희는 전학을 가도 어디에서든 별탈없이 잘 살수 있지만 너희들에게 상처받은 그 애는 다른데로 전학가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 뭐 그런 얘기들로 협박을 주절주절..... 어쨌든 협박이 통해서 아이들이 친해진건 당연히 아니지만 더 이상 집중적인 따돌림이나 시비는 없어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전혀 아니다.

거기다가 올해 우리 반의 남학생들은 너무나도 혈기왕성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쌈박질에 학교 보건실의 단골인데다가 교실은 늘 쓰레기통이고 교실의 기물들도 남아나는 것이 없다. 수업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수업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결국 담임인 나로서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결국 나도 초기의 유화책을 벗어던지고 강경책으로 나갔다. 그래봤자 몇가지 지켜야 될 상황을 얘기하고 안될경우 강경한 어투의 협박, 잔소리와 함께 매일 남겨서 30분간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거지만....그런데 4월로 들어서도 상황은 별로 호전되지 않는다.

어제는 하루종일 짜증이 났다. 이유야 피곤과 스트레스의 누적이다. 거기다가 오후에  교사회의 때문에 아이들을 남길 시간이 없었다. 결국 몇몇 아이들에게 매를 들고 말았다. 절대로 아이들을 때리지 않겠다던 내 스스로의 약속을 아무 생각없이(진짜 그순간엔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 깨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폭력에 의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는 걸 그리 잘 알면서..... 그리고 하루종일 더 우울했다.

내안에 들어있는 폭력성은 참 쉽게 되살아나는구나....그리고 내가 너무 쉽게 내 방식을 포기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빨리 해결해야 된다는 조급성은 결코 내것이 아닌데....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방식을 포기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강압적인 방식을 뒤집어 쓰니 나도 아이들도 모두 어색하고 힘들고....

오늘도 아이들은 또 언제 맞았냐는 듯이 혈기왕성하고 발랄하다. 순간 웃음이 난다. 이것들을 어째야 될까? 그냥 내버려두자니 성실하게 자기 할 일 다하는 소수의 아이들이 너무 피해를 보고, 그렇다고 때리는건 도저히 적성에 안맞고.... 오늘도 9명이 남아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그래도 여태까지 중 가장 적은 숫자다)아마 1년 내도록 이짓을 해야 되는건 아닌지......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본다. 나에게는 나만의 방식이 있고 그저 아이들을 믿어주면서 조금씩 천천히 해결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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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4-1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난히 힘든 반이 있는데, 그 반을 맡으셨군요... 저는 짧은 교사생활 중에서도 아이들과 힘들면, 평소에 튼튼하던 위가 그 다음날 쓰리곤 하던데... 어떻게 풀어가시라고 해야 할지, 위로가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숙면을 그저 기원드릴 뿐...

바람돌이 2005-04-1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면 저에게 필요한 것 맞아요. 어찌나 걱정이 많은지 요즘은 밤에 잘때 이것들이 싸워서 피터지는 악몽을 꾼다니까요.

클리오 2005-04-15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괴로움일 거이 분명함에도, 저는 그 악몽들이 너무 실감나 잠시 웃었습니다. 용서해주시기를... ^^;;

로드무비 2005-04-1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교사였군요.
이 시대에 교사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글 구절구절이 마음에 와닿아요.

바람돌이 2005-04-1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이꿈이 실감난다는 건 님도 이런류의 꿈을 꿔봤다는 말? 자고나면 황당해서 웃지만 진짜 악몽이예요
로드무비님 고생은 무슨요. 이것도 직업이고 일이라는 건 뭐든지 다 그만큼의 힘듬이 있고 또 즐거움도 있는거죠 뭐! 그래도 이녀석들땜에 학교가는 재미가 나요

클리오 2005-04-2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 중 그런 악몽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 속닥거리며 고백하자면, 극도의 부적응 교사였던 저는 파견나왔다 복귀를 준비하는 2월이 되자 꿈에 '그냥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있는' 장면인데, 악몽이었다는... --;; (아! 교사답지 못한 발언이여~)
 
핑거포스트, 1663 1 - 네 개의 우상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17세기 영국, 때는 크롬웰이 죽고 찰스2세가 돌아오면서 왕정이 복고된 시대...

그러나 여전히 영국은 그 시대 다른 유럽이 모두 그러했듯이 종교적 분열과 그 속에서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광기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다. 아니 다른 유럽보다도 더 복잡한 종교적 지형이 그려지고 있다. 영국 국교회,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퀘이커 교도들까지.... 그런 종교의 그늘 속에서는 한편으로는 18세기 이성과 합리주의의 시대를 준비하는 과학자들의 그룹이 있다.(그러나 이들은 아직은 기독교의 틀속에서만 과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기에 아직은 종교의 그늘속 음지에 불과하다)  소설은 복잡다단한 이 시대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독자를 17세기 영국에 떨어뜨려 놓는다.

