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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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서 유일하게 챙겨서 읽는 것이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의 서재와 애독서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다른 사람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꼽혀있고, 어떤 책을 즐겨 읽으며 또 어떤 책을 추천하는지 궁금한 게 대부분의 독서가의 심정이다. 나아가 어떤 사연과 이유로 그 책을 추천하는지도 궁금하다. 독서가들은 사실 추천도서에 목 말라 있다.


자신이 많은 책을 읽어 왔다면 엉뚱한 책을 골라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 늘 아쉽기 마련이다. '지식인의 서재'는 주로 유명인사가 주인공이 되니 종종 추천도서가 지나치게 대중적이거나(대중서가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또 전문적인 분야의 책인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다. 


거의 십년 동안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해오고 있고 독서와 책과 관련된 여러 저서를 출간한 바 있는 윤성근의 <책이 좀 많습니다>는 '지식인의 서재'에서 느끼는 미세한 '궁핍함'을 채워줄 만한 책이다. 유명인사가 아닌 실질적인 생활 독서가들의 서재와 독서생활을 알려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재의 주인들의 직업은 다양하고 평범하다. 국어교사, 번역가, 대학생, 기자, 판소리 고수, 회사원, 바리스타, 도서관지기 등 거의 대부분 유명인사라기보다는 실질적인 책의 소비자이자 생활 독서가에 가깝다. 


근사하고 광활한 서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런 저런 온갖 비상수단을 발휘해서 책을 모으고 소장한다.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중의 하나를 소개하면 한정된 공간에 많은 책을 소장해야 하는 공통의 장애를 공유하는 서재 주인들은 각자의 서재의 도서분류법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에서 꼼꼼히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독특한 독서 습관도 소개한다. 추천도서라기보다는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개인적인 체험과 밀접한 애서를 이야기한다. 이런 이유로 각자의 애장서는 개인적이나 책을 아끼는 마음은 넓게 공감된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가 중에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씨와 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고수 독서가답게 자신의 헌책방에서 엑기스만 쏙쏙 골라서 사가는 눈썰미를 재미나게 묘사한 부분 등은 이 책만의 장점이다. 그러고 보니 장서가와 헌책방 주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굉장한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적인 독서가와 수집가는 필연적으로 공간의 압박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헌책방에 자신의 장서를 처분할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수집가의 운명이다.


또 본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사후에는 유가족에 의해서 장서가 헌책방에 처분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가 헌책방과 장서가와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이 <책이 좀 많습니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사실 <책이 좀 많습니다>라는 재미난 이 책의 제목도 모아온 책을 감당하지 못해서 윤성근씨에게 책을 처분하게 된 한 장서가의 말에서 따왔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가 중의 한 명인 대학생 김바름씨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고객이기도 한데 그가 부탁한 절판본 <상상의 공동체>를 구해주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윤성근씨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뉴욕의 가난한 여류작가와 런던의 헌책방 직원과의 20년간에 걸친 우정을 담은 편지를 엮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연상된다. 


서재방문기와 서재 주인의 애장서를 소개하는 독특한 포맷의 이 책은 저자인 윤성근씨가 다양한 책에 대한 출간과 유통에 관한 뒷이야기와 그 책과 관련된 독자들의 반응과 추이 그리고 배경지식이 충분히 발휘된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다양한 책에 대한 이론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그 책에 얽힌 우리 독자들의 에피소드가 가득한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가령 2005년 '디자인이즈'에서 펴낸 천상병시인의 <귀천 : 천상병 육필 서체 시집>이 마치 천상병 시인이 생전에 술을 한잔 걸치고 쓴 것처럼 비뚤비뚤 제 멋대로 늘어진 글자로 채워진 뒷이야기가 그렇다. 


당분간 구하고,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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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천도서를 멀리하는 편입니다. 추천도서 목록을 아예 외면하는 것이 아니고요, 가끔 목록에 있는 책이 궁금해서 확인합니다만 알고 나면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만 더 생깁니다. ㅎㅎㅎ

박균호 2015-06-1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이 최고죠...ㅎ
 

내가 늘 그들(아내&딸)에게 굴욕적으로 패배하고 지배를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도 승리의 순간이 엄연히 존재한다.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 대첩이 바로 그 경우다. 지난 일요일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떡을 사기 위해서 재래시장에 들렀는데 그들에게 조공을 할 먹거리를 찾다가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발견했다. 


