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43쪽


페미니즘과 몇가지 계기가 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이룬 성취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의식을 몰아냈고,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게 했으며, 가부장적인 가정을 벗어나도록 했다.

그것이 비록 완벽하게 실현되었다고 하지는 못할지언정 시대적 흐름이고 대세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여자 아이들은 더 이상 성차별적인 발언을 - 그것이 교사든 부모든, 또래 남자 아이든 - 용납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있고, 실제로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금의 학교교육을 통해 성차별의 구체적인 상황을 교육받은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사회에 나갔을 때는 또 여전히 현실에 남아있는 무수히 많은 성차별적인 상황들과 맞닥뜨릴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지배 이데올로기의 힘은 예상보다 언제나 훨씬 강하니 말이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이 당시대 학교교육에서 민주주의를 처음 배웠던 세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아이들은 바로 그 성차별적인 온갖 상황들에 맞서 싸울 것이다. 기성세대에 속하는 내가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하거나, 그것이 성차별임을 인지하고 못했거나 함으로써 온존시킨 그 체제와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 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늘의 여자 아이들의 외모강박은 정도가 심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1년 내내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 때 왜 그러니? 안 갑갑하니? 라고 물어보면 나오는 대답이 나를 경악하게 했었는데, 풀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얼굴을 드러낼 수 없어요. 너무 부끄러워요였다. 다른 대답은 얼굴이 너무 커서 가리고싶어요같은 대답들. 

당연히 실제 그 아이들의 얼굴은 그저 평균치였을 뿐이고, 풀메이크업으로 가리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기준이 연예인이거나 모델인 아이들에게는 어떤 말도 그 외모강박과 열등감을 지워주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중3교실에서 입시가 끝나면 3분의 1이상의 여자아이들이 쌍커풀 수술과 눈의 앞트임, 뒷트임등의 수술을 한다.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예쁘야 한다는 외모 강박은 지금 가장 힘이 센 이데올로기다.


이런 현실에 대해 여태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은 사회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지 않다. 

온갖 매체와 광고에서 아름다운 남성과 여성이 등장하고, 그들이 많은 돈을 벌고, 외모가 바로 돈과 직결되는 사회현실,

자본주의의 상품판매를 위한 기업들의 전략

이정도의 생각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가부장제가 "집안 살림을 숭고한 소명"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듯이, 이제는 가부장제가 낡은 이데올로기로 점점 위력이 약해지는 것을 대신해, 계속 여성의 노동과 저임금구조를 존속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아름다움"이 의도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여성이 성별에 기초한 고용차별 대신 외모에 기초한 고용차별을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여성의 은밀한 내면세계에서까지 받아들이게 하고, 여성이 더 많은 돈을 외모를 가꾸는데 쓰게 함으로써 그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어 더 높은 자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신체적 기준에 따라 여성을 새로운 위계구조로 서열화시키는 작동기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광고와 매체의 문제, 기업의 판매전략 수준을 뛰어넘는 본질적인 통찰로 다가온다.

앞에서 인용했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가 스스로 탈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이 사무치게 인식되는 지점이다. 


이제 이 책은 서론에 이어 구체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 문화 전반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펼쳐놓는다.

첫번째 지점은 직업세계 - 일에 관해서이다.

여성의 복장, 외모를 둘러싼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식으로든 여성의 사회적 성취를 가로막는다.

어떤 직업을 수행하기에는 여성의 외모가 못나서, 또는 여성의 외모가 아름다우면 여성의 능력이 아니라 외모로 승진하다는 식의 편견과 비하, 때로는 아름답게 꾸민 여성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 등등.....

여성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실제 세계에서는 어떤 경우든 여성의 노동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고, 여성의 상위층으로의 진출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나 하나의 예가 미국만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둘러보면 한국사회에서도 비슷한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결국 남성중심의 지배 엘리트구조는 어떻게든 여성의 노동을 비하하고, 그들의 성취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지배구조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2장까지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보다 근원적인 지배이데올로에 근원함을 깨닫는다.

관점과 시선이 바뀌면 그것을 해결할 교육과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

카프카가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하는 책이다.

남은 페이지들은 또 어떻게 나의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줄지 두근거리며 읽게 되겠다.



