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기사 가치에 따라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비용을청구하고 싶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를 써야 하는 시대가올 것이다. 그것은 언론사나 그에 속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저널리즘을 ‘정치운동‘과 맞바꾸어 편 가르기에 몰두하거나, 혹은 ‘끝없는 상업성에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는 정론 에복무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시대가 온다고어떻게 장담하느냐고? 그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합리적 시민사회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것과 같다. 그다음은 정말 암흑이다.
이 책이 주로 다룬 것은 저널리즘의 한 방법론으로서의 ‘어젠다 키핑 (Agenda Keeping)이다. - P9

삼성 문건을 보도한 날, 뉴스제작부의 기자 이세영이 늦은 저녁 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선배,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마십쇼.."

그에게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한다는 건 그때까지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데 그게 어디쉬운 일인가. 나는 변한 다음 비난받는 것이 무서워서라도 잘 못 변한다.
- P27

그마저 철수하면 가족들이 너무 고립된 느낌이 들 것같아서 도저히 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목포신항을 떠난날도, 마지막 실종자 가족들이 세월호 곁을 떠나고 이틀 뒤였다.
그 여덟달 가까운 기간 동안 기자들은 현장에서 100건이 훨씬 넘는 리포트를 보내왔다. 현장에서의 마지막 리포트는 공중에서 촬영한 세월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해서 팽목항에서의 287일, 목포신항에서의 234일, 모두521일간의, 아마도 전무후무할 현장 체류가 막을 내렸다. 그 시간들은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를 깊이 고민하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또한 언론이 단지 뉴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이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들이기도 했다. 굳이 어젠다 키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좀더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다.
- P70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이 비극은 한국의 현대사를 바꿔놓은 분수령이 있다. 그 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권의 부침沈)은 사실 한 장면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정권의 패망과 또 다른 정권의 출현은 단지 그 흐름 속의 필연적인 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 P90

요즘도 회사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진다. 태블릿PC는 조작됐다는 것이다. 무려 5년이 지나도록 저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 말한 대로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그들은적어도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어리울 것이다. 즉, 이제는 ‘태블릿PC 조작설‘이 그들만의 ‘존재의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 P144

그럼에도 평자들이 또다시 우리의 ‘태생적 숙명‘에 대해 논하려 한다면 굳이 논쟁하지 않겠다. 수많은 논쟁의 가운데 있어본 경험에 따르자면 때로 ‘현실은 버라이어티하고, 논쟁은 앙상하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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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로스코가 안전하다고 느꼈으면 했다. 로스코가 내게 주었던 안정감을 생각할 때, 나 역시 로스코에게 그러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녀가 두려움을 느끼는것은 원치 않았다.
- P241

효과가 있었다. 로스코에게 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녀는밝고 강인하며 자신감이 넘쳐야 했다. 나는 로스코가 스스로 그 사실을 알아채도록 애쓰고 있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로스코의 멋진눈은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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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경제 기적

패전 후 일본의 보수파들은 국가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정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좌파 세력이 일본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전쟁 전 일본 내 권력구조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전략을 쓴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좌파 세력이 성장하면서 1948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의 당혹감은 이런 일본 보수파와 손쉽게 손을 잡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 일본의 보수파들은 한편으로는 전쟁의 책임 당사자들이었고, 그럼으로써 일본의 본질로 여겨지는 위계질서를 강고히 끌어안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주권이 천황에게 있는지 국민에게 있는지가 헌법규정과는 상관없이 애매해지고, 전후 막강한 관료들이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행사하는 결과를 가져온다.(일본의 관료제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를 묻고 가는데 있어 미군정과 일본의 보수파들의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군국주의 침략에 대해 잘못했다는 표현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마도 이 지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우익은 전후의 민주주의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햇고, 교사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폭력 및 협박에 점점 몰두했다. 


일본의 방위와 외교를 미국이 책임지면서 일본의 관료들은 대부분의 역량을 경제 문제에 집중한다. 

이후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산업과 기업을 키우고, 수출주도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 관료 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배분되어 일본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일본의 경제 체제에서 주목할 것은 '리스크의 사회화'인데 전략적인 사업에 대해 개별 기업의 리스크를 국가가 보완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에서도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데, 이 예측 가능성은 도쿠가와 시대의 권력 구조에서 허용된 틀을 벗어나 행동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부터 일본의 주요 심성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경제 성장기동안 이 예측가능성 덕분에 개별 기업가나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지 않고, 초기 손해를 감당할 수 있었다. 또한 자민당 정치인들은 관료들이 이러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대신 관료들로부터 편의를 얻어내는 중요한 파워브로거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일본은 핵신 남자 직원들에게 평생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으로 상쇄해나간다. 이른바 평생직장, 가족기업개념이다. 



