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살라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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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십자군 전쟁은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십자군 전쟁은 오로지 서구의 시각에서 바라본 십자군전쟁일 뿐이다. 십자군이 몇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언제 예루살렘을 정복했는지 또 그 전쟁이 서구 중세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열심히 배웠다. 또한 관련 인물로도 로빈훗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사자왕 리처드나 프란시스 드 코플라 감독의 영화에서 본 드라큐라 백작등 모두 서구의 인물이다. 정작 그 전쟁의 다른 한 주인공이던 이슬람 사회는 도대체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이 전쟁이 그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배워본 적이 없다. 전쟁의 두 당사자를 놓고 그 한 면만을 본다는 것 이만하면 우리 사회의 편식이 어느정도인지 새롭게 생각해볼 일이다.

그래서 나의 경우 이슬람에 관한 서적은 어떤 종류든 일단 흥미를 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새롭게 알게되는 그럼으로써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수한 기쁨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일종의 지적 허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술탄 살라딘은 1차 십자군 원정에서 십자군에게 빼앗겼던 예루살렘을 거의 90년만에 되찾은 살라흐 앗 딘(이걸 유럽사람들이 발음이 안돼 살라딘이라 불렀단다)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유대인 서기가 그의 구술을 받아적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이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일단 형식에 있어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어우려진 역사소설의 요건을 잘 갖추었다는 것이 첫번째 느낌이다. 그리고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적 사실과 일치되는 부분과 허구의 부분을 일단 친절하게 설명해줘 이슬람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소설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책은 한 축으로는 살라흐 앗딘이 구술하는 자신의 일대기를 통해 직접적으로 살라흐 앗 딘의 생애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대인 서기 이븐 야쿠브가 만나게되는 술탄 주변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라흐 앗 딘이라는 인물의 내면세계를 파헤친다. 그 결과 만나게 되는 술탄은 굉장히 관대한 군주였으며 신의와 명예를 중시하여 한 번 한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인물로 묘사된다. 전쟁에서는 용맹한 전사라기 보다는 되도록 희생을 줄이고자 하는 현명한 군주로 제시된다. 실제로 그가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후에 기독교도들이 저질렀던 그 참혹한 학살을 되풀이하지 않고 관대한 정책을 썼던걸 보면 실제의 살라흐 앗 딘도 이 책에서 묘사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고통이 세계 전체에 널려있는 오늘날, 관대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보기 힘든 미국의 패권주의, 독도 문제에 핏대올리는 우익들과 감정적으로 같이 폭발하는 우리의 오늘, 역사가 영웅에 의해 이루어진다는걸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지도자를 우리가 다시 가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다른 한 축으로 책은 이븐 야쿠브라는 서기를 통해 중세 이슬람 사회를 엿보게 한다. 우리의 상상과는 약간 다른 하렘의 풍경(물론 이것이 소설이다보니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토록 강력해 보였던 이슬람 사회의 또다른 단면들, 그리고 당시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슬람에 대해 워낙 무지하다보니 단순한 엿보기에 불과할 뿐이라는게 한계이지만 충분히 흥미를 자극할만하다.

이슬람 세계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있게 해준 책, 그리고 살라딘에 대한 역사서를 찾아서 올해안에 읽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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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때문에 세상이 참 시끄럽다. 하기야 대한민국에서 이놈의 학교가 언제 문제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만 요즘의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는 온 사회가 한목소리로 척결(좀 살벌하군?)을 외친다.

드디어는 학교에 경찰을(전직이긴 하지만) 배치하잔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아니면 다 잡아들여서 학교를 건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며칠전 밤에 이 문제로 100분 토론 벌이는걸 보면서 혼자 씨근덕거렸다.

학교폭력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얘기된건 물론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워낙 선정적으로 떠들어 대긴 하지만 뭐 실제로는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고 할 생각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하고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 정작 이문제의 당사자들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사람들은 없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나 학교폭력을 상습적으로 행사하는 아이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대부분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에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가정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있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두가지 중에 하나는 반드시 해당된다. 특히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아이의 경우는 대부분 가정적 안정도 같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마음은 상처투성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할 능력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냥 일반적인 나같은 어른들이 얘기하면 의사소통 자체가 잘 안된다. 흔히 하는 말로 말이 안통한다. 학교에서 매일 그들을 만나는 나조차도 이런데 사회의 다른 어른들은 어떨까? 학교에 경찰이 상주한다면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까?

