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철학 입문 -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김은주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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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책의 최대의 성취는 바로 그 입문을 읽는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바로 그 최대의 성취를 이룬다. 아 페미니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구나라고 절감하게 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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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정치에 깔린 이 이분법은 억압받는 자들의 대상화로 이어지게 마련이죠. 흔히 주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비주체를 마음대로 규정해요. ‘비주체들은 어떨 것이다‘라고요. 그게 대상화예요. ‘저 사람들은 결핍되어 있고 불쌍해, 저들은 불행할 거야. 이걸 대상화라고 하는 거예요. 이 대상화라는 건 실제로 그집단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 권리를 안 주면서그들이 어떻다고 다 말하는 거예요. 그들이 말하려고 하면, ‘조용히 해. 내가 대신 말해줄게. 너는 이런 사람이야‘ 하는 거요.
- P383

이 차이를 차별로 만들고, 차이를 대립이라고 생각했던 소위 동일한 주체들이 사실 자기도 하나의 차이 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이 차이들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들이 알려고 해야 되는데 거꾸로 알려달라는 것도 문제라는 거고요. 차이를 분열로 만드는 건 차이를알려고 하지 않는 너희들 탓이라는 게 로드가 말하려고 하는 바인 거죠.
- P391

자기의 특권을 인식하기. 나를 정상성에 놓고 말하는 게아니고, 내가 백인이라는 특권, 내가 가진 위치의 특권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리 잡는 것. 이게 되게 달라요. 보통 우월성을 앞세워서 이야기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오드리 로드는 사실 그 우월한 자들은 우월성을 정상성이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라고 호명해요. 그런데 특권을 인식한다는 건, 내가
‘모든 인간‘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특권을 지닌 존재로서 이야기한다는 거죠. 자신을 ‘모든 인간‘이라고 호명하지 않고,
- P393

차이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를 설명할 때 자신의 문제점을소위 억압자들에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자기의 역량을 길러내는것에 힘쓰라고 하는 거예요. 동시에 억압자(로드는 억압과 피억압이라는 아주 단순한 구도로 이야기를 시작하니까요)들은 피억압자들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말고, 네게 특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세계를 이해하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가진 일반의 지위에서내려와서 나를 주변화된 지위나 특수화된 존재로 만드는 작업을하라는 거예요.  - P395

당시 미국에서는 전미여성기구 같은 단체도 조직되고, 여성운동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미 우리가 얻었다‘ 라고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양성평등을좀 이뤘다든지,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해서 가정에서 머무르지말고 공적 영역으로 나가자고 한다든지. 그런데 사실 그 안에서여성의 지위는 한정적이에요. 왜 한정적일까요. 잘난 여성으로서존재할 지위만 있으니까요. 적어도 대학 교육은 받았고 집에서아이를 돌봐야 해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라면 일을 찾을 수는있겠죠. 그렇지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요? 이미 집안에서 일도 하고 밥벌이도 하고 있는 여성은요? 그 여성들에게는어떠한 변화가 있는 것일까요?
- P401

근본적인 차이, 근본적인 문제, 구조를 혁파하거나 여성을종속에서 끊어내려면 가부장제가 다양한 차이들의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검토할 수 있도록 차이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전략을 가져와야 하는데, 이 모든 경험을 동일하다고 해버리는순간 우리는 주인의 집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반대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구조를 유지하는 데 우리도 기여하는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P406

(나이, 인종, 계급, 성>이라는 글은 로드의 시로 마무리가되는데 마지막 부분이 이래요. "모르겠다/우리가 역사 너머 새롭고 더 많은 가능성을 품은 관계를 갖게 될지." 목적이, 결말이 없다는 거잖아요.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들어요. 저는 더 많은 세계에대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억압자들이 말하는 정확한 유토피아라는 거짓보다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 P410

이 위대한 인간이라는 사유를 지탱하는 전제는 이래요.. 나는 이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원자적인 개체이기 때문에그 안에서 굉장히 큰 자유의지를 갖고 세계를 개척할 수 있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바로 글레인 거예요. 차별받는 사람한테 자긍심을 가지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긍심을 갖기 어려운데, 자유의지가 있고 이걸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긍심을 못 갖는 건 누구 탓이 되는 거죠? 그 사람 탓이 돼요. ‘넌 그렇게 정신승리가 안 되니? 그렇게 될 수가 있어요.
- P413

