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
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 P17

이상하지, 눈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인선이 말했다.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 P55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 P57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헌디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히영하게 묻엉으네... 내가 새벡에 눈을 뜨자마자 이 애기가 죽었구나, 생각을 했주, 허이고, 나는 너가 죽은 줄만 알아그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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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03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눈
맞아요
한참 눈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정말 음 뭐라고 할까
조곤 조곤 꼭꼭 다지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바람돌이 2021-10-04 15:31   좋아요 1 | URL
끊임없이 눈에 대해서 얘기하죠? 눈이 주인공인줄 알았어요. ㅎㅎ
작가님이 고통을 어찌나 꼭꼭 다지며 썼는지 읽다가 숨막히는 줄 알았어요.
 

빙켈만이 그리스를 질병 없는 낙원으로 그린 데에는 그리스 대리석조각에서 보이는, 티끌 하나 없는 순백색 표면이 좋은 근거가 되었을 겁니다.  - P26

15~16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이 황금비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기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미술까지도 모두 황금비를 따랐다는 억측이 퍼져나가게 된 거죠. 우리나라 미술 교과서에도 황금비에 대한 서술이 사실인 것처럼 지난 수십년간 실려 있다가 최근에야 빠지게 되었습니다.
황금비와 관련된 사람들의 믿음은 아름다움이 특정한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미의 결정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 P47

고대 그리스미술에서 보이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다시 말해 그리스 남성 조각들이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리스미술에 드리워진 신비를 한꺼풀 걷어내면 드러나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사실 그리스 남성 조각상은 크게 보면 전사 아니면 은동선수였습니다. 그리스 사회에서 스포츠가 전사의 신체 단련과 관계된다.
는 점을 고려할 때 운동선수조차도 군국주의적 함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단독 조각상들이 전사자를 위로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스 고전미술의 고유한 목적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간 고전주의자들이 애써 외면하려 했거나 간과했던 점입니다.
- P65

고전미술로 집약되는 절대적인 ‘미‘
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하에 그 세계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것이 르네상스 이후 서양 근대미술의 전통이었습니다. 그것이 18세기부터 한층 더 강화되면서 급기야 ‘벌거벗은 나폴레옹상‘까지 제작된 것입니다.
- P70

이 시기 아테네는민주주의의 실현과 정치적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초상의 제작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인간을 표현하더라도 특정 개인을 결코 연상시켜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관념화, 이상화된 인간 형상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 미술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표현하는데 지향점을 두었지만, 이것이 특정 개인을 이상화하는 것은 극히 경계했습니다. - P90

고대 조각상에 보이는 무표정성은 고전의 얼굴로 자리매김했고,
이에 따라 고전적 아름다움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절제와엄격함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이렇게 고전미를 한정하다보니 감정이 격하게 표현된 예외적인 작품에 대해서도 결코 그 표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라오콘 군상 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18세기에 이 조각상의 주인공인 라오콘의 표정을 놓고 심각한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 P95

이렇듯 17세기에는 유쾌함과 방종의 한편에 참회의 모습이 자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극배우처럼 화려한 옷과 모자를 걸치고 자신의 경제적 번영을 자신 있게 드러낸 그림과 그 옷을 모두내던지고 초라한 행색으로 참회하는 말년을 보여주는 그림의 대리는 르네상스시대와 다른 문명의 깊이를 느끼게 하죠. 특히 박물관에전시된 「돌아온 탕자는 관객의 눈높이가 탕자의 발에 닿게끔 걸려있는데요. 더러운 맨발과 뒤축이 전부 해진 신발을 눈앞에서 마주한관람객은 그 앞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 P131

이 칙령의 다른 대목을 보면 혁명에 성공한 프랑스는 위대한 국가인 반면 봉건 체제에 머물러 있는 이탈리아는 나약한 국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대신 프랑스가 ‘자유의 조국을 수호하면서 미술을 통해 그 위대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국립 박물관‘, 즉 루브르가 있으며 이곳을 인탈한 미술로 채워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P154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누가 고진을 중심으로 세기의 명작을 차지하는가는 곧 누가 유럽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하는가의 문제, 즉 유럽 전역에서 권위를 발휘할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벌인 이같은 약탈극은 고전의 지위를 한층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유라는 혁명의 이름이 약탈의 정당한 근거로 둔갑한 걸 보면 조금 무시무시한 반전이라는 느낌도 들죠.
- P155

