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준열의 시대 - 박인환 全시집
박인환 지음, 민윤기 엮음, 이충재 해설 / 스타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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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불행하였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즐거운 말이 없었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사랑해 주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해방이 되고

하늘에 자유의 깃발이 퍼덕거릴 때

당신들은

오랜 고난과 압박의 병균에

몸을 좀 먹혀

진실한 이야기도

사랑의 노래도 잊어버리고

옛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


오늘은 4.19혁명기념일입니다. 박인환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읊조려지는 날입니다. "당신들은 / 오랜 고난과 압박의 병균에 / 몸을 좀 먹혀 / 진실한 이야기도 / 사랑의 노래도 잊어버리고 / 옛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114). 어제는 버스를 타고 안산 거리를 달렸습니다. 안산 시청 앞에 노오란 플랜카드가 봄꽃처럼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성경말씀 한 구절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10). 무고한 피의 호소 앞에 누군가는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는 약속으로 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시대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고 시로써 응답한 시인이 있습니다. 박인환이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이 노랫말은 귀에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세월이 가면 中에서). 아니면, 이런 시를 읽어보았을지도요. "한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와 숙녀 中에서). 

"세월이 가면", 그리고 "목마와 숙녀"를 생각하면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시인이었을 법도 한데, 왜 이 두 시 이외에는 잘 알려진 작품이 없는 것일까요? 만 3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문단 권력의 횡포가 가장 큰 이유였나 봅니다. 해설은 맡은 이충재 시인은 박인환이 "사실상 주류 문단의 희생양"(235)이었음을 고발합니다. "이제까지 박인환의 시는 과소평가되었다. 박인환과 동시대 모더니즘을 지향하며 동인 활동을 한 김수영 시인조차 박인환을 일컬어 "서구적인 것에 경도된 경박하며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몰아붙이면서 경멸과 함께 강도 높게 폄하했다"(234). 문학 권력은 "김수영, 김춘수, 신동엽이란 스타 시인들만을 대중에 알리는 데 주력"했고, "연구자들의 편견에 대항할 문학 연구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237)이 박인환을 오래 오해하게 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박인환의 시가 재평가되기를 바라는 문인들은 그가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려고 했고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시인"(28)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과 같은 역사의 휘오리는 지나갔지만, 한 권의 시집이 남아 그 시대를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딸이여 /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디 있는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 살아 있을 것인가"(어린 딸에게 中에서, 71 / "있는냐"는 책의 오탈자인지, 시적허용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비껴갈 수 없는 자신의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거북이 처럼 괴로운 세월이 / 바다에서 올라온다"(남풍 中에서, 40). 그리고 온 몸과 영혼으로 괴로워했지요. "정의의 전쟁은 나로 하여금 잠을 깨운다. / 오래도록 나는 망각의 피안에서 술을 마셨다. / 하루하루가 나에게 있어서는 / 비참한 축제이었다"(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86).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고통일지 가만히 짐작해봅니다. "나는 아무 욕망도 갖지 않겠다. / 더욱이 낭만과 정서는 / 저기 부서지는 거품 속에 있어라"(태평양에서 中에서, 148). 그리고 역사의 거울을 통해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역사의 자리를 돌아보지요. "옛날이 아니라 그저 절실한 어제의 이야기 / 침략자는 아직도 살아 있고 / 싸우런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 무거운 공포의 시대는 우리를 지배한다. / 아 복종과 다름이 없는 지금의 시간 / 의의를 잃은 싸움의 보람 / 나의 분노와 남아 있는 인간의 설움은 / 하늘을 찌른다. // 폐허와 배고픈 거리에는 / 지나간 싸움을 비웃듯이 비가 내리고 / 우리들은 울고 있다 / 어찌하여? / 소기의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 원수들은 아직도 살아 있지 않는가"(새로운 결의를 위하여 中에서, 200). 

 


잊지 않겠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며, 기억한다는 것은 행동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우리는 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가, 왜 시대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가, 왜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잊기를 바라는 사람들, 망각 속으로 진실을 던져버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꿈을 빼앗고, 사랑을 빼앗으려 한다면 그는 우리의 원수가 아니겠습니까? <검은 준열의 시대>는 우리가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할 것은 떡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살아나가자고, 떨어진 신발, 무릎이 보이는 옷을 걸치더라도 열심히 배우자고,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나 남보다 더욱 진실히 살아나갈 것을 약속하자는 시인의 외침 앞에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 누군가의 무고한 피,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싸움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약속


먹을 것이 없어도 

배고 고파도 

우리는 살아 나갈 것을 

약속합시다.

