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배의 추천으로 '도서관 이야기'(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발행)에 글이 실렸다.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서 이야기
00도서관 사서 000
대학 시절 공공도서관장이 꿈이었다. 교수님은 ‘00야 공공도서관이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사서랑 직원 달랑 둘이야. 그냥 시집이나 가서 평범하게 살아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해 주시는 교수님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소중히 품고 있던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발걸음, 첫 출근!
전 직원 네명이 근무하는 고향의 작은 도서관. 또각또각 하이힐 신고 출근할 때 2층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았던 이용자들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료실에 근무하며 수기로 대출대장과 카드목록을 작성하고, 학교와 인접해 있어 운동장에서 놀다가 흙 묻은 발로 도서관을 찾아와 자료실을 누비며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 떨리는 마음으로 독서교실 첫 수업을 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아동전문사서를 꿈꾸며
2년 후 충청북도중앙도서관으로 발령이 났고, 그 이후 9년 가까이 아동실에 근무하며 어린이책을 읽게 되면서, ‘아동전문사서’라는 또 하나의 꿈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서지도자과정을 공부하면서 정승각 선생님이 <강아지똥> 표지를 그리기 위해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녔다는 일화를 듣고 그림책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독서지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을 만들어 어린이독서회를 운영했고, 주부독서회를 담당하면서 한달에 두 권의 책을 의무적으로 읽게 되었다. 주부독서회에서 봄과 가을에는 자연을 벗 삼아 야외독서토론을 하기도 하고, 신경림, 나희덕, 안도현 시인을 초청했으며, <상당의 글향기>라는 문집도 발간했다.
여름, 겨울방학 중에는 독서교실을 운영하면서 독서교실 교재도 만들어 관내 도서관에 나누어 주었고 독서교실 수업도 직접 담당하였다. 그리고 한국도서관협회 사업으로 진행되었던 ‘전국순회독서교육’에 강사로 위촉되어 전남, 경남지역을 돌며 독서 강의도 하게 되었고, 독서프로그램 위주의 실제적인 강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사서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관련 교육과정에 '독서지도의 실제'라는 수업도 하게 되었다.
독서교육의 즐거움
최근에는 ‘학교도서관과 연계한 독서프로그램 운영’이라는 주제로 인근 초등학교에서 독서수업을 하고 있다. 주로 학교도서관에서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 저학년을 대상으로는 간단한 도서관 이용법과 독서방법을 설명하고, <강아지똥>을 읽어주고 동영상을 보여준 뒤에 독서퀴즈로 수업을 하고 있다. 고학년을 대상으로는 <피노키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를 읽어준 뒤 주제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발표하는 독서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 이었다’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는 퀴즈를 내면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해진다. 물론 작은 선물도 준비해서 나누어 준다. 한시간 혹은 두시간의 수업으로 진행이 되는데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지나가고 안타까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뿌듯함과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보람 있었던 ‘문학기행’
사서로 일하면서 보람 있던 일중의 하나는 문학기행을 다녀온 것이다. 주부독서회를 담당하며 1년에 한번 ‘작가초청강연회’를 기획하였지만 정작 유명작가는 시간상 초청할 수 없기에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자 하는 생각으로 문학기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분이 박완서 소설가와 김용택 시인이다.
처음 전화했을 때의 떨림과 흔쾌히 허락해주시는 두 작가를 보면서 역시 큰 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박완서님을 뵈러가는 길에는 아치울 입구부터 눈부시게 하얀 벚꽃이 우리를 반겨주었으며 노오란 황토담의 정겨움과 정갈한 서재, 소박한 정원이 참으로 고왔다. 햇살 가득한 마당에서 단아한 박완서님의 자녀교육관, 문학관, 작품이야기를 듣는 내내 봄날의 따스함이 몸속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섬진강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간 길. 그림 같이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벚꽃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덕치초등학교로 찾아가서 만난 김용택 시인은 그 당당함과 투철한 교육관에 함께 한 엄마들 모두 짧은 시간을 아쉬워했다. 우리가 탔던 관광버스를 타고 함께 전주시내까지 동행하시면서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작은 블로그 꾸미기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서점에 작은 블로그를 갖고 있다. 책 읽고 서평 올리기, 사서일기, 독서스크랩,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쓴다.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잠시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기도 하고 집에 가서도 한시간 정도는 블로그를 관리한다.
덕분에 글 쓰는 일도 쉬워졌다. 지역 신문에 한달에 한번씩 ‘즐거운 책읽기’라는 코너에 글을 싣고 있으며, 지역교육청 교육소식에 ‘학부모에게 권하는 책, 교사에게 권하는 책’ 원고도 게재하게 되었다. 물론 엄마가 열심히 책을 읽으니 두 아이도 덩달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성장하고 엄마의 취미는 ‘독서’라고 당당히 소개한다. 주부독서회원을 모집하면서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슬로건을 만들었던 기억도 난다.
사서로 살아간다는 것
공공도서관 사서의 마지막 자존심은 독서지도라고 하지만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듯한 요즘,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 개발과 독서전문가 양성이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대학 커리큘럼도 바뀌어야 하고, 지속적인 교육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 현재 사서로 근무하는 동료들은 독서지도가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독서지도는 사서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일을 억지로가 아닌 즐겁게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다 보면 늘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성과가 나타난다. 주위에서 이런 말을 가끔 듣는다. “그동안 공무원하면 고리타분하게 생각했는데 언니를 보면 전혀 아니야. 늘 새롭고, 신선해. 일을 즐긴다는 의미가 무언지 알겠어. 참 멋져! 나도 문헌정보학과 가는 건데......” 물론 내가 추구하는 것도 유행가 가사처럼 ‘쿨 하게 살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이기에 남들에게도 즐겁게 비춰지겠지만 어쨌든 현재 내 일이 좋고, 사서라는 직업이 자랑스럽고, 책 읽는 것, 글 쓰는 것이 즐겁다.
‘향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도서관을 찾아온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