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와 산다
한기호 지음 / 어른의시간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가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중에 하나가 ‘어머니를 손수 간병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만의 특수한 경험인지는 모르나 내가 중풍으로 쓰러지신 어머니를 돌봐보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크다는 것도 영원히 몰랐을 것이고, 손수 씻겨드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2002년에 새벽녘 밭에서 쓰러지시고, 늘 함께 다니던 애완견의 애탄 구조요청덕분에 간신히 병원으로 옮겨지신 어머니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정확히 12곳의 병원, 요양병원, 거처를 옮겨 다니셨고 그 모든 행선지는 내가 결정하고 함께 했다.


어머니가 치료받은 네 번째 병원에서 나의 도움으로 간신히 대변을 해결한 후에 서럽게 우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앞으로 밥은 누가 해줘서 먹을꼬’라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그 죄송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종가집의 종부로 살아오면서 가족과 얼굴도 모르는 시댁의 조상의 제사밥을 하는 일로 평생을 보낸 어머니가 늘그막에 병이 들어 당신 자신의 밥걱정을 하셨던 게다. 병세의 호전도 호전이지만 당신께서는 ‘끼니를 때우는 일’이 암담하셨던 게다. 종가의 종부로 평생을 살다시피한 어머니께서 말년에 몹쓸 병을 얻었는데 당신자신의 ‘끼니’를 걱정하게 한 아들의 불효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내가 12년간 주로 남의 손을 빌려 어머니의 끼니를 봉양했다면 <나는 어머니와 산다>를 출간한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소장)씨는 치매초기의 어머니를 삼시세끼를 손수 봉양해오고 있다. 나 자신도 2년간 직접 우리 집에 모시고 어머니를 돌본 경험으로 비추어 6년 이상 치매 노인을 손수 봉양한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한기호 소장은 홀로 살며, 그 자신도 노년에 치닫는 나이라서 더욱 그렇다.


혼자서는 거동을 못하는 반신불구의 중풍환자를 돌보는 것과 사지는 멀쩡하지만 치매를 앓는 노인을 돌보는 일을 비교하자면 후자가 훨씬 더 힘들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그랬다. 중풍환자인 어머니는 기저귀를 갈아주고, 식사를 챙기고 나면 적어도 3~4시간의 ‘망중한’을 즐길 수 있지만, 치매 환자는 하루 종일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 중풍환자는 그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환자가 불편한 점을 듣고 해결해줄 수 있지만 치매환자는 본인이 어디가 불편한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렀다고 한기호소장이 하는 일이 없어서 어머니에게만 전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한기호소장은 한국출판사마케팅  연구소 소장으로서 한 달에 3건의 잡지를 펴내고, 단행본을 수시로 낸다. 그뿐인가? 출판계의 쓴 소리꾼으로서 열정적으로 각종 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내고, 서평가로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서평 글을 써야한다.


누구보다 바쁘고 열정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6년간의 어머니 간병일기를 엮어서 <나는 어머니와 산다>를 펴낸 것이다. 한기호소장을 존경스러운 것이, 나는 12년 동안 ‘어머니를 좀 더 잘 치료할 의사, 좀 더 잘 보살펴줄 시설’을 찾는데 주로 골몰을 한 반면, 그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수산시장에 들러, 민어를 사서 어머니를 위해 직접 요리하는 일상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기호소장은 틈만 나면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원래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 입 밖에 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인 나도 그와 다르지 않다. 아내와 딸아이에게도 사랑한다고 말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낯간지럽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다. 장성한 아들이 늙고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이 주는 축복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고 평생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향한 사랑고백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화장실에 부축을 해서 볼일을 보게 하고, 목욕을 시켜주는 일은 간병의 괴로움이 아니고 간병의 즐거움에 가깝다고 본다. 


나의 경우, 대놓고 ‘사랑해요’라는 말은 못하고, 어버이날에 꽃을 달아 들이면서 ‘꽃에 사랑합니다 라고 적혀 있네요’라는 간접화법으로 간신히 말을 했는데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 무엇보다 힘든 것이 간병하는 일이지만,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적게나마 보답하고, 서로의 애정을 주고받는 계기 또한 되는 것이 부모님을 간병하는 일이다. 


아파트 위층에서 이사를 가는지 지게차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닫아 버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답답하다며 창문을 열어 놓으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는 지게차에 물건을 오르내리는 소음마저 반가우셨던 것이다.                              -128쪽, 지게차 소음과 어머니



나는 주말마다 요양원의 어머니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어머니와 함께 휠체어로 요양원 주위를 산책한다. 마땅한 구경거리가 있을 리가 없다. 요양원에서 키우는 개, 그리고 주위의 들고양이를 유심히, 오랫동안 관찰한다. 어머니의 병환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간병을 하고 어머니를 찾음으로서 단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주변의 일상을 오래 감상하고, 함께 감상을 이야기하는 즐거움도 함께 다가온다. 


어머니는 어쩌다 입맛에 맞지 않는 국은 그냥 내버려 두신다. 여름에는 국을 그대로 두면 금방 쉬고 만다. 말씀을 하시면 될 텐데 마음이 약해 그러지 못하시고 이렇게 나마/이나마 속내를 드러내신다. 그럴 때면 나도 조용히 그 마음을 읽고 새로운 찌개나 국을 끓이곤 한다. 이라도 튼튼하면 얼마나 좋을까!              -133쪽, 새 국을 끓이며 


남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어야만하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지켜보는 일보다, 거의 텅 빈 것처럼 보이는 부실한 치아를 보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 딱딱한 과일이나, 질긴 고기를 괴걸스럽게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부실한 치아가 생각나고 문득 죄스러워진다. 나의 치아를 고치겠다고 치과를 찾기도 망설여진다. 


