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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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잘 쓴 이야기가 주는 쾌감,은 같은 책 번역 후기의 제목으로 번역자가 붙인 것인데, 이는 작가의 독백 또는 일기장을 보는 듯한 4장에 등장하는 ‘나’(이자 동시에 작가인 온다 리쿠)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읽으면서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다.
8월에 여름 휴가를 맞아 평소 내가 아끼는 동생 B가 부산에서 왔을 때『삼월은 붉은 구렁을』얘기가 다시 나왔다. 그 전에 전화로 이미 슬쩍 주제에 한 번 올랐던 것이 이번엔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본격적으로 얘기가 나온 것이다.
“보통은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친한 사람한테 막 얘기해주고 싶은데 이 책을 읽었을 땐 나 혼자만 알고 아무한테도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는 B의 얘기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독서(혹은 드라마, 영화, 음악 뭐든) 취향이 비슷한 동료가 있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행운이다. 그리고 말하자면 B는 나와 독서 취향이 제법 잘 맞는 친구다. 그리하여 연휴가 끝나고 B가 집으로 내려간 다음 날 바로 몇 권의 책과 함께 온다 리쿠의『삼월은…』과『굽이치는 강가에서』를 주문했다. * 이 리뷰의 최초 작성일은 2006.9월이다

온다 리쿠는 64년생의 일본인 여류작가다. 이 얘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온/오프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곧잘 오르는 ‘50년대 이후에 출생한 일본 작가’의 책이 내겐 매력이 없는 혹은 잘 읽히지 않는 책으로 분류되는데 온다 리쿠는 이런 내 분류를 깬 작가이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취향이 잡다한 반면 좋고 호오가 꽤 분명한 편이라, 지금은 국내에서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하루키를 예를 들면,『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된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95년 이래로 지금까지도 그의 장편은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그의 단편은 내용도 문장도 담백하고 심플해서 상당히 좋아한다.

각설하고, 다시『삼월은…』으로 되돌아가서, 이 소설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기다리는 사람들
2장, 이즈모 야상곡
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4장, 회전목마 

각 장은 모두 특색이 있는데 온다 리쿠의 소설이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만큼 형식은 추리장르의 틀 안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전적 의미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한편 같은 이유로 나는 순문학과 장르 소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의 깊이에 푹 빠져 버렸다. 각 장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1장
수수께끼의 책이자 이 소설과 동명인 ‘삼월은…’을 찾는 과정이 나오는데 상황이나 대화가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
2장
수수께끼의 소설을 쓴 작가를 찾아가는 여정이 등장. 네 개의 장 중, 추리소설의 틀에 가장 근접한 장이다.『삼월은…』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화자들의 입을 통해서 ‘수수께끼의 책’의 일부분을 자투리처럼 얻어 듣다 보면 어느새 ‘아, 나도 그 스토리의 완성본인 수수께끼의 책을 읽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3장
유일하게 ‘수수께끼의 소설’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소설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는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다. 이 작가의 작품 중에는 성장 소설의 형식을 띤 소설이 많은데 이 3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 온다 리쿠가 로맨스를 쓰면 굉장할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던 장이기도 했다.
4장
이 장은 ‘나’와 ‘그녀’라는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면서 작가의 육성과 작가의 소설을 동시에 읽는, 좀 불편한 체험을 하게 한다. 실제로 넘어 가는 것이 가장 더딘 장이었는데 3인칭 화자의 소설에 빠져들라 치면 갑자기 1인칭의 작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몰입을 방해하는 식이다. 작가의 고의성일까, 나중에는 의심이 들 정도. 4장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다시 장편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하니, 어쩌면 실제로 작가의 의도된 구성일지도 모르겠다. 

1,2,3장과 달리 4장은 읽는 동안 일본적인 색채가 많이 느껴지는데 1인칭의 독백과 엇갈려서 등장하는 3인칭의 스토리가 영화 ‘배틀 로얄’식의 학원 잔혹극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4장을 읽기 시작한 직후에 나를 웃게한 부분이다.

