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의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
존 파이퍼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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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우주의 창조주이고 그분이 감화하여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선물로 주신 책이다. 당신을 초대한다. 나와 함께 가자. 이보다 더 위대한 추구를 나는 알지 못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기독교의 성경은 진리인가? 어떻게 아는가?"(5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거짓이다. 둘 중에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 "세상의 창조주요 주인이요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은 '책'을 통해서"이며, "그것도 딱 하나의 책",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존 파이퍼 목사는 이것을 "아찔하고도 충격적인 주장"(390)이라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 불러 세우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빙성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이 진리임을 어떻게 아는가?" 이것이 상위 질문이라면 여기서 파생되는 하위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어떤 책인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진리이며 오류가 없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를 무오하게 담아냈는가?" "성경은 완전한 진리인가? 전체가 다 그런가?"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다른 모든 진리 주장의 기준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믿을 만한가?" 또한 성경이 완전한 진리라면, "성경을 신뢰할 만한 충분한 자체적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의 정당성과 견실한 기초는 무엇인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 논거가 무엇이기에 그것이 실제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존 파이퍼의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인지해야 할 것은, 이 질문과 답이 인류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문제라는 것이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는 절박한 질문이다. 달이 지구를 공전함을 어떻게 아는가?"나 "에이브러햄 링컨이 실존 인물이었음을 어떻게 아는가?"와는 다르다. 이 두 질문이 절박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을 믿는지 여부가 당신의 삶의 방식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무이다. 당신이 영원을 보낼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도 그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 성경의 가르침은 영생의 길을 보여 주고 현세를 살아가는 방식을 빚어낸다. 그러므로 성경이 진리를 가르치는지 여부를 아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178-179).


우리 시대 기독교 대표 지성이기도 한 존 파이퍼는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분명하게 증명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은혜로운 신앙서적이기보다, 정교한 논문처럼 읽힌다.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교육적 배경도 없고 역사적 연구에 투자할 시간도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가르침이 하나님의 신빙성 있는 말씀임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성경은 언제든지 지적인 도전을 반긴다. "성경이라는 저작물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고 학문적이고 역사적인 논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 파이퍼는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런 논증을 접하기가 힘들며 그중에는 아예 문자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다(272). "무지한 사람들"도 복음이 진리임을 정당하게 확신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이라면, 핵심 논지는 이것이다. "인간의 사고가 성경의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니 곧 그 진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다"(20).


<존 파이퍼의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특별한 영광이 성경을 확증하며, 성경 속에 그리고 성경을 통해 빛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논리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가장 무지한 사람이든 가장 박식한 사람이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 속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아야만 확신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고도 감동적으로 풀어준다. 


이 책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지적 탐구를 즐기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도전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질문은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절박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신앙이든 비신앙인이든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경, 이것이 정말 그러한가 일 생에 한 번은 지적으로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고, 이 책은 그 지적 탐구의 길을 가장 잘 안내해줄 책이라 확신한다. 이것은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책을) 덮어놓고' 믿는 믿음은 좋은 믿음이 아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아무런 회의나 의문 없이 덮어 놓고 믿는 믿음의 최고의 믿음이요, 순수한 믿음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존 파이퍼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믿음이란 미지의 세계에 들어서는 용감무쌍한 걸음이 아니라 스스로 입증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겸손히 바라보는 즐거움이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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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 아버지 한국대표시인 49인의 테마시집
고두현 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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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김종해


대티고개 너머 구덕산에서

아버지가 지게로 지고 오신 나뭇단 꼭대기에

진달래꽃이 꽂혀 있다

젊은 아버지가 장난삼아 지게 위에 쓴 시(詩)는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진달래꽃만 곁에 두고

솔가지를 꺾어 아궁이에 넣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어머니의 얼굴 위에

황홀하고 발그레한 무늬를 수놓았다

시보다 아름다운 무늬가

젊은 어머니를 뜨겁게 했다

물은 설설 끓고 가마솥 위에 떡시루

김은 하얗게 장지문을 적시는데

떡은 다 익었다, 떡은 다 익었다,

절구통에 떡 칠 일 빼놓고도

젊은 아버지는 할 일이 많으시다

따뜻한 봄날

부엌강아지 같은 어린 아들이

할 일 많은 아버지 옷깃에 

자꾸 걸치적거린다




출근길에 가끔, 이른 아침부터 편의점 앞에 삼삼오오 앉아 있는 청년들을 봅니다.

