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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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9쪽 삽화)


중고등학교 때 누구나 인상깊게 보았을 이 인류의 진화도의 문제점은 사람들에게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단선적이고 직선적으로 변화해왔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삽화가 강력한 비인간화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 삽화를 이용한 실험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백인 미국인보다. 무슬림이나 라틴아메리카인들 아시아인들을 오른쪽 완전한 인간보다 덜 진화한 인간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인간종인 호모사피엔스가 처음 살고 있던 시절 지구상에는 여러 종의 다른 인류가 살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네안데르탈인인데 실제 신체적 조건이나 뇌의 용량같은 면에서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뛰어난 인종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들이 야만적이어서 뒤떨어져서 멸종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만 다음의 의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결국 저 그림이 보여주는 시각적 착각에서 일단 먼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현재의 인간종인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을까?

이 질문은 사실 이 책에서 처음 하고 있는 질문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 이를 집요하게 파고 든 것으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있다. 

이 책에서는 협동의 능력을 중심으로 이론을 펼쳤었다.

어떤 책에서는 바느질 도구인 바늘의 존재가 호모사피엔스를 기후변화속에서도 영역을 확장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도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생물학계의 대답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은 도대체 왜 많은 학자들이 이 질문에 이렇게 집착하는가이다.

인간의 기억에도 없는 먼 시대의 호모사피엔스의 생존조건과 이유가 지금의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에 대한 대답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중요성에 대한 대답까지 보여주는 유의미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가설은 "자기 가축화 가설"이다. 

생물학자답게 이들의 질문은 왜 수많은 야생 늑대들 중에서 개만이 우리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어떤 늑대는 인간과 절대 함께 살 수 없는데 왜 어떤 늑대무리들은 인간 옆에서 개로 진화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런 가축화에 대해서 별 생각없이 그저 인간이 길들였겠거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이를 위해 시베리아까지 가서 여우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똑같은 조건의 새끼여우들 중에서도 친화력이 좋은 여우와 그렇지 않은 여우가 나뉜다.

친화력이 좋은 여우들은 인간의 손짓에 응하는 능력을 보인다. 

우리가 개와 놀 때 대부분의 개는 공을 던지고 사람이 손짓으로 가리키면 그 방향으로 달려갈 줄 안다. 

눈이 있으면 당연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침팬지는 인간의 손짓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훨씬 친화적이고 인간을 많이 닮았다고 하는 보노보는 개와 마찬가지로 손짓언어를 이해한다고 한다.

이 러시아에서의 여우실험이 보여주는 결론은 인간이 늑대를 길들여 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늑대들 중에 유독 친화력이 높은 녀석들이 인간에게 스스로 다가온 것이란 것이다. 

그 결과 개가 된 이 친화력 있는 늑대무리들은 전 세계의 늑대종들이 거의 멸종되고 있는 지금 종의 번성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을 '자기 가축화가설'이라고 이름붙였는데, 이들의 논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렇다면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것 역시도 이런 친화력, '자기가축화'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얘기한다.

생후 8-9개월만 되어도 인간 아기는 걷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성인 침팬지가 절대 이해 못하는 손짓언어를 이해하며 다른 사람의 기분을 느끼는 경이로운 능력을 보여준다.

호모사피엔스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이 바로 친화력이며 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환대와 친화력으로 이어지고 고도의 협력체계로 이어진다.

이런 논지는 유발 하라리가 말한바와도 비슷한데, 이를 생물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차이일뿐이다.


저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기 무리에 대한 또는 무리에 속하게 된 이들 사이의 친화력은 맹점을 가지는데 그것은 다르다고 인식된 이들 또는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반대 대응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인류가 무수히 많은 전쟁을 벌이며 같은 인간을 죽이는 역사를 펼쳐온 이유이기도 할 텐데 사실상 이 부분의 논지에 대해서는 생물학으로만 설명하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아 다른 차원의 논의가 더 필요하리라 느껴진다.

다만 이 책에서는 굉장히 인상적인 해석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것은 나치시절 유대인을 도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대인을 숨겨주고 그들의 탈출을 도왔던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고 한다.

