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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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226).



우 박정민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생긴 것은 영화 <동주> 인터뷰를 보고 나서입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구) 남친으로 나왔을 때도, <전설의 주먹>에서 황정민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을 때도 배우 박정민은 낯은 익은데 잘은 모르겠는 그런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동주> 인터뷰에서 '송몽규'를 연기하기 위해 송몽규의 옛집과 묘소가 있는 용정을 자비로 다녀왔다고 수줍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무엇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들끓지 않는 열정이었습니다. 어쩌면 들끓지 않아서 더 매섭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동주>를 본 것이 그 인터뷰를 보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박정민이 곧 송몽규였고 송몽규가 곧 박정민이었던, 허공의 먼지까지도 한 편의 시어 같았던 흑백영상이 실존인물뿐 아니라 그 영화에 나온 사람들,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까지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 내게,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말입니다.


<쓸 만한 인간>은 글을 한번 써보라는 <topclass>(잡지사)의 제안에, "아버지가 주는 돈 말고 내 돈으로 PC방을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결과물입니다. 배우 박정민의 숨겨진(!) 글솜씨를 알아본 건 그 잡지사에 근무했던, 지금은 TV조선으로 자리를 옮긴 박소영 기자라고 합니다. "저는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믿어요. 박정민을 좋아하는 분들이 칼럼을 통해 박정민을 좀 더 잘 알게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186). 싸이월드만 보고 탁월한 글쟁이를 알아보는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서, 어쩌면 배우 박정민의 진자도 먼저 알아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 바람대로 그의 글을 통해 배우 박정민을 더 알게 됐고, 더 좋아하게 되었으니까요.


책을 읽으며 배우 '박원상'이 누구인지 찾아보았고(죄송해요. 이번 기회에 성함을 확실하게 외웠습니다!), 연기를 위해 그가 중퇴한 명문대는 어디인지 찾아보았고(와우~ 고려대!), 그의 벨소리이기도 하다는 Des'ree(데즈레)의 'You gotta be'(유가다비)라는 노래를 찾아듣기도 했습니다. 아래와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기도 했고(실제로 밑줄을 그은 문장은 이보다 훨씬 많으며!), 영화 <오피스>를 꼭 챙겨보려고 메모를 해두기도 했습니다.



글을 말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말을 글로 옮기고 싶어졌다(저자의 말 中에서).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지찔했었다(70).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의외로 잘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65).
모두가 강팀에 속해 있을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의 팀을 강팀으로 만들 수는 있을 거다(145).
모르는 것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235).



<쓸 만한 인간>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학창시절 박정민은 영화 <피 끓는 청춘>에서 그가 맡았던 '황규'와 가까워 보입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지만, 진지함 속에 개구진 모습이 있고, 개구진 모습 속에 또 진지한 구석이 있는, 바닥까지 절망했다가도 또 튕겨오를 줄 아는, 같이 여행 다니면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절대 같이 여행 가자고 하지 않을,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그런 남자라고나 할까요.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공부는 잘하고, 찌질한가 싶은데 또 꽤 도전적이고, 진중한 구석도 있지만 대체로 웃깁니다! 뭐 이런 식으로!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면 큰어머니들이 "우리 정민이는 인물이 훤해. 잘생겨서 좋겠다"라고 습관처럼 그 실언들을 내뱉지만 않으셨어도 본인은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솔직히 정민이가 잘 생긴 건 아니지. 연기파지 연기파"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회피 스킬 +1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68).



<쓸 만한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청춘들에게(나이와 상관 없이 청춘의 피가 끓는 모든 이에게) 위로를 보내는 책입니다. 대단한 그 누군가가 대단한 교훈을 남기며 보통 사람들을 기죽이는 그런 위로가 아니라,  소소한 삶의 경험들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그런 위로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험들까지. 



살고는 있구나. 굉장히 의외지만 다들 살아있긴 하구나. 죽지 못해 살더라도 살아는 있구나. ... 살아있다는 건 경험 속에 있다는 거다. 나는 지금 노트북에 묻은 짜장면 국물을 한 달 동안 지우지 않으면 결국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난 맨날 경험해. 경험쟁이야. 아무튼 경험하다 보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다. 새롭게 배우기도 하고 적응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괜찮아지는 것일 테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생각지도 못하게 당신 주변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 주변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놀라운 일이다. 굉장히 의외다. 살아있을 줄 몰랐는데, 살아있다는 거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그냥, 고마워하면 된다.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갑자기 보고 싶어졌을 때 볼 수는 있게 살아준 당신이 참 고맙다, 라고 생각하자는 거다(63-65).


