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읽자

독서의 주요 기능이 지식과 상식을 늘이기 위함이라면 잡지를 굳이 책과 구분할 이유가 없다. 잡지도 엄연히 책이다. 잡지를 오로지 시간죽이기용 인쇄물이라고 매도할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는 유용하고 깊이 있고 지식이 풍부한 잡지가 차고 넘친다. 또 잡지는 책에 비해서 시간과 장소에 더 자유롭다. 

잠시 잠깐의 빈틈에 뭔가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잡지만 한 매체도 찾기 힘들다. 최소한 매월 3가지 종류의 잡지는 꼭 읽어야 한다고 본다. 시사 잡지, 교양잡지, 취미잡지가 그것들인데 괜찮은 잡지 3종 이상만 꾸준히 봐도 꽤나 자랑할 만한 상식을 갖춘 사람이 된다. 


인디고

지난 2010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국제’인문학 잡지다. 국제적인 잡지답게 영미 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도 수출되는데 더욱 놀랍게도 우리가 저서로만 만나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대담을 하고 그들의 글을 받아서 잡지를 만든다. 하워드 진, 놈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당대를 이끌어가는 사상적 원류인 석학들은 모두 인디고와 대담을 했고 그들의 말과 생각은 인디고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문예잡지

문예잡지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잡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창작과 비평>의 경우 북한의 3차 핵실험, 헌법의 품격, 재판관의 자격 따위의 시사성이 높은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박연수나 성석제 같은 동시대의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2113년 여름호)

<문학동네>, <현대문학>, <문학과 사회>등도 문예지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문예지마다 특정한 흥미 있는 주제를 정해서 문학 작품을 게재한다. 문학을 보는 눈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명확해지고 사려 깊어진다. 


녹색평론

군대를 제대하고 강의실에서 만난 김종철 교수님이 “내가 말이야, 잡지를 하나 만들었거든. 근데 다른 교수들이 어렵다고 해. 내가 보기엔 어려울 거 하나도 없는데 다들 어렵다고 해”라고 우리들에게 뭔가 불만 섞인 얼굴로 말씀하셨을 때 우리들 중 아무도 그 잡지가 20년 이상 장수하고 우리시대의 생태문화를 이끌어가는 어피니언 지도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김종철 교수님을 존경하던 우리 제자들이 보기에도 그 잡지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금방 폐간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잡지였다. 내가 기억하는 90년대 초중반은 부자의 아이콘이었던 ‘자가용’이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전환되려는 찰나였고 내 집 마련 보다 자가용 마련이 더 우선이 최초의 시대였다. 그런 물질만능의 시대에 칼라사진도 없고, 광고도 없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생태관련 잡지가 롱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생태를 살리는 농업,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 지역사회의 자생력을 높이는 사업,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 녹색이 우선시 되는 과학 등의 주제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적인 주제도 <녹색평론>은 많이 다룬다.


The Economist 

The Economist 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라기 보다는 최고 수준의 글로벌 시사 주간지라고 해야 마땅하다. 잡지의 이름처럼 경제뉴스만을 다루지 않고 정치 문제, 문화적인 이슈 심지어 예술과 연예에 대한 뉴스도 많이 다룬다. The Economist 의 매력을 크게 2가지로 말한다면 깊이 있는 다양한 뉴스와 그 객관성을 꼽겠다. 이 잡지는 매회 150만부를 발행하는데 그 중의 절반은 영국이 아닌 해외의 몫이라고 한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그 개관성과 공정함을 인정받는 주간지다.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코노미스트가 영국영어로 쓰이기 때문에 낯선 면도 있겠지만 격조 있는 고급영어라는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수학동아

초등 학교 때 구구단의 7단을 어려워할 때부터 애당초 숫자 쪽으로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대학 전공을 영문학으로 선택한 후 숫자를 만나지 않아서 좋았다. 성인이 되고 내가 혹시 원래는 수학에 재능이 있는데 학생 때 너무 무관심해서 수학을 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수학의 정석>을 늦게야 펼쳐보았다. 역시 ‘집합’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단순히 숫자의 학문이 아닌 사람의 냄새가 나는 수학책이라고 해서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을 들어봤다. 역시 수학의 문외한으로선 읽기 어려웠다. 


<수학동아> 2013년 5월호의 Editor’s note를 읽고 그동안 내가 왜 수학을 잘 못했는지 알겠다. 지우개를 사러 문구점에 갔는데 맛있게 생긴 캐러멜이 있기에 입안에 넣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캐러멜이 아닌 캐러멜처럼 생긴 지우개 이었단다. 지우개를 누가 봐도 지우개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고 캐러멜처럼 보이게 만든 창의력이 그 지우개를 특별한 지우개로 만들었다. 수학의 본질(지우개)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처럼 보이는 수학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봐도 쓰디 쓴 맛없는 수학책과 씨름해왔다. 이 잡지는 수학과는 담을 쌓고 지낸 필자에게 처음으로 수학이 재미있는 학문이며 실생활과 매우 밀접한 공부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개미의 움직임에서 페르마의 법칙을 배우고, 포인트 카드로 우수 고객을 예측하는 기업들의 비결은 수학의 통계분석법의 활용이라는 사실 등 을  볼 때 수학은 우리 실생활과 함께 호흡하는 학문이지 대학에 가기 위해 마지못해 공부하는 골치 아픈 장애물은 아니다.


