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와 단주로 집안이 장기로 삼은 아라고토의 대표작 18개는 가부키18번」이라고 불렸다. 자기가 가장 잘 부르는 노래, 또는 가장 자신 있는 장기 따위를 18번이라고 부르는 버릇은 한국에도 깊이 스며 있는데, 이는 원래 가부키 18번」에서 온 것이다. - P56

에도 문화의 본질을 연희성 혹은 연극성이라고 했다. 에도 문화는 무언가를 후세에남기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이룬 아름다운 구성요소들은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 사라질 뿐이었다고 했다.  - P71

반면, 요시와라를 묘사했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그림인 우키요에에서성매매에 담긴 비정한 성격을 종종 탈각시켰다. 우키요에 화가들은 요시와라와 유녀들의 모습에 동경과 몽상을 담아서는, 요시와라를 우아하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 P73

미인화에서도 미녀들의 얼굴은 비슷비슷하다. 개성보다는 이상적인
‘전형‘을 좇는 시대였던 것이다.
이처럼 얼굴이 비슷비슷했던 것 때문에 다채롭고 현란한 머리 모양과 복색이 더욱 부각되었다. 또, 차갑고 투명하게 양식화된 얼굴이기에 미묘한차이와 변주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얼핏 비슷한 듯해도 실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 P93

우키요에 판화라는 출판물도 여행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우키요에 풍경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 에도 시대의 여행 문화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철도와 자동차가 도입되기 전에도 일본인들은 여행을 많이 다녔다. 서구적인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가 성립되기 전, 봉건 시대에 일본인들처럼 농민과소시민 계급이 여행을 활발히 다닌 예는 달리 없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의사로서 일본에 왔던 독일인 엥겔베르트 켐퍼Engelbert Kampter, 1651~1716 는도시와 도시를 잇는 일본의 도로가 늘 사람들로 붐볐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기록했다. - P136

19세기 초에 이르러 여행은 모든 계층에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에도 사람들의 여행도 활발했지만 에도 자체도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에도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기념품으로 우키요에를 샀고, 출판업자들은 이 여행객들을 위해 가부키 극장과 요시와라의 모습을 담은 낱장 판화를 제작했다. - P142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호쿠사이와 히로시게 등의 풍경 판화, 등장하는 인물과 건축물은 에도시대의 분위기를담고 있지만 공간을 구축하는 방식은 동아시아의 전통회화와 닮지 않았고오히려 서구 회화 속의 원근법적 공간과 훨씬 닮았다. - P147

당시 프랑스의 비평가 에르네스트 셰Ernest Chesneau, 1833~90는 1869년에발표한 글에서 일본 미술의 특성을 ‘비대칭성, 양식화, 풍성한 색채‘라고요약했다.  - P187

특히 우키요에 판화를 본 프랑스의 화가들은 자신들이 그림 그리는 것과관련해 오랫동안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우키요에 판화를 통해 이들은 화면의 중심이 꼭 인물이어야 한다는 관념, 사물 명암 구분을 분명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강박, 그림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사물을그릴 때 그 전체를 화면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 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P188

왜 우키요에 중에서도 육필화가 아니라 판화에만 관심을 두었을까? 육필화에는 없는 두 가지가 판화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렬한 장식성, 그리고 서양 미술의 원근법을 우키요에 화가들이 나름대로 소화하여 구축한 원근법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우키요에 판화의 강렬한 색채는 18세기 이래 서구에서 수입된 안료 덕분이 아니던가? 또 원근법또한 서구에서 수입된 회화나 판화 등을 보고 익힌 것이 아니던가?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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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는 고급 예술이자 값싼 정보매체였다. 또, 우키요에의 형식은시기에 따라 발전하고 쇠퇴하며 어지러울 정도로 모습을 바꿔왔다. 우키요에는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현란하다. 관능적이며 유치하고 저속하면서도탁월하고 로맨틱하다. 거기에 경쾌함과 기괴함까지 갖춘, 회고적이고 비장한 장르이다. 요컨대 우키요에는 팔색조 같다.  - P7

 우키요에는 일본의 도시 문명이낳은 산물이자 에도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형성되고 발전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 P13

에도에서 ‘우키요‘는 구체적인 공간을 가리키기도 했다. 사람을 미혹하는가부키 극장과 유곽이 그것이다. 이 공간들과 절대적으로 결부되었던우키요에는 발생 초기부터 유흥가나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 P15