중국산은 노랗게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국산 옥수수는 꺼무칙칙하게 보기엔 그래도 역시 농산품은 신토불이 아니던가? 더구나 조공용이니 그 음식의 원산지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어머니를 뵙고 집으로 돌아갔다. 의기양양하게 까만 비닐봉지에 든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마누라 상전에 바쳤으나 그딴 걸 뭐하러 사오냐는 예상치 못한 혹평을 받았다.


순간 화가 치밀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거실에 패대기치려고 했으나 상전 앞에서 감히 그런 불손한 행동은 못 하고 내 서재로 들어와 소파에 살포시 패대기를 쳤다. 저들에게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절대로 주지 않고 나 혼자 다 먹기로 결심을 했다.


무려 5,000원 어치고 나와 안면이 있는 주인아주머니께서 가래떡 뻥튀기와 쌀 뻥튀기까지 덤으로 주셔서 혼자서 다 먹기엔 너무 벅차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매일 매일 먹기로 하고 봉지를 열었는데 뻥튀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꾸역꾸역 먹는데 목이 따가울 지경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료수라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몽’ 주스뿐이다. 내가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주스인데 너무 급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 쓰디쓴 자몽 주스를 벌컥 벌컥 마시고 다시 서재로 복귀했다. 저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 날부터 야구 중계를 보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먹었다. 서재의 형광등도 꺼두어서 마치 영화관에 온 것 같은 운치가 느껴진다. 역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사길 잘했다. 그러나 또 목이 따가워져 온다. 나가서 또 자몽 주스를 먹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맛없는 걸 사왔냐고 조금 짜증을 낸 것 같은 기억이 나는데 이제 자몽주스가 입맛에 맞기 시작했다.


저들도 분명 뻥튀기를 싫어하지는 않는데 자신들이 한 소리가 있어서 참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새삼 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경우 냉우동 한 그릇에 자존심과 나의 이데올로기쯤은 쉽게 버리는 위인이 아닌가? 저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먹거리쯤은 안중에도 없구나!


6일째 되는 날 여느 때처럼 야구를 보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먹는데 아내가 덜컥 문을 열었다. 뻥튀기를 마치 떡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우적우적 먹느냐고 타박을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여자도 강렬한 뻥튀기 향을 맡았을 때이고 적어도 인간인 이상 ‘입질’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저녁을 먹은 후 두 시간이 지났다. 간식거리에 대한 욕구가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서재를 나가는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지금이라도 먹고 싶으면 말해라’라고 말하는 호기를 부렸음은 물론이다.


과연 정확히 18분 후 아내가 “뻥튀기 이리 좀 가져와봐”라며 백기를 들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실로 얼마만의 승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승자라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먹고 싶으면 여기 와서 가져가”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패자에게 해서는 안 된다. 


거실에 있는 아내에게 조용히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가져다주었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소비한 뻥튀기의 양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의 승리를 재확인했다.

이번 승리에 오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음날 학원을 다녀온 딸내미가 뻥튀기를 찾았는데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조롱’을 조금 하다가 ‘빡친’ 딸내미를 달래주기위해서 ‘국산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제발 먹어달라고 애원해야만 했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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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6-1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너무 재밌어요😆

