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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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두 세 가지 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모두 기웃거렸었다. 개신교는 모태신앙이 아니면서 교회에 다니게 된 대부분의 한국인과 같은 경로로 발을 들였고 한때는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기도 했다. 불교 또한 종교라기보다는 자기수양과 요즘 유행하는 힐링의 차원에서 보시를 하기도 하고 불자회라는 단체에도 가입하여 '경담'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법명을 받은 몸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다른 두 가지 종교의 경우와는 달리 불온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군복무시절 세례를 받겠다고 통신교리를 신청하여 우편으로 교리공부를 제법 오랫동안 했었다. 통신교리를 하게 된 계기는 왠지 '세례명'을 가진다는 것이 '폼'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니 결국 세례는 받지 못했는데 대학졸업 무렵 천주교 산하의 학교에 교사로 취직하기 위해서 일삼아 '세례'를 받는 '난 놈'이 있는 것을 보고 새삼 그때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 어떤 종교에도 귀의하지 못하고 '신'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고 현세에서의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보고 싶어 차마 저승길로 선뜻 나서지 못했던 '아버지'이지, 내가 가보지도 않은 나라에서 생겨난 내 얼굴도 알 리 없는 '부처님'이나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죽고 나서도 나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행복하지, 거룩한 신이 보살핀다는 고통이 없고 영생의 '열반'이나 '천당'에 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외동아들로 태어난 내가 겪은 가장 큰 불편함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싸움박질을 할 때 든든한 '원군'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사이의 싸움이란 것이 고만고만했고 결국 승자는 '너 ! 우리 형아한테 말해서 때려주게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였다. 나는 오랑캐 같은 친구 놈을 응징하게 일러줄 형이 없는 외아들이었다. 


친구 놈이 꼼수를 써서 내 딱지를 모두 따가거나, 달리기를 못한다고 놀려대도 그저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삭여야할 뿐 달리 대책이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아이들끼리의 일을 어른들에게 고자질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이 코흘리개들의 '송사'에 재판관으로 등장할 일도 없었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형과 객관적으로 시비를 가려줄 어른의 부재는 코흘리개의 삶을 '억울함의 천국'으로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8월 4박 5일의 일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그분의 방한을 계기로 천주교로 귀의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데 쉰이 다 되도록 굳건한 무신론자로 살아온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민과 공감이 굳이 익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생소한 타자로부터도 느낄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그분이 마침내 한국을 떠날 때는 마치 가족이 먼 길을 떠나는 듯한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코흘리개 시절 내가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할 때 홀연히 나타나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코를 닦아줄 것으로 희망되었던 자상한 형과 같은 따뜻함을 국빈으로 온 종교지도자에게 느낀 일은 내게는 나름 '영적인 충격'이었다.




이 경험이 나를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를 더욱 주의 깊게 지켜보고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공지영 작가는 이미 십 년 전에 스스럼없이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고백이 아닌 공표를 했다. <수도원 기행 2>는 사실 '돈을 위해 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개인사와 그로 인한 하느님에 대한 갈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따지고 보면 작가가 '돈을 위해 펜을 들지 않는' 경우가  낯설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문학의 본좌 도스또예프스끼의 수많은 명작들이 사실은 도박과 사치로 인한 빚에 쫓긴 절박한 펜 놀림의 산물이었고, 동화작가로 유명한 <강아지 똥>, <몽실 언니>의 권정생 선생과 국어학자 이오덕 선생의 서간집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말 중의 하나가 사실 '돈'이야기다. 