오늘도 어머니는 묵묵히 나를 챙겨 주시고 있다. 술에 취해 들어와서 컴퓨터 앞에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에 안쓰러워하시다가 조용히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버튼을 누르실 것이다. 그러고는 밤새 지팡이를 짚고 몇 번이나 거실로 나오실 것이다. 내가 방에 들어가 잠이 들면 이불을 덮어 주시고 창문을 닫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낮에는 하루 종일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실 것이다.                     -174쪽, 『어머니의 뒷모습』


당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은 늘 걱정거리다. 요양원을 찾을 때마다 내 안색을 살피시고 건강을 염려하신다. 지난주에는 내 코에 난 점이 없어지지 않아 걱정이라며 병원에 꼭 가보라는 당부를 서너 번도 더하고, 나의 다짐을 받고서야 걱정을 거두어들이시겠단다.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나는 어머니와 산다>를 권하고 싶다. 부모님을 좀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머니 생각 / 이시영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미시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7-2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기호 소장님의 새 책이군요. 책 속에 가슴 짠하는 이야기와 장면이 많이 나오겠습니다.

박균호 2015-07-24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6년간의 어머니 간병일기니까 짠하는 이야기가 당연히 많아요.
 
캣 센스 - 고양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존 브래드쇼 지음, 한유선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터 게더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목록 10개중의 하나로 '고양이는 싫은 존재'를 꼽았다. 그러나 피터 게더스는 '노튼 3부작'으로 불리는 <파리에 간 고양이>,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거둔 고양이 에세이 작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고양이를 극도로 협오하다가 고양이와 인생을 함께 하게 되고 '노튼 3부작'을 펴내 그 누구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드라마틱한 반전은 피터 게더스의 개인적인 체험이지만 고양이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극과 극의 다양한 이미지를 잘 반영해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나또한 고양이를 매우 싫어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고양이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된 듯 한데 우연히 우리집에 잠시 머문 새끼 고양이로부터 할퀸 기억이 나의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를 대표하고 말았다. 나처럼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사실 고양이는 가장 보편적인 애완동물인 개보다 그 수가 무려 3배나 많으며, 영국가정의 4분의 1, 미국가정의 3분의 1이상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몇일전 우연히 산중턱에 자리잡은 절간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유심히 구경하게 되었다. 어미가 무려 7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산기슭아래에서 어미와 함께 노는 7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보고 있자니 내가 지금껏 왜 저렇게 귀여운 짐승을 그렇게 싫어했을까하는 의문마저 생길정도였다. 어미고양이는 품안에 들어오는 새끼 고양이를 번갈아 가며 혀로 정성스럽게 캐어하고, 나머지 새끼 고양이들은 이리 저리 어미 주변을 뛰놀며 뒹굴기도 하고 온갖 장난을 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더란 것이다.


30년이상의 고양이와 개의 과학적인 관찰과 실험이 동반이 된 연구의 결과로 <캣 센스>를 쓴 '존 브래드쇼'는 고양이의 역사적, 과학적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고양이에 관한 온갖 행동에 대한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반려동물로서 인기가 높은 고양이의 위상에 걸맞게 굳이 <노튼 3부작>을 말하지 않더라도 국내만 해도 고양이 에세이 전문 작가가 존재할 정도로 저술의 대상으로도 빈번히 오른다.


물론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를 위한 고양이 키우기 '매뉴얼'류의 책은 부지기수다. 이런 방대한 '고양이 저서'에 비해서 '캣 센스'가 차지할 만한 지분은 고양이의 근원적인 뿌리와 원리를 다른 책이라는 차별성이다. 즉 감성적으로 고양이를 다룬 사진집이라든가, 고양이와의 재미난 추억을 일상적으로 그린 책도 아니며 고양이를 단순히 인간에게 귀속되는 엔트테이너의 역할로만 취급하는 '매뉴얼'도 아닌 고양이의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왜 고양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고양이의 기본 습성이 어떠한지,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는 <캣 센스>는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존재가치를 가진다.


<캣 센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양이에 관한 새로운 사실 몇가지를 들어보자.



고양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사냥'한다.

고양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 즉 기원전 4000년경부터 반려동물이었지만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 본능이 남아 있다. 고양이의 숨겨진 야생 본능을 가장 쉽게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은 바로 사람들이 '고양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귀여운 행동'인데 저자의 실험에 의하면 고양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고 진지한 목적 즉 사냥을 하는 것이다. 고양이는 장난감을 진짜 동물로 생각하고 있어서, 당연히 털이나 깃털이 있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생쥐 크기의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변덕이 심해서 자주 장난감에 싫증을 내는 것이 아니고, 그 장난감이 '사냥감'스럽지 않아서 그렇다는 결론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고양이의 후각은 개만큼 뛰어나다.

흔히 우리는 후각이 잘 발달된 사람을 '개코'라고 표현할 만큼 개가 후각의 천재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고양이도 개에 못지 않은 후각을 자랑한다. 믿지 못하겠지만 고양이는 수백 개의 후각 수용기를 가지고 있고 수십억 개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고 추측이 된다. 고양이의 후각기관은 너무 잘 발달되어서 녀석들이 일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냄새보다 훨씬 더 많은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고양이는 편식을 하지 않는다.

많은 애완동물의 먹이로 '사료'가 가장 건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고양이는 사실 자신의 컨디션과 건강에 가장 적합한 먹이감을 선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물며 길고양이들도 쓰레기 더미에서 마구잡이로 아무거나 먹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한다. 고양이의 집사들은 고양이들이 그때그때 잘 먹는 음식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정책이라고 본다.


고양이가 '위로' 오줌을 누는 이유

일반적으로 암고양이는 짝짓기 상대를 고를 때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따라서 수고양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훌륭하게 광고할 필요가 있고 그 방편으로 오줌 누는 방식을 동원하는데 가급적 자신의 오줌 지린내를 더 많은 암고양이들이 맡을 수 있도록 몸을 높여서 눈에 잘 뛰는 물체를 향해 오줌을 분사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고양이

먹이와 보금자리만 제공해주면 주인을 웬만해서는 떠나지 않는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물리적인 환경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한 고양이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두 번째 주인에 불과한 경우가 드물지 않고, 아예 영원히 집을 나가기도 하는 것이 고양이다. 


