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 페니실린에서 플루오로퀴놀론까지 항생제 개발의 진짜 역사
고관수 지음 / 계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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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야 말로 승자 독식의 표상이라고 할 만하다. 승자나 1등만을 기억하고 조력자나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 2001년 우리 정부는 제102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아내 고 단양이씨와 그의 아들 홍양순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온 가족이 독립운동가라는 말인데 홍범도 장군의 아내는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아서 단양이씨의 명의로 훈장을 받았다. 단양이씨는 발가락에 심지를 끼워 놓고 불을 달아 놓은 잔인한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혀를 끊어냄으로써 순국했다. 역사가의 고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일어난 일을 기껏 해봐야 몇 권 분량으로 압축해야 하니 나폴레옹 혼자서 알프스산맥을 넘어서 유럽을 정복했다는 식의 지도자나 승자 중심의 서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 밝은 독자들은 영웅이나 황제가 아닌 조력자라든가 큰 공을 세웠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조명한 기록물에 관심을 기울인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관수 선생이 쓴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은 승자 독식 역사관에 가려진 숨겨진 영웅을 다루는 귀한 책이다. 항생제라는 밝지도 쉽지도 않은 주제를 다루는 책이니 당연히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꾸역꾸역 읽다 보면 한 줄기 빛과 같은 영감이나 통찰 그리고 재미를 느끼기 마련인데 이 책은 확실히 책장을 넘기는 고통보다 전혀 생각지 못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나 감동까지 맛볼 수 있다.

 

독자의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책의 첫 번째 요건이라면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과학지식이 목마른 이과 체질의 독자들에게는 항생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의학사에 대한 지식을 선사하고 문과 체질 독자들에게는 순수문학에서 찾지 못하는 색다른 휴머니즘을 맛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약학이나 의학만큼 더 인간적인 학문이 어디에 있을까.

 

세계 최초로 푸른곰팡이가 세균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 않는 이름이 된 에르네스트 뒤셴의 슬픈 인생 역정 이야기는 고관수 선생이 왜 이 책을 썼는지에 대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뒤셴은 1901년에 아내를 결핵으로 잃었는데 1912년에는 자신도 아내와 같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1897년에 이미 그는 자신과 아내를 죽음으로 내몬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 즉 오늘날 페니실린이라고 불리는 물질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의과대학생에 불과했던 그의 논문을 아무도 주목하지도 않았고 그가 추가적인 연구비를 얻기 위해서 논문을 보낸 파스퇴르 사는 그의 논문을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파스퇴르가 비록 어린 대학생의 논문이지만 유심히 살펴보고 그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여건 마련을 해주었다면 그 사이에 결핵으로 숨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뒤셴이 곰팡이의 항균 작용을 연구하게 된 계기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마구간에서 군마의 안장을 관리하는 아랍 출신의 소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푸른곰팡이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년들은 특이한 방식으로 안장을 관리했는데, 습기가 많고 어두운 곳에 안장을 보관해 안장 아래쪽에 의도적으로 곰팡이가 자라도록 했다. 말이 사람을 많이 태우면 안장에 등이 쓸리고 피부가 까져 고통스러운데, 이 곰팡이가 말의 통증을 완화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뒤셴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푸른곰팡이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공로는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인 플레밍에게만 돌아갈 것이 아니라 뒤셴과 군마의 안장을 관리한 소년들에게까지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과학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어느 한 위대한 과학자의 위대한 발견으로 큰 발전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값어치는 충분하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에는 항생제와 관련한 많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에리트로마이신이라는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공을 세운 필리핀의 의사 아귈라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제 과학적 지식과 희생이 없었다면 일라이릴리가 이 항생제를 제조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항생제에 대한 로열티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일라이릴리에 5억 달러의 로열티를 요청합니다. 이 로열티는 수천 명의 가난하고 병든 필리핀 동포를 돕는 사업에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것입니다.