독서평설

군대 제대 후 복학준비를 하면서 사촌동생의 방에서 이 잡지를 처음 봤다. 그때가 1991년 당시 고2인가 고3이었던 사촌동생은 그러니까 이 잡지가 창간되자마자 발 빠르게 구입을 했는데 그 안목이 대단했다. 당시 대입수험생의 대중문화로는 만화잡지 ‘보물섬’과 ‘드레곤 볼’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대단했던  ‘보물섬’이 요즘은 헌책방에서 추억의 골동품으로 분류되어 정가 이상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독서평설>의 생명력은 정말 감탄스럽다. 더구나 수명이 특히 짧은 국내잡지계에서 대중잡지가 아닌 학습용 잡지가 이렇게 긴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독서평설>의 내용의 충실함은 인정한다. 당시 다소 촌스러운 디자인의 이 잡지를 몇 페이지 들쳐보고는 내용에 담긴 이 잡지의 혁신에 감탄했더랬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단 한 줄이나 한 문단에 주목해서 풍부한 배경자료와 원전을 제공하고 해설도 곁들인다. 논술과 심층면접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만한데 이 잡지의 가장 큰 장점은 다소 어렵더라도 곁에 두면서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도 되고, 또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 참 좋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 <꺼삐딴 리>를 비롯해서 많은 명작들을 이 잡지에서 처음 접하는 쾌거를 거뒀다. 


National Geographic

원래는 미국국립지리학회의 기관지이지만 일반인을 위한 교양지로 널리 사랑받는 잡지다. 오랫동안 두고 볼만 한 좋은 잡지다. 지리뿐만 아니라 지구에 관한 모든 흥미로운 사실을 멋진 사진과 함께 제공한다. 사실 이 잡지는 눈이 즐거워지는 잡지다. 2012년 12월호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를 소개하고 있는데 내지로 접혀 있다가 펼치면 70cm정도의 길이로 펴지는 나무 사진이 일품이다. 뒷면에는 그 나무속에 사는 야생동물을 그래픽으로 담았다. 그래서 이 잡지만큼은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또 중고책 시장에서 이 잡지는 높은 시세를 자랑한다. 영어에 전혀 문외한이라도 지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잡지를 일단 펼치면 ‘와!’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내지른다. 


씨네 21

고등학교 시절 읍내에 나가면 서점에서 사보던 영화 잡지 <스크린>을 아직 잊지 못한다. 누군가 <스크린>을 학교에 가지고 오기라도 하면 온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보고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오려가기도 해서 ‘버릴 것 하나 없는’ 소중한 잡지였다. 종이 잡지의 위력이나 역할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 많이 약화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영화잡지로는 <씨네 21>만 겨우 살아남은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가 고교 시절 열광했던 <스크린>에서 일하던 평론가 ‘장성일’이 제대로 된 영화 잡지를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투자자를 찾았지만 그런 잡지를 만드느니 차라리 은행에 예금하는 쪽이 낫겠다는 비아냥거림을 까지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돈은 안 되지만, 좋은 일’이라는 논리로 ‘대선주조’회장의 투자를 받아 1995년에 시작한 잡지가 <키노>이었다. <씨네 21>도 같은 시기에 창간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키노가 100호를 채우지 못하고 99호에서 결국 폐간되었는데 우리나라 문화계의 척박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키노>는 폐간되지 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이 오래된 잡지를 소중히 보관하고 틈틈이 읽는다. 지나치게 현학적이었다는 비판이 상당했지만 그 현학적인 비평에 열광한 마니아의 충성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키노>는 할리우드 스타의 스캔들이나 사생활에 많은 몫을 할당한 기존의 영화잡지와는 달리 작가주의 영화잡지를 표방하면서 영화학과 교수들의 논문집에 비견되는 수준 높은 영화비평을 실었다. 결국 독자와 광고가 줄어드는 문제를 만났고 내외부적인 여러 문제 때문에 폐간되기에 이른다. <키노>를 만들었던 관계자나 독자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키노>는 작가주의 비평에 기초한 심도 깊은 영화비평을, <씨네 21>은 대중성에 주안을 둔 편안하게 읽는 영화잡지로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로 양립한다면 독자들은 다양한 선택의 폭을 즐기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을까? 


그나마도 <씨네 21>가 멀쩡히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잡지인데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상황은 더욱 당황스럽다. 동네서점에서는 잘 팔지 않고 그렇다고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자니 배송료의 부담과 금방 품절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어찌됐든 우리 문화계가 좀 더 활성화되고 다양한 콘셉트의 영화잡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단은 <씨네 21>만큼은 잘 지키고 볼 일 이다. 