이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의 모멸은신체로부터 오는데, 이렇게 되면 신체의 모멸 따위는 중요하지않은 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나는 내 자유의지를 통해서 결국 극복할 거라는 신화들이 만들어지는 거죠.
- P414

이렇게 자기와 가까운 존재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에게 향한 혐오를 "죽음의 저주‘라고까지 말합니다. 왜 죽음의 저주인지 아시겠죠? 사실상 흑인 여성들은 흑인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혐오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살고 싶다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 P422

로드는 분노의 원천이 혐오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분노와 혐오가 만나면 잔임함으로 바뀌는 감정의 역학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너무 많은 혐오를 감내하면 잔인해지죠.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자기를 사랑해야 된다고 하잖아요. 자기를 사랑해야 세상에 대해서도 애정을 베풀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자기 혐오하는 사람들은 사실 나도 살기 힘들고 내가 싫어 죽겠는데 세상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이 존재들이 더 잔혹해질 때도 있어요.
- P424

로드는 여기서 아주 훌륭한 통찰에 도달합니다. 바로 자신의 상처와 그로 인한 고통을 인정한다면 더 이상 자신을 괴롭혀은 적대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용할 수 없다는 거예요.  - P425

그러니까 로드의 무기는 뭐냐면, 온전히 차별받았던 그 상황이에요. 이 페미니스트들, 이 소수지들, 이 차별받는 사람들은요,
자기가 살고 있는 이 현장, 이 신체, 이 공간 밖에서 대안을 찾지않아요. 자기가 살아온 이 신체, 자기가 살아온 이 현장, 자기가살아온 이 조건이 자신의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들, 거기서 출발해요. 이건 새로운 방법론인 듯도 싶어요.  - P427

 근대 도덕의 원천은 이성에 있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페미니즘은 감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들과거기에 필요한 중요한 가치들을 제안해요. 하나는 차이와 타자성의 존재고 또 하나는 연결성, 관계성이라는 윤리적 가치죠.  - P432

예를 들면 외부에서 우리를협박하는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하는 힘을 만드는 것보다 나와 비슷한 존재들을 싫어하는 게 더 쉽다는 거예요. 중요한 성찰이조.
같은 경험을 하면 연대한다는 말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왜? 우선, 같은 경험도 없고, 모든 경험이 같지도 않죠.  - P434

 여성들이 같은 경험으로 연대한다‘라는 말에는 뭔가가 빠진 거예요. 우리가 같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얻어야 한다면, 그건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된경험이겠죠. 페미니즘의 이해를 거쳐 자신의 경험에 자긍심을 느끼고, 그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또 다른 경험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언어를 거쳐낸 경험으로 소통해 연대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 P435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충분히 훌륭하지 못한 존재로 규정되는 흑인 여성이다.  - P448

로드의 훌륭한 점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그것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것을 정치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정의할 권한을 분명히 하고, 엄마에게 기대했던 그런 포용의 시작과 성장과 기대를 스스로에게 쏟아부어야 한다는 거죠.  -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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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흑인 여성들한테 일을 한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고,
옛날부터 그래왔어. 일을 계속하는 건 사실은 이중 업무인 것 같아. 오히려 이 가정에서의 권리를 내가 찾는 게 더 중요한 문제일수 있어. 그리고 이 흑인이라는 영역 안에서 가족은 우리를 단결시키고, 우리의 혈통, 혈족, 문화를 이야기하는 게 우리한테는 굉장히 중요해, 백인들은 가족이 억압이라고 하면서 집에서 다 나가버리라고 하지만, 우리 흑인 여성들에게 가족은 그런 게 아냐.
여기는 우리한테 힘을 주는 곳, 임파워링하는 곳이야.
- P307

그러니까 이 차이의 문제라는 건, 남성과 여성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에요. 여성을 섹스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사회적 성별인 젠더로 이해하고, 이 젠더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서 묻기 시작하는 거죠. 젠더를 구성하는 데 인종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인종이 여성이라는 젠더와 맞물려서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는거죠. 그래서 여성들 간의 차이들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해요.
여성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이고, 여성이라는 말 안에 단수의 여성은 없다는 거죠.
- P309

그런데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 끝에 나오는 이 오드리 로드,
흑인 페미니스트들, 다양한 차이들을 이야기하며 ‘여성은 복수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차이는 분열이 아니라 역량, 운동의 역량이다‘라는 거예요.
- P312

