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굴레 8장 - 비즈니스

일본 기업들이 한 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지배는 끝났고,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의 수출형 대기업들은 약화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얘기하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소비자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부품산업, 정밀화학 등 첨단산업들의 부품이나 소재를 취급하는 기업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의 생산성 향상이 더딘 것은 종종 비효율적인 서비스 분야의 탓으로 여겨지곤 한다. 

일본 경제의 문제점은 잘되고 있지 않은 분야에서 잘되고 있는 분야로 인력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효율성을 포기햇기 때문에 일본 대부분 국민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보장이 확보되어 왔다는 것이다. 현재에서는 효율성을 포기한 대가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일본 경제에 던지고 있다. 

현재의 일본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고용관행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의존도 강화, 블랙기업이라는 회사들이 정직원 자리를 주는 것처럼 가장해서 청년들을 뽑고 일정 기간후 해고를 반복하는 양태 등이다.이것이 일본 사회 내부의 종신고용이라는 고용관행을 뒤흔들면서 일본 사회가 그토록 중시하는 사회적 단결을 잠식하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 경제의 문제점은 세계화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해외파견 일본 회사원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결성하고 그 안에서만 생활한다. 현지에 있는 좀 더 현지 친화적인 다른 일본인이라는 역량을 활용하지 않으며, 현지 커뮤니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글로버러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집단지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다. 또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외국인을 앉힐 수 잇는 포용력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일본의 기업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는건 일본 기업문화의 면에서도 역시 곤혹스런 일이다. 사무라이 문화에서부터 유래된 일본의 기업문화는 자신이 속한 회사나 상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며, 일본의 엘리트 지배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그것이 설령 엄청난 부패의 증거라 할지라도..... 

이는 일본이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 대처해나가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한다. 좋은 일본인은 자신의 조직, 사람을 배신하기보다는 '주주 가치'나 '공공의 선'같은 추상적인 원칙을 위반하는 쪽을 택한다. 


일본의 굴레 9장 - 사회문화적 변화

일본만의 독특한 창의성의 기원을 흔히 모순과 모호함을 참고 견디는 능력에서 찾는다. 예술 또한 같은 역할을 한다. 전후 일본문화의 상징이었던 샐러리맨은 야구나 TV프로그램같은 일본의 공식적인 문화에서는 이들의 출세에 필요한 덕목을 끊임없이 찬양하는 쪽으로 특화되었다. 그러나 만화를 포함해 좀 더 불온한 장르에서는 샐러리맨을 나약하고 무책임하며 절대 이룰 수 없는 섹스와 돈에만 관심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샐러리맨은 스스로가 자기 목숨을 바쳐도 좋을 대의(회사)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거대한 산업속 교체가능한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자각도 함께 안고 살아야 했다. 이런 모슨은 일본에 속으로는 울면서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는 정서와 닿아있다. 이런 부조화는 일본 문화 전반을 규정짓고 이런 모순과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점점 필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여성들에 있어 새롭게 나타난 갸루 현상이 말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일본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행동방식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에 닿아있다. 또한 전통적인 오바짱의 이미지를 깬 오바타리안이라는 아줌마 부대, 그 반대에 대형 폐기물을 뜻하는 은퇴한 남편을 가리키는 소다이고미 단어의 등장, 황혼이혼의 증가, 일본 전통적 남성상과 배치되는 초식남의 등장 등 일본 사회는 이전에 보지못했던 새로운 유형들의 인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전통적으로 일본 남성들이 그들의 사회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던 동류의 남성집단(군대적 위계질서와 자기희생을 강요하던)의 의미도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지도층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는 것 역시 눈에 띄는 변화다. 특히 이는 후쿠시마 원전의 파괴와 더불어 전개돈 사건들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수많은 일본인 개인은 실수나 혹은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것이 조직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조직은 실수하지 않는다. 즉 조직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한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지배는 끝났다.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의 수출형 대기업들은 약화되었다. - P327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 이 회사들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 우위를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정밀화학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의 전 세계 점유율을 합하면 70퍼센트가 넘고, 탄소섬유는 65퍼센트가 넘는다." 애플의 아이폰을 뜯어보면 일본 기업의 이름이 들어간 부품은 많지 않다. 조그맣고 화려한 기계인 아이폰은 미국에서 디자인해 설계되고, 중국에서 생산되어, 한국과타이완의 부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 중의 30퍼센트가 넘는 부가가치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창출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이런 부품들을 이루는 핵심 소재를 일본 기업이 만들고, 이런 부품들을생산하는 공장의 설비를 일본 기업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보잉787 드림라이너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은 비슷하다. 보잉사와 에어버스사 사이의 경쟁은 유럽 기업과 미국 기업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그 생산과정과 부가가치의 구조를 뜯어보면 프랑스 독일 연합과 미국 일본 연합 간의 기술구조technostructure가 정면 승부를 벌이고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 P330