소설의 제목에는 쓸 만한 것과 쓸 만하지 않은 것이 있다. 단편에는 쓸 수 있어도, 장편에는 이제 더는 쓸 수 없는 것도 있다. 더는 쓸 수 없는 제목이라고 할 때, 언제나 맨 먼저 생각나는 제목은 여행의 끝이다. 번역된 영화제목이나 유럽이나 미국의 단편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참으로 진부하면서도 그렇다고 마땅히 대신할 만한 것도 생각나지 않는, 하여튼 빈틈없는 제목이다. - p.309, 4장 

여행의 끝? 에게- 겨우 이런 제목이 그렇게 흔하단 말이야? 조금 놀라는 심정으로 생각하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 책장에도 이와 같은 제목의 책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 존 바드(John Barth)의 소설로 우리말 제목은『여로의 끝』(The end of the road) 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좋은 글, 잘 쓴 글이란 과연 어떤 글일까.
요즘 상상력은 온데 간데 없고 그럴싸한 문장, 언뜻 있어 보이는 것 같은 언어의 말장난으로 현혹하는 소설이 너무 많다. 그런 가운데 오랜만에 상상의 힘만으로 자신의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읽는 이를 압도하게 하는 소설을 만나 읽는 동안 참 많이 즐거웠다. 게다가,

야마다 에이미는 소설을 쓸 때 한 마디도 고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도 안 돼!’하고 부르짖는다. - p.316 

라니. 아아, 정말 귀엽다!
잘 쓰인 글과 별개로 작가에겐 호감을 못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온다 리쿠는 글도 작가도 모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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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담 - 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 사회의 뜻밖의 사건들 기담 시리즈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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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애소설 돌려보다가 왕에게 반성문 쓴 선비들」

어느 늦은 밤, 정조는 자신의 곁에서 사초를 적고 있던 주서(注書)를 예문관에 보냈다. 그곳에는 김조순과 이상황 등의 몇몇 관리들이 숙직을 하고 있었다. 주서가 보게 된 것은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산더미같이 쌓인 책들을 읽고 있는 숙직관리들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읽고 있었는지 인기척이 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공부하는 그것과는 묘하게 틀렸다. 이상하게 생각했을 즈음, 주서의 눈에 그들이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이 들어왔다.《평산냉연》. 주서는 깜짝 놀랐고, 이 사실은 정조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가게 되었다.《평산냉연》이란 장르를 구분하자면 청대의 정인소설(情人小設)이다. 좀 더 자세히 나누자면 재자가인소설(才子佳人小設)로,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대체로 천편일률적이다. 절세미남에 능력도 뛰어난 주인공이 역시 절세미녀에 똑똑한 여주인공을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하고 사랑을 꽃피운 다음, 주인공은 과거에서 장원급제하고 황제의 칭찬 속에 축복받은 결혼식을 올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만큼 읽기도 쉽고 편안했을 것이다.
《평산냉연》뿐만 아니라 당송 시대의 소설도 함께 있었다고 하니, 아마 예문관의 숙직 담당 관리들은 서고에 있었거나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소설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와서 돌려보고 있었떤 것 같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당연히 정조에게 알려졌다.
정조는 신하들이 공부는 안하고 연애소설을 돌려봤다는 것에 크게 진노하여, 관련자들을 파직시키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처벌했다. 이 중 이상황이 특히 무거운 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본다면, 그가 소설을 가져온 주모자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요즘의 감각으로 생각해보면, 겨우 소설을 읽는데 지나친 처벌인 것도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신하 중 훗날 정조와 사돈이 되었고,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서막을 열었던 안동 김씨 가문의 김조순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 pp.292-293