PAPER

흔히 20대 젊은 처자들이 좋아 할 만 한 감수성과 예쁜 디자인을 겸비한 잡지라는 말을 듣는다. 또 날이 갈수록 상업적으로 변해가지 않느냐는 비판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PAPER>는 대중적인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고 잡지 특유의 시각적인 만족을 시켜주는 몇 안 되는 잡지중의 하나다. 2013년 7월호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인터뷰 대상이 뮤지션, 시인, 밴드, 시인농부다. ‘서울 레코드 페어 집중 취재기’, ‘개털이어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등의 기사는 젊은이를 위한 감성과 문화적인 충족을 만족시켜주고, ‘진지진지 열매를 먹고 쓰는 소년 만화 분석’이라는 읽을거리는 여느 젊은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들이 흉내 내기 힘든 지성에 대한 요구를 감당한다. 그러면서도 예쁘다.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잡지의 최우선 조건은 ‘과월호의 가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달 만 지나도 재활용에 버려야 하는 잡지보다는 과월호가 되어도 가치나 실효성이 없어지지 않아서 오래 두고 읽어도 좋은 잡지가 좋은 잡지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PAPER>는 좋은 잡지임에 틀림없다. 이사를 갈 때 꼭 챙겨가야 할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소장 가치’는 보유하고 있는 잡지다. 그래서 이 잡지는 유독 장기 구독자가 많고 부담 없는 선물로 친구나 지인들에게 권하기에 좋다.


월간 사진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를 시작하면 먼저 장비를 최고로 갖추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필자가 한때 미친 듯이 심취했던 테니스와 사진에 똑 같이 ‘장비병’이란 용어가 존재한다. 라켓과 사진장비를 최고로 갖추고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마음이 끌리면서 정작 본연의 기술의 향상에는 덜 관심을 가지는 ‘장비병’ 말이다. 그러다 보니 테니스나 사진의 인터넷 커뮤니티마저 ‘사진 사이트’가 아닌 ‘장비 사이트’가 되기 십상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장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분류된다면 <월간 사진>을 권한다. 메이저 카메라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특집기사로 제품에 대한 정보로 잡지의 태반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능위주의 사진 찍는 요령’에 관한 기사도 거의 없다. 다만 현대 사진의 흐름과 맥을 잘 집어주는 알찬 내용들로 지면의 대부분을 채운다.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사진과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모델 사진도 거의 없다. 인터넷 사진커뮤니티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현대 작품사진을 대부분 게재하는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전시회를 따로 가야만 보는 사진을 잡지를 통해 다양하게 감상한다. 좋은 사진집과 사전관련책의 소개와 사진전시회에 관한 많은 정보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Highlights For Children 

아이들의 영어공부를 위해서 영어잡지를 생각하고 있다면 <Highlights For Children>은 좋은 선택이다. 이 잡지가 미국에서 아이(kids)를 대상으로 하지만 막상 국내 독자가 읽을라치면 만만찮다. 우리나라 영어교재에서 잘 다루지 않는 미국의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쉽고 꼭 필요한 표현과 어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 낯설다. 그래서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일단 익혀두면 매우 요긴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아이들로 하여금 좀 더 창의적이게 하고, 좀 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는 편집자들의 광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력을 키우는 많은 읽을거리와 생각거리가 많은 좋은 잡지이자 영어교재이다. 이런 종류의 잡지가 국내 영어학습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영어공부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영어로 하는 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vogue

순전히 독서가의 입장에서 패션잡지를 하나 봐야겠다면 <vogue>를 권하겠다. 솔직히 패션잡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면 잘 들쳐보지도 않는다. 아무리 패션 트렌드를 익히는 목적이라고 해도 ‘사회 초년병에게 권하는 지갑’으로 120만 원짜리를 추천하는 기사를 보면 공감하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독서가만큼은 매년 8월 달이 되면 <vogue>를 주목하자. 비록 남자라고 해도 말이다. <vogue>는 매년 8월에 특별부록으로 두툼한 ‘사진집’을 증정한다. 그것도 소프트커버가 아닌 제법 고급스러운 하드커버 <사진집>이다. 사진집은 소장가치가 높고 인테리어 효과(?)도 높아서 독서가들이 좋아하지만 가격이 비싼 탓에 섣불리 구매하지 못한다. 이러니 <vogue>의 사진집 부록은 정말 매력적이다. 게다가 사진집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고 8월 달 호의 부록으로만 제작이 되니 자연스럽게 ‘한정판’인 셈이다. 본질에서 약간 벗어나지만 <vogue> 잡지 자체도 다른 패션잡지에 비해 패션에 약간 덜 치중하면서 여자들만의 대화의 소재가 되는 읽을거리가 많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 부록 사진집은 입소문이 나서 구하려는 사람이 많은 탓에 제법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필자는<도시 그리고 여자>,  <the show>, <fashion pet>이 세 사진집을 소중히 간직한다. 