떨어진 신발

무릎이 보이는 옷을 걸치고 

우리는 열심히 배울 것을 약속합시다.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나

푸른 하늘과 내

마음은 영원한 것

오직 약속에서 오는

즐거움을 기다리면서 

남보다 더욱 진실히 

살아 나갈 것을 약속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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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사찰여행 55 -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여행지
유철상 글.사진 / 상상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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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여행을 떠나자.



사실 '사찰'은 그곳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면 어김없이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땅 어디를 가든 절이 없는 곳이 없"(3)기 때문이지요. 어릴 적, 아버지랑 자주 올랐던 관악산에는 호암사가 있었고, 선산이 있어 자주 가는 서산에는 간월암이 있습니다. 엄마랑 단둘이 처음 떠난 부산여행에서는 해동용궁사를 일부러 찾기도 했습니다. 해안에 자리잡은 절의 위용이 참으로 대단했지요. 대한민국의 모든 명당에는 절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사찰은 그렇게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의 움직임을 자극한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 가지 방법이다(3)



이 책이 사찰여행을 추천하는 이유는 요란한 세상을 떠나 사색의 숲으로 들어가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본 사찰여행은 걷기여행이며, 느린 여행이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며, 힐링여행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을 잊고, 시간을 잊고, 나까지 잊고 있다, 공허와 피로를 가득 안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숲과 오솔길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사찰은 걸음의 속도도, 생각의 속도도 절로 느려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나에게 사찰여행은 추억여행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10년에 걸쳐 구석구석 걸으며 만난 55곳의 사찰을 이 책 속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 속에서 잊고 있던 추억과 만났습니다. 고창에 있는 선운사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고창이 외가인 저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뵈러 갈 때면 필수코스처럼 선운사에 들러오곤 했습니다. 그곳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볼거리, 재밌는 놀거리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걷기만 해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보면 선운사의 동백나무숲이 유명한데 "수령이 500년을 넘긴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될 정도로 웅장하다"(89)고 하는데, 4월이면 붉고 싱싱한 동백꽃과 산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렇게 봄꽃이 필 때면 엄마랑 이모랑 선운사 이야기를 많이 하셨나 봅니다. 친정을 찾을 때면 외할머니가 꼭 구어주셨다는 풍청장어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요. 4월이 가기 전에, 엄마 모시고 선운사에 한 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어느새 멀어져버린 내 어른 시절과 내가 모르는 엄마의 어린 시절과 만나며,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말입니다. 이제 다시 가면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운사뿐 아니라, 고창읍성까지 둘러보고 와야겠습니다. "성 안쪽으로 조성된 소나무 오솔길"과 "광고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법한" 대나무밭 군락이 있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휴식, 마음, 수행, 인연, 여행, 힐링이라는 주제(카테고리)로 나누어 사찰 55곳을 소개해주는데, 단순한 여행 정보만이 아니라, 사찰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사찰예절까지 이야기가 가득한 책입니다. 사찰의 문화와 역사는 불교의 문화와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실린 문화와 역사 정도만 알고 가도 '문화유산 답사' 여행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여행의 재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 별미도 소개해주는데 사찰여행과 함께 즐기는 별미 중 등갈비, 풍천장어, 갈낙탕, 설렁탕, 영광굴비, 한우와 같이 메뉴를 보면 괜히 혼자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촌스럽게 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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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글쓰기 - 마음을 움직이는 글 어떻게 쓰나
김갑수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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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글로 자기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삶에 기여하는 글쓰기, 이래서 진보적 글쓰기라고 명명한 것이다"(6).



이 책을 읽고나니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이 책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더 두렵다. 잘못 썼다가는 <진보적 글쓰기>를 배운(읽은) 사람이 글을 이렇게밖에 못 쓰나 책잡힐 것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이어트 '방법'을 알았다고 누구나 살을 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책 한 권을 읽었다고 당장 좋은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미리 해두고 싶다.