아침부터 나아온 것인지, 밤새도록 앉아 있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건네는 말을 토막토막 들어보면 대리운전 일을 하며 무리를 지은 듯합니다.

세상에 의지할 것은 친구밖에 없다는 듯,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그들이지만,

또 무엇에 수틀리면 서로를 죽일 듯이 주먹질을 하고, 쌍욕을 해댑니다.

그 청춘들의 아침이 고단해 보이는 건, 내 마음 탓일 겁니다.


나이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고단한 청춘들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아버지'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보는 날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것이 가난밖에 없을지라도

세상 가장 값진 보물처럼 자신을 귀하게 여겨주는 아버지를 가졌다면.

어느 생이든 아버지라는 이름은 참으로 간절한 것이기에, 

그만큼 미움도 크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없이 세상에 태어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데도,

세상에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는 인생은 왜 그리 또 많은지. 

세상에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이 생각보다 많은 건,

늙어버린 아버지에게도 여전히 아버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걸,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습니다. 

늙은 아버지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들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이름 "아버지"를 불러보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49인의 노래입니다.


대부분의 시인에게 아버지는 

""그대들은 이제 고아(孤兒)네"를 읊조리며 / 하늘 가는 길" 이별한지 오래이고.

"사라진 별똥별처럼 몇 줄 언어의 그물에 걸린 그 아득한 기억"이 되었지만,

"내 몸 마디마디 뿌리내린 흔적을 지울 수가 없으니 그곳이 내가 쉴 자리"로 남아 계십니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이름에 그리움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아버지와 함께한 나날은 그야말로 부정교합(不正咬合의 세월이었다"고 고백하는 시인도 있고,

"사춘기 이후로 오랫동안 불화한" 아버지를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은 뒤에야 불러보는 시인도 있고,

"아버지를 벗어나고 싶어 많은 방황을" 한 후에야 다시 아버지에 선 시인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옛날 사람,

아버지, 아버지, 나는 자꾸 늙어요"(장석주, 33).


이제 아버지가 된 아들은, 젋은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은 늙은 아들은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 속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버지와 같은 종점을 향해 가면서 깨닫습니다.

아버지도 하나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생인들 두껍게 간이 배지 않은 게 있으랴"(정한용, 35).


성실했지만 무능한 아버지, 정확하고 재미없었던 당신이었지만,

아버지로 인해 나 지금 살고 있으며, 
미워했어도, 사랑했어도, 그리워했어도, 잊었어도.
아버지는 여전히 내 안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요.

<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는 
그렇게 통속적인 그리움을 노래하며, 통속적인 회환을 담았습니다.
통속적일 수밖에 없지요.
통속적이어서 더 슬픈 걸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그 어떤 시어보다, 그 어떤 사연보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이 한 줄 문장이었습니다.
"내 어릴 때 떠나신 내 아버지. 이 별에서 딱 열 해를 같이 지냈다"(정일근, 136).
어떤 아버지라도 그냥 곁에 있어주시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 아닐까요.
일찍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들보다 더 가엾은 생은 없기에.




세상에서 제일 아픈 이름


이재무


떠올릴 때마다 황경막 근처로

회한의 피가 몰려오는 듯

가슴 위아래가 까닭 없이 묵직해지고

답답해지는, 살았을 적엔 살붙이로

따뜻한 정 나누지 못했던,

일자무식에다가 술주정 심해

가급적 그 언저리에도 가고 싶지 않았던,

무능하고 고지식해서 오직 당신의 육체만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야 했던,

우여곡절과 파란만장과 요철의 생

마감할 때까지 태어나 자란 곳

벗어나지 못했던,

내게 가난과 다혈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온몸을 필기도구 삼아 뜨겁게,

미완의 두꺼운 책 쓰다 가신

세상에서 제일 아픈 이름

아버지!