고양이가 가르릉 거리는 이유

고양이는 많은 경우 "제 곁에 있어주세요"라는 의도로 가르랑 거린다. 특히 새끼 고양이는 어미한테 젖을 더 빨 수 있게 곁에 있더달라고 가르랑 그린다. 즉 고양이의 가르릉 거리는 소리는 '요구'의 의미라는 뜻이다.


다만 이 책의 감각적인 제목과는 달리 고양이의 뇌. 마음. 사생활을 과학적으로 밝힌 책이라 적지 않은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쉽게 페이지가 넘길 수 없는 약간의 힘겨움만 극복한다면 고양이에 관한 대부분의 궁금증이 해소될 것이고 과학이 밝혀낸 해답 중 '최고의 해답'이라는 열매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7-0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에 귀찮아도 관련 지식을 먼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십 년 전에 반려견을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혼자 떠도는 강아지를 갑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키우다보니 반려견을 키우는 상식에 전무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반려동물 상식을 정리한 책이나 정보를 알 수 있는 인터넷 카페 같은 것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려견의 상태를 제대로 모르고 키우게 되니까 건강 상태도 나빠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반려동물을 키우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박균호 2015-07-0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키워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잡지를 읽자

독서의 주요 기능이 지식과 상식을 늘이기 위함이라면 잡지를 굳이 책과 구분할 이유가 없다. 잡지도 엄연히 책이다. 잡지를 오로지 시간죽이기용 인쇄물이라고 매도할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는 유용하고 깊이 있고 지식이 풍부한 잡지가 차고 넘친다. 또 잡지는 책에 비해서 시간과 장소에 더 자유롭다. 

잠시 잠깐의 빈틈에 뭔가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잡지만 한 매체도 찾기 힘들다. 최소한 매월 3가지 종류의 잡지는 꼭 읽어야 한다고 본다. 시사 잡지, 교양잡지, 취미잡지가 그것들인데 괜찮은 잡지 3종 이상만 꾸준히 봐도 꽤나 자랑할 만한 상식을 갖춘 사람이 된다. 


인디고

지난 2010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국제’인문학 잡지다. 국제적인 잡지답게 영미 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도 수출되는데 더욱 놀랍게도 우리가 저서로만 만나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대담을 하고 그들의 글을 받아서 잡지를 만든다. 하워드 진, 놈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당대를 이끌어가는 사상적 원류인 석학들은 모두 인디고와 대담을 했고 그들의 말과 생각은 인디고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문예잡지

문예잡지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잡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창작과 비평>의 경우 북한의 3차 핵실험, 헌법의 품격, 재판관의 자격 따위의 시사성이 높은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박연수나 성석제 같은 동시대의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2113년 여름호)

<문학동네>, <현대문학>, <문학과 사회>등도 문예지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문예지마다 특정한 흥미 있는 주제를 정해서 문학 작품을 게재한다. 문학을 보는 눈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명확해지고 사려 깊어진다. 


녹색평론

군대를 제대하고 강의실에서 만난 김종철 교수님이 “내가 말이야, 잡지를 하나 만들었거든. 근데 다른 교수들이 어렵다고 해. 내가 보기엔 어려울 거 하나도 없는데 다들 어렵다고 해”라고 우리들에게 뭔가 불만 섞인 얼굴로 말씀하셨을 때 우리들 중 아무도 그 잡지가 20년 이상 장수하고 우리시대의 생태문화를 이끌어가는 어피니언 지도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김종철 교수님을 존경하던 우리 제자들이 보기에도 그 잡지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금방 폐간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잡지였다. 내가 기억하는 90년대 초중반은 부자의 아이콘이었던 ‘자가용’이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전환되려는 찰나였고 내 집 마련 보다 자가용 마련이 더 우선이 최초의 시대였다. 그런 물질만능의 시대에 칼라사진도 없고, 광고도 없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생태관련 잡지가 롱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생태를 살리는 농업,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 지역사회의 자생력을 높이는 사업,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 녹색이 우선시 되는 과학 등의 주제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적인 주제도 <녹색평론>은 많이 다룬다.


The Economist 

The Economist 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라기 보다는 최고 수준의 글로벌 시사 주간지라고 해야 마땅하다. 잡지의 이름처럼 경제뉴스만을 다루지 않고 정치 문제, 문화적인 이슈 심지어 예술과 연예에 대한 뉴스도 많이 다룬다. The Economist 의 매력을 크게 2가지로 말한다면 깊이 있는 다양한 뉴스와 그 객관성을 꼽겠다. 이 잡지는 매회 150만부를 발행하는데 그 중의 절반은 영국이 아닌 해외의 몫이라고 한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그 개관성과 공정함을 인정받는 주간지다.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코노미스트가 영국영어로 쓰이기 때문에 낯선 면도 있겠지만 격조 있는 고급영어라는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수학동아

초등 학교 때 구구단의 7단을 어려워할 때부터 애당초 숫자 쪽으로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대학 전공을 영문학으로 선택한 후 숫자를 만나지 않아서 좋았다. 성인이 되고 내가 혹시 원래는 수학에 재능이 있는데 학생 때 너무 무관심해서 수학을 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수학의 정석>을 늦게야 펼쳐보았다. 역시 ‘집합’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단순히 숫자의 학문이 아닌 사람의 냄새가 나는 수학책이라고 해서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을 들어봤다. 역시 수학의 문외한으로선 읽기 어려웠다. 


<수학동아> 2013년 5월호의 Editor’s note를 읽고 그동안 내가 왜 수학을 잘 못했는지 알겠다. 지우개를 사러 문구점에 갔는데 맛있게 생긴 캐러멜이 있기에 입안에 넣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캐러멜이 아닌 캐러멜처럼 생긴 지우개 이었단다. 지우개를 누가 봐도 지우개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고 캐러멜처럼 보이게 만든 창의력이 그 지우개를 특별한 지우개로 만들었다. 수학의 본질(지우개)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처럼 보이는 수학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봐도 쓰디 쓴 맛없는 수학책과 씨름해왔다. 이 잡지는 수학과는 담을 쌓고 지낸 필자에게 처음으로 수학이 재미있는 학문이며 실생활과 매우 밀접한 공부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개미의 움직임에서 페르마의 법칙을 배우고, 포인트 카드로 우수 고객을 예측하는 기업들의 비결은 수학의 통계분석법의 활용이라는 사실 등 을  볼 때 수학은 우리 실생활과 함께 호흡하는 학문이지 대학에 가기 위해 마지못해 공부하는 골치 아픈 장애물은 아니다.


