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멈췄고,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이 들끓었다..…… 페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는 왜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그녀는 물속에서 비틀거리며 넘어지지않으려고 바위에 매달렸다. 주위에서 올려대는 굉음이 사방으로넓게 퍼지면서 하늘로 솟구처 올랐다. 야자나무와 종리나무가바람에 찢기면서 사방으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공기는 지독하게 뜨겁고 메말랐다……… 목구멍이 죄어들었다. 바람이 점점 더세차게 몰아쳤다. 폐가 가슴 속에서 오그라들었다. 입천장이 부풀어 오르면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 P40

그래서 나는 호기심을 안고 그 가게로 들어갔다. 사실 어떤 기대감에 들떠 있기도 했고, 쉰셋이라는 나이에, 게다가 숨가쁘게 분주한 삶을 살아온 후에 아직도 새로운 종류의 희망이나미지의 경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덤벼든다는 건 그 자체로고무적인 일이니까.
- P46

그런데 그 순간, 나 같은 인간이 죽기 바로 직전에 가장 어울리는 책은 전화번호부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결국 나는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을 찾아내려 애쓰고 그 누군가에게 희망을 걸면서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사람들To이 전화번호부를 손에 든 채 죽어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지극히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85

어느 날 어떤 멍청이가 그에게 "어이 애송이, 자넨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사나?" 라고 물어오면, 그는 이제 더이상 꾸물거리지 말고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뭘 해서 먹고사냐니? 그건 정말 어이없는 질문이다. 당신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건 살아 있다는사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질문이다. - P161

그 질문은 삶 자체를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만약 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 질문은 삶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낸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또다른 공물을지불해야 한다는 듯이,  - P162

 인간은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간직하는 한 언제나 웃을수 있다고, 웃음, 그것은 그 대가로 고통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한,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 P172

그리스인은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신아니면 민주주의. 물론 지금 그들 대부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미국 박물관에 있었고, 그 나라는아테네의 대령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 P180

"자유, 페트로가 말했다. "자유야말로 언제나 가장 위대한 시지. 하지만 그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어. 그리고 영원히 쓰이지않을 거야. 아니, 어쩌면 언제가 쓰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죽음이 필요할 거야. 그리고 그때 시인이 아닌 모든 사람은 이렇게 말하겠지. 그 시는 쓸 가치가 없는 거였다고. 뭐, 그런 거지."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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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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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화가인데 왜 그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탄은 이토록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 책은 플로라 트리스탄과 그의 외손자 고갱의 두 인생을 오가면서 서술된다.

그러나 독자를 압도하는건 고갱이 아니라 그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탄이다.

1803년에 태어나서 1844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여성이 살았던 시대를 짐작하려면 영화 <레미제라블>을 떠올리면 될듯하다.

1830년 7월혁명으로 빈체제로 성립된 왕정을 무너뜨리고 루이 필립을 왕으로 세우며 입헌군주정을 시작했지만 당시 모든 민중이 같이 싸웠음에도 모든 이익은 오로지 부르조아들에게 돌아갔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7월 혁명이에도 프랑스에서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했던 것.

이 시기 노동자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통계가 하나 있다.

1842년 영국 노동계급의 위생상태에 대한 보고는 당시 영국의 공업도시이던 리버풀의 노동자계급의 평균수명 15세, 맨체스터 17세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플로라가 살던 시대는 바로 이런 시대이다.

<레미제라블>에서 혁명가들은 공화정을 위해, 노동자들의 투표권을 위해 목숨을 던져 싸운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인이 아니다.

공화정이 되면 투표권이 주어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인가?

1848년 2월혁명으로 프랑스는 공화정을 쟁취했고, 투표권도 얻었지만 노동자들의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플로라가 말한다.

모든 억압받는 여성과 노동자들이 연대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 노동조합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노동자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때까지는 사상적으로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태동한 시기였고, 마르크스는 아직 젊은이다.(책 속에 마르크스와 플로라가 잠시 스쳐가는 장면이 있는데 자기 책 출판외에는 안하무인인 무례한 젊은이로 잠시 등장한다.)