객석

최근 공연감상은 과거에 비해 그 애호가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즐기기 위해서 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간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오페라, 뮤지컬, 연주회등의 클래식한 공연도 과거에 비해 그 수요가 많다. 공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만 기왕이면 그 공연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한다면 더욱 그 공연을 즐기게 된다. 애초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니니 공부는 필수적이다.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과 단행본을 통해서도 물론 얻는다. 그러나 단행본 책은 아무래도 담겨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아쉬움이 많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도 좋지만 일부러 신경을 써서 일회성으로 정보를 검색해야하고 꾸준한 트렌드를 따라잡기 힘들다. 그래서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는 ‘잡지 구독’이 더 좋다. <객석>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광고가 별로 없는 잡지라서 독자로서는 반길 만하다. 그리고 <객석>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가령 지휘자를 인터뷰하면서 단원을 뽑을 때 뭘 중점적으로 뽑는지, 공연 때 연주할 곡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는 다음 음반은 언제 나오는지 등의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 많다. 다양한 공연의 리뷰, 그리고 클래식의 역사뿐만 아니라 새 음반에 대한 소개 등 공연문화를 즐기는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는다.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 간으로 발행하는 국내최고의 독서 및 출판 전문 잡지다. 잡지의 이름만 봐서는 독서와 책, 그리고 출판에 관한 잡지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분야별로 각 전문가가 추천도서를 소개할 뿐 만 아니라 출판계와 관련된 이슈를 심도 깊게 분석한 다양한 읽을거리는 이 잡지의 자랑거리다. 독서분야에 있어서 기사의 다양함과 추천 도서의 수 그리고 객관성에 있어서 그 어떤 매체보다 우위에 선다. 특히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로 유명한  출판평론가 고 최성일의 아내 신순옥의 연재기사인 ‘남편의 서가’, 세계 전자책 시장의 동향을 빠짐없이 소개하는 교보문고 류영호 차장의 연재기사 ‘세계 전자책 시장 읽기’ 또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콘텐츠다. 도서에 대한 정기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간 신문을 구독하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는 잡지라고 하겠다.  



학교도서관 저널

<기획회의>를 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또 다른 잡지다. 학교 도서관의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고 독서가들에게 뼈와 살이 되는 실용적인 정보가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잡지의 가장 큰 미덕은 도서관 관계자와 독서교육 전문가를 비롯한 현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잡지에 참여하고 있고 추천도서를 다른 외부의 영향력이 없이 오로지 교사와 독서교육의 전문가들이 직접 읽고 토론을 거쳐서 선정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서 독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서평들은 상당수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서 작성해서 객관성이 담보되기 힘들거나, 오로지 칭찬 일색인 주례사 서평인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잡지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이 잡지가 강조하는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에 깊이 동감하고 ‘책 읽어주기’가 부모로서 권장사항이 아닌 의무라는 일침에 혼자 책 읽기에 몰두한 부모로서 부끄럽다. 물론 학교에는 엄연히 ‘독서’라는 과목이 존재하지만 이 책만큼 실질적이고 유용한 독서교육에 대한 방법론과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독서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에 밑 바탕이 되는 잡지라고 보는데 ‘책을 보수하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는 기사는 이 책이 얼마나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한지 깨닫게 한다. 이런 잡지가 오래 살아남고 널리 읽혀야 우리 독서교육이 흔들리지 않는다. 


B

잡지 B 는 매월 전 세계에서 균형 잡힌 브랜드를 하나 씩 소개하는 특이한 콘텐츠를 자랑한다.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광고가 전혀 없어서 반갑다. 물론 잡지의 콘텐츠보다는 오히려 광고를 더욱 눈여겨보는 독자도 있긴 하지만 광고가 전혀 없는 잡지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카드라고 본다. 매월 단 하나의 브랜드를 소개하다보니 그 브랜드의 생산품의 다양한 쓰임새와 실제 사용자의 사용 후기 및 현황을 빠짐없이 알게 된다. 단순히 유명브랜드라는 이유로 비싼 값을 지불했지만 막상 실제로 그 제품의 장점을 모두 살리고 활용하는 사용자는 많지 않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잡지는 제대로 된 물건을 사서, 제대로 사용하는 실용정신과 그 브랜드를 완전 해부하는 치밀함을 표방한다. 다수의 매체들과 심지어 제조업자조차도 자신의 제품에 대한 이미지와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로 판매에만 열을 올리지 정작 그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는 미흡하다. 소비자교육도 주로 저렴하게 물건을 사는 일에 치중한 느낌이 드는데 구입한 물건을 제대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보를 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 잡지가 소개한 브랜드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구브랜드로 유명한 LAMY, 선글라스 제조업체 RAY-BAN, 어른들이 더 열광하는 장난감 LEGO 그리고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고가 의류업체인 CANADA GOOSE, 미국의 국민 스포츠 용품 업체 인 WILSON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폭 넓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 하다. 각 브랜드에 얽힌 유래나 역사도 흥미로운데 스포츠 용품 업체로만 알고 있던 WILSON이 사실은 모기업이 육류가공업체이며 가축을 도살하고 나서 부산물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테니스 라켓 줄이나 수술용 실을 생산하면서 스포츠 용품 회사로 거듭나는 뒷이야기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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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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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일이 뜻대로 안 풀리고, 온 세상의 불운이 모두 자신에게 향한다고 느낄 때 한번 쯤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나 되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나만 해도 그랬다. 사는 것이 고달프고, 산사의 생활이 유유자적하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지허스님의 <선방일기>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방일기>는 제목 그대로 어느 해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冬安居)라고 부르는 선방의 수행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 책이다. 안거란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로지 산사에서 극한의 육체적인 고통이 뒤따르고, 기본적인 욕구를 거칠게 절제해야 하는 수행에 전념하는 일을 말한다. 더구나 극심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강원도 산골에서의 동안거(冬安居)는 일상적인 인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새벽3시부터 시작되는 고된 수련과 무려 일주일동안 잠을 자지 않고 결코 눕지 아니하고 꼿꼿이 앉은 채로만 수행하는 (장좌불와) 용맹정진에 이르러서는 산사의 생활이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기겁을 했었다. 그렀다고 이 책이 거창하고 심오한 불교의 원리나 말씀을 애써 가르칠 생각으로 가득찬 것은 아니다. 그저 묵묵히 선방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할 뿐이다.


