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잠깐 직장 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도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동료들과 일식집에서 회식하고 주말에는 볼링을 쳤다. 그때 나만의 낙이 있었는데 월급을 받으면 양복 한 벌을 사고 점심시간엔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그 무렵 사들였다. 조금 웃기는 게 이 책을 사두기만 하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는데 싱아상아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십 대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자 이 책을 꺼내 읽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절은 박완서 작가의 독서 통찰 부분이었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다르게 보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는 우리 집 거실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을 볼 때마다 너무 예뻐서 행복하다. 이 집에 산 지 무려 25년이 지났는데 왜 그간은 이토록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무심히 넘겼는지 참 안타까울 지경이다. 어쩌면 내가 책을 가까이해서 이 풍경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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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11-1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 밖 풍경도 무척 아름답고 책장은 부럽습니다^^ 저와 겹치는 책들이 몇 권일까 생각해봅니다. 작가님 덕분에 더 기분좋은 일요일 오전입니다. 감사합니다^^

박균호 2024-11-10 09:38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을 많이 버려서 문나이트님이 훨씬 많을 것 같아요. 같은 커뮤니티에서 오래 활동하다보면 책도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아무 공통 분모가 많을 것 같습니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

yamoo 2024-11-1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서재가 끝내주네요!!!

저도 박완서 작가 작품들 10여권을 구매했지만 읽은 작품은 거의 없어요. 단편 몇 편 본 게 다..
그 많던 싱아...이거 하드 커버로 된 책을 헌책방에서 1천원 주고 산게 2008년인가...그랬는데, 아직도 안봤어요.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하겠다는...^^;;

박균호 2024-11-10 10:53   좋아요 0 | URL
그 많던 싱아 ~ 정말 재미나요 ^^ 꼭 찾아서 읽어보시길 바래요 ^^

그냥 2024-11-10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깔끔 그 자체 서재네요.의자에 걸쳐 둔 옷을 다른데 두고 찍었으면 더 좋았겠는데요. ㅎㅎ

박균호 2024-11-10 20:32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해요 . 어차피 바깥 풍경이 포인트 인지라 ㅎ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빠른 독자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이미 산 책인지 모르고 또 산다는 것이다. 최근에 우엘벡의 <소립자>를 재미나게 읽다가 100쪽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이미 읽은 책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둔해도 그렇지 이토록 짜릿한 내용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쨌든 나는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격언을 철저히 책 구매에 적용하는 사람이다. 우엘벡의 모든 저작을 주문하려다가 간신히 참고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런데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들어서 서재를 뒤졌는데 세상에! 우엘벡의 나머지 저서가 빼곡하게 한자리에 있더라. 산 책을 잊고 있었던 우매함보다는 책 구매에 관한 나의 열정과 집요함에 감탄하게 되더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정말이지 경천동지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몇 해 전 <채식주의자>를 읽다가 너무나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줘버린 이후로 한강 작가의 책은 읽지도 사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긴 나는 한국현대소설은 아예 읽지 않는 편에 가깝게 된 지 오래되긴 했다. 그런데 웬걸! 한강 작가의 시집이 떡하니 서재 구석에 있다. 이 시집을 보고 한강 작가가 시도 쓴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분명 누가 좋다고 해서 사긴 샀을 텐데 누가 왜 추천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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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11-01 2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셸 우엘벡의 책은 (확실히) 다 샀기 때문에 중복으로 살 일은 없겠지만 다른 책들은 개정판이면 산 건지도 모르고 또 사요ㅜㅜ 읽다가 어 이거 분명 읽은 책..-_- 하게 되네요ㅠㅠ

박균호 2024-11-02 03:28   좋아요 1 | URL
저랑 같군요 ㅎㅎ. 그래서 제목만 바꿔서 내는 경우엔 정말 ㅠㅠㅠ

초란공 2024-11-01 2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책을 책장에서 새로 발굴하는 맛도 가끔은 있어야지요~! ㅋㅋ 선물로도 줄 수 있고요^^

박균호 2024-11-02 03:29   좋아요 0 | URL
산 책 발굴 !!! 재미난 표현이네요 ㅎ

stella.K 2024-11-0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 다른 중요한 말씀은 앞에서들 다 하셨고, 그 시집이 유일한 한강 작가의 시집이라더군요. 시부터 시작한 작가들 많찮아요.
근데 열 가지를 아는 격언을 책 구매에 적용하신다는 말씀에 빵터졌습니다. ㅎㅎ
요즘 잘 지내시죠?

