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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이승진 옮김 / 향연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꽤 큰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부, 2부, 3부를 다 읽고 책을 덮을 때까지 정말 혼란스럽다. 도대체가 뭘 말하자는 건지.... 1,2,3부의 연관관계는 뭔지....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가 없었다. 다른 책보다 훨씬 긴 저자 약력까지 샅샅이 읽고 역자의 소개글까지 다 읽었다. 단서가 될 만한 말 한마디. 이 책이 일본 학생운동세력이었던 전공투의 최후의 종말을 가져온 '아사마 산장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그리고 저자 역시 전공투 세대였을뿐만 아니라 전공투의 종말 이후 10년간이나 실어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전공투에 대한 자료들을 이것 저것 뒤지면서 책을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아사마 산장 사건'을 잠시 잊어도 된다는 역자의 말은 전혀 아니었다. 물론 문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은 이 책의 독특한 문체나 구성 같은 것에서 뭔가 의미를 끄집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그래도 적어도 책의 내용이 뭘 말하는지는 이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전공투나 아사마 산장 사건을 빼놓고 이 책을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 할 것 같다.
1968년 대규모의 좌파운동이 온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일본 역시 학생운동에서 전공투(일본 대학생들의 연합조직이었던 전국학생 공동 투쟁회의의 준말이다.)가 결성되고 세계적인 흐름과 발을 같이 하게된다. 우리의 80년대가 그러했던것처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이들의 투쟁은 폭발적이었고 점점 더 격렬해졌다. 결국 게릴라전의 성격을 띠고 무장투쟁으로까지 나아갔으나 강력한 탄압에 의해 거의 무력화되었고 마지막 남은 전공투원들은 1972년 2월 아사마 산장에서 산장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다 결국 모두 죽게되었다. 일본 학생운동의 끝은 다른 어떤 지역과도 다른 처절한 비극이었다. 더 큰 비극은 이들 세대의 주장이나 사상이 그 이후 일본 사회에서 거의 잊혀졌다는데 있는 것 같다. 유럽의 68세대나 우리나라의 386세대들이 이후 사회의 변화속에서 별 무리없이 섞여 들어가고 일부는 주류사회로 진출하고(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까지 대거 진출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들이 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또 그 세대들의 이념이 적어도 후대 사회에서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완전히 잊혀진 세대가 된다는 것, 그들 세대 전체가 가지는 허무감은 어떤 것일까?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바로 그런 세대에 대한 비가(悲歌)이다.
책을 다시 들춰보자. 1부의 내용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이름을 지어주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그 아이가 죽게되는데서 끝난다. 일본 전공투가 싸웠던건 세계의 제국주의적 재편과 그 속에서 교육에 행해병?고도의 관리주의적 체제였다. 그런 관리와 자본의 간섭속에서 젊은 그들이 느꼈을 절벽과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 그러나 미약한몸부림이 느껴졌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감수성 예민하고 섬세한 지나치게 순수한 한 청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리라. 그런 그가 바라는 '시(詩)적인 감수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2부의 모습이 아닐까? 비록 초라해보일지라도 말이다.3부의 내용은 거의 '아사마 산장 사건'에 대한 재현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사실적인 재현은 아니다.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짧은 문장들속에 그것은 꼭꼭 숨어있다.
흔히 후일담소설들이 잘 빠져드는 감상주의나 전날에 대한 지나친 낭만화에서 이 소설은 비켜간다. 그저 담담히 자신을 잊지는 말아달라는 셉떳?같다. 그래서 더 이 글이 슬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