결국 경찰을 상주시키자는건 깨놓고 말해서 아이들을 협박하자는 거다. 너희들 이제부터는 주먹쓰면 경찰에서 잡아갈테다라는 식의....결국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처하겠다는건데

이세상 어디에서도 폭력이 폭력으로 완전히 제압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적이 없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가 폭력에 의해 치유될리는 만무하다. 결국 이건 안그래도 사랑받지 못해 세상에 적대성을 품게된 아이들을 완전히 사회로부터 내치겠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갈까? 갈곳이나 있을까?

경찰배치를 얘기하기 전에 전문상담교사 배치의 문제를 얘기하고 공론화시키지 않는지....지금 이 폭력적인 대한민국의 사회구조를 바꿀수야 없겠지만 그나마 미봉책이라도 될 수 있는건 학교에 한 명 이상의 전문 상담교사를 배치해주는게 될거다. 대충 60시간 연수받고 수업다하고 업무다하는 그런 상담교사 말고, 수업과 업무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자신의 근무시간을 100% 학생 상담에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교사 말이다. 왕따인 아이에게도 삥을 뜯고 아이들을 때리는 아이들에게도 말문을 열어줄 수 있는 전문 상담교사의 배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왜 없을까

아마도 역시나 돈문제겠지? 상담교사의 배치보다는 전직 경찰을 배치하는게 훨씬 돈이 적게 들테니까.... 하지만 오늘의 학교폭력을 정말 걱정하고 그 아이들을 걱정한다면 우리 학교가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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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박무영.김경미.조혜란 지음 / 돌베개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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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서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궁중암투의 주인공들, 아니면 황진이나 신사임당같은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대부분 남성의 시각에 의해 포장된 -팜므파탈의 이미지 아니면 박제되어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런 이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참 신선했다. 오랫만에 새로운 만남의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신사임당이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신사임당은 더 이상 율곡의 어머니가 아닌 그녀 자신으로서의 신사임당이다. 남편에게 재혼의 필요성이 없으니 재혼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여성, 마음에 들지않는 시집 식구들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신사임당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아도 자신의 삶과 권리를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여성이다.

나는 아내의 도리를 다했으니 당신은 사위로서의 도리를 다하라고 맹렬히 꾸짖을 수 있는 송덕봉, 금강산 관광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난 김금원, 조선시대의 열녀신화에 편승하지 못한 자신을 용감하게 드러내는 풍양조씨의 인간적 기록들.....

모두들 시대의 제약에 어쩔 수 없이 얽매여 있지만 나름대로 그 제약을 뚫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들은 한편으로 눈물겨우며 한편으로 통쾌하다.

욕심이 있다면 이 14명의 여성들의 삶을 14권의 책으로 부활시키고 싶다는 것이지만 아마도 싶지 않을터... 이들의 역사마저도 많은 부분 그 자신의 기록보다는 남자들의 기록에 의지하고 있기에.... 이만한 기록을 찾아내고 복원해내는 것도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 노력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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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크레파스와 요술기차 웅진 세계그림책 3
나카야 미와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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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된 딸래미가 전작인 까만크레파스를 너무 좋아해서 이 책도 나오자 마자 샀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이럴 때 엄마는 뿌듯하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크레파스와 버스 배 기차들이 등장하면서 우리 아이는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면서 본다. 그리고 기차가 다치는 장면에서는 한껏 걱정스런 표정이되어 '어떡해'를 연발한다. 하지만 기차가 찰흙으로 만들어졌다는걸 알고서는 다시 신나하며 매일밤 읽어달랜다. 표지에서 마지막 겉장까지 크레파스 친구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스스로 얘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까지 그리고 없는 색깔의 크레파스 친구들까지 걱정한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전작 까만 크레파스 보다는 못하다. 전작이 나와 다른 친구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는 따듯함이 담겨있었다면 이건 그저 사이좋아진 크레파스 친구들이 여전히 재미나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약 이 책을 산다면 꼭 전작인 까만 크레파스부터 사서 읽히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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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7-21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모든 그림에 까만 크레파스로 덧칠을 해놓진 않나요? 우리 꼬맹이 크레파스통엔 까만색이 꽁지만 남아 있어요.^^
 