페루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결혼이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바람에 태어날 때부터 사생아가 되어버린 그녀는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공장에 취직을 했다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남편이란 놈은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이기까지 했으므로 플로라는 도망을 결심하고 실행하지만, 여성이 이혼을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의 추적에 시달리다가 남편으로부터 총까지 맞고 몸에 총알을 박은 채로 살던 플로라는 자신의 삶과 여성의 삶,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외가가 있는 페루까지 갔다오는 그녀의 일생은 플로라라는 한 여성이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가고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지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은 늘 길 위에 있다.

그 길은 현실의 길이기도 하고, 자신의 삶과 생각을 만들어가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엮어가며 새로운 인간상, 새로운 인간관계의 틀을 만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당대 여성의 몸으로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며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과 여성과 노동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을 제시하는 그녀의 노력은 놀랍다는 말 외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온갖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삶 - 심지어 그 삶을 바꿔 안락한 부르조아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팽개쳐버리는 결단과 용기를 갖춘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녀가 만들고자 한 것은 여성과 노동자의 천국이었지만, 우리는 그 천국이 그녀 당대에 또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제목 그대로 천국은 다른 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 되어가고, 그 너머 어딘가에서 우리는 다들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어가고 있는걸거다.

온 세계가 그녀에게 빚을 졋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제야 그녀를 만나다니 미안할 따름이다.


플로라의 삶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녀의 외손자 빌어먹을 고갱의 삶은 관심이 하나도 안 생긴다.

책의 반이 고갱의 삶인데 그의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제국주의자 백인의 오리엔탈리즘 가득한 천국은 당연히 없다.

아마도 고갱의 천국은 그의 머릿속 관념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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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2-10 14: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사스러운 요사샘의 팬으로
오래 전에 이 책이 나오자
마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
다.

왜 요사샘의 신작은 나오질
않는지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바람돌이 2022-02-12 00:56   좋아요 0 | URL
저는 요사샘 책을 읽은게 처음이므로 앞으로 많은 책이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ㅎㅎ
혹시 요사샘 계속 정치한다고 바쁘신걸까요? ^^

mini74 2022-02-10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갱의 외할머니에게 반했던 ㅎㅎ 너무 당당하고 똑똑하고 멋지고 그리고 안타깝고 ㅠㅠ 그랬습니다. 썩을놈의 남편은 분노를 부르고 ㅎㅎ

바람돌이 2022-02-12 00:58   좋아요 1 | URL
저 시대에 남편놈들이 대부분 저렇게 썩을놈들이었다는게 문제겠죠. 전 책보면서 19세기 유럽의 야만성이 확 와닿더라고요. 맨날 문화인인척 하는 그들도 별수 없었다는.... ^^

새파랑 2022-02-10 1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갱이 나빴군요 ㅎㅎ 아 이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인가 보군요. 전 ˝트리스탄˝은 첨 들어봐요 ㅜㅜ

바람돌이 2022-02-12 01:00   좋아요 2 | URL
플로라 트리스탄과 고갱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플로라가 죽고 몇년 뒤에 고갱이 태어났다죠. 가끔 이런 소설이 어떤 인문학적 책보다 한 인물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에 감탄하는데 이 책이 그랬습니다. 고갱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부분 인간성은 별로인데 그림은 훌륭한 뭐 이렇던데 이 책에서 묘사된 고갱은 정말 빌어먹을 인간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2-10 19: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직 손도 못대고 있는 책
바람돌이님이 제 마음을 바쁘게 하시네요 ㅠ
ㅎㅎ

바람돌이 2022-02-12 01:01   좋아요 2 | URL
그런 책은 저에게도 많습니다. 심지어 집에 읽을 책을 쌓아놓고도, 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다는..... 마음은 바쁘고 욕심은 나는데 시간은 항상 제 편이 아니네요. ㅎㅎ

coolcat329 2022-02-10 2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갱은 참 정이 안가요 ㅎ
저도 이 책 있는데 올해 꼭 읽어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2-12 01:02   좋아요 2 | URL
저는 고갱 그림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 묘사된 고갱은 진짜 나쁜 놈.... ㅎㅎ
올해 안에 올라올 쿨캣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

희선 2022-02-12 0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갱하고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탄은 만난 적 없을 것 같기도 하네요 플로라가 일찍 죽어서... 플로라 대단하네요 그때 여성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평등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다니... 고갱이 생각하는 천국은 자기 머릿속에만 있는 거 맞을 듯하네요 플로라가 생각하는 천국도 쉽게 만들기 어렵겠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다니...