물론 원고료와 이오덕 선생이 권정생 선생을 염려해서 보내주는 정성이지만 결국 '돈'은 '돈'일 뿐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로서의 '글쓰기'가 결코 점잖지 못한 일이 아닌 이유다. 30대 초반에 이미 평생 쓸 돈을 다 번 공지영 작가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속아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결혼생활을 3번이나 마감해야 했던 그녀에게 '글쓰기'는 고상한 '예술혼의 표출'이 아닌 '생계수단'에 가까웠다. 공지영 작가의 글쓰기는 어린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한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었고 자식을 지키나가려는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해서 그의 소설도 구린 돈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낮은 자를 향한 강한 연민과 관심의 촉구인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그녀는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단언한다. 그것도 소외받고 불평등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지영 작가는 우리 문학계에서 가장 현실참여적이다. 그의 현실참여적인 문학은 난해한 이론 놀음이나 계몽적인 것이 아니고 오로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핍박받으며, 불평등을 일상적으로 당하고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공지영 작가의 소중함은 그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책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 속에서 직접 참여한다는 데 있다. 굳이 공지영 작가의 약한 자를 위한 행보를 열거하는 수고는 필요 없지 않을까?  등단 이후로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지만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의 면모는 결국 '사람'을 위해 펜을 든 것으로 증명된다.


공지영 작가의 도드라진 문학의 성과는 '약한 자를 위한 배려와 관심을 이끌어 냈고' 휴머니즘을 실천한 것이다. 나는 <수도원 기행 2>의 기본적인 근간이 '휴머니즘'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땅에 스며든 강아지 똥이 땅위의 아름다운 민들레를 키운 자양이 되었듯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중의 휴머니즘이 <수도원 기행 2>이라는 역작을 길러냈다고 나는 본다.


<수도원 기행 2>의 머리 부분을 차지하며 전체 글의 모태가 되는 '왜관수도원'만 해도 그렀다.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소재가 왜관수도원이기도 한데, 한국전쟁 중 애초에 군사목적으로 항해에 나선 미국의 배가 인민군과 중공군에게 쫓기는 무려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기적적으로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과 왜관수도원과의 인연이 이 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수도원 기행 2>가 왜관수도원에서 시작해서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이 수사가 되어서 머문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이 책이 단순히 기행문이 아닌 인과관계로 역인 대하소설로 읽히는 감동을 준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이 오로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국민을 속이고 한강철교를 폭파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천인공노할 일로 시작되는 바로 그 전쟁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정치나 국적보다 더 우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총구나 이데올로기보다 더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원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자급자족하며 노동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왜관수도원의 일원이기도 하며 <수도원 기행 2>을 펴낸 분도출판사를 키운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님의 주요한 기획중의 하나였던 가난한 이웃들의 사진만을 찍어 박정희의 핍박을 받는 최민식 작가의 사진집 이름이 [Human]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예의라는 뿌리를 가진 이 책의 소소한 '인간적인' 면모는 194페이지의 공지영 작가의 저작권인 에펠탑 야경사진으로도 느껴진다. 야경사진을 삼각대가 아닌 손각대로 촬영하여 초점이 맞지 않아 뭉개진 공지영 작가의 귀여운 인간미가 넘치는 사진 말이다.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에서 발견한 유일한 흠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충고는 '야경사진을 찍을 땐 귀찮더라도 삼각대를 사용하시라'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에 담길 사진이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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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 대통령의 필사가 전하는 글쓰기 노하우 75
윤태영 지음 / 책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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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지만 2009년 5월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연결식 조사를 상기해보자. 장례식을 치러내기 위한 한승수 국무총리의 '의례적인' 조사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것을 애통해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통한의' 조사가 이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로 시작해서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로 마치는 한명숙의 조사는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의 모든 일정 중에서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눈시울을 가장 뜨겁게 달군 대목이었다. 이 조사를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국민의 반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위대한 경사스러운 날'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 대통령이 된 쾌거'였고 또 다른 국민의 반에게는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때보다 더 한 절망을 안겨준 2012대선을 상기해보자. 결과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선거기간동안 유난히 뇌리에 오랫동안 스며든 연설의 한 장면은 문재인 후보의 어눌한 입에서 나왔다.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명연설을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이 두 개의 글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글은 어려운 미사여구가 아닌 살아 있는 생활 속의 언어를 재료로 삼아야 하고, 윤태영의 글쓰기 방식이 우리 시대의 더할 나위 없는 글짓기 선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다양한 글쓰기의 지침 속에 알알이 담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저자와 관련된 인물과의 에피소드는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글쓰기 교재가 아닌 '노무현 추억하기'로 읽히기도 한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대한 칭찬을 전혀 듣지 못한 '문학청년' 지망생 저자가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고, 정치권의 글쟁이를 거쳐서 이제는 <기록>(책담, 2014)이라는 걸출한 저서를 남긴 글쓰기 선생이 되기까지 몸소 체득한 글쓰기 비법 75가지를 알려준다.