이렇듯 우키요에는 고급 예술과 상업매체로서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일본이 개항을 하고 서양의 근대 문물이 쏟아져들어오면서 우키요에는 실용적인 역할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 P23

한편,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 말부터 일본 밖으로 대량 유출되었다. 우키요가 일회용 소모품에 가깝게 여겨졌기 때문에 쉽게 나라 밖으로 나갈 수있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일본의 미술품은 유럽의 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를 ‘자포니즘 Japonisme‘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키요에는 자포니즘의 중심이었다. 우키요에의 대담하고 파격적인구도와 강렬한 색채는 유럽, 특히 프랑스의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서인상주의 미술이 성립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 P23

반면 에도의 우키요에 화가들은 대중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우키요에는 철저히 상업적인 체제 속에서 제작 ·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의 감독이나 배우의 위상이 영화 한두편의 흥행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우키요에 화가 역시 신작의 흥행여부에 따라 처지가 달라졌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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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부인과 첩


-함무라비 법전, 중기 아시리아법, 히타이트법, 성서율법에 대한 분석

남자는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으 그의 가족, 하인, 그리고 /또는 노예가 대신 받도록 대체할 수 있는데 이는 왕가가 순장의 방식으로 권력을 표현했던 것처럼 계급위계의 발달에서 이 원리가 서민 및 일반 가구의 가장들에게까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계급사회의 형성기에 일반적으로 남성의 계급 지위는 그의 경제적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여성의 지위는 그녀의 성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를 접할 수 있다. 


히브리의 언약율법에서 남성채무노예는 6년 후 자유로 풀려날 수 있으나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아니다. 그가 가족과 함께 머무는 것을 택한다면 그는 영원히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오늘 날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기막힌 규정인데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가족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생각해봐야 할 거같다. 오늘날에는 가족에 일종의 신성 내지는 절대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이 시기에는 남자와 그의 가족들이 노예가 되면서 가족은 완전히 해체되는 것으로 봐야하는걸까? 그러므로 여성과 어린 자녀들은 새로운 주인의 노예 내지는 첩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새로운 가족체계안으로 포섭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층계급의 가족들은 딸들의 결혼을 가족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동종결혼 또는 상향결혼이 일반화 되었으며, 여성은 아들의 생산에 의해서 확실한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즉 여성들은 자손을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가치가 부여되었으며, 한 남성에 대한 평생에 걸친 종속이 제도화 되었다.

하층계급이 경우 남녀 자녀들은 재산이 되었고, 노예나 하향결혼으로 팔려갔다. 이 경우 그들은 출생가족내의 모든 재산권을 포기하게 하며, 아들의 동종결혼을 위한 경제적 기반마련에 이용되었다. 


남성의 간통에 대해서 무한히 느그러운데 반해, 여성의 경우 간통은 남편의 재산권에 대한 위반으로 받아들여져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부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는 남편의 사적인 관할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인 법정으로 확대되었다. 강간의 경우에도 이를 금하고 있지만 여러 법들에 공통인 것은 모두 피해를 본 측은 남편 혹은 강간당한 여성의 아버지라는 원칙이 들어있다. 여기서 실제 피해자인 여성의 자리는 없다. 그러므로 여성은 강간범과 결혼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덧붙여서 - 저자도 말하듯이 법으로 무언가를 규정짓는다는 것은 실제 사회에서 그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함을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203쪽에 나오는 예 -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은 모두 사형, 딸을 강간한 아버지는 도시에서 추방, 결혼 전 아들의 어린 신부를 강간한 아버지는 벌금형, - 시아버지가 결혼한 아들의 부인을 강간하면 사형

저 예들에서 실제 저런 근친 강간이 인류역사 초기에도 빈번하게 일어났다는것에도 놀라지만 그 저변에 깔려있는 남녀차별적인 인식은 어쩔꺼나..... 더 놀라운건 이런 인식이 지금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다는 것,

법이 하는 일은 허용 가능한 행위에 제한규정을 두고, 우리에게 그 법 아래에 놓여 있는 사회구조에 대한대강의 지침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따라서 주어진 사회의 가치들에 대해 실제보다 더 잘 묘사하고 있다. - P184