차이는 분열을 일으키는 게 아니고, 차이는 정치의 역량, 힘이라고요. 이게이후의 여성들간의 차이, 그리고 여성 자신의 내부의 차이들을페미니즘 정치의 주요한 주제로 삼는 제3물결 페미니즘을 만들어내는 데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 P313

그럴 때 차이의 정치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거죠. 오히려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다른 비전, 다른 대안을 고민하는 게 정치의 몫이 아닐까. 내가 조금이라도 더 힘을 모아서 권력을 탈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를 질문한다는거예요. - P315

 정체성의 정치학은 우리가 같다는 걸계속 확인하는 작업들을 해요. 차이의 정치학은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과제로삼는 거예요. ‘다르다‘라는 건 목소리가 별로 없다는 뜻이에요.
왜?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이 다른 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북돋는 게 정치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차이의 정치학이라는 거예요.
- P320

그런데 그것보다는 권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권력을 생산해내는 것이 차이의 정치의 목표인 거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권좌를 빼앗아오는 것도중요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이 자리가, 이 삶의 자리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는 그 자체가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 P321

흔히 차이의 정치학을 분열의 정치라며비난하는데, 정치의 목표가 달라요. 정체성의 정치학은 단결을목표로 하지만, 차이의 정치학은 차이 나는 존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목표예요. 그렇죠?
- P327

그런데 차이의 정치학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인정하는 거예요. 우리가 언제든지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사실을 이해하는 것들이에요. ‘사회적 약자? 내가 왜 사회적 약자야. 나 지금 부자고, 나 지금 멀쩡한데?‘ 하지만 우리는 아주 어린아이로 태어났고, 노인이 되고, 언제든 사고를 당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1퍼센트의 부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불안정한고용 상태에 시달리기도 하죠.
- P327

이제 이렇게 물어볼 수 있죠. ‘누가 연대를 깨는가? 차이를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차이를 은폐하는 사람인가?‘ 오드리 로드는 이야기해요. 차이를 은폐하는 사람이 연대를 깬다고요. 그리고 그렇게 연대를 깨기 시작하면 우리가 반대하는 사람들을 똑같이 닮아가는 것이라고 해요.  - P336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꾸면서 표면에 흠집 내기‘ 이건 누군가를 성가시게 하려는 태도가 아니에요. 누구군가를 괴롭히는 태도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자기의 두려움을 떨치고 삶을 끝까지살아내려는 몸부림인 거죠.
- P339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사회일수록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여성들이 말할 권리를 박탈해요. 가부장제가 섹슈얼리티를 정의하고 사용하고 누릴 권리를 독점화합니다.
그런 점에서 섹슈얼리티 해방, 성해방이라는 게 아무하고나 자고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단속하는 자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섹슈얼리티의 억압이라는 건 섹슈얼리티를 생식으로만 결정시키면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막고 왜곡하고 타락시킨다는 것을 뜻한다는거예요.
- P347

그리고 포르노그래피의 특징은 어떤 건가요? 어떤 성애적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자율성을 우선 포획해요. 뭐냐면, 포르노그래피의 핵심은성애적 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그런 행위를 특정한 응시와 시선에 포박시키고 그 응시의 보편과 일관성 속에서 기호로 읽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애적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행위를 일반화하고 보편화하고 응시화하면서 대상화시켜버리는것, 그게 정말 문제가 되는 거죠.
- P350

우리가 삶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삶이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기쁨을 향유할 방식이나 기쁨을 향유하고 기쁨을 받아들이는 것들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죠. 우리는고통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기쁨을 느끼는 데에는 아주 인색해요. 성애는 바로 고통만이 아니라, 기쁨을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향유하는 능력이라는 거죠. 이게 얼마나 커다란 능력이에요.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사실상 성애는 자기 자신이 삶과 온전히 합치되는 경험이자 삶의 활력이라는 거예요.
- P354

그래서 로드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를 성찰하지 않으면서, 또 가난한 여성, 흑인여성과 제3세계 여성, 레즈비언 여성들의 중요한 이야기를 외면하면서, 페미니즘 이론을 논한다는건 오만한 탁상공론에 불과한 일이 될 것입니다." - P359

평등하다는 건, 평등의아젠다에 참여할 수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무엇이 어떻게 평등해야 하는지 그 내용들을 정할 수 있어야죠. 그런데 그들이 이미정해놓은 평등의 내용이 있잖아요. ‘인간인 우리에게 평등이라는것은 이런 것이다. 여기에 단순히 참여해서 그걸 쟁취하는 게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는 거예요.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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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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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에 저메인 그리어가 여성에게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래서 여성이 한 것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혁명을 낳았다. 여성 개인으로서, 전체 여성으로서, 이 행성에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우리가 거울을 볼 때 무엇을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여성이여, 무엇을 보겠는가? -458쪽


나는 이 책의 이 마지막 문장이 너무 좋다. 