일본의 비즈니스가 봉착한 문제에 대한 그간의 분석들을 보면, 일본에는 잘되고 있지 않는 분야에서 잘되고 있는 분야로 인력과 자본을 효과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 P335

비정규직들은 정규직과 사실상 똑같은 업무를하면서 월급은 그들의 반밖에 받지 못했다(일본 회사들이 정사원에게 먼 미래까지 지급해야 하는 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더하면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곧 일본 산업 시스템의 충격을 흡수하며 착취당하는 대상이다. 과거에는 명목상으로만 독립법인인 중소 하청업체가 하던 그 역할을, 이제는 과로에 시달리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하고 있을 뿐이다.
- P341

이러한 구조는 전후 일본에 그토록 중요했던 사회적 단결을 잠식하고있다. 안정된 고소득 직업을 장악한 소수의 귀족 노동자들이 절대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도 일본의 사회적 단결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P342

하지만 이 모든 성공에도 일본의 비즈니스는 세계화의 한 가지 중대한 측면에서 뒤처져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위에 외국인을 앉힐 수 있는 포용력이다. 일본 회사에서 외국인의 부재는 중간 관리자 단계에서도 임원 단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 P348

수 세기 동안 일본의 지배 계급이었던 사무라이들은 군주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궁극의 미덕이라는 사상에 경도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일본 경제의 최상층에자리한 대부분의 기업은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메이지 정부 초기에 설립되어 전직 사무라이들에게 주어졌던 회사들을 어떤 형태로든 직접물려받은 조직이다. 올림푸스의 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체계에 녹아 있던 문화적 특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작동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충실한 병사는 절대로 자신이 속한 회사나 상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며, 일본의 엘리트 지배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 P354

그보다 아마 더 심각하면서충성·유착의 행동 규범과 직결되어 있는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일본이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 대처해나가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시스템은 실패 혹은 ‘창조적 파괴에 대처하는 제도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 P355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의 비즈니스를 크게 위협하는 세력으로 떠오른것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은 환율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1. 한국에는 국제화된 엘리트가 더 많다. 해외에서의 거주 경험과 영어 구사능력은 ‘한국적이지 않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한국의엘리트 계급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한국 재계와 학계의지도자들은 대부분 서구의 일류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사회에서 지배층 엘리트가 되는 데 있어 도쿄대학 졸업장이 하는 역할을, 한국에서는 아이비리그(그리고 MIT와 스탠퍼드)가 하고 있다고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2. 한국의 경제·정치 기관들은 훨씬 더 명확한 권력 구조와 뚜렷한책임 소재를 갖고 있어서,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아이폰에 대한 반응으로 삼성이 애플을 단숨에 제치고 세계 제일의 스마트폰 판매사가 되는 동안 일본의 IT 업계 대부분이 우물쭈물하고 있던것이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자동차가 끈질기게 따라잡고 있는 것을 보라. 한국의 재벌들은 국내에서는소수에 의한 독재 성향으로 인해 비판받고 있지만, 누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는지가 한눈에 명확하고, 그래서 일본 기업 대부분에 만연한 집단사고보다 저만치 앞서가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3. 마지막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은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위기상황에 놓여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 P360

도쿄전력은 일본 기업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축소판과도 같다. 후쿠시마 재난 현장의 수많은 도쿄전력 직원은 사고 직후 긴박했던 며칠 동안 영웅적이고, 글자 그대로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반면 도쿄전력의 경영진은 명백한 직무 유기를 해오고 있었고 결국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 P365

야구나 TV 프로그램 같은 일본의 공식적인 문화가 샐러리맨의 출세에 필요한 덕목들을 찬양하고 있었던 반면,
방대한 망가(만화)를 포함해 좀더 불온한 문화 장르에서는 샐러리맨을나약하고, 무책임하며, (절대 이룰 수 없는 섹스와 돈에만 관심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샐러리맨들은 회사와 일을 위해 자기희생을 불사할 정도의 열정을 보여야 했을 뿐 아니라, 이것이 핵심인데, 거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그 열정을 스스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심리28상태를 표현하는 일본 단어가 마코토誠다. 마코토는 보통 ‘진정한 sincere‘
이라고 번역되지만, 서양에서 이 단어를 쓸 때처럼 정말로 믿고 있지는않으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어감은 들어 있지 않다. 그 대신 일본어의 마코토에는 개인의 내적인 감정을 사회의 외부적 기대와 일치시키기 위해 강제로 끼워 맞춘다는 느낌이 있다.
- P372

