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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9).
먼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깨물면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분명히. 아들 둘, 딸 둘, 4남매를 키우신 우리 부모님은 왜 오빠 편만 드냐고 항의할 때마다, 왜 동생이 잘못해도 무조건 내게만 양보를 강요하느냐고 불평할 때마다, 우리 집안에 내 편은 없다고 서럽게 울 때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 말로 나를 다독이셨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나의 믿음이 깨끗이 배신당했다는 걸. 깨물면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걸, 아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런데 가족들 몰래 집을 빠져 나가고, 며칠 뒤 호수에서 시체로 발견된 '리디아'는 가장 관심을 덜 받는 아이가 아니라, 숨이 막힐 정도로 지나치게 사랑받는 아이였다. 이민자 가정의 중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디아는 엄마의 푸른 눈을 물려받았고, 그 때문에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는 리디아라는 걸, 나머지 두 아이(오빠 네스와 동생 한나)는 잘 알았다. 물론,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도, 리디아였다"(12). 그러니까 리디아는 티나게 편애받는 아이였던 거다. "리디아는 지나칠 정도로 엄마 아빠의 관심을 많이 받는 아이였다. 우승 상품으로 받은 꽃처럼 언제나 조심스럽게 대했던 아이였다. 언제나 엄마의 마음속에 있어서, 엄마가 책을 읽을 때도 리디아가 좋아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늘 책 귀퉁이를 접게 만드는 아이였다. 매일 밤, 아빠가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입을 맞추는 아이였다"(161-162).
가족들은 리디아가 왜 죽었는지 모르고,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실은 리디아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리디아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낼 거라고, 무엇이 잘못됐던 건지 꼭 밝히 거라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자신들이 알던 리디아의 삶은 거짓이었다는 사실과 충돌하며 가족들은 각자 길을 잃고 만다.
이 모든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43)
서로 말하지 않는 것들, 그래서 알지 못하는 것들, 그러나 알아야만 했던 것들,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 작가는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쏟아놓으며, 리디아의 죽음에 읽힌 비밀에 '서서히' 다가간다. 빠른 속도로 쏟아놓는데 서서히 다가가게 되는 것은, 그만큼 (리디아) 가족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고, 한 사람의 내면 안에, 가족 안에 또아리를 트는 갈등은 다층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리디아 가족의 허약한 행복과 이상하고 불안정한 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디아가 죽은 해가 1977년이라는 것,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이민자 가정의 중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가 만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시대가 1950년대라는 걸 염두에 두러야 할 필요가 있다. 리디아와 오빠 네스는 학교에서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제임스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았다. "새하얀 얼굴들이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어떤지 잘 알았다"(156).
중국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결혼.
미국에서 태어났고, 다른 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도 한 번도 이곳에 속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남자와
절대로 엄마와 같은 보잘것없는 인생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여자.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남자와 눈에 띄고 싶은 여자.
"칭, 외국놈, 네 나라고 돌아가라"는 귓속을 잔인하게 후벼파는 소리와 싸워왔던 남자와
"네가 할 수 없는 직업이 있다는 말, 네가 살 수 없는 인생이 인생이 있다는 말, 네가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말"과 싸워온 여자.
'다르다'는 제임스의 이마에 언제나 찍혀 있는 상표였고, 제임스의 두 눈 사이에 박혀 있는 문장이었다. '다르다'라는 단어는 제임스의 인생 전체를 물들였다. '다르다'는 말은 제임스의 모든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지문처럼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메릴린에게 '다르다'는 말은 제임스와 달랐다(357).
그리고 이런 부모를 둔 자식들. 그리고 그들이 서로 말하지 않는 것들.
"아주 오랫동안 네스는 리디아의 마음속 소리를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229).
자신을 사람들 속으로 숨겨버리려 하는 아빠와 자신을 사람들 밖으로 드러내려 하는 엄마의 '기대'는 오직 한 사람, '리디아'를 향했다. 리디아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의사가 되기를 꿈꾸어야 했다. 그 사이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 네스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막내딸 한나는 아예 존재감 밖으로 밀려났다.
엄마와 아빠는 아들을 보지 못했고, 아들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아들 마음의 상처를 보지 못했지만, 네스는 "자기 쪽으로 기운 무게"를 동생이 너무나도 버거워한다는 걸 알았다. "리디아가 그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직 네스 때문이었다"(232). "그 오랜 세월 동안, 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네스는 리디아의 불행을 그대로 흡수해 말없이 동정해줬고, 가만히 어깨를 꼭 잡아줬고, 어색하게 웃어줬"고, "네스는 리디아가 가라앉지 않고 떠 있을 수 있도록, 지나치게 사랑받는 것이 지나치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임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줬다"(235).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네스는 그 누구보다도 리 가족만의 언어를, 외부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것은 - 마치 하늘에서 내려는 폭설처럼 - 묵직한 추가 되어 한 사람을 뒤흔들고 가라앉히고 으깨버린다는 것을"(368-369).
이해해주는 한 사람만 있었어도.
요즘 네티즌들은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를 굶겨 죽이고, 때려 죽이고, 던져 죽이고, 밟아 죽이는 흉포한 일이 바로 이웃에서 벌어지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부모에게 지나치게 사랑받는 아이 걱정은 배부른 걱정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바로 우리의 그러한 태도가 대화의 단절을 불러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속 편한 소리 하지 마. 그 고통이 더 크겠어, 이 고통이 더 크겠어? 어렵게 마음을 열었는데 이런 반응이 온다면 우리는 속으로 다짐할 것이다. 이젠 너에겐 아무말도 하지 않겠어.
리디아가 마음의 무게를 부모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왜 아빠 제임스와 엄마 메릴린은 서로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않았을까? 백인으로 사는 아내는 말해도 자신의 기분을 모를 거라고, 남자이자 교수로 사는 남편은 말해도 자신의 고통을 모를 거라고 지레 짐작한 것일까?
(★스포일러 주의) 네스가 집안을 떠난다는 게, 자신을 떠난다는 게, 더이상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게, 리디아의 그토록 큰 절망이고, 그토록 큰 고통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리디아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버지,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이 아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마음의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줄 수 있는 구원자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제임스가 남모르게 어떤 고통을 겪어왔는지, 메릴린이 가진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는 순간, 위태로웠던 그들의 갈등이 풀어지는 것을 봐도. 가족 안에서 아무런 존재감을 갖지 못했던 '한나'가 서로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었을 때, 비로소 말하지 않는 것들, 그래서 알지 못했던 것들, 그러나 알아야만 했던 것들, 이제야 알게 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촤르르 풀어지며 가족 모두 앞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던 것만 봐도 말이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매혹적인 소설이다. 속도감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문장들, 낯익은 설정이지만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피부에 와닿는 묘사들, 그리고 내 것처럼 밀고 들어오는 타인의 상처들. 번역자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한 문장 한 문장이 깊이 박힌다. 지금은 다문화가정이 보편적인 일상(?)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편견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편견을 가진 사람이든, 편견의 대상자이든)을 위하여, 지금은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다지만 여전히 차별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차별을 하는 사람이든,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든)을 위하여, 지금은 각자 살기 바쁘다지만 여전히 가족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상처를 주는 쪽이든, 상처를 받는 쪽이든)을 위하여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작품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