스포츠 세계에서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의외로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지 않다.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나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하지만 넥센 히어로스의 '염경엽'처럼 무명선수출신의 명감독이 많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명선수였던 사람은 애초부터 타고난 재능이 워낙 탁월하여 '못하는' 선수들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애초에 자신이 주목받지 못한 현역생활을 거친 감독들은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저자 윤태영도 마찬가지다. 문학을 지망하긴 했으나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그는 꾸준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하고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명문장을 써낸 장본인이 되었다. 재능은 싸구려이며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는 말의 훌륭한 예가 바로 윤태영이다. 그런 그가 '실용적이고 당장 처방이 가능한 글쓰기 비법'을 소유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쓰기 강좌는 지켜야 할 수칙도, 사례도 구체적이다. 김훈이나 김승옥의 소설에서 예문을 구해오기도 했지만 예문의 대부분은 그가 정치 글쟁이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글쓰기 실무의 경험에서 따왔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메모로 쓴다"

"이름 모를 소녀 신비함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

"접속사,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자. 흐름을 중시하자"

"모든 것을 설명하지 말자. 욕심이 글을 지루하게 만든다"

 으로 대표되는 75가지의 글쓰기 노하우는 철저하게 실용적이며 구체적이다. 




소설이야말로 글쓰기의 훌륭한 교재라는 가르침에 나는 철저하게 동의한다. 좋은 소설을 읽고 그들을 흉내 내는 일이야 말로 좋은 글쓰기의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무릎을 치게 하고 가슴을 울리는 명문장이 가득한 김훈이나 김승옥 그리고 이문구 등의 소설을 읽을 때면 수첩을 곁에 두고 메모를 한다. 메모한 문장이나 문투를 다음번 글을 쓸 때  한 번 써먹겠다는 생각이다. 여의치 않으면 그 문장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면서까지 흉내 내야 속이 시원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흉내내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어투와 글 솜씨를 가지게 된다고 믿는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고매한 학문의 깊이를 자랑하면서도 제자의 함량을 고려하지 않는 저 높은 곳의 하늘 같은 스승이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호랑이 선생의 송곳 같은 질문에 쩔쩔매는 친구를 돕기 위해서 나지막한 속삭임으로 힌트를 주는 다정한 친구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밝혀둘 것은 이 글은 접속사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흐름을 중시하라는 저자 윤태영의 충고대로 접속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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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나, 아내 , 딸아이가 모여서 순대와 김밥을 먹는데 여동생이 새 아파트를 하나 청약해놨다는 소식을 아내가 전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뛰어난 살림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여동생에 대한 흐뭇함보다는, 조만간 나에게 튈 것이 분명한 불똥이 걱정된다. 학생들에게 꿀밤을 먹이면 정작 무서워하고 가슴 졸이는 것은 내가 준비 동작을 취할 때지 타격의 순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분명 나에 대한 원망의 프롤로그임이 분명한 주변 사람의 성공담은 나에게 꿀밤을 맞기 직전의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아내와 딸아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다가올 후폭풍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순대가 아닌 김밥을 두 번이나 소금에 찍어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처럼 5년 후나 10년 후를 내다보지 않으며 금융 상품이나 재테크에 무지한 집도 없다고 한다. 김밥을 먹어서 오물거리는 아내의 입은 ‘우리’라고 말했지만, 그 눈동자는 분명 ‘당신 또는 너’를 말하고 있음을 눈치 없는 나도 알아챘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집이고, 이사를 하면 이사 비용과 세금 등의 비용은 어쩔 거냐는 나의 주장은 이미 자주 써먹은 터라 다른 기발한 변명을 생각하려는데 숨 쉴 틈도 없이 아내는 다음 현안으로 화제를 돌린다.