 

이 편지는 매년 2월이면 출판사에 원고료를 독촉한 것으로 유명한 법정 스님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출판사 사람들은 무소유를 주장한 법정 스님이 돈을 밝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했지만 사실 법정 스님은 대학 입학을 앞둔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때 주기 위해서 원고료를 독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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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SNS는 갖춰야 할 스펙이 되어가고 있다. 출판사에서도 SNS를 활발히 하는 작가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간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주 SNS를 하지만 근자에 들어와 피로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책을 내다보니 내 온라인 친구들도 출판사 관계자와 작가가 대부분인데 좋은 책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문사 서평 코너를 따로 살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게 또 역효과가 있는 것이 너도나도 신간 소식을 많이 올리니까 살짝 괴롭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책을 새로 내면 홍보를 하기 마련인데 이게 과하면 또 고만해라. 많이 먹지 않았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새 광고에도 시달리고 있다. 나는 재테크나 투자에 관심 끊은 지 수십 년은 되었다. 돈복은 내 사주에 없는 것이려니 체념했다. 그런 나에게 하루에도 수십 개씩 투자나 주식에 관한 광고가 뜬다. 미칠 지경이다. 차단을 하고 신고해도 좀비처럼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인기 강사 김미경인지 이미경인지 하는 분 광고도 줄기차게 뜬다. 나는 그 분 얼굴이 티브이에 보이면 급하게 채널을 돌리는 사람이다.

 

줄기차게 차단하는데 광고도 진화하는지 이번엔 주식 투자와 그 인기 강사의 얼굴이 합쳐진 광고물이 뜨지 않는가. 기함할 노릇이다. 어릴 적 악몽에서 자주 겪은 장면 즉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는데 뒤에선 귀신이 쫓아오는 상황이다. 페이스북도 먹고 살아야 하니 광고를 하는 것은 좋은데 목표 설정을 좀 잘해야 하지 않을까?. 관심이 없는 상품을 왜 자꾸 나에게 선전하는 것일까. 광고도 솔깃하고 재미나자면 정보가 될 수 있는데 대체 무슨 알고리즘으로 나에게 이런 고통을 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신간 홍보고 뭐고 SNS를 끊어야 할 때가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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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진짜 공부 - 10대를 위한 30가지 공부 이야기
강원국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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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근무를 하다가 대통령 연설문을 썼고 지금은 방송과 강연, 글쓰기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강원국 선생이 뜬금없이 왜 공부 책을 냈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다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만 하다. 강원국 선생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이 행복해지는 공부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해답이 바로 이 책이다. 나로 말하자면 평생을 학생 공부시키느라 이골이 난 사람이기 때문에 공부라면 지긋지긋해서 정작 내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번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강원국 선생이라면 공부 책이라도 뭔가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 강원국 선생의 책은 언제나 재미나고 새로운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시키는 사람인 내가 공부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는 수고는 수업료로 생각하기로 했다.

 

막상 <강원국의 진짜 공부>를 읽다 보니 이 책은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알기 위한 학생뿐만 아니라 자녀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학부모,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인 교사 그리고 좀 더 훌륭하고 나은 인격체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학교 공부, 마음 공부, 인격 공부를 위한 좀 더 친절하고 확실하며 다정한도우미라고 해야겠다. 부모라고 해서 자녀 교육에 도통한 것도 아니고 교사라고 해서 공부하는 방법을 통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래 구절을 통해서 절감했다.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는 없습니다. 무언가 잘하는 게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을 찾으면 됩니다. 과거에는 잘하는 것에도 우열이 있었습니다. 영어와 수학이 사회나 과학보다 중요했고 배점도 높았습니다. 아무거나 잘해선 의미 없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걸 잘해야 했지요. 까부는 것, 잘 노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잘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에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잘 놀기만 해도, 잘 먹기만 해도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따지고 보면 요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고 한 번쯤은 자녀나 학생 그리고 후배에게 들려준 주장이다. 그러나 두서없이 한 시간 동안, 이 생각을 풀어서 한다고 생각해보자. 결국 듣는 사람에게 남는 기억은 내가 저 사람에게 한 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었다는 정보일 것이다. 이 구절이 이토록 설득력과 감동을 주는 이유는 강원국 선생이 평소 강조하는 말의 힘일 것이다. 한 단어도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최적의 길이로 듣는 사람에게 강렬한 설득력을 말의 힘.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지로 안 됩니다. 습관으로 해야 합니다. 자동차나 TV 만드는 공장에 가면 생산 라인이 있고, 거기서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자동화된 생산 라인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부품이 하나씩 보태져 완제품이 나오지요. 나는 습관이 이런 컨베이어 벨트라고 생각합니다. 습관이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자신을 올려놓으면 공부가 절로 되는 것이지요.

