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요리 -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해럴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 이데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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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욕심이 많다. 탐나는 책이 있으면 일단 지르고 본다. 자연스럽게 종종 내 독해력으로 감당이 안 되거나 내 인내심으로는 완독할 수 없는 책이 배송 되어 온다. 그런 책들이 도착하자마자 그 책을 보유한다는 자부심만 챙기고 서재의 로열석에 모신다. 돈을 썼으니(어려운 책은 대개 비싸다) 내가 그 책을 읽은 것처럼 자랑해야 할 것 아닌가?

양심은 있어서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정신승리 거리를 남기는 편이다. 가령 <우아하고 낭만적인 일본 야구>를 읽다가 금방 포기하지만, 일본야구팬에게 권할 만한 책은 아니다는 정도의 손바닥 지식은 챙긴다.‘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이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1,260쪽짜리 <음식과 요리>가 내 책상 위에 올려졌을 때 ‘정신승리 거리’를 찾는 것조차 만만찮겠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책장을 넘기는 것도 운동인데, <음식과 요리>를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은 100kg짜리 역기를 드는 것과 진배없어서 책상에 모신 채 힘겹게 구경했다. 어서 이 괴물을 내 책장의 한가운데에 모셔두고 나의 서재 방문객들의 찬사를 받고 싶다.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고시공부를 하는 자태로 ‘나, 이 책을 읽었소’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 나섰다. 정가가 무려 8만8천 원인 명저답게 금방 나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누구도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하고 공생적인 파트너십의 결과물임을 쉽게 망각할 수 없었다. 또 누구도 돼지와 소가 죽은 덕분에 우리가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낯익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것을 지켜보았고, 정기적으로 마구간을 들었고, 자신의 일상 식사를 위해 그 동물들이 목숨을 읽게 될 도살장을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 세월이 흘러 이제 고기를 먹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들이 씹고 있는 그 살의 주인이 살아 있는 생명체 일 때의 모습을 본 사람은 매우 드물다. 자신들이 그 동물들을 실제로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 포장의 세계에서 먹는 행위가 죽이는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도덕적 의미를 지닌 것임을 떠올리지 않기란 아주 쉽다. (....) 고기란 이제 마켓에서 산구입한 깨끗이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다. 자연은 그것과 별 관계가 없다.” -월리엄 크로넌 <음식과 요리> 201쪽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때 닭과 소는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 어머니는 농사일하다가 끼니때가 되어서 집에 돌아오시면 ‘말 못 하는 짐승이라 배고파도 말도 못 한다’며 소여물을 먼저 챙기고서야 식사를 하셨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 살던 소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우리 집 소들은 우리 집 소처럼 생겼었다. 송아지가 팔려나가면 어미 소는 여물을 내팽개치고 며칠간 목이 터지라 울었다. 소와 함께 살았지만, 실수로라도 소들은 내 발을 밟은 적이 없고 꼬리로 내 뺨을 때린 적이 없다. 

겁이 많고 도망 다니기 바빴던 암탉들은 병아리를 거느리면 그 어떤 맹수보다 무서웠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희생되었다. 송아지는 팔려나갔고 닭은 제사상에 올려졌다. 그들과의 이별은 사람이 늙어 죽는 것과 다름없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닭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서기 2000년생인 내 딸아이도 내가 ‘닭고기’라고 불렀던 ‘치킨’을 좋아한다.

닭고기라는 말에는 ‘닭의 희생과 미안한 감정’이 스며있지만 ‘치킨’이란 말에는 닭이라는 생명체는 배제되어 있다. 치킨은 콜라와 과자처럼 ‘공산품’이 되었고 닭이라는 모성애가 강한 생명체와는 별개의 먹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고기란 이제 마켓에서 구입한 깨끗이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다”라는 ‘월리엄 크로넌’의 한탄이 19세기의 것임을 아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무자비한 사육환경’에 고통 받는 소와 돼지 그리고 닭을 연민하여 고기를 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좀 더 인간적인 사육환경을 의무화한다면 ‘치맥’은 어쩌면 상위 1% 귀족들만의 음식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고기에 환장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사육환경이 잔인하게 된 것은 인구의 증가로 인한 대량소비에 기인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채링크로스 84번지> 개정판이 나와서 얼른 샀고 다시 읽었다. 무명작가와 헌책방 주인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끼는 책은 책 속의 주인공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같은 책을 두 권 가지고 있는 사치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뉴욕의 가난한 작가와 궁핍했던 영국의 헌책방 직원의 인연을 이어준 것은 ‘헌책’과 ‘고기’다.