5장 - 고도성장의 제도적 기틀

일본의 기업은 종전 직후의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응한 이데올로기적 해법으로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을 이용한다. 이 원칙은 기업의 생산성이나 품질, 기술력등 모든 요소를 앞서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개념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파생시키며 사회 안정에 기여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노동착취에 다름아니다. 

기업간의 모든 경쟁은 산업협회에서 나오는 비공식적인 지침을 통해 통제되었다. 특히 이 산업협회 덕분에 기업들이 손실을 내는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하는 시장메커니즘의 부재로 이어진다. 경쟁에서 낙오된 회사들도 고용안정성과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율되고 감시되어진다. 이 속에서 일본 기업들은 고용 관행과 손쉬운 융자, 숙력노동자들의 완벽한 조합을 통해 해외에서 확실하게 시장을 점유해 나갈 수 있었다. 

일본의 고도성장의 또 하나의 바탕으로 고용관행이 있는데 이는 회사가 남성 직원에 대해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교육제도와 맞물려있다.

일본과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교육이 제공한다. 여기서 인재는 일본의 동일한 교육과정 속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학교의 스파르타식 분위기를 받아들여 절도있고 획일화된 외관에 대한 강조를 내면화한 체제순응적 인간들을 의민한다. 또한 이들은 일류대학 학부의 졸업자을 손에 넣음으로써 사회 엘리트의 수순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 이들의 성적이나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기술은 기업에서 가르치면 된다. 일류대학이 필요한 이유는 이들 중 기업을 지도층에 이르렀을 때 학연을 통한 연줄을 잡을 수 있는 대학 출신이간 아닌가에 달렸다.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전시체제와 비슷하다. 전시에 군수업체에 잔략적 산업을 몰아주는 것처럼 수출 주도형 기업에 대출을 집중적으로 제공한다. 그러면 초기 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를 위해 일본은 가계의 저축을 강력하게 장려하는 한편 정부가 발행한 금융상품(채권)을 사도록 요구하는 정책을 쓴다. 그럼에도 대출초과로 생기는 공백은 중앙은행이 리스크를 대신 떠안는 형식으로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개입이 두드러진다. 


이 외에 일본의 경제성장에 공헌한 것으로 '현실의 관리'라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예측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근무시간은 8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모두 그렇게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퇴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직원이 주 48시간만 근무한다는 정교한 픽션이 존재했다. 이런 현실의 관리가 곳곳에 존재한다. 일본 관료들은 일본의 낮은 관세율을 가리키며 일본 시장이 활짝 열려있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회사들은 수입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 것이다. 또한 사상과 정보의 영역에서도 좌파나 진보적인 생각에 대해 공식적인 탄압은 업지만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가 기다린다. 언론 역시 기자 클럽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야 기사화가 가능하다. 이를 어기면 모든 특종에서이 배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현실의 관리라는 것은 모든 일본인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이를 일본인들은 일본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일본의 보수 지도층은 국가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까지도 무수히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전략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들의 최우선 과제는 미군정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좌파 세력이 일본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전쟁 전 일본 내 권력 구조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미국의 두려움과, 요시다가 사적으로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인의 아름다운 오해‘를 이용해서 미국의여론을 조작하는 작업을 포함하고 있었다.
- P179

주장컨대, 일본은 이런 게임을 하는 데 이스라엘 다음으로 숙달되어 있다. 연습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더 힘센 존재를 달래고 조종하는 기술은, 유치원 교실에서 시작해서 정부나 기업의 꼭대기에 오르는 데까지, 일본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 P180

헌법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을 할 수 있는데, 가령 주권재민 규정이 그러하다. 헌법은 주권이 일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아주 명확히 하고 있지만, 적어도 노년층에는 주권의 최종 소재가 사실여전히 천황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헌법은 또 입법권을 국회에 부여했지만, 전후 대부분의 기간에 실제로는 막강한 관료들이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행사해왔다.  - P184

일본의 권력자들은 노동조합, 언론 자유, 보통선거권, 법률상의남녀평등이 실현되는 것을 막고, 다시는 학생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보내지 않겠노라 굳게 결심한 급진적 교사들에게 훼방을 놓고,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천황의 신하가 아닌 공무원이라는 개념이 자리잡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에 내포된 사상은 매우 견고해서,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최소한 어느 정도 제동을 거는 역할을 계속했다. - P186

