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건축 - 양용기 교수의 알기 쉽게 풀어쓴 건축 이야기
양용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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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깨달음이다"
(건축가 루이스 칸).



요즘 방송가 트랜드를 말할 때, 쿡방전성시대에 이어 집방전성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다음은 북(Book)방이 올 것이란 예견도 있더라고요. 쿡방이나 집방이나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시선을 붙들어 둘만 합니다. '건축'이라고 하면 거리가 멀게 느껴지거나 상관 없는 분야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사실 건축은 우리의 생활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건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인생을 건물 속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사회가 개인화되어갈수록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욕망은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집을 사거나, 집을 건축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건축은 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예술의 상징이며, 또 기술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철학이 있는 건축>은 "건축을 읽어주는 책"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건물이 지닌 형태언어를 해석해줌으로 형태 안에 담긴 미(美)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지요. "건축은 깨달음'이라는 건축가 루이스 칸의 말을 저자가 반복적으로 인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의도 때문일 겁니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는 '미'의 의미가 바로 '지각하다', 또는 '인식하다'라고" 합니다(75). 즉, "우리가 지각하는 그 언어가 바로 그 형태의 미가 되는 것"이며, "'미'라는 것은 우리가 지각할 때 보인다"(313)는 것입니다. 멋진 건축물은 보기만 해도 탄성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멋진 건축물인지를 '알면', 형태를 통해 건축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면', 더 크고 진실한 감동이 밀려온다는 뜻일 겁니다. 알면 보인다는 진리가 건축에서도 통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는 루이스 칸의 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건축물의 외형만 보아서는 그 건축가의 아이디어나 건축물에 담긴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60).


"건축은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84). 건물은 공간입니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건축가들은 '공간의 자유를 추구해왔다'고 합니다.  건축의 역사는 바로 공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하중을 견디기 위해 두꺼울 수밖에 없었던 벽이 얇아지고, 기둥으로 대체되고, 또 외부와의 연결을 위해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은 공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건축가의 고민이 낳은 변화이며,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의 진보,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를 가진 대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화라고 이 책은 증언합니다. 


<철학이 있는 건축>은 건축에 관한 전방위 입문서입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부터, 건축의 요소, 건축의 역사와 변화, 디자인 속에 숨어 있는 기술과 재료, 표현까지 전방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과, 저자의 가이드를 따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이면서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던 한 구절은 다음의 문장입니다. "한국의 정자는 우리 선조가 얼마나 지혜롭고 자연을 사랑했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됩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기둥으로 된 집과 자연이 그대로 보이게 하는 건축물을 만들고자 아주 오랜 기간을 연구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이 정자가 곧 건축물의 최종 목표가 될 거라는 것을 아는 건축가는 많지 않습니다"(32).  


<철학이 있는 건축>은 보다 쉽게 건축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전공자가 읽어도 좋고, 전공자가 아니어도 건축에 관한 교양도 쌓고, 건축에 관한 개론적인 지식을 습득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건축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건축에 관한 시야가 트이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건축에 관한 저자의 철학을 더불어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건축은 마치 인생과도 같다. 위치를 잡고 돌을 쌓고 공간을 구분하며 문과 창을 내고 하는 등의 모든 행위 속에는 인간을 위한 숭고한 결단이 담겨 있다. 자연 속에서 공생하는 인간의 존재를 잃지 않는 위대한 작업이다. 건축은 이에 관계된 모든 생명의 정체성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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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셀프 트래블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4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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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셀프트래블, 다양한 여행자들을 고려한 전천후 가이드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프롤로그 中에서).



마리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저렇듯 천천히 흐르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입니다. 어릴 때, 아빠가 자주 외우시던 시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청춘시절 아빠에게 가장 이국적인 장소는 미라보 다리가 있는 파리였을 것 같습니다. 아빠가 외워주시는 시를 들으며 자란 저도 그랬으니까요. 지금도 프랑스 파리라고 하면 어김없이 이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아빠가 외워주실 때는 세느 강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센 강이라고 하나봅니다. 옥상에서 이 시를 외워주시던 아버지만큼 이제 제가 나이를 먹었습니다. 센 강이 흐르는 미라보 다리 위에서 가족 사진을 찍는 것이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인데, 가족여행이 쉽지가 않습니다. 가족들 각자의 스케줄도 그렇고, 예산도 그렇고 말입니다. 동생은 하와이를 고집하고, 저는 파리를 주장하고, 부모님은 너희들끼리나 다녀오라고 손사래를 치시는 것도 떠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파리 자유여행을 꿈꾸며, <파리 셀프트래블>로 미리 미리 준비를 해봅니다. 