“친애하는 한프 양. 달걀과 혓바닥 고기 통조림 두 상자가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을 아시면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모두 당신의 매우 자상한 마음씨에 다시 한번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62쪽

대량소비를 위한 잔혹함과 ‘좀 더 인간적인 사육환경’의 간격은 줄어들 수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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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9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05-09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돼지와 닭의 사육 환경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까이서 이 동물들을 접할 기회가 없던 저로서는 착찹한 충격이었죠. 그때까지 돼지는 고기였고, 닭은 백숙이나 삼계탕의 재료였거든요. ‘고기가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라는 한탄에, 그럴 수 있겠다 공감합니다.
간혹 있는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을 환장한 듯 흡입하는, 음, 모순투성이 채식주의자가 거리낌없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존재들이 한 때는 나와 마찬가지로 숨쉬던 생명이었음을 종종 생각합니다. 인간, 참 잔인하고 욕심많은 존재다 하며.

박균호 2017-05-09 19:29   좋아요 1 | URL
네 그렇죠 인간의 이중성요 ㅠ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2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이봉지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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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그분들이 하는 말이나 운동 따위에도 관심이 없고 동조도 하지 않는다. 여성혐오도 남성혐오도 다 혐오한다. 솔직히 토로하자면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군인들의 백일휴가를 ‘백일 동안의 휴가’로 생각하고, 군대를 ‘가고 싶고,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학점을 딸 수 있는’ 캠핑쯤으로 여기는 여자들을 연상하게 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담보하지 않듯이,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그의 실생활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부합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의 강간을 돕기 위해 돼지 발정제를 구해준 모 정치인처럼 ‘스트롱맨’은 아니다. 그 양반처럼 스트롱맨 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도 이유도 없다. 

여성의 지위나 남성의 지위를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인권’이라고 통틀어서 다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린 모두 여자를 엄마로 두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한 가족이고 같은 인간일 뿐인데 여성의 지위가 높네! 남성의 지위가 높네며 싸우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가족일 뿐이다. 사회가 발달할 수록 어차피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별은 완화되기 마련이 아닌가? 현재만 해도 여자가 모든 면에서 남자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나에게 눈에 띄는 페미니스트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지 엘리엇’이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작가의 책>을 읽는데 지금까지 읽은 독서에세이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지 <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장이 영미의 작가를 찾아 그 양반들의 독서와 책에 관한 문답을 실은 책이다. 다양한 작가들이 등장하는데 질문은 비슷하다.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 질문들이 오롯이 ‘독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면면은 대충 이렇다. 

“지금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책을 한 번에 한 권씩 읽으시는 편인가요”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끌리시나요? 피하는 이야기 종류는요?” 
“당신의 책장에 잇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자기계발서도 읽으시나요? 추천할 만한 책이 있다면요?” 
“가장 최근에 당신을 소리 내어 웃게 만든 책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눈물을 자아낸 책은요? 가장 최근에 당신을 화나게 만든 책은 무엇이었나요?” 
“대통령께 단 한 권의 책을 권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권하시겠습니까?” 
“아이들과 함께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좋아해야 마땅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책이 있습니까?

                                                              


고인이 되었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가운데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이런 종류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또 다른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는 것인데 <작가의 책>은 훌륭히 그 기능을 다 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인터넷 서점에 검색하게 된다. 언급된 책이 국내에서 번역되었고,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수십 권의 책이 장바구니에 담기는 수확을 일궈냈다. 