글쓰기에 대한 배움에도 이론과 실제(실전)가 있다면, 이 책은 이론과 실제를 동시에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본다. 직접 글을 쓰고 첨삭지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여러 면에서 글을 쓸 때 많이 저지르는 실수를 짚어주기 때문에 굉장히 실제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강렬했던 가르침은 첫째, 좋은 글을 쓰려고 하기보다는 나쁜 글을 안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둘째, 글을 쓰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내 말이 있어야 한다는 것, 셋째, 글을 쓰기에 앞서 내가 쓰려는 글의 장르와 성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 공부는 철저히 네거티브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원칙이다. "다시 말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말고 나쁜 글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0). 화려한 수사나 기교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기본이 지켜지는 글을 쓰라는 쓴소리이다. 주제의 명료성, 표현의 정확성, 생각의 깊이가 있는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되, 먼저 표현의 정확성, 다시 말해 "바른 문장, 적절한 어휘,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같은 글쓰기의 기본을 먼저 익히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가장 중요하다는 첫 문장을 쓸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저자는 나쁜 첫 문장의 예를 다음과 같이 가르쳐준다. "일단 우리는 이런 첫 문장들과 반대되는 나쁜 첫 문장을 안 쓰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라든지, '사람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식의 매가리 없는 첫 문장을, 그것도 자기만 아는 것처럼 쓰면 치명적이다"(51). 진짜 뜨끔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역사를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진보"(8)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최상으로 가치 있는 글이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글'이"(43)라고 말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떤 비유를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취미로 쓰는 글이라고 해도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내심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글쓰기', '논리적인 글쓰기', '서사적인 글쓰기'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읽어본 글쓰기 관련 책 가운데 이렇게 장르별로 강의해주는 책은 처음이다. 생각해보면, 글은 목적에 따라 장르가 다르고, 장르에 따라 접근이나 풀어가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모든 글을 하나로 퉁쳐서 배운 셈이다. 내가 지금 쓰려는 글이 세 가지 카테고리 중 어디에 속하는 글인지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정말 말도 안 되게) 나쁜 글을 쓸 위험을 확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정신이 번쩍 난다. 


<진보적 글쓰기>는 "당신도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보다, 오히려 "지금 글을 잘못 쓰고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준다(적어도 나에게는). 저자의 강의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라 책이 참 재미있게 읽힌다. 나쁜 글과 좋은 글의 풍부한 예를 비교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덮어놓는 책이 아니라, 글을 쓸 때마다 계속 옆에 두고 수시로 참조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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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속삭일 때 - 잠 못 들게 하는 현실, 믿음으로 사는 법
피트 윌슨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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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수님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이니 

 

그분이 두려움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다(20).



성경적 의미에서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요일 4:18). 신앙인이 두려움의 문제에 정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을 들키면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를 두려움 가운데로 내모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안전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양을 치며 성실하게 잘 살고 있는 다윗의 인생에 폭풍우를 일으키신 분도 하나님이신 것 같고, 에스더로 하여금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걸게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 아닙니까? 이 책은 이것이 괜한 의심이 아니었음을 확증해줍니다.  "예수님은 안전을 약속하신 적이 없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신 많은 약속 가운데 안전에 대한 약속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오히려 열정으로 꿈을 좇는 위험천만한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208).


현대인이 평균적으로 느끼는 불안수준이 1950년 기준으로 보면 정신병 환자의 수준과 똑같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불확실하고 두려움이 넘쳐나는 시대인데,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하나님은 우리를 평안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가운데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려운 상황 가운데로 내모시면서 동시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 그 모순 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신앙인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우리의 목표는 덜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더 믿는 것이다(38).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두려움 가운데로 내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모험이 가득한 삶으로 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모험 가운데도 초청을 받은 자가 필연적으로 두려움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이며,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라는 요청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지 알고자 하시는 테스트인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속삭일 때 우리의 목표는 "덜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더 믿는 것"(38)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속삭일 때>는 현대인을 괴롭히는 일반적인 불안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믿음의 모험 가운데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맞닥드릴 수밖에 없는 두려움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들에게 "죽을 만큼 두려운 상황에서 끝까지 전진하는 법을 가르쳐"(24)주는 책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가 진정한 목적을 이루는 것에 어떤 식으로 개입하고 도우시는지를 일깨워"(30)주는 책입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라. 

하나님이 도와주실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25)



1. 믿음의 모험 가운데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현재의 안전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을 향해 믿음의 첫 발걸음을 떼십시오. 익숙한 것을 떠나 보내고 두려운 상황 속으로 뛰어드십시오. 첫 발걸음을 떼야 다음 단계를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초청을 받고 믿음의 여행을 하는 중이십니까? 그렇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삶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모험을 하며 하나님이 마음속에 주신 꿈이 벌써 현실로 이루어졌습니까? 그렇다면 그 복을 누군가에게 나누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승리를 주신 것은 나의 승리가 다른 사람의 승리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라는 장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는 눈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기 원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꿈을 피해 반대방향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믿음의 모험 가운데로 뛰어들기를 원합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움켜쥐고 벌벌 떠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써나가를 위대한 이야기에 동참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잠 못드는 밤이 아니라, 설레임 때문에 잠 못드는 밤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믿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강함을 다시 회복하기 원하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위대한 삶 속으로 뛰어들기 원하는 모든 믿음의 자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하며 새롭게 하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만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이런 일을 하길 원하신다. 사랑하는 자녀가 뻔하고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기만 한 삶을 사는 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 안에 두신 불꽃은 불을 일으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 불꽃은 당신을 세상 속으로 보내기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낙심과 불의, 악이 가득한 곳으로 보내 치유와 소망, 위로를 전해 주길 원하신다"(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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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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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있다는 건 아군이 있는 것과 같다. 그게 손주들의 궁극적인 특권이다. 자초지종이 어떻든 항상 내 편이 있다는 것. 내가 틀렸더라도. 사실 내가 틀렸을 때 특히"(75).