당신에게 진 빚 다 갚지 못한 나는

크게 병들었는데 환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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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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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이 묻어 있지 않도록 깨끗이 닦은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의 시작. 세계가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9).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아무데도 갈 데가 없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그 순간의 '공포'를 아십니까? 딱히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는 우리 몸은 그 공포에 짓눌려 아예 마비되어 버리고 말지요.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정확히 다음 날, 저를 덮쳤던 그 아침의 공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세계의 '일개' 부품으로 소모되는 우리의 작은 인생을 멸시하지만,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함께 도는 부품이 되지 못하고 혼자만 덩그러니 떨궈졌을 때 맞닥뜨리는 고통은 차라리 죽은 자보다 못한 인생일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아니 필사적으로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으로 스스로 편입해 들어갑니다. 


세상에는 '평균'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평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평균적인 인생, 보통 인생, 정상적인 인생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평균적인 생각입니다. 평균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인생에 "흙발로 쳐들어와"(70) 평균적인 인생을 살라며 성가시게 굴고 제멋대로 참견을 하지요.


<편의점 인간>은 평균적 인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편의점 알바생의 이야기입니다. 서른여섯 살의 '후루쿠라'는 취직도 하지 않고, "집요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같은 가게(편의점)에서 18년 째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인간>이라는 소설로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도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후루쿠라'가 편의점 일에 그토록 필사적인 이유는, 어릴 때부터 "어쩐지 좀 이상해 보이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지치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됩니다"(98). 자신을 걱정하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고, '편의점'은 그녀가 사회에 편입해들어가는 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편의점 인간>은 세상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부품 인생의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 작품이 "아쿠타가와 역사상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편의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은 후루쿠라에게 유일하게 안도감을 주는 세상입니다. 그곳에서는 대학생이든, 주부이든, 밴드를 하는 젊은 남자든 같은 제복을 입고 같은 메뉴얼을 따르는 "점원이라는 균일한 생물"(23)로 다시 만들어집니다. 18년 동안이나 한 가게에서 일한 후루쿠라에게 편의점은 예측 가능한 세상이고, 대응 가능한 세상이고,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인 세계"(41)이기에, 편의점 안에서만은 보통의 인간이라고 느끼며 '안도'합니다.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30). 손님의 미세한 몸짓이나 시선을 자동으로 알아차리고, 눈과 귀는 손님의 작은 움직임이나 의사를 포착하는 중요한 센서가 되고, 내일 아침에도 편의점에서 일하기 위해 잠을 자고, 건강을 관리하면서 후루크라는 그렇게 편의점과 연결된 "편의점 인간"이 되어 갔습니다. 


부품은 언제든 교체될 수 있고, 오랜 세월 한 가지 기능에 길들여진 부품은 교체된 후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내 몸은 편의점의 것이었다. 그런 처지에서 해방되자,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170).


보통 인생이 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지만, 18년이 넘도록 정규직 취직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편의점 알바만 계속하고 있는 '후루쿠라'는 평균적 인생이 되라고 부추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갑자기 편의점을 그만두게 됩니다. 하지만 편의점 인간이 되어버린 그녀가 편의점을 그만 두는 것은 곧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잃어버린 후루쿠라는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른 채,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무엇을 기준으로 자기 몸을 움직이면 좋을 지도 알 수 없기 되어버리고 맙니다.


어쩌면 '편의점 인간'이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자신의 빈틈이 간단하게 메워져 버렸다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18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유능하게 일했던 점원이 갑자기 편의점을 그만 두었는데도, 가게의 세포가 또 하나 교체되었을 뿐, 편의점은 너무도 '정상적'으로 잘 돌아갑니다.



당신의 세상은 얼마나 넓은가요?  '편의점 인간'에게는 편의점이라는 작은 상자 같은 공간이 우주의 전부였습니다. 모든 리듬은 편의점 시계에 맞추어져 있고, 매뉴얼대로 움직이면 안전한 세상. 그러나 규칙을 깨는 일은 용납되지 않으며, 이물질이 되면 배제를 당하고, 간단하게 교체될 수밖에 없는, 편의점을 떠나서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기능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세상. 


요즘 우리는 '글로벌 세상'에서 산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 '편의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우리에게 '박사님'은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박사'는 자기 전공(자기 연구주제)밖에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넓다고 하지만 우리가 정상적인 인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곳은, 내가 아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작은 일터뿐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세상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산골 소녀처럼, 우리는 익숙한 일자리에서 떨궈지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유능한 부품 인생일수록 퇴직과 노년은 더 큰 고통으로 덮쳐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의점을 떠나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글로벌한 세상은 훨씬 더 많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거대한 정글일 뿐입니다.