금빛 기쁨의 기억 - 한국인의 미의식
강영희 지음 / 일빛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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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품절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사봤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출간된지 오래된 책도 아니고....가끔 다른 서점에서는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알라딘에서는 품절일 때가 있다. 아니 좀 많다. 이유가 뭘까?

표지의 자물쇠가 근사한 책, 책을 펼쳐서 날개부분을 펼치면 '어 이게 뭐야' 저자 소개에 한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한옥의 문을 빼꼼히 나서면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멋있다. 저자 사진으로 어릴 때의 자신의 사진을 내다니...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사진을 낸게 단순히 편집상의 문제는 아니었다는게 밝혀진다. 저자는 자신의 미의식의 원천을 어릴적 한옥이었던 외가에서 형성된것으로 파악한다. 그의 한국적인 미적 심상의 원형말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취향이 어떤 것일까를 탐구하는 주제에 아주 걸맞는 사진이다. 저자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편집자의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성공적이면서 기발한 생각이다.

책의 시작은 백남준을 예로 들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흔하디 흔한 조금은 식상한 논조로 시작된다. 그러나 글의 전개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건 식민지시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의 미 인식을 논박하는 2부이다. 한국미술사에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한국인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한국적 미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거의 그의 손에서 창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의 민족의 이미지, 한과 애상의 미로서의 한국미술의 이미지같은 것 말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러한 야나기의 미술관을 논박한바가 많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은 관념을 완전히 바꿔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야나기는 일제 식민지시대 한국인에 대해 동정적이었던 일본인, 그리고 한국미술의 가치를 부각시켜 주었던 일본인으로 기억되고 있고 더구나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8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보관(寶冠) 문화훈장까지 받은 사람이다. 

저자는 야나기의 한국미에 대한 인식이 철저한 일본인의 미의식에 기준하여 이루어진것임을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었음을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흔히 무의식의 미, 무작위의 미, 무기교의 미로 표현되는 야나기의 한국 예술론의 핵심은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인의 미의식에 덮어씌우면서 그것을 미의식에 미달하는 무의식으로 격하시킨 것이다."(본문 63쪽)

"미의식에도 위계질서가 적용되며, 일본인에게는 윗자리의 미의식이, 한국인에게는 아랫자리의 무의식이라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가 주어진다. ...이같은 미의식의 위계질서는 한국의 미를 '타력의 미'로, 일본의 미를 '자력의 미'로 규정하는 논리를 통해 체계적인 틀거리를 갖춘다. ... 나아가 이들은 위계질서에 의해 서로 다른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은 다음 하나의 체계로 통합된다"(본문 67쪽)

결국 야나기의 미의식은 정치적 식민주의의 문화적 변용에 다름아니었음을 설파하며 그가 일본인의 눈으로 파악한 한국미가 결국 허구임을 맹렬히 논파하고 있다. 문화의식에 있어 식민주의의 잔재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이제야 제대로 청산되는 느낌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저자는 그렇다면 한국인의 미의식이란건 뭘까를 3부에서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밖으로 보이는 형(形)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상(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따라서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추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모든 논의를 출발한다. 그속에서 흔히 말하는 고졸미가 발휘되며 해학과 신명역시 마찬가지로 파악될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의 입증을 위해 저자는 박수근과 한국의 각종 미술품들과 민속, 음식, 한국인의 색감, 현대미술까지를 종횡무진 누비며 논의를 전개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2부에서 보였던 만큼의 훌륭한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는 못한 느낌이다. 이걸 느낌이라고 하는건 딱히 뭐라고 반박할 말은 없지만 뭔가 지나치게 강박적이지 않나 하는 혐의이다. 하나의 준거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맞춰나가려 애쓰는 모습같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2부의 글만으로도 한국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의 품절 두글자도 지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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