책을 읽으면서 오랫만에 펑펑 울었습니다. 아마도 엘사와 할머니라면 우라지게 재밌고, 짜증나게 슬프고, 어마무지하게 아름답다고 표현했을 것 같습니다. 살면서 가장 속상한 것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좋은 머리를 갖지 못한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무조건이라는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 없는 거 말고, 유독 나만 예뻐하는 그런 사랑말입니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고, 내가 하는 말은 다 들어주는 '슈퍼 히어로' 같은 사람말입니다.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그 슈퍼 히어로를 이 책에서 만났습니다. 엘사에게 그런 할머니가 있는 것이 우라지게 부럽고, 그런 할머니와 헤어져야만 하는 것이 짜증나게 슬프고,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어마무지하게 아름다워서 펑펑 울었답니다. 



"기다리는 사람더러 편지를 전해줘. 받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이 할미가 보낸 거라고 하면 돼. 할머니가 미안하다면서 안부 전해달라 했다고"(71).


"지금 일곱 살이고 조금 있으면 여덟 살"(11)이 되는 꼬마 엘사는 할머니 말고는 친구가 없답니다. 엘사가 오지게 특이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엘사가 잘 통하는 건 할머니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초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할머니는 엘사의 엄마를 돌아버리게 하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늘 엘사를 지켜주고 언제나 엘사 편이었던 할머니가 더 이상 엘사 곁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함께 잠이든 병원 침실, 엘사는 할머니의 품 안에서 잠을 깨지만 할머니는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에 엘사에게 미션을 부여합니다. 성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친구들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엘사는 할머니가 보물찾기처럼 감추어놓은 편지를 이웃들에게 한 통씩 전달하며 할머니의 부탁이 무슨 뜻이었는지 깨달아갑니다. 엘사와 할머니만 아는 "깰락말락한 나라에 있는 여섯 개 왕국"의 이야기가 그 힌트였다는 것도요. 




"그들은 자기 집에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그냥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544). 


엘사에게 맡겨진 편지 배달은, 보물찾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할머니가 엘사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추억이자 놀이였으며, 또 할머니가 엘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었습니다. 폭력적인 세상에 어린 손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할머니는 엘사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할머니가 엘사와 맺어주려 했던 친구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었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편지 배달이라는 미션을 통해 엘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보는 법말입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할머니를 통해 엘사는 그것을 깨달았고, 또 그런 엘사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지키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슈퍼 히어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사랑의 다른 말은 '이해'라는 걸 가르쳐줍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 우리가 받고 싶은 사랑이 바로 그 '이해' 아닐까요. 저 사람이 나를 이해한다는 느낌, 그 느낌이 필요한 거지요. 할머니가 엘사에게 그토록 멋진 슈퍼 히어로일 수 있었던 건, 할머니가 고아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 슈퍼 히어로가 절실했기에, 슈퍼 히어로가 필요한 손녀의 마음을, 그리고 손 내밀어줄 이 없는 괴물(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요.


작가는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11)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어릴 적 슈퍼 히어로를 갖지 못했던 어른들도 여전히 슈퍼 히어로가 필요하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젊은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여기가 지옥인가 싶습니다. 자기 자식밖에 모르거나, 자기 자식도 모르거나, 양극단을 오갑니다. 어느 쪽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읽으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곱 살 아이에게도, 스스로 지옥 같은 현실을 만들며 살아가는 어른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는 슈퍼 히어로가 필요하다는 것과, 이미 마음이 망가진 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 가장 멋진 슈퍼 히어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엑스맨>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고품격 문학작품을 알아야 내용이 더 잘 이해되지만, 이 책 자체가 현실 세계와 동화 세계를 넘나드는 고품격 문학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겐 이런 작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번역자의 이름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읽을수록 감탄하며, 번역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 책을 통해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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