오늘날 이렇게 반발이 거센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둘러싼 낡은 이데올로기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 지금도 강력한통제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로 여성을 지금처럼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모성과 가정, 순결, 수동성에 관한 신화가 더는 하지 못하는 사회적 강요라는 임무를 떠맡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그리고 지금 페미니즘이 여성을 위해 물질적 · 공개적으로 한 모든 좋은 것들을 심리적으로은밀하게 무력화하려고 한다.
- P31

"아름다움은 금본위제 같은 통화체계다. 모근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현대 서양에서는 그것이 남성의 지배를 온존시키는 마지막 남은 가장 좋은 신념 체계다. 문화석으로 강요된 신체 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이는 권력관계의 표현이며,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은 그동안 남성이 전용해온 자원을놓고 싸워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 P33

아름다움의 신화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 오늘날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을 제약하는 것은 권력구조와 경제, 문화가 여성에게 반격을 가할 필요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보다 숭고한 목적에서 온 것이 아니다.
- P35

경제와 법, 종교, 성, 교육, 문화를 개방해 여성이 더욱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사적 현실이 여성의 의식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아름다움"에 관한 관념을 이용해 법과경제, 종교, 성, 교육, 문화로 여성의 세계를 새롭게 재구성했고, 이런요소들은 전에 사라진 것 못지않게 억압적이었다.
- P39

 지금 서양 경제는 여성의 저임금 구조에 완전히 기대고 있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훨씬 가치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기 시자하자. 이에 대응해 여성에게 "훨씬 가치 없는 느낌이 들도록 할 이데올로기가 시급히 필요했다. 여기에는음모가 필요 없다. 분위기만 필요할 뿐이다. 오늘날의 경제는 바로 지금도 아름다움의 신화 속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기대고 있다.  - P42

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 P43

슈퍼우먼들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할 의제에 "아름다움"을 가꾸는 만만찮은 노동을추가해야 했다. 더구나 이 새로운 임무는 갈수록 엄격해졌다. 투자해야 할 돈과 기술, 솜씨의 양이 여성이 권력구조에 균열을 내기 전에는자신을 전시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미인들에게나 기대한 수준 밑으로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여성이 전문적인 주부의 역할과 전문적인 직장인의 역할, 전문적인 미인의 역할까지 모두 해야 했다.
- P56

그런데 작금의 사태를 보면, BFOQ를 서툴게 모방한 것(나는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PBQ professional beauty qualification, 즉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이라고 부르겠다)이 여성의 고용과 승진의 조건으로 아주 널리 제도화되고 있다.  - P57

1980년대가 시작되자 미국의 정부 정책은 일하는 여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고, 법은 그들의 의모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아 한다고 했다. 이런 판레법들이 나온시기를 보면 아름다움의 신화가 정치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여성이 대거 공적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직장에서의 외모에 관한 법이 그렇게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 P66

크래프트의 고용주들이 그런 차별을 하고도 도전받지않을 거라고 믿은 것은 그런 치별이 피해자들에게 공동적으로 주입하는 반응 때문이다. 그것은 창피함이고, 창피함은 침묵을 보장한다.  - P69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은 최근에 기회평등법으로 위협받게 된 착취의 근거를 다시 고용 관계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는 작용을 한다. 그것은 여러 영역에서 여성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쳐고용주들에게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 P87

PBQ는 여성을 물질적 · 심리적으로 빈곤하게 만든다. 그것은 경제적안정이 주는 권리의식을 길렀다면 권력구조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을 여성에게서 돈을 고갈시킨다. PBQ는 부유한 여성들조차 남성들이 경험하는 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이중잣대로 남성 임원의 소득보다 여성 임원의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떼어감으로써 그런 여성들이 남성 동료보다 실제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 P93

전체 여성 임금노동자 3분의 1인 사무직 노동자와 4분의 1이 넘는 판매직과 서비스직 노동자가 그동안 가장 노조를 조직하기 어려운 집단가운데 하나였다. 여성이 서로를 볼 때 무엇보다도 먼저 아름다움으로보면 연대를 찾기 힘들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여성에게 누구나 제 앞가림이 먼저라며 그렇게 믿도록 다그친다.
- P98

여성은 아름다움과 일이 보상도 해주고 처벌도 하자 전혀 일관성을기대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은 계속 노력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위한 노력과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은 모든 여성에게여성과 관련해서는 정의가 구현되지 않을 거라고 가르친다. 그러한 불공정함을 여성에게 변함없고 영원하며 적절하고 여성 자신에게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키와 머리카락 색깔, 성별, 얼굴 모양만큼이나 그들에 속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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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14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돌이 님. 이 페이퍼 진짜 좋네요. 좋아요 백번 누르는 마음으로 한 번 꾹 누르고 갑니다. ㅜㅜ

바람돌이 2022-02-21 01:20   좋아요 0 | URL
좋아요 백번이라니 감개무량합니다. ^^

단발머리 2022-02-14 1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아침에 읽은 잭 리처 페이퍼 재밌어서 한 번 더 읽으려고 바람돌이님 방에 들어왔다가 이제서야 이 리뷰 발견했네요.
너무 좋은 글, 잘 입고 갑니다. 아직 책 읽기 전인데 기대감 + 100을 얻고 갑니다.