성별도 연령도 계층도 심지어 정치적 성향도 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보이는 유일한 공통점은 그들 대다수가 친한 가족 중 유대인이 있었거나 가장 친한 친구가 유대인이었거나 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저자들은 의미심장한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친화력에 있었듯이 지금의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도 역시 이 친화력을 이끌어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인종분리정책이나, 인종차별적인 정책이 계속된다면 네안테르탈인들이 멸종했듯이 호모사피엔스인 우리 인간들 역시도 멸종할지도 모른다.


제목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존 조건으로서의 친화력을 말하는 것이다.

생물학의 논의가 사회학이나 역사학으로 넘어가는 순간 전적으로 납득하기에는 비약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인간사회에 대해서 생물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특성과 존재조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쨌든 다정함과 친화력이 지구를 멸망시킬리는 없을테니, 이런 논지를 통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유의미한 접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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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1-11 06: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이렇게 물흐르듯 일목요연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
모여서 소통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고 보여져요. 생존조건으로까지 지칭되는 것이 어쩌면 옳을지도 모르겠다고, 리뷰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네요.

바람돌이 2022-01-13 23:36   좋아요 1 | URL
에고 hnine님 무슨 말씀을.... 만약 실제로 이 책을 읽으시면 제 리뷰가 얼마나 구멍뻥뻥인지 잘 아시게 될거예요. ㅠ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 희망을 가졌달까? 우리 인간에 내재하는 친화력이 우리 생존의 힘이었다는데서 우리 인간의 암담한 미래가 구원을 찾을 수 있지도 않을까싶은 그런 기분요. 여기 알라딘 서재만 하더라도 다정한분들이 너무 많잖아요. ^^

mini74 2022-01-11 07: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호 친화력이 생존의 비결이군요. 우리집 저 까칠한 강아지는 어떻게 살아남은걸까요. 내용이 쏙쏙 들어와요 바람돌이님 ~~잘 읽었습니다 *^^*

바람돌이 2022-01-13 23:38   좋아요 1 | URL
까칠하지만 미니님옆에 있잖아요. 그게 다정한거 아닐까요?? 우리집은 심지어 사람 둘(딸래미들)조차 까칠합니다. ㅎㅎ

새파랑 2022-01-11 08: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이유가 아주 오래전부터 증명되었군요~!! 욱(?) 안하는 다정한 바람돌이님을 응원합니다 ^^

바람돌이 2022-01-13 23:40   좋아요 2 | URL
이런 이론들이 진짜 사실인지는 과학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알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그렇게 믿고싶었습니다. ㅎㅎ 네 올해는 새파랑님 말씀처럼 욱 안하는 바람돌이로 거듭거듭 새로워지려고요. 꼭요. ㅎㅎ

희선 2022-01-12 0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친하게 지내고 다정하다가도 자기 편이 아니다 여기면 아주 돌아서기도 하는군요 그런 건 없어야 할 텐데... 자신과 다르다 해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1-13 23:43   좋아요 2 | URL
어떤 사람과 손절하게 되는데는 뭔가 경계선이 있는듯해요. 단순히 내편이 아니다라기보다는 침범하면 안되는 어떤 선요. 그 선을 넘기 전에는 뭐 뼈아픈 소리도 아니면 다른 생각도 다 그런대로 넘길수 있는데 말이죠. 다만 그 경계선이 사람마다 다르다는게 또 인간관계의 어려움이겠죠. 어쨌든 저는 그렇더라구요. ㅎㅎ
 




"아! 성불이 코앞인데 마지막 한 수가......  이런 우라질!!!"

"모든 미혹에서 벗어난다는게 그렇게 쉽게 얻어질리가 없죠. 머리를 너무 쓰서 그런거니 우리 잠시 티타임을 가지면서 머리를 좀 식힐까요?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아 전 커피 마시면 잠이 안와서.... 녹차로 부탁합니다"

"녹차는 티백밖에 없는데...."

"아 티백은 폼 안나는데....쩝   뭐 어쩔 수 없죠. 하 눈도 오고 분위기는 쥑입니다그려"

"이런 날 성불하면 하 죽이겠는데......"

"세상이 하 어지럽고, 헛소리들도 너무 많으니 성불이 그리 쉽겠습니까? 차나 드시지요"

옆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낭만과객 바람돌이가 이들의 대화를 듣다가 차값을 대신 내주고 나갔다더라.....  ㅎㅎ 


말도 안되는 저 대화는 그냥 제가 아무렇게나 쓴거고요.

문화재청에서 만드는 문화재사랑이라는 월간지가 있습니다. 