딸아이가 영어 학원에 그만 다니고 싶어 한단다. 이 현안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 전문가(영어 교사)이니 자신 있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계속 다녀라.”


마지막 안건은, 정 이사를 가기 싫으면(‘이사 갈 능력이 안 된다면’이라고 말해주지 않아서 고맙다) 리모델링이라도 해야 하는데 직장 동료가 편백나무를 사용해서 벽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단다. 이 대목에서 바람직한 가장이라면 편백나무로 리모델링했을 때 장점과 단점을 열거한 후에 장점이 더 많으니 그게 좋겠다고 말함으로써 남편의 해박한 집안 살림 지식을 자랑하고, 또 아내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상한 남편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거 편백나무가 뭐 어떤 긴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무식할 수 있느냐는 비난을 듣고 평소처럼 나의 은신처인 서재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내의 무서운 공격에 숨 쉴 틈이 필요했다. 단 30초라도.

영혼까지 털린 몸뚱이를 서재의 소파에 내던진 다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퇴근 직전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것은 새로 나온 이문열의 14만 원짜리 《변경》 전집을 지를까 말까였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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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미와 관련된 책부터 시작해보자

책에 대한 공포증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의 취미와 관련된 책을 읽어야 한다.

운동을 좋아한다면 운동과 관련된 책을, 음악을 좋아한다면 음악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즐겁게 독서생활에 입문한다.


2) 단 십분이라도 하루 중 책 읽는 시간을 정해두자.

묘하게도 영어공부와 독서는 공통점이 있다. 영어를 배울 때도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주로 하는 말은 영어공부는 정해진 시간에 해서는 잘하기가 어려우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짧더라도 자주해야 영어실력이 향상된다고 충고했다. 공부하는 시간이 짧더라도 자주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믿음은 필자도 동의하며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꺼번에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금상첨화지만 독서하는 습관이 부족한 사람은 출근 길이나 등교 길 버스를 기다리면서, 출근 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 학생이라면 등교를 해서 수업이 시작되기 전, 점심 식사 후 또는 휴식 시간 또는 잠들기 전 침대에서 십 분간의 독서 습관은 시간이 짧더라도 매우 유용하다. 십 분의 독서시간이 몇 번만 되어도 사실 꽤 많은 독서를 하는 독서가가 되기에 충분하다.


3) 언제든 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

독서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하는 방법이 좋다고 했다. 자투리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자투리 시간이 언제 생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힘이 아주 세거나, 책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가급적 무거운 책 보다는 가볍고 작은 책을 선택하자. 너무 무겁거나 커서 이동하는데 방해가 되면 책이라는 물건 자체가 싫어진다.


4) 영화나 뮤지컬을 너무 좋아한다면?

영화와 책은 서로 상극이 아니다. 아니 굉장히 밀접하다. 가만히 보면 인기 있는 영화의 대부분은 본디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제작된 경우가 많다. 영화와 책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지 별개의 다른 길을 가는 매체가 아니다.


5) 가급적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을 멀리하자.

단언컨대 필자가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면 결코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와 독서를 해야 하지만 유혹이 너무 많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채널을 가진 TV에 이르기까지 모두 너무나 강력한 방해꾼들이다. 내가 요즘에 태어났다면 도저히 저 많은 재미있는 유혹거리를 뿌리치고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자신이 도저히 없다. 