박균호 2024-11-02 10:51   좋아요 1 | URL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 글을 쓰야 하는대 읽는게 재미나서 시간을 죽이고 있네요 ㅎ

서니데이 2024-11-02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균호님 잘 지내셨나요.
새 책들이 많이 나와서 사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가 점점 더 늦어지는 것 같아요. 조금 천천히 사면 되는데 잘 안됩니다.
주말 날씨가 따뜻해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24-11-02 12:1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잘 지내시죠? 언제나 글 잘 읽고 있어요 .

yamoo 2024-11-02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죠. 우엘벡 소설1권, 조르주 페렉 소설2권, 필립 로스 소설 1권 등 중복되는 책을 많이도 샀죠. 못찾아서 산 책도 있어요..ㅜㅜ

박균호 2024-11-02 12:47   좋아요 0 | URL
우엘백 좋아하는 분이 많네요 ㅎ 이래저래 반갑습니다 !
 
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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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만 읽기 시작한 지가 이미 몇 년 지나서 생존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지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특히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여성 작가의 에세이는 조금 과장하면 한 삼십 년 만에 읽는 것 같다. <즐거운 어른>은 여러모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선 깜짝 놀란 것이 저자 이옥선 작가가 1948년생 즉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문체가 무척 젊다는 것이다. 종종 출판지원 공모사업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봐온 50대 이상 연령층의 에세이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세련되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다.

 

40대 전문직에 종사하는 작가가 쓴 글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톡톡 튀는 문체이면서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력이 종종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가부장제에 관한 소견이 그랬다. 보통 한국의 여성 작가가 가부장제를 언급할 때는 가부장제로 인해서 자신이 받은 피해와 억울함을 토로하며 그것을 어떻게 자신이 용감하게 극복했는지에 주로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옥선 작가는 가부장제가 비록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내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는 의식도 함께하므로 복지제도가 없는 과거에도 대충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았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제사를 책임지던 며느리가 유방암에 걸리자, 집안 제사가 올스톱되었다는 이야기, 결국 제사라는 것이 각자 다른 성씨를 가진 며느리의 몫이 된다는 이야기도 너무 공감된다. 아내가 병원을 전전하던 작년 한 할머니가 들려주었다는 하소연과 결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평생 얼굴도 모르는 시댁 어른의 제사를 성실히 모셨던 할머니는 자신이 유방암이라는 몹쓸 병에 걸리자, 제사 열심히 지내는 것에 대한 소용없음을 몸소 깨닫고 며느리에게는 절대로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다지.

 

혹은 봉화산 쌍봉 바위에서 좌로 열두 걸음 다시 좌로 뭐 어쩌고 지점쯤에 송이버섯 군락이 있으니 자손 대대로 며느리에게 전해라 같은 내용도 아니라면, 굳이 죽기 직전까지 가서 할 말이 무엇일까?

 

임종을 지킨 자식이 그렇게 중요할까? 아니 왜 농경시대의 돌봄 방식에나 먹히던 사고를 현대의 직장 생활자에게 갖다붙여서 임종 콤플렉스를 느끼게 하냔 말이지.

 

위 두 문장은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옥선 작가가 얼마나 트렌디하면서도 지적인 문장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확신한다. 그러면서도 사회 현안에 대한 적확한 통찰력까지 놓치지 않는다. 꼰대스럽지도 않으면서 도발적인 글도 아니다. <즐거운 어른>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박완서 선생이 아직 살아있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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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4-09-15 10:46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공생하고 공격하며 공진화해 온 인류와 미생물의 미래 묻고 답하다 6
고관수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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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브론테 자매, 오노레 드 발자크,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레데리크 쇼팽, 임마누엘 칸트, 스피노자 등 문학, 음악, 철학을 대표하는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이들. 그러나 모두 결핵이라는 감염성 질환으로 인해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매력적인 주인공이 손수건에 피를 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또한 결핵균에 의해서 발병한 중증 결핵환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생물에 관한 가장 흔한 선입견은 미생물은 의과대학이나 과학자의 실험실에서나 구경할 수 있고 우리의 실생활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초에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지구는 미생물로 덮여 있었다.

지구의 역사에서 아주 늦게서야 등장한 인류는 미생물을 이용하고 협력하며 때로는 극복하면서 생존해 왔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생물은 지구의 역사와 함께한 터줏대감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미생물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고관수 성균관대 의과대학의 최근작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는 우리가 뜨문뜨문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미생물과 인류 역사와의 관계를 소상하고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미생물의 관점에서 본 역사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인류와 미생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알았다, '미생물'을 다정한 친구로 만드는 법

미생물이 인류 역사에 미친, 가장 오래된 사건 중의 하나는 아마도 아테네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것이다. 철학, 과학, 예술, 민주주의를 꽃피우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패하면서 몰락을 길을 걸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아테네를 굳건히 지켜주었던 성벽을 쓰러뜨린 것은 적군뿐만 아니라 미생물이라는 작은 생명체도 거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생물은 아테네와 고대 민주주의를 몰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간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켰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와의 전쟁 직후 오늘날에는 장티푸스라고 부르게 될 병균이 아테네 전역에 만연했고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집트에서 환자를 실은 배가 피레우스 항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 아테네의 악몽은 마치 지옥이나 다름없어서 아테네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더욱 활개 친 역병 때문에 아테네 국력은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소모되었고 결국 고대 그리스 문명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아테네 역병은 그리스 문명의 쇠퇴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시켰다. 의사들은 생전 처음 보는 질병을 치료하다가 환자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허다했고 환자 곁을 지키던 사람들도 병에 걸려 죽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종교적 신념이나 명예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해졌고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신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역병에 죽을 운명이 되자 그동안 자신들을 속박했던 관습이나 규율을 무시하고 당장 눈앞의 쾌락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을 괴롭히는 미생물은 일부이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빵과 술도 알고 보면 미생물의 소산이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서 우리는 미생물을 인류의 삶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이용하고 있다.