 분명히 당시에 남성들은 처벌을 받아야 할 경우 자기 대신 보내는 그런 방식에 가족구성원들―즉, 여성들과 남녀 자녀들을 편입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인, 노예, 그리고 가신들을 왕이나 여왕과 함께 같은 무덤에 묻는 것은 다른 사람을 편입시키는 권력의 오래된 표현 중 하나였다. 그 권력은 처음에는 스스로를 신이나 신의 직접적인 사자로 생각한 통치자들에게만 있었다. 계급위계의 발달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 원리가 서민 및 왕가가 아닌 가구의 가장들에게까지 확대되었음을알고, 지금 살펴보고 있는 이 기간 동안 그런 가장들은 항상 남성들이었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 P186

 우리는 계급사회가 형성되는 이 시기의 많은 다른 예들에서남성의 계급지위는 그의 경제적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여성의 지위는그녀의 성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수천년 동안 타당한 것으로 남아 있던 원리다. - P188

가족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아들들과 딸들에게 상속권을 주는 것이 곧 그들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 P192

가족경제에서 여성의 역할은 그 중요성이 점차 높아졌다. 그들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들의 생산자이자 자녀생산자이며,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며, 가내노동자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적서비스가 매매 가능한 상품으로 바뀌게 된 사람들이었다. 사물화된 것은여성 자신들이 아니라, 여성들의 성적 서비스와 재생산 서비스이다. - P195

재산이 충분치 못하거나 없는 하층계급 가족에게 개인들(남녀 자녀들)은 재산이 되었고, 노예나 하향결혼으로 팔려갔다. 중요한 것은, 그럼으로써 그들이 출생가족에서의 모든 재산권을 포기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같은 계급 소녀와 아들의 결혼이 아들의 여자형제를 팔아서 가능해짐으로써 이런 혼사는 사실살 그 여자형제에게는 구매에 의한 결혼을 만들어냈다. - P196

간통과 처벌의 잔혹함 정도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의 비대칭과는 별도로, 이 법들의 놀라운 점은 성적인 문제들에 대한 규제와 관련하여 국가(왕)에게 주어진 권위가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인의 섹슈얼리티에대한 통제는 이전에는 분명 남편의 사적인 관할 안에 있는 문제였다.  - P200

강간을 금한 여러 가지 법들에는 모두 피해를 본 측은 남편 혹은 강간당한 여성의 아버지라는 원칙이 들어 있다. - P202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천년이라는 기간에, 가부장적지배가 어떻게 사적 관습에서 공적 법으로 옮겨갔는가를 보게 된다. 이전에는 남편과 가족의 가장에게 주어졌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이제는 국가가 규제하는 사안이 되었다. 물론 이 속에서 일반적인경향은 국가권력이 증가하고 공적 법률이 확립되는 것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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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부장제의 창조] 의도하지 않았던 일의 결말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06-21 13:14 
    나는 여기서 결정론을 주장하거나 의식적으로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건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며, 그것은 남성들도 여성들도 의도하지 않았던 특정한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사회라는 대담한 신세계를 출범시킨 현대남성들이 오염이나 생태계에 대한 영향과 관련된 결과들을 알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인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점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 과정을
 
 
단발머리 2022-06-16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의문이 점점 깊어졌거든요. 아니, 이렇게 여성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이러한 강력한 규제, ‘법률‘이 인류 역사 초기부터 이렇게나 견고했단 말인가. 또 한 번 절망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바람돌이님 지적처럼, 근친 강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구요. 결국 우리 문명, 인간의 문명이란 것은 메소포타니아 지역의 고대 문화에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아직도 앞부분입니다. 바람돌이님, 기다리세요. 부지런히 따라 갈게요^^

바람돌이 2022-06-17 15:26   좋아요 0 | URL
무언가를 복종시켜본 경험, 지배해본 경험은 정말 힘이 세다고 생각합니다. 편하잖아요. 그 편함을 인간의 이기심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거고, 점점 당연시 하면서 강화시켜 가는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성의 지배에 대한 경험이 노예제를 더 쉽게 이루게 했다는 저자의 관점에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여성 억압의 역사도 일률적이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북방 유목의 영향이 많던 발해같은 경우 여성의 목소리가 굉장히 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그에 반해 평지 농경문화가 우세했던 백제 같은 경우 남편 계백에 의해서 가족의 생사여탈이 주어져버리는 경우도 보이고요. 자연환경이나 인문적 환경 등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여성억압의 역사 또한 강도를 달리하고 부침을 겪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단발머리님이 올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빨리 읽을겁니다. 마음은요. ㅎㅎ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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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기 우주 비행사? 혹은 모험가? 여행가? 하여튼 로켓 하나 가지고 여기 저기 온 우주를 여행하는 이욘 티히라는 인물이 우주 여행 중 겪은 일들, 만난 인물들에 대한 단편들로 채워진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아니 진정 이 소설이 인간과 다른 세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진지하게 질문하던 소설 <솔라리스>의 그 작가의 작품이 맞단 말입니까?

