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상주 산골 마을에서 졸지에 대구로 전학을 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신문물이 여럿 있었다. 만두. 우유. 승차권 등이 그것들이었는데 무엇보다 나를 경도하게 만든 것은 초인종이었다


내가 살던 산골 마을 고향 집은 대문 자체가 없을뿐더러 대문이 있는 집이라고 할지라도 벨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벨 티(벨 누르고 도망치기)에 탐닉했는데 주 활동무대는 양옥집이 즐비했던 대명동과 산격동이었다. 세월이 흘러 벨 티를 즐겨서 지역 주민을 성가시게 했던 나는 중늙은이가 되었고 대구로 강연하러 간다. 인생이 참 얄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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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이라는 주제로는 처음 하는 강연인데 담당 사서 선생님께서 이토록 예쁜 포스터를 만들어주셨다.  새삼 알차고 재미난 강연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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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에 있는 도서관에서 강연 의뢰를 했다. 대구는 청소년과 대학 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니 반가운 마음에 선뜻 수락했다. ‘이토록 재미난 고전 소설 읽기라는 주제로 고전 속에 숨겨진 이야기와 작가들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로 하고 파워포인트까지 작성했다. 그런데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내 신간인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을 주제로 강연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래도 학부모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한다.

 

대구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으로 학력과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은 곳이니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러나 나는 교직 생활과 독서 인생을 통틀어 특정 대학을 목표로 지도한다거나 독서를 통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간다는 목표를 세운 바가 없다.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도 출판사에서 기획해서 나에게 출간의뢰를 했으며 서울대에 가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요즘 청소년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더 발전적인 독서를 하기 위한 발판쯤으로 쓴 책이다.

 

사실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20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사람들이 많이 읽은 요즘 책에 지나치게 무관심하였으며 요즘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 책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새로운 생각과 영감을 주는 책이 많다는 것을 통감하였다. 즉 모두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자녀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학부모에게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책이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주인공 필립은 일찍이

양친을 여의었고 더구나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백부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백부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목사였다. 그는 필립에게 성경을 암기하라고 명령했고 필립은 힘겨워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자상한 숙모는 필립이 운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방문 앞에서 필립이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노크했다.

 

숙모는 필립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로운 그림이 담겨 있는 그림책을 필립에게 보여주었다. 필립은 그림에 빠져 그림 뒤에 쓰인 글씨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고 자발적인 독서를 시작한다. 그때부터 독서에 빠진 필립은 다양한 고전을 섭렵했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의사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까지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린다.

 

자식이 책을 많이 읽기를 원하는 부모는 강압적으로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기보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을 다니거나 좋은 책을 자녀에게 읽어줌으로써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나저나 내 딸아이가 서울대 낙방생이라는 것을 밝혀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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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24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박한 고민이네요,ㅎㅎㅎ

박균호 2023-05-24 16:04   좋아요 1 | URL
나름 진지한 고민입니다..ㅎㅎ

stella.K 2023-05-24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야할 책이 늘어나네요. 인간의 굴레 읽은 것 같긴한데
기억이 안 나네요.ㅠ
근데 따님이 공부를 잘하긴 했나 봐요. 서울대 원서를 넣어봤다는 게 어딥니까?
저는 꿈도 안 꿨습니다.ㅋㅋㅋ

박균호 2023-05-24 16:04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쨌든 떨어졌는데요 몰..
인간의 굴레...이거 정말 강추해요. 저도 오랜만에 새로 읽었는데 새로운 재미가 있더라구요.
 