그러나 어찌됐든 책을 읽기 위해서는 TV를 비롯한 IT기기를 멀리해야 한다. 자기 나름의 규칙을 정해두면 유용한데, 독서를 할 때는 아예 스마트폰은 별도의 장소에 두고 TV가 없는 장소로 가서 책을 읽으면 좋다.


6) 밑줄을 긋고 책을 험하게 다뤄야 한다.

책을 지고지순하게 순결한 상태로 보관할 이유는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을 흠짐 없이 보관하지 못해서 낭패를 보는 일도 드물다. 책도 끊임없이 개정이라는 이름으로 업데이트를 하니 더더욱 책을 마음껏 함부로 다뤄야 한다.


7) 장바구니에 담긴 책은 한 달이 지난 후에 결제를 하자.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서 책을 산다면 장바구니에 한 달 정도는 묵혀 두어야 한다. 의외로 책도 충동구매를 하기 쉬운 아이템이다. 괜찮은 책을 발견했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한 달 동안 장바구니에 담긴 책을 바라만 봐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내게 꼭 필요한 책인지 정답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8) 독서 기록장을 작성해보자.

독서는 읽는 행위가 아니고 쓰는 행위에서 완성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읽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 치고 머리가 좋아서 감동적인 문구나 절묘한 표현 등을 타인에게 술술 암송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9) 독서하기에 좋은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책의 종류만큼이나 책을 읽기에 좋은 장소는 다양하다. 조용한 곳이 독서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적당히 시끄러운' 곳이어야만 집중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내 사촌동생은 적당한 TV 소리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면서 잠들기 좋아했다. 잠이 들고 싶을 때 그 사촌 동생은 주위 사람에게 적당히 떠들어 주고 TV를 끄지 말도록 요청하기까지 했다. 책을 읽는 장소로 도서관이나 조용한 서재가 모든 이에게 권장하기는 어렵다. 독자 자신이 편안하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버스를 타면서 책은 읽지 않도록 하자. 버스는 흔들림이 심해서 시력에 악영향을 준다. 당연히 독서가는 러닝머신을 하면서 TV를 보지 않아야 한다. 시력을 망치는 행위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굳이 독서를 해야겠다면 기차는 차선책이 된다. 이 경우 KTX보다는 새마을을 권한다. 새마을이 오히려 실내 좌석이 넓어서 독서하기에 더 편하다.


스타벅스 같은 커피 전문점도 훌륭한 도서관이다. 스타벅스에서 애플 노트북을 켜두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는다면 된장녀 또는 허세남으로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커피 전문점은 책읽기에 매우 좋은 장소다. 집중력을 높이기 쉬운 적당한 소음도 좋지만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졸음을 예방해주니 책을 읽기에 쾌적하다.


침대도 독서하기에 쾌적한 장소다. 잠들기 전 침대는 화장실과 더불어 독서하기에 집중이 잘 되는 장소다. 고대 로마의 상류계급 저택에 있던 호화스러운 침대의 가장 중요한 용도 2가지는 '식사'와 '독서'였던 사실을 아는가? 침대위의 독서가 더욱 쾌적한 이유는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꾼다면 그 꿈이 악몽이기는 어렵다.


10)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최대한 오랫동안 읽어야 한다.

소설은 스토리 전개가 계속 연관되기 때문에 읽기를 멈추고 한 참 뒤에 다시 읽으면 그동안 전개됐던 스토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표현방식에 있어서 아주 미묘하게 은유적으로 사건진행이 되는 책이나 이름이 복잡하고 애칭이 다양한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각 단원으로 구분되어 있는 인문서적은 소설만큼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한꺼번에 읽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11)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자.

독서가가 도서관을 가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겸손'을 배운다는 데 있다. 독서가는 스스로 많은 책을 읽었다며 자만에 빠지기 쉽다. 종종 허세에 빠지고 또 아집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는 수많은 책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보잘것없는 지식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더욱 독서에 정진하는 계기가 된다.