이 책을 읽고 처음엔 배우 박정민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습니다(서평을 빙자하여). 진심으로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로 오랫만에 발동한 팬심입니다. 글을 보고 좋아진 사람은 헤어나올 길이 없으니, 출연하는 작품마다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겠다는 약속을 여기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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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지도로 읽는다
라이프사이언스 지음, 노경아 옮김 / 이다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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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인류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다. 종교는 세상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4).



한국은 다종교 국가입니다. 다종교 사회는 기본적으로 종교 간 갈등과 마찰을 야기하는 기틀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종교 상황에서도 무력적 충돌이나 두드러진 분쟁 없이 비교적(!) 조화로운 공존의 모습을 보입니다. 종교의 자유와 함께 종교 선택의 자유도 보장되어 있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종교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종교가 있는데도 가족 간에는 높은 종교일치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우리 마을에, 내 옆집에 어떤 종교를 가진 이웃이 살든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유독 가족 내에서는 종교 갈등 양상을 보입니다. 그 원인이 한국적 가족주의에 있다는 논문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족주의의 전통은 가족의 일체감을 강조하여 가족의 종교적 통일성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 가족 내 종교 갈등이 제 논문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종교 갈등과 분쟁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분쟁만 보아도 종교갈등은 세계평화로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지도로 읽는"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은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현상 뒤에는 대개 '종교'가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에 따라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지고, 세계 역사를 보는 관점의 깊이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종교를 공부하는 것은 세계사의 흐름뿐 아니라, 세상사의 흐름까지 같이 읽어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은 "종교지도"를 중심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5대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대교, 힌두교)의 기본적인 특징(발상지, 창시자, 핵심 교리, 경전, 성지, 교파 등)뿐 아니라, 세계 뉴스, 세계 경제, 세계 분쟁, 종교 상식까지 두루 통찰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책은 첫 페이지부터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지도를 보면 비가 적은 중동의 건조한 지역에서 일신교가, 비가 많이 내리는 인도 동쪽의 온난 다습한 지역에서 다신교가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왜 건조한 지역에서 일신교가, 온난하고 다습한 지역에서는 다신교가 생겨났을까?"(15-16) 저자가 제시하는 통찰은 이것입니다. "기온이 높고 건조하며 물을 구하기도 어려워, 살아남으려면 하나로 똘똘 뭉쳐 혹독한 자연과 싸워야만 했다. 그래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렇게 집단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일신 신앙이 싹튼 것이다. 한편 온난 다습한 지역에서는 자연환경의 혜택으로 인해 적은 수의 사람만 모여도 자립해서 살 수가 있다. 생존하기 위해 하나의 신을 받들며 일치단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마다 다른 신을 믿는 다신교가 생겨났다"(16). 따라서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상지의 지역적 특성, 지리적 환경, 구성원 성격 등을 고려해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종교지도"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


이처럼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은 지구촌의 주요 이슈의 뿌리에 종교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주며, 흥미로운 상식도 많이 제공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선거 운동에서는 어떤 후보든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초대형 교회부터 순회하며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질 정도"(84)인데, 이처럼 "바이블 벨트"라 불리는 개신교(복음파) 세력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또 터키가 EU에 가입할 수 없는 이유는 종교 때문이라는 것,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의 패권은 대부분 기독교, 그중에서 개신교 국가들이 쥐게 되었는데, 앞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중에는 개신교 국가가 거의 없다는 것, 오일 머니가 관광사업과 금융 사업에 투자되고 있다는 것(우리나라에도 이슬람 자본이 거세게!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IT 산업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무너뜨릴 가능성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나는 무교이다, 무신론자이다"라고 생각하며, 종교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를 둘러싼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뿌리에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극렬 반대하는 것이 '기독교' 세력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동성애나 동성 결혼에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종교는 '이슬람교'라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기독교도가 대다수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231)임을 지적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분쟁 형태로 나타나 세계를 요란하게 하지만, 사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말 뿌리까지 내려가면) 기독교 신앙에 뿌리는 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은 사실 완전히 이슈를 꺼내든 책은 아닙니다. 상식 수준의 시사 이슈를 정리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종교에 대한 이런 상식이 종교인들의 내면과 삶 안에 일으키는 '역동'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5대 종교를 굉장히 넓은 시각에서 통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책입니다. 국제정세에 대한 상식을 넓히는 측면에서도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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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하고 싶다 - 가슴 설레는 연애에서 아름다운 결혼까지
매트 챈들러.제러드 윌슨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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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결혼생활은 전혀 갈등 없이 행복한 날만 펼쳐진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관념이다. 많은 커플이 이렇게 현실을 전혀 모른 채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가 지독한 갈등의 연속을 경험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아무런 문제없이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부부가 헛된 기대와 환멸 속에서 살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두 부부가 결혼생활을 통해 서로에게 더 솔직해지고 그분을 더 깊이 의지하게 되기를 원하신다"(192).