가령 면역항암요법이나 세균을 매개로 하는 암 치료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는 인간과 미생물과 끈질긴 인연이 결코 위험한 것만은 아니며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그리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결국 미생물이 천사의 모습을 할 것인지 악마의 모습을 할 것인지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류의 잘잘못을 따져 훈계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미생물이 행복하게 공생하는 미래를 꿈꾸는 책이다.

역사라는 학문을 미생물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흥미롭고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미생물이라는 낯선 친구를 다정한 친구로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흥미롭고 독특하며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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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24-09-1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균호님 오랜만이죠? 그동안 여러 저서를 내신 걸로 알고 있고.그냥 눈으로만 따라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계속 출간하실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저도 이번에 산문집을 한권 냈습니다만 책을 많이 자주 출간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편집자와의 관계며 또 출판된 책의 판매량도 신경 쓰이고 이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닐 것 같단 말이지요.이런 걸 다해내시는 걸 보면 추진력이 대단하달까 하여간 일반적인 에너지 가지고는 안될 것 같단 말이지요. 건강하시고 다음책은 어떤건지 궁금함을 가지고 지켜 보고 있습니다.

2024-09-10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냥 2024-09-1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그인 없이 이렇게 썼을 경우에 비밀 댓글을 읽을 수가 없더군요.ㅠㅠ

2024-09-10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10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10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4-09-10 22:50   좋아요 0 | URL
아이코...주문하려고 검색하니까 세상에 베셀아네요.ㄷㄷㄷ 저랑은 비교가 안될 대단한 작가이십니다. 진심으로 존경스럽네요. 잘 읽어볼게요.

2024-09-10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10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문화가 우리보다 활성화된 서양에서는 초판이 꽤 가치가 있지만 나는 초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초판보다는 개정판을 더 좋아한다. 어쨌든 초판보다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뜻이니까. 내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낸 16권의 책을 모두 소장하지는 않는데 초판을 선호하지 않는 내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

 

초판은 자잘한 오타와 오류가 있기 마련이어서 자랑스럽게 내 서재에 두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그래서 이리저리 나눠주거나 심지어 내다 버리기도 한다. 재작년에 낸 <10대를 위한 나의 첫 철학 읽기 수업>이 재 쇄를 찍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초판을 2천 부 찍는 출판사이고 내가 철학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초판 소진이 어려웠다


2쇄에 대한 선인세를 지급하는 출판사라서(출판사에 따라서 2쇄부터는 판매 수량에 대해서만 인세를 지급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수입이 생긴 것보다는 초판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기쁘다. 2쇄 본이 도착하면 초판은 재활용 상자로 직행할 운명이다.

 

3년 전인가 한 대형출판사에서 낸 초등학생용 인문 교양서 전집(신기하게도 인터넷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오프라인을 통해서 판매한다) 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는데 얼마 전 재인용을 하겠다며 인세를 지급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같은 출판사에서 낸 내용을 같은 출판사가 내는 다른 책에 인용할 때도 인세를 지급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인용 분량은 원고지 4매이며 원고료는 4만 원이다. 어제 재인용에 대한 계약서가 도착했는데 무려 7장 분량이다. 서명을 10번 가까이하면서 든 생각이 내가 이 수고를 하고 우체국에 들러 우편료를 부담하면 4만 원 중에 얼마나 남을까였다. 세금도 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출판계가 저작권에 이토록 철저하게 대응한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기꺼이 주섬주섬 밀봉해서 우체국에 들리는 수고를 감수하기로.

 

한가지 더 흥미로운 소식이 있었다. 2015년에 낸 <수집의 즐거움>에 관한 것인데 어떤 문화 전시 전문 업체 대표님께서 수집에 관한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면서 내 조언을 받고 싶다고. 고양에 업장을 둔 분이 포항까지 내려오시겠다는 것인데 심지어 자문료를 지급하고 싶다며 정중하게 요청하셨다


자문료보다는 타인의 수고와 콘텐츠를 귀하게 여기는 드문 분이라서 대뜸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단지 문제는 내가 자문료를 받을만한 위인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미리 알렸는데도 굳이 내려오신다고 해서 약속을 잡을 참이다. 솔직히 2015년에 낸 책이라 나도 내 책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매우 드문 일인데 내가 쓴 책을 대충이라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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