산사에서의 수련생활에 대한 환상은 접게 만들었지만 이 책은 의외로 재미나기까지 하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아끼고 곁에 두면서 몇 번 이고 읽는 까닭은 스님들의 고매한 수련과정의 대단한 때문이 아니라 지허스님의 유머스러운 필체가 주는 읽은 즐거움 때문이다.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고, 유려한 필체덕분에 서울대를 졸업한 재원이라고 알려진 지허스님의 유머스러한 글은 언제 읽어도 즐겁고 배꼽을 쥐고 웃게 만든다.


1970년대에 그것도 스님이 누구나 고된 일이라고 여기는 ‘선방’의 일상을 이토록 재미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심지 중간 중간에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을 알려주는 일을 놓치지 않고서 말이다. <선방일기>를 읽는 즐거움의 압권은 ‘뒷방’이야기를 꼽고 싶다.


11월 3일 



선방의 역사는 뒷방에서 이루어진다. 

뒷방의 생리를 살펴보자. 

큰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다랗게 놓인 방이 뒷방(혹은 지대방)이다. 

일종의 휴게실이다. 

개인 장구가 들어 있는 바랑이 선반 위에 줄줄이 담을 쌓고 있어서 누구나가 드나든다. 

휴게시간이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법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잡담도 한다. 

길게 드러누워 결가부좌에서 오는 하체의 피로를 풀기도 하고 요가도 한다. 

간병실과 겸하고 있어 병기가 있으면 치료도 한다. 

옷을 꿰매는가 하면 불서를 보기도 한다. 

편지를 쓰기도 하고 일기도 쓴다. 


어느 선방이거나 큰방 조실이 있음과 동시에 뒷방 조실이 있다. 

큰방 조실은 법력으로 결정되지만 뒷방 조실은 병기와 구변이 결정 짓는다. 

큰방에서 선방의 정사(正史)가 이루어진다면 뒷방에서는 야사가 이루어진다. 


선방에서는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에 의해 우세가 결정되기도 한다.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은 스님은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고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은 스님은 점차로 선객의 옷이 벗겨지게 마련이다. 


상원사의 뒷방 조실은 화대(火臺)스님이 당당히 차지했다. 

위궤양과 10년을 벗하고 

해인사와 범어사에서도 뒷방 조실을 차지했다는 경력의 소유자이고 보니 만장일치의 추대다. 


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불가에서는 사교(四敎)까지 이수했고 절밥도 십년을 넘게 먹었고, 

남북의 대소 선방을 두루 편력했으니 뒷방조실로서의 구비요건은 충분하다. 

금상첨화격으로 달변에다 다혈질에다 쇼맨십까지 훌륭하다. 

경상도 출신 이어서 그 독특한 방언이 구수하다. 

낙동강 물이 마르면 말랐지 이 뒷방 조실스님의 화제가 고갈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파라독스하고 때로는 페이소스하다. 

때로는 도인의 경계에서 노는 것같고 때로는 마구니의 경계에서 노는 것같다. 


제불조사가 그의 입에서 사활을 거듭하는가 하면 

현재 큰 스님이라고 추앙되는 대덕스님들의 서열을 뒤바꾸다가 

때로는 캄캄한 밤중이나 먹통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무불통지요 무소부지인체 하면서 거들먹거리지만 

그의 천성이 선량하고 희극적인 얼굴 모습과 배우적인 소질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버림받지는 않지만 추앙 받지도 못했다. 

천부적인 뒷방 조실감이라는 명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 뒷방 조실이 가끔 치명적으로 자존심에 난도질을 당하고 

뒷방 조실의 지위를 위협당하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원주스님 때문이다. 

선방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원주스님은 대중들의 생필품 구입 때문에 강릉 출입이 잦았다. 

강릉에 가면 주거가 포교당인데 포교당은 각처의 여러 스님들이 들렀다가 가는 곳이어서 

전국 사찰과 스님들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교통이 발달되고 보면 신문보다도 훨씬 빨리 그리고 자세히 알 수 있다. 


원주스님도 꽤 달변이어서 며칠동안 들어 모은 뉴스원을 갖고 돌아오면 

뒷방은 뒷방조실을 외면하고 원주스님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그때 뒷방의 모든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같이 경청하고 있는 

뒷방조실의 표정은 우거지상이어서 초라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뉴스가 한토막씩 끝날 때는 막간을 재빨리 이용하여 

뉴스에 대한 촌평을 코믹한 사족(蛇足)을 붙이거나 독설을 질타하는 것으로 

체면유지를 하다가 원주스님의 뉴스원이 고갈되자 마자 

맹호출림의 기상으로 좌중을 석권하기 위해 

독특한 제스처로 해묵은 뉴스들을 끄집어 내어 재평가를 하면서 

일보통[뉴스통]의 권위자임을 재인식 시키기에 급급하다. 

면역이 된 대중 스님들은 맞장구를 치지도 않지만 삐에로의 후신인양 지껄여댄다. 