파리자유여행 가이드북으로 <파리 셀프트래블>을 선택하고 추천하는 이유는 상상출판의 셀프트래블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이드를 맡은 저자가 "박정은" 씨이기 때문입니다. 저자 박정은과는 <프라하 셀프트래블>을 통해 미리 만나보았는데, 그때 참 꼼꼼하고 친절한 가이드란 인상을 깊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여행 스타일이 통한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살짝 건조하지만 과잉행동이나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여백이 있는 그런 여행을 좋아합니다. 


2016-2017 최신판으로 나온 <파리 셀프트래블>를 더 기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해보니 짧은 일정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과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자들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됐다"는 저자의 고백 때문이며, "실속 없이 두껍기만 하고 너무 많은 정보들로 혼란스러운 책과의 차별성"을 꾀했다는 저자의 자신감 때문입니다. "첫 여행이 설레면서 동시에 두려운 대학생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믿을 만한 여행 선배로, 파리 여행을 계획하는 친구가 "회사에서 7일 휴가를 얻었는데 가고 오는 시간 빼고 5일 동안 파리에 머물 거야.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라고 물을 때를 대비해, 또 요즘 트렌드인 맛집과 쇼핑 마니아들을 고려해, 그리고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여행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편한 여행을 안내하기 위한 팁들이 고스란히 책 안에 녹아 있다"(프롤로그 中에서).

 

 

 





 






"이 책의 각 장들은 효율적으로 파리를 즐길 수 있는 도보 루트로 구성되어 있다"(24).



해외로 떠나는 자유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루트(일정)와 여행시기입니다. 일정은 꼭 가봐야 할 명소를 중심으로 이동방법과 소요시간을 계산한 루트가 포함되어야 하고, 여행시기는 가급적 비수기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파리여행 비수기 시즌은 "11-3월"이라고 합니다. <파리 셀프트래블>은 비수기 시즌을 이용하려는 여행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팁을 제공합니다. "우리나라 겨울보다 따뜻하지만 강수량이 높다. ... 대부분은 날이 흐르고 비가 내려 우울한 날씨다.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겨울 세일시즌이 있고 여행자가 적어 한가한 파리 여행을 할 수 있다"(220)고 말입니다. 체크 사항입니다!


<파리 셀프트래블>에서 추천하는 파리 여행 루트는 '하루'(파리에서의 Full day)에서부터 6박 7일까지 "효율적으로 파리를 즐길 수 있는 도로 루트"입니다. 서울시의 1/6 크기이며 도심 대부분이 평지인 파리는 걷기에 굉장히 좋은 도시라고 합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도보 루트의 핵심은 "볼거리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쇼핑과 식사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지도 위에 장소를 표시해주고 있기 때문에 거리와 이동 경로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각 장의 루트를 자신의 취향이냐 상황에 따라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각 장을 하루 일정으로 잡으면 파리 근교까지 총 8일 일정이 나오고, 또 보고 싶은 파리의 주요 랜드마크가 포함된 장을 뽑아 조합하여 내 마음으로 하루 일정을 계획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가이드북과는 달리 "천천히 일주일을 여행하는 사람부터 주요 명소만 빠르게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도전의식이 별로 없는 저는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편이고, 또 여행지에서 탈이 날까 걱정이 되어 먹는 걸을 매우 조심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개선문과 에펠탑 주변에 "2016년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10개의 식당 중 7곳이 몰려 있"(38)다고 하니 한 번쯤 미슐랭 레스토랑에서의 호화로운 식사를 꿈꿔보게 됩니다. 이 책은 보다 저렴하게 즐기고 싶다면 저녁보다는 점심식사를 이용하라고 일러줍니다. 단,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꿈꾼다면 "서바이벌 메뉴판 읽기"정도는 꼭 공부를 미리 해야겠더라고요.