세계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 필사적으로 편입해들어갈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무능한 일탈자로 남을 것인가? 어쩌면 18년째 편의점 알바를 계속 하며 글을 쓴다는 작가가, "우습고, 귀엽고, 대담하고, 치밀해" 보이는 그녀의 이 작품이 서늘하도록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필사적인 사람도, 저항하는 사람도, 무능한 일탈자도 결국은 이 거대한 세계에서 '편의점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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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골목에서 만나자 - 서울 362개 핫 플레이스
SK플래닛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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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골목에서 만나 색다르게 놀아보자!



골목대장이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입니다. 어릴 적 못말리는 골목대장이었거든요. 숨바꼭질, 다방구, 얼음 땡,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외치며 뛰어다니지 않은 동네 골목이 없고, 그렇게 동네에서 놀다 지치면 길 찾기 놀이를 한다며 새로운 길 탐험에 나서기도 했고, 그러다 새로운 '놀이 터'가 나타나면 원정대를 만들어 이웃 동네 놀이터까지 평정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면 그곳이 어디이든 우리에겐 호기심 천국이었고, 그 자체로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또다시 '골목대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 듯합니다. 그것도 서울 골목 전체를 휘어잡는 골목대장이요! 타이틀이 어마어마하죠? ^^


 

<우리, 골목에서 만나자>는 SK플래닛이 "서울의 골목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아날로그적 감성에 공감하고, 청춘의 열정에 호응하며, 골목의 소상공인들에게는 응원이 되어, 세상을 연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낸 책입니다. 서울 골목을 가이드할 수 있는 정보를 담았다는 의미에서 '서울 여행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청춘의 열기 넘치는 서울의 핫 스폿을 취재했다는 의미에서 한 편의 '서울 골목 르뽀'(르포르타주)라고 볼 수도 있고, 똑같은 일상이지만 '지금 가장 뜨거운 서울'과 '당신만 몰랐던 서울의 골목'을 즐길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신개념 서울 놀이책'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한 권처럼 보이는 이 책은 1권(지금 가장 뜨거운 서울)과 2권(당신만 몰랐던 서울의 골목)으로 분권하여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책 한 권 가볍게 들고 서울 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어디든 즐거운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곳에 소개된 서울의 핫 스폿이 누군가에는 이미 아지트일 수도 있고, 새로울 것 없는 낯익은 일상일 수도 있고, 몰래 옛사랑의 추억을 감추어둔 애틋한 공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낯익은 곳은 낯익어서 좋고, 낯선 곳은 낯설어서 좋은 그런 만남을 주선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추억은 더욱 짙어지고, 새로운 추억은 또 쌓일 테니까요.


골목별로 먹을거리, 즐길거리, 볼거리가 잘 정리되어 있어 따로 정보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소개된 핫 스폿을 그대로 따라가도 좋고, 취향대로 골라 즐겨도 좋고, 나만의 핫 스폿을 추가해도 좋습니다. 이 책을 힌트로 다른 분위기를 꾸며보아도 좋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재기발랄 청춘들의 젊은 감각"을 담았습니다.







 


 




이 책으로 서로의 궁합(?)도 맞춰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낯선 골목부터 찾는 사람인지, 추억이 있는 골목부터 찾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제일 먼저 찾아가 만나고 싶은 골목은 '정동길', 그리고 신림동 '순대거리'와 '녹두거리'입니다. '정동길'은 혼자 조용히 다녀오고 싶은 길이고, 순대거리와 녹두거리는 친구들을 다 불러 왁자지껄 떠들고 다니고 싶은 길입니다. 둘 다 추억이 서린 곳인데, 정동길은 낙엽 쌓이는 가을, 눈 내리는 겨울의 추억이 쌓인 곳이고, 순대거리와 녹두거리는 열병 같은 사춘기를 보낸 곳입니다(공부를 잘 했으면 청춘을 몽땅 그곳에서 보낼 수 있었겠지만요^^;;). 