 하지만 이 모든가루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전통적으로 일본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행동 방식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이다.
- P377

일본의 문화와 사회는 오랜 세월 동성 간의 집단,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으로 이루어진 집단들을 중심으로 작동해왔다. 수 세기 동안 일본 남성들은 혈연관계가 없는 다른 남성들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정서적인 지지와 경제 · 정치적인 연대를 얻을 수 있었다.  - P389

하지만 이는 곤란한 문제를 일으킨다. 일본의 가장 뛰어난 강점 중 하나는 사회적 결속력이다. 단합과 상호 신뢰와 책임감에 있어 거의 전 국민적으로 통일된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보통 남성들이 이제더 이상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랄 수 없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런 가치들이 유지될 수있을 것인가.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결혼과 가정이라는 개념이 무너지면, 남성 집단은 다시금 지배적인 사회 조직으로 부활한다. 하지만 미래의 남성 집단은 상당수의 서구 사회에서 그랬듯 야만스럽고 무례한 형태로 변할 수 있다.  - P402

일본 관료사회에서는담당 부처의 명예와 해당 산업을 지탱하는 기업들의 안위가 일반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곤 하다.  - P407

수많은 일본의 개인은 실수나 혹은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여준다. 문제를 일으키고도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호사 뒤에 숨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미국인 다수의경멸스러운 행태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조직‘으로 넘어오
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P408

이처럼 조직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일본에서 제도적 협약이라는 것을 둘러싼 신성함에 가까운 아우라에 그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장에서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제도적질서를, 이의 제기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울인 의도적인 노력에 대해 얘기했다. 이들은 신성한 존재가 신성을 대신해 제도적 질서를 만든 것이 아니라(왕권신수설), 제도적 질서가 신성 그 자체의 발현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제도의 신성성은 막부가붕괴된 이후에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메이지 정부에 들어서는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민족주의 국가를 건설해 전 국민을 동원하는 데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메이지 정부는 그렇게 해서 홉스주의적 약육강식이 난무하던 19세기 말의 세계질서에서 독립국가로 살아남으려고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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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녀들은 부모에게는 사회에서든 사랑받을 권리는 스스로 얻어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운다.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이다. 이것이 가부장적 사고와가치를 배우는 학교에서 여자들이 받는 첫 가르침이다. 너희는 사랑을 얻어내야만 한다. 여자들은 그 자격을 타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치는 언제나 타인, 외부의 누군가가정의해줄 것이다.
- P12

우리는 나이 듦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사랑에대해 생각하는 방식 또한 바꾸었다. 페미니즘 덕분에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을 때, 한동안 계급적 특권이든 교육 혜택이는 덕을 본 건 일부 여성에 불과했다. 대체로 시류를 잘알았던 부류는 종종 예외적인 혜택을 얻었고, 기대 이상으로 성취했다. 페미니즘은 한편으로 이들을 높이 띄웠지만성과는 대개 일부 여성에게 한정되었으며, 평범한 대다수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듦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널리 확산되었고, 그에 따라 몸에 대한 성차별적 관념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 P23

사랑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은 여성들이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그럼으로써 여성해방운동이 추구해온 완전한 자아실현을위한 모든 여성들의 자유를 약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페미니스트 사상가와 활동가들이 사랑과 로맨스에 대한 예전의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갈가리 찢어버린 것은 물론 옳았지만,
소녀들과 성인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희망과 약속으로 가득한 새로운 자유의 이상이 필요했다.  - P38

나는 내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대립되는 두 정체성, 즉 독립적이며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되려는 욕망과 정착하고 길들여지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었다. 내 어머니 세대가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고 싶은 욕망과 개별적 존재로서의 자기표현에 대한 욕망사이에서 분열되었다면, 나는 내면의 독재자를 따르고자 하는 욕망과 그런 자아에 대한 불신 사이에서 분열된 것이다.
- P52

 사랑을 찾는 여정에서 나는 자유를 향한 길을 발견했다.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곧사랑을 배우는 첫 단계였던 것이다.
- P58