또 파리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은 공중화장실 이용방법을 익혀두는 것도 꼭 필요할 듯합니다. 우리나라만큼 무료로 개방된 화장실이 많은 나라도 없다고 하는데, 파리시는 공중화장실 무료화 사업을 시행하여 현재 파리시에 400여 개의 공중화장실이 있다고 합니다. <파리 셀프트래블>은 파리 시내의 모든 공중화장실 위치를 알 수 있는 사이트를 소개해줍니다(245). 유비무환이라고 지도로 미리 확인을 해두는 좋겠지요? ^^

 

 

 










"2016-2017 최신판 파리 셀프트래블,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주겠어!"



<파리 셀프트래블>은 전천후 가이드북이면서 휴대하기 딱 좋은 사이즈입니다. 그럼에도 여행 가방의 무게를 줄이고 싶을 때는 필요한 정보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두고, 그래도 혹시 몰라 따로 꼭 챙겨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은 낱장으로 뜯어서 가져 가기도 합니다. 상상의 셀프트래블 시리즈가 제공하는 '맵북'과 함께 말입니다. 일하며 집중이 안 될 때마다 <파리 셀프트래블> 한 장씩 넘겨보는 중인데 이 책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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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문장 -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한귀은 지음 / 홍익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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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장이 만나는 순간!



<여자의 문장>이라는 책 제목, 그리고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두 문장,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생의 결정적 순간, 내 인생을 바꾼 문장들>. 이것들을 보고 독자는 무엇을 기대해야 옳았을까요?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책입니다. 콘셉트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잘 읽히는 책이기는 합니다. 소개팅 자리에 들었던 것과는 좀 다른 사람이 나와 있어 실망했지만, '의외로' 신선한 재미를 주는 상대방에게 끌렸다고나 할까요. 배운 것도 많은 유익한 만남이었습니다. 


<여자의 문장>은 여자로, 작가로, 엄마로 살아가는 40대 여교수의 자기 성찰적 에세이입니다. 생각이 많고, "바쁘냐?"고 묻는 영혼 없는 인사를 싫어하고, 자기만의 방에서 엘피판을 들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니체를 좋아하고, 공부하지 않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들 때문에 은혜받는 신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개성 강하고, 자의식 강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관계에 있어 진실되고, 자기반성도 잘하는, 책만큼 영화도 좋아하는데 슬픈 영화,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 몇 날이고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책임감도 강하고 매사 이성적이지만 때로 감성에 풍덩 빠쪄 헤매기도 할 것 같은, 그럴 것만 같은 여자입니다. 무신론의 대표 사상가인 니체나 버트런드 러셀의 책을 좋아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듯 한 사람을 함부로 넘겨짚는 것이 불쾌하시다면 큰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시험 이틀 전 날, 아이가 흥분하면서 말했다. 

"엄마, 빨리 시험 치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응? 왜?"

"그래야 시험 마치고 바로 놀 수 있잖아요."

"너 지금도 충분히 놀잖아."

"그래도 마음 편하게는 못 놀잖아요"(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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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해?"

아이는 무성의하게 대답한다.

"응."

일차 긍정이 나왔으므로 이차 부연 질문에 들어간다.

"엄마를 사랑한다면, 엄마가 원하는 걸 해야지?"

아이는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노예지"(250-251).


이렇게 사랑스럽고 명민한 아이라니요. 엄마와 아들이 나눈 대화인데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이가 참 매력적입니다. 엄마와 스스럼 없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천진하고 지혜로운 아이를 보니, 엄마도 어떤 사람인지 미루어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독자입니다. 글 속에서 그 사람이 너무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글은 수려한데 그 글을 쓴 사람이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책을 덮어버리고도 영 찝찝합니다. 그래서 <여자의 문장>을 읽을 때도, 말보다 어떤 사람에 관심을 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과 문장이 만나는 순간에 관해 쓰고자 했다"고 말합니다(7). 저자처럼 내 삶과 이 책의 문장이 만났던 순간들이 있는데, 가장 강렬했던 만남은 다음의 문장과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학교는 학교답게 만든 아이들은 공부만 했던 아이들이 아니라 잘 노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우리 추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추억이 자아를 만드는 거다"(98). 이 한 줄 문장이 지나온 날, 학창시절뿐 아니라, 주어진 일로 생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 것이지요. "추억이 자아를 만드는 거다"는 한 문장은 내 삶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알려주었습니다. '자아계발'과 같은 나 중심의 성취적인 목표를 지향했던 2-30대를 지나니 비로소 '관계'의 중요성이 눈에 보입니다. 