보통은 그 달의 문화재 사진이 표지에 들어가는데 이번 표지가 이 그림이더라구요. 

보는 순간 우와 이번 표지 진짜 너무 멋지다 하면서 사진으로 찍어봤어요. ^^


그림을 그린 분은 지성광이라는 작가분이라는데 처음 듣는 분, 주로 게임과 에니메이션쪽에서 활동하신단다.

이분 에니메이션 나오면 찾아보고싶어...

알라딘 검색을 해보니 그림책도 1권 그리셨다.<채소들의 목욕탕>










저 그림의 왼쪽에 있는 분은 다 알고 계시듯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국보

오른쪽 스님상이 처음 보는 분이 많을텐데 합천 해인사에 있는 건칠희랑대사좌상이다. 

이름에 있는 건칠이란 조각에 옻칠을 한 것을 가리키는거고, 희랑대사는 이분의 이름이다.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 역시 국보다.

이 그림에서 눈에 잘 안띄는지만 절묘한 한 수가 바로 벽에 붙어있는 액자다.

<성불도 놀이>라고 하는데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무아미타불 한글자씩 써져 있는 주사위를 이용해서 말을 움직여 윗쪼겡 있는 <대각성불>에 먼저 이르는 사람이 이기는 보드게임이다. 

무려 미륵보살께서 지금 먼저 성불하려고 마지막 한 수를 고민하고 계시다니..... ㅎㅎ


아 혹시 <문화재 사랑>이란 잡지에 관심있으신 분은 아래 링크로 가서 구독신청하면 된다.

공짜다.

그리고 글도 괜찮고 사진이 워낙 좋아서 나는 좋아하는 잡지다.


문화재사랑 - 문화재청 (cha.go.kr)


혹시 문화재사랑 구독하고 싶은데 링크가 연결안되는 분들을 위해 찾아가는 순서 덧붙입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 새소식 바로가기 - 문화재청 소식지 - 문화재사랑 - 구독신청 하시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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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08 00: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그림 보고 쓰신 글 재미있네요 저런 대단한 분도 미혹에 빠지다니... 나중에 성불했겠지요


희선

바람돌이 2022-01-10 09:32   좋아요 3 | URL
그냥 제 멋대로 쓴 잡답인걸요. 미륵보살은 아직도 현세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분이라죠. 그 중생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 구제하는게 가능하지는 않을듯한게 더 깊은 시름을 낳는지도요. ㅎㅎ

청아 2022-01-08 07: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처음에 나오는 대화 너무 재밌어서 두 번 읽었어요!!!
그림이랑 잘 어울려요ㅎ그런데 아무렇게나 쓰신거라니ㅎㅎ
낭만과객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01-10 09:33   좋아요 3 | URL
이런 미미님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은 보냈는데 월요일이 되니 또 급우울해지네요. 그래도 저는 내일 드디어 방학입니다. 자랑질.... ^^;;

새파랑 2022-01-08 08:1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뭔가 열반이 느껴지는 바람돌이님의 희곡 이군요 ^^

바람돌이 2022-01-10 09:34   좋아요 4 | URL
어디가요? 왜요? 저는 안느껴지는데요? ㅎㅎ
음..... 역시 커피값을 내는데서 그렇게 느끼셨을까요? 역시 최대의 호의는 맛난 것을 사는데 있다는걸 아시는거죠? ^^

키라키라 2022-01-08 09: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모든 미혹에서 벗어난 깊은 한 수‘ 란 글을 그림에서 찾고나니 그림이 더 흥미롭네요^^

바람돌이 2022-01-10 09:35   좋아요 4 | URL
이 그림 여러 부분이 의미심장하면서도 따뜻해서 딱 보고 와 너무 맘에 든다. 감성돋는다 하고는, 하나하나 뜯어보니까 더 좋은거 있죠. 그림 하나로 행복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그레이스 2022-01-08 11: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림 재미있네요^^

바람돌이 2022-01-10 09:38   좋아요 3 | URL
그쵸 그쵸... ^^

프레이야 2022-01-08 13: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표지그림! 지성광 작.
문화재 사랑. 이런 잡지가 있군요
바람돌이 님 글도 재미납니다 ㅎㅎ
문화재청 링크는 안 되네요.
다른 루트로 들어가 볼게요. ^^