 
『조선기담』은 조선조 사료에 남아 있는 기담과 괴담을 다룬 책으로「사회기담」「왕실기담」「선비기담」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위 얘기는「선비기담」에 등장하는 네번째 얘기다.
그중 현재로 치면 본격적으로 엘리트 코스에 들어선 성균관의 젊은 인재들을 사로잡은, 대체로 천편일률적인 연애소설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과거에 장원급제 하고 황제의 칭찬 속에 똑똑한 절세미녀와 축복받은 결혼식을 올리는 이라니, 음- 선비들의 로망이란 그런 것이군...
남녀를 막론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은 다 똑같은 것인지 나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중학생 때인데 시험 기간에 교과서 안에 연애소설을 숨기고 읽다가 그만 엄마한테 들켜버린 일이다.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예문관 선비들과 나의 차이점은 선비들은 다시는 연애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썼다는 것이고, 나는 몰래 읽던 소설로 먼지나게 맞았다는 것이다. 반면 정조와 엄마의 공통점은 사후 조치로 죄인으로부터 깊은 반성과 함께 다시는 연애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다는 것이 되겠다.
물론 추측이지만 아마 이후에도 선비들은 정조 몰래 연애소설을 읽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정조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줬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뭐 어찌 됐든, 나는 저 선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심으로.
이외 기억에 남은 건「사회기담」인데 이 책을 읽을 무렵 아주 드물게 무서운 꿈을 꾸고 새벽에 잠자리를 설쳤다. 나중에 생각해보니「사회기담」을 읽는 동안 느꼈던 공포가 무의식에 남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때로 상상이 만들어내는 막연한 이미지가 감각적이고 선명한 진짜 영상보다 더 현실적이고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제목이 '기담'이니만큼 재미있고, 기묘한 얘기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졸리는 책이었다. 수면제 대용으로 아주 건강한 처방이 되겠군 생각했을 정도. 서너 페이지 넘어갈 때쯤이면 예외없이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는다.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  

이 책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우습게도 책의 내용보다 책의 포장에 관한 것이다. 양장이 아닐 뿐더러 속표지가 충분히 예쁘고 훌륭한데, 나는 오히려 속표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굳이 거기에 겉표지를 또 둘러야 했을까. 가히 과대포장'의 시대라 할 만하다.

환상소설, 괴/기담, 추리소설 등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서 중독과 유사 증세를 보이게 한다.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되고, 다 읽기가 바쁘게 곧장 다음 소설을 찾아서 읽게 된다. 그렇지만 열광하는 시기가 지나면 또 그 뿐, 참 재미있었지, 하는 감각은 기억하지만 예전의 광(狂)을 다시 되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요즘 서점가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등의 일본에서 건너온 추리소설이나 밀리언셀러클럽의 목록에 선뜻 손이 안 가는 이유다. 하물며 그렇게 좋아하던 스티븐 킹조차도 시들해지는 걸 보면 말 다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킬링타임용으로 이만한 장르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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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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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적인 작가가 지적으로 써내려간 지적인 소설은 독자도 지적으로 만든다. 최소한 생각하게는 만든다.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이야기가 있는' 소설이다. 씨줄과 날줄을 엮듯 이야기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그렇지만 무질서하진 않다.
일제 강점기, 해방 직후, 80년 광주, 91년 서울이 무대인 이야기는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를 배경 음악으로 하고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바다를 헤엄치면서 한 시대를 공유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는다. 

'나'와 나의 여자친구 정민, 나의 할아버지, 정민의 외삼촌, '나'가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그들은 모두 자신을 우연적 존재라고 생각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서로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던 각자의 이야기들은 결국 그들의 존재 방식은 우연이었을지라도 존재 목적은 필연적이었다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소설의 본문에 "이 우주가 이처럼 광활한 까닭은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인류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라는 칼 세이건의 목소리를 언급한다. 영화《콘택트(contact)》역시 칼 세이건의 말을 빌어 "만약 이 우주에 우리 인간만 살고 있다면 그건 우주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 라는 대사가 등장했다. 결국 소설은 이 넓은 우주의 한 점에 우연찮게 모인 우리들은 "(인간은)외롭지만 동시에 외롭지 않은 존재" 라고 귀결된다.
내가 외롭지 않다면 그것은 어딘가에 나처럼 외로운 누군가가, 내 외로움을 이해해 줄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읽으면서 참 즐거웠던 소설이었음에도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앞 부분을 읽다가 부산에 다녀오는 바람에 흐름이 끊긴 책은 좀처럼 다시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손에 잡은 뒤부터는 잠을 미뤄가면서 읽었다.
『네가 누구든...』은 한 눈 팔지 않도록, 자신에게만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소설이다. 차분한 녹색 표지와 내가 좋아하는 타자체 제목, 조금 작은 판형까지 개인적으로 예쁜 책 베스트에 올렸다.

