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나 혼자 쓴 것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희귀한 사진을 제공하셨고 도움을 주셨다. 여러 출판사에서도 귀한 원본 사진을 기꺼이 보내주셨다.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내면서 특별히 좋았던 점은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이 베푼 거대한 선행과 아내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분의 자제분은 사실 관계 확인과 사진 자료를 보내주셨는데 고맙게도 학창시절에는 넘지 못할 거대한 적이었던 성문종합영어도 보내셨다.

고등학교 시절 그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분의 자제분이 보내주신 성문종합영어를 붙잡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영어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이 책을 여러 번 보았다고 생각들 할지 모르겠다. 정확히 나는 전체 20장중에서 6장까지 겨우 공부하다가 덮었었다. 대신 내가 탐닉한 것은 <진본 영문해석 1200제>라는 책이었다. 나는 영어 참고서를 표지를 보고 선택한 학생이었다.
그 해 대입 영어 시험지를 보자마자 성문종합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차원이 다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더라. 물론 <진본 영문해석 1200제>도 영어 참고서의 고전으로 군림한 좋은 책이다.
일본 참고서를 참고해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오명을 송성문 선생은 한평생 변명하지 않으셨고 대신 문화재급 서책과 자료를 수집하는데 몰두했다. 송성문 선생이 평생 모은 문화재를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그 양과 질이 박물관이 개관한 이후로 최대, 최고였다. 박물관 관계자 입장에서는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내가 송성문 선생을 더욱 존경하게 된 것은 당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시 두 편을 읽고 나서였다. 고구마 줄기 무침을 유난히 좋아하셨다는 송성문 선생의 소박하고 진솔한 아내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시를 책에 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바둑 소설 <명인>을 번역했던 민병산 선생의 자제분도 내게는 은인 같은 분이다. 최근에 번역된 <명인>도 좋은 번역이긴 한데 민병산 선생의 번역본은 <나는 이 소설의 작자인 가와바타 야승나리보다 그 번역자인 민병산 선생의 글을 더 좋아한다>로 시작하는 신경림 선생의 작품해설이 유명하다. 또 민병산 선생 본인이 바둑 광이어서 번역이 유려하다.

참고로 <명인>은 불패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와 젊고 패기만만한 기타니 모노루(조훈현 9단의 스승이기도 하다)와의 반년에 걸친 대국 관전기라고 볼 수 있는데 바둑을 둘 줄 모르는 나도 흥미롭게 읽었을 정도로 묘한 재미가 있다.
어쨌든 민병산 선생의 자제분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 분에 대한 일화와 귀한 자료를 기꺼이 제공하셨다. 민병산 선생의 일대기와 마지막을 읽게 되면 이 분의 인품과 인간미에 누구나 감탄하게 되리라.
민병산 선생의 자제분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보내드렸는데 며칠 후에 내가 보냈던 택배 봉투가 고스란히 돌아왔다. 개봉해보니 서예가로도 유명한 민병산 선생의 작품이 들어있었다. 그 고마움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서 그 분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한참을 연습한 뒤에 전화를 드렸었다. 표구를 해서 서재에 모셔두고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