후배 중 한 명은 선교단체 훈련 중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다. 후배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 날에 어떤 형제가 후배를 찾아오리라는 예고를 들었고, 형제 안에서 안식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도 주셨다고 한다. 정확히 그날 한 형제가 후배를 찾아왔고, 둘은 하나님의 응답을 강하게 확신하며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후배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형제 안에서 안식하기보다 다투고 상처받는 날이 더 많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 있어도 결혼, 어렵다.


결혼을 앞둔 크리스천 젊음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하나님의 응답(뜻)을 구한다. 그런데 그 응답이라는 것이 이 형제가, 또는 이 자매가 하나님께서 짝지워주신 그 내 반쪽이 맞는지, 단순히 "Yes or No"를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사람의 결합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이나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명을 묻는 커플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또 어떤 청년은 교회에서 배우자를 만나기가 더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세상 사람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외모, 학벌, 집안, 능력, 재력 등)에 신앙도 좋아야 한다는 조건까지 하나 더 추가되기 때문이란다. 


우리 삶의 많은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그러져 있지만, 남녀관계와 연애, 결혼만큼 어그러져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결혼, 하고 싶다>는 목회 현장에서 결혼을 앞둔 커플과 결혼한 부부들을 대상으로 수천 시간의 상담을 진행한 목회자가 "남녀관계와 성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책이다. 저자는 남녀관계, 특히 결혼 문제를 푸는 비밀은 바로 하나님께 가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결혼을 설계하시고 만드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보다 누가 결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겠는가! 더 복된 소식은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결혼생활을 도우신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말이다.


<결혼, 하고 싶다>는 '아가서'를 통해 첫 만남(끌림)에서부터 데이트(연애), 구혼, 결혼식의 과정, 친밀함(성), 갈등, 부부 사랑, 함께 늙어가는 삶까지의 과정을 살피며 성경적 교훈을 나눈다. 성경 안에 이처럼 로맨틱한 사랑과 결혼, 성에 관한 노골적인 말씀이 들어 있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랄 지체들이 많을 것 같다. "그것은 성이라는 주제가 아가서를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98). (소그룹으로 읽고 나눔의 시간을 가지면 엄청 재밌어 할 듯). '결혼예비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신혼부부는 확실히 서로를 이해하는 깊이가 다르다는 걸 옆에서 많이 지켜봤다. 배우자를 찾으려 하는 청년들은 물론,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배우자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참 얄궃다. 모든 설렘과 두근거림이 바로 거기에 있는 데 말이다. "그 어떤 이성도 당신을 완전하게 해 줄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배우자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마라"(119). 그런데 이상형을 꿈꾸며 기대에 부풀었을 때보다 결혼생활은 어려운 것이며 100% 완벽한 배우자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지금, 결혼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생긴다. 아이를 낳지만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우리 모두 '결혼'에 대해 배워야 할 필요를 느낀다. 배우면 배울수록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도 하지만 참으로 신비로우며 복되고 영광스러운 사명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우리 함께 결혼이라는 불가해의 신비를 즐기자. 그리고 모든 영광을 결혼의 저자께 돌려드리자"(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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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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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일과 밥에 붙들려 꽃 지는 줄도 모르는 나에게 다른 세계로 향하는 출구를 열어주었다"(10).


시인도 일과 밥에 붙들려 꽃 지는 줄도 몰랐다는데 저 같이 평범한 소시민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늘 속으로 되내였지요. 이 일만 끝나면 나도 꽃보러 가야지. 그렇게 봄, 여름 보내고 어느 새 또 가을입니다. 이 가난한 소시민은 여전히 '지금 하고 있는 바쁜 일만 끝나면 나도 가을 속으로 들어가야지' 공허한 결심만 해대고 있습니다. 가을이 가버릴까 조바심치며 말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습니다. <다시, 쉬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라는 책 제목을 보고, 시인이 나를 찾는구나 싶으면서도 망설였지요. 하루 종일 앉아서 보내는 책상, 그 달력 안에 더 들어갈 여백도 없이 해야 할 일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숨은 쉬고 살자, 그래도 숨통은 트이게 해주어야지 하는 오기로 할 일 위에 이 책 읽기를 보탰습니다. 