바람돌이 2022-02-21 01: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 글 써주시는 단발머리님 칭찬이라 완전 기분이 업되네요. 오늘 이 책 다 읽었는데 이 책 읽고 난 이후 저는 저의 외모를 좀 더 사랑하게 될듯합니다. ^^
 

인생이란 기묘한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체하고 싶어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리처는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고 추측하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 P71

하지만 그가 여기에 있는 것은 그녀의 눈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용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지성이나 성격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의 무릎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배짱과 그녀의 품위. 아름답고 용기 있는 여자가 익숙하지 않은 장애와쾌활하게 맞서는 모습은 리처에게 있어 용감하고 고결한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취향에 맞았다. 그녀는 어려움과 맞서고있었다. 잘해내고 있었다. 불평하지 않았다.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결국 도움을 받게되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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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일본 정부는 미국의 일보본토 침공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 되자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발생했던 오키나와 전투는 역사적으로도 가장 잔혹한 전투로 꼽힌다. 오키나와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사람들이 죽었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집단 자살을 강요당했다. 미국이일본 본토를 침공하면 과연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미리 맛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집단 자살이었다.
- P506

그러나 이런 계획은 그때까지 줄곧 일본에서 권력이 작동되던 방식에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정치인들이 그동안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뿌리던 일을 앞으로 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정도의단순한 사안이 아니었다. 민주당의 계획이 실현되면 관료들이 그동안 사회 이곳저곳에 정치적·경제적 보호 장치를 임의로 배분해오던 재량을상당 부분 잃게 된다.
- P517

일본은 존 다우어가 미군정의 역사를 다룬 책(패배를 껴안고)에서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미국의 품Ameriein embrace‘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이후로는 벗어나려는 시도를 사실상 완전히 포기했다. 요즘의 보통 일본인들은 미국에 대해 더 이상 특별한 호기심이 없다고는 해도 대체로 미국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 P520

일본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영향력 대리인‘들은 갑자기 전례없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까지 이들에게 주어졌던 임무는일본 자민당과 관료사회와 재계의 지도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어젠다를수행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들에게는 그것과 성확히 반대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일본의 새로운 선출 정권을 깎아내리고 잠식하는 임무였다.
- P523

후쿠시마 원전을 둘러싼 문제는 알고 보면 자민당으로 대변되는 전후일본의 구조적 병폐에 그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 민주당이 관료들및 미국 내에서 일본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의 반역에 가까운 행의로인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치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금방 잊힌다. 일본처럼 언론이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세력을 자처하는 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일본의 언론은 공정하고도 절제된 보도가 아니라 특정 정치인의 결점을 대서특필해서 이슈화하는 행위를 통해 권력을 감시한다. - P554

달리 말하자면, 핵심적인 문제는 일본이 계속해서 과거를 청산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신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짓 신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동중국해와 동해 너머로부터 일본을향해 날아오는 위협과 비난이, 어떻게 대처해아 좋을지 모를 마연한 증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베와 극우세력이 전후 체제에 그토록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망상에 사로잡힌 미국이 (때로는 무심결에) 이들을 도와주고 때로는방조했다.
- P598

사실을 말하자면 아베와 그의 무리도 진짜로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수반하는 것들을 갈망한다. 사람들 사이의 열광, 목적의식, 명확함, 위계질서, 경의가 생겨나기를 원하고, 의심과 거리낌과 비판을 일소하기를 바란다. 이런 갈망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사회전체가 빠르게 노화되고 있는 갸루와 초식남과 오타쿠의 시대에, 수백만의 젊은이가 천황을 위해 죽지 못해 안달이던 1930년대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아베는 그 시절의 정신 비슷한 것을부활시키지 못하면 일본이 거침없고 호전적인 중국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중국도 물론 아베의 이런 착각을바로잡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또한 국가의 거대한 선전기구를 통해 일본이 모든 악의 근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관념을 중국 국민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주입해 닝는다.  - P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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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멈췄고,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이 들끓었다..…… 페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는 왜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그녀는 물속에서 비틀거리며 넘어지지않으려고 바위에 매달렸다. 주위에서 올려대는 굉음이 사방으로넓게 퍼지면서 하늘로 솟구처 올랐다. 야자나무와 종리나무가바람에 찢기면서 사방으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공기는 지독하게 뜨겁고 메말랐다……… 목구멍이 죄어들었다. 바람이 점점 더세차게 몰아쳤다. 폐가 가슴 속에서 오그라들었다. 입천장이 부풀어 오르면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 P40