문제를 문제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어떤 억압구조도 바뀔 수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첫 발은 나의 우리의 억압을 바로보는 시선, 관점을 바꾸는데서 모든 것은 출발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깨고 여성이 자기 존재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이 "여성이여, 무엇을 보겠는가?" 아닐까?


인류 역사를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남성중심의 지배가 공고화해 온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급의 발생과 동시에 소위 문명사회에서는 권력이 발생했고, 그 권력은 예외없이 남성 중심의 지배체제를 만들어왔다.

일이백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5,000년에 걸쳐서 만들어져 온 체제라는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성립되어 지금까지 겨우 300년간 이어져온 이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강고한지 보자.

겨우 300년짜리도 넘을수 없는 벽처럼 강고한데 5,000년의 지배체제는 어떨까?

이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의 역사는 사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의 인간 선언으로 기원을 얘기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사회운동으로서 등장하는 것은 20세기에 와서야였다고 할 것이다.

그 말은 이제 여성은 겨우 100년을 싸워왔다는 것이다. 

5천년과 100년이 페미니즘운동이 이겨내야할 시간의 간극이다.


단지 이러한 비교는 시간의 길이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성 중심의 지배체제는 그 긴 시간만큼 자신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온갖 방면으로 확대 강화해왔고, 그 시간만큼의 다양성을 확보해와 여성들이 내면화하도록 강제해왔다.

시간과 공을 들인만큼 지배체제는 강고했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이 100년 사이에 많은 것을 이겨냈다. 

가부장제라는 그 끔찍하도록 강고한 체제의 균열이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물론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전의 가부장제로 역사의 흐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5천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쌓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여성이 이겨내야 할 그 시간의 간극이 정말로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

이 문제를 나는 한번도 남성 중심의 지배체제 가부장제의 반격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의 과도한 상업주의의 폐해 정도로 보는게 내 인식의 다였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수많은 여성이 저 연예인들처럼 나도 예뻐지고 싶다는 단순한 동경만으로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에 목숨을 걸고 덤비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것이 단순한 동경이라면 말이다.

가부장제가 새롭게 만들어 낸 이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전체에 대한 협박이었던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청소년기에는 또래에서의 약자가 될 것이고, 사회에 나가서는 제대로 취직하거나 성공하기 힘들 것이며, 남성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

여성은 이 협박을 끊임없이 받고 그것을 자기 내면화해온 것이다.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또한 무수히 범람하는 포르노를 통해 여성 스스로 자기 성에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는 강박을 만들고,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섹스로만 진짜 성적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이러한 위장은 또한 여성의 남성 의존성 - 남성의 시선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시선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수단으로 영원히 여성이 되지 않고자 하는 거식증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아 이정도면 정말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화장품 산업, 포르노 문화, 다이어트 산업, 성형수술이 이토록 미친듯이 폭주하며 성행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한 이렇게 발달한 산업들은 여성들이 자신이 얻은 부를 오롯이 외모에 쏟아붓게 하고, 다이어트로 기진맥진한 몸은 더 큰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힘들게 함으로써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이 세계의 정상으로 우리를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남성중심 지배체제가 5천년동안 이어왔던 지배를 '아름다움의 신화'는 너무도 유사하게, 그러면서 훨씬 더 교묘하게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는 남성지배체제 5천년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므로 딱 그만큼 힘이 세다.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힘이 센지는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 생략하자.

하지만 그렇게 가부장제가 힘에 세보였지만 그것의 균열은 가부장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가부장제 네가 바로 문제야'라고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아름다움이 이데올로기 네가 바로 문제야라고 지적하는 것.

우리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를 자각하는 것.