그중의 한 권이
 <미들마치>라는 책인데 다른 작가에 의해서 두 번 정도 언급될 때까지는 지나쳤다. 제목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세 번째로 이 책이 언급되었을 때 참지 못하고 이 책의 서지사항을 검색했다. 놀랍게도 러시아 문학의 <전쟁과 평화> ,프랑스 문학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고전의 하나였다. 출판사의 소개는 이렇다.‘지방생활의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작품은 영국의 작은 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지주, 목사, 제조업자, 전문인, 상점주인, 선술집주인, 그리고 농부와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19세기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분량이 놀랍다. 국내에는 완역본이 아닌 169페이지짜리 축약본만 나와 있는데 원작은 이 책의 15배 분량이라니 거저 놀라울 따름이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미들마치>의 저자 ‘조지 엘리엇’을 흠모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에 뜨악한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페미니스트가 바로 ‘조지 엘리엇’이다. 1819년에 태어난 ‘조지 엘리엇’은 이름이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 남자가 아닌 ‘메리 앤 에번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다.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에 맞서려고 일부러 남자 이름을 사용했고 당시 독자들은 물론 ‘조지 엘리엇’을 남자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유부남인 ‘조지 헨리 루이스’와 동거를 해서 영국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루이스의 격려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루이스가 사망하면서 그녀는 더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루이스가 사망한 2년 뒤 20살 연하의 ‘존 월터 크로스’와 결혼하지만, 그해 세상을 떠났다. 

어쨌든 아래의 소개를 읽고 있노라니 <미들마치>의 완역본이 국내 독자를 위해서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또 다른 소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은 완역되어 국내 독자가 읽을 수 있는데 이 소설 또한 ‘조지 엘리엇’의 자전적 소설이고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이라니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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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5-07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만담>을 읽으며 저도 수없이 검색을 했지요^^ 저도 갖고 있고 읽은 책을 발견하면 반가웠구요. 그 중 한 권이 허구연의 <여성을 위한 친절한 야구교과서> 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호호^^
작가의 책도,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도 사놓고 못 읽은 (수많은-_-) 책들 중 하나네요.ㅠㅠ;

박균호 2017-05-08 08:52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ㅎㅎㅎ 근데 작가의 책은 외국책이라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드문게 아숴웠어요 ㅠㅠ 그나저나 달밤님 댓글 참 반가웠습니다!!!!
 

유명인사들이 SNS에 올린 게시물 때문에 곤욕을 치를 때마다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고 말한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의 감독인 퍼거슨의 선견지명을 되새긴다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SNS에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SNS를 즐기는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책을 읽는 사람과 비교되어 자투리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과연 SNS는 단지 시간 죽이기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아름다운 모습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행위인가꼭 그렇지만은 않다. SNS는 이 시대의 천재가 만들어낸 도구다자동차나 비행기보다 더 혁신적인 발명품이다어떤 물건이나 제도라도 사용자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을 한다. SNS를 굳이 잘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에 구속될 필요도 없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목적을 가지고 사용한다면 천리마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를 얻는다.

 

SNS를 글쓰기의 장으로 애용하는 나의 상황을 설명해보자지방 소도시에 사는 나의 주변에 출판이나 글쓰기 또는 책과 관련이 있는 인사는 동네서점 사장논술학원 원장이자 시조 시인지역 신문사의 편집장이자 사장이 전부다. SNS의 세계로 가면 사정은 다르다고등학교 시절 흠모했던 시인대학 시절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던 소설의 저자내가 즐겨 있는 책들을 펴내는 출판사의 사장편집자온라인서점 간부 등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나는 페이스북 사장만큼이나 페이스북의 안녕을 기원한다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고자신이 저술한 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출판업계의 사정을 경청할 수 있는 상대가 페이스북에 있다페이스북이 주는 효용성과 정보의 가치는 너무나 커서 페이스북이 없는 글쓰기를 상상하기 어렵다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나라고 무심결에 페이스북에 로그인해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시간이 왜 안 아깝겠는가적어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을 간헐적으로 내는 나로서는 페이스북이 주는 혜택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시간 죽이기는 그따위에 불과하다.

 

나는 페이스북을 이렇게 활용한다

끊임없이 인터넷으로 사실을 점검하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글을 쓰는 나로서는 책을 내겠다고 사전 한 권만 들고 산속에 틀어박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생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나의 저작물을 고려해보면 다른 사람과 일상생활을 하지 않고는 쓸 수도 없다한 꼭지를 쓸 때마다 독자들의 피드백이 필요해서 SNS에 매번 포스팅한다독서만담(북바이북)이나 그래도 명랑하라아저씨!(바이북스)에 사용된 소위 자기 비하 개그’ 문체는 몇 년 전 내 글에 달아준 페이스북 친구의 지금까지 선생님이 쓴 글 중에서 제일 재미나요라는 댓글 덕분에 탄생한 것이다.

