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장롱, 책상, 세탁기, 식탁, 카펫, 그의 손길이 닿았던 속옷과 식기를 전부 버렸다. 육 년을 산 집이었기에 물건은 계속해서 나왔다. 이사 당일까지 쓰레기봉투 몇 개를더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 P10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할머니는 애써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헤어졌어요. 남편이랑.
"잘했어."
할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 P50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남편이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죽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혼자 슬퍼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부정 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서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그녀는 댓돌에 앉은 채 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픈 엄마를 버렸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땅에 묻어주지 못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 P55

허영실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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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23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밝은 밤》 보시는군요 저도 언젠가 봐야 할 텐데... 두번째 글은 자주 본 거네요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저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12-23 09:04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이 그렇게 좋다는 책을 이제야 봅니다. 생각보다 재밌네요. 문장도 좋고, 스토리도 흥미롭네요.
말씀하신 문장 보면서는 아 진짜 이렇게 따뜻한 햇볕에 마음을 말릴 수 있다면 진짜 좋겠다 싶더라구요.그냥 그 광경이 막 떠오르는거 있죠. ^^
 

사실 한국 정치의 기본구도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경쟁도, 우파와 좌파의 대결도 아니다. 그것은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마치 지금의 질서가 공정한 경쟁의 결과인 양 보이기 위해 꾸며낸 거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의 본질은 여야로 불리는 두 기득권 세력이 결탁하여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과두정치다. 따라서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 P215

보도 조작은 단면적이고 주기적임에 반해, 우민화는 전면적이고 일상적이며, 왜곡 보도는 목적의식적으로 이루어짐에 반해,
우민화는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 P228

방송의 민주화를 쟁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의 우민화를저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정권의 방송 장악은 공정한 보도를망치지만, 방송의 총체적 오락화는 대중의 의식을 잠재운다. 우리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오락물의 부드러운 유혹에 굴복하여 날마다 탈정치화된다. 그리하여 사회적 비참은 도처에서창궐하는데도, 사회변혁을 위한 물적·제도적 조건은 이미 갖춰졌음에도, 사회변혁의 실천은 부재한 부조리한 현실이 지속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분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 P228

한국 사회에서 정권이 교체되어도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구도의 문제다. 냉전 체제와 수구-보수 과두 지배에 의해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구도가 문제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좋은 보수‘로서 오른쪽으로는 수구의 생존 공간을 좁히고, 왼쪽으로는 진보의 활동공간을 열어주어, 평화 시대에 걸맞은 정의로운 정치 구도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책무이며, 선거법 개정은 그 실천의 첫걸음이다.
- P238

두 거대정당은 차이가 거의 없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극적인 대립을 과장한다. 이들의 극한 대립은 한 편의 연극이다. 보라, 이들은 거칠고 과격한 모습으로 조국 전쟁을 벌이지만, 정작 중요한싸움은 하지 않는다. 재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를 기업 살인‘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어떻게 잡을것인가, 어떻게 정의로운 과세를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을 이 살인적인 경쟁에서 해방할 것인가, 어떻게 이 학벌계급사회를 혁파할 것인가. 모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을 두고 이들은 결코 싸우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에 두 정파 모두 만족하기 때문이다. - P244

우리가 독일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독일은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데 방향타 구실을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심각한 위기는 독일모델‘의 수용을 통해 상당 부분 극복될 수 있다. 예컨대 독일식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과도한 사표로 인해 왜곡돼 온 우리의 대의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고, 독일식 노동자 경영 참여와 공동결정제는 우리의 비민주적기업 문화를 혁파하고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는 사회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으며, 다양한 독일식 사회복지 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제도적 장치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 P275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그것이다. 일본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동북아 지역 갈등의 역사적 기원을 이루고, 남북 대치로 인한 한반도의 분단 현실이 동북아를 지리적으로 갈라놓고 있으며, 미래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주변국들의 불안이 동북아에 내적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이 안고 있는 바로 이 세 가지 문제, 곧 과거 청산, 분단,
패권주의의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낸 지구상 유일한 나라가 바로독일이다. 독일은 나치 과거를 모범적으로 청산했고, 국가적 분단을 평화적으로 극복했으며, 세계대전을 일으킨 ‘패권국가 독일에대한 주변국들의 불안을 성공적으로 불식함으로써 유럽연합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바로 이 점에서 독일 현대사는 동북아평화공동체 구축을 위한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 P276

통일 논의는 장기적 관점에서 서서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한반도에서 70년간 지속되어 온 냉전 체제를 걷어내는 일은 가능한 한 신속히, 전면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 P306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안티라이프 (anti-life) 체제라는 데 주목한다. 즉, 라이피즘이란 자본주의가 개인적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을 파괴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존(life)을 파괴하며, 생태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파괴하는 체제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인간을 소외하고 사회를와해시키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일련의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뜻한다.
-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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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 정치의 기본구도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경쟁도, 우파와 좌파의 대결도 아니다. 그것은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마치 지금의 질서가 공정한 경쟁의 결과인 양 보이기 위해 꾸며낸 거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의 본질은 여야로 불리는 두 기득권 세력이 결탁하여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과두정치다. 따라서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 P215