거울을 보면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를 나의 삶의 흔적으로, 내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

그럼으로써 나의 몸을 나의 마음과 정신만큼 그렇게 같이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

여성이 거울 속에서 봐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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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26 10:0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와, 멋지고 뜨거운 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2-27 01:07   좋아요 5 | URL
이 책 자체가 멋지고 뜨거운 글이잖아요. 그러니 심지어 이 책에 얘기하는 것조차도 우리 모두 같이 멋지고 뜨거워지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멋지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2-02-26 10: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적인 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2-27 01:07   좋아요 3 | URL
나무님까지 이렇게 얘기해주시니 갑자기 막 부끄러워지면서 그래도 막 좋아지는..... ㅎㅎ 역시 전 칭찬에 약한 인간이 맞았어요. ^^

청아 2022-02-26 11:2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박수를 보냅니다👏👏👏
이 책의 해제를 이 글로 바꾸었음 좋겠네요. 어떤 면에서는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가 꽤
공고하구나 느껴서 이 책을 읽으며 힘이 빠지기도 했었는데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의 성과를 보면 결코 여성이 약한 존재가 아님을 느낍니다.^^*

바람돌이 2022-02-27 01:10   좋아요 3 | URL
아이 참.... 부끄 부끄 ^^;; 전 해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어서였던거 같아요.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의 제 수준이 딱 해제 수준이 아니었나싶은.... 다락방님 글 보면서 아 해제에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싶어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 글이 해제가 되는건 좀.....
여성은 이제 겨우 100년 싸워왔다 생각하면 진짜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이루어 온 것이 정말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우리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함께 싸워요. ^^

수이 2022-02-26 11: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 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사람(타인)은 사람에게 거울이 된다는 구절이 나와요. 상대방이 제대로 된 거울을 들고 있으면 거기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다고 해요. 여기에서 제대로 된 거울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주고 아껴주고 존중하는 관계를 뜻하기도 하구요. 나오미 울프의 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동시에 수많은 남성들에게 제대로 된 거울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좋은 글 이른 아침 잘 읽었습니다.

청아 2022-02-26 13:05   좋아요 5 | URL
비타님! 그 소설 제목이 뭐예요? 궁금~♡

수이 2022-02-26 18:14   좋아요 2 | URL
Diasy Jones & The Six 입니다 미미님😊

청아 2022-02-26 18:36   좋아요 1 | URL
ㅠㅠ

수이 2022-02-26 19:01   좋아요 3 | URL
왜 울어요 ㅋㅋ 충분히 읽을 수 있어요 쉬워요 테일러 언니 소설

바람돌이 2022-02-27 01:22   좋아요 3 | URL
미미님과 함께 저도 ㅠ.ㅠ 비타님이 번역해줄 생각은 없으신지요. 그러면 제가 바로 읽을텐데 말이죠.
제대로 된 거울의 의미가 확 와닿네요. 내 옆의 사람들에게 좋은 거울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

얄라알라 2022-02-26 11: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2월 가기 전에 여성주의.책읽기.미션 클리어.하려고 부지런히.캐치업하던중에.바람돌이님.리뷰가 독서 가이드처럼.친절하게.느껴집니다...바꾸기위해.필요한게.시선이라는.이야기가.1장 마지막.문장이었는데.바람돌이님.리뷰를 보니 마지막페이지.문장이기도 하군요...

바람돌이 2022-02-27 01:24   좋아요 4 | URL
아 저는 일단 저 혼자 생각해보려고 일부러 이 글의 리뷰는 안 읽었어요. 이제 찬찬히 다른 분들의 글들을 한번 찾아서 읽어보려구요. 얄라알라님말처럼 1장의 마지막 문장과 책 전체의 마지막 문장 두가지가 제일 와닿더라구요. 이 책에서도 줄곧 이야기하는게 결국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는 것이 변화의 시작일테니까요.

얄라알라 2022-02-26 11: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990년 이후 시점에.함몰된채 읽다가 5000년 긴 관점에서 생각하며 읽어야겠다고...이재서야2장 읽은.늦깍이는 생각합니다^^바람돌이님.감사드려요~~

mini74 2022-02-26 14:2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거울 속에서 봐야 하는 것, 뭉클하네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22-02-27 01:26   좋아요 4 | URL
그래서 이제는 제 뱃살도 사랑하려구요. ㅎㅎ 나를 사랑한다는건 나를 인정한다는거고 결국은 나의 몸 역시도 나를 이루는 일부분이라는걸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거 같아요. ^^

다락방 2022-02-26 19:3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이 저는 진짜 짜릿하게 기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접하고 나서야, 그러니까 보거나 읽거나 듣고 나서야 아 내가 전에는 이랬는데 하고 돌이켜 보게 되잖아요. 이 책이 바람돌이 님께 읽는동안 그런 시간을 준 것 같아서, 이 책을 제가 쓴것도 아니면서 이 짜릿한 기쁨은 제가 가져가네요.
책의 내용을 아주 멋지게 정리해주셔서 미미님의 댓글처럼 이 글을 이 책의 해제로 바꾸고 싶네요. 도대체 이런 좋은 글을 두고 이 책은 왜 그런 멍청한 해제를 쓴건지..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어 너무 즐겁네요, 바람돌이 님. 이 책이 제대로 독자를 만난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후훗.