어디 이뿐인가? 허기진 배를 채울려는 욕심으로 상원사의 부식창고에서 감자를 훔쳐내서 구워먹다가 부식창고를 책임지는 ‘계량심의 천재“ 원주 스님에게 응징당하는 대목도 뭇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의 거울이 되며, 일반인들에게는 불교의 기본 덕목을 쉽게 알려주며, 책 읽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웃음을 주는 이 책은 종교와 세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다.


단행본으로 나온 1993년과 2000년 당시에도 지허스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조심스럽게 출간이 된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허스님은 서울대를 나왔다거나 1975년에 이미 입적했다거나하는 소문 또는 진술이 있긴 했지만 모두 확실치는 않다고 2010년에 나온 재출간본의 편집자들은 밝히고 있다.


지허라는 법명도 사실 필명일 가능성이 높고, 조계종에서도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말처럼 ‘책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인 것이다. 이 책을 되살리려는 불광출판사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선방일기 저작권 조회 공고>를 내고, 각처에 지허스님의 행방을 문의하였지만 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서 결국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법정허락 제도(공탁)’을 통해서 간신히 출간을 했다.


수행자들에게는 ‘귀감’을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감동’과 ‘웃음’을 주는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구절은 따로 있다. 


우리는 월정사 층층계 밑에서 헤어졌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남방행인 그 스님은 월정사로 들어갔고 나는 월정사를 뒤로 한 채 강릉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뭇 독자들의 관심을 뒤로 한 채 지허스님은 다만 수행의 길로 나가 갔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두고두고 읽고 가까이하며 붙잡아 둘려는 독자들이 많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글의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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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중학교 15살 난 여자 아이다. 아빠는 영어교사로 엄마는 국어 교사로 일하신다. 두 분은 모두 어문 계열을 전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마치 국어와 수학이라는 반대되는 과목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특기가 확연히 다른 분야에서 각기 발휘된다. 아빠가 책을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국어를 전공한 엄마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사서 읽었다는 점과, 엄마는 학창시절 영어공부를 좋아했고 잘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공집합만 제외하면 부모님은 묘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겹치지 않는 특기와 세상을 가진다. 


두 분의 다른 세상은 여행을 가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2년 전 싱가포르 여행이 딱 그랬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해외를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여행 일정을 두 분의 역량을 모두 발휘해야하고 두 분의 진면목이 드러난 기회였던 셈이다. 

우선 비행기 티케팅과 호텔 예약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는 비행기 표를 예약한 것도 모자라서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외국의 호텔을 예약한 엄마의 업적에 가슴 깊숙이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당신이 하면 싱가포르에 도착은 했는데 호텔 예약은 다음 날에 예약이 되어 있는 황당한 실수를 할 것 만 같았으리라.


아빠는 인천 공항에서 필사적으로 나와 엄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고 혹시나 우리가 당신을 떼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심지어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고, 다른 장소였다면 혼자서 마구 이리저리 다닐 텐데 낯선 공항에서는 우리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가방을 들고 얌전히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심지어 중학생인 나를 본인보다 더 공항의 지리와 시스템에 정통하다고 여기는 게 확실하다. 엄마가 잠시 어딜 다녀왔는데 내 옆에 딱 붙어서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여자라서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를 보호한다는 아빠는 사실 나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쉽게 알았다. 


아빠는 엄마와 내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고 주장하면 신발도 벗을 태세였다. 마침내 비행기를 탈 때 그는 입구에 비치된 신문을 여러 부 가져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신을 못 한 나머지, 스튜어디스 언니의 눈치를 보는 것도 나는 쉽게 알아챘다. 그에게 난관은 또 남아 있었다. 끔찍한 고소공포증 환자인 아빠는 이륙을 할 때 눈을 꼼 감고 좌석의 팔걸이를 마치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보루나 되는 것처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지막한 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아빠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받친 채 고개를 숙이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고 지면에서 발이 떨어진 상태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다. 비행기가 갑자기 난기류에 진입을 해서 흔들릴 때 그의 공포는 극에 달해 엄마의 손을 부둥켜 쥐고 마치 지구의 종말을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고난이 시간이 끝나고 스튜어디스 언니가 입국서류를 나눠주었을 때 마침내 아빠의 세상이 도래했다. 아빠는 입국서류를 영어로 메꾸면서 온갖 유세를 부려서 엄마와 나는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그나마 아빠가 죽을상을 짓다가 모처럼 살 만해 보이는 게 반가워서 참아주기로 했다. 아빠는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엄마와 나는 아빠 없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었고 우리도 그런 간단한 그 입국 서류 작성은 이미 작성해봤지만 아빠의 체면과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모른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는 그간의 서러움을 한 번에 만회하려는 듯 기고만장해져서 ‘내가 아니었으면 어디 감히 너희들이’ 해외여행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느냐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길을 잃을까봐 13살 난 딸내미의 손을 놔주지 않던 기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꼼꼼하지 않고 나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가령 내가 짜게 먹지 말라고 주의를 몇 번 주었는데 지키지 않아서 마침내 내가 일일이 양념의 양을 그때그때 숟가락으로 얹어줘야 한다.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조사를 하지 않았고 싱가포르에 도착을 했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달랑 우리 식구끼리 움직여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을 하고서야 이곳저곳 들릴 곳을 검색한다. 