독서평설

군대 제대 후 복학준비를 하면서 사촌동생의 방에서 이 잡지를 처음 봤다. 그때가 1991년 당시 고2인가 고3이었던 사촌동생은 그러니까 이 잡지가 창간되자마자 발 빠르게 구입을 했는데 그 안목이 대단했다. 당시 대입수험생의 대중문화로는 만화잡지 ‘보물섬’과 ‘드레곤 볼’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대단했던  ‘보물섬’이 요즘은 헌책방에서 추억의 골동품으로 분류되어 정가 이상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독서평설>의 생명력은 정말 감탄스럽다. 더구나 수명이 특히 짧은 국내잡지계에서 대중잡지가 아닌 학습용 잡지가 이렇게 긴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독서평설>의 내용의 충실함은 인정한다. 당시 다소 촌스러운 디자인의 이 잡지를 몇 페이지 들쳐보고는 내용에 담긴 이 잡지의 혁신에 감탄했더랬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단 한 줄이나 한 문단에 주목해서 풍부한 배경자료와 원전을 제공하고 해설도 곁들인다. 논술과 심층면접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만한데 이 잡지의 가장 큰 장점은 다소 어렵더라도 곁에 두면서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도 되고, 또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 참 좋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 <꺼삐딴 리>를 비롯해서 많은 명작들을 이 잡지에서 처음 접하는 쾌거를 거뒀다. 


National Geographic

원래는 미국국립지리학회의 기관지이지만 일반인을 위한 교양지로 널리 사랑받는 잡지다. 오랫동안 두고 볼만 한 좋은 잡지다. 지리뿐만 아니라 지구에 관한 모든 흥미로운 사실을 멋진 사진과 함께 제공한다. 사실 이 잡지는 눈이 즐거워지는 잡지다. 2012년 12월호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를 소개하고 있는데 내지로 접혀 있다가 펼치면 70cm정도의 길이로 펴지는 나무 사진이 일품이다. 뒷면에는 그 나무속에 사는 야생동물을 그래픽으로 담았다. 그래서 이 잡지만큼은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또 중고책 시장에서 이 잡지는 높은 시세를 자랑한다. 영어에 전혀 문외한이라도 지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잡지를 일단 펼치면 ‘와!’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내지른다. 


씨네 21

고등학교 시절 읍내에 나가면 서점에서 사보던 영화 잡지 <스크린>을 아직 잊지 못한다. 누군가 <스크린>을 학교에 가지고 오기라도 하면 온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보고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오려가기도 해서 ‘버릴 것 하나 없는’ 소중한 잡지였다. 종이 잡지의 위력이나 역할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 많이 약화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영화잡지로는 <씨네 21>만 겨우 살아남은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가 고교 시절 열광했던 <스크린>에서 일하던 평론가 ‘장성일’이 제대로 된 영화 잡지를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투자자를 찾았지만 그런 잡지를 만드느니 차라리 은행에 예금하는 쪽이 낫겠다는 비아냥거림을 까지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돈은 안 되지만, 좋은 일’이라는 논리로 ‘대선주조’회장의 투자를 받아 1995년에 시작한 잡지가 <키노>이었다. <씨네 21>도 같은 시기에 창간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키노가 100호를 채우지 못하고 99호에서 결국 폐간되었는데 우리나라 문화계의 척박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키노>는 폐간되지 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이 오래된 잡지를 소중히 보관하고 틈틈이 읽는다. 지나치게 현학적이었다는 비판이 상당했지만 그 현학적인 비평에 열광한 마니아의 충성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키노>는 할리우드 스타의 스캔들이나 사생활에 많은 몫을 할당한 기존의 영화잡지와는 달리 작가주의 영화잡지를 표방하면서 영화학과 교수들의 논문집에 비견되는 수준 높은 영화비평을 실었다. 결국 독자와 광고가 줄어드는 문제를 만났고 내외부적인 여러 문제 때문에 폐간되기에 이른다. <키노>를 만들었던 관계자나 독자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키노>는 작가주의 비평에 기초한 심도 깊은 영화비평을, <씨네 21>은 대중성에 주안을 둔 편안하게 읽는 영화잡지로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로 양립한다면 독자들은 다양한 선택의 폭을 즐기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을까? 


그나마도 <씨네 21>가 멀쩡히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잡지인데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상황은 더욱 당황스럽다. 동네서점에서는 잘 팔지 않고 그렇다고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자니 배송료의 부담과 금방 품절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어찌됐든 우리 문화계가 좀 더 활성화되고 다양한 콘셉트의 영화잡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단은 <씨네 21>만큼은 잘 지키고 볼 일 이다. 


PAPER

흔히 20대 젊은 처자들이 좋아 할 만 한 감수성과 예쁜 디자인을 겸비한 잡지라는 말을 듣는다. 또 날이 갈수록 상업적으로 변해가지 않느냐는 비판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PAPER>는 대중적인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고 잡지 특유의 시각적인 만족을 시켜주는 몇 안 되는 잡지중의 하나다. 2013년 7월호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인터뷰 대상이 뮤지션, 시인, 밴드, 시인농부다. ‘서울 레코드 페어 집중 취재기’, ‘개털이어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등의 기사는 젊은이를 위한 감성과 문화적인 충족을 만족시켜주고, ‘진지진지 열매를 먹고 쓰는 소년 만화 분석’이라는 읽을거리는 여느 젊은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들이 흉내 내기 힘든 지성에 대한 요구를 감당한다. 그러면서도 예쁘다.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잡지의 최우선 조건은 ‘과월호의 가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달 만 지나도 재활용에 버려야 하는 잡지보다는 과월호가 되어도 가치나 실효성이 없어지지 않아서 오래 두고 읽어도 좋은 잡지가 좋은 잡지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PAPER>는 좋은 잡지임에 틀림없다. 이사를 갈 때 꼭 챙겨가야 할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소장 가치’는 보유하고 있는 잡지다. 그래서 이 잡지는 유독 장기 구독자가 많고 부담 없는 선물로 친구나 지인들에게 권하기에 좋다.