완전하게 사랑한다는 건 우리의 성적 권리를 존중한다는의미였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성의 성적 거부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없다는 진실을 이성애자 여성들은 지금까지도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바로이 때문에 나는 사랑과 성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도 끝났다.
고 본다. 이성애자 여성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급진적페미니스트조차도 - 상대 남성을 언짢게 하거나 사이가 멀어질까 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성은 굳이 반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성이 이따금씩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괜찮아도, 일정 기간 이상 거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 P72

1970년대 말에 우리는 자유를 찾았지만, 사랑은 여전히 구하는 중이다. 우리는 새로이 탄생한 자유여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을 찾고 싶었다. 이성애자이건 동성애자이건, 문란하건 순결주의자이건, 우리는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그리고 우리 같은 여성이 사랑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를 포함할 수 있게끔 여성해방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 P74

우리 모두는 직장과 경력, 돈이 사랑보다 중요한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에 따른 실망감을 이야기할 공간은 없었다. 여자들은 일을 통해 온전한 성취감을 느끼지못한다거나 친밀한 사적 관계에서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는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낼 수 없었고, 사랑 없는 삶에 대해말하기를 두려워했다. 공식적으로 대부분의 여성은 사랑보다 권력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했다. 사랑을 다시 어젠다로 옮겨오려면, 일과 사랑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여성은 스스로의 거짓을 벗어야만 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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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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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춘기 아들을 가진 분이라면 꼭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은책이다.

물론 남편이나 남자 애인이 이해가 안가는 분이 읽어도 좋다. 

남자분들은 자기 얘기를 읽듯이 읽을 수 있겠구나싶기도 하고....


이 책은 그야말로 한 남자 인간이 12살부터 87살까지 자신의 몸에 대해서 쓴 일기이다.

이런 일기 형식의 소설을 쓰겠다고 한 작가의 발상이 너무 기발하지 않은가?

사실 줄거리를 얘기할게 별로 없다.

초반에 몸의 일기를 쓰게 되는 계기가 가슴아픈데 1차대전에 참전했던 주인공의 아빠는 독가스로 인해 몸이 병들어서 돌아온다.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 남편의 병과 아마도 생활고에 치여 점점 자조적이고 독단적, 폭압적이 되어가는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빠의 옆에서 아빠와 동일시 되어가는 주인공 아들.

이 셋의 관계는 전적으로 아들인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므로 엄마의 생각이나 내면은 알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 생활고 이런 것때문에 삶이 팍팍했을, 그럼에도 병든 남편을 떠날 수는 없었던 엄마에게도 할 말은 얼마나 많았을까싶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들의 몸이므로 그는 엄마의 마음까지 살펴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런 아빠가 죽고난 이후 엄마는 빌빌거리는 아들을 보이스카웃 훈련에 보낸다. 

그런데 여기서 훈련 도중 아들은 게임을 하던 상대편 아이들에 의해 숲속 나무에 홀로 묶이는 수모를 당한다.

처음에는 그리 무섭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개미 한마리가 발등을 타고 오르고.... 그때까진 괜찮다. 개미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니까....

잠시 후 개미 한마리가 더 발등을 타고 오른다. 2마리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몇 미터 앞쪽에 개미가 우글거리는 개미집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못움직이는데 저 개미들이 모두 내 몸을 기어올라 나의 눈을 파먹고, 내장을 파먹고......

상상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패닉을 불러일으킨다.

숲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너무 무서운 나머지 설사똥을 지려버리는 우리의 주인공.

그는 12살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10살때쯤이었나? 그 때 우리 동네 애들은 머리에 이를 한움큼씩 달고 다녔다.

엄마는 그 때 내 머리를 참빗으로 거의 쥐어뜯다시피 빗어내리며 이잡기 작전에 돌입했고, 나는 너무 아파서 징징거렸는데 그 때 울 엄마 왈 "너 머리에 이 계속 키우면 그 이들이 너 눈으로 귀로 들어가서 눈도 파먹고 안에 내장도 파먹고 한다"라고....

아 그 공포라니..... 그 때부터는 말없이 머리를 그냥 쥐어뜯기는 수밖에 없었고, 이후 한동안 이가 내 몸속으로 내장으로 들어가는 상상은 나를 공포스럽게 했다. 