바람돌이 2022-01-10 09:41   좋아요 4 | URL
어 저는 되는데 왜 안되는걸까요? ㅠ.ㅠ 혹시 찾아가셨나요? 이게 문화재청 들어가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좀 헷갈리더라구요. 혹시 못들어갔다면 아래 순서로 들어심 되어요.
문화재청 홈페이지 - 새소식 바로가기 - 문화재청 소식지 - 문화재사랑 - 구독신청 하시면 되어요.

mini74 2022-01-08 18: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첫번째 그림이 백남준의 TV부처 떠올리게 합니다. ㅎㅎ 넘 재미있네요 ~

바람돌이 2022-01-10 09:42   좋아요 2 | URL
아 저기서 백남준의 tv부처를 떠올리시다니 미니님 내공은 역시 최고십니다. ^^

hnine 2022-01-11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생선을 보고 그냥 못넘어가지요. 문화재사랑 구독신청하고 왔답니다. 문화재청이 여기 대전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요즘 저 반가사유상이 BTS때문에 새로운 구즈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지요.
저 표지의 희랑대사는 외모가 우리 나라보다 중국의 고승을 닮은 것 같아요. 저 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요.
<성불도놀이>더 재미있어보이고.
제가 오늘 얻어가는게 많습니다~ ^^
 

 그는 젊은 시인들의 영원한 테마인 자연을 묘사하고있었는데, 초록빛의 섬세한 농도를 정확히 표현하고자 그는 사물그 자체를 관찰했는데(이 점에서는 그는 누구보다도 대담했다),
그것은 마침 창 밑에서 자라고 있던 월계수 덤불이었다. 보고 나서는 물론 더 이상 그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자연 속의 녹색과 문학 속의 녹색은 별개의 것이다. 자연과 문학은 선천적으로 상극인 것 같다. 둘을 함께 있게 하면 그들은 서로를 찢어발겨 놓는다.
- P17

올랜도가 지금 본 초록색의 명암은 그의 시의 운과 박자를 망쳐놓았다. 게다가 자연은 나름대로의 책략을 가지고 있다. 일단 창밖 꽃들 사이에 있는 벌들, 하품하는 개, 지는 해를 바라보게 되면, 또 "몇 번이나 더 저 노을을 보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이 생각은 너무도 잘 알려진 것이라 여기 적을 가치도 없지만)우리는 펜을 내려놓고, 외투를 들고, 방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다가, 페인트칠을 한 서랍 상자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일 따위가생긴다. 왜냐하면 올랜도는 약간 굼뜬 편이었으니까.
- P18

여자였다. 올랜도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몸이 떨렸다. 몸이 뜨거워지더니, 오한이 왔다. 여름 대기 중으로 뛰어나가고 싶었다. 도토리를 밟아 으깨고 싶었고, 자작나무와 참나무를 끌어안고 싶었다.  - P36

말에서 뛰어내리자, 격노한 올랜도는 마치 홍수를 밀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무릎까지 물이 차는 곳까지 들어가서, 그는 지금까지 세상의 여자에게 퍼부었던 있는 욕이란욕은 모조리 이 배신한 여인에게 퍼부었다. 그는 그녀를 배신자,
변덕쟁이, 바람둥이, 악마, 간음녀, 사기꾼, 등등으로 불러댔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그가 하는 말을 집어삼키고, 그의 발치에 부서진 옹기 하나와 지푸라기 하나를 던져 놓았다.
- P59

저런 훌륭한 신사에게 책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책은 그가 아니고 반신불수 환자나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읽게 하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 P68

일단 독서병에 걸리면, 몸의 기관이 약해져서 쉽사리 다른 재앙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잉크 방 안에 숨어 있고, 깃털 펜 속에서 높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병자는 글을 쓰기 시각한다. 이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의자 하나와 테이블뿐이어서, 잃을 것이 별로 없는 가난뱅이에게도 문제려니와집이 있고, 가축이 있고, 하녀들이 있고, 나귀들과 리넨이 있으면서 글을 쓰는 부자의 경우에는 그 입장은 참으로 딱하다. 이런 물건들을 즐길 수 없다. 그는 온몸에 뜨거운 인두질을 당하고, 해충에게 물리게 된다. 그는 작은 책 하나를 쓰고 유명해지기 위해 전재산을 탕진한다(그만큼 이 해충은 질이 나쁘다). 그러나 페루의금을 모조리 다 쓴다고 해도, 그는 한 줄의 멋진 표현이라는 보석을 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탈진해서 병이 들고, 권총으로 뇌를날려버리거나, 절망 끝에 얼굴을 벽으로 향한다.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이미 죽음의 문을 지나 지옥의 불길에 태워진 뒤니까.
- P69