그래서 나는 호기심을 안고 그 가게로 들어갔다. 사실 어떤 기대감에 들떠 있기도 했고, 쉰셋이라는 나이에, 게다가 숨가쁘게 분주한 삶을 살아온 후에 아직도 새로운 종류의 희망이나미지의 경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덤벼든다는 건 그 자체로고무적인 일이니까.
- P46

그런데 그 순간, 나 같은 인간이 죽기 바로 직전에 가장 어울리는 책은 전화번호부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결국 나는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을 찾아내려 애쓰고 그 누군가에게 희망을 걸면서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사람들To이 전화번호부를 손에 든 채 죽어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지극히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85

어느 날 어떤 멍청이가 그에게 "어이 애송이, 자넨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사나?" 라고 물어오면, 그는 이제 더이상 꾸물거리지 말고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뭘 해서 먹고사냐니? 그건 정말 어이없는 질문이다. 당신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건 살아 있다는사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질문이다. - P161

그 질문은 삶 자체를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만약 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 질문은 삶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낸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또다른 공물을지불해야 한다는 듯이,  - P162

 인간은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간직하는 한 언제나 웃을수 있다고, 웃음, 그것은 그 대가로 고통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한,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 P172

그리스인은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신아니면 민주주의. 물론 지금 그들 대부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미국 박물관에 있었고, 그 나라는아테네의 대령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 P180

"자유, 페트로가 말했다. "자유야말로 언제나 가장 위대한 시지. 하지만 그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어. 그리고 영원히 쓰이지않을 거야. 아니, 어쩌면 언제가 쓰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죽음이 필요할 거야. 그리고 그때 시인이 아닌 모든 사람은 이렇게 말하겠지. 그 시는 쓸 가치가 없는 거였다고. 뭐, 그런 거지."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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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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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화가인데 왜 그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탄은 이토록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 책은 플로라 트리스탄과 그의 외손자 고갱의 두 인생을 오가면서 서술된다.

그러나 독자를 압도하는건 고갱이 아니라 그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탄이다.

1803년에 태어나서 1844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여성이 살았던 시대를 짐작하려면 영화 <레미제라블>을 떠올리면 될듯하다.

1830년 7월혁명으로 빈체제로 성립된 왕정을 무너뜨리고 루이 필립을 왕으로 세우며 입헌군주정을 시작했지만 당시 모든 민중이 같이 싸웠음에도 모든 이익은 오로지 부르조아들에게 돌아갔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7월 혁명이에도 프랑스에서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했던 것.

이 시기 노동자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통계가 하나 있다.

1842년 영국 노동계급의 위생상태에 대한 보고는 당시 영국의 공업도시이던 리버풀의 노동자계급의 평균수명 15세, 맨체스터 17세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플로라가 살던 시대는 바로 이런 시대이다.

<레미제라블>에서 혁명가들은 공화정을 위해, 노동자들의 투표권을 위해 목숨을 던져 싸운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인이 아니다.

공화정이 되면 투표권이 주어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인가?

1848년 2월혁명으로 프랑스는 공화정을 쟁취했고, 투표권도 얻었지만 노동자들의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플로라가 말한다.

모든 억압받는 여성과 노동자들이 연대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 노동조합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노동자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때까지는 사상적으로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태동한 시기였고, 마르크스는 아직 젊은이다.(책 속에 마르크스와 플로라가 잠시 스쳐가는 장면이 있는데 자기 책 출판외에는 안하무인인 무례한 젊은이로 잠시 등장한다.)


페루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결혼이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바람에 태어날 때부터 사생아가 되어버린 그녀는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공장에 취직을 했다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남편이란 놈은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이기까지 했으므로 플로라는 도망을 결심하고 실행하지만, 여성이 이혼을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의 추적에 시달리다가 남편으로부터 총까지 맞고 몸에 총알을 박은 채로 살던 플로라는 자신의 삶과 여성의 삶,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외가가 있는 페루까지 갔다오는 그녀의 일생은 플로라라는 한 여성이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가고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지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은 늘 길 위에 있다.