나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뭔가를 한 기억이 없는데 이 주인공은 너무나도 창피한 그 기억때문에 자신의 몸을 바꾸기로 하고 그 때부터 자신의 몸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결국 몸의 가장 원초적인 부산물인 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주인공이 아빠의 세계에서 벗어나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소년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시대적으로 봐도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일기는 그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오로지 자신의 몸의 변화, 몸이 느끼는 것들, 몸의 기쁨과 고통을  다룬다.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이런 몸의 일기를 쓰면서 금기가 없다는 것이다.

운전하면서 다 큰 어른이 코닦지를 가지고 노는 이야기며, 첫경험에서 얼어붙어 결국 발기불능이란 오명을 쓰고 고민하는 이야기며, 섹스 중 몸이 느끼는 변화며 어떤 것도 몸의 이야기라면 빼놓지 않는다.

온갖 건강염려증을 읽다보면 이거 내 얘긴가하면서 솔깃하기도 하다.


노년에 이르면 실제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온갖 병들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은 한편으로 애잔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인간이라면 결국 누구나가 저 과정에 이르겠구나하면서 동일시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심심할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빛나게 해주는건 역시 작가의 탁월한 유머감각이다.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든다면 나이들어 신장에 문제가 생겨 오줌주머니를 한동안 차고 다니게 되는데 이 오줌주머니는 일정 시간이 되면 비워줘야 되는 것이다. 안그러면 이번에는 설사똥이 아니라 소변을 발밑에 흥건하게 흘리게 되므로 말이다.

그런데 딱 쇼핑을 하고 있을 때 오줌주머니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화장실을 부탁하지만 점원이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떡했냐고? 

심술이 가득해진 이 할아버지 주인공은 가게의 새 사냥부츠에다 오줌주머니에 가득찬 오줌을 몰래 비우고 능청스럽게 나와버린다. ㅎㅎ 


이 책에서 유일하게 맘에 안들었던 장면은 노년의 이 주인공이 남미 학술행사에 갔다가 20대 아름다운 아가씨에게서 유혹을 받는 순간이다. 

이미 나이가 70대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더 이상 섹스는 하지 않지만 여전히 따뜻한 포옹을 즐기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이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 드디어 섹스의 유혹에서 벗어났다고 자신만만하다. (사실은 발기가 안된다. 70대 할아버지니까 뭐 당연한거 아닌가?)

아 그런데 이 할아버지 20대 아가씨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버려 생애 마지막 섹스를 즐기는거 아닌가?

사실 난 동양권의 문화가 섹스에 대해서 지나치게 심각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는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식의 섹스에 대해선 아무래도 관대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만약에 이 할아버지가 아내가 없거나 아니면 아내를 사랑하지 않거나 뭐 이렇다면 그래 그럴수 있지, 멋진 아가씨가 모든걸 다 받아들인다며 유혹하는데 안 넘어갈 이유가 없지 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주인공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얼마전에 봤던 영화 <돈룩업>에서도 주인공이 아내와 별 문제가 없음에도 그냥 여자의 손짓하나에 홀라당 넘어가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남편한테 남자들은 저런 상황에서 무조건 별 생각없이 그냥 유혹에 넘어가서 섹스할 마음이 나는지 질문했더니 저런 유혹을 안 당해봐서 모르겠단다. 참내..... 


남자의 몸의 일기를 읽으면서 여자의 몸의 일기를 읽어보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식으로 쓰면 그것도 일종의 표절이 되려나 싶어 안나오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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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31 08: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이 책을 안읽을테지만 여자의 몸의 일기가 나오면 꼭 읽을거 같아요 ^^

Falstaff 2022-01-31 09:00   좋아요 6 | URL
이 책, 굉장히 유명합니다. 페나크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특히 수십 년 동안 중등학교 교사를 해서 그런지 사춘기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탁월합니다. 여러가지 방면으로 재미나는 책입니다만.... ^^;;
이이의 말로센 시리즈라고 있습니다. 그 시리즈는 미들-하이틴을 위한 스릴러인데요, 성인이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한 두 권만 읽을 경우 그렇습니다. ㅋㅋㅋ

새파랑 2022-01-31 11:45   좋아요 6 | URL
유명하고 재미있는 책이군요 ㅋ 딱 이거만 읽어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2-01 01:44   좋아요 3 | URL
골드문트님 대단하세요. 제 글을 읽고는 미동도 없는 새파랑님을 설득하시다니..... ^^
진짜 이 책의 백미는 초반부와 사춘기시절인거 같아요. 뒷부분으로 가면 조금 앞부분의 긴장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좀 들었어요. 저는 페나크의 책은 말로센 시리즈는 말고 소설처럼이랑 학교의 슬픔 읽어보려구요.