이름도 어려운 스타니스와프 렘!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재능을 가진거란 말입니까?

IQ 180이라더니 그것이 진정 사실이었다는것을 이제는 믿겠습니다. 

네 믿고 말고요. 


첫 이야기부터 독자는 일단 빵 터지고 시작한다.

우주 여행 중 운석이 날아와 우주선이 고장난다.

우주복을 입고 바깥으로 나가서 보조 조종간을 끼워야 하는데 이 일을 위해서는 누군가 스패너로 나사 머리를 잡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너트를 돌려야 한다. 즉 2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우주선에는 이욘 티히 1명밖에 없다.

어떻게 될까?

그런데 우주선이 거대한 중력장 안으로 들어가고 이 때마다 시간의 방향이 휘어서 시간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게 된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옛날 영화 백투더퓨처 같은거라고 생각하자.

어쨌든 시간의 방향이 휘면서 오늘의 나가 어제의 나를 만나고 모레의 나가 내일의 나를 만나고....

이 나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우주선을 고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 되고.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인데 과연 이온 티히는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을까?

물론 정답은 책에 있다.


그러면 끝까지 빵 터지기만 하는 걸까?

물론 소설은 곳곳에서 빵빵 터진다.

유머감각이 어찌나 넘치는지 사소한 상황들을 묘사하는데서 머릿속에 그 상황이 순식간에 재현 되면서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주 여행 중에 멀미를 일으킨 사람들이 우주 공간을 무슨 타구처럼 사용하면서 토해놓으면 그 토사물이 앞으로 수백만년동안 우주 궤도를 돈다든지, 이욘티히는 실제로 자신이 버린 다 타버린 스테이크가 자기 우주선을 빙빙도는 것을 끝도없이 봐야햇던 적도 있었다. 

또는 우주에 있는 다른 종족의 설명에서 다른 행성인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하는데 이 별의 사람들은 60도의 기온에도 얼어 죽기 때문에 천국 얘기는 듣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 대신 펄펄 끓는 지옥에 대해서만 아주 흥미로워 한다든지.....

인간 상상력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고 싶다면 이욘티히를 읽으라고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빵빵 터지기만 했다면 아마 이 책을 끝까지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580페이지짜리 책을 농담만으로 읽을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농담은 처음에는 엄청 신선하다고 보지만 농담이 끝까지 농담으로만 계속되다보면 아 내가 왜 이 책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을 어쩔수 없이 하게 되니말이다.


이욘티히의 여행은 대부분의 SF가 그렇듯이 현실을 향한 질문이고 풍자이고 때로는 대답이다. 

아무리 복잡해보이는 사안도 풍자의 영역에 들어와 본질과 현상을 정확하게 갈라 보여주면 현실의 문제가 뚜렷이 보이는 법.

작가인 렘은 그런 면에서도 천재적인 안목과 이야기 구사능력을 보여준다. 

우주연합의 새로운 회원이 되기 위해 참석한 회의에서 지구인은 도대체 잘한게 뭔지를 묻는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리거나 고뇌에 빠지는 이욘 티히. 결국에는 너희 지구인들은 전 우주적 협력이 언제나 약탈과 헤게모니 쟁탈보다 더 이익이라는 점을 계산하지도 못하느냐라는 질책앞에서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1960년대에 쓰여진 이 소설의 저 질책을 인류는 그 이후로도 한번도 제대로 새겨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이런 책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아서일까?  

그렇다면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도록 더더더 노오력해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한다.


이 책의 풍자의 대상은 전방위적이다. 

이욘 티히의 시간여행을 통해 인류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휘말리면서 인류의 미스테리로 불리우는 부분들이 어떻게 잘못된 시간조작이나 시간여행자들의 의도된 또는 의도되지 않은 실수에 의해서 일어났는가 하는 농담을 장대하게 펼치기도 한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중 많은 수가 이 실수에 의해서 유배된 미래 27세기의 시간여행자들이라니....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뭐 이런 사람들말이다. 