월간 사진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를 시작하면 먼저 장비를 최고로 갖추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필자가 한때 미친 듯이 심취했던 테니스와 사진에 똑 같이 ‘장비병’이란 용어가 존재한다. 라켓과 사진장비를 최고로 갖추고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마음이 끌리면서 정작 본연의 기술의 향상에는 덜 관심을 가지는 ‘장비병’ 말이다. 그러다 보니 테니스나 사진의 인터넷 커뮤니티마저 ‘사진 사이트’가 아닌 ‘장비 사이트’가 되기 십상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장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분류된다면 <월간 사진>을 권한다. 메이저 카메라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특집기사로 제품에 대한 정보로 잡지의 태반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능위주의 사진 찍는 요령’에 관한 기사도 거의 없다. 다만 현대 사진의 흐름과 맥을 잘 집어주는 알찬 내용들로 지면의 대부분을 채운다.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사진과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모델 사진도 거의 없다. 인터넷 사진커뮤니티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현대 작품사진을 대부분 게재하는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전시회를 따로 가야만 보는 사진을 잡지를 통해 다양하게 감상한다. 좋은 사진집과 사전관련책의 소개와 사진전시회에 관한 많은 정보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Highlights For Children 

아이들의 영어공부를 위해서 영어잡지를 생각하고 있다면 <Highlights For Children>은 좋은 선택이다. 이 잡지가 미국에서 아이(kids)를 대상으로 하지만 막상 국내 독자가 읽을라치면 만만찮다. 우리나라 영어교재에서 잘 다루지 않는 미국의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쉽고 꼭 필요한 표현과 어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 낯설다. 그래서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일단 익혀두면 매우 요긴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아이들로 하여금 좀 더 창의적이게 하고, 좀 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는 편집자들의 광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력을 키우는 많은 읽을거리와 생각거리가 많은 좋은 잡지이자 영어교재이다. 이런 종류의 잡지가 국내 영어학습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영어공부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영어로 하는 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vogue

순전히 독서가의 입장에서 패션잡지를 하나 봐야겠다면 <vogue>를 권하겠다. 솔직히 패션잡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면 잘 들쳐보지도 않는다. 아무리 패션 트렌드를 익히는 목적이라고 해도 ‘사회 초년병에게 권하는 지갑’으로 120만 원짜리를 추천하는 기사를 보면 공감하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독서가만큼은 매년 8월 달이 되면 <vogue>를 주목하자. 비록 남자라고 해도 말이다. <vogue>는 매년 8월에 특별부록으로 두툼한 ‘사진집’을 증정한다. 그것도 소프트커버가 아닌 제법 고급스러운 하드커버 <사진집>이다. 사진집은 소장가치가 높고 인테리어 효과(?)도 높아서 독서가들이 좋아하지만 가격이 비싼 탓에 섣불리 구매하지 못한다. 이러니 <vogue>의 사진집 부록은 정말 매력적이다. 게다가 사진집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고 8월 달 호의 부록으로만 제작이 되니 자연스럽게 ‘한정판’인 셈이다. 본질에서 약간 벗어나지만 <vogue> 잡지 자체도 다른 패션잡지에 비해 패션에 약간 덜 치중하면서 여자들만의 대화의 소재가 되는 읽을거리가 많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 부록 사진집은 입소문이 나서 구하려는 사람이 많은 탓에 제법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필자는<도시 그리고 여자>,  <the show>, <fashion pet>이 세 사진집을 소중히 간직한다. 


객석

최근 공연감상은 과거에 비해 그 애호가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즐기기 위해서 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간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오페라, 뮤지컬, 연주회등의 클래식한 공연도 과거에 비해 그 수요가 많다. 공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만 기왕이면 그 공연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한다면 더욱 그 공연을 즐기게 된다. 애초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니니 공부는 필수적이다.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과 단행본을 통해서도 물론 얻는다. 그러나 단행본 책은 아무래도 담겨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아쉬움이 많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도 좋지만 일부러 신경을 써서 일회성으로 정보를 검색해야하고 꾸준한 트렌드를 따라잡기 힘들다. 그래서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는 ‘잡지 구독’이 더 좋다. <객석>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광고가 별로 없는 잡지라서 독자로서는 반길 만하다. 그리고 <객석>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가령 지휘자를 인터뷰하면서 단원을 뽑을 때 뭘 중점적으로 뽑는지, 공연 때 연주할 곡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는 다음 음반은 언제 나오는지 등의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 많다. 다양한 공연의 리뷰, 그리고 클래식의 역사뿐만 아니라 새 음반에 대한 소개 등 공연문화를 즐기는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는다.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 간으로 발행하는 국내최고의 독서 및 출판 전문 잡지다. 잡지의 이름만 봐서는 독서와 책, 그리고 출판에 관한 잡지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분야별로 각 전문가가 추천도서를 소개할 뿐 만 아니라 출판계와 관련된 이슈를 심도 깊게 분석한 다양한 읽을거리는 이 잡지의 자랑거리다. 독서분야에 있어서 기사의 다양함과 추천 도서의 수 그리고 객관성에 있어서 그 어떤 매체보다 우위에 선다. 특히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로 유명한  출판평론가 고 최성일의 아내 신순옥의 연재기사인 ‘남편의 서가’, 세계 전자책 시장의 동향을 빠짐없이 소개하는 교보문고 류영호 차장의 연재기사 ‘세계 전자책 시장 읽기’ 또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콘텐츠다. 도서에 대한 정기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간 신문을 구독하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는 잡지라고 하겠다.  



