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피해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거대한 여정이 시작되다

세븐이브스 1 - 달 하나의 시대
닐 스티븐슨 지음, 성귀수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5월

어느날 갑자기 달이 붕괴되어 버렸다. 그냥 익숙하게 하늘에 떠 있던 달이 없어져버린 것이 대수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달의 붕괴는 지구의 운명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달이 폭발하고 나서 생긴 달의 조각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결국 지구에 거대한 운석으로 끊임없이 떨어져내릴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없어지고 아예 다른 시대로 전환되어 버리는 미래가 예견되었다. 

인간은 항상 그래왔듯이 자연이 사람에게 부여하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사람을 우주로 내보내는 것이다. 땅을 파고 들어가서 사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면 광활한 우주로 사람을 보내서 인류의 멸망을 막자는 것이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커다란 계획의 시작을 매우 다양한 분야의 과학 지식을 총망라하여 설명하고 있다. 과연 작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온갖 과학 지식들이 등장한다. SF 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 독자 중의 하나이지만 이 정도의 수준이면 가히 하드 SF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비교적 가벼운 SF 소설을 즐기던 독자라면 약간 눈이 핑핑 돌 정도의 지식이 이 책 하나에 가득 담겨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세븐 이브스가 된 이유는 마지막에 일곱 명의 여자들만 살아남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1권에서는 아직 그런 재해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지구에 하드 레인이 내리기 2년전부터 실제로 우주 정거장을 만들고 그 곳에서 적응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척 치밀하게 그려나간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심정인지 약간 나오기는 하지만 결국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이지'라고 불리는 우주 정거장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앞으로 이야기도 이 곳에서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이 책을 통해서 참 많이 알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과학적 지식도 알아가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던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다. 

아직 1권밖에 나오지 않아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이 시리즈의 소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저 평온하기만 했던 우주 정거장에서도 이제 뭔가 큰 사건이 벌어질 것 같다. 이 책은 사람들이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조금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평소에 공상 과학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소설임은 틀림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우주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유통산업의 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 리테일 비즈니스, 소비자의 욕망을 읽다
석혜탁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4월

유통 산업은 꽤 재미있는 산업 중의 하나이다. 사실 물건을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좋은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제공하면서 그 마진을 이윤으로 챙기는 것이 유통 산업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유통 산업은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만 제조업체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플랫폼 사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예전에는 단순히 공간만 제공했다면, 다각도로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은 눈이 높아진 고객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유통 산업 현황을 상당히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제 대형 몰에 갈 때는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몰링'하러 간다고 말한다. 각 매장을 그냥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사는 식이다. 이미 서양이나 동남아에서는 한참 전에 일반화된 쇼핑 방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형 몰이 일상화된 것은 그리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다. 대형 몰 뿐만이 아니라 편의점, 드럭 스토어, 온라인 쇼핑몰 등 유통 산업에 관계된 것이라면 그 특징을 정확하게 집어내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유통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한 눈에 보인다. 

요즘에는 즐길거리가 워낙 많기 때문에 고객들의 분산된 관심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사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가게들이 이 책을 읽고나니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모두들 그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좀 더 진화된 유통 사업 모델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살짝 생겼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기업이 노력하는만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생긴다는 말도 되는 것이니 말이다. 

최근 소비 트렌드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서 경험을 사고파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유통이 보다 다각화된 것은 이런 사회적 경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의 말미에는 유통 산업에 관심있는 취업준비생들이 어떤 것을 준비하면 될지 조언과 실제적인 방법이 간단하게 실려있다. 꽤나 실무자적인 입장에서 쓰여있으니, 참고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대한민국의 유통산업 현황에 관심 많은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사람의 목숨은 공평하게 소중하다

얼음에 갇힌 여자 ㅣ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한겨울에 차디찬 호수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를 발견한 것은 영국의 소시민으로 처음에는 강렬하게 등장하지만 여느 작품처럼 조용히 사라진다. 그 여자는 영국의 귀족 집안 자제로 이 사건은 일어나자마자 영국 전역에서 큰 이슈거리로 다루어진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사로 에리카 포스터라는 여자 경감이 등장하는데, 독특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사건이 점차 진행되면서 경감의 과거와 절묘하게 겹치는 상황들이 발생하는데,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주인공은 특유의 기지로 그 상황을 해결한다. 