아 또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있구나



르네상스기에 도대체가 알 수 없는 기괴한 그림을 그린 이 보스 역시 시간여행자란다.

그래서 오른편 그림에 시간여행 버스를 슬쩍 그려놓았다는데 솔직히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게 저 시대에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뭔가 시간여행자쯤은 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다. ㅎㅎ


종교, 자본주의, 관료제, 인간의 자기중심주의, 어떤 것도 작가 렘의 풍자를 피해갈 수 없다.

그 풍자들은 지금도 유효하여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느새 지금의 사회 현실과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온갖 말도 안되는 우주 대환장 파티 속에서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 지금 우리 현실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꿰뚫어보는 경험은 이욘 티히를 읽어야 할 이유이고, 또한 즐거움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진정 천재 맞다.



사족 - 요즘 디즈니의 오리지널 드라마인 <만달로리안>을 재밌게 보고 있다.

1부가 다 끝나가도록 주인공의 얼굴을 한번도 못봤고, 두번째 주인공인 귀염둥이 요다의 목소리 한번 못들었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창조하는 새로운 행성, 다른 종의 생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SF를 보는 묘미는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이 확 살아있는 드라마다.

렘의 소설처럼 깊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책과 또 다르게 다른 세상을 눈앞에 재현해주는 재미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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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3 22: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넘 맘에 드는 전갠데요. 보스가 시간여행자라니 ㅎㅎㅎ 만달로리안 아기요다 넘 귀엽죠~~

바람돌이 2022-06-13 23:00   좋아요 2 | URL
이 책 진짜 재밌어요. 저는 솔라리스보다 더 재미있어서 이 작가의 책은 나오건 다 봐야지 하고 있어요. 번역된게 얼마 없어서 조금 슬프긴 해요. 그렇다고 폴란드어 원서를 볼수는 없으니.... ㅎㅎ
아기 요다 진짜 귀여워요. 그런데 전 요새 저 철갑인간 만도도 귀여워지네요. 요다와 만도 두 주인공의 귀여움으로 신나게 보고 있습니다. ^^

잠자냥 2022-06-14 0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이 책 사놓기만 하고 여태 안 읽었는데 빨랑 읽어야겠어요!!

바람돌이 2022-06-14 21:34   좋아요 2 | URL
강추 강추 강추입니다. ^^ 얼른 얼른 읽으시와요. ^^

희선 2022-06-14 0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이큐가 180이면 어떤 느낌이 들지... 뭐든 쉽게 알고 이런저런 거 많이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1960년대에 쓰인 소설이지만 지금 봐도 재미있군요 그때 이런 상상을 하다니...


희선

바람돌이 2022-06-14 21:36   좋아요 4 | URL
아이큐가 그런 사람이 주변에도 하나도 없어서 어떤 느낌일지 알수가 없네요. 다만 이 책을 보건대 아이큐 180의 머리속 세계는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더 넓을 듯하긴 합니다. ㅎㅎ 이 소설은 정말 1960년대에 쓰였다는 느낌이 하나도 안들어요. 굉장히 세력됐달까? 요즘 쓴 소설이라고 해도 저같이 과학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믿을 거 같아요. ^^

새파랑 2022-06-14 06: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전 극찬이네요 ㅋ sf를 안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게 노력하신다니 이건 읽어봐야 겠습니다 ㅋ 책 안사려고 했는데 ^^

바람돌이 2022-06-14 21:37   좋아요 2 | URL
솔라리스와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원래 SF를 좀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어 그러니까 커트 보니것 책 처음 읽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랄까 그랫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4 09: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환장파티 맞네요! 근데 그 대환장파티가 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니 결코 파티로만 끝나는 게 아니죠~ 넘 재밌어보여서 찜해놓고 읽어봐야겠습니다ㅎㅎ 요즘 SF 많은 작품들이 나와서 고르는 재미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6-14 21:38   좋아요 4 | URL
제가 리뷰에 적은건 정말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일 뿐.... 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이나 그것을 풍자하는 입담이 정말 장난 아닙니다. 화가님 리뷰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게요. ^^

라로 2022-06-14 09: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예전에 바람돌이님이 솔라리스 읽으시고 리뷰 올리신 거 보고 사서 읽다가 말았어요. 초반에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다시 읽어볼건데 이것도 이리 말씀하시니 안 살 수가 없잖아요!! ㅎㅎㅎ 요즘 저도 켄 리우 덕분에 SF 좋아하게 되었어요!! 아~~ 몰라몰라. 책 정말 많이 사고 있는 일인. ㅠㅠ