보도 조작은 단면적이고 주기적임에 반해, 우민화는 전면적이고 일상적이며, 왜곡 보도는 목적의식적으로 이루어짐에 반해,
우민화는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 P228

방송의 민주화를 쟁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의 우민화를저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정권의 방송 장악은 공정한 보도를망치지만, 방송의 총체적 오락화는 대중의 의식을 잠재운다. 우리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오락물의 부드러운 유혹에 굴복하여 날마다 탈정치화된다. 그리하여 사회적 비참은 도처에서창궐하는데도, 사회변혁을 위한 물적·제도적 조건은 이미 갖춰졌음에도, 사회변혁의 실천은 부재한 부조리한 현실이 지속되는 것.
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분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 P228

한국 사회에서 정권이 교체되어도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구도의 문제다. 냉전 체제와 수구-보수 과두 지배에 의해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구도가 문제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좋은 보수로서 오른쪽으로는 수구의 생존 공간을 좁히고, 왼쪽으로는 진보의 활동공간을 열어주어, 평화 시대에 걸맞은 정의로운 정치 구도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책무이며, 선거법 개정은 그 실천의 첫걸음이다.
- P238

두 거대정당은 차이가 거의 없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극적인 대립을 과장한다. 이들의 극한 대립은 한 편의 연극이다. 보라. 이들은 거칠고 과격한 모습으로 조국 전쟁‘을 벌이지만, 정작 중요한싸움은 하지 않는다. 재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를 기업 살인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어떻게 잡을것인가, 어떻게 정의로운 과세를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을 이 살인적인 경쟁에서 해방할 것인가, 어떻게 이 학벌게급사회를 혁파할 것인가. 모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을 두고 이들은 결코 싸우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에 두 정파 모두 만족하기 때문이다. - P244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안티라이프 (anti-life) 체제라는 데 주목한다. 즉, 라이피즘이란 자본주의가 개인적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을 파괴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존(life)을 파괴하며, 생태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파괴하는 체제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인간을 소외하고 사회를와해시키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일련의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뜻한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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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 거리의 작품은 거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생각이다. 그래피티 작품이 있어야 할 곳은 거리다. 간단하다. 거창하게
‘거리 예술품의 민주주의‘라든가 ‘분배의 정의‘ 같은 것을 논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는 이 순간에도 그래피티 작가들은 기찻길과배수관을 오고가는 위험을 감수하며 작품을 창조해낸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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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내가 하던 생각이기에, 길지 않게 한마디만 하겠다.
무엇보다 그래피티는 싸구려 예술이 아니다. 비록 한밤중에몰래 작업을 해야 하고, 엄마한테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래피티는 가장 정직한 예술 중에 하나다.
그래피티는 누굴 선동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걸 전시하기 위해선 그저 통네에서 가장 좋은 벽만 있으면 충분하다. 작품을 보기 위해 어느 누구도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는 건 물론이고,
벽은 당신의 작품을 발표할 최고의 장소로서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왔다.
공무원들은 그래피티가 쓸모없는 생각만을 내뱉으며, 도시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래피티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사회를 부정하는 상징이라고 말하지만, 그래피티는 단지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위험할 뿐이다. 정치인과 광고쟁이 그리고 그래피티 작가들.
사실 우리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들은 바로 기업의광고들이다. 그것은 건물과 버스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자신들의 거대한 슬로건을 휘갈겨 써 놓고는, 마치 우리가 자신들의 물건을 구입하지 않으면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우리의 얼굴에다 대고 쉴 새 없이떠들어 대지만 정작 우리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어쨌건, 그들이 이 싸움을 시작했고, 벽은 그들을 상대할 최선의 무기가 되어 주었다.
누군가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되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더 좋아 보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의 테러리스트(vandals)‘가 된다.
- P10

다른 대중 예술과 달리, 미술계에서의 성공은 관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은 매일같이 콘서트홀과 극장을 가득 메우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음반을 구입한다. 이처럼 우리는 대중 예술 전반에 걸쳐 그것을 생산하고 퀄리티를 유지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미술은 그러지가 않다.
우리가 보는 미술 작품은, 단지 소수의 선택되어진 화가들의 작품일 뿐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전시를 기획, 홍보하고 작품을 구입하여 전시하면서미술 작품의 성공은 결정된다. 세상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몇백명도 안되다. 갤러리에 간 당신은 단지 백만장자들의 장식장을 구경하는관람객에 불과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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