희선

바람돌이 2022-02-12 01:03   좋아요 2 | URL
네 플로라가 죽고 몇년 뒤에 고갱이 태어났대요. 이 책에 보면 플로라가 그렇게 노동조합을 이야기하고 다닐때 실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예요. 대단한 인물이죠.
둘다 천국을 생각했으나 사실 이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통된데 그래서 아마 제목이 천국은 다른 곳에가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 다른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목의 다른 함의라고도 생각했어요.
 
사랑은 사치일까? (리커버 개정판) -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살기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양지하 옮김 / 현실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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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치일까? 설마 그럴리가!

저자인 벨 훅스는 모든 사랑의 출발은 자기애라고 이야기한다.

당연히 옳은 말이다.

내가 나를 긍정하고, 나의 힘과 희망을 믿고 나자신을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한다 말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규정에 누구라도 심정적으로는 동의하겠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이런 자기애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여성이 자신이 여성임에 자부심을 가지기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여성의 자기애에 가장 커다란 적은 역시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억압해왔는가를 얘기하자면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만 모아도 3박4일은 얘기하고도 모자랄 것이다. 

책에서는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이런 가부장제의 억압을 뚫고 자기 성취를 이루느라 너무나도 힘들어 아예 사랑에 대해 포기해버렸던 1세대 페미니즘에서부터, 이성간에는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냉소하는 레즈비언 여성 페미니스틀까지 아우르며 여성이 자기에 대한 애정을 바로 가진다면 어떤 사랑도 포기할 이유가 없음을 얘기한다.

동시에 사랑은 섹슈얼리티를 동반한 이성애, 섹슈얼리티를 동반하지 않은 이성애, 동성애, 자매애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결국 그런 사랑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는 섹스를 동반한 사랑에 있어 서로의 동의와 함께 무엇보다 중요하게 견지되어야 할 것은 거부권이다.

많은 여성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섹스, 또는 섹스취향을 강요받는다면 그것 역시 억압이지 사랑이 될 수 없음이다.

여기까지 작가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책을 읽고 나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결국 인정욕구의 충족이다.

나라는 존재의 유의미성, 내가 하는 노동과 수고에 대한 감사와 인정, 나의 성취에 대한 격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당연히 나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출발해, 내 주변의 가족, 친구, 연인, 배우자 이런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인정해준다면 아마도 나의 삶은 풍요롭고 만족스럽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나도 간단해보이는 것이 사실 쉽지 않음은 세상을 조금만 살다보면 누구나가 느낀다.

현실은 이론보다 훨씬 버라이어티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사람은 뜬금없게도 나의 시어머님이었다.

안동권씨 집안에 8대 장손 며느리로 지지지도 가난한 집안을 꾸려왔고,

그토록 가난함에도 평생 시부모님 봉양에, 시아버님의 9남매 뒷건사를 해오셨던 분, 철철이 끊이지 않는 제사를 수고롭게 수행해온 분이다.

거기다 집안 분위기는 당연히 얼마나 가부장적인지 전혀 그렇지 않은 집에서 시집간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었다.

(이 얘기도 늘어놓자면 3박 4일도 모자라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니 비켜간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시어머님의 삶에 대해 가만히 살펴보면 못배우고 가난하고 희생만 해왔던 삶에서 어머니 나름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자리가 있다.

드라마같은 것에서 보듯 모진 시집살이와 희생을 했던 여성이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서 권력을 휘두른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보통 시집살이 모질게 한 여성이 며느리 시집살이 시킨다고 하는데, 우리 시어머니 같은 경우 예외다. 자신은 진짜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듯 모진 시집살이를 했기 때문에 결혼초에 나는 며느리 시집살이 안시킬거다라고 하셨는데 그걸 정말 실천하시는 분이다.)