 

별 생각 없이 쓴 글인데 그 댓글을 읽고 이런 문체를 재미있어 하는 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그 이후로는 쭉 시시콜콜 개그 문체를 고수해왔다그 결과물이 위에서 언급한 그래도 명랑하라아저씨!와 독서만담이다페이스북에서 읽은 댓글 하나 덕분에 내가 올린 글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도 웃고 갑니다라는 댓글을 매번 받았고어쭙잖지만 책을 두 권이나 냈으니 페이스북에 엎드려 절을 해도 시원찮다.


생각날 때마다 한 꼭지씩 포스팅했고 독자들과 소통을 즐겼으며 칭찬을 많이 받았다웃고 즐기는 사이에 책을 낼만큼의 분량이 되었다한 가지 문체를 고수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별 생각 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글감을 발견하고는 한다페이스북을 활용한 나의 글쓰기에 창작의 고통이란

없었다.

 

페이스북은 마감의 압박 또한 없다나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게으름뱅이에게는 이보다 더 쾌적한 글쓰기 공간이 어디에 있겠는가페이스북 친구들은 끊임없이 내가 올린 글의 편집자이자 독자이자 교정자가 되어준다하다못해 틀린 맞춤법을 지적해주는 이도 무엇보다 소중하다내가 쓴 글을 혼자서 읽고 퇴고를 한다면 나만의 생각에 함몰되어서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의 견해를 듣지 못한다.

 

재미나다고 생각한 글에 독자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별 기대 없이 올린 글에 환호하기도 한다확실히 작가가 자신의 글에 대해서 자평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작가는 독자들의 호감과 공감을 먹고사는데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말이다인터넷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는 글을 굳이 돈을 주고 사람들이 사 볼까 하는 우려는 접어두시라당신이 책을 냈을 때 가장 먼저 지갑을 여는 독자는 평소에 당신의 글을 매일 읽었던 페이스북 친구들이다당신의 글을 좋아하고 읽었던 독자는 웹으로만 읽었던 글을 종이에 인쇄된 형태로 읽어보고 싶어 한다읽지 않더라도 소장하고 싶어 한다어느 작가의 책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모아서 출간되었다고 해서 책값을 아끼겠다고 그 작가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은 다음 책 한 권의 분량의 포스팅을 일일이 스크롤을 내려가며 읽을 정도로 알뜰한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나는 페이스북을 이렇게 관리한다

우선은 특별히 부탁하지 않는 이상 내 글쓰기와는 무관한 게시물을 공유하지 않는다아니다공유 자체를 경계한다심지어 내 책이 출간되고 내 책에 대한 찬사가 가득한 서평 기사나 글을 공유할 때도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게시물을 삭제한다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자신의 글이 없고 공유만 잔뜩 해놓은 이와 친구를 맺고 싶은가나의 페이스북 계정은 원고지라고 생각한다원고지에는 오로지 자신의 글로만 가득 차야 한다.

 

내가 꿈꾸는 페이스북 생활이란 이런 거다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내 책 나왔으니 돈 주고 사시요라는 포스팅을 올리지 않는 것내 책에 대한 서평 기사가 나왔다고 해서 제발 공유 좀 하란 말이야라며 그 기사를 공유하지 않는 것평소와 다름없이 독자들의 배꼽을 도둑질하기 위한 만담을 포스팅했는데 선생님 새 책 나왔네요축하합니다라는 독자들의 댓글에 점잖게 어떻게 아셨어요?’라며 무심히 반문하는 것내 페이스북 계정에 내가 쓴 책을 구매한 인증사진을 태그하는 독자에게 정중하게 내 계정은 오로지 나의 것이니 수고스럽게 그런 인증사진을 안 올리셔도 됩니다라며 부탁하는 것다시 말하자면 페이스북 나의 계정에서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나의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관리를 한다는 말이다내가 방송국을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중간에 광고를 끼워 넣어서 좋을 게 없다.