학교도서관 저널

<기획회의>를 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또 다른 잡지다. 학교 도서관의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고 독서가들에게 뼈와 살이 되는 실용적인 정보가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잡지의 가장 큰 미덕은 도서관 관계자와 독서교육 전문가를 비롯한 현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잡지에 참여하고 있고 추천도서를 다른 외부의 영향력이 없이 오로지 교사와 독서교육의 전문가들이 직접 읽고 토론을 거쳐서 선정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서 독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서평들은 상당수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서 작성해서 객관성이 담보되기 힘들거나, 오로지 칭찬 일색인 주례사 서평인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잡지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이 잡지가 강조하는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에 깊이 동감하고 ‘책 읽어주기’가 부모로서 권장사항이 아닌 의무라는 일침에 혼자 책 읽기에 몰두한 부모로서 부끄럽다. 물론 학교에는 엄연히 ‘독서’라는 과목이 존재하지만 이 책만큼 실질적이고 유용한 독서교육에 대한 방법론과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독서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에 밑 바탕이 되는 잡지라고 보는데 ‘책을 보수하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는 기사는 이 책이 얼마나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한지 깨닫게 한다. 이런 잡지가 오래 살아남고 널리 읽혀야 우리 독서교육이 흔들리지 않는다. 


B

잡지 B 는 매월 전 세계에서 균형 잡힌 브랜드를 하나 씩 소개하는 특이한 콘텐츠를 자랑한다.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광고가 전혀 없어서 반갑다. 물론 잡지의 콘텐츠보다는 오히려 광고를 더욱 눈여겨보는 독자도 있긴 하지만 광고가 전혀 없는 잡지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카드라고 본다. 매월 단 하나의 브랜드를 소개하다보니 그 브랜드의 생산품의 다양한 쓰임새와 실제 사용자의 사용 후기 및 현황을 빠짐없이 알게 된다. 단순히 유명브랜드라는 이유로 비싼 값을 지불했지만 막상 실제로 그 제품의 장점을 모두 살리고 활용하는 사용자는 많지 않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잡지는 제대로 된 물건을 사서, 제대로 사용하는 실용정신과 그 브랜드를 완전 해부하는 치밀함을 표방한다. 다수의 매체들과 심지어 제조업자조차도 자신의 제품에 대한 이미지와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로 판매에만 열을 올리지 정작 그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는 미흡하다. 소비자교육도 주로 저렴하게 물건을 사는 일에 치중한 느낌이 드는데 구입한 물건을 제대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보를 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 잡지가 소개한 브랜드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구브랜드로 유명한 LAMY, 선글라스 제조업체 RAY-BAN, 어른들이 더 열광하는 장난감 LEGO 그리고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고가 의류업체인 CANADA GOOSE, 미국의 국민 스포츠 용품 업체 인 WILSON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폭 넓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 하다. 각 브랜드에 얽힌 유래나 역사도 흥미로운데 스포츠 용품 업체로만 알고 있던 WILSON이 사실은 모기업이 육류가공업체이며 가축을 도살하고 나서 부산물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테니스 라켓 줄이나 수술용 실을 생산하면서 스포츠 용품 회사로 거듭나는 뒷이야기는 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가면서 일이 뜻대로 안 풀리고, 온 세상의 불운이 모두 자신에게 향한다고 느낄 때 한번 쯤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나 되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나만 해도 그랬다. 사는 것이 고달프고, 산사의 생활이 유유자적하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지허스님의 <선방일기>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방일기>는 제목 그대로 어느 해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冬安居)라고 부르는 선방의 수행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 책이다. 안거란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로지 산사에서 극한의 육체적인 고통이 뒤따르고, 기본적인 욕구를 거칠게 절제해야 하는 수행에 전념하는 일을 말한다. 더구나 극심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강원도 산골에서의 동안거(冬安居)는 일상적인 인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새벽3시부터 시작되는 고된 수련과 무려 일주일동안 잠을 자지 않고 결코 눕지 아니하고 꼿꼿이 앉은 채로만 수행하는 (장좌불와) 용맹정진에 이르러서는 산사의 생활이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기겁을 했었다. 그렀다고 이 책이 거창하고 심오한 불교의 원리나 말씀을 애써 가르칠 생각으로 가득찬 것은 아니다. 그저 묵묵히 선방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할 뿐이다.


산사에서의 수련생활에 대한 환상은 접게 만들었지만 이 책은 의외로 재미나기까지 하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아끼고 곁에 두면서 몇 번 이고 읽는 까닭은 스님들의 고매한 수련과정의 대단한 때문이 아니라 지허스님의 유머스러운 필체가 주는 읽은 즐거움 때문이다.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고, 유려한 필체덕분에 서울대를 졸업한 재원이라고 알려진 지허스님의 유머스러한 글은 언제 읽어도 즐겁고 배꼽을 쥐고 웃게 만든다.


1970년대에 그것도 스님이 누구나 고된 일이라고 여기는 ‘선방’의 일상을 이토록 재미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심지 중간 중간에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을 알려주는 일을 놓치지 않고서 말이다. <선방일기>를 읽는 즐거움의 압권은 ‘뒷방’이야기를 꼽고 싶다.


11월 3일 



선방의 역사는 뒷방에서 이루어진다. 

뒷방의 생리를 살펴보자. 

큰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다랗게 놓인 방이 뒷방(혹은 지대방)이다. 

일종의 휴게실이다. 

개인 장구가 들어 있는 바랑이 선반 위에 줄줄이 담을 쌓고 있어서 누구나가 드나든다. 

휴게시간이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법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잡담도 한다. 

길게 드러누워 결가부좌에서 오는 하체의 피로를 풀기도 하고 요가도 한다. 

간병실과 겸하고 있어 병기가 있으면 치료도 한다. 

옷을 꿰매는가 하면 불서를 보기도 한다. 

편지를 쓰기도 하고 일기도 쓴다. 


어느 선방이거나 큰방 조실이 있음과 동시에 뒷방 조실이 있다. 

큰방 조실은 법력으로 결정되지만 뒷방 조실은 병기와 구변이 결정 짓는다. 