그렇기는 하더라도, 미군정은 초기 멤버들이 이루려고 노력했던 일본사회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존 다우어는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군사정부가 직접 통치했던 전후 독일과는달리 일본의 미군정은 기존 정부 조직을 통해 ‘간접 통치를 했다. 이는항복 이전의 일본 정치체제에서도 가장 비민주적었던 두 가지 제도에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다름 아닌 관료제와 천황제다."
- P187

전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일반국민이 전쟁을 얘기할 때 쓰던 가장 흔한 말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중국이라는 진흙탕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훨씬 강한 상대인 미국의 눈을 고의적으로 찌른것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일반 국민에게는 이런 어리석음의 원인을 되돌아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에 참여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정복자인 미국, 일본의 우익 양쪽으로부터 과거의 일은 묻고 잊으라며 적극적으로 주문받았다. 우익은 전후의 ‘민주주의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했고, 교사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폭력 및 협박에 점점 몰두했다.
- P191

 이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본은 천황이 정치적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고유하고 신성한 땅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회귀한다. 정통성에대한 이론적 바탕이 전쟁 전의 정치체제에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재앙이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할 수가 없고, 하더라도 신빙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통치의 정통성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는 일본의 패배로도, 군정에 의해서도, 전후 헌법의 도입을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국가 정치의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않으면 언제든 끔찍하고 파괴적인 무질서 상황은 재현될 수 있다.  - P193

일본의 보수 지도층은 CIA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일본 내에 흩어져있던 보수 세력을 모아 자유민주당(자민당)으로 통합했다. 자민당은 볼테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유주의도 민주주의도 대변하지 않고, 전통적자의미의 정당도 아닐뿐더러, 줄곧 치러진 선거에서 과방을 넘는 득표를하지도 못했다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닐뿐더러,
제국도 아니라고 했던 것을 응용한 말 옮긴이), 하지만 자민당은 관료가 경제를 통제하고, 일본이 계속 미국의 방어 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어간다.
는 두 가지 사실을 정치적으로 눈가림해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 P197

1950년대 초반의 특수한 상황은 그 후 수십 년간 일본의 경제 기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 전반의 성장 모델의 토대가 되었다. 일본은패전의 폐허를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수출 주도경제를 키우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독립한 많은 신생 개발도상국은 수입 대체‘를 주창하며 과거 식민지 시절 지배국에 의존하던 경제를 개혁하고, 국내 산업을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일본에게 이것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고 애쓰는 대신, 일본은 그 의존도를유리하게 이용해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산업과 기업을 키우는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발전시켰다.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는 적어도 고도성장기의 첫 10~20년간은 경제 관료 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배분되어 일본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데 쓰였다.
- P198

좌파는 패배했다. 파업은 해산되고 안보조약은 개정되었다. 하지만 좌파가 모든 면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미쓰이가 노조를 파괴하고 대신 고분고분한 사측 노조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다른 기업들도 그걸 따라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부터 일본의 대기업들은 핵심 남자 직원들에게 평생의 경제적 안정을 보상할 의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업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분기 이익이나 주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최우선 목표가 되있다. 직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거나 회사가 재정적으로 힘들 때라도, 제대로 된 회사라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렇게 경제적 안정의 보장이라는좌파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충족되면서 노동 투쟁은 점접 일종의 의례적인 절차로 변해갔다. - P207

하지만 근대 일본의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은 에도 시대의 제도에서 나온 유기적인 산물이 아닐뿐더러 ‘일본 문화의 산물도 아니었다. 이것은 앞 장에서 다룬 종전 직후의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응해 나온 이데올로기적인 해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래의 진실도 일본 기업의 관리자들 머릿속에 자리잡은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을 흔들지는 못했다.  - P217

장기적으로 보면, 일본이 이렇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필수 요소인
‘창조적 파괴의 가능성을 억제했기 때문에 일부 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예를 들어 소비자 가전제품 산업은 1990년 이후 애플이나 삼성과같은 해외의 발 빠른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한다. 하지만 고도성장기에는 산업협회들이 일본의 가장 첨예한 경쟁력을 해외 시장으로 향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일본 기업들은 고용 관행과 손쉬운 융자, 숙련 노동자들의 완벽한 조합을 통해 해외에서 확실하게 시장을 점유해나갈 수있었다.
- P220

고도성장의 바탕이 된 세 번째 제도는 일본의 고용 관행이다. 고용 관행은 일본 기업들의 행동 및 일본 경제생활에 불문율로 철저히 녹아들어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소위 ‘종신고용‘은 실제로는 평생 고용하는것이 아니고, 핵심 남성 직원에 대해 회사가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 P221