 

모 온라인서점에서 별도로 활동비를 받기 때문에 상도덕을 생각해서 내 글을 올릴 때 온라인서점 블로그 주소를 링크하는데이마저도 내키지 않는다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쾌적한 글 읽기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굳이 링크해서 새로운 창을 열어야만 내 글을 읽고 싶게 하고 싶지 않다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굳이 그런 불편함을 끼치고 싶지 않다공유된 기사를 읽고 싶어서 환장할 정도로 소개 글을 남기지 않는 이상 그 기사를 읽어줄 만큼 한가한 사람은 많지 않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같은 글이라도 링크 없이 타임라인에 고스란히 포스팅하는 것이 링크 속에 넣어서 포스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좋아요를 얻는다현대인들은 광고라면 치가 떨린다당신의 독자는 또 한 번의 클릭은 또 한 번의 광고에 노출되는 일이라거나 다른 누군가의 돈벌이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각박한 세상에 소통하겠다고 당신의 친구가 되어준 고맙고도 불쌍한 독자들을 자본주의의 먹잇감으로 내몰 필요도 없고 그 노릇을 감수해주는 친구는 많지 않다.

 

내가 원문을 페이스북에서 다 읽을 수 있도록 하고 하단에 링크를 걸어두는 이유다각자 취향대로 편하게 내 글을 읽으라는 의도다링크된 사이트가 가독성이 더 좋게 느껴지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나는 독자 편의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작가다댓글이 100개가 달려도 일일이 답글을 남긴다독자가 친히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내 잡문을 읽어주는 것으로도 부족해 친히 댓글을 하사하셨는데 감히 그 댓글에 좋아요를 클릭하는 것으로 끝내는 무례한 짓은 하지 않는다답글을 달아주는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마치 복사하기 기능을 사용한 것처럼 똑같은 내용을 남기지 않는다조금씩 다르게댓글을 달아준 친구의 상황에 걸맞은 답글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글을 쓰더라도독자들이 내 글을 읽고 싶어 하더라도 작가는 독자들의 이 될 수 없다나의 글에 좋아요를 매번 눌러준다는 것이 매번 재미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그간 읽었던 재미있는 글에 대한 감사와 신의의 표시로 비록 재미가 없는 글이지만 좋아요를 적선하는 독자도 있다.

 

다른 작가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내 책에 대한 서평을 그 어떤 글보다 정독한다칭찬하면 쑥스럽고 악평을 하면 서운하지만분노는 하지 않는다내가 쓴 글은 뼈를 깎는 고통이 동원되지 않았다산속에 틀어박혀 수도승 생활을 하면서 쓴 글도 아니다그저 매일 독자들과 웃고 즐기면서’ 쉽게 쓰인 글이다들인 피와 땀이 없으니 분노할 자격이 없다그저 잠시 귀신에게 홀려서’ 지갑을 연 독자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기획회의’ 437(2017. 4. 5) 특집' 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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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4-16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의 첫 책이 나올 때 여기에 호들갑 좀 떨긴 했지요.
첫 책이니 오죽했겠습니까?
늘 독자로만 있다가 아마추어 작가가 되었으니
아마추어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죠.
그때부턴 프로 아닙니까?
프로 작가들도 자기 블로그나 sns에 글을 쓰고 책으로 묶어낼 땐
냈는지 마는지 무심하잖아요.
뭐 한 번 정도 회고하는 글 정도 올리겠죠.
그게 ‘나 책 냈소.‘ 알리는 거겠죠.
그런데 문제는 저의 두 번째 책은 언제 나올지 몰라
그 무시함듯 시크하게가 안 되고 있다는 거죠.
전 뭘 가지고 두 번째 책을 써 보나 고민중에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ㅠㅋ

박균호 2017-04-16 19:19   좋아요 2 | URL
그런 고충이 있으셨군요...꼭 두번째 책을 내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7-04-16 19:29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어요.
그냥 균호님 글 읽은 김에 투정 한 번 해 본 겁니다.
글 써서 돈 벌어먹을 생각이었다면
이런 투정도 안 하죠. 그냥 쓰면 되니까.
그리고 글이란 게 어디 닥달해서 나오는 거던가요?
다 시간의 퇴적물 아니겠습니까?
그냥 꾸준히 책 내는 사람들 부럽기도 하고 해서.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ㅋㅋ

어린왕자 2017-04-25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지난주까지 독서만담을 읽은 독자입니다. 저는 집은 경주이고, 올해 울진 후포로 발령나서 혼자 살고 있는 초등교사입니다. 책을 사량하는 것과 낯선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이 저와 닮아서 낄낄거리며 읽었답니다. 에피소드 중 귀곡산장 휴게소가 궁금한데.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가까운 곳이면 남편과 가보려고 합니당^^

박균호 2017-04-25 11:18   좋아요 0 | URL
아...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0708sm&logNo=220839265080 여기랍니다...ㅎㅎㅎ
 

수업시간에 focus라는 단어가 나와서 칠판에 적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라고 물었다. 한 여학생이 남자친구에게 ‘초점’이라고 속삭였다. 남자친구가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이다. 불행하게도 남자친구 녀석은 잘 못 알아듣고 나에게 ‘초급’이라는 뜻이라고 말해 버렸다. 