 

나는 이 구절을 뭔가 꾸준히 해야 하는 과업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피를 토하면서(물론 나는 강의를 30년 해왔지만, 피를 토하면서 강의를 한 적이 없다) 명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1분 정도는 세상을 정복하고 산을 옮기겠다는 의지에 불타지만 그 실천은 매우 어렵다. 나만 해도 그렇다. 불후의 명작을 써보겠다고 두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자료와 책들을 직장과 집 사이를 꼬박 5개월 동안 들고 만다닌 이력을 소유한다. 물론 그사이 쓴 글은 한 단락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들고 다녔던 자료는 너들너들한 걸레가 되었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내 나름의 글쓰기 루틴과 습관에 따라 마치 끼니를 때우는 것처럼 글을 쓰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 도서관에 출근해 근무 환경(?) 세팅을 마친 후 커피 믹스를 마신 다음 집필을 시작한다. 점심때가 되면 늘 가던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금쪽같은 식후 흡연을 한 다음 오후 집필에 들어갔다가 집에 와서는 안마의자에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식의 습관 말이다. 이건 마치 내 의지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키보드가 스스로 글을 쓰나 가는 경지를 맛본다. 습관이나 루틴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명장면이라고 꼽는 농사짓는 귀족 레빈이 풀베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는 농민과 함께 풀을 베는 게 너무 재미나서 낫이 스스로 풀을 베는 듯한 경지에 이르렀고 한나절 풀을 베었는데 누가 물으면 ‘30분 정도라고 대답할 만큼 몰입했다. 공부나 과업 수행을 위한 자신만의 습관이나 루틴을 만드는 것은 몰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말을 통해 더욱 많이 알게 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른은 더 어른스러워지고, 선생님은 더 선생님다워집니다.

 

수다쟁이가 똑똑해진다는 말이 아니다. 이쯤에서 고백하건대 나는 대학에서 배운 내용보다 꼬맹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체득한 내용이 훨씬 많다.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남에게 거만한 표정으로 가르치는 재미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내가 교재 연구를 하면서 재미나고 기발하다 싶은 내용을 발견하면 학생들에게 알려줄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 다음날 마침내 내가 터득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면서 나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 지식이 내 머릿속에 화석이 되었음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공부 방법을 알려주는 <강원국의 진짜 공부>를 제자와 친구에게 선물하면서 느낄 카타르시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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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07-2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따님께 공부하란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했나보네요. 의젓하고 대견한 따님^^
습관이 되는 공부, 가르치면서 더 확실히 갖게 되는 지식. 많이 공감하고 보관함에 넣습니다^^

박균호 2023-07-28 14:13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나오지만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 - 연극에서 길어 올린 사랑에 대하여
최여정 지음 / 틈새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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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라는 개념이 인간이 획득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영어 단어를 단지 명사라고 규정할 수 없는 용례가 수도 없이 많은 것처럼 우리는 종종 분류가 만든 경계가 얼마나 허무하고 헐거운 것인지 실감한다


연극과 무대에 관한 글을 주로 써온 최여정 작가가 쓴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라는 책이 그렇다. 우리는 편의상 문예 작품을 수필, 소설, 시 따위로 분류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저 수필이라는 좁은 분류에 가둬두기엔 안타깝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는 사랑을 주제로 최여정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연극, 영화, 책을 오간다. 그리고 숱한 문장들을 모두 외우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절묘하며 통쾌하다. 그러니까 최여정 선생의 글은 그저 산문이라고 정의할 수 없으며 모두가 아름다운 서정시의 아우라가 품긴다. 가령 이런 문장들.

 

나는 늘 믿어 왔다. ‘편지와 술이 없었다면 내 마음을 몰라주는 당신에게 어떻게 고백의 말을 할 것이며, 술이 없었다면 당신의 입술에 어떻게 키스할 수 있었을까.

 

결혼이란 시소를 함께 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올라가고 나면 내가 올라가고, 그다음엔 또 네가. 그렇게 차례차례 오르락내리락 마주 보며 웃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여정 작가가 겪은 가족과의 사랑, 남자와의 사랑은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과 절묘하게 이어진다. 러시아 외교관이었던 유부남을 사랑했던 이야기를 담은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고 그 지독한 사랑에 탄성을 지르지 않은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혹시 그가 자신에게 뭐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에이즈 검사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랑 말이다. 그러나 최여정 작가 사랑의 사랑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 결코 문학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면 증오심이 일어날 정도였다가, “나야.’라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순간 숨이 멎은 듯 제정신을 잃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오는그런 기분.

