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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신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가 악하는게 만드는가
아라 노렌자얀 지음, 홍지수 옮김, 오강남 해제 / 김영사 / 2016년 9월
평점 :
초자연적 감시자라는 종교적 개념이 거대 사회를 만들었고,
거대 사회의 필요는 거대 신을 숭배하는 친사회적 종교를 키웠으며,
종교와 신의 도움 없이도 협력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복지사회는 이제 종교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이 책은 사실상 종교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그것이 '종교'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나는 종교인입니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종교'를 객관적으로 통찰해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간입니다. '내가 믿는 바'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점검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처럼 종교사회학은 물론 "문화진화론, 인지과학, 사회과학, 종교 심리학 분야"(352)의 이론을 '통섭'한 책을 만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이 던지는 첫 질문은 "인류는 어떻게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구성원들 간에 결속력이 강하고 고도로 협조적인 거대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해올 수 있었을까?"(13) 하는 점입니다. "결속력이 강한 소규모 집단에서 유전적으로 무관한 익명의 낯선 이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규모로 지속적으로 협력을 실천하는, 익명의 거대한 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알려진 동물 종은 인간밖에 없다"(18-19)는 놀라운 현상에 주목한 것입니다. "거대한 신들을 섬기는 친사회적 종교"가 바로 그 비밀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종교의 감시 기능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초자연적 감시자'라는 개념을 어떻게 가지게 된 것일까요? 저자는 이것이 인지기능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는 생각하기 쉬운 직관에서 흘러나오지만 과학은 이런 직관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개념으로 대처해야 하는 힘든 지적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따라서 과학은 무신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는 주장이 흥미롭습니다(324). "인간의 뇌는 종교를 쉽게 받아들이지만 과학과 무신론을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349).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발생적인 종교가 인류의 필요에 의해 '거대 신'으로 성장해왔고, 이제 복지사회가 그 기능을 대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무신론자가 증가하는 것도 그 한 증거로 제시됩니다.
초자연적 감시자라는 종교적 개념이 거대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여덟 가지 믿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1. 보는 눈이 있으면 언행을 삼간다.
2. 종교의 효과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3. 지옥은 천국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다.
4. 신을 믿는 사람들을 믿는다.
5. 신앙심은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된다.
6. 숭배 받지 못하는 신은 무력한 신이다.
7. 거대한 집단에는 거대한 신이 필요하다.
8. 종교집단들은 다른 집단과 경쟁하기 위해 자기 집단 내에서 서로 협력한다.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이 "여덟 가지 믿음"이 어떻게 거대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며, 모든 주장은 "10장 신 없는 협력" 사회를 향합니다. 제1장부터 9장까지는 "10장 신 없는 협력 사회"를 논증하기 위한 과정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책들은 읽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실험의 조작과 통제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흥미로운 실험을 예로 논증을 펼치기 떄문에 생각보다 재밌고 수월하게 읽힌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합니다. '일요일 효과' 같은 실험같이 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실험들이 많습니다. 또 학문은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저자의 내공이 깊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매 장마다 흥미로운 질문들로 논증을 이끌고 나가는데, 이 책의 주제를 이끌고 나가는 커다른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부 종교적 믿음과 관행들은 지난 1만여 년 동안 어떻게, 왜 대규모 협력사회를 출현하게 했는가?" 둘째, "이런 과정을 통해 친사회적 종교는 어떻게 문화적으로 전파되었고 세계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는가?"(27)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진 저자는 사실상 이 책에서 "거대 신"의 종말, 다시 말해 종교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속 사회는 종교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저자는 세속 사회가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지난 몇 백년 만에 거대 신을 믿지 않는 거대 집단들이 출현하고 번성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정보가 태부족"이라고 말을 아끼며, "하지만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들 간의 갈등, 종교와 세속적 삶의 방식 간의 알력은 다음 세기에도 계속해서 이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351)는 다소 안전한 결론(?)을 내놓습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진화론적 세계관, 의존은 나약한 것이라는 신화, 견고한 논리(그럴듯한 설명)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흥미로웠던 책입니다. 사실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미키마우스, 산타클로스, 제우스가 왜 거대 신이 될 수 없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한 독자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