어머니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을 쓴다는 것, 더군다나 출판한다는 것은 귀족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치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70

그런데 그는 왜 그들보다 앞서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은 사라진 무명의 사람들이 힘들여 이루어 놓은 창조물을 능가하려고 애쓰는 것은 극도로 허망하고 교만하게 보였다. 유성처럼 빛나고,
먼지 하나 남기지 않는 것보다 무명인채로 살고, 뒤에 아치 문 하나 남기거나, 헛간을 하나 남기거나, 복숭아가 영그는 담 하나를남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발아래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는 집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저기 살았던 무명의 영주와 귀부인들은 자손들을 위해, 비가 샐지도 모를 지붕을 위해, 쓰러질지도모를 나무를 위해 뭔가 남겨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부엌에는 늘 나이 든 양치기를 위한 따뜻한 모퉁이가 마련돼 있었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먹을 것이있었다. 그들의 술잔은 그들이 병들어 누워 있을 때도 반들거리게 닦여 있었고, 그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도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 P96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도 좋을 것 같은데, ‘사랑‘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하나는 희고 다른 하나는 까맣다. 사랑‘은 몸도 두 개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는 매끄럽고, 다른 하나는 털투성이다. 또 손도 둘이고, 발도 둘이고, 발톱도 둘이다. 사실 모든 기관이 둘이고, 각각은 정확하게 상대방의 정반대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연결돼 있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이번 경우, 올랜도의사랑이 흰 얼굴을 그에게 향하고, 매끈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전면에 내놓고 그에게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수한 기쁨의향기를 앞세우고 점점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 갑자기(아마 대공부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몸을 돌려 반대방향을 향하더니, 검고 털투성이의 야성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그의 어깨 위에 펄썩 주저앉은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은 ‘사랑의 극락조‘가 아니라 ‘탐욕의 독수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뛰쳐나갔던 것이고, 그래서 하인을 오게 했던 것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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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프가 지적하는 것은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 가 발생하며, 이렇게유인원화의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은 기본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 P218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 종임을 설명해준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펄럭이는 귀나 얼룩이 있는 털 같은 신체적 변화와는 달리 이 부산물은 실로 가공할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위협으로 여겨질 때, 그들을 우리 정신의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는 것이다. 연결감, 공감, 연민이 일어날 수 있던 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현대 사회에서 비인간화 경향은 오히려 가파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편견을 표출하던 덩치 큰 집단들이 보복성 비인간화 행태에 동참하며 순식간에 서로를 인간 이하 취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보복적으로 비인간화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 P226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은 "민주주의가 최악의 정부 형태"
임을 인정하면서 "나머지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하면" 이라는단서를 붙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어두운 본성은 잠재우고 선한 본성을 발휘할수 있음을 견실하게 증명해온 유일한 정부 형태가 민주주의다.
1776년 토머스 페인이 썼듯이, "그리하여 이 정부가 탄생했으니, 세계를 통치할 도덕적 능력의 부재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 형태를 채택해야 했던 것이다.14 지금까지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준 것이 이 체제였다.
- P244

사회지배 성향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공통적 특성은 자신들의 집단 동질성에 위협으로 느껴지는 외부자들에 대해서 극도의 불관용을 보인다.
는 점이다.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외부자들에게 위협을 느꼈으며,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주는 하나됨과 균질성" 을 보이지 않는 외부자들에게 위협을 느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규범적 질서에 대한 위협이며, 이는 다양성과 자유로 이루어져 있었다.
- P247

가치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이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대상은 이미 관용을 실천하는 사람들인 듯하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문화 감수성 훈련이 본래자리잡고 있던 불관용 이데올로기를 오히려 더 공고하게 만들수도 있다.
- P251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 Hermann Göring)른베르크 감옥에서 말했듯이, "지도자는 언제든 국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아주 쉬운 일이다. 그저 우리가 공격받고 있으며 평화주의자들에게는 당신들이 나라를 위험에 노출시키고있다고 말한 뒤,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면 된다. 어떤 국가에서는 원리는 동일하다.  - P255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학자들은 집단 간 갈등을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접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갈등을 완화하는 최상의 방법은 서로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게하는 것이었다. 불안이 낮은 상황에서 여러 집단이 함께할 수있다면 학자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이야말로 집단 간 갈등을 감소시키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위협받는다는 느낌이 우리 뇌에서 마음이론 신경망의 활동을 꺼버린다면, 위협 없는 접촉은 이 스위치를 다시 켤 수 있을것으로 보였다.
- P260