절도 있고 획일화된 외관에 대한 강조와 불편을 받아들이는 훈련은,
좀더 광범위한 교육학적 목표의 일부로서, 적어도 언어 수리 능력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다. - P224

대학 시절에 형성된 학연이 중간급 이상의 관리직으로 올라갔을 때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의 조직에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위치에 올라가면, 회사(또는 정부 부처)의 대외 관계를 관리하고 강화하는 것이 업무의 대부분이 되이버린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너무나 중요한 인맥(진먀쿠脈)을 만드는 데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 P226

현실의 관리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일본인들이모순을 알아차리지 않기로 의도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한 듯 보이는 데서 종종 드러난다. 근무 시간이 그 좋은 예다.  - P236

사상과 정보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힘이 작용했다. 세상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 현실을 부정하는 내용을 쓰거나 말한다고 해서 잡혀가는 일은 없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결국은 소외되기 마련이었다. 뉴스의 배포는 기자 클럽을 통해 통제되었다. 기자 클럽은 정치인, 정부 부처, 경찰과 같은 주요 정보원을 취재하는 기자들로 구성된 카르텔이다. 대형 보도 기관의 기자들만이 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다. 만약특정 뉴스를 어떤 식으로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기자 클럽의 암묵적인동의에 반하는 기사를 썼다가는, 그 기자와 신문사는 앞으로의 특종에서 배제될 것이었다.  - P240

‘현실의 관리‘는 그렇게 가장 아둔한 혹은 ‘일본적이지 않은 이들을밴 대부분의 사람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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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의 사랑의 구두점, 이 쉼표를 내게 맡기면 느낌표로 만들어줄게.
- P177

한 사림은 왼쪽 집 벽에, 또 한 사람은 오른쪽 집 벽에 등을 기댄채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도시는 지구상에 베네치아밖에 없다.
- P183

인간은 극사실주의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
- P215

열다섯살 때 나도 해변에서 내 또래 남자애들을 상대로 이두박근과 복근 시합을 벌였었다. 열여덟 살인가 스무 살 때는 수영복 아래쪽이 얼마나 불룩한지를 자랑했다. 서른 살, 마흔 살이되면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비교한다(대머리에겐 불행이다). 쉰살 때는 배(배가 안 나와야 한다), 예순 살 땐 치아(빠진 게 없어야한다), 이제 소위 원로라 불리는 늙은 악어들의 모임에선 등, 걸음걸이, 입을 닦는 방식, 일어나는 방식, 외투를 걸치는 방식을 비교한다. 한마디로 나이, 나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아무개가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이지, 안 그래?
- P217

여럿이 어울려 있을 때 우리 얼굴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그 그룹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망, 거기 속하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욕구다. 그걸 교육이나 맹종 혹은 주관 없는 성격의탓으로 돌리는 게 보통이지만 그게 티조의 가설이었다——난거기서 오히려 존재론적인 고독에 저항하는 시원적(始原的) 반응을 본다. 본능적으로 유배의 고독을 거부하고, 공동체에 끼어드려는 몸의 반사적인 움직임이랄까. 심지어 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러하다.  - P223

여자들이 더 오래 살게된 건 아기를 낳다가 죽는 일이 없어지면서부터라는 것이다. 오늘날 수명에서 여자가 남자를 앞지른 것은, 잃어버린 수천 년을 되찾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 P257

그 시절엔 여자 혼자서다른 여자들에 둘러싸인 채로 분만을 했다. 남자들은 자신들이 맡은 종족 번식에서의 능동적인 역할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신석기 초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임신한 여자에 관해 얘기할땐,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했지. 마치 아이가 성령의 작품이라고 믿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여자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아이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한 거고, 정작 기다리기만 하는 건 남자인데 말이야. 그러나 남자는 기다린다는 걸 숨기기 위해 여자를속여 왔어. - P297

인간이 진정으로 겁을 먹는건 오로지 자기 몸에 관해서뿐이다. 자기가 말로 한 걸 누군가가 진짜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걸깨닫는 순간,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 P315

긁는 즐거움, 짜릿한 쾌감이 점점 커지다가 결국 시원함으로 끝나는 것뿐 아니라, 특히 가려운 지점을 1밀리미터 오자도 없이 정확히 찾아냈을 때의 희열이란, 그거야말로 자신을 잘 이해하는것 아닐까. 긁어야 할 지점을 옆 사람에게 정확히 가리켜준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은 날 만족시킬 수 없다. 누가하는 목표 지점을 살짝 비껴가기 일쑤다.
- P319