박균호 2015-06-18 18: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감사해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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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두 세 가지 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모두 기웃거렸었다. 개신교는 모태신앙이 아니면서 교회에 다니게 된 대부분의 한국인과 같은 경로로 발을 들였고 한때는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기도 했다. 불교 또한 종교라기보다는 자기수양과 요즘 유행하는 힐링의 차원에서 보시를 하기도 하고 불자회라는 단체에도 가입하여 '경담'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법명을 받은 몸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다른 두 가지 종교의 경우와는 달리 불온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군복무시절 세례를 받겠다고 통신교리를 신청하여 우편으로 교리공부를 제법 오랫동안 했었다. 통신교리를 하게 된 계기는 왠지 '세례명'을 가진다는 것이 '폼'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니 결국 세례는 받지 못했는데 대학졸업 무렵 천주교 산하의 학교에 교사로 취직하기 위해서 일삼아 '세례'를 받는 '난 놈'이 있는 것을 보고 새삼 그때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 어떤 종교에도 귀의하지 못하고 '신'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고 현세에서의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보고 싶어 차마 저승길로 선뜻 나서지 못했던 '아버지'이지, 내가 가보지도 않은 나라에서 생겨난 내 얼굴도 알 리 없는 '부처님'이나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죽고 나서도 나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행복하지, 거룩한 신이 보살핀다는 고통이 없고 영생의 '열반'이나 '천당'에 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외동아들로 태어난 내가 겪은 가장 큰 불편함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싸움박질을 할 때 든든한 '원군'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사이의 싸움이란 것이 고만고만했고 결국 승자는 '너 ! 우리 형아한테 말해서 때려주게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였다. 나는 오랑캐 같은 친구 놈을 응징하게 일러줄 형이 없는 외아들이었다. 


친구 놈이 꼼수를 써서 내 딱지를 모두 따가거나, 달리기를 못한다고 놀려대도 그저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삭여야할 뿐 달리 대책이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아이들끼리의 일을 어른들에게 고자질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이 코흘리개들의 '송사'에 재판관으로 등장할 일도 없었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형과 객관적으로 시비를 가려줄 어른의 부재는 코흘리개의 삶을 '억울함의 천국'으로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8월 4박 5일의 일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그분의 방한을 계기로 천주교로 귀의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데 쉰이 다 되도록 굳건한 무신론자로 살아온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민과 공감이 굳이 익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생소한 타자로부터도 느낄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그분이 마침내 한국을 떠날 때는 마치 가족이 먼 길을 떠나는 듯한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코흘리개 시절 내가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할 때 홀연히 나타나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코를 닦아줄 것으로 희망되었던 자상한 형과 같은 따뜻함을 국빈으로 온 종교지도자에게 느낀 일은 내게는 나름 '영적인 충격'이었다.




이 경험이 나를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를 더욱 주의 깊게 지켜보고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공지영 작가는 이미 십 년 전에 스스럼없이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고백이 아닌 공표를 했다. <수도원 기행 2>는 사실 '돈을 위해 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개인사와 그로 인한 하느님에 대한 갈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따지고 보면 작가가 '돈을 위해 펜을 들지 않는' 경우가  낯설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문학의 본좌 도스또예프스끼의 수많은 명작들이 사실은 도박과 사치로 인한 빚에 쫓긴 절박한 펜 놀림의 산물이었고, 동화작가로 유명한 <강아지 똥>, <몽실 언니>의 권정생 선생과 국어학자 이오덕 선생의 서간집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말 중의 하나가 사실 '돈'이야기다. 


물론 원고료와 이오덕 선생이 권정생 선생을 염려해서 보내주는 정성이지만 결국 '돈'은 '돈'일 뿐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로서의 '글쓰기'가 결코 점잖지 못한 일이 아닌 이유다. 30대 초반에 이미 평생 쓸 돈을 다 번 공지영 작가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속아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결혼생활을 3번이나 마감해야 했던 그녀에게 '글쓰기'는 고상한 '예술혼의 표출'이 아닌 '생계수단'에 가까웠다. 공지영 작가의 글쓰기는 어린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한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었고 자식을 지키나가려는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해서 그의 소설도 구린 돈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낮은 자를 향한 강한 연민과 관심의 촉구인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그녀는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단언한다. 그것도 소외받고 불평등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지영 작가는 우리 문학계에서 가장 현실참여적이다. 그의 현실참여적인 문학은 난해한 이론 놀음이나 계몽적인 것이 아니고 오로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핍박받으며, 불평등을 일상적으로 당하고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공지영 작가의 소중함은 그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책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 속에서 직접 참여한다는 데 있다. 굳이 공지영 작가의 약한 자를 위한 행보를 열거하는 수고는 필요 없지 않을까?  등단 이후로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지만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의 면모는 결국 '사람'을 위해 펜을 든 것으로 증명된다.