bookholic 2022-01-31 10: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앞으로 우리 둘째가 사춘기 되면 이 책에서 아버지가 했던 말씀을 이야기해주려고 생각했어요.^^

바람돌이 2022-02-01 01:46   좋아요 1 | URL
아이의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몸이 그렇게 안좋은 상황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소년의 유머감각은 아버지한테 그대로 물려받은듯요. ^^

청아 2022-01-31 11: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페나크의 책을 3권 갖고 있네요! 70대 할아버지가 20대 여성에게 유혹을 받다니ㅋㅋ
‘몸의 일기‘라는 소재가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머도 있다니 더 기대됩니다.^^*

바람돌이 2022-02-01 01:47   좋아요 1 | URL
가지고 있는 책이 많음에도 새 책을 늘 사는 우리들의 슬픔.... ㅎㅎ 재밌습니다. 정말로요. ^^

blanca 2022-01-31 13: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꼬맹이 아들의 사춘기 대비를 위해 이 책을 읽어야겠네요. ^^

바람돌이 2022-02-01 01:48   좋아요 2 | URL
완전 앞서가시는 블랑카님이십니다. ㅎㅎ 남자 아이들은 정말 여자인 엄마가 보기에는 이해불가능한 면들이 너무 많아 사실 미리 준비가 필요한거같긴 해요. ^^

그레이스 2022-01-31 14: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못읽었는데 읽어봐야겠어요
책장으로 걸어가요~^^

바람돌이 2022-02-01 01:48   좋아요 2 | URL
역시 좋은 책은 많은 분이 이미 사셨다는..... 서재 지인님들 책장에 무슨 책이 없겟어요. ^^

mini74 2022-01-31 14: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란 말이 생각나요 요즘 제 2의 사춘기를 지나는 거 같은 남편을 위해 읽어봐야 될 듯 합니다 ~

바람돌이 2022-02-01 01:49   좋아요 3 | URL
ㅎㅎ 저도 그 말 떠올렸어요. 남편은 갱년기죠. 저희집에도 1명 있습니다. 여성호르몬의 생성으로 인해 저보다 더 감성적이 되어가는.... ^^ 그런 면에서는 여기 이 책의 분은 조금 아닌듯해요. ^^

희선 2022-02-01 00: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실제 어딘가 개미는 사람 뼈만 남기고 다 먹기도 하죠 아마존이었던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야기에도 그런 게 나왔군요 그런 거 보고 개미가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모든 개미가 그런 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병든 아버지를 보고 그 뒤에 겪은 일 때문에 자기 몸을 잘 보게 되다니... 그것도 자기 자신을 잘 보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2-01 01:51   좋아요 3 | URL
베르나르의 개미는 저도 읽었는데 그런 개미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이 안나네요. 이놈의 기억력.... ㅠ.ㅠ
근데 개미집을 우연히 발견하면 전 저 개미들이 나에게 아무 피해도 못입힌다는거 알면서도 무섭더라구요. 그 무시무시한 군집이 주는 공포랄까? ㅎㅎ 이 책 보면서 저도 저의 몸에 대한 생각들을 좀 하긴 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서지현 검사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대형 참사에 대한 어젠다 지키기는 차라리 단순한 것일 수 있었다. 거기엔용기만 있으면 되었다. 미투는 복잡했다. 젠더 문제였기 때문이다.
용기만 가지고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때로는 도가 지나친 공격들에 모두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가해자의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해자가 대개 알려진 사람이다보니 아무죄도 없는 그 가족들이 겪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아팠다.
- P198

안 전 지사는 결국 그날 법정 구속되었고, 2019년 9월 9일에 대법원에 의해 3년 6개월의 형을 확정받았다.
아마도 이 사건의 판결은 위계에 의한 위력의 범위와 정도를 판례로 규정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이 판결은 분명 진보한 것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의승리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의 변화는 조화로움 속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 P205

지금도 미투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뉴스룸에 대한 일부의 비난은 계속된다.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어젠다 키핑은 그 의도가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 해도 현세의 갈등에 의해 얼마든지 폄하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 P206

사르트르는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인 우리에게어느 길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그가 가고 싶은 길이면 어떤 길이든 선택해서 갈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해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
- P238