바람돌이 2022-06-14 21:41   좋아요 3 | URL
에고 에고 라로님...ㅠ.ㅠ 솔라리스는 초반 진입장벽이 좀 있죠. 저도 중반까지는 무지하게 페이지 안넘어가서 많이 낑낑거렸어요. 순전히 오기로, 너가 그렇게 유명하다며 내 좀 읽어준다 이러면서 읽었다는..... 물론 중반 이후부터 굉장히 빠져들어서 읽었지만요. ㅎㅎ
근데 이 책은요. 그냥 막 빠져요. 들어가는 말부터 그냥 웃겨요. 풍자란 이런 것이다의 모범을 보여주는거 같은?
솔라리스 안 맞아도 이 책은 즐겁게 읽으실거라 생각합니다. ㅎㅎ

청아 2022-06-14 1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만달로리안 갈수록 둘 사이에 케미가 살아납니다ㅎㅎ
<우주일지>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풍자는 꼭 봐야함😆

바람돌이 2022-06-14 21:43   좋아요 3 | URL
오늘 만달로리안 시즌 1 끝냈는데 만도 얼굴 처음 봤네요. 조금 깨던데.... 아 그냥 핼멧 쓰고 있는걸로.... ㅎㅎ
시즌 2까지 밖에 안나오걸 슬퍼하면서 아껴보고 있습니다. ㅎㅎ
이욘티히의 우주일지는 계속 강추 강추!!!

scott 2022-06-15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친구 아이큐가
백 칠십 오인데
두툼한 법전은 뚝딱!
사전도 꿀꺽 하는 기억력으로 일반인들보다 이해 하는 속도가 100배나 빠른 친구!ㅎㅎ

마지막 포스터
순간 59세 탑건 톰아죠씨 인줄 ㅎㅎㅎ

바람돌이님 작가 렘 사랑 👍👍👍👍👍 쵝오!

바람돌이 2022-06-15 14:45   좋아요 3 | URL
아 스콧님 곁엔 그런 친구분이 있으시군요. 신기방기.. ^^
저 포스터 말씀듣고보니 진짜 탑건으러 착각할만하네요. 좀 비슷해요. ㅎㅎ 저는 톰 크루즈도 그의 탑건도 좋아하므로 개봉하면 보러갈터입니다.
올해 처음만난 작가 렘
저의 새로운 최애 작가로 등극하였습니다.

그레이스 2022-06-16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머리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580페이지를 유머와 풍자로 채우는 실력!

바람돌이 2022-06-17 15:19   좋아요 2 | URL
네 천재는 있죠. 아이큐가 180이었다는데 참 상상이 안되는.... ㅎㅎ
솔라리스도 좋았지만 이욘티히는 더 좋아서 정말 단박에 이 작가 팬이 되고 말았어요.

그레이스 2022-07-08 18:4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축하드려요 ~~♡

mini74 2022-07-08 1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열심히 읽고 있어요 바람돌이님 ㅎㅎ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7-09 16:28   좋아요 1 | URL
취향에 맞으셔서 저만큼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간절히 기원하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7-08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의 구매를 이끈 책이네요^^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2-07-09 16:29   좋아요 2 | URL
아 사셨군요. 부디 즐거운 독서가 되시기를.... 전 진짜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 작가의 <우주비행사 피륵스>읽으려고 지금 줄세워놨거든요. ^^

새파랑 2022-07-08 18: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휴가는 책과 함께 보내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2-07-09 16: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요즘 꾸준히 책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새파랑님 덕담덕분에 앞으로 더 그렇지 않을까요? ^^

희선 2022-07-09 0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즐겁게 읽고 쓰신 글이 돼서 기쁘시겠습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7-09 16: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역시 즐겁게 읽고 쓴 글이 당첨돼니 더 좋긴 하네요. 남은 휴일 희선님도 편안하게 쉬세요. ^

bookholic 2022-07-09 07: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바람돌이 2022-07-09 16: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북홀릭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thkang1001 2022-07-1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비록 프로젝트에서 쫓겨난 뒤였지만, 프로젝트의 전문가들의 만행을 알고 싶다면, 화성과 토성, 금성, 엉망이 된 달을 보라, 대서양 한가운데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무덤을 보고, 두 번의 빙하기, 흑사병, 온갖역병, 전쟁, 종교적 광신주의의 희생자들을 보라, 한마디로세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라, ‘개정‘ 계획의 실험장으로 혼돈이되어 버린 역사를 역사는 연구소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연구소는 변덕과 혼란, 근시안, 즉흥, 끝없는 음모, 무능이 팽배했다. 나는 할 수만 있었다면, 이른바 역사 기술자들을 모두브론토사우루스가 겨울을 나는 시대로 보내 버렸을 것이다. - P284