이렇듯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의 미술관 중 여러 곳이프랑스혁명과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 시대에 세워지거나 크게 확대됩니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의도는 결코 선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럽 각지에 박물관과 미술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참담한 정복 전쟁 속에서 벌어진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에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 P164

영국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같은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은 세계의주인공이 귀족과 소수 엘리트 집단에서 시민사회로 교체되는 것을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명칭을 그대로풀면 ‘국민의 미술관‘이 되는데, 소수 지배층과 대다수 국민 사이의오래된 투쟁의 추가 국민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증거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P184

이런 점에서 저는 미래의 박물관이 ‘인간성‘을 더욱 추구하리라예상해봅니다. 패권주의는 제국주의든, 그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든, 인간은 결국 그 공간에서 인간의 창조물을 감상하고 즐거움을 느끼며 새로운 감싱을 발견해왔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는 형식은 인간성을 따른다‘Fern FollowsHumanity 라는 말로 박물관의 미래적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 P206

흑사병은 서양미술의 흐름을 크게 뒤바꿔놓은, 미술의 역사에서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흑사병은 미술의 양식이나도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무엇보다도 미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체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 P226

화면 속에 그림을 주문한 사람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들어가는 예가 이제부터 더많아지거든요. ‘그림을 통한 개인의 기억‘ 또는 이미지를 통한개인적 구원‘이라는 세속적 열망은 흑사병이라는 대혼돈 속에서 서양미술의 중요한 표현방식으로 안착하게 됩니다.
- P231

즉 흑사병 시대에 들어서면 중소 상인이나 노동자, 농부, 가난한과부도 미술을 통해 사후 자신의 추모를 기획하게 된 것이조,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소품을 구매했고, 따라서 이 시기 작품의평균적인 가격은 이전보다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처럼 흑사병 시기에 미술의 수요층이 확대된 것은 개인 추모에 대한 열망의 결과였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흑사병은 미술의 대중화에 상당부분 공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234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완벽함과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과 그것에 대한 도전으로부터옵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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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0-04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찜 해 두었는데. 어떤가요?! 추천하십니까?

바람돌이 2021-10-04 20:57   좋아요 0 | URL
음.... 뭐라 말할지 좀... 관점도 괜찮고요. 책도 쉽게 읽혀요.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으신분들한텐 좀 심심한 느낌일듯하고요. 특별한 임팩트가 없달까?
미술관련 서적을 별로 안 읽으신 분이라면 강력 추천하겠으나 유부만두님이라면 딱히..... ^^
 

처음에 사라 베르나르는단지 취재의 대상이었지만, 곧 자신이 미디어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를 파악한 그녀는 무대에서 사생활의 일부분을 살짝 노출시키면서 새로 발표하는 작품의 홍보에 적극 이용했다.
미디어 시대에 PR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꿰뚫고 있었던것이다. 자신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팔았고, 캘린더, 연극 포스터, 브로마이드용 사진을 팔았다. 더 나아가 상품의 선전에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를 써서 커다란 광고탑이 되기도 하고, 잡지나신문을 장식하기도 한다. - P47

뮈샤와 아르 누보의 가장 위대한 점은, 다른 미술 사조가 그랬던 것처럼 특권층이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포용하려고 노력했VAIRAUG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르 누보의 가장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바로 그 대상에 있다.
이 새로운 예술은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엘리트의 예술이기를 거부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며 모두에게 공감되고 사랑 받는 예술, 그것이 바로 아르 누보의 정신이었다.
- P60

그리고 곧 시작될 전쟁(제1차 세계대전)의 분위기와 맞춰 시대의 새로운 모더니즘은 비효율적인 장식이나 형식을 버리고,
가능하면 심플하고 기능적이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 친화적인 직선미와 기하학적인 취향에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아르 데코Art déco 의 시작이었다. 아르 데코는 가능한 간결하고 소박한 선과 기하학적인 형태, 편안한 중량감을 강조한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그 제품의 본연의 구조에 중점을 두고, 눈에확 드러나는 대비가 가능한 강렬한 색상을 주로 사용했다.
- P63