체노웨스는 시위, 보이콧, 파업 등 평화적 운동이 환경 개선이나 성 인권 보호, 노동 개혁 같은 "연성적 권리"에는 통할지 모르겠으나 "독재자를 타도하거나 새국가 체제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효과를 볼 수 없을 것" 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체노웨스는 1900년 이래로 정권 교체라는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벌어졌던 전 세계의 주요 폭력 및 평화 시위 관련 자료를 모두 수집했다. 놀랍게도, 평화 시위의 성공률이 2배 더 높으며, 폭력적 국가 체제가붕괴될 가능성은 4배가 더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 P273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증오에 대해 명쾌한 예측을 제시한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외집단을 비인간화할 때, 즉 외집단구성원을 인간 이하의 무언가로 말하는 것이 이를 듣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폭력 행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또한 사람을 동물이나 기계에 비유하거나, ‘쓰레기‘ 기생충 ‘체액‘ ‘오물 등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형태의 증오언설이라고 본다.
- P277

서식지는 바뀌었지만 우리 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큰 규모의 집단 안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종이다. 우리는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고류할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건축물이 관용을 베풀 때 그 안의 개인들도 관용을 베풀수 있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 P284

우리가 사람과 동물 모두를 외부자로 여길 수도 있는 사람들과의 차이를 메울 방법을 찾는다면, 개와의 우정이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픔을 느낄 능력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개에게서 사랑을 받아본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랑만 못하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 P299

오레오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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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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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린? 미쉐린? 미슐랭????

표지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하여튼 음식 만화인줄 알았다.

1화 캘리포니아 롤의 시작을 봐도 딱 그렇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그대로 패러디한 전개다. 시작부터 아 뭐야 이렇게 노골적으로 <미스터 초밥왕>을 따라한거라면 이 만화는 영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기다린다. 

온갖 디테일을 가리키며 음식의 때깔을 칭찬하던 아저씨는 바로 캘리포니아 롤 모형을 주문한 업체 사장님이었던 것.

그러니까 사장님은 그냥 자기가 파는 음식을 모형을 보면서도 감탄하고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옆에서 우리의 주인공 이세린은 그냥 우물쭈물... 아 뭐지? 그냥 보내준대로 만든건데 도대체 모형을 칭찬하는거야? 자기 가게 음식을 자화자찬하고 있는거야 하면서 궁지렁 궁지렁 난감해하는 중일뿐이다. 

그 궁지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낄낄거리게 된건 솔직히 말해서 저런 비슷한 일이 있을 때 내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다.

그러므로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가 확 올라갔다.


이 만화의 시점은 전형적인 1인칭 시점인데 그게 좀 묘하다.

1인칭이라고 해도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이 책은 자꾸 작가와 주인공 이세린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이 만화를 그린 작가는 만화가이고, 음식모형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1인칭의 시점과 더불어 이 책이 소재의 면에서 음식모형제작을 선택하고 그것을 제작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만화의 초반에나 좀 신기했지 뒤로 갈수록 이 모형의 제작 과정 얘기는 살짝 지루해지기까지 하는데, 그럼에도 이 모형제작과정에 대한 얘기로 말미암아 독자는 이 책의 주인공 이세린에 대해 만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실존인물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원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경우가 많다.

그것은 읽는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기가 좀 더 수월해지기 때문인듯한데, 이 만화가 취하고 있는 구성이 노리는게 바로 그런점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만화가 정말로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음식모형제작 사이 사이에 양념처럼 배치된 이세린의 어린시절, 가족, 독신직업인으로 사는 현재의 삶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면에서는 <82년생 김지영>에 대비되는  <92년생 이세린>의 삶을 얘기한게 아닐까 싶은거다.(대충 이세린의 삶의 궤적을 살펴봤을 때 90년대생쯤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그리고 문학적 성취로는 이세린 가이드가 훨씬 낫다. 내 생각에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이라기보다는 무슨 르포같았으니까 말이다)

3남매 중의 막내 고명딸로 귀여움을 받고 살았지만, 이세린 그녀의 역할은 바로 그 귀여움에 갇힌다.