추리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정말로 뭔가 거창한 추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사건은 정말 몇줄만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옥스퍼드의 신학자인 그로브 박사가 어느날밤 시체로 발견되고 살인범으로 사라 블런디라는 여자가 지목된다. 이 여자는 과격파 공화당 군인이었으며 비국교도였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던 사람을 아버지로 둔 평민 여인으로 왕정 시대에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모욕을 받아야 했던 최하층의 인물이다. 이 사건을 두고 네명의 인물들이 나와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판을 벌려간다. 마르코 다 콜라라는 이탈리아 카톨릭 신자는 사라를 살인의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잭 프레스콧이라는 젊은이는 왕당파였다가 왕을 배신하여 망명을 떠난 아버지가 누명을 쓴것이라며 그 구명을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로브박사를 죽인 진짜 범인은 그로브 박사와 성직록을 가지고 다투던 자신의 친구 토마스 켄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세번째로 공화정과 왕정을 두루 거치며 암호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는 존월리스라는 수학자는 이탈리아인 마르코 다 콜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결국 4번째 장에서 모든 이해관계에서 떨어져 있기에 가장 제대로 된 진리를 말할 수 있다는 앤소니 우드에 의해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게 된다. 사실상 사건의 전모는 싱거울 정도이나 그럼에도 결론을 전혀 예측하기 힘들어 끝까지 독자를 물고늘어지는(그 엄청난 분량에도) 저력을 발휘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어느 부분이 틀리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여기에 대해 작가는 네개의 우상을 얘기한다. '시장의 우상'이란  주위 사람들의 말과 상항에 의해 왜곡되는 상황을 말한다는데 마르코 다 콜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방인으로서 주변인물들의 말과 살인사건 과정에서 나온 몇가지 증언들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그의 오류가 그것이다.

두번재 동굴의 우상이란 자신의 개인적인 특수한 상황에 의해서 상황을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것인데 잭 프레스콧이라는 인물이 그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는 광적인 의지 하나로 모든 사람과 사건들을 판단한다.

세번째 극장의 우상이란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에 의한 왜곡이다. 뉴턴이 나타나기 이전 최고의 수학자였다는 존 월리스는 수학자 답게 안정과 질서를 중요시하고 그 질서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공화정이든 왕정이든 개의치않는다. 그에게 현재의 질서를 깨는 것은 모두 악마의 짓이다. 그에게 악마는 이방인이며 카톨릭교도인 마르코 다 콜라이고 그 집착은 모든 인물과 사건을 그 프리즘을 통해서만 보도록 강요한다.

물론 이런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은 마지막장인 앤소니 우드의 증언을 읽고 난 후라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가장 객관적인 진리를 말할 수 있음을 설파하는 앤소니 우드는? 마지막 장의 제목이 왜 인간의 일반적인 본연의 특징에 의해서 왜곡되어지는 종족의 우상이 아니라 손가락질 모양의 길안내 표시를 가리키는 핑거포스트일까? 결국 앤소니 우드의 진리를 말한다는 자신감을 빗댄 제목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오류, 즉 종족의 우상이 아닐까? 앤소니 우드 역시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볼 수 있던 것만 보고 믿는다는 인간 일반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써 놓으니 무지 어려운 책 같다. (하지만 쉽게 보이기 위해 이 이상 책을 드러내는건 추리물 리뷰에서 절대로 하지 말하야 할 금단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임을 어찌하랴) 실제로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지막을 읽고 각각의 우상을 다시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똑똑한 사람들이야 읽어가면서 위의 우상들을 간파하고 실마리를 잡아내겠지만서도 나같은 평범이에겐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리고도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들을 음미해낼수 있었던 것이다. 읽을 때 보다 읽고난 이후가 더 재밌는 참 드문 책이다.

또한 이 책의 재미를 더하는 것으로 사라 블런디라는 독특한 여성 등장인물이다. 나는 역사추리소설에서 이리도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한 인물을 본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역사추리소설들에서 여성은 남성의 부수적인 악세사리 정도로 등장함이 대부분이건만 이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모든 등장인물속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그녀는 참 아름답다.

 17세기 역동하는 영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사상, 변화들을 통해 시대를 호흡하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단순한 추리속에 이만한 얘기를 버무려놓은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역사추리물이 갖추어야할 미덕을 고루 갖춘 책 - 이만한면 요약이 될수 있을려나....