검색과 임기응변은 단연코 아빠의 세상이다. 단 몇 분 만에 그는 그날의 여행지와 일정을 엄숙하게 발표를 했다. 아빠는 택시를, 엄마는 나의 현장체험을 위해서 지하철을 주장했는데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나는 당연히 엄마의 편을 들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 지하철의 이용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지하철 티켓을 사지 못해서 30분간 고군분투를 한 분이다. 보증금 500원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불상사인데 아빠는 지하철을 타고 오라는 죄 없는 친구 분을 향해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엄마는 능숙하게 싱가포르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아빠가 정한 일정은 나쁘지 않았다. 쇼핑과 볼거리를 적당히 배합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의 보이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 예전에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는 싱가포르의 관광명소의 목록을 보다가 ‘리틀 인디아’를 발견했고 별생각 없이 ‘한 꼬마 두꼬마 세 꼬마 인디언’의 인디언을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어리고 귀여운 어린 인디언들이 재롱을 자랑하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 그는 인디언이 아닌 인디아를 발견하곤 덥디 더운 날씨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차마, 내가 생각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며 우리를 다시 데리고 나가기엔 너무 어이없는 실수라 그는 평생 카레를 한 번도 먹지 않았으면서 억지로 꾹 참고 인도의 거리를 거닐어야 했다. 마치 정말 인도의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온 것처럼 태연히 걸었지만 나는 아빠가 몸을 파르르 떨고, 구경거리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던 얼굴이 순식간에 초점이 풀린 눈과 축 늘어진 팔자주름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이미 아빠의 실수를 눈치 챘다.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싱가포르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했다는 아빠가 먹은 것은 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였다. 그나마 용기를 내서 먹어본 색다른 음식이라곤 ‘칠리 크랩’이 유일했다. 반면 그의 세상의 물건에는 심취를 해서, 라이카 카메라 매장 앞에서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들을 그의 시선의 범위에서 풀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호텔의 57층에 위치한 야외 옥상 수영장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풍경을 감상한다든지, 수영을 즐긴다든지, 선탠(이건 내가 봐도 불필요하다. 그는 모태 선탠이라는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을 즐기지 않았다. 아빠가 세계적인 그 수영장에서 몰두한 것은 남미계열의 연인이 잠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신기해하는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괜한 호기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가 졸지에 붙잡혀서 20분간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에 대한 강의의 수강생이 된 그 불쌍한 커플을 본국에 돌아가자마자 주문을 하겠다는 맹세를 받고서야 풀어주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우리 가족은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지하철역도 보이지 않고 택시역도 보이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특이하게 택시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탈 수 있는데 우리가 정류장을 알 리가 없다. 그때 아빠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우리를 인적이 많지 않은 도로로 데리고 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서 손을 든다. 마치 한국에서 택시를 잡는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벌금의 나라에서 하는 아빠의 행동에 우리는 기함을 했지만 아빠를 나무랄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우리는 택시 기사가 법규를 위반한 우리를 고발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그 택시 기사는 한국의 택시 기사처럼 급하게 우리에게 택시에 타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아빠의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임기응변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자국의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손님을 태운 것에 성공한 기사의 성취감과 위기의 가족을 자신의 기지로 구해냈다는 아빠의 자부심은 서로의 만남이 무슨 전생의 인연이라도 이어진 것처럼 감격해하고 서로를 용기와 배려 심을 치하하기 바쁜 눈치다.


가장의 임기응변을 고마워해야 할지, 타박을 해야 할지를 고심할 기운조차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열심히 뭔가에 대해서 대화를 즐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속 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나누었냐고 아빠에게 물었더니 ‘싱가포르의 비밀경찰 제도와 위협받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한 싱가포르 국민의 시민 의식 함양’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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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 <유혹하는 글쓰기>을 보면 우리나라 출판가들의 제목 뽑기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소박하게도 ‘On Writing’ ‘글쓰기에 관하여. 도저히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얄궂은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려는 욕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이야말로 자서전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두 권의 책이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그 중 첫 번 째 책은 스티븐 킹의 살아온 이야기이고 두 번 째 책은 물론 그의 유머감각이 가미된 글쓰기 방법이 되겠다. 일부 독자는 그의 자서전적인 내용이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서전적인 내용을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주로 고단했던 그리고 아픈 사생활이다. 그런 내용을 독자들에게 공개한 이유는 어찌됐든 그런 고단했던 삶의 경험들이 자신의 글쓰기에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서전적인 요소는 그의 글쓰기의 밑바탕인 동시에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경험이기 때문에 글쓰기와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못한다.

 

스티븐 킹이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의 방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많이 읽어야 한다. 글쓰기는 독서의 최종 종착역이며 글쓰기의 출발역은 독서다. 독서를 하지 않고 글을 쓸려고 하는 사람은 쌀 없이 밥을 짓겠다는 겪이다. 아무리 현대가 정보를 자신의 머릿속에 두지 않고 정보의 출처를 찾아서 사용하는 시대라지만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은 머릿속에서 생기지 않고 경험 속에서 생기고 그 경험의 대부분은 간접 경험 다시 말해서 독서를 통해서 얻는다. 독서를 강조하지 않는 글쓰기 교재는 세상에 없다. 둘째 수동태를 가급적 사용하지 마라. 정작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수동태를 더 빈번히 사용하는 언어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동태는 상당부분 영어의 번역어법에서 비롯된다. 영어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가르쳐온 필자 같은 경우는 더욱 더 피해가 심해서 급기야 능동태를 쓰면 뭔가 대담한글을 쓴 착각이 들 정도다. 수동태가 좀 더 안전한 느낌은 들지만 자신의 메시지에 자신이 없어 보이고 글의 힘이 확실히 떨어진다. 필자가 영어를 전공하면서 가장 폐해가 심한 부분이 바로 수동태의 남발이다. 이제는 완전히 몸에 체득이 되어서 고치기 힘들다. 그러니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수동태를 장마철의 빗방울처럼 피해 다녀야 한다.