그들의 부모 세대는 기존의 남존여비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여자의 행복은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데 있다는 생각을 가진 세대이면서 부계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문화의 틀에 묶여있는 세대다. 

하지만 학교나 사회에서 다른 문화와 다른 교육을 받고 자라난 이 세대는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인간으로서의 독립성을 우선하는 첫 세대고, 그 간극에 대해 고민하고 저항하는 그럼으로서 빠져나오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세린의 엄마의 꿈 중 이세린이 가장 잘 되는 것은 영부인이 되는 것이고, 이웃집 엄마 친구는 덜떨어진 자기 아들과 이세린을 엮어주려하고, 친척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가족을 비하하는 말을 내뱉는다.




3화 비빔밥편에 나오는 이런 친척모임의 한 장면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불괘하면서도 집안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짜 웃음을 짓는 명절 분위기 딱이다. 

물론 저기에 술이 한잔 걸쳐지면 제대로 대화하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는 너네 집은 뭐 별거 있냐? 돈 좀 있으면 다냐 뭐 이르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할 테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이세린은 여성이라면 또 피해갈 수 없는 외모타령에 시달린다.

이 외모 타령이 흔히 못생기거나 뚱뚱한 사람에게 가해질거라는것도 편견이다.

내 시댁 사촌 시누 중 한명은 키가 굉장히 크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서 살이 찌진 않았지만 원래 타고난 골격이 큰 편이라 아주 늘씬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진짜 부러운 키에 부러운 외모였다.

그런데 시댁의 행사 때 가족들이 모였다가 이 시누만 보면(당시 고등학생) "넌 또 컸냐? 지난 번 보다 더 크네, 아고 키 커서 좋겠다. 야 모델같다" 이런 말을 한 명도 빼지 않고(우리 시집 식구가 굉장히 많다.) 하는거다. 

어느 순간 이 시누 울음이 빵 터졌다. 

자기는 키가 너무 큰데 자꾸 크는게 스트레슨데, 식구들이 칭찬이랍시고 다 한마디씩 걸치니까 결국 터진거다.

이세린 역시 마찬가지다. 이세린의 경우는 너무 살이 안쪄서 당하는 외모 비하다.




남성이 키가 작을 때 사람들은 속으로만 생각하지 앞에서 대놓고 저렇게 떠들지 않는다.

혹시 기죽을까봐, 또는 실례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여성의 외모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한마디씩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무슨 자동 패치라도 장착한건지....

내 식사는 항상 평가당한다라는 이세린의 저 독백이 마음에 콕 와서 박힌다.

물론 내 경우는 이세린과는 반대의 이유로 평가당한거지만.....



그래도 자기 일을 가지고 작업장도 있을 정도로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추고 독립된 삶을 사는 우리 이세린.

이제 무엇을 해도 무서울게 없을 거 같지만 세상은 참 만만치 않다.




혼자 사는 여성, 아니 같이 살더라도 여성 혼자 있을 때 어쩌다 배달을 시키면 누구나가 맞닥뜨릴 저 상황은 너무 실감이 나고 너무 공감이 가서 오히려 짜증이 났다.

내 경우도 딸이 온라인 수업으로 혼자 있을 때 점심을 배달음식으로 먹게 되면 배달 왔다 갔을 시간에 꼭 전화해서 딸이 무사한지를 확인하게 된다.

배달하시는 남자분들은 무슨 세상 남자들이 다 범죄자냐고,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거냐고 불쾌해 하시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저절로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세린이라는 90년대생 여성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읽으면 이 만화는 더 풍요로운 재미와 공감을 안겨준다.

다만 내가 너무 심각한 얘기만 해서 이 만화가 무지하게 심각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역시 만화니까 유머감각 넘치는 장면들도 꽤있다.

가장 내가 깔깔거렸던 장면



김첨지 이 시발놈아!!! 

아 진짜 욕은 카타르시스다.

올해 욕 안하기로 해놓고 이 장면에서 낄낄거리며 김첨지 이 시발놈아를 따라하는 난 도대체 뭐냐? 

새해 목표 달성은 정말 갈길이 멀구나.....