그 길은 현실의 길이기도 하고, 자신의 삶과 생각을 만들어가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엮어가며 새로운 인간상, 새로운 인간관계의 틀을 만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당대 여성의 몸으로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며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과 여성과 노동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을 제시하는 그녀의 노력은 놀랍다는 말 외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온갖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삶 - 심지어 그 삶을 바꿔 안락한 부르조아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팽개쳐버리는 결단과 용기를 갖춘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녀가 만들고자 한 것은 여성과 노동자의 천국이었지만, 우리는 그 천국이 그녀 당대에 또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제목 그대로 천국은 다른 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 되어가고, 그 너머 어딘가에서 우리는 다들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어가고 있는걸거다.

온 세계가 그녀에게 빚을 졋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제야 그녀를 만나다니 미안할 따름이다.


플로라의 삶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녀의 외손자 빌어먹을 고갱의 삶은 관심이 하나도 안 생긴다.

책의 반이 고갱의 삶인데 그의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제국주의자 백인의 오리엔탈리즘 가득한 천국은 당연히 없다.

아마도 고갱의 천국은 그의 머릿속 관념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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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2-10 14: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사스러운 요사샘의 팬으로
오래 전에 이 책이 나오자
마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
다.

왜 요사샘의 신작은 나오질
않는지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바람돌이 2022-02-12 00:56   좋아요 0 | URL
저는 요사샘 책을 읽은게 처음이므로 앞으로 많은 책이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ㅎㅎ
혹시 요사샘 계속 정치한다고 바쁘신걸까요? ^^

mini74 2022-02-10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갱의 외할머니에게 반했던 ㅎㅎ 너무 당당하고 똑똑하고 멋지고 그리고 안타깝고 ㅠㅠ 그랬습니다. 썩을놈의 남편은 분노를 부르고 ㅎㅎ

바람돌이 2022-02-12 00:58   좋아요 1 | URL
저 시대에 남편놈들이 대부분 저렇게 썩을놈들이었다는게 문제겠죠. 전 책보면서 19세기 유럽의 야만성이 확 와닿더라고요. 맨날 문화인인척 하는 그들도 별수 없었다는.... ^^

새파랑 2022-02-10 1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갱이 나빴군요 ㅎㅎ 아 이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인가 보군요. 전 ˝트리스탄˝은 첨 들어봐요 ㅜㅜ

바람돌이 2022-02-12 01:00   좋아요 2 | URL
플로라 트리스탄과 고갱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플로라가 죽고 몇년 뒤에 고갱이 태어났다죠. 가끔 이런 소설이 어떤 인문학적 책보다 한 인물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에 감탄하는데 이 책이 그랬습니다. 고갱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부분 인간성은 별로인데 그림은 훌륭한 뭐 이렇던데 이 책에서 묘사된 고갱은 정말 빌어먹을 인간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2-10 19: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직 손도 못대고 있는 책
바람돌이님이 제 마음을 바쁘게 하시네요 ㅠ
ㅎㅎ

바람돌이 2022-02-12 01:01   좋아요 2 | URL
그런 책은 저에게도 많습니다. 심지어 집에 읽을 책을 쌓아놓고도, 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다는..... 마음은 바쁘고 욕심은 나는데 시간은 항상 제 편이 아니네요. ㅎㅎ

coolcat329 2022-02-10 2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갱은 참 정이 안가요 ㅎ
저도 이 책 있는데 올해 꼭 읽어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2-12 01:02   좋아요 2 | URL
저는 고갱 그림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 묘사된 고갱은 진짜 나쁜 놈.... ㅎㅎ
올해 안에 올라올 쿨캣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

희선 2022-02-12 0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갱하고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탄은 만난 적 없을 것 같기도 하네요 플로라가 일찍 죽어서... 플로라 대단하네요 그때 여성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평등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다니... 고갱이 생각하는 천국은 자기 머릿속에만 있는 거 맞을 듯하네요 플로라가 생각하는 천국도 쉽게 만들기 어렵겠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다니...


희선

바람돌이 2022-02-12 01:03   좋아요 2 | URL
네 플로라가 죽고 몇년 뒤에 고갱이 태어났대요. 이 책에 보면 플로라가 그렇게 노동조합을 이야기하고 다닐때 실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예요. 대단한 인물이죠.
둘다 천국을 생각했으나 사실 이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통된데 그래서 아마 제목이 천국은 다른 곳에가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 다른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목의 다른 함의라고도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