사족하나 - 다른 분의 리뷰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제발 이런 역사추리물이 나올 때 그놈의 장미의 이름 좀 그만 들먹였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야 팔기위해서 어쩔수 없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기당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그 절정이 다빈치코드였다) 단연코 여태껏 나온 어떤 역사추리소설도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거나 뛰어넘는걸 본적이 없다(내가 읽은 한에서지만) 그 점에서는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안좋은 책이냐 그건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참 좋은 책이었다 할 수 있는 걸 괜히 출판사가 장미의 이름 운운하면서 사기당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게 억울해서이다. 정말로 장미의 이름보다 괜찮은 책이 나오면 그건 독자들이 알아서 붙여주지 않을까? 이제는 정말 그만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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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바람돌이님.
리뷰 멋지네요.
특히 장미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아주 적절하다고 봐요.^^
(바람구두님 서재에서 댓글 보고 리뷰 뽑히신 거 알게 되었음.
으~~배아파~~바람구두님.^^)

로드무비 2005-04-2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인사(오늘 퍼온 이모티콘 실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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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4-2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로드무비님! 저런 이모티콘은 어떻게 하는걸까?
 

며칠 전 플라시보님의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죽어 마땅한가?"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글을 읽고 우울해졌다. 가끔 우리 사회가 내 생각보다 참 빨리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가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 안변하는구나 싶어 우울하다. 가끔 아이들에게 내 어릴 때 얘기를 해주면 거의 코미디 분위기 되면서 같이 웃을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상황을 옛날엔 이런 황당한 상황도 있었어 하면서 코미디 같이 웃어넘길 수 있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전 3월초에 있었던 우리학교 반장선거에서의 해프닝이 생각났다. 많은 학교들이 남녀공학이 되면서 학교성적의 상위권은 거의 여학생들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그런건지 우리 학교는 작년에 전교 학생회 뿐만 아니라 학급의 반장 부반장에서 여학생들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3명의 반장 부반장을 모두 여학생이 차지하는 반도 몇반 되었으니....(옛날 내가 학교다닐 때 여학교임에도 선생님들로부터 남녀차별적인 발언을 무지 들어야 했던 시절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 물론 그런 발언들이 모두 다 없어진 건 아니지만... )

문제는 학생회에 여학생의 진출이 너무 두드러지면서 이 역시 남녀평등에 어긋난다는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 - 따라서 이번선거에서는 전교학생회는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학급에서는 최소한의 남녀비율은 맞추라는 말때문에 일어났다. 최소한 학급 반장 부반장 3명중 (부반장이 2명이다) 최소한 한명은 다른 성(性 )으로 비율을 맞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 황당하여 웃었다. 아들가진 학부모의 입장에 있는 선생님은 아들 기살리기 작전이라고 농담을 했었다. 황당하긴 하지만 옛날 반장은 무조건 남학생이어야 하고 여학생은 부반장 아니면 얌전히 있어야 한다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를 어찌 해야하나....

몇몇 선생님들의 격렬한 반대(맘에 드는건 격렬하게 반대한 선생님에 남선생님들이 많았다는 거다) -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말도안되는 몇가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여학생 3명이 표를 더 많이 받았음에도 남자라는 이유로 한 2표받은 애가 부반장이 되면 어쩔거냐 등등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남학생 동정론 - 불쌍하다 아이가 좀 봐주자...

거기에 강고한 교장샘의 밀어붙이기

결국 학급선거는 남녀비율을 맞추는 걸로 결정이 나고 치뤄졌다. 각 반에서 다행히도 남학생들이 한명도 후보로 안나오는 사태는 없었고, 그나마 나온 아이들도 남학생들의 몰표를 받으면서 어느정도의 표를 확보하여 무사히 반장 또는 부반장이 되었다. 물론 여학생에 비하여 전체적인 숫적 열세는 면할 수없었지만...

아마도 내년에 이 규정은 다시 문제가 될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같은 여자로서 요즘의 여학생들의 모습에 한편으로 같이 뿌듯해 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도 계속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어디 그런가? 여자이기 때문에 안고가는 핸디캡이 어디 한두가지인가? 여자가 담배피운다고 길거리에서 맞아야 하는게 아직도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한편으로 우리의 딸들이 헤쳐나가야 할 세상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래도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는 우리들보다는 더 씩씩하게 세상을 바꿔가지 않을까 마음이 든든하다. 또한 이 아이들이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도록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게 무얼까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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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4-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그렇게 말도 안되는 규칙을, 헉!!!
그래도 바람돌이님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사회적 약자"인 것 같아 한편으론 통쾌하네요.ㅋㅋ 정 안되니깐 강제적인 T/O를 적용해서라도 보호해 주겠다?우하하하.
씩씩하고 똑똑한 여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그렇게 튼튼할 수 있기를...
정말....진정...간절히 바랍니다.

바람돌이 2005-04-1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2005-04-13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4-1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예요 수선님께서 글을 써준다니 이런 영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