큰방에서 선방의 정사(正史)가 이루어진다면 뒷방에서는 야사가 이루어진다. 


선방에서는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에 의해 우세가 결정되기도 한다.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은 스님은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고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은 스님은 점차로 선객의 옷이 벗겨지게 마련이다. 


상원사의 뒷방 조실은 화대(火臺)스님이 당당히 차지했다. 

위궤양과 10년을 벗하고 

해인사와 범어사에서도 뒷방 조실을 차지했다는 경력의 소유자이고 보니 만장일치의 추대다. 


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불가에서는 사교(四敎)까지 이수했고 절밥도 십년을 넘게 먹었고, 

남북의 대소 선방을 두루 편력했으니 뒷방조실로서의 구비요건은 충분하다. 

금상첨화격으로 달변에다 다혈질에다 쇼맨십까지 훌륭하다. 

경상도 출신 이어서 그 독특한 방언이 구수하다. 

낙동강 물이 마르면 말랐지 이 뒷방 조실스님의 화제가 고갈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파라독스하고 때로는 페이소스하다. 

때로는 도인의 경계에서 노는 것같고 때로는 마구니의 경계에서 노는 것같다. 


제불조사가 그의 입에서 사활을 거듭하는가 하면 

현재 큰 스님이라고 추앙되는 대덕스님들의 서열을 뒤바꾸다가 

때로는 캄캄한 밤중이나 먹통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무불통지요 무소부지인체 하면서 거들먹거리지만 

그의 천성이 선량하고 희극적인 얼굴 모습과 배우적인 소질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버림받지는 않지만 추앙 받지도 못했다. 

천부적인 뒷방 조실감이라는 명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 뒷방 조실이 가끔 치명적으로 자존심에 난도질을 당하고 

뒷방 조실의 지위를 위협당하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원주스님 때문이다. 

선방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원주스님은 대중들의 생필품 구입 때문에 강릉 출입이 잦았다. 

강릉에 가면 주거가 포교당인데 포교당은 각처의 여러 스님들이 들렀다가 가는 곳이어서 

전국 사찰과 스님들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교통이 발달되고 보면 신문보다도 훨씬 빨리 그리고 자세히 알 수 있다. 


원주스님도 꽤 달변이어서 며칠동안 들어 모은 뉴스원을 갖고 돌아오면 

뒷방은 뒷방조실을 외면하고 원주스님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그때 뒷방의 모든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같이 경청하고 있는 

뒷방조실의 표정은 우거지상이어서 초라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뉴스가 한토막씩 끝날 때는 막간을 재빨리 이용하여 

뉴스에 대한 촌평을 코믹한 사족(蛇足)을 붙이거나 독설을 질타하는 것으로 

체면유지를 하다가 원주스님의 뉴스원이 고갈되자 마자 

맹호출림의 기상으로 좌중을 석권하기 위해 

독특한 제스처로 해묵은 뉴스들을 끄집어 내어 재평가를 하면서 

일보통[뉴스통]의 권위자임을 재인식 시키기에 급급하다. 

면역이 된 대중 스님들은 맞장구를 치지도 않지만 삐에로의 후신인양 지껄여댄다. 


어디 이뿐인가? 허기진 배를 채울려는 욕심으로 상원사의 부식창고에서 감자를 훔쳐내서 구워먹다가 부식창고를 책임지는 ‘계량심의 천재“ 원주 스님에게 응징당하는 대목도 뭇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의 거울이 되며, 일반인들에게는 불교의 기본 덕목을 쉽게 알려주며, 책 읽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웃음을 주는 이 책은 종교와 세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다.


단행본으로 나온 1993년과 2000년 당시에도 지허스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조심스럽게 출간이 된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허스님은 서울대를 나왔다거나 1975년에 이미 입적했다거나하는 소문 또는 진술이 있긴 했지만 모두 확실치는 않다고 2010년에 나온 재출간본의 편집자들은 밝히고 있다.


지허라는 법명도 사실 필명일 가능성이 높고, 조계종에서도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말처럼 ‘책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인 것이다. 이 책을 되살리려는 불광출판사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선방일기 저작권 조회 공고>를 내고, 각처에 지허스님의 행방을 문의하였지만 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서 결국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법정허락 제도(공탁)’을 통해서 간신히 출간을 했다.


수행자들에게는 ‘귀감’을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감동’과 ‘웃음’을 주는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구절은 따로 있다. 


우리는 월정사 층층계 밑에서 헤어졌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남방행인 그 스님은 월정사로 들어갔고 나는 월정사를 뒤로 한 채 강릉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뭇 독자들의 관심을 뒤로 한 채 지허스님은 다만 수행의 길로 나가 갔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두고두고 읽고 가까이하며 붙잡아 둘려는 독자들이 많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글의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올해 중학교 15살 난 여자 아이다. 아빠는 영어교사로 엄마는 국어 교사로 일하신다. 두 분은 모두 어문 계열을 전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마치 국어와 수학이라는 반대되는 과목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특기가 확연히 다른 분야에서 각기 발휘된다. 아빠가 책을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국어를 전공한 엄마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사서 읽었다는 점과, 엄마는 학창시절 영어공부를 좋아했고 잘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공집합만 제외하면 부모님은 묘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겹치지 않는 특기와 세상을 가진다. 


두 분의 다른 세상은 여행을 가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2년 전 싱가포르 여행이 딱 그랬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해외를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여행 일정을 두 분의 역량을 모두 발휘해야하고 두 분의 진면목이 드러난 기회였던 셈이다. 

우선 비행기 티케팅과 호텔 예약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는 비행기 표를 예약한 것도 모자라서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외국의 호텔을 예약한 엄마의 업적에 가슴 깊숙이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당신이 하면 싱가포르에 도착은 했는데 호텔 예약은 다음 날에 예약이 되어 있는 황당한 실수를 할 것 만 같았으리라.