지금에 와서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더 있었다. 이례적으로 민정수석에서 곧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한 경우의 당위성을 더 따져봤어야 했다. 검찰개혁의 완수를 명분으로 한 그 임명이 결국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짚어냈어야 했다. 동시에 검찰의 전광석화와 같았던 수사가 결국 검찰 기득권의 보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 강하게 전해야 했다. 또한 검찰개혁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 왜 그런 것인지,
지난날 검찰의 부조리와 권력지향의 행태들을 좀더 일일이 짚어냈어야만 했다.
- P283

그런데 역시 문제의 핵심, 내 고민의 핵심은 그런 상황에서 언론, 즉 저널리즘의 역할이었다. 내 나름의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렇다. 정치·사회적으로 오랜 억압구조, 혹은 모순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정파적 이해관계를떠나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옳은 저널리즘이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만일 그런 저널리즘을 막는 세력이 있다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운동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말미에 태어난, 내가 속했던 언론노조들은 그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저널리즘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한다면, 그것은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 운동 과정에서 나오는 사실들을 보도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저널리즘의 범위를 벗어나 ‘지지‘ 하거나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 P288

그러니 언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것을 굳이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보‘다. 의심은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과정은 극단적이어선 안 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합리적인 자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지혜‘도 아마 그것과 맥이 같으리라고 본다. 나는 ‘합리적 진보‘를 그렇게 정의한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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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성장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1980년대 고도성장은 일본의 관료적 집단지성이 목표로 삼을 새로운 산업을 파악해내고 공략하는데 거의 실수가 없었다는 점. 어쨌든 일본의 관료집단이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고, 또한 기업에 필요한 자금은 상환의 염려 없이 꾸준히 조달되었고, 집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살인적인 노동강도라 할지라도 - 하도록 훈련되어 있는 고학력 노동자층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인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일본이 지불한 것은 먼저 일본 문화의 질이 하락하고 저속화 되었다는 것이다. 교토타워로 상징되는 교토와 같은 오래된 도시 풍경의 파괴, 삼림들이 파괴되고 일본 삼나무의 숲으로 모두 대체되어 버린 것(이 나무는 내가 알기로 봄철에 엄청난 꽃가루를 뿌려서 알레르기 환자를 엄청 양산해내고 있다고 한다), 해안선의 절반 이상은 거대한 콘크리트 방파제의 벽이 점령해버린 것 등등이다.  대기업 샐러리맨들은 그들의 삶이 워낙에 강한 노동환경으로 팍팍해져버려 더 이상 인간의 조건의 질문을 던질 여력이 없어지고 그저 스트레스를 잊도록 응원해주는 오락들을 향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른바 샐러리맨 문화의등장인데 익히 알고 있는 퇴폐문화의 발흥, 일본의 야구에의 열광(일본 야구 시스템은 대학 시스템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도쿄대학교에 상응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독주, 고시엔을 통한 선발과정, 팀플레이어를 최고로 치는 문화 등등) 이 그것이다. 

또한 고도성장기에 일본의 여성들은 한번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거의 유일한 집단이다. 적당한 전문대를 나와 OL을 거쳐 적당히 전도유망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이 회사의 노예로 잡혀 주7일노동을 하는 동안 집안경제와 자녀교육, 시부모 봉양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여성의 삶이다. 결국 여성들이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상은 보통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여성들인데 이 세계는 일본 샐러리맨 세계의 복사판이다. 대표적인 사친회를 봐도 일본의 다른 모든 조직에 나타나는 특징 - 겉으로 끝없이 강조하는 화합과 협력 뒤에 숨어있는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수동적 공격 성향(고도로 계산된 비방 전술) 등 말이다. 그러나 고도성장 이후에 와서는 여성의 4년제 대학 입학이 늘어나고, 이들은 노골적으로 이들을 차별하는 국내 회사가 아니라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기 시작하며, 정해진 길을 따라 결혼하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증가한다. 그것의 결과는 일본 출산율의 붕괴로 이어진다. 