파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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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이 쓴 <파계 破戒>는 백정 출신임을 숨기고 교사 생활을 하는 우시마쓰의 번민과 내적 갈등을 다룬다. 이 책은 190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애타(천민)라는 계급이 실존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계급제도는 타파하였으나 천민엔 대한 뿌리 깊은 멸시로 새로 평민이 된 사람 이란 의미로 신평민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에게 극심한 차별을 가하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백정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는 교사로 멀쩡히 근무하다가 백정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탄로 나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부족해 하숙집에서도 쫓겨난 인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 우시마쓰는 아버지가 당부한 대로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죽을죄를 저지른 것처럼 전전긍긍하면서 지낸다. 일본 사회에서 백정을 비롯한 천민이 겪은 고초는 소설 내용보다 훨씬 가혹했다. 예산 부족으로 천민 출신 자제를 일반 학교에 다니게 하였지만 ‘차별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게 하였으며 교실 한쪽 바닥을 한 단계 (1.2미터) 내려 판자벽을 치고 천민 출신 아이돌의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거기에서는 칠판도 교사도 보이지 않았다. 온갖 차별과 멸시로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천민 출신 자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에타(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부락(部落)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부락! 왠지 익숙한 단어다. 실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마을을 부락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부락이라는 단어를 애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교사 들이었다. 선배 일본인 교사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했으리라. 불길한 예감에 잠시 검색을 해보니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몇십년 전까지 자주 사용하던 부락이란 말이 일본의 천민 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의미하는 부락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 들은 조선사람이 사는 동네를 천민 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며 이런 속뜻도 모른 채 우리나라 사람 들은 자신 들이 모여 사는 곳을 ‘천민이 사는 마을’로 불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936년 서정주가 주축이 되어 발간한 동인지 이름이 ‘시인 부락’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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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2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3-05-08 08:28   좋아요 1 | URL
어이쿠...과분한 칭찬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기분좋게 한 주를 시작하게 되네요 !!
 

미혼 시절 테니스와 주식에 발을 담근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비가 오면 테니스를 못 하니까)와 주식 창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주식이나 테니스는 일희일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스릴도 있었다. 혹독한 쓴맛을 보고 주식에서 발을 뺀 지가 이십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 책을 내고서부터 주식과 다름없는 스릴을 맛보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내 책의 판매 포인트를 살펴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식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주식을 할 자금이 없다는 것도 주식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게 된 약간(?)의 동기가 되었음을 자백해야겠다.
그런데 이 생활도 오래되다 보니 살짝 지친다. 내 출간 생활이 주로 실패만 거듭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일단 책이 나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팽겨 두고 어느 날 출판사에서 2쇄를 찍게 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오! 면피는 했네’라고 안도를 하고 5쇄를 찍었다는 소식이 오면 ‘오! 대박인데’라고 한마디하고 끝내고 싶다. 그리고 책이 나오면 SNS에 홍보하는 것도 지치고 염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건 뭐 군대 간 아들이 첫 휴가 때나 반갑지 너무 자주 나오면 살짝 귀찮은 격 아닌가. 그리고 내 책이 나온다고 내가 이것저것 해봐야 별 효과도 없다.
그냥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으면서 지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 생각 끝에 지난번 책을 내면서 작성해둔 서평가 명단과 연락처를 삭제해버렸다. 그냥 고고하게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지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내 소신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당장 삭제한 서평가 명단과 연락처를 복구하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다가 결국 실패했다. 나 하나만 믿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한 출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에이, 이번에도 틀렸어’라고 술 한잔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피 같은 돈을 투자한 출판사는 불쌍해서 어떻게 하냔 말이다.
원고만 넘기고 나 몰라라 하면 이건 마치 친구를 불구덩이 속에 놔두고 혼자 도망친 배신자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인지 몰라도 얼마 전에 읽었던 고우리 작가의 <편집자의 사생활>에서 ‘책 팔아 10층 자리 빌딩을 올리겠다’는 포부를 보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책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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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4-26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신간으로 나오는 책들이 많아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책들도 판매부수가 이전처럼 많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2쇄를 찍지 못하는 책들도 많을 것 같고요.
주식은 미인대회라고 들었는데, 책에서도 그런 건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다음엔, 주식관련 책을 쓰실 수도 있겠네요.

이번책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박균호님, 좋은 하루 되세요.^^

박균호 2023-04-26 16:12   좋아요 2 | URL
저는 서이데이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주로 2쇄는 찍는 편이에요...그런데 주식채은 도저히 ㅎㅎㅎ 주식으로 패가 망신하는 법..뭐 이런책은 가능하겠습니다. 감사해요.

2023-04-26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7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