"현실에서 나는 여전히 돈과 일과 힘 있는 손이 쥐고 흔드는 대로 휘둘렸으며, 순하게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어수룩 하게 당했으며, 아무리 달려도 생활은 거기서 거기였으며, 꽤 달려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힘 있는 손아귀에 뒷덜미가 잡혀 있었다"(10).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는 시집이면서 동시에 산문집이기도 합니다. 시인이 시를 읽어주는 산문집이라 시도 있고, 감상도 있고, 시론도 있고, 생각도 있고, 이야기도 있습니다. 시를 들고, 이야기를 들고 나선 시인이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밥에 붙들린 사람들, 밥을 위해 삶과 현실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한 단어로 '직장인'이라고 해도 되는 것을, '직장인'이라고 발음을 하려니 외계어처럼 어색하고 생소해지는 이유는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 시의 세계에 잠겨 있다 현실계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시인은 이들을 찾아 시로 숨 쉬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저는 '시 호흡법'이라고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근하는 전철에서 이 책을 읽었지요. 퇴근 후 읽으면 폭식을 하듯 한꺼번에 다 읽어버릴까봐 머리를 좀 쓴 것입니다. 시를 읽는 동안 참 행복했다고 고백하고 싶어졌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다 보면 무례한 몸짓 하나에도 확 짜증이 솟구치고, 버릇 없이 밀치고 가는 학생 뒤통수에 대고 조용히 욕을 한 적도 많았는데, 시를 읽는 동안에는 안 그랬다지요. 시를 읽어서일까요? 어느샌가 마음이 순해졌더라고요. 짜증대신 혼자 가만히 미소 지으며 이렇게 계속 넉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답니다. 


이것은 살육과 잔혹 행위가 없는 전쟁.

땀방울과 질주, 우연들의 날뜀,

궁극의 평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축구, 장석주


세상 모든 전쟁도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총칼이 없는 싸움. "땀방울과 질주"가 무기인 싸움(130).


이런 시를 읽은 마음이 어떻게 순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를 읽으며 처음으로 해본 생각은 시를 읽는 건 세월을 읽는 시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들어가는 것이 좋은 딱 한 가지 이유를 찾았습니다. 세월은 시를 담는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그녀는 소리 없이 산소 호스를 뽑고 침대를 내려가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문 쪽으로 갔다 인기척에 놀란 내가 억지로 그녀를 데려와 다시 침대에 뉘며 물었다

- 엄마 어디 가시는 거예요?

- 어딜 가긴, 부엌에 가지. 빨리 밥을 지어야지

- 아이구 엄마두 여긴 병원이에요 부엌은 없어요

- 무슨 소리냐 부엌이 없다니 그럼 넌 뭘로 도시락을 싸가고 너희 아버진 어떻게 아침을 드시니?

- 엄만 지금 아파요. 이젠 밥 따윈 안 해도 된다구요!

- 큰일날 소리! 아버지 깨시기 전에 서둘러야지

- 엄마! 여긴 병원이라구요 부엌은 없어요!

- 얘야, 세상에! 부엌이 없는 곳이 어디 있니? 어디나 부엌은 있지 저기 보렴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비스듬히 열렸잖니

... 

엄마는 입술이 점점 파래지더니 까무러쳐서 오래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기어이 그 긴 복도를 걸어 나가 엄청나게 큰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 부엌(상자들), 이경림


세상 한복판에 걸린 큰 밥솥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은, 아침마다 전철과 버스와 도로는 출근 전쟁이다. 세상은 큰 밥그릇 싸움터다. 그러니 어서 부엌으로 가 밥을 해야지 병원에 누워 있거나 죽을 틈이 어디 있겠는가. ... 어머니이기도 한 이경림 시인은 마지막까지 밥을 하려다 순교한 어머니 잎에서 망연자실한다. 밥의 역설 어머니의 역설 앞에서 말을 잃는다(135-136).


굴욕적일지라도 내가 살아온 세월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시를 마음에 담을 수 있었겠어요. 아이들은 아마 모를거에요.