그때, 내가 누군지 소리치면서 왼손을 드는 내게 투쟁국장이 쇠파이프를 내리치던 그 순간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같은 시간,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여학생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은 영원히 내 기억에 남았다. -p.126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집,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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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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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김용철 변호사의『삼성을 생각한다』출간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조만간 절판되겠구나, 였다.
웃어야 할지, 나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예언처럼 떠도는 반응이 대체로 그랬다.
이 책의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는 2007년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 구입을 망설였다. 이런 분류의 책은 원래 내 취향이 아니다. 재미도 없고, 대개 기획인 경우가 많아서 소문난 잔치에 갔다 온 것 마냥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신간 정보를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한 얘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자가 원고를 출판해줄 곳을 찾아 여러 곳을 전전했다는 얘기, 주요 5대 일간지 모두 책 광고를 거부했다는 얘기...
개인 저작 출판을 공공연히 거부하고 막는 세상이라니, 요즘 시대에 이게 말이 되는가... 아니, 그전에 혹시 나는 '요즘 시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쯤되면 더 고민할 것도 없다. 이 책은 일단, 무조건, 사서, 읽어야 되는 거다.

책을 받은 것은 2월 초. 읽기 시작한 것은 중순 경. 다 읽은 것은 3월 초다. 완독하는데 한 열흘 쯤 걸린 것 같다.
대부분 하룻밤새 다 읽었다고 말하는 이 책이 내겐 쉽지 않았다. 나는 쉬엄쉬엄 읽었고 어떤 장은 더디게, 어떤 장은 닫았다가 다시 펼쳐서 읽은 것이 열흘이다. 그러고도 책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아 계속 미루었다.
(지금은 둘 다 그만 뒀지만)아는 동생이 법무부에 근무하고, 아는 선배가 김앤장에서 근무한 덕택에 간혹 관련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판타스틱한 얘기들을 듣다 보면 간혹 가십처럼 언론에서 터져나오는 얘기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고,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다름 아닌 저기구나 싶은 것이 바로 고위층 혹은 사회지도층으로 불리우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 김용철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아, 이 사람 그냥 보통 사람이구나, 였다.
그래서 울림이 더 남달랐던 것 같다.
나라면, 내 가족 중 누구였다면, 내 친구였다면…. 나는 물론 용기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 친구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말렸을 것이다.
그의 말, 그의 생각, 그의 진심을 의심하든 믿든, 무시하든 관심을 가지든, 비난하든 박수를 치든, 그건 모두 각자의 판단일 것이나 다만 한 가지, 나라면 '못 했을'도 아니고 '안 했을' 거다는 거.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저자의 용기에 빚을 짐을 느낀다.

- 불의한 양심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는 1부 첫 장의 제목이다.
이 한 줄이, 참……
아마 이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이 것,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가 아니었을까. 자꾸만 눈에 밟히는 이 간단한 한 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더듬게 한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을때 그에게 쏟아진 시선은 대부분 두 종류였는데, 그 하나는 '용기와 소신 있는 결단'이라는 박수였고, 다른 하나는 '결국 너도 똑같은 놈 아니더냐'는 비난이었다.
안타깝게도 박수 소리는 작았고 비난의 목소리는 컸다. 아니. 큰 것처럼 보였다.
주인 밑에서 그 녹을 먹은 주제에 이제 와서 주인을 문다, 는 세간의 시선은 말 그대로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양상이 되었고, 그가 말하고 싶어했던 진실의 무게를 서슴없이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 '야사'로만 기록될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저자가 자주 하는 얘기 중에는, '내 증언은 야사로밖에 안 남겠구나' 하는 걱정이 있다. 특검에서 심문을 받던 중에도 '기록으로 남겨달라' 요구했다는 부분이 자주 언급되는데, 법조인 경험이 있는 저자는 기록되는 것과 기록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제껏 쌓아온 자신의 거의 전부를 포기하고 준비한 자료와 증언이 기록으로 남지 않고 폐기될 것을 염려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편으론, 삼성 비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저자의 마지막 의지로도 읽힌다. 때로 어떤 진실은, 그것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분명한 사실은 더디기는 해도 언젠가는 그 시간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개인과 사회는 '기록'을 남길 책임이 있고 그것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당대 뿐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라도.