 

그러나 정작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를 읽다가 가장 감탄한 부분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고 최여정 작가의 아버지와의 사랑이었다. <리어왕>을 통해서 통제권의 상실돌봄의 필요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와의 일화를 꺼내 든다. 약속 장소로 향하다가 접촉 사고를 낸 아버지에게 뭘 보시다가 한눈을 판 거에요? ‘운전하실 땐 정면을 봐야지.”라고 다그치는 딸에게 임을 꾹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던 아버지는 마침내 입을 떼신다.

커다란 흰 나비가 창문에 앉는 거야. 요새 나비가 잘 없잖아.”

 

어쩌면 최여정 작가의 유려한 문장은 스치는 가을바람에 휘청이는나이에 이르기까지 소년 같은 감수성을 잃지 않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최여정 작가 부녀의 사랑도 글솜씨도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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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유명 인사들이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의 인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혼자 살기를 꿈꾸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도 이미 비혼주의를 선언했거나 실천하고 있는 동료가 꽤 많다. 불과 30년만 해도 20대 후반만 되면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주변 사람 들이 트집(?)을 잡고, 30대 후반에 접어들면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데 소개해줄까'라는 오퍼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저 친구는 이제 틀렸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본능적으로 유독 편함을 추구하는 나는 결혼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싱글이 누리는 자유로움도 좋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에 일찌감치 세뇌당한 구세대 사람들은 결혼이 자연스럽고 비혼이 부자연스러운 삶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김보리 작가가 쓴 <혼자라는 가족>을 읽다 보니 비혼이 그다지 부자연스러운 삶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면서 사는 것은 사회적인 필요로 행해지는 일종의 의무가 아닐까? 결혼 관계가 형성돼야 부의 대물림, 사회 구성원의 효율적인 증가, 사회 구성원의 교육 등이 좀 더 원활히 수행될 테니까 말이다. 


<혼자라는 가족>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혼자 사는 김보리 작가의 일상이 펼쳐진다. 특별히 부자이거나 가난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평범한 40대 여성이 거창한 이데올로기도 없이 다만 '관계의 노동'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누리는 이야기다.

모든 관계는 노동이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힘들게 유지되는 관계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정서적 유대감이나 인간관계의 유연함이라는 탈을 쓰고 사회가 유리에게 강요하는 노동이다. 


비혼이나 혼자 사는 삶을 이토록 정확하게 지적한 구절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혼자라는 가족>이야말로 혼자 살기를 꿈꾸는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비혼주의자를 '사회 부적응자'라거나 '부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이 더욱더 읽어야 할 책이라고 권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인 나도 위급한 순간이 되면 한순간의 고민 없이 가족을 위해서 대신 목숨을 버릴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고민의 99%는 내가 결혼함으로써 생긴 관계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겠다.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에 나오는 골고루끼가 한 말을 떠올려보자ᅠ

ᅠ어머니, 가족의 사랑은 부도덕해요. 가족의 사랑은 어떤 행위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니까요. 사랑은 행위로 얻어져야 하는 거예요"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가족은 본인의 선택이나 의지 그리고 사랑으로 얻어진 관계가 아닌데도 우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무화한다. 여기에서 가족 간의 비극이 탄생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우리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부모답지 않은 부모를 친고들의 부모다운 부모와 비교하게 되며 결국 자신이 사랑의 결실인지 오로지 순간의 쾌락 결실인지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너의 아버지이잖니? 맘에 들지 않더라도 잘해야지'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말인가?


결혼해 가족을 이뤘다고 해서 외롭지 않다던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고 더 외롭거나 하지는 않다. 외로움은 상대적 박탈감이 아닐까. 관계로부터 튕겨 나오고, 어디에도 내 것이 없다는 상실감이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부채질한다. 때로는 누군가에 대한, 아니면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에 휩싸이면 여지없이 외로워지기도 한다. 옆에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친구가 있다고 해서 해소될 문제는 아니다. 


나와 아내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에 대한 나의 애틋함과 그리움을 영원히 공감하지 못할 터이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의 처지와 감정을 다른 구성원 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터이다. 나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 속에서의 외로움은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보다 결코 작지 않으리라. 그러니 결혼하지 않으면 외로울 것이라는 충고는 삼가자. 


<혼자라는 가족>이 혼자 사는 즐거움을 예찬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갑자기 올 수 있는 죽음을 대비하여 어질러진 물건을 치워 놓고 나가기도 한다. 혹시 오늘 무슨 일이 있어 죽게 되면 누가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는 상황이 올까 봐 염려된다고 했다. 

<혼자라는 가족>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혼자 사는 삶을 평양냉면처럼 '심심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지독한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혼자 살기'의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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