7장 경제와 금융

아 이부분 어렵다. 경제만 해도 어찌 어찌 맥락을 파악하겠는데 금융이 들어가면 미치겠다. ㅠ.ㅠ

일본의 고도성장기 무제한적인 대출 - 심지어 대출을 하면 이자를 오히려 대출자에게 주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은 두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의 토지가격은 절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료기구인 재무성이 부동산과 주가를 부양할 수 있고, 재무성 감독하의 모든 금융기관을 보호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체를 찰떡같이 믿는다면 마이너스 대출도 가능하겠구나 싶기도 하다.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성장가능성이나 기술 이런 것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담보로 받은 부동산이 절대 하락하지 않고 계속 오를거라고 생각하면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또한 이것을 국가기관이 보장한다는데 말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미국과의 무역마찰, 환율 조정, 선진기술과 제조업에서 자신들이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부한 것이 환상으로 드러나는 현실 등으로 인해 결국 버블의 폭발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이 부분은 정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이 더 많았으므로 일단 패스....ㅠ.ㅠ



이 모든 것은 고도성장의 제도들이 예상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의 관료적 집단지성은 목표로 삼을 새로운 산업을 파악해내고 공략하는 데 거의 실수가 없었다. 기업에 필요한 자금은 상환의 염려없이 꾸준히 조달되었고 집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하도록 훈)련되어 있는 고학력 노동자층이 존재했다. 일본 기업들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다. 노동 강도에 대한 요구는 끝이 없어 보였지만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었다.  - P248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는 일본 문화의 질이 하락하고 저속화된다는점이었다. 예술과 문학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도 그랬고, 더 넓은 의미에서도 그랬다. 이런 것은 산업 공해에 비하면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되돌리기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눈에 매우 잘 띄고, 수식어를 일부러 고르자면 구체적인concrete‘ 사례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훼손되어가는 교토의 경관이었다.  - P249

하지만 대기업 샐러리맨들의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인간의 조건에 질문을 던지던 이런 예술적 탐구들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그 대신, 회사 일과 사회적 스트레스를 잊도록 응원해주고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오락들이 사람들을 잠식해갔다.
- P251

일본 사회에 샐러리맨 문화를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미국에서 수입해온 스포츠인 야구였다.  - P254

고도성장기 일본의 야구 스타들은 전형적인 팀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단 하나의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으며, 주어진 연봉을 받아들일 뿐 단 한 번도 협상하지 않았다. 일본 야구의 연습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을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노력이나 인내를 강조했다.  - P255

PTA에는 일본의 다른 모든 조직에 나타나는 특징이 다 드러나 있다. 겉으로 끝없이 강조하는 화합과 협력 뒤에숨어 있는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수동적 공격 성향 passive-aggressive‘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새로 해야 할 만큼 고도로 계산된 비방 전술 같은 것말이다.  - P263

일본은 거의 모든 주요 산업을 이미 제패했거나 거의 제패하면서, 세계 산업들의 본사가 일본에 모여 있는 본사 경제 headquatters economy‘로서의 위상을 구축하고있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었다. 일본은 미국에 협력해 양국 환율의 재조정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경제에서 수출 이외의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다.
- P284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충격이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본의 핵심 권력층은 일본이 전쟁의 폐허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주원인이 일본이 제조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일본의 ‘충격은바로 이러한 이해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일본이 전쟁에 졌던 이유가기술력이 부족해서였다고 생각했다. 미군정이 끝나고부터 일본은 거대산업국가를 건설하고 완벽히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 P295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아마도 가장 당황케 했던 것은 선진기술과 제조업에서 거의 달성한 듯 보였던 일본의 절대 우위, 자부해 마지않던 그 질대 우위가 알고 보니 그게 과장되이 있었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다.
- P305

일본에서 과세되지 않는 소득의 가장 큰 부분은 농민, 개업의와 같은자영업자, 종교단체, 주로 건설회사와 같은 중소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 P319

일본은 이제 벌써 15년 이상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런 장기적인디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경제 성장에는 분명히 좋지 않다. 하지만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인해일본 정부는 채권 시장을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적자 재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 P320

왜냐하면 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어차피 은행들이 너무 겁을 먹어서 대출을 해주지도않았지만), 기업과 가계 저축의 대부분이 국채 및 정부에서 발행한 기타금융상품을 사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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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29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반쯤 보셨군요 일월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월에 뭐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네요 늘 그렇지만... 바람돌이 님 설연휴 편안하게 보내세요 바람돌이 님 한번 더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1-29 23:45   좋아요 2 | URL
하루 2챕터씩 읽기로 했는데 그것도 다른 재밌는 책이 끼어들면 또 밀리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ㅎㅎ 어쨌든 반쯤 읽었는데 금융문제가 나오면 또 막 어려워지면서 뭐야 뭐야 이러면서 읽고 있어요. ㅎㅎ 희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

scott 2022-01-3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야구가 일본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이였군요
이책의 저자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균형적인 시각으로 쓴 것 같습니다
이 책 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