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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 전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기억의 위대한 힘
조슈아 포어 지음, 류현 옮김 / 갤리온 / 2016년 4월
평점 :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보통' 남자의 증언!
이 책을 읽기 전에, 두 가지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방대한 지식을 주입하기만 할 뿐, 그것을 기억할 방법은 가르치지 않는다"(40)는 것이며, 두 번째 문제는 지금 우리의 문화가 "뇌 내부의 기억에 의존하던 것에서 뇌 외부에 저장된 것에 의존하는 것으로 옮겨 가고 있다"(50)는 것입니다.
'암기과목'이라는 분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암기를 은근히 깔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든 학습은 암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이 기억해야 할 내용을 던져주기만 할 뿐, 그것을 기억할 방법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의미심장하게 와닿습니다. '기억술'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고, 기억술을 익히면 '누구나' 기억력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기억술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인류의 크나큰 손실이며, 특히 교육계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 한 편에서는 클릭 한 번이면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더 이상 암기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사회는 "박학다식의 뜻도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기억하는가에서 미로 같은 외부 기억의 세계에서 원하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가 하는 문제로 넘어"(212)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 앞에 이런 질문을 던져 놓습니다. "이것이 인류에게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을 외부 보조 저장 장치에 의존해서 얻는 이익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잃는 것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50)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메모리 챔피언십'이라는 흥미로운 대회에 참관했다가 '기억의 궁전'이라 불리는 고대 기억법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기억술을 훈련한지 단 1년 만에,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2006년도)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 간단한 기술을 훈련하기만 하면 "누구나" 기억력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자 스스로 증명한 셈입니다.
메모리 챔피언십에서 지력 선수(mental athletes)들이 사용하는 기억술은 2,500년이나 된 고대의 기억법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키오스의 시인 시모니데스가 발견할 것과 관련이 있다. 대연회장 붕괴 참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시모니데스는 누가 잔해에 깔려 있는지 유족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시모니데스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를 원상태로 복원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연회에 초대된 손님들이 각자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그림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그 모든 일이 마치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는 가상으로 건물을 지어 그곳에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을 이미지로 만들어 채워 넣으면 세상에 기억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떠올려야 할 것이 있을 때마다 가상의 건물을 그냥 거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기억의 궁전'으로 불리게 된다(9-10, 25-26).
'기억의 궁전'은 '이미지'와 '장소'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이미지는 기억하려는 내용이고, 장소는 그 이미지를 저장하는 공간입니다.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가상의 공간에, 기억하고자 하는 내용을 놓아두면, 머릿속으로 공간을 탐사하듯 기억의 궁전을 따라 걷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내용을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억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 뇌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억할 내용을 상대적으로 기억이 잘 되는 시각 이미지로 바꾸어 기억의 궁전에 심는 것이다. 이때 재미있고, 외설스럽고, 기괴한 이미지가 기억에 더 잘 남는다"(11).
이 고대 기억술 비밀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연상법'이라고 하여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암기할 내용을 시각화하는 것은 요즘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데도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강조점이 있다면, 기억해야 할 내용을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방법 정도일 듯합니다. 이 기억법은, 우리 뇌는 사소하고,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반대로 아주 비열하고, 치욕스럽고, 놀랍고, 믿기지 않고, 또 우스꽝스러운 것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404). 그러니까 쉽게,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할 내용을 최대한 '색다른' 이미지로 변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직자, 연설가, 법률가 등 다양한 층에서 널리 활용되었던 이 고대 기억술이 점차 사라지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기억을 위해 상상으로나마 불경한 이미지를 떠올려야 하는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로부터 날선 비판을 받았던 것"(197)입니다.
사실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에서 배울 수 있는 기억술은 간단합니다. 저자의 경험과 메모리 챔피언십이라는 대회 이야기를 걷어내면, 기억술을 배우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억술을 익히고 싶다면 그것을 훈련하는 과정이 독자에게 남을 뿐입니다. 연상법을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의 이야기가 그다지 새로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가르쳐주는 기억술(기억의 궁전)의 원리가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좀 되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책을 읽고 일주일 정도 '기억의 궁전'을 실험해보았는데, 사람 이름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덩어리들은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문장과 같은 큰 의미의 덩어리들은 그것을 기억하기 쉬운 이미지로 일일이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기억의 궁전을 짓는 일, 단순하지만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술은 창의력과 집중력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내용을 최대한 색다른 이미지로 시각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창의력 싸움이기도,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훈련해야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집중력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역으로, 이 기억술을 훈련하면 창의력과 집중력까지 좋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될 것입니다.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는 "타고난 기억력이란 없다"고 말합니다.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술을 연마한 사람들은 이 기억술을 훈련하면 기억에 담아두지 못할 것은 없다고 장담하기도 합니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 감퇴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기억술을 익힌 후 오히려 기억력이 더 좋아지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합니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 뇌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같이 '외부의 무엇'에 기억을 의존하다 보니 머리가 점점 빈 깡통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의 집전화번호를 몇 개씩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외우고 있는 친구의 핸드폰 번호가 하나도 없습니다. '기억력'이라는 위대한 능력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시대입니다. 학생들이나 수험생, 기억력 향상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고, 훈련해볼만한 기억술입니다. 이 기억술에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꾸어놓을 힘이 잠재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