그런데도 이 변치 않는 김정은 어찌 된 걸까? 몸 구석구석이 다퇴화되고 있는데도 삶의 환희는 변함없이 남아 있으니, 어제 모나가 내 앞에서 걸어가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티조가 말한 모나의 여왕 같은 자태, 늘 모나의 뒤를 따라 걸어가길 40년, 그사이에 물론 모나의 몸은 무거위겠고 탄력도 잃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몸만 무거워진 거지 걷는 자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난 모나가 걷는 걸 보면서 늘 똑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걸음걸이가 곧 그녀다.
- P367

하지만 내겐그 기억들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그들의 몸이었으니까! 내 앞에 마주하고 있어 손만 뻗치민 만질 수 있는 몸, 그거야말로 내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 몸들은 더 이상 내 풍경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집을 조화롭게 꾸며주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가구들과도 같았다. 그들의 육체적 존재가 갑자기 얼마나 그립던지! 그들 없는 세상이 얼마나 히전하던지! 당장 여기서그들을 보고, 그들을 느끼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후추 님새 나는 아줌마의 땀, 티조의 허스키한 목소리, 거의 꺼져가는 아빠의 숨소리,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그레구아르의 탄탄한 몸.
- P448

그래, 나의 도도, 이젠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겁먹지 마, 너도 데려가줄게.
-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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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책 왜 이렇게 재밌냐?
곳곳에 번뜩이는 유머, 삶에 대한 통찰
4분의 1쯤 읽었는데도 올해의 내 책으로 지명될 것이 분명!!!

나는 지금 매일 매일 일본의 굴레 1,2장을 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으므로 지금 일본의 굴레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 싫다. 어딘가 정희진 선생님 글에서 이 책 추천하는거 보고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대박이다. ^^


그때 이후 평생 써온 이 일기의 목표는 이랬다. 몸과 정신을 구별하고, 내 상상력의 공격으로부터 내 몸을보호하고, 또 내 몸이 보내는 부적절한 신호에 대항해 내 상상력을 보호하는 것. - P22

정을 하지 않았다. 아들아, 넌 미친 게 아니야, 넌 네 느낌과 놀고있는 거야. 네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다 그렇지. 넌 네 느낌에게 질문을 던지지, 아마 끝없이 계속 물을 거다. 어른이 돼서도, 아주 늙어서까지도, 잘 기억해두렴, 우린 평생 동안 우리의 감각을 믿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단다.
- P32

우리 목소리는 바람이 우리 몸을 통과하면서 연주하는 음악이다. (항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 말이다.) - P36

조르주 삼촌과 아빠의 대화가 생각난다. 아빠가 몸을 잘 일으키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다. 거의 먹지도 못했다. 조르주 삼촌은 제발 기운을 차리라고 당부했다.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다.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채, 이젠 안 돼, 아빠가 말했다. 난 속이대머리거든! 네 머리털이 안 나는 것처럼 내 속도 다시 자랄 순 없어. 조르주 삼촌과 아빠는 서로를 정말로 사랑했다.
- P53

로베르는 나와 동갑내기지만 자기 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일 뿐이다. 그게 다다. 그의몸과 그의 정신은 함께 자라났고, 그 둘은 좋은 친구여서 놀랄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다시 사귀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로베르의 몸이 피를 흘린다 해도 로베르는 놀라지 않는다. 반면에 내몸이 피를 흘리면 난 놀라 기절을 한다. 로베르, 그는 자기 몸이 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피를 흘리는 것도 당연하지, 돼지를 잡을 때 돼지가 피를 흘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난, 뭔가 새로운 사건이 생길 때에만 비로소내게 몸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 P68

이 낯선 느낌을 없애주진 못할 것이다. 루소가 산책길에 식물채집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채집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그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것이 되어도 좋겠지만 말이다. - P112

인체 해부도는 여전히 내 눈앞에 놔둔 채로, 그런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게 있다. 인체 해부도의 다리 사이에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음경도 고환도 그려져 있지 않다! ...... 라루스씨는 고자다.(라루스 인체 해부도를 만든 사람)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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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27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일기인가 했는데, 소설이군요 소설이면서 일기기도 한... 소설에서 자기 몸을 바라보는 일기...


희선

바람돌이 2022-01-27 01:59   좋아요 1 | URL
자신의 몸에 대한 평생의 일기예요. 굉장히 재밌어서 단숨에 다 읽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