처음 뮈샤의 그림을 보았을때의 감동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 통속성 때문에 언제나 일상 속에 있는 사물의 취급을 받았다. 대중의 심리란 그런 것이다. 폭발적인 인기가 사그라지고 그 유행이 시들해진 아르 누보의 말기에, 대중들은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스토리텔링이 많은 아르 누보를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랬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던 유미주의(탐미주의) 문학이 지나친 미에의 집착 때문에피로감을 주었던 것처럼, 수많은 장식과 흐르는 곡선이 넘쳐나서 아름다움에 취하게 되는 아르 누보는 어느덧 대중들에게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름 자체가 새로운 예술이었던 아르 누보가 더 이상 새롭게 느끼지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 P63

이러한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간을 물질에 의존하게 하는 소비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욕망이 등장한다. 바로 사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상품에 대한 강력한 소유욕‘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국박람회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행사라고 할 수 있다.  - P139

개인적으로 파리에서 살면서 수차례,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는 이 공화국 정신을 생생하게 목격할 때가 있었다. 공공연한 인종차별주의를 표방하는 국민전선(F.N.)에 대한 반대 시위가 그랬고, 최근의 샤를리 엡도 사건 이 그랬다. 이런 류의 사건이 있을 때 마다 항상 "우리는 모두 이민자의 후손" 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오는 프랑스인들의 공화국 정신이바로 이 벨 에포크 시대에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완성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이 일도 내겐 무척이나 큰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수많은 프랑스인들의 결점과 가끔의 어이없는 부조리들을 참아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 P155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1863~1937)은 교육혁신을 주장하던 프랑스의 교육학자였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유학 시절 스포츠가 청소년의 이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체험한 그는 프로이센과의 전쟁(1870~1871)에 패배한 프랑스의문제는 바로 나약한 신체와 두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전 세계패권전쟁에서 약진하는 미국과 영국의 힘이 바로 스포츠 교육에있음을 깨닫고, 이를 프랑스 교육시스템에 적극 수용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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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9-1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명절 연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명절 연휴가 가면 구월 얼마 남지 않고 가을이 깊어가겠습니다


희선

scott 2021-09-1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P63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나, 땅을 헤집고 다니는 벌레들, 바다와 호수의 조류,
축축한 곳마다 균사를 뻗치는 균류, 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다 뒤덮어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 P82

"세상이 망해가는데, 어른들은 항상 쓸데없는 걸 우리한테 가르치려고 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왜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른들은 굳이 학고 같은 것을 만든 걸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대체로 하품을 하며 수업을 듣는 반면, 칠판 앞에 선 어른들은 늘의욕에 가득차 있었다. 나는 이것이 어른들의 몇 안 되는 즐거움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 P165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의 작은 공백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 풍경을 볼 때면 이곳이 투명한 스노볼 안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득하게 아름다웠고, 당장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 P215

"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 P226

내가 다음을 모두 주었던 이 프림 빌리지는 영원히 지속될 수없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끝이 결코 오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도 여기에 내 마음이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동안 붙잡혀 있으리라는 것을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 P244

지수는 밤새도록 바위에 앉아서, 숲을 가득 채운 푸른 먼지들을 보았다. 아름다움 외에는 아무 기능이 없는, 그러나 결국 제거되지 않은 푸른빛들을,
- P327

 언제나 의심하고, 매일 서로에게 물었어요.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프림을 떠난 이후 우리는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프림에서 하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죠.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시절이 그리웠고, 그것만이 우리를 잠시나마 과거로 되돌려 보내주었으니까요."
- P349

"시간이 흐를수록, 모스바나가 무엇인지가 제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저는 그냥 그곳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프림 빌리지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도, 그런 곳은 오직 프림빌리지뿐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식물들을 심었어요. 오직 그것만이 저를 살아가게 했으니까요."
- P354

생의 어떤 한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하고, 동시에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 P378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 P379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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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아버지가 아부다비에서 일하고 계셨고 그 덕분에 우리가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그곳에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나마 저희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다만 친정 어머니와 형제들을 예멘에남겨두고 떠나야 했기에 제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했었죠. 제가조국을 떠날 때 파괴되어 가던 예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사람들은 폭격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야 했어요. 그때의 감정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친정 가족들은요?"
"친정 가족들은 제가 예멘을 떠나고 반년 뒤에 예멘에서 나와 사우디를 거쳐 말레이시아로 갔어요. 예멘에 있을 때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냈던 때가 그리워요."
- P126