바람돌이 2022-02-27 01:27   좋아요 5 | URL
좋은 책을 소개하는 사람의 가장 큰 보람은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아 이책을 보고 나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말하는거잖아요. 그러니까 다락방님이 뿌듯하고 짜릿한 것은 당연한거죠. ^^
사실 한동안 머리 아픈 책 안 읽고 싶어서 가벼운 책들만 계속 읽어왔는데 다락방님덕분에 저도 올해 여성주의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자 결심하게 되었으니 제가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

희선 2022-03-01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천년이라니 그렇게 길군요 한국과 북한 역사가 거의 오천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성이 여성을 생각하게 된 건 백년이군요 백년이라 해도 시작해서 다행 아닌가 싶어요 여성이 몸이나 얼굴을 가꾸어야 한다고 협박한 거였다니... 오랫동안 그런 게 이어져 왔으니 그렇게 받아들인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겠지요


희선

바람돌이 2022-03-02 01:17   좋아요 0 | URL
뭐 우리 역사가 5천년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뻥이고요.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와 고조선부터 치면 3천년 정도.... 물론 구석시 신석기로 가면 훨씬 오래됐죠. ㅎㅎ 여성이 몸이나 얼굴을 가꾸는게 나쁜건 아니잖아요. 근데 그걸 자기가 하고싶어서 자신의 몸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그런다면 그건 그저 개인의 자율성이겠지만 온 사회가 그걸 여성에게 강요하고, 직장에서나 사회 일반에서 여성에 대한 평가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고찰을 이 책이 준거 같아요. 좋은 책이었고, 이런 외모강박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으니 살 수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그는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 죽고 맙니다.
- P21

차마, 차마, 하고 내 목소리가. 하여간에 얼마 못 가고 집으로 돌아갔어. 어처구니가 없었지. 나라는 놈은 그림자도 따라가지 못하고, 하면서. 그 밤에 달이 어찌나 둥글고 밝은지 분화구가 다 보이고,
라면서 여씨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분화구 윤곽이 선명한 달이 뜬 밤에 구불구불 늘어진 그림자를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씨 아저씨의 모습을 나는 생각해보았다.
- P50

문턱에 코를 댄 채로 나무 결이라고 짐작되는 어두운 얼룩을 들여다보며 젖은 듯 마른 듯한 문턱 냄새를 맡고있었다. 차라리,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것이 되면 이미어두우니까, 어두운 것을 어둡다고 생각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아예 그렇지 않을까, 어둡고 무심한 것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되고 나면 그것은 뭘까,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 P99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개를 더 넣어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 P104

오른쪽으로는 조명 가게나 공구 상점들을두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첫번째 골목이 나타날 때 발길을 틀어서 그 길로 접어들면, 이십년째 그 자리에서 별다른 도구도 없이 드럼통 하나를 세워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순대를 찌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회중시계, 구리 자명종, 낡은 손목시계, 빛바랜 은수저를유리장 안에 진열해두고 졸고 있는 남자를 앞을 지나 담배와 음료와 삶은 계란을 파는 구멍가게를 지나서 부품상점이나 구식 라디오를 손보는 수리실 등을 지나가게되어 있었는데, 어느 곳이든 책상 하나 더는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비좁았다. 그런 가게들 틈으로 난 골목,
이라기보다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 정도로 보이는 어둡고 좁다란 통로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간판도 탁자도없이 점심배달 메뉴로 백반 한가지를 만들어서 파는 허름한 식당이 있고, 그 맞은편에 오무사가 있었다. 칠십년대 이후로 손을 본 적이 없는 듯 낡고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 P112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 P115

 작네요,라고 멍하게 말하자 무재씨가 빈 우유갑을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 P123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 P126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사정인 걸까, 하고,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 P159

따라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 P184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걷고있었다.
은교씨,
하고 무재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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