집안의 큰 행사나 명절, 제사 등등의 행사는 시어머님에게는 자신이 이루어놓은 자리를 확인하는 자리다.

어떻게 보면 시어머님의 사회적 성취라고나 할까?

그게 보인다. 

나는 제사가 너무 싫지만 차마 그걸 바꾸자고 하지 못한다.

평생을 희생하고 살아오신 시어머님의 그 자존감이 충족되는 자리를 자식인 내가 함부로 깰 수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라면 우리 시어머님의 저 자기애는 잘못된 기반위에 있다.

그러나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 저 자기애를 비난할 오만이 내게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걸 동의하면서도 그럼에도 그 사이 틈새를 파고드는 아쉬움.

그것은 이 책에서 예로 드는 성취를 이룬 대부분의 여성이 어느정도 교육받은, 자기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중년에 이르러서 가부장제와 결혼이라는 제도의 굴레를 깨고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는 여성, 자신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 남자를 버리고 전문직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찾는 여성.

다 좋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성취를 이루기 힘든 여성들이 훨씬 더 많다.

세상에는 공부를 잘하는 여성보다 못하는 여성이 더 많고, 이런 에세이를 읽어내기도 어려운 여성들이 더 많다.

최소한의 경제적 보장이 없어 하루종일을 힘겨운 노동에 허덕이는 여성들은 더 많다.

내가 도대체 잘하는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 자괴감에 시달리는 여성은 더더더 많을 것이다.

소수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그런 각각의 버라이어티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가부장제는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그 자신이 구시대인 여성들은 자기 자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고민을 던져주는 책은 어쨌든 좋은 책이다. 설사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페미니즘이 이 다양한 현실을 더 폭넓게 아우를 때 그것이 갖는 현실적인 힘이 더 커질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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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7 0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02-07 09: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벨 훅스가 말하는 지점도 어렴풋이 알 듯하고 또 시어머님의 자리에 대한 바람돌이님의 이해하는 마음도 너무 공감이 갑니다. 본인이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어서 시집살이 안 시키겠다 하는 마음을 실천하신 분을... 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그런 분이 정말 실재하시는군요. 혹독한 가부장제의 틀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신 시어머님, 너무 멋지시네요.
벨 훅스만큼 멋지십니다!!

바람돌이 2022-02-10 13:02   좋아요 1 | URL
어머님의 그 자리가 사실 가부장제하에서 얼마나 허상의 자리인지가 저는 다 보이지만 그 허상이라도 없다면 어머님의 살아온 날이 무너질듯해요. 그래서 그냥 저는 인정해드리려고 해요. 저희 시부모님 두분 다 진짜 밖에서나 안에서나 좋으신 분들인데(두분 서로한테만 별로인듯..... ㅎㅎ) 그 마지막 남은 자부심하나 지켜드리는게 그냥 맞는거 같아서요.

희선 2022-02-08 0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부터 쉽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그러려고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바람돌이 시어머님은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하셔서 지금이 있겠습니다 다른 것보다 시집살이 시키지 않은 건 멋지시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2-02-10 13:04   좋아요 1 | URL
사실 자기를 사랑하는게 쉽지는 않지요. 누구나 자신이 가진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알잖아요. 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장점이 정말 많은 사람들인데 단점에 가려 잘 안보이는듯해요. 그리고 장점들은 그냥 당연한것으로 여기고요. 오늘부터라도 잘 찾아보아요. 얼마나 많은 장점들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 ^^
저희 시어머니가 시집살이 안 시키셔서 제가 제 맘대로 삽니다. ^^
 