<여자의 문장>은 재미있게 잘 읽히면서 배울 것이 참 많은 책입니다. 책 속 사진처럼 다소 외로운 기분이 들 때, 조용히 잠겨들기 좋은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나도 저자와 같이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외면의 일기가 쓰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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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의 진짜 얼굴 - 무신론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작이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지음, 권기대 옮김, 김일우 감수 / 에센티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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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죽은 세계의 딜레마를 확인하라!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부터 말해야겠다. 어떻게 무신론에서 유신론의 믿음으로 옮겨 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것, 세상은 불안한 곳이라는 것, 불행은 느닺없이 덮쳐온다는 것, 그렇게 나는 삶에 눈을 떠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 둔 어느 겨울, 친구가 죽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상고에 진학했지만 전체 수석을 차지하고 새로운 꿈을 꾸던 아이였다. 희망찬 내일을 그리며 겨울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였다. 아침에 머리를 감다 쓰러진 친구를 방에 눕혔는데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친구가 그리던 내일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한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끝나버린단 말인가?' 허무라는 단어가, 공허라는 단어가 살갗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되지 않아 이번엔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아들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열손가락 깨물면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던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단다. 돌연사였다. 나와 동갑이었던 그 아이의 방에는 같은 교과서, 같은 참고서가 펼쳐져 있었고, 그 아이가 쳤던 기타, 그 아이가 읽던 시집, 그 아이가 입었던 교복까지 바로 어제까지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두 친구의 죽음은 나를 한 없는 무기력의 늪으로 끌고 갔다. '언제라도 한 순간에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열심 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열심을 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부도, 목표도, 미래도 공허하기만 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그 아득하고 막막한 기분을 아는가? 나는 그 무기력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영원을 붙들고 허무의 진창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성경말씀이 진리라는 증거를 계속해서 확인해나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21세기 대표 지성 중에 한 분이 바로 '라비 재커라이어스'이며, 그의 책 <무신론의 진짜 얼굴>은 내가 믿는 바를 다시 한 번 검증하고 그 믿음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해준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가, 아니면 인간이 신을 창조했는가?" 이것은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의 싸움에 앞서, 누구나 평생에 한 번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질문은 다른 어떤 질문보다 삶과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22). <무신론의 진짜 얼굴>은 우리를 이 물음 앞으로 초청하는 책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신이 죽은 세계, 다시 말해 신이 없는 세계의 딜레마를 생생하게 증언해준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나는 무신론자이다"라고 주장하거나 "신은 없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그 무신론적 믿음이 처한 딜레마가 무엇인지 이 책을 읽고 확인하라. 그리고 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를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채 나는 무신론자라고 결론 지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신론자의 무지를 비난하는 무신론자가 많은데, 나는 자신의 믿음을 공부하고 검증하고 탐구하는 무신론자를 많이 보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유신론자들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 책은 유신론자에도 필요한 책이다. 내가 가진 믿음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신론의 진짜 얼굴>은 인류는 "무신론"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무신론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신은 죽었고 도덕적인 가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런 믿음이 어떻게 우리 삶을, 인류의 삶을 망가뜨려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무신론이 낳은 결과들, 즉 신이 없는 세계의 딜레마는 '기원', '도덕성', '의미', '운명'이라는 4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이 책은 '신'을 장사지냄으로써 '기원'을 없어버리면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이유(의미)를 상실하는지, 옳고 그름을 없어배리면 어떤 황폐함이 도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신을 죽여버렸으니 무신론자에겐 존재할 이유도, 옹호해줄 도덕도, 삶에 대한 의미도, 무덤 너머의 희망도 남지 않게 된다"(143). 이런 삶에 남는 것은 폭력과 지루한 쾌락뿐이다. 살아 있다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신의 죽음이 가져오는 결과 또한 추상과 관념 속에 머물지 않고,일생의 행로 하나하나를 깊이 파고든다는 사실을 목도해야 한다.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적 모순도 예리하게 꼬집는데, 가장 단적인 예는 이것이다. "기원의 문제를 놓고 과학적인 논쟁을 벌일 때, 물리학 법칙과 정반대 방향으로 생물학적 진보를 주장함으로써 열역할 제2 법칙이 무시당했었다. 물리학의 법칙은 사물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동하지만, 진화는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동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반응은, 전체에 적용되는 것이 부분적인 것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부분적인 것에 속하는 생물학적인 진화는 전체적인 엔트로피의 흐름에 역행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 이제 의미의 문제와 관련해서 자연주의자는이렇게 말한다. "부분에 적용되는 것은 의미 있지만, 삶 전처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삶은 지극히 사소한 목적들로 채워져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없다. 지극히 사소한 가치들은 있지만, 궁극적인 가치는 없다는 얘기다"(112). 삶의 의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열역학 제2 법칙과 관련해서 자연주의자가 그 문제를 다루었던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정반대"를 이룬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무신론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가? "자신의 기원을 되돌아보려는 마음도 없고, 길잡이가 되어줄 법도 없으며, 삶에 집착할 의미도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는 무신론의 적자다. 이것이 바로 산산이 부서진 무신론의 진짜 얼굴이다. 그것은 죽음마저 응시하는 눈으로, 공허함과 절망의 황량한 사막을 들여다본다. 이렇듯 손전등이 땅바닥에 떨어져 박살나면서 시작되었던 니체의 도그마는 이제 무덤의 어둠 속에서 끝난다"(148).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것이다. '원초적 인과관계를 향한 무지의 도약, 도덕성의 상실, 의미의 부재, 그리고 희망의 죽음.'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무신론의 진짜 얼굴을 이렇게 그려주며, C. 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이 처한 딜레마, 즉 그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져준다. "무신론이 자신의 길을 찾으려면 반드시 무작위적인 제1 원인을 깨우쳐야 하고, 도덕을 비난하는 짓은 모두 부도덕하다고 비난해야 하며, 모든 무의미함을 의미 있게 표현해야 하고, 희망이 없는 가운데 안전을 찾아야만 한다"(154).  