아빠는 인천 공항에서 필사적으로 나와 엄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고 혹시나 우리가 당신을 떼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심지어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고, 다른 장소였다면 혼자서 마구 이리저리 다닐 텐데 낯선 공항에서는 우리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가방을 들고 얌전히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심지어 중학생인 나를 본인보다 더 공항의 지리와 시스템에 정통하다고 여기는 게 확실하다. 엄마가 잠시 어딜 다녀왔는데 내 옆에 딱 붙어서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여자라서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를 보호한다는 아빠는 사실 나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쉽게 알았다. 


아빠는 엄마와 내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고 주장하면 신발도 벗을 태세였다. 마침내 비행기를 탈 때 그는 입구에 비치된 신문을 여러 부 가져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신을 못 한 나머지, 스튜어디스 언니의 눈치를 보는 것도 나는 쉽게 알아챘다. 그에게 난관은 또 남아 있었다. 끔찍한 고소공포증 환자인 아빠는 이륙을 할 때 눈을 꼼 감고 좌석의 팔걸이를 마치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보루나 되는 것처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지막한 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아빠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받친 채 고개를 숙이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고 지면에서 발이 떨어진 상태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다. 비행기가 갑자기 난기류에 진입을 해서 흔들릴 때 그의 공포는 극에 달해 엄마의 손을 부둥켜 쥐고 마치 지구의 종말을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고난이 시간이 끝나고 스튜어디스 언니가 입국서류를 나눠주었을 때 마침내 아빠의 세상이 도래했다. 아빠는 입국서류를 영어로 메꾸면서 온갖 유세를 부려서 엄마와 나는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그나마 아빠가 죽을상을 짓다가 모처럼 살 만해 보이는 게 반가워서 참아주기로 했다. 아빠는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엄마와 나는 아빠 없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었고 우리도 그런 간단한 그 입국 서류 작성은 이미 작성해봤지만 아빠의 체면과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모른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는 그간의 서러움을 한 번에 만회하려는 듯 기고만장해져서 ‘내가 아니었으면 어디 감히 너희들이’ 해외여행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느냐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길을 잃을까봐 13살 난 딸내미의 손을 놔주지 않던 기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꼼꼼하지 않고 나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가령 내가 짜게 먹지 말라고 주의를 몇 번 주었는데 지키지 않아서 마침내 내가 일일이 양념의 양을 그때그때 숟가락으로 얹어줘야 한다.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조사를 하지 않았고 싱가포르에 도착을 했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달랑 우리 식구끼리 움직여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을 하고서야 이곳저곳 들릴 곳을 검색한다. 


검색과 임기응변은 단연코 아빠의 세상이다. 단 몇 분 만에 그는 그날의 여행지와 일정을 엄숙하게 발표를 했다. 아빠는 택시를, 엄마는 나의 현장체험을 위해서 지하철을 주장했는데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나는 당연히 엄마의 편을 들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 지하철의 이용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지하철 티켓을 사지 못해서 30분간 고군분투를 한 분이다. 보증금 500원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불상사인데 아빠는 지하철을 타고 오라는 죄 없는 친구 분을 향해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엄마는 능숙하게 싱가포르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아빠가 정한 일정은 나쁘지 않았다. 쇼핑과 볼거리를 적당히 배합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의 보이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 예전에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는 싱가포르의 관광명소의 목록을 보다가 ‘리틀 인디아’를 발견했고 별생각 없이 ‘한 꼬마 두꼬마 세 꼬마 인디언’의 인디언을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어리고 귀여운 어린 인디언들이 재롱을 자랑하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 그는 인디언이 아닌 인디아를 발견하곤 덥디 더운 날씨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차마, 내가 생각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며 우리를 다시 데리고 나가기엔 너무 어이없는 실수라 그는 평생 카레를 한 번도 먹지 않았으면서 억지로 꾹 참고 인도의 거리를 거닐어야 했다. 마치 정말 인도의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온 것처럼 태연히 걸었지만 나는 아빠가 몸을 파르르 떨고, 구경거리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던 얼굴이 순식간에 초점이 풀린 눈과 축 늘어진 팔자주름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이미 아빠의 실수를 눈치 챘다.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싱가포르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했다는 아빠가 먹은 것은 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였다. 그나마 용기를 내서 먹어본 색다른 음식이라곤 ‘칠리 크랩’이 유일했다. 반면 그의 세상의 물건에는 심취를 해서, 라이카 카메라 매장 앞에서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들을 그의 시선의 범위에서 풀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호텔의 57층에 위치한 야외 옥상 수영장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풍경을 감상한다든지, 수영을 즐긴다든지, 선탠(이건 내가 봐도 불필요하다. 그는 모태 선탠이라는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을 즐기지 않았다. 아빠가 세계적인 그 수영장에서 몰두한 것은 남미계열의 연인이 잠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신기해하는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괜한 호기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가 졸지에 붙잡혀서 20분간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에 대한 강의의 수강생이 된 그 불쌍한 커플을 본국에 돌아가자마자 주문을 하겠다는 맹세를 받고서야 풀어주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우리 가족은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지하철역도 보이지 않고 택시역도 보이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특이하게 택시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탈 수 있는데 우리가 정류장을 알 리가 없다. 그때 아빠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우리를 인적이 많지 않은 도로로 데리고 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서 손을 든다. 마치 한국에서 택시를 잡는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벌금의 나라에서 하는 아빠의 행동에 우리는 기함을 했지만 아빠를 나무랄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우리는 택시 기사가 법규를 위반한 우리를 고발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그 택시 기사는 한국의 택시 기사처럼 급하게 우리에게 택시에 타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아빠의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임기응변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자국의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손님을 태운 것에 성공한 기사의 성취감과 위기의 가족을 자신의 기지로 구해냈다는 아빠의 자부심은 서로의 만남이 무슨 전생의 인연이라도 이어진 것처럼 감격해하고 서로를 용기와 배려 심을 치하하기 바쁜 눈치다.


가장의 임기응변을 고마워해야 할지, 타박을 해야 할지를 고심할 기운조차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열심히 뭔가에 대해서 대화를 즐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속 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나누었냐고 아빠에게 물었더니 ‘싱가포르의 비밀경찰 제도와 위협받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한 싱가포르 국민의 시민 의식 함양’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