웃기지 마, 플로라. 그렇게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뭐, 그렇지 않아?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넌 네가 지금 그렇게나 경멸하는 돈만 많은 멍텅구리 여편네로 전락하고 말았을 거야. 천만다행이었어. 아레키파에서 그런 수모를 당했기 때문에, 넌 그에 대한반감으로 불의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불의를 증오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었던 거야. 아버지의 고향은 네게 프랑스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어. 그렇지만 널반항아로, 정의의 투사로, 천덕꾸러기‘ 로 만들어 놓았어. 천덕꾸러기‘, 그래 넌 자신만만하게 네 자신을 그렇게 불렀어. 네 자서전을 쓸 때 말이야. 그러니 어찌됐던 간에, 플로라, 넌 아레키파에감사할 일이 많아.
- P262

프랑스를 떠나 남태평양으로 가노라, 돈으로 썩어문드러진 유럽 문명을 버리고 순수하고 원초적인 세상을 찾아가노라, 겨울을모르는 그 땅과 하늘, 예술이 상거래 상품으로 취급당하지 않고,
삶 그 자체 · 일종의 종교 · 일종의 스포츠로 여김 받는 곳,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예술가도 손만 뻗치면풍성한 나무에서 먹을 것을 부족함 없이 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찾아가노라. 그러나 현실과 네 이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어, 코케.
- P280

코케, 너를 남태평양까지 끌어들인 그 문화에서 이게 살아남은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어. 편견에 휩쓸리지 않은 곧은 사랑, 양성을 구비한 사람이든 누구든 모든 사람을, 모든 형태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 지혜로운 너그리움. 그러나 이것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유럽은 머지않아 타아타 바히네‘ 마저 끝장내고 말 것이다. 고대의 신을, 고대의 신앙을, 고대의 관습을 끝장내버린 것처럼. 고대에 존재했던 그 건강하고 유쾌하고 힘이 넘치는 그 문명을 끝장내버린 것처럼 말이다.  - P289

그래, 플로라. 직접 경험한 역사는 잔인하기 이를 때 없었지만, 책을 통해 읽는 역사는 사이비 애국자들의사기극에 지나지 않았지.
- P346

"내 그림이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해주었으면 좋겠어, 폴, 예수가 말로 사람들을 위로했듯 말이야. 고전 회화에서 후광은 영원한것을 암시하는 거야. 나는 그 후광을 내 그림에서는 색의 방사와진동으로 표현하고 싶은 거야."
- P384

사슬을 끊을 것이다. 진짜 사는 것답게 자유롭게 살 것이다, 부족한 점을 채우겠노라, 지성을 개발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할 것이다, 많은 일을, 다른 여자들이 네가 살아왔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P403

플로라, 네가 그때 조금만 달랐어도 넌 귀부인이 될 수 있었을거야. 『어느 사생아의 인생 역정』 이라는 책과 암살당할 뻔했던 일로 잠시 상당한 인기를 누렸으니까 말이야. 지금쯤 조르주 상드 같은 여자가 되어 있었을 테지. 상류사회의 귀부인으로, 사람들에게둘러싸여 존경을 받으며, 활발한 사회 활동을 비롯해 글을 써서 사회 불의를 고발할 수도 있었을 테지. 사교계의 존경받는 사회주의자, 아마 그 정도는 될 수 있었을 기야.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 될 수 없었어. 너는 곧바로 알 수 있었어. 파리 사교계의 얼굴마담으로는 사회 현실을 조금치도 바꿀 수 없고, 정치적인 문제에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음을 말이야. 행동이 필요했던 거야.
하지만, 어떻게? 어떤 식으로?
- P418

노동자들과 여성들이 서로 다가서도록 만든다. 그래서 둘 사이의 담을 허물어 동맹군을 형성한다. 그러면 경찰도 군대도 정부도 그 동맹군을 진압할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하늘 천국이 더 이상 꿈만은 아닐 것이다. 사제들의 강론 속에서나 신자들의 믿음 속에서나 가능했던 그 하늘 천국이 생생한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나날이 체험하는 그런 삶으로, "플로라,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플로라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오, 주여, 나와 같은 여성을 열명만 이 세상으로 보내주소서, 그리하시면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될것입니다."
- P465