무신론과 유신론의 논쟁에 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무신론도 유신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무신론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신앙이다"(232).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무신론을 고집하는 속내도 간파한다. "무신론자의 가장 치열한 투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유는 지적인 요구 때문도 아니고 증거 부족 때문도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유는 자기한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도덕적 저항감 때문이다"(234).     


"당신은 무슨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구별합니까?" 무신론 진영의 대표주자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느낌을 근거"로 구별한다고 대답했다(81). 당신은 어떤가? 라비 캐커라이어스는 '니체'를 가리켜 '신을 장사지낸 최고의 검시관'이라고 했다. 니체는 신의 죽음이 가져오는 결과까지 정확하게 예측했다. <"신이 19세기에 죽었기 때문에 20세기에는 두 가지의 직접적인 결과가 존재할 것이다." 그는 먼저 20세기야말로 역사상 가장 유혈이 낭자한 세기가 되리라고 예측했으며, 두 번쨰로 보편적인 광기가 발생하리라고 예측했다>(37). 신이 없는 세계와 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선택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섣불리 답을 하지 말기를 권한다.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보기를 권한다. 우리 인생을 걸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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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가족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가족보다 우리 자신을 더 꿈꾼 첫 세대, 개인주의 가족.


"가족보다 우리 자신을 더 꿈꾼 첫 세대"의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제목만 보고 제가 그린 <개인주의 가족>의 그림은 이랬습니다. 가족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족보다 자기 자신을 꿈꾸느라 바쁜, 콩가루는 아니더라도 모래알 같은 가족들. 적당한 무관심과 적당한 메마름을 원하는. 그런데 완전히 헛짚었습니다. 가족에게서 '도망치고', 가족을 '극복하려는' 사람에게도 결국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 지긋지긋하고, 원망스럽고, 아프고, 짐스럽고, 고통스러워도,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 지겹다면서도, 힘들다면서도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려 하는 것이 우리라는 걸 이 책은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가족도 결국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가족은 왜 그리 힘이 쎈 것일까요? 