아랍 무슬림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랍인 무함마드는 알라의메신저로서 선택된 신성한 존재이자 무슬림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최고의 인격체라고, 동시에 무지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아랍인을 무지에서 이성의 세계로 안내한, 그래서 결국이슬람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위인이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는 더욱더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는 사람의 우상화를금하기 때문에 무함마드의 성화도 그리지 못하게 한다. 즉, 무슬림에게 있어서 무함마드 풍자는 알라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자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이다. 종교를 떠나 무함마드에 관해 공부하고 알아갈 때 아랍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아랍인들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열쇠‘를 쉴 수 있다.
- P150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에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 바로 내가 낮에 꿈을 꾼 자였다." - P164

사우디 재정 수익의 80퍼센트 이상이 석유 판매 수익이다. 그러나 석유 산업에 관여하는 사우디 노동력은 10퍼센트도 되지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거대화된 국가는각종 공공 부문에서 국민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국민은 그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앉아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데 큰기여를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노동자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현상이 산유국에 사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숨어 있던 게으른 본성을 자극한 건 아닐까? 사우디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아온 한한국계 청년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형, 사우디에서는코앞에 있는 마트도 안 나가요. 전화해서 배달하죠."
- P193

와하비즘과 전통적인 아랍의 관습으로 인해 나타나는 사우디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녀의 엄격한 구분이다. 이는 극도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사우디에서는 남성 후견인 제도 마흐람 Mahram‘ 때문에 여성들은 혼자서 출국하거나 교육받을 수 없었고, 취업이나 결혼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 P202

없었기 때문이죠. 주말에도 집 안에 갇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집 밖에 나가도 특별히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없을뿐더러, 가족의 허락 없이 나갔다가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매를 맞기 일쑤였거든요. 그런 우리에게 탈출구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에요..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같은 우울함을 경험했던 어머니들이 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딸들을 응원하게 되었죠. 리야드에서 열린 BTS 공연 때도 많은 팬이 어머니와 함께 왔었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터넷의 발달과 한류의 바람, 거기다 사우디의문화 개방이 맞물려 생긴 현상이에요. 아, 35년 동안 사우디에서문을 닫았던 극장이 2018년부터 다시 문을 연 건 아시죠? 이제점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상상할 수없던 일들이 지금 사우디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 P209

보다 골이 깊었다. 독립 국가를 꿈꾸었던 쿠르드인은 이를 묵살한 영국에 분노를 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살아가던 수니 - 시아 쿠르드는 멜팅폿 안에서 하나가 되기는커녕 인위적으로 조성된 이라크라는 하나의 정치 체제 안에서 더 큰 파이를차지하기 위해 상호 견제의 긴장감을 한순간도 늦추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강한 중동을 원치 않았던 영국이 오히려 이러한분열을 원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P223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다. 그리고 수십 년간 삭혀 왔던 시아 수니 간의 갈등, 시한폭탄이 폭발해 버렸다. 그동안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 억눌렸던 시아파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았다. 반면 사담 후세인의 죽음과 함께 정치계에서 축출된 수니파 세력이 정치적인 배제에 불만을 품고 과격한 반정부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아가 수니파는 알카에다, IS 등 수니파 테러 세력과 규합해 정부에 대항했다.  - P225

지금도 뉴스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라크의 아픈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영국의 철학자 마이클 오크숏MichaelOakeshott의 말을 빌려 이라크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이라크는 출발점도 없고 예정된 목적지도 없이 ‘수평을 유지하면서 마냥 떠있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끝없는 항해를 하고있다. 이라크 국민은 어딘가에 빨리 정박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 P228

아랍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묘한 민족적 요소들이 있어더욱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담 후세인, 그는 정말 나쁜 놈이었을까? 질문의 답이 궁금해 샤르자대학교 역사학과 나집교수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교수님은 자신도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직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야. 각자의 시각에서 본인의 의견만 있을 뿐이지." - P266

오늘날 아랍에미리트 국민은 과거에 선조들이 겪었던 힘겨운삶과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각 토후국의 통치자들도 국민을 향해 "옛 선조의 고난과 역경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며 부단히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는 선조들을 기억할 만한 유형 문화재가 거의남아 있지 않다. 실제로 에미리트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것은 ‘고난의 삶을 통한 인내와 끈기‘라는 정서적 유산뿐이다.
어떻게 하면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이를 위해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무형의자산을 형상화해 현대 건축물에 반영하는 것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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