선택받은 한줌의 사람들을 위한 지상 천국을 세우기 위해 이불완전한 세상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야. 그런 곳은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단 말이야.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이 세상의 불완전함에 맞서 싸워야 하는 기아. 이 세상을 개혁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거야.
- P473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어느 날 엘리사와 샤를의 귀에 이런소리가 들렸다. 부부는 침대 발치에 앉아 플로라를 지키고 있었다.
"그냥 나를 본받아 행동해주세요."
- P525

플로라, 넌 진짜 그렇게 했어. 심장 근처에 총알이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몸이 불편하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네 기력을 갉아먹는 익명의 사악한 무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넌 지난 8개월동안 그 일을 이루어냈어. 성과가 별로 없었다고 치자. 그건 노력이 부족해서, 확신이 부족해서, 용기가 부족해서, 이상이 부족해서그런 것이 아니었어. 성과가 별로 없었다고 치자. 그건 세상만사란원래 꿈속에서와는 달리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었어. 플로라, 참 유감천만이지.
- P530

천국놀이라니! 넌 아직 그곳을 찾지 못했어, 코케. 천국은 네 손아귀에서 잘도 빠져나갔지. 천국이 실제로 존재할까? 도깨비불은 아닐까? 신기루는 아닐까? 넌 다음 생에 가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테지. 왜냐하면 클루니 수녀회 수녀가 예언했듯이 네 자리는 지옥에준비되어 있을 게 확실하니까 말이야.  - P539

 그중 가장마음에 드는 그림은? 당연히 마음씨 착한 수녀>라는 그림이지.
몸집이 왜소한 가톨릭 선교회 수녀가 ‘마후‘ 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그림, 수녀는 두건과 수녀복과 덮개로 몸을 감싸고 있지, 수녀가 걸친 것은 인간의 육체, 자유, 맨몸뚱이, 자연의 본모습을 위협하는 상징물들이야. 반면에 반벌거숭이 ‘마후‘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어. 나는 자유로운 존재다. 남자든 여자는 무슨 상관이야, 내 성은 내가 만들어간다. 내 상상의 나래에 재갈을 물리지 말라. 서로를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관습, 두 개의 종교를 대비시켜 보여주는 그림이야, 힘이 없어 굴복 당한 민족의 고상한 예술과 도덕, 힘이 있어 정복한 민족의 저열한 타락상과 억압, 네가 바에 오호 대신 ‘마후‘ 와 정을 통했다면 그 마후‘는 여전히 네 곁에 남아 널 돌보아주었을 것이 틀림없어, 사실이 그렇거든. - P544

전기 작가들은 한결같이 코케의 삶을 공평치 못한 것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코케의 삶은 이 눈물의 계곡에서 천국을 찾으려 애쓰는 예술가들의 운명과 종종 비교되었다. 최근 이 섬에서 일어난사건 중에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폴 고갱이라는 작자가급사했다는 것뿐입니다. 유명한 예술가이긴 했지만 하느님의 원수인 동시에 이 땅의 모든 순결한 것들의 대적이기도 했습니다.
- P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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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반대하는 너의 그혁명적인 사상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너를 첩자로 몰아 네 권위를실추시키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네가 여자이기 때문에 널 미워했던 것일까?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내들이 해야마땅한 인류 구원의 역사(役事)를 한갓 여편네가 하는 것을 참을수 없었던 것이었다. 소위 진보주의자, 공화주의자, 혁명주의자라는 것들이 그처럼 비열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 P201

토마는 플로라에게 설명했다. 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을
‘강요‘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일하기 싫은 놈은 딴 데서 일자리를 구하면 되는 거다, 나는 아무 문제없다, 아비뇽에서 일손이딸리면 스위스에서 구해오면 된다, 저 알프스 산골 무지렁이들은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묵묵히 일만 하고 주는 월급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 짐승 같은 스위스 놈들조차 저축하는 법은 알고있단 말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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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2-06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갓 여편네가~~~ :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네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은 품절이네요.^^

바람돌이 2022-02-07 00:49   좋아요 1 | URL
저는 다행히 옆동네 도서관에 있어서 빌려봤어요. 플로라라는 여성 진짜 대단합니다. 아름다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