정동길은 각별하게 지냈던 선배 언니랑 '공연'을 보기 위해 자주 찾았었는데, 노오란 낙엽을 밟으며 하릴 없이 걷던 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순대거리와 녹두거리는 십대 시절 아지트와 같았던 거리입니다. 동생은 한 번씩 일부러 순대거리를 찾아 그곳의 순대를 포장해오기도 하고, 또 녹두거리에는 아직도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어 고향처럼 느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소개된 '핫스폿'은 한 번도 가본적이 없다는 것이 포인트!







 


 



저를 포함, 매일 어떻게 하면 잘 놀까, 즐겁게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좋은 시절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모든 고민들이 거대한 세상의 부품처럼 존재하는 실존의 절망을 견디고자 하는 망각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요. 여하튼, 소박하지만 일상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잘 사는 것'이니까요. 가까이에 있어서 더 좋은 서울 골목, 이 책을 지도 삼아 그곳의 대장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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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섹시해지는 추리 퀴즈 1단계 섹시한 두뇌계발 시리즈 2
팀 데도풀로스 지음, 박미영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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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추리지수를 높여주는 두뇌 게임!



<뇌가 섹시해지는 추리퀴즈>는 추리소설처럼 즐길 수 있는 두뇌 게임입니다.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총 세 명의 탐정이 등장하여 사건을 풀어갑니다. 조류협회 회원이며 홍차 애호가이자 미스터리에 엄청난 열정을 보이는 추리광 메리 밀러, 관찰력이 뛰어나며 사소한 것에서도 단서를 잘 찾아내는 건축가 올리버 제임스, 사건 해결률이 높이 명성이 높은 경감 '패팅턴' 파나키 경감이 그 주인공입니다. "메리 밀러"와 "올리버 제임스"는 본격적인 탐정은 아니지만 특기를 살려 주변 인물을 돕습니다. 


<뇌가 섹시해지는 추리퀴즈>는 초급 단계와 고급 단계가 있는데, 이 책은 '초급 단계'(1단계)입니다. 짧은 이야기라 등장하는 인물마다 "별로 이야기할 게 없다"고 하고, 또 독자들도 별로 들은 이야기가 없는 듯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짧은 진술 속에 분명한 허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초급 단계답게 정답을 공개하기 전에 단서가 될만한 '힌트' 단어까지 제공합니다. 


맛보기로 문제 하나를 풀어볼까요?

제임스 힐린스는 작은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돌아간 후, 부엌 메이드 헤일리 존슨이 식품식에서 고액권을 자기 지갑에 넣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메이드는 누군가 자기 쟁반에 놓은 책의 69쪽과 70쪽 사이에 지폐가 끼어 있었고, 그건 필시 어느 신사분이 부인 눈에 띄지 않게 자기를 배려해주느라 그런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멜리 밀러는 그것이 훔친 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메리 밀러는 어떻게 훔친 돈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힌트는 책입니다.)


쉽게 정답을 맞추셨나요? 저자가 공개하는 해답은 이것입니다. 

"책은 첫 번째 낱장의 앞면에서부터 페이지 번호를 순서대로 매기기 때문에 69과 70쪽은 같은 종이의 앞뒷면이 된다"는 것입니다(92-97).



이 책의 추리 퀴즈를 풀려면, 위의 경우와 같이 책에 관한(?) 상식, "AD 302라는 연도 표기가 왜 오류인지" 알아볼 수 있는 역사 지식, "영어에서 가장 흔하게 철자가 틀리는 단어 100개"가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는 영어 수준, "구리는 불꽃을 튀기지 않는다"는 화학 상식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건을 주의 깊에 읽고 용의자들의 진술이나 정황을 잘 살펴보면 '단서'를 금방 알 수 있는 수준입니다. 1편부터 37편까지 같은 수준의 추리 퀴즈(두뇌 게임)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나중엔 공식처럼 허점이 훤히 드러나보일 정도입니다. 이 책은 초급 단계의 추리 퀴즈가 반복되기 때문에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초급 단계 수준은 확실히 마스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라면 바로 고급 단계로 직행하시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영국 추리 퀴즈의 거장이라 불린다는 저자는 이렇게 확언합니다. "매일 퀴즈나 퍼즐을 풀면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진짜 도움이 된다"(프롤로그 中에서). 이 책은 그 퀴즈나 퍼즐을 굉장히 즐거운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두뇌게임입니다. 무엇보다 추리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지요. 추리 소설처럼 재밌게 읽으면서, 추리에 참여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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