타인이 바라는 꿈들이 늘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법이다(38).

주인공 에두아르는 가족들의 한마디에서 평생을 놓여나지 못합니다. 일곱 살에 쓴 네 줄의 시로 그는 "우리 가문의 작가님"이 되었고, 그 한마디가 에두아르의 인생을 결정지어버렸습니다. 홉 살에는 "난생 처음 '반짝 천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었을 때도, 무엇인가를 써보려 했을 때도, "격렬히 소용돌이치는 스무 살에 침을 뱉으며" 소설을 버렸을 때도, 카피라이터로 많은 돈을 벌었을 때도 그를 불행하게 했던 것은 "우리 가문의 작가님"이라는 한마디입니다. 가족의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 가족의 기대따위, 가족의 실망따위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아무리 뻗대보아도, 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은 '개인'이 있을까요? 가족의 기대가 독이 되는 건, 내게 기대를 품은 그들 때문이 아니라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나의 지나친 열망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실망도 한다는 건, 나 때문에 기뻐하고 나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고, 그 기쁨과 슬픔이 내 인생의 큰 의미가 되기에 가족은 힘이 쎈가 봅니다.



"우리와 아빠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있으며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우리에게 무엇인가 호소하고 있는 듯했다. 엄마는 너희 없이도 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도 그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언젠가는 우리가 더 이상 지금처럼 지낼 수 없는 날이 올 거라고. 엄마의 그 웃음소리가 지금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도 언제든 해체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금이 갈라지는 소리를 우린 끝내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은 영원할 수 없다고"(20).

그런데 이렇게 힘이 쎈 가족이 왜, 어떻게 해체되는 것일까요? 개인주의 가족에서 발견한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결혼입니다. 서로에게 애정이 없는 아빠와 엄마가 가정 해체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서로 다른 꿈을 꿀 때, (개인주의) 가족은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개인이 길러지지요. 이 상처는 힘이 쎕니다. "부모가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자식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26).



"어째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거예요? 아빠랑 작은 오빠는 왜 떠난 거예요? 두 사람은 떠난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기 안에 숨은 거란다. 숨을 거면, 차라리 우리 집에 숨으면 좋잖아요, 클레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두 사람 찾으러 가요, 데리러 가자고요"(57).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가족은 쉽게 해체되지 않는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숙학교로 보내진 뒤 홀로 생활하는 에두아르, 정신병원에 맡겨진 남동생, 행복한 결혼을 꿈꾸었지만 공주님이 되지 못한 여동생, 자신을 구원할 사랑을 기다리는 엄마, 가족을 떠난 아빠까지, 그들은 '각자의'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함께했던 가족을 그리워하지요. 사랑에 대한 갈망은 결국 가족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가족은 힘이 쎕니다. "엄마가 식탁에 앉으러 가면서 아빠의 목을 꼭 한 번 껴안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게 바로 행복 아니겠는가"(81).


"엄마는 에두아르 네가 언젠가 글을 쓸 거란 걸 알아, 우리가 겪은 균열과 두려움, 그 모든 것을 다 얘기하겠지,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을 네가 꼭 찾아내렴"(39).

에두아르처럼 프랑스의 유명한 카피라이터 출신인 작가는 에두아르가 찾으려 했던 그 말을 찾았을까요? 개인주의 가족이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말입니다. 그 말이 이 책 안에 있었던가,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인용되어 있던 리오넬 뒤루아의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이 지닌 파괴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내 주변에 있는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방법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ME)를 뒤집으면 우리(WE)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짐'을 집니다. 사랑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가족은 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뒤집어 우리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져야 할 짐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들이 존재하기를 바랄 때, 가족은 해체되는 것입니다. 가족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 이 책에서 찾은 나의 대답은 "미안해, 내가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어"입니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번역서인데도 글의 흡입력이라는 것이 이토록 강렬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작가입니다. 아름다운 글에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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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2017-02-16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약글 잘 보고 갑니다!

백범 2017-08-0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 당장은 아니되 한세대쯤 지나면 한국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볼 것 같습니다.

프랑스나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 같은 사회들이 아직까지는 꽤 낮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