- 감히 주인을 물어?
드라마《추노》에는 양반 세상을 갈아 엎고 노비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노비당이 등장한다. 그런데 막상 중무장(?)을 하고 원수 같은 양반댁을 털러 간 노비들이 양반과 마주 서자 엉거주춤 우물쭈물 물러선다. 상투 틀고, 갓 쓰던 시절에만 존재할 것 같던 이 '노비근성'이, 뜻밖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내부고발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다. 현대에도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러한 노비근성의 생명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 삼성이 무너지면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가 망한다, 는 얘기는 부모님 세대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뜻밖에도 또래 젊은 사람들한테서도 심심찮게 이런 얘기를 듣는다. 도대체 그런 생각의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들 대부분은 "그래도 삼성 같은 기업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세계 경영을 부르짖던 거대 기업이 있었다. 바로 대우그룹이다. 재계 5대 그룹의 하나였던 대우그룹이 정리되는 것을 모두 지켜보고도 사람들은 삼성이 망하면 나라도 망할까 두려워 한다. 그들은 삼성과 대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참 순진하군"
책을 읽던 중에 정치, 경제에 관한한 나름 얘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큰 부딪침이 있었다. 삼성이 실패한 투자에 대한 얘기를 할 때였다. 친구는, 그러면 기업은 성공하는 투자만 해야 되는 것이냐, 고 강하게 반박했다. 친구는 거대 기업의 실패한 투자가 국민의 손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너 참 순진하구나" 비꼬고 말았는데, 물론 곧 이런 내 행동을 후회했지만, 실제로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참 순진하군'이었다.
기업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환율이 오르자 얼른 밀가루 가격을 올렸지만 이후 가격 인상의 원인인 환율이 내렸는데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밀가루 가격이 기업의 마인드를 잘 대변하고 있다.
기업이 투자를 해서 손해를 본다. 물론, 가능한 일이고 욕 먹을 일도 아니다. 친구의 표현처럼 오히려 기업의 도전 정신으로 칭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손해를 처리하는 방식인데, 기업은 대부분 그 손해를 소비자(자국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메꾼다. 간단한 얘기인데,
A는 사장이고, B는 직원이다.
A가 경영을 잘못 해서 손해를 본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A는 자기 회사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다.
B는 물가가 오르자 지금 월급으로는 살기가 힘들다고 A에게 월급 인상을 요구한다.
A는 B의 요구를 들어준다.
A는 월급 인상분의 손해를 메꾸기 위해 자사 제품의 가격을 올린다.
방법이 어떻든, 과정이 어떻든 기업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기업이 잘못 하고 있다" 하니, "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소리냐"고 핏대를 세우는 그들의 무조건적인 대기업 충성심이 감동적이다. 어려울 거 없다. 시선을 조금만 더 들면 된다. 그럼 손가락 말고 달이 보일 것이다. 자국의 산업을 이끄는 기업을 망가뜨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환경을 다시 보자는 얘기다. 그 환경에는 나와 내 가족의 미래도 있다.

- 하지만 현실은
며칠 전, 사용하던 삼성 제품이 고장을 일으켜 A/S센터에 갔다. A/S센터만 가봐도 안다. 삼성이 얼마나 특별한지. 휴게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차가 구비되어 있고, 컴퓨터와 TV와 책이 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잠시 후 직원이 직접 데리러 온다. 그리고 그 직원은 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수리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배웅 나와서 인사한다. 대접 받은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좋고, 삼성에 대한 호감도는 당연히 높이 저 높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 높이 만큼 내가 삼성을 소비할 때 이미 그 비용을 치렀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는다. 남는 것은 친절한 삼성,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 뿐...

- ......
일본과 미국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하듯 으레 서점에 들려 책 구경을 하고 책을 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우리나라가 겉표지부터 내지까지 책을 참 고급스럽게 꼼꼼하게 예쁘게 잘 만드는구나, 다.
그런 이유로, 배송 받은 박스에서『삼성을 생각한다』를 꺼내 들었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만한 가격에 양장이 아닌 것은 그렇다 치고, 바깥 커버를 벗겼더니 나타나는 내지 커버가 마치 마분지 같다. 순간 헐벗은 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만만치 않았다던 출판 과정이 중첩되어 기분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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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마차
김수현 지음 / 열매출판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1. 오랜만에 詩集이 읽고 싶어서 서점에 갔는데 드라마 작가로 더 유명한 김수현의 소설『겨울로 가는 마차』(이하, '겨울로')가 눈에 띄었다. 서서 몇 페이지 읽다가 구입. 시집은 M군이 골라준 백석詩集으로 구입.