범인은 굉장히 잔인한 수법으로 사람을 죽였다. 이런 류의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폭력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서도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아마도 실제 사건에서는 이보다 더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주인공 덕분이다. 사실 영국도 무척 보수적인 나라 중의 하나로 온갖 사회적인 관습에 얽매여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귀족 집안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피해자들은 그런 관심조차 받지 못했었다. 비단 이번 사건에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영국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도 이미 조성되어있기 때문에 소설의 내용에 공감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예상하는 대로 어떻게든 사건은 해결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상처도 받았지만 어떻게든 사건이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사람의 이기심과 권력의 횡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강렬한 첫 시작만큼이나 마무리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아마 후회는 없을 것이다. 

윤디자인그룹의 예쁜 폰트 이야기

글씨의 정석 -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바른 글씨 연습
윤디자인그룹 지음 / 심야책방 / 2018년 4월

개인적으로 예쁜 폰트 사용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인터넷에 뒤져보면 무료 폰트들도 있지만, 가끔 이벤트로 정말 정갈한 유료 폰트들이 배포될 때면 어떻게든 다운로드 받아서 써보는 것이 재미있다. 여러 폰트 개발 회사들이 있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폰트가 많은 곳은 뭐니뭐니해도 '윤디자인그룹'이다. 단아하면서도 개성있는 폰트들이 많아서 이 곳에서 개발한 폰트라면 믿고 써도 좋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개발한 폰트를 바탕으로 손글씨 안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무척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이 책을 보면 폰트의 기본 용어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기본 개념을 배울 수 있다. 단순히 느낌대로 쓰는 손글씨가 아니라 폰트의 기본부터 배우는 느낌이라 좀 더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폰트를 전문으로 개발하는 회사에서 펴낸 책이다보니, 이런 부분도 신경쓰는 것 같다. 그리고 주제별로 폰트를 나눠서 각 폰트들을 소개하고 독자들이 직접 연습할 수 있도록 연습난도 만들어두었다. 물론 제대로 폰트를 손글씨로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 마련된 연습장 외에 별도의 연습장을 준비해야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연습하면 될지 가늠해보는 페이지라고 보면 되겠다. 

전체 30개의 예쁜 폰트들이 가득 실려있는데, 단순히 손글씨 연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폰트는 어떤 느낌과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주관적인 느낌과 함께 실제로 폰트 개발을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지 엿볼 수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실제로 폰트를 만들 때는 이것보다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와 개발을 하겠지만,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이정도만 알아도 많은 지식을 쌓은 듯한 기분이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글씨체도 실려있어서 특히 그 부분은 유심히 읽어보았다. 

사실 글씨를 쓰는데 정석은 없다. 하지만 보기 좋은 글씨체는 분명히 있다. 그 때문에 예쁜 글씨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보면 보기 좋은 글씨의 조건이란 무엇인지 조금은 개념이 잡히는 듯 하다. 물론 개인적인 호불호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보편적인 느낌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글씨체를 잘 만든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글씨체 연습책이니, 평소에 예쁜 글씨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너무 예쁜 글씨들이 많아서 무엇부터 연습해야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내 영혼이 바뀌어버렸다

암보스 ㅣ 수상한 서재 1
김수안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이 작품의 도입부는 상당히 강렬하다. 도대체 이 사건들이 어떻게 얽혀있는 것인지 정신못차리면서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느새 놀라운 결말을 알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약간 공상과학 소설과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생활하게 된다는 설정이 영화에서 보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좀 황당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문체는 담담한 편이다. 어떤 놀라운 사건이 벌어져도 꿈쩍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담담함이 끔찍한 사건에 대한 묘사를 조금 완화해서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의 잔인함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기묘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여러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장르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사건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서 서로의 몸이 바뀐 두 여자는 어떻게든 주변인들을 속이면서 1년만 버텨보기로 약속을 했다.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이 전혀 달랐던 그들은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적응되니 그런대로 할만했다. 

제목부터 무척 특이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암보스 Ambos"는 스페인어로 "두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영혼이 바뀐 이야기가 메인이니, 충분히 개연성 있는 제목이기는 하다. 다만 한국 사람의 정서에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라 좀 더 강렬한 한국어로 된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서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서 나에게는 상당히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나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보면, 주인공처럼 과감하게 행동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소설 속 가상의 상황이니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행동까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초중반에는 상당히 의문점이 많고 혼란스러운 내용이었지만, 후반부를 갈수록 조금씩 상황이 정리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독특한 구조의 소설을 만났다. 평소에 스릴러나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상당히 구미가 당길만한 요소들을 가득 담고 있는 작품이니,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