어이없어하는 내 표정을 보고 또 다른 녀석이 이렇게 말한다. “에이, 선생님 저건 ‘초보’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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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6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박에 빠진 사람은 ‘Poker’라고 생각할 겁니다.

박균호 2017-03-16 15:26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ㅎㅎ

cyrus 2017-03-16 15:34   좋아요 1 | URL
재미없어도 아재개그라고 생각해주세요.. ㅎㅎㅎ

박균호 2017-03-1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재미있는대요..ㅎㅎ

moonnight 2017-03-23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학생의 마음이 눈물겹네요ㅎㅎㅜㅜ;

박균호 2017-03-2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2017-03-2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3-28 20:51   좋아요 0 | URL
네 수정해서 2쇄 나왔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2017-03-28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3-2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을요 진심으로 정말 고맙습니다
 

<독서 만담>을 내고 두 번 째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예상 질문지를 무시한 송곳 질문에 진땀을 흘린 경험을 토대로 이번엔 작가 선생에게 ‘대본대로’ 가자고 요구했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우린 거의 대본대로 갑니다”라는 작가분의 답변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고 이 나이 먹도록 여의도에만 있을 줄 알았던 방송국이 상암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해하면서 택시를 탔다. 


약속된 시간이 10분 앞으로 다가오자 지금껏 유유자적하듯이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작가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역시 방송국 직원들에게 ‘약속 시간’은 금인 모양이다. 아무리 촌놈이라도 방송국 정도는 제대로 찾아갈 자신이 있다면서 작가분을 안심시켰고 내 눈앞에는 방송국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다. 


방송국 앞이라는 기사 양반의 말을 듣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시청처럼 군계일학의 건물이 아닌 여러 내로라하는 건물이 꽉 차 있는데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내가 촌놈이라는 것을 익히 아는 작가분은 적절한 시기에 또 전화를 걸어왔다. ‘초록색 동상’이 세워진 곳 근처란다. 그 동상을 지나면 ‘물방울 조형물’이 보일 텐데 바로 그 뒤 건물이 바로 내가 갈 곳이라는 것. 


문제의 초록색 동상은 쉽게 찾았다. ‘물방울’이 보이지 않는다. 물방울이라고 하길래 빗물을 생각했다. 빗물만 한 크기의 물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엮어져 있는 조형물을 상상했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입안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눈앞에 웬 집채만 한 조형물이 보이긴 했다. 물방울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서 뒤로 물러서서 그 ‘괴물체’를 다시 보았다. 어찌 보면 물방울처럼 생기긴 했다. 작가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했다. “물방울처럼 생겼는데 집채만 한 크기에요 ‘라고 말이다. 


다행히 방송작가 선생은 나를 발견했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진행자분은 푸근한 아저씨 스타일이셨고 도저히 대본에도 없는 질문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독서 만담>을 꺼내시는데 물을 쏟아서 책표지가 물에 넣어진 라면 사리처럼 불어 있었다. ‘너무 열심히 보시다가 물을 쏟았다는데’ 책을 열심히 보는 것과 물을 쏟는 행위의 상관관계가 언뜻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분은 분명 내 책을 꼼꼼히 보신 것은 확실했다. 


내가 책 수집가라는 것을 알고선 본인이 너무나 아껴서 ‘집 밖으로 절대 가져 나오지 않는 희귀본’을 노란 봉투에 서너 권 넣어오셨다. 자연스럽게 ‘뭘 또 이런걸’이라며 그 책들을 내 가방에 넣으려고 지퍼를 열려는 순간 똑똑한 작가분은 나를 대신해 적절한 질문을 던지셨다. 