잠깐의 짬이었지만 다시, 시로 숨을 쉬며 생각했습니다. 시를 짓기 좋은 터가 있다면, 내 마음이 그런 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나, 지금, 여기, 너 밥 먹는 일, 바람 소리, 나를 보는 강아지의 궁금한 눈빛. 이 모든 평범한 것들이 감추고 있는 참을 수 없는 경이로움"(141). 이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시의 신비입니다. 내 비록 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는 가난하고 비루한 삶일망정, 이 신비를 잃지 않는 그런 마음이고 싶습니다. 정체를 숨긴 외계인처럼 나는 쉬로 숨 쉬는 사람이라는, 그런 비밀을 가슴에 몰래 품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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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인생의 판을 뒤집는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살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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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제도 아래서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협력보다는 경쟁에 더 잘 준비된 채 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경쟁 훈련은 학창 시절 내내 이어진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재앙이다. 다른 아이들을 물리치고 앞지르려고 인간힘을 쓰는 건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고 싸움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재앙이다. 두 경우 모두 아이들은 주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주된 목적은 공헌하고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확실히 획득하는 것이다"(131-132).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던 아들러는 "인간관계 고민의 원천은 타인을 적으로 인식하는 사고"라고 진단합니다(138). 아들러가 예견했던 재앙이 지금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경쟁에 시달립니다. 아들러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만큼이나 경쟁을 포기하는 것도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관심과 중심이 '남', 즉 '타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기준이 남이고, 타인은 적으로 인식됩니다. 심지어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라면 부모도 '적'으로 간주하는 세상입니다. 그때문일까요? '우울한 기분'은 일상이 되고, 우울증뿐 아니라 불안장애, 공항장애와 같은 정신적 문제도 더이상 낯선 질병이 아닙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는 아들러. 그런데 오늘날 유독 아들러의 심리학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심리학은 시대의 요청인 것입니다. 경쟁에 지치고, 거절감에 지치고, 끊임없이 비교 당하고, 관계를 풀어갈 열쇠를 잃어버린 채, 뒤쳐짐이라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그의 한마디는 그 자체로 강력한 치료제였고, 마치 출(出) 애굽과 같은 탈경쟁의 해방 선언이었고, 그것은 구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이라는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은 철학자로서 (아들러)심리학을 연구하는 '기시미 이치로'라는 일본의 철학자입니다. 그 자신이 아들러 심리학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정이 오늘과 같은 큰 바람을 일으킨 것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열풍을 이어가는 이 책도 기시미 이치로의 책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시미 이치로의 저작으로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들러 자신이 저작물을 남기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는 데 이 보다 더 탁월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미움받을 용기> '실천편'이라는 이름로 독자를 찾아왔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를 읽은 독자라면 아들러의 심리학을 한 번 더 복습하며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배웠던 의미부여, 목적론, 용기부여, 과제의 분리, 초기 기억, 공동체 감각과 같은 개념들을 중심으로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수정해가도록 돕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이 책이 심리학 서적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처럼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프로이트 심리학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과거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훈육을 탓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 경험이 우리의 뭔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과거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에 따라 결정된다고 아들러는 말합니다"(50). 아들러는 이것은 '목적론', '의미 부여'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그들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바꾸지 않는 한 행동 또한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개인심리학이 결정론과 결별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어떤 경험이든 그 자체로는 성공이나 실패의 요인이 아니다"(55).


아들러의 심리학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ㅇ니지 태도를 수정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나는 상처받았다고 아우성치며 과거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러는 태도를 바꾸고, 의미부여를 다시 하면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까지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인간관계의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피할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의미부여를 다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이렇게 인생과 자신에 대한 의미부여를 '생활양식'이라고 불렀는데, "생활양식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72)이라고 역설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77).


제가 들러 심리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공동체 감각'이라는 그의 독특한 이론 때문입니다. "타인을 친구로 인식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우월성을 추구하라는 아들러의 가르침은 제가 생활신조로 삼고 있는 성서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아들러가 기독교인이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헌한다는 의식과 관점을 가지면 자연히 누군가와 경쟁하려 들지 않게 됩니다"(130). 단순히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삶을 깊이 통찰한 거장의 결론이라는 측면에서 자기계발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열등콤플렉스와 우월콤플렉스의 공통점은 "자기만 생각하고 산다"(131)는 것이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위기, 관계의 위기, 정신(마음)의 위기는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산다"는 것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공동체 감각을 가지고) 타인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공헌하기로 결심"해야 한다고, 그런 생활양식을 선택하라는 아들러의 가르침은, 이 시대를 향한 선지자적인 외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인 것만은 확실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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