공지영 작가의 도드라진 문학의 성과는 '약한 자를 위한 배려와 관심을 이끌어 냈고' 휴머니즘을 실천한 것이다. 나는 <수도원 기행 2>의 기본적인 근간이 '휴머니즘'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땅에 스며든 강아지 똥이 땅위의 아름다운 민들레를 키운 자양이 되었듯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중의 휴머니즘이 <수도원 기행 2>이라는 역작을 길러냈다고 나는 본다.


<수도원 기행 2>의 머리 부분을 차지하며 전체 글의 모태가 되는 '왜관수도원'만 해도 그렀다.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소재가 왜관수도원이기도 한데, 한국전쟁 중 애초에 군사목적으로 항해에 나선 미국의 배가 인민군과 중공군에게 쫓기는 무려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기적적으로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과 왜관수도원과의 인연이 이 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수도원 기행 2>가 왜관수도원에서 시작해서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이 수사가 되어서 머문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이 책이 단순히 기행문이 아닌 인과관계로 역인 대하소설로 읽히는 감동을 준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이 오로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국민을 속이고 한강철교를 폭파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천인공노할 일로 시작되는 바로 그 전쟁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정치나 국적보다 더 우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총구나 이데올로기보다 더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원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자급자족하며 노동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왜관수도원의 일원이기도 하며 <수도원 기행 2>을 펴낸 분도출판사를 키운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님의 주요한 기획중의 하나였던 가난한 이웃들의 사진만을 찍어 박정희의 핍박을 받는 최민식 작가의 사진집 이름이 [Human]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예의라는 뿌리를 가진 이 책의 소소한 '인간적인' 면모는 194페이지의 공지영 작가의 저작권인 에펠탑 야경사진으로도 느껴진다. 야경사진을 삼각대가 아닌 손각대로 촬영하여 초점이 맞지 않아 뭉개진 공지영 작가의 귀여운 인간미가 넘치는 사진 말이다.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에서 발견한 유일한 흠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충고는 '야경사진을 찍을 땐 귀찮더라도 삼각대를 사용하시라'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에 담길 사진이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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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 대통령의 필사가 전하는 글쓰기 노하우 75
윤태영 지음 / 책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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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지만 2009년 5월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연결식 조사를 상기해보자. 장례식을 치러내기 위한 한승수 국무총리의 '의례적인' 조사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것을 애통해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통한의' 조사가 이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로 시작해서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로 마치는 한명숙의 조사는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의 모든 일정 중에서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눈시울을 가장 뜨겁게 달군 대목이었다. 이 조사를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국민의 반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위대한 경사스러운 날'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 대통령이 된 쾌거'였고 또 다른 국민의 반에게는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때보다 더 한 절망을 안겨준 2012대선을 상기해보자. 결과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선거기간동안 유난히 뇌리에 오랫동안 스며든 연설의 한 장면은 문재인 후보의 어눌한 입에서 나왔다.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명연설을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이 두 개의 글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글은 어려운 미사여구가 아닌 살아 있는 생활 속의 언어를 재료로 삼아야 하고, 윤태영의 글쓰기 방식이 우리 시대의 더할 나위 없는 글짓기 선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다양한 글쓰기의 지침 속에 알알이 담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저자와 관련된 인물과의 에피소드는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글쓰기 교재가 아닌 '노무현 추억하기'로 읽히기도 한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대한 칭찬을 전혀 듣지 못한 '문학청년' 지망생 저자가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고, 정치권의 글쟁이를 거쳐서 이제는 <기록>(책담, 2014)이라는 걸출한 저서를 남긴 글쓰기 선생이 되기까지 몸소 체득한 글쓰기 비법 75가지를 알려준다.


스포츠 세계에서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의외로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지 않다.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나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하지만 넥센 히어로스의 '염경엽'처럼 무명선수출신의 명감독이 많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명선수였던 사람은 애초부터 타고난 재능이 워낙 탁월하여 '못하는' 선수들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애초에 자신이 주목받지 못한 현역생활을 거친 감독들은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저자 윤태영도 마찬가지다. 문학을 지망하긴 했으나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그는 꾸준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하고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명문장을 써낸 장본인이 되었다. 재능은 싸구려이며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는 말의 훌륭한 예가 바로 윤태영이다. 그런 그가 '실용적이고 당장 처방이 가능한 글쓰기 비법'을 소유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쓰기 강좌는 지켜야 할 수칙도, 사례도 구체적이다. 김훈이나 김승옥의 소설에서 예문을 구해오기도 했지만 예문의 대부분은 그가 정치 글쟁이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글쓰기 실무의 경험에서 따왔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메모로 쓴다"

"이름 모를 소녀 신비함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

"접속사,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자. 흐름을 중시하자"

"모든 것을 설명하지 말자. 욕심이 글을 지루하게 만든다"

 으로 대표되는 75가지의 글쓰기 노하우는 철저하게 실용적이며 구체적이다. 