도서관의 다른 장점은 그 비용이 무료라는 점이다. 관심이 가는 책을 언제든 보고 소장하고 싶은 책은 별도로 구매를 하는 습관은 권장하고 싶다. 물론 최신간을 원하는 만큼 빨리 보기는 어렵지만 신간 비치를 신청하고 기다렸다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적응이 되면 답답함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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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6-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허은진 입니다~~

박균호 2015-06-18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코 여기서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저 여기 초보에요 잘 부탁합니다

cyrus 2015-06-18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번 내용에 공감합니다. 아이가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무조건 책을 사주는 것보다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도서관의 책을 소중히 다루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을거예요. ^^

박균호 2015-06-1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재미 못지 않고 고르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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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서울의 한 가정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대학에서 사진반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딸아이의 아버지는 귀여운 딸을 낳아준 아내와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족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기로 결심했다. 딸아이의 이름은 윤미였고 그 딸아이를 너무나 사랑한 아버지는 전몽각 선생이었다.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은 이렇게 윤미의 출생과 함께 잉태되었다.


전몽각 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여러모로 각별하다. 사진집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반 독자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데 전문사진작가가 아닌 평범한 '아빠 사진사'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 놀랍다. '장가도 못 갈 것 같았는데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해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게 이 사랑스러운 사진집의 시작이었다.


전몽각 선생은 아빠의 시선으로 사랑하는 딸아이 '윤미'가 태어나서 시집 가는 순간까지 일상을 카메라로 꾸준히 담았다. 이 사진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도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윤미'가 그리워서였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소장용으로 출간이 된 <윤미네 집>은 의외로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전몽각 선생 자신이 말한 것처럼 '아마추어리즘의 소산'인지 플래시와 삼각대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 흑백사진들은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이 주는 잔잔한 감동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독자들의 관심은 많은데 애초에 많지 않은 수량으로 출간이 된 이 사진집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애를 태웠다. 사고 싶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이 사진집이었고 급기야 가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분량마저 독자들의 성화에 금방 판매가 되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윤미네 집>을 찾는 탓에 결국 초판이 나온 지 20년째 되는 2010년에 새로운 장정과 편집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주명덕 작가가 편집을 맡았고 초판에 없던 '마이 와이프My Wife'가 더해졌다. '마이 와이프My Wife' 는 2006년 유명을 달리한 전몽각 선생이 췌장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정리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구판을 간신히 구해서 소장하던 나는 신판이 나오자마자 2권을 주문해 비닐랩핑도 뜯지 않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전몽각 선생은 원래 토목학자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가했으며 성균관대학 부총장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이제 그는 '윤미네 아빠'로 더 잘 알려졌다. 딸아이와 가족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는 큰 딸 윤미가 태어난 1964년부터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1989년까지 윤미와 아내의 일상을 렌즈에 담았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그에겐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아내와 딸은 그에게 최고의 모델이었다.


카메라가 흔해진 요즘에는 '아빠 사진사'가 아닌 아빠가 드물다. 그러나 자식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할 때까지 '아빠 사진사'노릇을 하는 아빠는 드물다. 전몽각 선생은 심지어 윤미가 결혼을 할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곳까지 따라가서 사진을 담는 열성까지 보인다. 물론 딸의 허락을 사전에 받기는 했지만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딸의 일상을 담으려는 그의 의지는 심지어 결혼식까지 이어져서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쥐고 로우촬영으로 윤미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시도는 딸아이 윤미에 못지않게 사랑하는 아내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고 대신 그의 절친인 강운구 선생이 대신 촬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윤미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가 윤미를 더 이상 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윤미가 미국생활을 하기 위해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 사진이 윤미의 마지막 사진이 된 것이다. 사진집으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윤미네 집>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이란 결국 기술이나 장비의 소산이 아닌 따뜻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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