덧붙이자면 이 장면은 실제로는 꽤 의미심장한 장면인데 왜냐하면 바로 앞페이지에서 여중생들이 먼저 흉내내는게 밥상을 뒤집어 엎으면서 에잇 이놈의 재수없는 집구석이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다른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너네 아빠라고 외치고 친구가 정답 이러면서 웃기다고 데굴 데굴 구르는거다.

그래서 저 시발놈이라는 욕은 김첨지뿐이 아니라 차마 대놓고 말을 못했던 밥상 뒤엎던 모든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생각이 막 든다. 지 기분 나쁘면 지가 차리지도 않은 밥상을 뒤엎고, 치우지도 않던 그 모든 아버지들말이다.


결론 - 이세린 가이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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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키라 2022-01-05 0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만화책에 그것도 귀여운 캐릭터가 욕하는 장면은 첨이네요 ㅋ 욕하는 아이 표정을 상상하니 이밤에 저도 낄낄요 😂

바람돌이 2022-01-05 09:53   좋아요 2 | URL
이세린이 중학생때 경험을 말하는 부분이에요. 여중생에게 저정도 욕은 뭐 욕도 아닌걸요. 그냥 일상어....ㅠ.ㅠ 한편으로 진짜 웃기고 또 한편으로는 의미심장한 부분이었습니다.

새파랑 2022-01-05 07: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페이지 예전에도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다시 봐도 재미있네요 ^^

바람돌이 2022-01-05 09:53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이 장면은 누가 봐도 막 웃을듯요. 재밌었어요. ^^

오거서 2022-01-05 07: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리뷰에도 마지막에 반전이 있군요. 욕해서 나쁜 놈을 물리칠 수 있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요… ^^

바람돌이 2022-01-05 09:55   좋아요 2 | URL
문제는 욕해서 나쁜 놈이 물리쳐지는게 아니라 제가 물치쳐지는 느낌이랄까? 진짜 나쁜놈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계속 욕하고 살아야 하는데, 저의 올해 결심은 주변의 조금 나쁜 사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요. 그 사람들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화내고 하는거 이제 좀 안할려고요. ㅎㅎ

coolcat329 2022-01-05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미있는 부분 정리 잘 해주셔서 저도 아침부터 낄낄 거렸네요.
이 책 저희 아이가 재미있게 읽는거 봤는데 방학이니 다시 빌려 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22-01-05 09:56   좋아요 3 | URL
아이들도 보면 재밌을텐데 저희집 딸은 권해주니까 그림이 내 스타일 아니야 이러고는 팽!!!
그놈의 취향은 얼마나 확고해주시는지 말이죠.
하긴 저도 딸이 좋아하는 만화책 취향 아니라고 안봐주긴 합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01-05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랑 웃음포인트가 비슷하셨네요 ㅋㅋㅋ저도 저 장면만 딱 찍어 놨어요.

바람돌이 2022-01-05 13:34   좋아요 4 | URL
아 저 장면은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는듯하지 않나요? ㅎㅎ 너무 공감가는 욕이라서 그런걸까요? ^^

scott 2022-01-05 1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이세린에서 가장 재밌는 곳만 콕콕 찝어 주셨네요.
저도 82년 작품보다 이 작품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ㅅ^

바람돌이 2022-01-06 09:20   좋아요 3 | URL
오우 스콧님 역시 저랑 같은 생각! 어쨌든 내가 좋다는걸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은 기분!
오늘 아침은 스콧님덕분ㅇ[좋은 기분으로 시작합니다. ^^

mini74 2022-01-05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만화 좋아해요.ㅎㅎ

바람돌이 2022-01-06 09:20   좋아요 2 | URL
은근히 웃기고 심심한듯하면서 재밌더라구요. ^^

stella.K 2022-01-05 1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은 욕을 사랑해요!
사람들이 제가 욕을 하면 찰져서 좋다고 대리만족을 하더라구요.ㅋㅋ
사람들이 왜 욕쟁이 할머니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06 09:22   좋아요 3 | URL
저도 욕을 사랑해요. 욕할 때 찰진것과 쌍스러운것이 진짜 경계가 아슬아슬한데 그걸 또 진짜 찰지게 잘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제 친구 중에도 있는데 말이죠. 스텔라님도 그런 분이셨군요. 아 좋아요. 찰진욕쟁이!!!
저는 그러너 능력이 없어서 그냥 욕 안하는걸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