예컨대 뜨거운 안틸레나 별의오성족들은 60도의 기온에도 얼어 죽기 때문에 천국 얘기는 듣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 대신 펄펄 끓는 지옥에 대해서만 아주 흥미로워한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다섯 가지성(性)으로 구분되는 그들 중 과연 누가 사제가 될 수 있을지, 역시 신학자들에게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 P302

아시다시피 우리의 가자우중요한 법은 ‘시민 자율권‘이라 불리는데, 이는 누구에게든 어떠한 부자유도 없다는 뜻이며,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강제하거나 강요받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누가 도스토이니들에게서 공장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의지가소유의 상태를 즐기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발상은 상상할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가장 끔찍한 위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새 기계들이 수많은 값싼 물건들과식료품들을 생산해 냈음에도 티라우들은 그걸 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죠, 살 수 있는 수단이…………." - P332

"제발 그 임플로즈가 했다는 헛소리는 그만!" 학자가소리를 질렀다. "다리라고! 그렇겠지! 내가 이미 25 불꽃년전에 두 다리의 생명체는 직립할 수 없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지 않았나! 나는 그 이론에 맞춰 모델을 제작하고 그래프도 그렸다고! 그런데 너희 같은 게으른 놈들이 도대체 뭘 알겠나? 다른 세상에 있을 지성적 존재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난 대답하지 않겠네. 자네들 스스로 생각을 좀 해봐! 생각하는 법을 배우라고! 그런 존재라면 우선 암모니아를 변환시킬수 있는 기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 안 그런가? 삐걱 기관 말고 무엇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나?...... - P377

그리고 그가 자신의 말과 달리 사실 그들의 인생에 엄청나게참견하고 싶어 함을, 자기가 만들어 낸 그 세상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 함을, 심지어 그 안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누군가를 구하고 싶어 함을, 저는 느꼈습니다. 그러고는 거기서, 전등갓도 없는 전구의 더러운 불빛 아래서, 어떤 목숨을, 어떤사랑을 구해 줄지 망설이고 있다고요. 그러나 저는, 그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그런 유혹에 저항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 되고 싶어 하니까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신성이란, 인간의 모든 행위, 인간의 모든 범죄에 대해서 침묵으로 찬성하는 신이지 않습니까. - P443

"사람들은 영생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잠시 후 다시 말했다. "그냥, 단순하게, 죽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냥 살고 싶은 겁니다. 디캔터 교수님. 발밑의 지구를 느끼고싶고, 머리 위의 구름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겁니다. 그 이상은 없어요.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다 거짓말입니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거짓말. 다른 많은 사람들도 저만큼 참을성 있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지나 의문입니다………. 구매자는 고사하고…………." - P464

지구에서 꽤 오래 머문 뒤 나는 전에 방문했던 여행지 중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다시 찾고자 길을 나섰다. 그곳은 둥근페르세우스 성좌, 송아지자리와 은하수 중심의 거대한 별 무리다. 가는 데마다 제법 변해 있었는데, 좋은 방향의 변화가아니므로 여기에 적기가 쉽지 않다. 바로 급성장한 우주여행업 탓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여행이란 좋은 것이지만, 어느정도는 지켜야 하는 법이다. - P549

이렇게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우주여행 중에 멀미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마치 우주를 무슨 타구(睡具)쯤으로여기는 것 같은데, 자신들의 역겨운 흔적이 수백만 년 동안우주 궤도를 돌면서 다른 여행자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 하는 것 같다. - P552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행성의 생물들을잡아먹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신들의 행성이 피해를 입으면, 그제야 비명을 지르고 도움을 청하며 처벌을 요청하고 난리를 친다. 그러나 우주 식생의 엽기성과 교활한 본성에 대한 모든 불만은 사실 인간 중심주의에 기초한 난센스일 뿐이다. - P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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