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정 나들이의 수확은 고구마다.
고구마를 직접 캐다 먹으라는 엄마의 성화에 썬글라스, 팔 토씨, 챙 넓은 모자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신랑이랑 규환이와 인근 텃밭으로 향했다. 부지런한 엄마는 손바닥만한 밭에 고구마, 콩, 파, 땅콩 등을 심어 놓으셨고 우리 몫으로 주어진 한 고랑에서는 채 한시간도 되지 않아 두 박스나 캤다. "역시 우리 딸은 복이 많네. 지난주 한 고랑 캘때는 고구마도 작고 조금 나왔는데 이렇게 실해!" 하는 엄마의 덕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호미로 땅을 가만가만 파면 선홍빛 고구마가 보이고 살짝 들어 올리니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고구마들이 대여섯개나 딸려 나온다. 파란 하늘이 드높은 날 오랜만에 고운 흙을 밟으며 쉽게 수확한 고구마를 보면서 아주 잠깐, 나이가 좀 더 들면 농사 지을까도 생각했다. 비닐 씌우고, 물 주는건 누가 하지?
밭둑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코스모스도 참으로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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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추석 전날 우리 넷은 동그랑땡, 소고기전, 삼색전, 호박전 등 네개의 전을 부쳐 시댁에 가져가 차례를 지냈고, 친정에 다녀오고 난뒤 참으로 오랜만에 3일의 연휴를 쉬고 있다. 보림이랑 신랑은 공부에 필 받아 독서실로 도서관으로 종횡무진한다. 보림이는 친정 엄마 말씀처럼 S대 가려나?ㅎ (너무 늦었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뒹글거리기'라는 컨셉으로 쉬려고 했지만 하루 지나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결국 친한 엄마들끼리 가까운 커피숍으로 몰려가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해외 여행갈 계획을 세우다보니 머리가 개운해졌다. 구체적인 내용이 오고간것 같기는 한데 우리 어디로 가는거였지? 어쨌든 여행은 나의 에너지, 수다도 나의 에너지!
3.
긴긴 5일의 연휴에 읽으려고 컴퓨터 옆에 책을 잔뜩 쌓아 두었다. 그러나 오늘까지 단 한권도 끝내지 못했다. 난독증일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정원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내용인
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베란다 꽃만 가꿔서 그런가?
우물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비롯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탄하고, 베일에 감춰진 삶의 마지막 비밀에 경외심을 갖게 되는 이 길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이 한밤중의 시간에 더 인내심을 가지며 주의 깊고 진지해진다.
이런 식으로 잠 못 이루는 모든 사람은 분명 힘겨움을 겪는 가운뎃도 가치를 얻는다. 나는 그들이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가능하면 치유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경솔하게 살아가면서 건강을 자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실오라기 같은 졸음도 느끼도 못한 채 다만 누워서 내면의 삶을 나무라듯, 겉으로 드러내는 밤을 보내는 날이 언젠가 한번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p. 41
여름이 한창이다. 벌써 몇 주 전부터 커다란 여름목련나무가 내 방 창문 앞에 꽃을 활짝 피운 채 아우성이다. 그 나무는 남쪽 지방의 여름을 상징한다. 언뜻 보기에는 느긋하고 무관심하고 느린 듯하지만, 사실은 다급하면서도 흥청거리듯 풍성하게 꽃을 피워댄다. p. 53
영화 관상을 보고는 역사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욕심으로 도서관에서 빌린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 는 열페이지를 넘기기 힘들다. 전생에 왕비가 아니어서 그런걸까?
요즘 신문에 싣는 서평의 서두를 시작하기 어려워 글쓰기 공부를 하려고 빌려온 <글쓰기 훈련소>는 저자가 전직 신문기자답게 일목 요연하게 정리를 잘 했다. 서평쓰기 챕터만 읽고 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외워려고 하지 말란 말이다.
프랑스 문학 번역가로 유명한 김화영이 프로방스에서 파리까지 느린 여행길에 쓴 여름빛이 숙성시킨 아름다운 이야기.
초록빛이 어우러진 풍경과 저너머에 있을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싱그러운 표지,
언뜻 사랑의 묘약이라는 제목으로 착각하게 하는 제목이 주는 여운.
몇 줄 읽는 동안 엑상 프로방스에 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지만 역시나.......
" 조금 늦었다 싶지만 이제부터라도,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일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과연 뭘까? 책 읽는 것? 요즘 같으면 글쎄다.
11월 16일 강신주 강연회가 우리도서관에서 열린다.
요즘 그의 벙커 특강을 열심히 들으며 직설적이고 명쾌한 말투를 생각한다.
깊은 독서 내공으로 참으로 거침이 없다.
왜 이리 똑똑한거야? 그의 책중 그나마 읽기 쉬운 이 책이지만 난해하다
그외에도 쌓아 놓은 책들......
이제는 딱 하루만 남은 연휴에 몇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4.
나는 정세훈이 좋다. 과거의 사생활은 노 터치!
그가 12월 1일에 청주에서 공연을 한다는 말에 표를 예매하려고 하루에 한번씩은 인터파크를 들락거렸다.
그러나 좀 전에 그의 페이스북에서 주최측의 변심으로 청주공연이 무산되었다는 이야기와 화가 나서 법적 조치를 준비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나도 괜시리 속상해서 몇마디 댓글을 남겼다. 청주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예산상의 이유를 들었다지만 다른 가수를 초청한다는 소문과 공연을 추진한 측 두명이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는 이야기...... 나쁜 사람들. 아 슬프다! 이제 나의 기쁨 중 하나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