“와, 이 책을 박균호 선생님에게 선물하시는 거예요?” 진행자분은 단호했다. ‘그냥 구경만 시켜드릴’ 것이란다. 하마터면 실수할 뻔 했다.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초판본을 비롯한 여러 권 보여주셨는데 애써 ‘진귀한’ 물건을 보는 시늉을 했다. 녹음이 시작되었다. ‘우린 대본대로 해요’라고 듣고 왔는데 첫 질문부터 ‘우리도 대본대로 하지 않아요’는 식이다. 억만금을 남기는 부모의 유언보다 더 집중해서 진행자분의 질문을 들었다. 


예상 질문지에 맞춰서 생각해둔 ‘주옥같은’ 멘트를 하나도 하지 못해서 분했다. 심지어 책 내용의 일부를 나더러 낭독하란다. 군대 시절 말고는 경상도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구사하는 사투리로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글을 쓰고 나면 낭독해봐야 한다는 선현의 가르침이 맞다. 글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너저분한지 읽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권투라면 수건을 던지고 싶었고, 야구라면 패전처리전문 투수를 올릴 터였다. 당황하고 창피해서 차마 스튜디오 밖의 P.D 양반의 얼굴도 못 쳐다봤다. 방송국 물을 한두 해 먹은 것도 아니어서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보면 딱 견적이 나올 텐데 녹음은 계속 이어진다. 듣기로는 녹음이라 언제든지 ‘끊어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로기 상태가 되었는데도 ‘끊지’ 않는다. 


치욕스러운 시간은 끝은 났다. 고통의 시작이 다가왔다. 저자 서명을 해달란다. 붕괴한 정신을 간신히 가다듬어 서명하는데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진행자분이 말을 건넨다. 이건 마치 뇌수술을 하는 의사에게 중국집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것과 진배없다. 대답하지 않았다. 서명하기에도 너무나 힘든데 진행자의 방송시간외에 하는 질문에 대답할 여력 따위는 없다. 


방송작가분은 나의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었다. 작가분은 촌놈의 안위가 걱정되었는지 방송국 밖까지 배웅을 해주었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다. 본인이 맡은 다른 프로그램에도 <독서 만담>을 소개하시겠단다. 


다음 날 저녁 세 번째 라디오 출연이 이어졌다. 지역 프로그램이라 편안했고 예상 질문지 따위는 주지 않았다. 이미 부 번을 속은(아니 농락당한) 나는 질문지를 받았다고 해도 연습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질문지와는 상관없는 질문이 쏟아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속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는데 이번엔 속을 일이 없었다. 원래 사전 질문지를 주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대화를 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란다.


진행자분은 과연 편안하게 대화하듯이 인터뷰를 이어나갔고 속은 것에 대한 분노가 없었던 나는 지난 두 번의 방송보다 훨씬 더 잘 인터뷰에 응했다고 자평할 만 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작가분은 ‘어쩌면 이게 제일 어려울 수 있어요’라며 한가지 미션을 주셨다. 일일 d.j가 되어서 동네 주민들에게 노래 한 곡을 선택하고 ‘추천의 변’을 남겨 달라신다. 


“안녕하세요? 포항시민 여러분, 일일 D.J 박균호호 입니다. 제가 들려드릴 곳은 국카스텐의 ‘나비’입니다. 평소 아내가 좋아하는 곡이에요. 저와 함께 국카스텐의 ‘나비’를 들어보아요”라는 논평을 뱉어낸 나는 거의 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역방송국에서 듣기 거북한 사투리로 노래를 신청한 분들의 ‘위대함’을 알겠다. 


역시 다정하고 내 책을 진심으로 좋아해 준 진행자분의 배웅을 받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심각한 손상을 입어서 혀끝만 닿아도 아픈 오른쪽 어금니로 삼겹살을 씹어버렸고 골프연습장에서는 공을 맞히고 싶었으나 허공만 세 번 가른 다음,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숙소로 향했다.


방송 내용 듣기 : http://www.podbbang.com/ch/70 후반부에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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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3-12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맛 겸손이셨네요. 친근한 목소리로 방송 잘 하셨는데요.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저랑 같은 생각 많으셔서 막 웃으면서 들었습니다. 호호^^

박균호 2017-03-16 18:54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해요 ㅠ

오해관 2017-03-13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송을 먼저 듣고 책 구매하려고 하네요^^
포항이 고향이라... ㅎㅎ 잘들었습니다^^

박균호 2017-03-16 18:54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 더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