2. 최근 몇 년간 읽은 로맨스소설에서 내가 만난 최고로 멋있는 남자주인공을 꼽으라면『겨울로』의 '박우섭'을 꼽겠다. 

3. 나는 말을 할 때, 표현을 할 때 미사여구를 아끼지 않는 버릇이 있다.
최고야, 제일 좋아, 정말 좋아... 아낌없이 최상급을 가져다 쓴다.
아주 오래 전 이런 내 말 버릇에 제동을 건 건 역시 M군이었다. 오늘은 좋지만 내일은 안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느냐는 거였다. 실제로 나의 최고와 제일과 정말은 그동안 여러번 바뀌었지만, 게중엔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도 물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말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박우섭에 대한 애정은 아마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멋있는 남자'에 대한 취향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만약 이 '멋있는 남자'에도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박우섭같은 남자가 아닐까 한다. - 참고로 영화에선,《라스트 모히칸》의 '호크아이(Hawkeye /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부동의 내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다. 

4. 이 소설은 내용 곳곳에서 보이는 몇 가지 흔적으로 보아 그리고 동명의 영화가 80년대 초반에 개봉했었던 걸 볼 때, 오래 전에 이미 출판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부터가 옛 냄새를 솔솔 풍기지 않는가. 물론 이야기 또한 신파와 통속 그 자체다. 하지만 뻔하디 뻔한 과정을 도는 롤러코스터에 독자를 끌어다 앉히는 것은 작가의 능력. 시청률 귀신이라는 작가는 그녀의 통속적인 세계 속에 시청자인 나를 잡아다 앉혔듯 독자인 나도 그렇게 만들었다.  

5. 금방이라도 나열할 수 있는 몇 개의 작품을 리스트에 올린 작가라면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자기복제의 혐의를 김수현 작가 역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공통적으로 변주하고 있는 요소를 꼽으라면 역시 캐릭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캐릭터들은 식상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예순이 넘은 이 노련한 작가는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있어 가히 발군의 감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6. 보수적이고 반듯하고 언뜻 마초적인 냄새도 풍기지만 사랑하는 여자앞에서는 굽힐 줄도 알고 부드러워질 줄도 아는 남자와, 더없이 신파적이고 청순가련형에다 쉽게 순응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 자존심을 가진 여자는 김수현식 로맨스에 빠져서는 안 될 요소인 동시에 김수현식 로맨스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김작가의 로맨스는 캐릭터에서 출발하기 때문.
다시 말해서 강하지만 유연한 남자와 약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여자는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편 역설적으로 김수현식 신파와 통속을 대중과 소통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들 캐릭터는 다소 구식이고 답답하지만 그런만큼 성실하고 정직하고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다. 한 마디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성인의 성숙한 연애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은 매력적이다. 이 점이 김수현 드라마의 힘은 스토리보다도 캐릭터에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스타가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김수현 드라마는 드라마속 캐릭터가 바로 스타다. 작가의 뚜렷한 스타일로 인해 몇 가지 면에서 계속 비판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작가 김수현은 국내의 어느 드라마 작가보다도 로맨스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로맨스를 로맨스이게 구현해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물론 드라마 시청과 독서의 집중도는 엄연히 다른 점이 있고 그래서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작가의 어법을 빌려 '쩍' 소리가 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 예로 이제는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몇 가지 소품들 그리고 부모님 세대에나 통할 것 같은 경직된 말투는 애교로 봐준다 쳐도 '흰 런닝, 흰 팬티'에 이르면 작가를 향한 원망의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 시대의, 그 시대를 위한, 그 시대에 의한 정서는 그것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후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 아닌가 관대해지기로 한다.
다만 완벽주의라고 소문난, 그래서 세간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드라마 대본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꼬장꼬장한 장인 정신이 책에도 발휘되어 오타와 표준문법, 편집등에 좀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해방前에 태어난, 국내 드라마 역사에 계속해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 노작가를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을 그리는 작가의 밑그림은 늘 감동 받는다. 고백하건데 그런 사심이 이 책에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일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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