셋째 부사를 가능한 사용하지 말라. 글을 장황하게 길게 쓰면 어쩐지 유식해보이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준다는 미신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능한 문장을 길게 늘여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그러나 명문장은 짧은 문장이지 긴 문장이 아니다. 같은 뜻을 전달하면서 길게 늘여 쓸 이유가 없고 그렇게 못한다면 자신의 문장력에 대한 무능을 광고하는 겪이다. 넷째는 역시 많이 써봐야 한다. 습작을 거치지 않은 위대한 작가는 없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습작과 연습은 낭비되는 노력이 아니다. 그 습작이 명작은 되지 못하기도 하지만 명작의 좋은 밑거름은 된다. 거름 없이 자라는 좋은 농작물이 없듯이 습작이라는 양분이 없이는 결코 명작은 탄생하지 않는다. 이 책이 자서전적인 요소가 많지만 어쨌든 스티븐 킹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알려줄 방법은 다 알려준 셈이다.

 

본인의 저서 <아주 특별한 독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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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를 궁금하지만 사고 싶지는 않은 책으로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요즘과 비교해서 현격하게 정보 공유가 부족하고 뭔가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던 불과수 십 년 전만 해도 신문을 비롯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는 다수의 독자들에 있어서 비판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기 힘든 독서의 가이드라인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당시의 일반 독자에게 있어서 베스트셀러란 좋은 책’ ‘시간이 없어도 꼭 읽어야 할 책쯤으로 인식했다.

 

요즘 일반 독자들이 적어도 베스트셀러에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고 매우 진보된 지식 소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일부 출판사의 잘못된 관행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집중 조명되면서 오히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좋은 책을 펴내기 위한 대다수의 출판인들 까지 함께 묻어가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아울러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영악한 상술의 소산이자 대대적인 광고 덕택이라고 생각하는 과잉반응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그토록 경외하며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많은 고전이 당대에는 베스트셀러였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두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은 출판 산업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책이 시장에서 성공적인 팔리는지 알게 되고, 독자입장에서도 어떤 책이 돈을 쓸 만 한 지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나쁜 베스트셀러는 잘 걸러내고 보석과도 같은 좋은 베스트셀러를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능력이야말로 요즘 독서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확신한다.

 

결국 베스트셀러라고 함부로 무시할 필요는 없다.

좋은 베스트셀러는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한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할 통과의례인데 어찌 보면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필연적인 견습과정이기는 하다. 진정한 독서가가 되는 과정은 테니스의 고수가 되는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면을 발견한다. 일종의 배은망덕한 경우인데 테니스에 처음 입문하는 남자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좋은 시합 파트너는 남자 고수가 아니고 숙련된 아주머니들이다. 남자 초보 테니스 입문자가 노련한 아주머니 테니스 고수와 게임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숙련된 아주머니와 게임파트너를 하면 테니스 초보자에게 가장 중요한 안정된 랠리를 오래 한다.

 

아주머니들은 파워 보다는 안정되고 적당한 속도의 볼을 구사하므로 시합에서의 랠리를 연습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남자 고수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게임을 하는 재미를 만끽한다. 남자고수와 게임을 하면 그야말로 꿔다 논 보리자루 신세가 되기 십상이며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고수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테니스에 대한 흥미를 일찌감치 접을 수 있는 상황이 온다.

테니스 초보자에게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훈련파트너가 필요하듯이 초보 독서가에게도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가지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과 쉽게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베스트셀러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가만히 보면 장비가 필요한 거의 모든 취미생활에는 소위 말해서 입문용또는 초보용장비가 따로 잘 구분한다. 예술분야도 그렇고 스포츠 분야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초보라도 그 분야에 쉽게 적응하고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는 목록이 어느 분야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반드시 출판사의 인위적인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단순히 유명작가의 이름 값 덕택에 그 자리에 오른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1992년에 이경훈이 쓴 <인맥 만들기>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인맥과 학맥으로 출세의 향방이 결정되는 우리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그나마 책으로 나마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인맥을 형성하고자 했던 당시 우리나라 독자들의 욕망의 정확한 표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를 제외하면 많이 팔린 책은 그 당시 사회 구성원들의 정확한 자기표현 또는 욕망 또는 염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대 사회 구성원들의 욕망을 저급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난쏘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18년간 무려 40만부가 팔린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의 속도전에서 소외받고 희생을 강요당한 이들의 사회를 향한 외침의 소산이듯이.

 

제대로 된 베스트셀러는 당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시금석이며 독서 목록으로 나쁘지 않다.

 

본인의 저서 <아주 특별한 독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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