소설이야말로 글쓰기의 훌륭한 교재라는 가르침에 나는 철저하게 동의한다. 좋은 소설을 읽고 그들을 흉내 내는 일이야 말로 좋은 글쓰기의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무릎을 치게 하고 가슴을 울리는 명문장이 가득한 김훈이나 김승옥 그리고 이문구 등의 소설을 읽을 때면 수첩을 곁에 두고 메모를 한다. 메모한 문장이나 문투를 다음번 글을 쓸 때  한 번 써먹겠다는 생각이다. 여의치 않으면 그 문장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면서까지 흉내 내야 속이 시원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흉내내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어투와 글 솜씨를 가지게 된다고 믿는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고매한 학문의 깊이를 자랑하면서도 제자의 함량을 고려하지 않는 저 높은 곳의 하늘 같은 스승이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호랑이 선생의 송곳 같은 질문에 쩔쩔매는 친구를 돕기 위해서 나지막한 속삭임으로 힌트를 주는 다정한 친구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밝혀둘 것은 이 글은 접속사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흐름을 중시하라는 저자 윤태영의 충고대로 접속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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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나, 아내 , 딸아이가 모여서 순대와 김밥을 먹는데 여동생이 새 아파트를 하나 청약해놨다는 소식을 아내가 전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뛰어난 살림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여동생에 대한 흐뭇함보다는, 조만간 나에게 튈 것이 분명한 불똥이 걱정된다. 학생들에게 꿀밤을 먹이면 정작 무서워하고 가슴 졸이는 것은 내가 준비 동작을 취할 때지 타격의 순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분명 나에 대한 원망의 프롤로그임이 분명한 주변 사람의 성공담은 나에게 꿀밤을 맞기 직전의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아내와 딸아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다가올 후폭풍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순대가 아닌 김밥을 두 번이나 소금에 찍어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처럼 5년 후나 10년 후를 내다보지 않으며 금융 상품이나 재테크에 무지한 집도 없다고 한다. 김밥을 먹어서 오물거리는 아내의 입은 ‘우리’라고 말했지만, 그 눈동자는 분명 ‘당신 또는 너’를 말하고 있음을 눈치 없는 나도 알아챘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집이고, 이사를 하면 이사 비용과 세금 등의 비용은 어쩔 거냐는 나의 주장은 이미 자주 써먹은 터라 다른 기발한 변명을 생각하려는데 숨 쉴 틈도 없이 아내는 다음 현안으로 화제를 돌린다.


딸아이가 영어 학원에 그만 다니고 싶어 한단다. 이 현안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 전문가(영어 교사)이니 자신 있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계속 다녀라.”


마지막 안건은, 정 이사를 가기 싫으면(‘이사 갈 능력이 안 된다면’이라고 말해주지 않아서 고맙다) 리모델링이라도 해야 하는데 직장 동료가 편백나무를 사용해서 벽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단다. 이 대목에서 바람직한 가장이라면 편백나무로 리모델링했을 때 장점과 단점을 열거한 후에 장점이 더 많으니 그게 좋겠다고 말함으로써 남편의 해박한 집안 살림 지식을 자랑하고, 또 아내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상한 남편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거 편백나무가 뭐 어떤 긴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무식할 수 있느냐는 비난을 듣고 평소처럼 나의 은신처인 서재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내의 무서운 공격에 숨 쉴 틈이 필요했다. 단 30초라도.

영혼까지 털린 몸뚱이를 서재의 소파에 내던진 다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퇴근 직전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것은 새로 나온 이문열의 14만 원짜리 《변경》 전집을 지를까 말까였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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